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357화 (357/653)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

성탄절 이후부턴 확실히 연말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한 달 하고도 며칠만 더 지난다면 정말로 새해가 다가오니.

비록 농사일로 바쁜 나날들이 이어가지만, 민간에서도 새해를 기원하는 의식을 자주 열었다.

이미 자신의 생일에 한해 덕담과 용돈을 주고받은 상민은 평소 모습대로라면 새해가 들기 전에 훌쩍 떠났겠지만, 430년 올해만큼은 달랐다.

‘12월에 여름이라니, 나는 북반구가 편하구나.’

빙주에 가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린 상민이 지금 창양에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올해 새해가 바로 지나고 1월 2일이 되면, 고려에서 최초로 관함식이 열리기 때문.

관함식(Fleet Review).

관함식이라 하면, 국가원수가 나라의 거의 모든 해군 함정을 동원해 함대검열을 하는 행사였다.

육군에 열병식과 사열식이 있다면, 해군에는 관함식이 있었다.

유래는 백년전쟁 시기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가 영국함대를 검열한 것에서부터겠지만, 이제 그들의 관함식은 별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이미 고려 해군의 규모는 육군의 규모를 아득히 능가했다.

단순한 병력 자체는 육군이 조금 더 많겠지만, 예산 규모는 차원이 달랐다.

기껏 총과 대포, 그리고 다혈포 등의 지원화기만을 운용하는 육군보다는 강철로 만들어낸 함선들을 타고 다니는 해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니 관함식은 실로 볼만한 광경이 펼쳐질 것이다.

상민으로서도 이 역사적인 상황을 빼놓을 순 없었다.

보안상의 이유로 정확한 날짜는 숨겼지만, 이미 제국해군과 연방해안경비대는 적어도 일 년 전부터 이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심지어 태평양에 주둔한 증기군함들 중 일부는 이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통행할 수 없는 운하를 내버려 두고 울부짖는 바다를 통과한다는 선택을 내리기도 했다.

흘수선 높은 순양 철갑함에 증기기관이라 거친 파도에 버티는 덴 성공했지만, 타고 있던 장병들의 속은 뒤집혀 버렸겠지.

사실 관함식은 전 세계에 뻗어 있던 고려 해군과 해안경비대를 최소한의 인원만 남겨두고 모두 거두어들이는 순간이었으니, 안보상의 공백이 생기는 일이다.

강력한 해양 적성국이 있었다면 관함식이 열리는 날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고려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다.

안보공백에 준동할 나라들은 제각기 자기 코가 석 자였으니.

반면, 관함식을 할 이유는 많았다.

거대한 국력을 과시하는 순간이었기에, 제국해군의 진면목을 본 대사들은 자국에 고려와 전쟁을 벌이는 일은 자살행위와도 같다는 절규 섞인 서신들을 보낼 것이다.

이는 충분히 전쟁억지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바야흐로 대북방전쟁이 절정을 지나 결말로 향해 달려가고 있는 순간, 고려는 양측이 확전을 시작한다면 좋은 꼴을 보진 못할 거라 으르렁거릴 필요가 있었다.

의외로, 관함식에 대한 생각 자체는 군 출신 황제가 아닌 시중에게서 나왔다.

황제는 밖으로 나다니고 있는 해군 함정을 한곳으로 모아 굳이 예산을 펑펑 써가며 돈지랄을 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다.

그 돈으로 새로운 함정을 한 척 더 건조하는 것이 해원의 성미에 맞겠지.

하지만 민선시중은 가끔 국력을 과시하는 것도 통치와 외교에 좋다는 논리를 들었다.

“폐하, 곰과 호랑이, 그리고 사자가 구태여 포효를 하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소신이 생각건대, 맹수의 포효는 맹수끼리의 사회적 간격과 영토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하옵니다. 저 루스인들이 주제를 모르고 북방에서 큰 난리를 피웠고, 지금도 호시탐탐 그 흉악한 탐욕을 남쪽으로 향하려 하니 마땅히 고려는 그들이 주제를 깨달을 수 있도록 보여주어야 하는 법입니다.”

그 말을 들은 해원은 곰곰이 생각하다 승낙했다.

가끔 그는 제국의 국력이 실제보다 꽤 과소평가되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극비에 부친 상민의 존재와 아직 청사진만 있지 개발되지 않는 신병기들, 그리고 기타 여러 가지로 국력을 제한하는 제도들이 있었긴 했지만, 어쩌면 고려는 의도한 것보다도 더욱 약해 보일지도 몰랐다.

러시아가 대드는 것도 그 증거 중 하나겠지.

숨길 것은 숨기지만, 드러낼 것은 드러내야 했다.

‘이번 기회에 해군 함정들의 상태도 좀 보아야겠다.’

“시중, 그럴 거면 차라리 이번 기회에 비행선을 공개하는 것은 어떻소?”

민선시중은 해원이 덧붙인 말에 놀랐으나, 이내 진지하게 고려해보겠다는 답변을 남겼다.

황제는 분명히 높은 곳에서 그의 함대를 바라보고 싶은 것이 틀림없었다.

표정이 초롱초롱한 것이, 크게 기대하고 계신 모습이다.

* * *

관함식이 열릴 장소는 극비로 붙여졌다가, 결국 성탄절이 지나고 나서야 확정되었다.

해문은 맨 처음 제시된 관함식 장소였지만 여러 번의 토론 끝에 거부당했다.

일단 도시 자체가 사실상 고려의 세 번째 대도시이자 수도의 외항이었기 때문에 너무 유명했다.

민간인들이 너무 많이 몰릴 수 있어 보안 통제가 불가능했으며 창강과 광하, 그리고 두 강의 하류인 태황강 유역은 남려의 거의 모든 물류가 움직이는 곳이다 보니 관함식이 열리는 기간 동안 큰 혼잡이 염려되었다.

관함식은 보다 한적한 곳에서 여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두 번째로 꼽힌 장소는 남포였는데, 남포는 이미 예전에 군항이 철수했고 민항으로 남았다.

대형 군함들이 정박하기에는 하구와 바다가 마주하는 지점의 수심이 깊지 않아 꺼려지는 감이 있었다.

그리하여 관함식이 열릴 항구는 포항 남쪽의 신군항, 석정(石碇, Puerto Madryn)이 채택되었다.

해군을 위한 도시를 만들어달라는 해군 관계자들의 뜻에 따라, 5차 상서성 개편(개천 395)과 동시에 지어지기 시작한 석정시는 그야말로 해군을 위한 복합도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위도상으로는 포항보다도 아래였다.

그러므로 석정 또한 도시와 그 주변 일대는 감자 이외에는 뭐가 잘 자라지도 않는 황무지(파타고니아)였다.

식량은 외부에서 가져와야 했지만, 철도를 깐 이후부터는 전혀 문젯거리가 아니었고 애초에 황무지였던 덕분에 기본 인구가 거의 없었으니 보안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었다.

조정에서도 이해관계가 없는 땅에 곧바로 계획도시를 세우기 좋았다.

자연적 위치도 좋았다.

석정 앞바다, 석정만은 빛이 환한 대낮에도 수면이 검푸른 빛을 띨 만큼 물이 깊었다.

또한 석정시의 앞에는 돌닻반도(Península Valdés)라는 특이하게 생긴 반도가 있었다.

사실상 석정이라는 이름이 유래한 이 반도는 외부의 파랑을 방어해주는 천연 방파제의 역할을 해서 석정만이 고요하게 유지되게끔 해주었다.

그러니 해군도시가 개발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여건이었던 셈이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열심히 살아가던 바다표범과 물개, 그리고 뒤뚱새(펭귄)들이 인간의 난입에 놀랐지만, 의외로 네 종족은 잘 어울렸다.

본래라면 사람들이 온 뒤 개발이 시작되면 크게 위협을 받을 자연 동물들일 터다.

하지만, 애초에 고려는 내륙 쪽의 석정시 부근만 도시로 만들 계획이었음에도 반도 전체와 그 앞쪽 지역까지 전부 해군과 해군 가족, 해군 관계자들을 제외하면 개발은 물론이고 통행조차 할 수 없는 군사보안구역으로 설정해 놓았기에 야생 동물들 또한 어쩌면 그 부수적인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었다.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다.

본래 돌닻반도에 많이 오고 가는 남려참고래(Eubalaena australis)가 인간과 평소 자주 교류하는 본능대로 아는 척을 하기 위해 증기군함에 접근했다가 소용돌이 추진기에 몸이 갈려 큰 상처를 입은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대대적으로 신문 기사가 나기도 한 일이었다.

이후 소용돌이 추진기의 외부에 보호관을 달아 고래와 같은 생물의 접근을 차단했고, 뿐만 아니라 그물과 부유하는 얼음 등의 이물질로 인한 손상으로부터 함선의 손상을 방어하는 설계도가 나왔다는 사실은, 사해용왕의 후손인 고려인들이 바다를 아끼는 정신을 잘 드러내는 상징적인 일화가 되었다.

* * *

석정시도 이제 세워진 지 삼십오 년이 지났기 때문에, 관함식을 거행할 수 있는 능력은 충분했다.

석정시장은 하루에 세 시간만 자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내빈들 맞이와 행정처리에 매달렸고, 해군 관계자들도 황제의 행차와 함대 사열에 만반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열차는 하루도 끊이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왔다.

그중에는 특별한 기구도 있었다.

몸체와 기낭이 분리된 채 가져온 비행선의 모습에 사람들은 이 물건이 무엇인고, 하고 신기해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운반했다.

“조심해서 들게!”

허종욱이 다소 신경질적인 외침을 내뱉었다.

“바람구멍이라도 나면 우리 다 죽네! 제발 조심 좀 하게!”

일꾼들에게 괜한 짜증을 부리는 것 같았지만, 사실을 알고 있는 관계자들은 그에게 동정을 표할 뿐, 공격적인 언행에 뭐라 하지 않았다.

‘이런 젠장!’

고려 최초의 비행인, 허종욱은 입 안이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황상께서는 왜 직접 이 물건을 타신다고 하셨는가!

허종욱 자신은 원체 겁이 없었고 하늘을 나는 것이 꿈이었기에 설령 사고가 일어나 떨어져 죽는다 하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목숨을 배 밖으로 내놓은 것은 자신만으로 족한데, 어째서 황상께서 직접 이 물건을 타신다고 하시는가.

허종욱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바락바락 우기며 엎드려 누웠고 그를 직접 설득하러 온 군무상서를 대면할 땐 바짓가랑이를 붙잡고는 황상을 말려달라고 애원했지만 그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심지어 황후도 같이 타겠다는 무시무시한 발언을 들었을 뿐.

하루아침에 황제 부부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된 허종욱은 지독한 정신적 압박에 혼절할 뻔했지만, 그렇다고 상황을 회피할 수는 없었기에 최선을 다해 맡은 임무를 완성하겠다고 다짐했다.

‘허씨 가문을 위해서라도 해내어야 한다!’

그의 먼 선조, 조선인이자 고려로 이민 온 뒤에는 고려 최고의 소설가가 된 허균은 그의 ‘공상과학’ 소설에서 하늘을 나는 물건들에 대해 실감 나는 묘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의 후예인 허종욱도 어릴 적부터 선조의 소설을 읽으며 자랐으니 불과 열여덟 살에 하늘을 나는 작은 열기구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소식은 어찌어찌 황성과 군무부에 흘러 들어갔고, 젊은 청년은 어릴 적부터 많은 관심과 감시를 받은 채 요주의 인물로서 고려의 하늘을 위해 봉사해야만 했다.

그가 만들어낸 열기구는 점차 커졌다.

초창기, 기낭 하부에 석탄을 이용한 가열기를 놓고 띄워보내는 것에 그쳤던 원시적인 기낭은 꾸준한 투자를 받아 어느덧 그 덩치가 엄청나게 커졌고, 화학과 재료공학의 발전에 힘입어 재료와 구조 또한 빠르게 개선되었다.

단순히 이상기체 법칙을 이용한 열기구에서 이제는 기체의 화학적 성질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

부소(浮素, 헬륨)는 그러므로 후기형 열기구, 초기형 비행선의 대표적인 원리가 되었다.

“부소를 주입하라!”

북려에서는 이상한 기체가 자주 보고되곤 했다.

훗날 부소란 이름이 붙은 이 기체는 북려대륙을 거닐며 지역의 자원과 지질을 탐사하는 관리들에 의해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

땅속의 갈라진 미세한 틈에서 나오는 헬륨은 그 수량이 극소량이었으나, 택주 북부에서 그 존재가 분명히 확인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신기한 기체 정도로 여길 만큼 대접이 별로였다.

그때에는 유전과 천연가스도 딱히 개발할 시점이 아니었으니 제대로 된 연구도 병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 간단한 보고서를 접한 상민은 기체의 존재가 훗날 미중무역전쟁에 이용될 만큼 희귀한 전략자원인 헬륨임을 거의 확신했고, 곧바로 발견된 장소를 메워 보존하거나 그럴 수 없다면 채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어차피 질질 새면 죄다 하늘로 날아갈 것, 하루라도 빨리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았다.

정작 채취된 부소는 쓸 곳이 마땅치 않았다.

아무리 특수제작된 용기로 밀폐를 한다고 해도 내버려 두면 결국 사라지는 것이 이 부소라는 기체라, 상민은 어차피 손실될 것, 부소 전량을 화학적 연구나 비행선 연구에 돌리도록 지시했다.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비행선 한 척을 만드는 것에 성공한 허종욱은 적어도 황상이 탈 비행선에는 전부 다 부소를 불어넣기로 했다.

한편 화학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기낭의 재질로 가장 적합한 것은 의외로 첨단 소재가 아니라 원시적이기 짝이 없는 동물 창자였다.

그 위를 면이나 아마, 삼베와 같은 다른 직물들로 덮는다 하더라도, 섬유들로 완벽히 공기를 막아낼 수는 없었다.

소재에 관한 과학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되지 않는 이상엔 앞으로도 창자가 쓰일 것이 자명했다.

기낭에는 주로 덩치가 큰 소의 창자가 쓰였는데, 한 대의 기구를 위해 몇만 마리의 소 창자가 필요했으니 어마어마한 자본이 필요했다.

다행스럽게도 대량의 고기 소비국인 고려에서는 창자를 구하기 쉬웠다.

민간에선 비행선 개발 이후 순대나 소세지를 구하기 힘들어졌지만.

땅 위에 정위치한 비행선에 다가가 부풀어진 채 고정된 기낭에 몸체를 조립한 허종욱이 몇 번을 거듭하여 점검을 내리고는 마침내 비행선 안에 탑승한 뒤 점화구에 불을 붙였다.

“점화!”

부소와 가열된 공기를 함께 병용하는 방식의 비행선이 가득 팽창한 채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맙소사!”

“하늘을 난다! 연도 아니라 사람이 하늘을 난다고!”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노동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비명과도 같은 감탄성이 퍼져 나갔다.

열차에서 짐을 하역하고 있는 사람들도, 먼저 와서 준비하고 있는 해군 관계자들도, 심지어 슬슬 석정만으로 진입하는 해군 함정의 갑판에서도, 모두가 경악의 탄성을 내질렀다.

허종욱이 만든 거대한 비행선은, 최근 뉴턴의 이론과 상민의 조언을 토대로 상당히 아름다운 외관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외관이 뭐 그리 중요하던가.

저기 사람이 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허종욱은 몇 시간 동안 비행을 하고는, 이미 만들어진 계류탑에 비행선을 정박했다.

부소나 수소를 이용한 비행선은 일반적인 열기구와는 달리 기체를 넣고 빼는 데 너무 힘이 들기에 이렇게 그냥 묶어놓는 것이다.

임시 승강기까지 설치된 계류탑에서 내려온 허종욱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계류탑 앞에는 구름처럼 사람이 몰려들어 있었다.

그들이 마침내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를 냈다.

“고맙소이다.”

이미 예전에 몇 번이고 하늘에 올라갔다 내려온 허종욱이지만, 열기구를 발명한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행적은 극비로 다루어졌기 때문에 아마 지금 이 순간이 그가 역사서에 기록될 순간일 터.

그 순간이 어찌나 감격스러운지 이제 곧 황제 부부를 모셔야 한다는 중압감마저 잊어버린 채 허종욱은 사방에 손을 흔들었다.

[작가의 말]

미국에는 헬륨이 무척 풍부합니다.

굳이 구멍을 안 뚫어도 텍사스 북부의 천연가스 간헐천에서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상업적으로 이용할 만큼의 경제적인 헬륨은 천연가스 유정에 덤으로 껴 있는 것을 채취해야 하기 때문에 유전 관련 산업이 조금 더 발달을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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