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륙의 전쟁
상민은 총대주교를 돌려보낸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사도 한 명을 불러 말했다.
“그대는 저자를 충실히 감시하라.”
“예.”
명령을 받은 이는 사도 중에서도 종교를 가지지 않았으니 저런 종교적 꿍꿍이를 숨긴 자에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었다.
상민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전부 광신도들로만 자신의 주변을 채워놓는 사람은 아니었다.
먼 과거 자신의 측근이었던 이창언의 경우도 있듯, 특정한 종교적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 상민 개인에게만 절대적인 충성심을 가진 사람도 충분히 많았다.
상민이 살아있는 한, 쿠쿨칸교나 제국교가 따로 음흉한 짓거리를 하진 못할 것이다.
자신의 말은 신탁이었고 절대명제였으니 교도들은 오로지 순응할 뿐 반대하지 못한다.
상민이 지난 몇 세기 동안 일관되게 모습을 감추어 온 것도 감히 불평할 수 없을 것이다.
손바닥 뒤집듯 바꾸어 대중 앞에 나타나달라는 말도 요구하지 못할 것이고.
상민의 생각 속에,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일은 전 인류에 온전히 득만 될 것이 아니었다.
들어줄 이유가 없다.
물론 교도들은 신의 존재가 밝혀지는 것이 제일의 소원이겠지만 상민은 그 건에 대해선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니 총대주교가 노여움을 사도 용서해달라고 청한 것은 예전 삶에서 소위 말하는 ‘까방권’ 정도가 될 것이다.
그마저도, 사실 상민이 살아있다면 간섭될 사건일 터.
그리고 그들이 제일 잘 알고 있듯, 상민은 사백 년이 넘도록 멀쩡히 살아갔으며, 앞으로도 아마 수백 년 동안 멀쩡히 살아갈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러한 소원을 빈 총대주교의 의중이 궁금하긴 했으나, 상민은 그들이 자신의 기분에 따라 영영 내쳐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저런 청을 올린 것이 아닐까 짐작했다.
‘혹은….’
아니다, 이 생각은 하지 말도록 하자.
상민은 목에 걸고 있는 낡은 금반지를 쓰다듬었다.
* * *
유럽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프랑스는 혁명에 성공했다.
국민파는 많은 패배를 맛보았지만, 혁명기에 새로 만들어진 개념 ‘바리케이드’를 이용한 처절한 거점 방어와 시민들의 응원과 협조로 끝끝내 마지막 전투에서 승리했다.
반면 루이 13세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린 민심 덕에 전술적 승리는 거두었으나 전략적 승리는 거두지 못한 왕당파의 마지막 희망, 튀렌 자작은 전장에서 최후를 맞았다.
혁명은 이제 완전히 성공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혼란은 가시지 않았다.
혁명기의 국민의회에는 너무나도 많은 파벌들이 있었다.
루이 13세의 폐위에 반대하는 입헌군주 왕당파.
왕정 폐지와 공화제를 주장하는 평원파.
온건 공화파와는 비슷한 주장을 하지만 급진적인 산악파.
이번 혁명에 엄연히 큰 지분이 있는 낭시와 메스 등의 노동자들에게 기원한 바이에른파.
이 외에도 다양한 사상들이 범람하니, 도저히 혁명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백했다.
두 영웅의 입지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것.
프랑스 혁명의 영웅, 튀렌의 징벌자인 클로드와 외젠의 위상은 이전보다 훨씬 커졌으니 제아무리 범람하는 사상 속에 있더라도 국민의회의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주목하여 듣게 된 것이다.
이들이 혁명 이전, 그리고 혁명 초창기에는 둘도 없는 단짝으로 지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과연 우정이라는 가치가 권력이라는 달콤한 목표 앞에서도 영원하던가?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계속 전쟁을 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는 군대와 군대가 마주쳤다 하면 프로이센에게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분명히 오스트리아가 한때는 수적, 전술적 우위를 점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저 북도이칠란트 놈들은 전쟁을 위해 태어난 놈들인지, 그 엄격한 규율이 다민족 군대인 오스트리아제국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오스트리아는 어느 순간부터는 험준한 지형을 끼고 방어 태세에 전념해야 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프로이센이 폴란드 전역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빈도 위험해졌을지도 몰랐다.
폴란드는 사실상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들의 국왕, 얀 소비에스키는 바르샤바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셰임은 그 기능을 아예 잃었다.
몇몇 귀족들은 아예 러시아로 전향해버리기도 했으니.
그러나 폴란드가 완전히 러시아에게 집어삼켜 진다면 그다음 차례는 분명히 자신들이라고 인지한 스웨덴은 프로이센을 설득해 전쟁을 시작했다.
프로이센은 양면 전선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고려의 지원을 받게 되자 폴란드를 구원하기 위해 그들의 임시 수도인 포즈난 앞에 설치된 방어선에 병력을 파견하여 러시아와 격돌했다.
러시아는 완강한 저항에 반대로 블라디미르와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안나와의 국혼을 성사시켜 러―오동맹을 꾀했고, 또한 스톡홀름 대학살 이후 지금까지도 스웨덴과 사이가 좋지 않은 덴마크―노르웨이마저 동맹에 끌어들였다.
국가체급으로 러시아―오스트리아―덴마크 노르웨이 동맹을 프로이센―스웨덴이 막아낼 순 없었다.
하지만 에이레와 네덜란드, 그리고 그들의 뒤에 있었던 고려가 사실상 프로이센의 손을 들어주니 두 국가의 전쟁 지속력은 제아무리 위대한 러시아라도 어찌 일거에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유럽의 절반이 참전한 대북방전쟁(Great Northern War)은 팽팽한 두 세력 간의 혈전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상민은 이번에도 유럽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태자비가 울먹였다지만, 그건 태자가 알아서 잘 다독일 문제였고.
랜드리스처럼 물질적 지원을 주는 것으로 족했다.
바다 건너편에서 넉넉한 지원을 받는 프로이센은 상민의 생각에도 쉽게 무너질 것 같은 존재가 아니었으니.
하지만 참전은 무리수였다.
애초에 고려가 옥저를 키우고, 프로이센을 후원하는 것도 고려인들의 피를 흘리지 않으면서도 최대한의 이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가.
물자지원은 참전보다 훨씬 싸게 먹힌다.
잔혹한 말이었지만, 우리 청년들의 피를 최대한 적게 흘리는 것이 외교의 본질이었고.
그 반대가 된다면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겠지.
러시아가 고려에게 라이벌적 감정을 품었다는 건 상민도 알고 조정도 안다.
근데, 뭐 어쩌라고.
그들이 신경 써야 하는 일인가?
슬라브인들의 패기는 높이 사나, 고려로서는 그들의 외침이 딱히 위협적이지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이 고려에 제대로 위협이 되려면, 이 대동양과 태평양이라는 천연 해자를 넘어올 대양함대가 필요할 텐데.
솔직한 말로, 지구상에서 이미 제국 해군을 이길 수 있는 조직은 없었다.
굳이 꼽는다면 엄연히 고려의 또 다른 군조직 중 하나인 연방 해안경비대 정도가 꼽힐 수 있겠지.
그래서 그들의 공포스러운 외침은 고려인들에게 위협이 아닌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유럽이 비로소 떨쳐 일어난 러시아의 그림자에 전율할 때, 고려는 반대급부로 서쪽에서 더욱 환하게 빛을 비추고 있었으니.
저 북방의 야만스러운(고려의 편견이 아닌, 유럽인들 모두가 동의했다.) 슬라브인들이 끝까지 장렬하게 버틴 얀 소비에스키를 죽이고 폴란드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흉악한 악명을 널리 널리 퍼트린 덕에 고려의 국제위상은 그 반대급부로 한없이 올라간 것.
사실 강대한 위상이야 과거에도 누리고 있었지만, 러시아의 행보가 고려와는 정확히 반대되는 것이 많았기에 최근에는 더더욱 그랬다.
비록 봉신국이나 친한 나라들만 베풀었다 하더라도, 고려는 동맹국들에게 여러 선물더미를 주는 자애로운 웃어른이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그들의 탐욕에 방해되는 존재라면 죄다 찢어버리는 난폭한 범죄자였고.
유럽인들이 식민지를 착취할수록 고려의 도덕성이 올라가는 것처럼 러시아의 존재가 도리어 고려를 완성했다.
명이 있어야 암이 있다고?
아니, 암이 있어야 명도 있는 법이다.
‘시청자의 입장에선, 도리어 조커가 배트맨을 완성하니.’
* * *
물론 혼란한 시기가 되자 동풍을 타고 교당의 세력이 조금 상승했다.
하지만 여전히 귀당이 여당이었고 경당이 제1야당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여론은 한결같았다.
― 거 남의 나라 전쟁에 껴들 생각 마시고 메뚜기나 제대로 잡으쇼.
사실 고려는 이미 거대한 전쟁을 하고 있었다.
후아이나푸티나 화산의 영향은 재앙적이었지만, 영원하지 않았다.
아마 그들이 배출한 유황의 여파는 조금 남아 소빙기에 영향을 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일단 겉보기에는 화산의 피해는 완전히 수습된 지 오래였다.
이제는 거의 백 년이나 지났으니까.
하지만 태륭고원메뚜기는 몇십 년이 지나도 아직도 고려 최대의 적 중 하나였다.
다른 둘은 모기와 흰개미로, 그놈들은 21세기가 되어서도 멸종되지 않을 터다.
물론, 식량 사정은 이제 충분히 괜찮았다.
경신대기근때 북려 곡창에서도 밀을 보냈을 만큼.
제아무리 메뚜기라고 해도 매년 난리가 나진 않았다.
그리고 서산 곡창과 모하비 곡창 이후 그 정도의 대규모 곡창도 두 개나 더 지어지고 있었으니 이제 제아무리 강대한 메뚜기들이 온다고 하더라도, 신민들이 아사하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일정한 주기로 하늘을 새카맣게 메우고 달려드는 곤충 떼들은 신민들의 재산에 무시무시한 피해를 입혔다.
― 메뚜기가 사람도 잡아먹는구나!
물론, 메뚜기가 식인을 한다는 정확한 보고는 없었지만 가죽과 동물 털, 심지어 사람이 걸치고 있는 옷까지 갉아 먹는 꼴을 보자면 그 누구도 저 끔찍한 놈들이 사람 하나 죽인다 하더라도 딱히 놀라지 않을 것이었다.
고려 조정은 필사적으로 해충들을 잡으려 노력했다.
총포를 쏴보기도 하고, 작은 고랑을 파 그 위에 기름(석유에서 추출한)을 부어 불을 붙여보기도 하고, 독을 써보기도 했다.
곤충 방어용 요새(대피소)도 여러 개 지어놓았고 심지어 진공의 원리를 이용하여 곤충을 빨아들이는 도구들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썩어 넘치는 돈으로, 일정한 무게의 메뚜기나 흙 속에서 메뚜기의 알덩이(난괴)를 잡는다면 포상금을 주는 방법도 고안해내기도 했다.
민간에서도 갖은 수를 다 썼다.
곤충들을 잘 잡아먹는 가금류, 즉 닭과 오리, 거위 등을 길러 조금이나마 저항해보려고 하는 곳도 있었고 황소개구리(엄연히 북려의 토종 생물이다)와 북려두꺼비, 거미류까지 손대보는 농가도 있었다.
하지만, 조 단위의 생물집단에게는 그 모든 저항이 우스워 보였을 것이다.
고려는 솔직히 러시아보다 메뚜기가 더 무서웠다.
메뚜기에게 두들겨 맞기를 수십 년.
마침내 고려도 제대로 된 대메뚜기전을 시작했다.
농무부가 주관한 개천력 420년(CE 1695)의 제11회 메뚜기 방제대책회의에서는 농학자들은 물론이고 생물학자, 곤충학자들도 초빙되어 머리를 맞대었다.
이제 메뚜기와 싸워온 지 수십 년이 훌쩍 지났다.
제대로 된 연구자료와 가설들, 반박들과 논쟁들이 축적될 만큼 시간이 흘렀다.
과거 갈피를 못 잡던 때와는 달리, 이제 수십년동안 체계적으로 태륭고원메뚜기의 일생을 추적하며 관찰하던 곤충학자들은 이 재앙적 해충들이 한해의 짧은 수명을 마치기 전에 대체로 북려대평원의 대초원지역에서 산란한다는 구체적인 연구 결과를 가져왔다.
“이 메뚜기들은 고려 때문에 더욱 번성하고 있습니다.”
제국한림원에서 초빙한 저명한 곤충학자가 회의실 칠판에 붙인 북려대륙 전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메뚜기는 한 마리일 때 전혀 위협적이지 않습니다. 얌전하고 공격성 없으며, 평화롭게까지 보이기도 하지요.”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관료들은 잠자코 교수의 말을 들었다.
“허나 그들이 군집이 된다면,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됩니다.”
생물의 외향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지만(가끔 색이 바뀌는 메뚜기도 있었긴 했다), 그 성격이 완전히 바뀌는 것.
메뚜기(Grasshopper)는 비로소 황충(Locust)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곤충학회가 추정한 서식지입니다. 자, 위 주황색 부분을 가 지역, 그 아래 노란색 지역을 나 지역이라고 가정하지요.”
“내 안경이 어디 있더라…?”
눈이 나쁜 관료들이 주섬주섬 안경을 썼다.
“가 지역은 영구 산란지입니다. 태륭산맥 북동쪽에 위치하여 있지요. 아직까지도 개척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지역은 아닙니다만, 식생이 나름대로 비옥하여 메뚜기들이 산란 즉시 먹이를 구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초기 개체 생존률이 몹시 높아지므로 곧바로 위협적인 군집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는 점선을 그었다.
“그리고 표시된 대로 남동쪽으로 내려오며 앙주와 명주, 화주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 후우우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한숨을 쉬었다.
곤충학자는 손을 밑으로 내렸다.
“나지역은 사막지역입니다. 이곳도 영구 산란지이지요. 최근 미주에 들이닥쳤던 군집은 아마 대체로 이곳에서 발원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곳은 가 지역보다는 초기 식생이 비옥하지 않아 의외로 산란 즉시 위협적인 군집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그렇게까지 크진 않습니다.”
곤충학자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하지만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고려의 경작활동으로 인해 메뚜기들이 번성하고 있습니다. 활발한 농경활동으로 조금만 남하하면 바로 풍부한 먹이를 얻을 수 있으니, 이동거리가 넓어지는 셈이지요. 따라서 자연스럽게 산란지 자체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학자는 다음 지도로 넘겼다.
붉은빛으로 색칠된 지역이 불길하게 넓었다.
“지금은 이 지역 모두 잠재적인 산란지입니다.”
가 와 나 지역을 모두 포함한 다 지역은 이미 북려대륙 대평원 서쪽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허어어….”
모두가 탄식을 흘렸다.
“그래서, 민 교수님 말씀대로라면 메뚜기의 성세를 줄이려면 우리가 개척을 포기해야 한다는 겁니까?”
농무상서의 허탈한 물음에, 곤충학자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농무상서가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교수님께서 우리의 농작물이 저들의 먹잇감으로 변한다는 주장을 하신 것이 아닙니까?”
“논밭에 쟁기질을 하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알덩이(난괴)가 박살 나지요. 인간의 개간이 저들의 산란지를 파괴하게 되는 셈입니다.”
그가 말을 덧붙였다.
“물론, 일반적인 농사로만은 불가능합니다.”
곤충학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농학자가 일어나서 자료를 넘겨받고는 연단에 섰다.
“태륭고원메뚜기는 여름과 초가을에 번성하지요. 허나 엄연히 한살이 생물입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그때만 피해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고민하던 농무상서의 표정이 농학자의 말에무언가를 깨달은 듯 서서히 밝아졌다.
농무상서인 그도 자나 깨나 이 메뚜기라는 종을 어찌 절멸시킬까 고민하고 있던 것이 당연했다.
그 전임도, 그 전전임도.
누가 농무부가 꿀보직, 세금도둑이라 했던가!
상서들이 죄다 대머리가 되어버리는 것을 본 자들이라면 입을 함부로 놀려대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 그의 대에 와서 ‘효과적인’ 메뚜기 방제에 대한 실마리가 잡히게 된 모양.
“설마…?”
“예, 겨울밀을 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메뚜기 떼들이 전성기를 맞을 때, 우리의 농경지는 텅 비어버린 채로 남아있을 테니까요.”
메뚜기들은 본래라면 멍청히 하늘을 바라보던 인간들의 터전을 제멋대로 갉아먹으며 이동하고 알을 까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메뚜기 떼의 대이동 시기를 회피하여 기르는 작물들, 즉 늦가을에 심어 초여름에 수확하는 겨울밀(Winter wheat)의 경우에는 이 한살이 생물들의 식량이 절대 되지 못했다.
문제가 된다면, 다소 집약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농사니만큼 연작을 할 다른 작물들을 제시해주어야 하는 것인데.
“또한, 농업학회에서는 여러 재배작물 중 사료작물로 쓰이는 자주개자리(Medicago sativa, 알팔파)가 태륭고원메뚜기의 성장 과정에서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도출해 낸 상태입니다. 이에, 겨울밀을 재배하고 수확한 이후 자주개자리를 재배한다면 큰 효과를 걷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농무상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미 신경과민으로 빠져버린 윗머리는 다시 자라나지 않겠지만, 그는 드디어 큰 후련함을 느낄 수 있었다.
농무상서가 감명받은 얼굴로 기립박수를 치자 다른 관료들도 따라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 짝짝짝
“정말 대단하오. 좋소! 바로 시중께 보고를 드릴 테니 실행할 준비를 하시오!”
[작가의 말]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로키산메뚜기의 멸종 원인은 확실히 규명된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겨울밀 재배와 자주개자리(알팔파)의 재배, 개간지의 확장이 그들에게 큰 피해를 준 것은 확실하다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