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351화 (351/653)

기업의 시대(2)

* * *

‘어차피 결국 모든 자원이란 고갈될 처지, 우리 거부터 먼저 먹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역시나 상민은 석유마저도 남의 것을 먼저 뽑아먹을 생각부터 하고 있었다.

사실, 다른 자원들보다도 석유의 가치가 더욱 중차대해질 시대가 올 테니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희토류도 부각되니 뭐니 하지만 결국 석유가 21세기의 최우선 자원이 아니던가.

어쩌면 아대륙자원보호법은 다 이 순간을 위한 포석일지도.

통치권이 닿지 않을 남의 석유 먼저 빨아먹기.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어지겠지.

그러니 오히려 지금 먼저 들어간 뒤 적당한 시점에 나와야 했다.

특히나 중동 쪽은 현대에 와서도 외세에 굴복하지 않는 대표적인 지역 중 하나였으니 그곳을 점령하여 통치한다는 생각은 약간 가능성이 떨어졌다.

고려의 황통에 그들의 선지자, 무함마드의 혈통이 있다지만 그 사실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모호했다.

전생에서 그토록 장수하던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도 무함마드의 피가 섞여 있지 않느냐는 말이 자주 나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여전히 무슬림들의 입장에선 이교도는 이교도일 뿐이니 대접받을 생각은 말라, 그리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다.

민족주의와 지역주의, 이슬람 근본주의 등이 격화되기 전에 꿀을 달달하게 빨다 나오는 것도 좋겠지.

사실 아직 내연기관이 제대로 더 성장하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했으니 원유는 적은 양만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초대형 유조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려는 분명 혼자서 독보적인 과학 및 기술, 공학의 문을 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

하지만 기술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경쟁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명예를 둘러싼 학자 간의 경쟁이야 충분히 많이 있었지만, 국가와 국가 간의 긴장 상황 속에서 발생되는 경쟁도 필요했다.

근데 경쟁자가 없네.

순도 높은 기만일 것이 분명하니 애석하다고는 말하지 말자.

어쨌든 원역사보다 적어도 한 세기에서 한 세기 반은 이른 기술들의 등장은 그만큼 시행착오도 길어질 수 있었다.

― 우당탕

“어, 어? 쓰러진다!”

상민의 생각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끊겼다.

시추 현장의 가운데, 흙을 파낸 곳에 투입하기 위해 세워놓았던 기다란 철제 금속관이 모로 넘어졌다.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먼 거리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상민이 이마를 감쌌다.

안 다친 게 다행이다.

“휴우….”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모여들자, 감독관도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거, 제발 작업할 때 조심 좀 합시다!”

평소 똑똑한 놈이더라도, 시행착오를 겪을 때는 하나같이 약간은 띨빵한 모습을 보여주기 마련.

지금 고려는 전주에 유전을 파러 나온 인원 전부가 띨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반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연서궁에서 먹물 꽤나 먹었다는 교수들까지 전부.

이해는 했다.

아는 게 있어야 뭐가 위험한지 알지.

고려는 지금 석유에 대한 전반적인 학문을 새로 써야 했다.

지질학자들에게 석유가 존재할 만한 지역을 찾게 만들어야 하는 것도 큰일이다.

세상의 땅은 넓디넓으니, 아무리 상민이라 할지라도 석유가 그 어디에 매장되어 있는지 어찌 다 알겠는가.

또 지역을 어떻게 알게 되었어도 제대로 된 석유 시추법부터 개발해야 하는 처지기도 했다.

삽으로 팔 수는 없는 노릇이니, 천공기(穿孔機)를 써야 할 텐데.

살면서 공사장 근처를 지나다니다 천공기를 볼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상민도 그 구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아예 없었다.

‘사천에 틀어박힌 촉한이 소금을 얻기 위해 땅을 깊게 뚫었다지. 순나라 인부들이라도 좀 데려와야 하는가.’

현 사천은 이자성의 순나라가 대부분 점유하고 있으니,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거의 천오백 년 전 사람들도 해냈는데, 지금 사람들이라고 못 할 법도 없지 않은가.

머리를 좀 써보라고.

상민은 답답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기로 했다.

전주에서 좀 파는 법을 익힌 다음에 중동에서 제대로 파보면 되겠지.

어차피 원유를 캐면 또 뭘 하는가.

그 원유를 곧바로 이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증류(Distillation), 정류(Rectification)를 이용해 원유를 또 수가지 다른 성질을 가진 기체나 액체로 바꿔야 효율적으로 사용 가능했다.

그렇다면, 그 원유의 정류탑의 설계도 문제가 된다.

비동도 기준 300도가 넘는 온도에서 원유를 증류하는 것은 지금 이 시대에선 극히 섬세하면서도 위험한 공정이었다.

사고가 터지면, 어떻게 될지는 상상하기도 싫었다.

서두른다고 될 것도 아니었으니 종합해보면 또 시간이 문제라는 소리였다.

내연기관을 통해 기계화 농업을 위한 견인기(트랙터)의 발명도, 이 넓은 땅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또 한 번 줄여줄 자동차의 발명도 모두 시간문제였다.

그래서, 상민은 이 틈에 과도기를 메워줄 수 있는 발명품을 몇 가지 선보이기로 했다.

* * *

‘새로운 이동 수단’의 필요성은 고려 역사에서 의외로 이른 시기부터 대두되었다.

시작은 창양과 청해의 대도시의 환경문제에서 기원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고려에서 한가락 한다는 사람들은 죄다 마차를 끌고 다녔다.

그러니 말의 똥 문제는 웃어넘기기에는 꽤나 심대한 문제가 되어 있었다.

냄새도 안 좋았고 보기도 안 좋았고 위생도 안 좋았다.

말 엉덩이에 배변낭을 설치해봐도 역부족이었다.

그 거대한 덩치의 말이 얼마나 똥을 많이 싸는지 안다면 놀라울 정도였으니까.

똥으로 가득 찬 배변낭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꼴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자면, 점심에 먹은 음식물이 무엇인지 확인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다.

맨 처음 상민은 대중교통용 마차철도를 도입했다.

어차피 마차가 많이 돌아다닐 거, 일반적인 시민을 위해 한 번에 움직일 수 있는 궤도형 마차를 선보인 것.

그러나, 대중교통에 탈 사람은 소득 수준이 비교적 낮은 자들이었고 어차피 마차를 타지도 않을 사람들이었다.

마차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고 똥만 더 많아지고야 만 것이다.

그 후 상민은 증기노면전차, 즉 증기기관차의 시내 버전을 만들어 대중교통을 해결해보려고 했다.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았지만, 외국에서는 상당히 자주 볼 수 있는 트램을.

하지만 긴 철로를 여행하는 기차와 달리 짧은 구간을 멈추었다 운행해야 하는 노면전차는 증기기관 특유의 관성으로 인해 썩 효율이 좋지 못했다.

물이 끓을 때까지 기다려야 출발을 하니까.

그러다보니 효율도 떨어져 석탄도 석탄대로 잡아먹었으며 심지어 도시의 환경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매연까지 배출하니 증기노면전차는 아주 예외적인 환경, 즉 큰 저탄장이 있고 바닷바람으로 공기가 잘 순환되는 청해 정도에만 깔리고 말았다.

‘이것도 결국 내연기관이나 전기기술이 더 발전해야 한단 말이지.’

그리하여 상민은 증기노면전차의 확장은 일시적으로 보류하고 본격적으로 다른 산업에 뛰어들었다.

자전거 사업에.

* * *

주식회사 ‘삼만리’는 상민이 설립한 세계 최초의 자전거 회사로, 개천력 399년(CE 1674)에 설립되었다.

고려와 프랑스가 합작하여 이 세상에 제국도량형―미터법이라는 새로운 단위계를 만든 뒤, 척관법의 명칭은 정부에 의해 의도적으로 박해 아닌 박해를 당했다.

기존 단위계와의 혼돈을 방지하기 위해, 아예 명칭 자체도 새롭게 만든 미터로 쓰기로 한 것.

사실 제국자나 제국리는 태조 해민이 지정한 길이, 즉 사실상 1m와 1km로 정의되어졌지만, 조선인들의 이민이 늘어난 뒤부터는 사회에 극심한 혼란이 생긴 적이 있었다.

그러니, 실제적 길이는 사실상 고려가 쓰던 기준을 프랑스가 변동 없이 받아들였지만 이름만은 바꿀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따지고 보면 척관법도 결국은 진나라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그리스어(Metron)와 라틴어(Metrum)에서 기원한 미터는 프랑스에서도 익숙했고, 로마의 후예를 칭하는 고려에게도 익숙하니 별 잡음은 없었다.

하지만 상민은 미터법이 제정되어도, 삼만리라는 회사 명칭은 바꿀 생각이 없었다.

참고한 사명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을 유명한 기업의 이름.

물론 지금 고려는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표현하기에는 무리수가 있었기 때문에 상민은 약간의 변주를 주었지만 그 결과물도 입에 착 달라붙는 게 찰떡이다 싶었다.

상민은 지난 삶에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한두 푼씩 모아 마련한 중고 로드사이클을 타고 한강을 달렸었다.

신이 나면 상암 난지공원에서 뚝섬공원까지 오간 적도 있었지.

밤에 보는 여의도와 63빌딩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던 기억이 났다.

일에 치여서 실행에는 옮기지 못했지만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일주를 해보겠다는 생각도 한 적도 있었다.

그 정도로 자전거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개천력 5세기가 들어서야 자전거 사업을 시작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상당히 늦었다고 평가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또 이 자전거라는 물건마저도 선행과제가 필요했었다.

질 좋은 강철 생산 능력과 금속 단조 능력을.

자전거 바퀴와 바큇살이라는 게 의외로 내구성이 필요한 물건이다.

기존의 나무나 철들로는 한계가 있었다.

물론 마차였으면 어차피 말이 끌 것이라 내구성을 챙기고 경량화를 포기할 순 있었다.

그런데 사람은 말이 아니지 않는가.

무거운 자전거는 타기 힘들다.

그리고 기존까지의 기술로는 제대로 된 자전거를 만들기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마침내 전로법에 의해 중저품질이라도 강철이 많이 생산되는 시대가 오자 재료적 문제점이 얼추 해결되었고 자전거는 개천력 5세기 초반, 즉 18세기부터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 뒤의 자전거 발전상은 명백하게 상민의 공이 제일 컸을 것이다.

삼만리에서 처음 만들어낸 자전거들은 몇십 년에 걸친 시행착오를 성공적으로 건너뛰었다.

괴상한 모양의 자전거들, 예를 들면 전생의 모 국산 의류 브랜드 로고처럼 앞바퀴가 거대한 자전거 등은 계획단계에서부터 기각당했다.

21세기 자전거의 표준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형 프레임’에 대한 확고한 신념하에, 발걸이(페달), 변속기(기어), 그리고 후륜에서 동력을 전달하는 쇠사슬의 개념이 단번에 제시되었고 삼만리의 주주들이자 기술선도국의 장인들은 여섯 달 동안이나 상민이 훈수를 두는 것을 즉각적으로 반영해야 했다.

이건 아니고 저건 또 잘못되었고.

마침내 그들이 까다로운 고용주의 입맛을 충족했을 때, 고용주는 무척이나 기꺼운 반응을 보였다.

“으하하, 마침내!”

유산소 운동을 더욱 재밌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기계가 발명된 것이다.

아니, 드디어 속력다운 속력의 편린이라도 맛볼 수 있게 된 셈이고.

이 시대, 속도를 즐기려면 승마도 한 방법이긴 했지만, 그건 너무 질렸다.

그리고 솔직한 말로 삼별초 시절 탔던 명마, 적제 이상의 말을 본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그리고, 아무리 지금 이 자전거가 현대의 자전거보다는 후져도 여전히 특유의 손맛은 살아있었으니까.

게다가 상민의 근력과 지구력을 이용한다면, 이 자전거의 내구성을 극한으로 실험할 수 있었다.

― 쐐애액

신이 난 상민은 새벽녘의 한적한 청해 도로를 누볐다.

“정지, 정지, 손들어! 움직이면 팬…다!”

그날 순찰을 하던 청해 시경찰국의 경관들은 괴생명체, 아니 괴마를 타고 다니는 괴인을 보았지만 검문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들을 농락하듯 스쳐 지나간 괴인은 한마디 말을 남기고 떠났고, 경관들은 멍청히 곤봉을 움켜쥐며 그의 등을 바라봐야만 했다.

“나 너희 시장, 아니 통령이니 걱정 말고 볼일들 봐!”

― 봐아아아

말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누가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겠냐고.

게다가 사단장이 오더라도 초병은 그 임무를 다해야 했고, 경관도 그 직무를 다해야 했다.

경관들이 이를 갈았다.

“기마경찰을 불러!”

“예!”

솔직한 말로, 초기형 자전거 승차감은 최악이었다.

도로는 아스팔트가 아니라서 심히 울퉁불퉁하고, 바퀴도 아직 공기압 바퀴가 아니라 단순한 검은 고무바퀴였으며 심지어 서스펜션도 없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생식기가 고통스러울 수 있을 법도 했다.

상민마저도 어느 순간부터는 안장에서 엉덩이를 떼고 가고 있었으니까.

“이봐! 거기 서라!”

하지만 등 뒤에 기마경찰이 달려오는데 무력하게 잡혀줄 순 없지.

* * *

“그래서, 청해시경에 압류된 자전거를 가지고 오게.”

사도는 멋쩍은 듯 말하는 상민의 모습에 눈을 크게 치켜떴다.

“혹시 용체에 상해를 입으셨습니까?”

“뭐? 아, 전혀. 그러지 않았으니 안심해도 된다.”

용체는 멀쩡한데, 자전거와 벽돌로 된 벽은 좀 많이 안 멀쩡할 것이다.

이 사실은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래도, 야밤에 한바탕 소란을 일으킨 덕에 청해에 자전거라는 기물의 존재가 알음알음 퍼져나가는 것은 좋은 일일지도.

물론 그 소리를 입 밖에 내진 않았다.

가슴을 쓸어내린 사도가 다소 불충한 눈으로 바라보자, 상민이 화제를 돌렸다.

“빨리 다음 회사를 시찰해 보자꾸나. 시간이 없으니.”

“그렇게 빙주로 가시고 싶으십니까?”

“그래. 몸살이 날 지경이야.”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얼어 죽을 곳으로 간다는데, 어찌 저렇게 해맑아 보일 수가 있는가.

“…….”

사도가 슬쩍 고개를 저었지만, 전보소에 작성할 문구를 대충 적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다음은 ‘일반전기회사’에 시찰 준비를 해놓으라고 연락을 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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