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시대(3)
상민의 문어발식 경영방식은 특히나 이 회사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일반전기회사]
이 회사명도 어디선가 영감을 받긴 했다.
다른 이름 짓기가 의외로 귀찮다는 것도 한몫 거들었다.
아마 원역사의 ‘제너럴 일렉트릭’도 에디슨이 이름 짓기 귀찮아서 그렇게 지었지 않았을까.
J.P. 모건이 에디슨을 축출하고도 딱히 사명을 바꾸지 않았던 것도 생각해보면 모건 또한 마땅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다.
아주 약간은 촌스러운 기분이 들긴 했다.
물론 그 감정은 예전 삶을 기억하고 현재를 살아오며 한글과 고려글을 쓰는 화자인 상민에게나 해당되는 사실일 수 있었다.
반면 지금의 외국인들에게는 예전 삶의 한국인들이 그러했듯 오히려 고려글이 뭔가 있어 보이게 들릴 수 있겠지.
바그 코히엔 때문에도 아마 더 그럴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기가 쓰일 여지가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연구하고 발명품을 개발하는 이 회사는. 상민이 가진 어떤 기업보다도 많은 연구진들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 상민의 직속 휘하에 있는 기술선도국 기술자들과 학자들은 상민의 판단하에 다른 곳에서 일을 할 수도 있었는데, 그 소속 사람들도 이곳이 제일 많았다.
그래도 여기선 되도록 신분이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았다.
바닷바람에 정밀한 기계들이 부식될까 봐 청해와 가까운 내륙의 제포(곧 청해에 통합될 예정이다)에 들어와 하천을 끼고 세워진 일반전기회사는 청해 시내의 본사 건물보다도 훨씬 큰, 굳이 비교하자면 거의 대학교 크기만큼의 거대한 연구단지를 가지고 있었다.
시민들에게 반쯤은 열려있는 대학교 교정과는 달리, 삼엄할 정도의 높은 강회 담벼락이 있는 것이 달랐지만.
“너무… 교도소 같지 않나? 보안도 좋지만 좀 미적으로 편안할 수 있게 해보게.”
“예.”
과학자들이 그런 걸 신경 쓸 종자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민은 또 한 번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사단장은 사단장만의 고충이 있는 법이라는 사실은 사단장이 돼 봐야만 안다.
그렇다고 뜬금없이 삽 한 자루를 주고 산을 옮기란 말은 하지 않겠지만.
미적인 편안함도 그들의 작업효율에 큰 능력을 줄 수 있었다.
다행히도 넓고 푸른 잔디밭과 꽃밭, 수학적으로 균일하게(연구자들이 직접 잔디밭의 면적을 계산하여 아름다운 황금비로 심어달라 요구한 적도 있었다) 배치된 가로수까지 있으니 여기 있는 입장에선 휑한 담벼락이 의외로 신경 쓰이지 않을 법도 했다.
일반전기회사의 건물도 아름다웠다.
이 시공법은 대단히 독특했다.
정말로 20세기, 심지어 21세기에서 나올 법한 세련된 건물들이 있었으니까.
연구진들의 숙소는 단열을 중시하는 일반적인 강회 시공법이었다면, 그들의 연구소와 전시장으로 쓰는 ‘ㅜ’ 자형 주 건물은 일반적인 건물과는 완전히 달랐다.
철근강회로 만든 연구소 건물의 외벽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판유리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름하여 장막형(커튼 월) 유리 시공 방식.
최근 압연공법으로 찍어낸 판유리를 급속냉각할 수 있는 신공법이 개발된 후, 유리의 가격은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었기에 많은 가정집들이 거의 모든 창문에 유리를 달려는 추세였다.
돈지랄이라면 뒤지지 않는 상민은 유리를 이용하여 그가 기억할 수 있는 최신의 건물 공법을 적용해보라 말했으니, 비로소 첫 번째로 통유리로 외벽을 두른 건물이 나타난 것이다.
일반전기회사의 사람들은 이 건물을 ‘수정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실제로, 상민은 몇십 년 내로 제국박람회를 개최할 생각이었고 이곳의 연구소를 건축했던 경험은 그때의 진실된 수정궁―박람회장―을 짓는 과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햇빛에 더없이 찬란하게 반사되는 유리 특유의 독보적인 화려함.
그리고 그 귀한 유리를 찍어낼 수 있다는 압도적인 산업력.
다른 나라 사람들은 수정궁에 들어오기 전에 소변부터 봐야 할 것이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기술적 보안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람회라는 MICE 산업의 꽃을 완전히 버릴 수도 없었다.
박람회를 통해 얻는 위신, 그리고 혁신의 기운, 그리고 참가한 기업들이 얻을 수 있는 자기 홍보 등은 시대가 지날수록 엄청나게 커질 테니까.
그리고 수정궁이라 하면….
‘요즘 청해축구단 이놈들의 기강이 많이 해이해졌단 말이야. 주급 따박따박 꽂히니 아주 살판났지? 내친김에 청해에 더비 관계를 하나 더 만들어 줄까?’
축구단 사업을 머리에서 굴려본 상민은 이윽고 주 건물 현관 앞에서 멈추었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순간 멈추었다.
얼굴을 가리는 화학자 및 약학자용 입가리개를 쓴 상민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 들어가기 전에 발전소부터 먼저 보고 가지. 외부에 있지 않나?”
“모시겠습니다.”
본래는 마지막 순서였겠지만, 상민은 어서 빨리 그것들이 보고 싶었다.
일반전기회사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결국 전기 그 자체가 아닌가.
연구소를 다시 나가 담장 옆으로 좀 걸어가자 저 멀리 자그마한 화력발전소가 보였다.
대동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자그마한 냇가에서 물을 끌어오는지 크고 두꺼운 관이 인상적이었다.
두 명의 유럽인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일반전기회사의 연구소장이 입을 열었다.
“발전소의 수석연구원이자 총책임자들입니다. 왼쪽은 토마스 세이버리(Thomas Savery), 오른쪽은 토마스 뉴커먼(Thomas Newcomen)이라 합니다.”
토마스 뉴커먼은 친근하게 다가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서신으로만 교류했는데 드디어 뵙게 되니 실로 영광입니다. 이름으로 부르면 헷갈릴 수 있으니 성씨로 불러주십쇼.”
눈앞의 청해 통령이 사실상 고려의 황족(청해 통령은 1대 통령 이후부터 대외적으론 군왕과 같이 방계의 세습직이라 여겨졌다.)쯤으로 알고 있던 토마스 세이버리는 뉴커먼의 스스럼없는 행동에 예절을 갖추라 팔꿈치로 동료를 만류하려 했다.
세이버리는 그래도 젊었을 적 잉글랜드의 귀족을 모셔봤지만 뉴커먼은 비루한 노동자 출신이었으니 그럴 예절을 익히지 못했을 것이다.
가뜩이나 고려에 오자마자 갑자기 예전 삶보다 훨씬 더 잘살고 직장 내에서도 승승장구하게 되니 한창 자긍심에 부풀어 있었을 수도.
하지만 상민은 딱히 괘념치 않고 그 악수를 받아주었다.
“그렇게 하지.”
“…….”
상민은 군인, 정치가, 황족, 그리고 직계 부하에게는 위계질서를 대접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들은 계급으로 다스려야 할 존재였으니까.
그들에겐 기강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눈에 넣어도 안 아픈 학자들과 교수들, 기술자들은 전혀 다르게 대했다.
이들은 기강보다는 탄력적인 사고와 인간적인 대우가 필요했다.
물론 영면을 취하고 있는 장성재와 같은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상민의 그런 인간적 총애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뉴커먼은 무언가 오싹한 기분이 드는지 부르르 떨어 보였지만, 상민은 여전히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는 이들을 소개하는 자리기도 했으나, 정작 상민은 여의국으로부터 이들을 서면으로 보고받았기에 이들을 알고 있었다.
아는 척은 딱히 할 필요가 없어서 하지 않았지만.
역덕으로서 증기기관의 아버지들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고려는 조선에 인구 빨대를 꽂고 있었다면, 잉글랜드에는 인재 빨대를 꽂고 있었다.
그 저명한 존 로크도 청해대학의 교수가 된 마당에, 자신이 기억하여 적어 놓은 인재들을 상민이 놓칠 리가 만무했다.
물론 자신들이 고향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면 데려오기가 힘들겠지만, 잉글랜드의 인재들은 그리 모국에 정이 없어 보였다.
지금의 잉글랜드는 정치적으로도 나약하고 경제적으로도 연약했다.
앞마당인 프랑스와도 사이가 지극히 나빴고 다른 주변국들, 즉 스코틀랜드와 에이레로부터 강한 견제를 받고 있었으니.
게다가 날씨도 좋지 않고 사회적 불평등도 심해지고 있으니 인재들은 그들의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사회로 도전할 기회를 환영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가장 도전하기 쉬운 나라는 대서양을 건너 이민자들(기술과 자격이 있는 한)을 그나마 잘 받아들이는 고려였다.
두 명의 토마스는 회장을 이끌고 자신의 업무를 보고했다.
떨릴 만도 했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것이 시대의 천재들이 그러하듯 자기 확신이 강해 보였다.
“지금까지의 발전기의 모습입니다.”
해인규와 윤우겸, 이의, 정성태가 이론적 기틀을 다진 후, 전력발전소는 곧바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 자기장의 변화가 전류를 만든다.
자기장 속에서 도선을 움직이기만 하면 도선에 전압이 생긴다는 원리는 곧바로 기존의 증기기관과 연관되어졌다.
기계적인 동력을 전기로 바꾸는 최초의 발전기는 말년의 정성태와 그 제자인 조영민이 개발했는데, 그 원리는 물을 가열하여 압원통 안의 충배를 움직이는 일반적인 증기기관의 설계와 거의 동일했다.
“지금까지 일반적인 발전기는 계자 부위에 영구자석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한계로 인해 저희는 계자 부분에 전자석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더 조절하기 쉽고 더 튼튼하지요.”
― 탁 탁
“여긴 일반적인 전기자입니다. 자기 선속(magnetic flux)을 쇄교하여 기전력을 유지하는 부위라고 할까요.”
“기전력이라 하면 전위차를 말하겠지. 자속을 끊어야 기전력이 발생하는 것이고.”
“…그렇습니다.”
뉴커먼은 새삼스럽게 놀란 눈으로 상민을 바라보았다.
사실, 몇 번 서신을 주고받을 때부터 이 사람이 범상치 않다는 것은 느꼈던 바였다.
직류와 교류의 장단점을 은근슬쩍 설명한 것부터 그렇게 느끼긴 했지만, 직접 와서 이야기하니 그 설명 자체가 다른 학자의 입이 아닌 회장의 입에서 나왔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반면, 남는 시간 틈틈이 운동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최신 학문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던 상민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전압을 행하는 단위라 알고 있네. 그리고 기전력과 전압의 단위계를 자네 이름으로(N) 정했다는 것도 알고 있고.”
“하하….”
반대로 전류량을 측정하는 단위계는 세이버리의 성씨를 따서 S라 쓰이게 되었단다.
볼트와 암페어에게 미안하진 않았다.
그 사람들도 천재이니, 제대로 성장한다면 뭐 다른 이론들을 발견할 수 있겠지.
“여기는 정류자로, 전기자에 의해 만들어진 기전력을 직류 혹은 교류로 변환하는 부분입니다.”
― 이렇게 띄우면 직류가 되는 셈이지요.
뉴커먼은 지금까지의 발전기 설명을 마치고, 자신들의 발전기를 소개했다.
뭐가 좋고 뭐가 대단하다느니, 뉴커먼 특유의 익살스러운 과장이 많았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의 발전기는 한층 더 크게 성장한 듯싶었다.
전자석 계자 말고도, 다른 부분의 변화가 눈에 띄었다.
계자는 가만히 있고 전기자와 도체가 회전할 때 전기가 발생되는 기존의 원리와는 다르게, 이제 회로(고정자)가 가만히 있고 계자, 즉 회전자가 회전운동을 하게 된 것이다.
이거까진 무슨 원리인지는 몰랐지만, 두 명의 토마스들은 효율성이 후자가 더 낫다 판단한 모양이다.
“서신으로 말씀하신 대로, 발전 및 송신용은 교류를, 변압기를 통해 일반적인 기구들은 직류를 쓰는 형식을 채택했습니다.”
상민의 해박한 지식에 대해서는 세이버리도 뉴커먼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에게 직류와 교류의 장단점을 배운 뒤부터 그랬다.
이 정도의 대귀족이나 황족들은 이런 걸 잘 신경 쓰지도 않았고 공부하지도 않았으니 실로 특이한 사람이다.
“잘했네. 고압의 교류 전기는 안전 문제를 유념해야 하지만, 송전의 편의성으로 인해 필수 불가결하지. 내 지금 당부하건대 그대들도 항상 안전 장구를 착용하게. 지금처럼 고무장갑도 잘 끼고.”
“예,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역사에서 직류냐 교류냐 허튼 싸움을 시작한 직류파의 수장 에디슨은 결국 온갖 협잡질에도 불구하고 교류파의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교류 방식이 현재 실현 가능한 최선임이 증명된 셈이다.
21세기 들어서 직류전력망이 다시금 재조명받는다는 말이 얼핏 기억나긴 했지만, 그건 그만큼의 반도체 발전이 선행되어야 했다.
상민은 발전기의 발전상에 흡족해하며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러자 두 명의 토마스가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윽고 그에게 달려왔다.
“회장님.”
“뭔가?”
“자금이 더 필요합니다.”
아무런 설명 없이 돈부터 요구하는 뉴커먼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 세이버리가 뉴커먼을 말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저희의 본업은 발전기라 어쩌면 다른 곳에 한눈을 판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저희들은 지금 이 충배식 증기기관이 대규모 발전소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그래? 어째서?”
회장은 딱히 불쾌해 보이지 않았다.
세이버리가 계속 설명했다.
“어차피 고온고압의 증기를 동력으로 전환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이니, 애초에 이렇게….”
미리 준비했는지, 세이버리는 그림으로 그린 설명서를 꺼내 들었다.
단정한 그림, 하지만 날아가는 악필.
“이 악필은 제가 아니라 저 친구의 솜씹니다.”
세이버리와 상민의 눈길을 받은 뉴커먼이 딴청을 피웠다.
“설명이나 계속해 보게.”
“증기를 이용해 충배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날개를 단 기구에 직접적으로 분사시켜 날개를 회전시키는 것이지요.”
따지고 보면 바람개비의 원리다.
“물론 아직까지만 해도 발전소는 대형화가 목표이고, 이 동력기관은 대형화할수록 더욱 효과적인 동력을 창출해낼 수 있습니다. 증기기관이 커지면 커질수록 느린 속도로 작동하는 것에 비해 이 동력기관은 날개들을 더욱 빠르게 움직이니 전력효율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 생각합니다.”
“…….”
상민은 놀라운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건, 지금 당장 나온 무슨 원리나 발명품이 아니기에 상민이 틈틈이 공부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존재 자체는 알고 있었다.
증기터빈, 사실상 현대의 발전소까지도 계속 계승되어 내려온 산업 시대의 물건.
세이버리가 헛기침을 했다.
“물론 개념 자체는 이탈리아 과학자인 지오반니 브란카와 제 옛날 고향인 존 윌킨스 주교의 생각에서 따오긴 했습니다만….”
원리가 비교적 단순하다 보니 전 시대의 사람들도 비슷한 도구들을 만들긴 했다.
하지만, 그것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새로운 기관을 만드는 일은 엄연히 다른 문제였다.
세이버리와 뉴커먼이 제시한 증기터빈, 증기분사기관이라는 임시 이름이 붙은 이 기관은 이전부터 꽤나 많은 고민을 해왔던 듯 그 설계도가 상당히 정밀해 보였다.
“일단 당장 특허부터 등록하지.”
뉴커먼이 옆에서 재촉 아닌 재촉을 했다.
“회장님, 돈, 돈….”
서른이 넘는 과학자의 앙탈에 어이가 없어서 한 차례 웃어 보인 상민이 그 자리에서 수표를 꺼내 들었다.
“메디치 은행이나 청해 은행, 기업 은행 어딜 가도 유효하게 작용할 수표니 알아서 선조치하게. 나중에 사용 내역은 일전(일반전기회사의 줄임말) 경영진에게 알려주고.”
“예, 예 감사합니다!”
아참.
상민이 세이버리를 불렀다.
“이거, 배에 적용할 수는 없겠나?”
상민은 곧바로 생각해냈다.
대형화할수록 기존의 증기기관보다 유리하다면 혹시 배에도 도입 가능할지도.
대형화가 가능한 유일한 병기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