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355화 (355/653)

기업의 시대(6)

처음, 아이작 뉴턴 주니어의 세계는 고독하고 불행했다.

어릴 적부터 우울하고 고독한 성격이었던 그는 집에서도, 다른 곳에서도 그 누구와도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많은 부를 쌓아가고 있었지만, 뉴턴에게는 자상한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는 장남이 장남의 의무를 다하길 원했다.

가끔 자식의 훈육을 위해 매를 들기도 했으며 시종일관 고압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뉴턴 주니어는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그저 다른 곳에 정신을 팔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무언가를 수집하고 실험하며 기록하고, 제작하는 데 유별나게 집착했던 것.

그의 가문이 비로소 차남. 윌리엄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뉴턴 주니어는 그가 원하는 대로 아버지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질 수 있었다.

어머니는 뉴턴 주니어를 아끼고 사랑했지만, 가끔은 너무나 무지하며 보수적이라 아들의 고민에 공감해주지 못했다.

어머니는 의무교육과정이 아닌 중학교를 다니는 것도 제일 반대했던 사람이다.

심지어 아버지보다도.

초등 담임교사의 강력한 설득이 없었다면 실제로 뉴턴은 제포중앙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이러한 답답한 환경 속에서, 뉴턴은 천천히 세상과 담벼락을 쌓아두고 있었다.

‘사람이란 존재는 믿을 만한 게 아니야. 멍청하고 무식하고 이기적이며, 언제든지 배신하고 날 상처줄 수 있어.’

이미 뉴턴 주니어의 강박은 어릴 적부터 형성되고 있었다.

혹은 태어날 때부터 형성되었을지도 몰랐다.

세상을 다른 창구로 보는 지극히 명석한 자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봤을 때 느끼는 괴리감은 그로 하여금 일반적인 사회적 교류를 쌓지 못하게끔 만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중학교 시절 뉴턴 주니어의 증상은 더욱 강해졌다.

2학년을 맞이할 때까지 그는 학우들로부터 적지 않은 심적, 육체적 폭력을 받았다.

뉴턴 주니어의 사람에 대한 피해망상과 불신, 그리고 집착적 정신병은 극도로 심해졌으며, 그는 심리적 구렁텅이로 빠져들어 갔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암실.

심상을 말로 표현하자면 모든 창문에 나무 널빤지를 덧대고 덧대 밖의 사람이 그를 볼 수 없게, 그도 다른 이들을 볼 수 없게 차단한다.

문에는 수많은 자물쇠와 잠금장치가 있으며 그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비록 창문과 문을 거칠게 두드릴지언정 박살 내진 못했다.

이곳에서 그는 안온했다.

하지만 그는 일생에서 해방자를 만났다.

자기방어적 기제로 스스로를 꽁꽁 둘러싸고 있던 뉴턴 주니어조차도 그러한 외부의 도움을 예상하지 못했다.

한순간 문을 속박하던 자물쇠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갔으며, 창틀에 덧댄 널빤지들도 하나씩 사라졌다.

마치 계시처럼, 불행에서의 해방은 단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뉴턴 주니어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사라졌다.

듣기로는 정도에 따라 사회봉사시간 1000시간에서 3000시간을 명령받았다는데, 피해자들(당연히 뉴턴만 있진 않았다.)의 증언과 증거에 따라 몹시 고된 육체적 ‘사회봉사’를 하러 가야 하는 처지에까지 놓인 자들도 많았다.

정의가 집행되는 순간은 실로 달콤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뉴턴 주니어는 그런 자그마한 기쁨보다는 오히려 다른 것을 더 좋아했다.

뉴턴 주니어는 불행의 늪에서 자신을 구원해준 은인이자, 진정한 ‘친구’라 말할 수 있는 자를 얻은 것이다.

“당신에게 무슨 신비한 힘이 있길래, 저를 이렇게 구원해 준 것이죠?”

“글쎄….”

단 한 번의 손길로 뉴턴 주니어를 핍박하던 사람들을 탈탈 털어 학교에 넘긴 거구의 사내는 그저 이 상황이 만족스러운 듯 웃고 있었다.

* * *

뉴턴 주니어는 비록 나이가 어렸지만 빠른 두뇌 회전으로 사람의 성격을 얼추 읽을 수 있었다.

피해망상은 어쩌면 인간 특유의 추악한 욕망과 이기적 행동들을 그 자리에서 계산해 낼 수 있었던 그의 능력 때문에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친우가 뉴턴 주니어에게 보인 것은 그저 순수한 호의, 그뿐이었다.

짧은 세상이나마 살아올 동안 뉴턴은 자신의 친우만큼 이상한 자는 처음 보았다.

그는 욕심이 엄청나게 많았다.

다른 사람보다도 훨씬 더.

하지만 그 욕심의 방향성이라는 것이 저렇게까지 타인을 위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분명 그는 수학에 대해 번뜩이는 영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지식과 깊은 현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서 뉴턴은 그 청년에게만 자신의 마음속 방에 들어올 열쇠를 하나씩 주었던 것 같았다.

상민의 배려로 중학교에서 단숨에 청해대학교 수학과로 입학한 뉴턴 주니어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누리기 시작했다.

엄하지만 좋은 지도교수를 만났으며, 그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이른 나이에 조기 졸업을 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제국한림원에 들어가 공부를 더 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다시금 모교로 돌아와 교수의 자리에 올랐다.

뉴턴 주니어는 상민과 계속 서신을 교류했다.

고려 이곳저곳을 다니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그의 친구는 뉴턴 주니어와 오래 어울리지는 못했다.

예상하건대 그는 엄청나게 높은 지위의 사람이리라.

물론 친우 덕에 인간에 대한 불신이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나, 뉴턴 주니어는 여전히 일반적인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림원에 들어간 그는 수많은 지식의 파도에 범람하듯 휩쓸렸고, 과도할 정도로 자신의 연구에 매달렸다.

단시간에 엄청난 업적을 세운 것도 사실이다.

그는 고전역학을 증명하는 과정에 있어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평가받는 해석역학(Analytical mechanics)을 만들어내어 훗날 뉴턴 역학이라고 불리는 분야를 개척했다.

뉴턴 역학은 임광재 역학의 결과와 일치하지만, 기존의 향량(벡터)적 직교좌표계의 틀에서 벗어나 어떠한 추상적인 일반화 좌표계(generalized coordinates)에서도 적용될 수 있기에 고전역학을 충실히 보완했다.

이에 고려에서 최연소로 영실 수학상을 수상하여 한동안 화제가 되기까지 했으니, 학문적으로 볼 때 이미 그는 고려 내에서도 인정받는 거대한 지성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학문에 과도하게 매달리는 것도 좋지는 않았다.

열정이 편집증이 되면 건강마저 해치기 마련이다.

그 당시, 선배 수학자의 대표적인 짓궂은 장난이라고 볼 수 있는 피에르 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파고들고 있던 뉴턴 주니어는 한동안 침식을 잊고 문제를 풀고 있었다.

다시금 그의 정신적 집착이 악화될까 우려한 상민은 결국 그의 연구실까지 직접 찾아와 말렸다.

“그렇게 애매모호한 명제 정도야 너도 충분히 만들 수 있지, 안 그래? 설령 여백, 아니 종이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더라도 그 양반 또한 제대로 증명하진 못할 거야.”

비록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먼 훗날 영국의 수학자 앤드류 와일스에 의해 완벽히 증명되었지만, 그 수준은 지금 수학계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단계였다.

위대한 천재들, 뉴턴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인들’이 몇 세기 동안 분야를 개척해야만 후대의 수학자들도 그 거인들의 어깨에서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아마 페르마 자신도 앤드류 와일스의 해답과는 다른 답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그 자신조차도 오답을 내놓았을지도.

그 이후, 뉴턴의 관심사를 돌리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상민은 그에게 여러 가지 임무를 주었다.

처음에는 재무부의 일거리를 맡겨보기도 했는데 뉴턴은 한창 지폐를 도입하며 시행착오를 앓고 있는 고려에게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뉴턴이 객관적으로 재무부의 일에 얼마만큼 도움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기 이후 고려는 기존의 금은 이중본위제에서 본격적으로 금본위제로 나아갔으며, 지폐를 제대로 쓰기 시작했다.

위조지폐를 방지하기 위해 면과 견, 그리고 기타 여러 가지 직물들을 혼용하여 위폐와 차별되는 이질적인 질감을 구현하고 내구성을 향상시켰으며, 수위표(워터마크) 등의 위조방지기법도 등장한 것이다.

재무부의 일을 그만둔 뒤에는 뉴턴은 일반전기회사의 수학고문을 보기도 하고 상민의 부탁으로 당시 최초로 항공회사가 된 ‘하늘길’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사실상 이리저리 부려 먹히고 있는 것 같았지만, 친우는 학자들끼리 벌어지는 업적 도둑질과는 거리가 멀었고, 도리어 자신의 명예와 성과를 인정해 금전적인 지원을 해 주었다.

하늘길 회사에서 유체역학, 그중에서도 주로 공기역학을 크게 발전시켜 놓은 이후, 뉴턴 주니어는 다시금 모교로 돌아와 강단에 서기도 했다.

그러면서 천천히 편집증을 완화시킨 뉴턴은 다시금 본업으로 돌아와 흥미가 떨어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대신 새로운 이론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임광재 역학은 전자기학과 갈릴레이 변환, 케플러 법칙으로 한계성이 나타났다.’

전자기학의 중요한 원리 중 하나인 윤우겸의 법칙으로 제시된 빛의 성질을 생각해보면, 임광재 역학은 말로 설명하지 못할 아주 미묘한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뉴턴은 이를 계속 연구하다 마침내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아마도, 시간과 공간은 속도에 따라 상대적이지 않을까.’

* * *

그 와중 뉴턴은 상민의 조언에 따라 틈틈이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가기도 했다.

그의 자부심은 그 자신의 치부와 나약함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지만, 뉴턴 주니어는 친구의 말이라면 정말로 무리가 아닌 선에서는 거의 다 해왔기 때문에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청해대학교 내에 있는 심리상담소에 향했다.

당시 고려는 육체적 질병 말고도 정신적 질병에 대한 연구도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으니 청해대학교와 같은 최고의 명문대에는 관련된 학과가 진작 개설되어 있었다.

교수실인지, 치료실인지 안에 들어서니 은은한 향을 내는 꽃과 나무들 그리고 따사로운 햇살 아래 편안해 보이는 안락의자가 있었다.

이미 마흔 줄에 들어선 뉴턴 주니어보다는 나이가 젊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여교수가 그를 반겼다.

“뉴턴 교수님의 증상은… 전문적인 용어로 조현병이라 해요.”

뉴턴은 그곳에서 자신의 정신적 이상을 직시했다.

자신이 어딘가 조금 남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정확한 병명을 들으니 기분이 참으로 심란하고 언짢았다.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과대망상, 환각, 환청 등이 있죠.”

정상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들을 상상한단다.

뉴턴은 정밀한 진단을 받은 그제서야 자신이 보고 말하는 것들 중에 일부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 자각할 수 있었다.

허공에 혼잣말을 한다든지,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든지.

이번에도 친구가 옳았다.

뉴턴은 꾸준히 심리상담을 다녔고, 서서히 증상이 완화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치료를 받은 1년 반 뒤에는, 간단한 농담 삼아 여교수에게 직장동료끼리 한번 밥이나 먹자고 말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

평소 그의 성격을 고려해보았을 때, 그 정도의 농담이면 엄청난 발전이 틀림없었다.

물론 치료가 썩 마음에 들지 않은 날도 있었다.

어느날, 뉴턴이 물었다.

“환각과 환청을 어떻게 구별합니까?”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들은, 그만큼의 어색함이 있을 거예요. 당신 정도로 명석한 사람들은 금방 관찰해 낼 수 있겠죠. 가령 당신의 환청, 그러니까 당신에게 말을 거는 자들이 계속 나타난다면, 그들의 모습들을 기억해 보세요.”

* * *

둘은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친구로 지냈다.

말도 이미 편하게 한 지 오래였다.

사실 삶을 살아오면서 더 이상 나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너는 내가 만든 환상인가?”

처음 꼬마 뉴턴 주니어를 구해주었던 청년은 청년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꼬마 뉴턴 주니어는 이제 머리가 희게 변하고 있었다.

“그렇게 보이나?”

변하지 않는 모습.

어쩌면 뉴턴의 환상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는 극도로 부인했다.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진정한 친우가 환상이라면, 그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믿을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있었다.

“아니, 그럴 리가. 아무리 정교한 환상이라도 나를 곧바로 청해 대학과 재무부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지는 못하겠지.”

마침내 반증해 내어 안도의 한숨을 쉰 뉴턴 주니어가, 이번에는 훨씬 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럼… 너는 신인가?”

친구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다만 인상을 썼다.

그날 밤, 뉴턴 주니어는 오랜만에 자신의 고향, 집성촌에 위치한 집으로 돌아갔다.

뉴턴 시니어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뉴턴 주니어의 동생인 윌리엄 뉴턴이 그의 형을 반겼다.

자신의 몫으로 아이작 토스트 겹빵 주식의 이 할 오 푼을 남겨두었다는 말을 듣고 엉성하게 고개를 끄덕인 뉴턴 주니어는 집 안에 있던 낡은 성경을 가지고 다시 고향 집을 떠났다.

다른 집성촌의 이민자들과 비슷하게 잉글랜드개신교(롤라드파)를 믿고 있던 뉴턴 일가는 남들이 다 고려 정교회나 고려 성공회로 개종하고 있는 마당에도 아직 예전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롤라드파뿐만 아니라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심지어 제국교와 쿠쿨칸교의 자료들까지 수집한 뉴턴 주니어는 확신과 환희에 떨었다.

그리고는 불과 2년 만에 한 가지 논문을 저술했다.

일평생 수학과 과학만을 해왔던 자로서는 뜬금없는 일탈이었지만, 그 내용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반향을 일으켰으니.

이 [삼위일체의 허구성에 관하여]라는 책은 곧바로 그동안 조금 잠잠했던 고려의 종교계에 거대한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았다.

* * *

“그러니까, 자네도 라이프니츠에게 조금 정중하게 대해 달라고.”

동료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다른 사람을 모욕할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상민의 말에 임원 숙소에서 쉬고 있던 뉴턴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알았네.”

“그리고, 진짜 웬만해서는 주식 투자를 하지 말도록 하게. 그냥 좀 모아놓은 돈은 저금해 놓으면 안 되나? 어떻게 죄다 날려 먹을 수가 있지?”

“…….”

뉴턴은 상민을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난 대자연의 이치를 탐구하는 것에는 자신이 있지만, 이제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탐구하는 것엔 자신이 없어졌어.”

그건 사실 상민도 그랬다.

물론 뉴턴이 말아먹은 주식들 대부분은 상민이 다시금 구입해 놓았지만, 상민은 이번엔 뉴턴 주니어에게 주식 대신 현금을 줄 생각이었다.

‘이런 천재도 경제를 예측하지 못하는구나.’

불황은 고려와는 거리가 먼 단어였지만, 완전히 무시하면 안 되는 노릇이기도 했다.

상민은 숙소에서 나와 마지막으로 들를 곳으로 향했다.

일반전기회사의 마지막 역작은 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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