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337화 (337/653)

결혼 외교전(3)

빌럼도 알고 있었다.

‘거대한 대왕고래가 전심전력으로 작은 배를 침몰시키려 한다면 대부분의 나라는 전복되겠지.’

하지만 고려는 사방이 혼란해지자 위대한 고립의 풍조와 반전주의적 여론도 강해지고 있는 나라.

식량은 자신 한 몸 건사하기엔 차고 넘쳤다.

또한 산업혁명의 결과물로 얻은 그 넘치는 물산들을 교역하기 위해선 당연하게도 전쟁보다는 평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고려는 사실상 식민지와 다름없는 자치령을 가지고 있었지만, 고려대륙 본토의 자치령은 합병을 생각하는지 거의 자국민과 동등하게 대하고 있었고, 외국의 자치령 또한 그 어떤 나라의 식민지보다도 더욱 관대하게 대하고 있었으니 마냥 이윤을 뽑아내지도 못했다.

그러니, 그들은 거대한 시장, 즉 유럽과 명이 필요했다.

전쟁특수는 어디까지나 특수.

일시적인 호황에 불과하다.

상대방의 집이 아예 불타버려 그 상대방이 먹고살기 바쁘다면 고려의 물건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고려가 최선으로 원하는 것은 고려에 대항하지 못할 정도로 약하지만, 그래도 물건을 살 수 있을 정도로는 여유가 있으면서도 평화로운 정세겠지.

그러나, 고려가 평화를 원하는 만큼 고려는 그들의 패권을 놓고 싶지 않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러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선 어찌 보면 전쟁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

추심전쟁은 느슨해진 유럽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두 번 일어날 일이냐 묻는다면, 글쎄.

고려는 자국민들의 희생을 최소로 하기 위한 이기심을 부리는 국가.

국가라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만, 인력이 몹시 소중한 고려로서는 그 정도가 다른 나라보다 더했다.

하지만 그렇기 위해서는 유럽에서 고려 대신 싸워주어야 할 나라들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와 옥저만으론 부족하겠지.’

네덜란드가 강국이라 하나, 그 위세는 바다 위에서나 제한적으로 발휘될 뿐이다.

옥저 또한 제아무리 고려가 지원을 해준다 하더라도 한 번에 지역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는 없을 테다.

듣기로는 그곳은 위도가 높은 스웨덴보다도 더욱 추위가 가혹하다 했으니.

위도가 거의 10도는 더 높지만, 옥저 수도 솔빈과 달리 스톡홀름은 얼어붙지 않았다.

발트해가 예맥해보다 더욱 소금 농도가 낮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저들의 기후가 얼마나 가혹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구상에는 고려 말고도 또 다른 고래가 있었다.

카자흐를 사실상 병합하고 준가르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버린 거대한 북방의 고래가.

비록 그 크기와 거대함, 위엄은 고려에 감히 비할 바는 못 되었지만.

고려의 사촌을 칭하는 그들은, 그들의 위세가 정말로 그런 반열에 오르길 열망하며 덩치를 불려 나가고 있었으니.

고려 또한 그들의 친애하는 사촌, 류리크의 러시아 제국에 대한 견제 외교가 필요했던 것이다.

* * *

암스테르담 왕궁.

왕궁의 건축가인 야콥 판 캄펜이 설계한 암스테르담 왕궁은 본래 하나의 건물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왕궁의 건축비가 그렇게 많이 들지 않자 그 사후 후대의 건축가들은 왕명을 받아 좌우에 영빈관과 학술관, 예술관 등으로 쓰이게 될 두 별관과 왕궁 바로 앞에 의회 건물 겸 시청사를 더 짓기로 했다.

별관들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 웅장한 건물들은, 이제 모두 완공된 암스테르담 특유의 거미줄 같은 운하들의 중심부에서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상징하게 될 것이었다.

“역시 우리 네덜란드의 자부심입니다.”

“정말로 그렇소.”

저명한 네덜란드의 귀족들, 의원들, 그리고 평민이긴 하나 그 위세가 드높은 대상인들이 광장에 마련된 마차 주차장에서 내려 사방을 둘러보며 삼삼오오 모여 떠들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역동적인 활기가 궁정에 가득했다.

참석자들의 나이가 전반적으로 젊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보통이라면 제아무리 거상이라 하나, 평민 출신이 이곳에 발을 들이밀 수는 없었겠지.

하지만, 네덜란드는 그렇게 고리타분하지 않아 보였다.

절대왕정의 산물, 호화로운 궁정에서 춤을 추며 귀족의 위세를 누리던 살롱의 시대는 저물고 있었다.

이제는 입헌군주정과 민주정의 산물, 이상과 신념, 철학과 계몽의 시대에 드러난 부르주아의 소유물인 카페의 시대가 밝아오는 순간이라 할 수 있을 터.

그래도, 지금 네덜란드가 보여주는 두 신분의 공존은 나름대로의 아름다운 측면을 제시했다.

네덜란드인이 자신들의 왕궁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근위대에게 초청장을 제시하는 사이, 외국의 왕귀족 자제들은 다른 의미로 놀라고 있었다.

‘네덜란드가 열강이라 하나,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

솔직한 말로, 유럽에 이 정도로 번화한 도시는 많지 않았다.

런던도, 로마도, 피렌체와 베네치아, 베를린과 스톡홀름도.

빈과 파리, 프라하도.

지금의 암스테르담에 비하면 손색이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보다 더욱 화려한 왕궁은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암스테르담 궁전도 그것에 비해 딱히 뒤떨어져 보이진 않았다.

또한 그들이 거리를 지나다니며 본 암스테르담 시민들은 하루의 노동에 피곤할지언정, 전혀 절망스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계 수많은 권력자들이 모이는 유럽의 연회가 그들의 도시에 열리는 사실이 자랑스러운지 민간도 떠들썩해져 네덜란드의 주점은 저마다 노란 등불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맥주와 고기를 들고 조국의 영화에 건배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북적북적함을 이용하여 장사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확인했습니다. 암스테르담 왕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초청장을 확인하면, 근위대가 길을 비키었고 시종이 손님들을 안내했다.

연회장, 즉 중앙홀은 입구와 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중앙홀은 높은 천장 덕에 많은 사람에도 비좁음이 느껴지진 않았다.

네덜란드가 낳은 위대한 화가들, 고베르트 플링크, 야코브 요르단스와 렘브란트 반 레인이 그렸다는 천사들과 성인들이 그려져 있는 아름다운 천장화의 밑에선 화려한 샹들리에들이 반짝였다.

기초재료로 사용된 견회와 강회 위에는, 본래의 재료의 흔적조차 잘 느낄 수 없게 대리석 석재들과 사암들로 만든 인테리어물들이 조화롭게 치장되어 있었다.

지구본을 들고 있는 거대한 거인, 아틀라스는 좌측에서는 네덜란드의 본토가 잘 보이게 허리를 숙이고 있었으며, 우측에서는 파푸아가 잘 보이게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악단들이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했다.

“고려 음악이군요.”

“이토록 아름답다니….”

처량하며 애절한 듯하면서도, 밝고 희망찬 듯.

가슴의 격동하고, 눈물이 나올 것 같으면서도, 그럼에도 입가엔 미소가 띠어졌다.

사람을 감정을 지배할 수 있는 음악이라니, 이 어찌 대단치 않을 수 있겠는가.

건반의 토대 위에 세워진 현악기의 조화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찰현금(擦絃琴).

사람이 손으로 들 수 있는 고려의 악기.

가야금, 거문고와 더불어 신라 삼현 중 하나였던 향비파는 ‘음악황제’라는 별명을 가진 해광의 손길에서 외면받지 않았다.

해광의 노력과 후대의 악공들 덕에, 향비파는 거듭된 개량 끝에 초기 5개에 불과했던 괘(프렛)의 숫자가 31개로 늘어나 규격화되었다.

그 향비파의 토대 위에, 위대했던 옛 가면시중들 중 한 명의 아내이자 고려 예술의 어머니라 불리는 루크레치아 보르자는 가극 음악을 개선하다 그녀의 고향 출신이었던 안드레아 아마티(Andrea Amati)라는 예당의 악공을 불러 향비파와 비올라 다 브라치오를 융합하는 시도를 했다.

그리고 루크레치아의 휘하에 있던 또 다른 악공, 진주 출신의 요안니나가 향비파의 술대 대신 동로마제국에서 이어져 내려온 악기의 도구인 활을 이용하여 그 음색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보았으니, 찰현금이라 명명된 이 새로운 악기는 명실공히 고려의 대표 악기 중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수많은 세월 동안 꾸준히 개량되어왔으며, 해씨 고려 덕에 신라와 당, 송과 고려, 조선과 아랍, 동로마와 이탈리아의 모든 기술이 집적되었으니, 찰현금은 실로 음향적인 면에서 감히 완벽에 가깝다 말할 수 있었다.

유럽인들도 이 악기를 들여와 썼으니, 그들의 바이올린(Violin)은 대표적인 찰현금족(Chalhyeongeum family)의 악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완벽한 현악기인 찰현금이 완벽한 건반악기인 정건반(피아노)과 함께 만난다면, 실로 무궁무진한 아름다움을 가진 음악을 선보일 수 있었다.

“바그 코히엔조차 결국은 고려의 문화를 모방한 것. 원류에는 비할 수 없음을 실감합니다.”

고려인 악공들 주변에 몰려있던 사람들은 정중하게 박수를 쳤다.

악공들이 고개를 숙여 보이더니, 이윽고 잠시 물을 마시고 용변을 보는 듯 휴식을 취했다.

이에 네덜란드의 악공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여 음악을 다시 연주하였으나, 유럽풍의 익숙한 격식은 갖추었더라도 아까만큼 사람의 마음을 홀릴 정도로 감미롭지는 않았기에 참석자들은 비로소 사방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파티의 실질적 조연들이 이제 등장하고 있었다.

이미 자리에 참석해있던, 위세가 그렇게 높지 않아 사실상 이번 무도회의 본질적인 목적 대신 그냥 일반적인 귀족 청년이나 만나려고 참석한 여인들이 마음 편하게 속삭이며 떠들기 시작했다.

“어머나, 저분을 봐요.”

“…웨일즈 공녀?”

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잉글랜드의 웨일즈 대공의 딸이 우아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보였다.

웨일즈 공녀라 하나, 웨일즈 대공은 브라반트 대공마냥 왕세자였기 때문에 그녀 역시도 실질적으로는 왕녀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살리카법이 적용되지 않는 덕에 잉글랜드의 계승순위에 들어가 있었으니.

“역시, 드레스코드가 따로 명시되지 않았더라도 저런 분들은 미리 준비해오셨군요.”

일반적인 귀족들은 일반적인 드레스를 입고 왔다.

하지만 웨일즈 공녀의 복식은 고려풍이 섞인 드레스.

재질은 비단으로 하는 것이 상식인 듯했고, 과장스럽게 부풀린 드레스보다는 애초에 풍성하고 화려한 상을 입는 것이 좋아 보였다.

다시금 유행하기 시작한 길고 화려한 저고리는 엉덩이까지 덮었다.

치렁치렁한 옷고름은 이제 단추의 보편화로 사라졌으니, 남아있는 짧은 옷고름도 치장 이외의 의미는 가지지 못해 보였다.

반면, 머리는 올리지 않았다.

고려인들도 가체를 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혼자인 상황.

가뜩이나 가체 자체도 사장되어가는 추세였고, 일단 처녀들은 그것을 절대로 쓰면 안 되었기에 오히려 머리를 풀어내려야 했으며, 그에 허전해 보이는 위를 보석이 장식된 티아라를 올림으로써 해결했다.

이번 연회는 특정한 드레스코드를 사전에 명시하지 않았지만, 목표를 노리는 암사자들은 사전에 발톱을 다듬었던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치열한 노력의 산물이죠.”

그 뒤로 카스티야 왕의 사촌 여동생이, 베네치아 도제의 딸 등이 들어오니 연회장은 끊이지 않는 음악 소리 덕에 가려졌지만 끊임없이 수군거렸다.

왕족과 귀족 청년들도 힐끔힐끔 그곳을 바라보았다.

암묵적으로 룰이라도 세웠는지, 저 정도의 거대한 권력을 쥔 여인들은 한 번에 등장하지 않았다.

오직 시선을 즐기며 자신의 등장을 음미한 뒤, 주연들의 근처에 가 있는 것.

‘그래도 선택받는 자는 하나다. 시도해 볼 만한 가치는 언제나 있어.’

모두가 그런 생각을 품고 있을 것이다.

“스웨덴 왕녀, 실로 북방의 미인이라더니 허언은 아니었나 봅니다.”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영광을 뺏어간 구스타프 2세 아돌프 이후 제국으로 불리게 된 스웨덴은 비록 스칸디나비아에 있지만 군사적으로는 상당히 주목받고 있는 강대국이었다.

그들의 왕조, 바사 가문은 고려와 동맹을 맺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자들 중 하나였다.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공공연한 석상에서 자신에게 드리운 책무가 조금만 더 가벼웠었다면 저 북려의 자제감으로 가서 그곳에서 말년을 보냈다는 이윤신을 봤을 거라 말하고 다녔으니, 평소에도 고려에 대해 몹시 우호적인 제스처로 일관하고 있었다.

고려도 비록 스톡홀름의 위치 자체가 접근성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북방외교의 일환으로 그들과 어찌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들이 등장했다.

― 또각, 또각

“…….”

주위가 순간 침묵했다.

루이제 아말리에 폰 호엔촐레른.

남성들은 소문만 무성하다 드디어 대면한 프로이센의 보석을 보고는 제각기 숨죽인 탄성을 내뱉거나 꿀꺽 침을 삼켰고, 여자들은 저항할 수 없는 동경 혹은, 질투심에 몸을 떨었다.

일견 수수해 보이는 하늘색과 흰색으로 꾸몄으나, 그만큼 순수함을 부각시키는 루이제 아말리에는 그 마초 같은 남자들이 득시글거리는 나라의 왕녀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를 뽐내었다.

티아라에 달린 사파이어가 찬란하게 빛나는 모습이 보였지만, 착용한 자의 미모만큼은 아닐지어다.

“주님, 찬미받으소서.”

이토록 아름다운 피조물을 만드셨으니, 어찌 그것이 주님의 은총이 아닐 수 있겠나이까.

비록 다른 많은 귀족 여인들을 한 번에 두족류로 만들어 버리는 까닭에 이 은총은 박애적 사랑으로 해석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저는 전혀 괘념치 않습니다.

어떤 귀족 자제가 갑자기 신실해졌는지 기도를 올리는 것이 고요해진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청년들은 루이제 아말리에의 등장 뒤에, 가볍고 빠르게 등장한 여인을 보았다.

한 번의 움직임으로 루이제의 등장이 가져온 파랑(波浪)을 수습하고 다시금 분위기를 휘어잡은 여인을.

마리아 안나 폰 합스부르크를.

신성로마제국이 이름이 바뀌고 허울로 전락했다 하더라도, 카이저의 딸이다.

합스부르크, 감히 유럽의 주인이라 칭할 수 있는 가문.

결혼의 명수들.

그들의 전략 병기인 마리아 안나는, 루이제 아말리에와 정말 친자매처럼 닮은 옅은 금발의 머리를 지니고 있었지만, 도드라지게 화려했으며 당당해 보였다.

― 너희들의 격은 제국의 안주인에 어울리지 못해.

그녀의 분위기가, 그녀의 행동이, 그녀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위세 높다는 말이 변방에서나 통할 만한 귀족들의 자제는 감히 그녀의 근처에 얼씬거리지 못했을 정도로.

그래, 그녀들이 아니면 대체 누가 저 태자의 옆에 설 수 있겠는가?

[작가의 말]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그래도 늦게 죽었습니다.

원역사에서 그를 죽였던 알브레히트가 보헤미아의 봉신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후스파, 즉 개신교도 편이 되어버렸거든요.

따라서 스웨덴의 왕가는 현재 바사 가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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