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시대(4)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인간군상들이 있기 마련이다.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다.
세이버리와 뉴커먼처럼 잘 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서로를 죽어라 싫어하는 사람이 있기도 했다.
“전 그 인간이 아직도 싫습니다.”
여기까지 온 김에 고충을 말해보라는 소리에, 눈앞의 남자는 뜬금없이 그런 소리를 내뱉었다.
‘애들도 아니고.’
상민은 차라리 방금 전까지 봤던 뉴커먼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쉰 살이 넘은 학자가 계속 불평불만을 털어놓았다.
“인간이 덜되었습니다. 심히 불쾌한 작자입니다. 사람이 멍청한 건 아닌데 잉글랜드 출신답게 음흉하고 주제넘기가 짝이 없습니다.”
그의 입에서 악의가 잔뜩 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평소 그의 온화하고 품격있는 태도를 보아할 때, 이는 상당히 놀랄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는 여전히 얼굴을 구기고만 있었다.
그는 꼭 처음 만났을 때처럼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 * *
라이프니츠는 프로이센 태생의 수학자 겸 공학자 그리고 밖에도 여러 가지 학문들을 넓게 손댄 당대의 최고 지식인 중 하나였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고, 어릴 적부터 학문에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유럽에서 손꼽히는 명문인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공부를 하여 청년기부터 호엔촐레른을 직접 섬기기도 했다.
심지어 라이프니츠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이후 즉위한 선왕 프리드리히 1세(고려 황후 루이제 아말리에의 이복오빠)의 치세에서 중용을 받았었다.
젊었을 때부터 고려와 프랑스를 따라 프로이센에도 왕립 아카데미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그는 동분서주하여 프리드리히 1세의 치세 때 마침내 프로이센 왕립 아카데미를 만들고 학술원장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그는 내리막을 걸었다.
안타깝게도 라이프니츠와 교감이 잦았던 프리드리히 1세는 꽤 이른 시간에 세상을 떠났고, 어린 나이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통치를 시작하자 그는 한순간에 입지가 크게 흔들렸다.
이 소년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병정놀이에 심취해 있었으며 그만큼 호전적이었다.
게다가 인성도 몹시 안 좋았으며, 전쟁을 제외한 분야에서는 극심한 수전노였다.
그는 선왕을 사치스럽다 욕했을 뿐만 아니라 선왕이 산 사치품들을 대부분 되팔았으며, 심지어 추진하던 정책들도 무위로 돌렸다.
프로이센 왕립 아카데미의 예산도 거의 삼분의 일로 줄어들게 된 것.
당연히 라이프니츠는 크게 반발했다.
그도 만만치 않게 고집이 셌으니, 급기야 그의 주군과 한밤중에 말다툼까지 벌이고 말았다.
물론 제아무리 그가 학술원장이고, 왕의 나이가 어리다 하더라도 프로이센의 왕에게 그러고 무사할 수는 없었다.
라이프니츠는 다음 날 소년왕의 분노를 피해 프로이센을 반쯤 쫓겨나듯 떠나야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나이 차가 별로 나진 않지만 엄연히 소년왕의 고모인 루이제 아말리에가 그를 염려하여 고려로 올 수 있게 배려(라고 하지만, 배후에는 상민이 있었다.)한 덕에 그는 일신상에 큰 위기를 겪지 않고 무사히 학문의 본고장으로 도피할 수 있었다.
그때는 얼굴이 참 죽상이었는데.
어쨌든 이후 프로이센은 조금 화가 난 듯했지만, 고모의 편지를 받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별말을 하지 않고 다시 대북방 전쟁에 집중하는 덕에 이 일은 별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지나갔다.
왜 그리 이 사람을 아끼냐고?
지금 기라성 같은 고려인 학자들을 자체적으로 교육해내거나 이민자들을 받아들인 고려를 제외하고 ‘비고려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이과적, 수학적 재능을 가진 세 명을 꼽으라면 단연코 라이프니츠와 하위언스, 그리고 보일을 꼽을 수 있겠다.
이들은 제각기 프로이센, 네덜란드, 에이레의 학자들이었지.
그중 하나를 거저 취할 수 있는데, 사양해서야 되겠는가.
고려도 고전역학의 임광재나 전자기학의 해인규 등 엄청난 학자들을 배출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역사적 인물들의 등장 자체가 대부분 변동이 없는 이 삶에서, 굳이 검증된 천재들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21세기에서 혹자는 현대의 대학교 시간강사 수준의 사람이 인류 역사의 3대 수학자로 꼽히는 가우스와 아르키메데스 등을 능가할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두 시대를 살아가는 상민이 보기엔 그것은 완벽한 헛소리였다.
한 분야를 개척한 절대적인 천재들은, 그 시대를 상관하지 않고 그들의 재능을 드러내었으니까.
그야말로 타고난, 축복받은 재능.
낭중지추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겠지.
미래의 사회가 보편교육으로 인재의 절대 풀이 늘어난다고 해서 그 이전 시대 천재들의 직감과 열정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물론 상민이 손을 뻗는다고 그런 천재들이 전부 다 다가오진 않았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거학들, 메르센과 페르마, 파스칼 등은 그들의 인생을 애정 어린 조국, 프랑스에서만 마감했다.
이제 이 시대가 저물면 베르누이 가문과 오일러, 가우스를 비롯한 천재들도 나올 터였지만 그들도 이곳에 올지는 미지수였고.
이미 그들이 쌓아 놓았을 업적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천재들은 다른 업적을 쌓을 수 있는 능력과 열정이 차고 넘쳤다.
“알겠네. 그건 이따 이야기하지. 지금은 업무적인 결과물부터 먼저 보여주게나.”
라이프니츠도 그랬다.
보라, 고려 수학자 최대길과 한승수가 이미 라이프니츠와 뉴턴에 앞서 미적분을 정립했다 하더라도, 라이프니츠는 끝끝내 그의 다른 재능, 즉 공학자로서의 성과를 거두지 않았는가.
― 후우
“여기 있습니다.”
프로이센의 전 학술원장은 그제서야 자신의 못난 꼴을 자각하고는 한숨을 내쉰 다음 표정을 관리하고 물주이자 회장에게 특이하게 생긴 기계를 보여주었다.
상민은 그의 반짝거리는 눈만큼이나 반짝거리는 황동으로 장식된 계산기를 바라보았다.
실제로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크고 무거워 보였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기계의 이름은 놀랍게도 계산기(Calculator)라 했다.
지금까지 고려는 주판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파스칼의 덧셈, 뺄셈 계산기에다가 직접 곱셈과 나눗셈까지 가능하게 만든 라이프니츠 계산기는 분명히 주판보다는 훨씬 높은 기술 수준의 집약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름답군.’
잘 짜여진 계산기관.
지금은 위대한 인간의 지성을 넘볼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계산기 이후에 나올 기관들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수식을 아무거나 하나 불러주시면….”
한번 주제가 전환되니, 라이프니츠는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버리고 열정적으로 입을 열었다.
대충 기억나는 숫자를 연산해보라 지시하자, 라이프니츠는 그가 발명한 계산기에 숫자를 입력하고 결과를 도출했다.
그 과정이 좀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긴 했다.
“자, 결과값입니다. 확인해 보시지요.”
상민은 그가 대충 연산한 것과의 답을 비교했다.
결과값이 무려 여덟 자리가 되는 긴 수식이었지만, 오차는 없었다.
혹자는 라이프니츠 같은 천재들이라면 그 계산과정을 스스로 도출해 내서 결과를 조작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상민이 직접 옆에서 작동원리를 설명받은 바로는 그런 것은 관찰되지 않았다.
자신의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었고.
라이프니츠는 그의 다른 발명품, 즉 계산자(slide rule)도 선보였다.
“이건 크기가 작구만?”
“한 손에 들 수 있지요.”
정말로 자같이 기다란 이 흰색의 도구는 몸체의 어미자와 움직이는 아들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특이하게 생겼군.’
하지만 상민은 라이프니츠의 설명을 듣다가 차츰 진지한 얼굴을 해나갔다.
대부분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대충 따지고 보면 비수함수(로그함수)의 원리로 삼각함수를 계산하는 도구인 듯한데.
근사값에 불과하다지만 계산능력에 큰 진전을 불어넣을 수 있어 보였다.
“솔직히 말해보게, 이거 군인이 쓸 수 있나?”
라이프니츠는 뜬금없는 말에 회장을 쳐다보았다.
방산 회사라도 가지고 있는 모양인가.
“탄도학에 적용할 수도 있겠지요.”
대충 설명을 흘려듣던 상민의 눈이 부릅떠졌다.
병사들은 아니더라도 포병장교들에게 이것들을 대략적으로 교육할 수 있다면 야전에서의 포격 정확성이 향상되지 않을까.
“좋아. 그래, 다시 한번 설명해주게.”
* * *
“……그래서 그랬다고? 아이작이 완전히 그릇된 소리를 했다고 생각하나?”
“…….”
“그 사람도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야. 그대와 같이 시대의 천재지. 그가 오류를 지적했다면, 해석기관은 오히려 돌파구를 찾을 수 있네.”
라이프니츠는 해석기관(analytical engine)을 꿈꾸고 있었다.
사칙연산이 가능한 계산기를 발명한 이후부터 오히려 그 열망은 더욱 강해졌다.
지금은 그 목표치를 낮추어 차분기관(difference engine)을 만들기로 했지만, 그 꿈은 여전히 계속 유지되고 있는 모양이다.
차분기관을 만들 자금은 충분했고, 라이프니츠는 자신이 성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아이작, 그놈의 입에서 해석기관은 멍청한 망상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라이프니츠는 이 상종 못 할 인간과는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물론, 라이프니츠는 긍지 높은 독일인이었으니, 비겁하게 그 자식의 말을 회장에게 곧이곧대로 일러바치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이유를 들어 씩씩댔다.
“그 인간은 임광재 교수의 고전역학도 함부로 지적하는 놈입니다.”
“학자로서는 그럴 수도 있지. 자네도 고려 학문의 기풍을 알고 있지 않은가?”
상민은 도리어 라이프니츠를 달랬다.
“난 확신하네. 자네의 접근성은 옳아. 특히나 십진법 대신 이진법을 사용한 것, 그건 찬탄 받아 마땅하다 생각한다.”
“…그렇습니까?”
과학자들은 인정(人情)보다는 인정(認定)에 약하다.
직업적 숙명으로 매번 회의의 눈길과 싸워야 하는 그들은, 이렇게 단 한마디의 말에 깊이 감동하곤 했다.
물론 상민도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라이프니츠는 기계장치에 한해서 영 불편했던 십진법 대신 이진법을 도입하였다.
0과 1로만 모든 숫자를 표시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
적어도 앞으로의 기계장치들에서 이진법이 얼마나 중요해지는지 알고 있는 상민은 그 접근방법이 정말로 옳다고 여겼다.
상민은 이리저리 헝클어진 생각을 정리했다.
이런 천재들에게 조언을 할 때는 잘난 척을 하지 말아야 한다.
최대한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객관적인 정보들을 전달해주는 것이 이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테니까.
“자네의 연구가 왜 일반전기회사에 들어있는지 아나?”
“…….”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에 라이프니츠가 당황했다.
“톱니바퀴로만 이루어진 자네의 해석기관 설계도는 이론적 한계를 제외하고도 공학적 한계를 가지고 있어 보이네.”
상민은 눈대중으로 그의 시제품(처참하게 실패한)과 의도한 설계도를 바라보았다.
너무 복잡해 보였다.
애니악과 콜로서스도 덩치가 산만 한데, 톱니바퀴로 돌아가는 기관의 크기는 얼마나 클 것인가.
“자네 설명대로 증기기관이 없으면 돌아가지를 않으니까.”
“전기를 이용하라는 말씀이시군요. 허나, 어떻게?”
자신의 물음에, 라이프니츠는 곧바로 자신의 해답을 찾았다.
“…전류가 흐르거나 그렇지 않거나로 1과 0을 표현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상민은 미소 지었다.
라이프니츠는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방 안을 미친 사람마냥 휘적거리고 돌아다니더니, 공책에다가 유성 먹에 빠트리지도 않은 철필촉을 휘갈겨 쓰는 추태를 보였다.
상민은 한눈에 보이는 그의 환희와 깨달음에 뿌듯한 마음이 들긴 했다.
어쩌면 자신이 컴퓨터, 혹은 고려식으로 ‘연산기’로 불릴 물건에 이바지한 것이 아닌가 하고.
‘근데, 전기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던가?’
진공관과 트랜지스터, 반도체가 없으면 말짱 꽝이 아닐까.
라이프니츠는 아직까지도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그의 집중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상민은 자신이 알고 있는 기타 다른 것들을 근처의 종이에 대충 휘갈겼다.
그럼 이제 밑천이 드러나기 전에 도망가는 것이 좋겠다.
나머지는 몰라, 알아서 하겠지.
[작가의 말]
사실 저는 본문에 나온 직선형 계산자는 본 적이 없습니다.
원형계산자는 봤었네요….
참고로 저도 문과입니다 ㅋㅋ
비수함수 = 로그함수
차분기관 = 근사 다항식을 유한 차분법을 통해 계산하여 로그와 삼각함수를 표로 만드는 특수 목적용 계산기
해석기관 : 기계적 범용 컴퓨터의 설계
연산기 : 컴퓨터(Compu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