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외교전(2)
장난기가 많고 쾌활하게 생긴 갈색 머리 청년, 빌럼이 미소를 띠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견 단정한 복장으로 얌전히 앉아 있는 겉모습과는 달리 빌럼을 더욱 자세하게 살펴본다면 그의 입꼬리가 파들파들 떨리고 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억지로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였다.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사진사의 말에 그는 여전히 표정을 유지한 채 입술을 달싹였다.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으로 보이나?”
고역이다.
사진사의 뒤에는 해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검은 머리 청년, 그의 친우가 있었기에 빌럼은 도무지 사진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초창기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 4시간이니 뭐니 하는 끔찍한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지.
그래서인지 그때는 인물의 초상사진은 썩 유행을 타지 못했다.
하지만 사진기술이 진보하면서 본격적인 초상사진 유행이 시작되었고 내로라하는 귀족들과 상인들은 자신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남기길 원하기 시작했다.
그 어떤 뛰어난 화가보다도 가장 사실적으로 인물을 담아낼 수 있는 도구인데, 인기가 없을 리가.
물론 여전히 은판사진법(daguerreotype)을 이용해 인물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수십 분을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다.
사진술의 다른 기술인 종이인화법으로 하면 시간은 훨씬 더 절약되지만, 애초에 초상용 사진으로는 썩 만족스럽진 못했기에 각국의 군주들, 왕족들과 귀족들에게 번져나가는 초상사진은 아직 은판사진법이 대세였다.
“…나중에 하시지요.”
고려인 사진사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도저히 저 웃음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한창때의 청년들이니만큼 사소한 것들에도 낄낄거리며 노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나, 이토록 나라가 다른 고위 왕족들이 사적인 공간에서 서로 허물없이 대하는 것도 자주 보는 광경은 아니었다.
“유 선생. 좋은 선택이시오.”
“전하, 소인은 그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방해꾼 아닌 방해꾼이 태자의 앞에서 물러나자, 그제서야 빌럼이 화가 난 듯 태자에게 달려들었다.
“네놈은 진짜!”
“으하하하!”
― 우당탕
둘은 방문을 박차고 한동안 궁 내를 뛰어다녔다.
연회 준비로 성내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시종들은 그들 주변으로 요란스럽게 추격전을 벌이는 두 청년을 바라보고는 다소 한숨지었지만 일을 하는 하녀들에게는 그녀들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한숨의 의미가 사내들의 것들과는 약간 달랐다.
두 명의 젊은 청년은 상당히 장난기가 많아 짓궂음이 얼굴에 철철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둘 모두 부친이나 선생에 의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고, 사람 자체가 선한 터라 아랫사람들에게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
인성뿐만 아니라, 상당히 잘생기기까지 했다.
여심을 뒤흔들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과도할 지경.
저런 장난도 청년의 아름다운 젊음과 열정으로 보이는 것이다.
“정말로 활기차시다니까.”
“…한 번만이라도 가까이서 단둘이 뵐 수만 있다면….”
더군다나, 그들이 가진 신분의 아우라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이 땅에서 가장 존귀한 신분들.
어찌 인연이 된다면 신분 상승의 꿈도 마냥 허황되지는 않겠지.
물론 네덜란드의 왕세자이자 브라반트 대공 빌럼은 이미 기혼자였지만, 유럽에서 국왕의 로얄 미스트리스는 권력자의 남성성을 표현하는 당연한 자질과 마찬가지였다.
없으면 그 소심함에 흉을 보는 사람도 있었을 만큼.
게다가 빌럼의 친우이자 고려의 태자 해원은 이제 막 숭무감 육군부를 졸업한 까닭에 결혼적령기까지 미혼이었다.
고려는 직계 종통과 세습친왕들에 한해서는 공식적인 후궁제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상황, 하녀들로서는 태자비나 황후는 감히 엄두도 나지 않더라도 후궁 정도는 어찌 비벼볼 만한 구석이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불민한 행동으로 제국의 노여움을 사면 정말로 뼈도 못 추릴 것을 알기에 하녀들의 생각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겠지만.
그들이 먼저 접근한다면 그것도 마냥 허황된 소리는 아니었고.
괜시리 하녀들이 그들 주변을 얼씬거릴 수 있는 기회를 서로 잡으려 아웅다웅했겠는가.
― 세상에, 전하! 제발 체통을 지키소서!
한동안 넓은 궁에서 장난치며 뛰어다니던 둘은 마침내 여인들의 연정들과는 전혀 상관없던 궁내의 늙은 행정관과 해원의 호위무관의 앞에서 멈추고야 말았다.
청년들은 그들에게서 한바탕 잔소리를 들은 뒤 추격전을 멈추고 일 층의 중정에서 땀 흘린 뒤의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고맙군.”
“뭐가?”
“사진사와 기타 여러 가지들.”
중정의 풀밭에 드러누운 빌럼의 눈이 궁전의 여러 곳을 바라보았다.
브라반트 대공이긴 하나, 브라반트 대공위는 부르고뉴김의 또 다른 시조인 김홍 이후로 사실상 네덜란드 왕세자의 다른 호칭과 다름없었기 때문에 그는 인생의 대부분을 암스테르담에서 살고 있었다.
베르사유보다도 더 늦게 착공을 시작한 이 암스테르담 왕궁(Koninklijk Paleis Amsterdam)은 상당히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절제미와 우아함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물론 이토록 아름답고 넓은 궁전도 프랑스가 사치의 끝을 부리며 지은 베르사유와는 비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빠른 시간에 이토록 대단한 왕궁을 만들면서도 국가적으로 거의 타격을 입지 않았다.
가장 먼저, 재원의 확보가 용이했다는 것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온갖 곳에 빚을 진 프랑스의 부르봉과는 달리 네덜란드는 몹시 돈이 많았다.
왕실도 왕실이지만, 나라 자체가 돈이 많았다.
철갑선?
고려는 네덜란드와 에이레한테는 최신형은 아니더라도 제대로 만든 쓸만한 무기들을 자주 팔았다.
알제에서 프랑스군을 박살낸 최신 무기들, 즉 후미장전식 소총과 다혈포, 변흠규급 순양함의 구입도 아마 몇 년이 흐른 뒤(정확히 말하자면, 고려가 다시금 차세대 무기를 규격화하며 재고들을 풀 때)에는 진지하게 구매요청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려로서도 개발한 무기를 어딘가에 팔아먹어야 재정적자 생기지 않았으니, 이왕이면 번국과 우호국에게 파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네덜란드는 프랑스와 같은 자주무기에 대해 삽질(시행착오)을 하지 않고도 상당한 국방력을 자랑했다.
게다가 국가적 자긍심과 기념할만한 건축물이 암스테르담에는 딱히 없었다는 문제로 왕실의 사치에는 몹시 경계했던 스타텐 헤네랄(네덜란드 의회)과 네덜란드의 정재계 인사들도 왕궁 건설에는 상당히 찬성하며 금전적,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니, 여러모로 프랑스와는 몹시 대조적이었다.
두 번째로, 기술적 재료적 이점도 누렸다.
암스테르담 왕궁은 고려에서도 건설하는 과정에 상당히 많은 도움을 주었다.
증기동력 기중기와 같은 노동력을 절감할 수 있으면서도 힘은 압도적인 선진적인 건축도구들이 많이 지원되었다.
건축 방식에서도 도움은 빠지지 않았다.
고려는 당대의 어떤 나라보다 건축기술이 발전되어 있었고, 상당히 오래전부터 견회(시멘트)를 이용한 기술을 사용했던 나라.
견회야, 고대 이집트와 로마 시절부터 사용되는 유서 깊은 건축 재료였지만 고대의 재료 질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여러 건설사들이 앞다투어 투자하여 건축재료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고려는 화학적, 물리적 실험들을 통해 과거 견회들의 단점(내수성 등)마저도 극복해 나가고 있었다.
최근에는 견회에서 자갈과 물, 모래 및 화산재와 같은 기타 혼화제들을 배합하여 만드는 강회(콘크리트)와 철근과 섬유 등으로 강회를 보강하는 파생품들도 많이 연구되고 있었던 터였다.
서로마 멸망 이후, 로마인들의 기술들은 유럽에 온전히 계승되지 못했다.
오랫동안 견회, 즉 시멘트는 오로지 건물의 부가적인 재료로 사용되었으니 건물의 구조재 자체를 완벽하게 견회와 강회로 짓는 나라는 고려가 유일했던 것이다.
프랑스는 베르사유를 지으며 루테시안 석회암(calcaire lutécien)과 생 류 석회암(Saint Leu stone)이라는 화려하지만 그만큼 엄청나게 비싸고, 심지어 일교차에 취약한 재료를 궁궐의 기본재로 사용했었다.
캐는 것도 비싸고, 짓는 것도 비싸기 그지없는.
반면 네덜란드는 왕궁의 내구도와 존속년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축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하여 고려에서 사들인 고급 견회, 강회를 사용했다.
그러니 외관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더 강력한 내구도,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공사비를 획기적으로 감소시키는 것에 성공했던 것.
― 로마의 판테온이 천년을 가듯, 우리의 왕궁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뛰어난 건축 재료.
견회와 강회는 오랜 세월 동안 흔들림 없이 그 자리를 지켜야 할 궁전의 재료로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떨어지는 외관은 외부에 색이 아름다운 벽돌과 대리석을 붙이거나 하는 식으로 보완하면 되니, 사실상 몹시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그렇게 따지자면 내가 받은 것도 아무것도 없지. 나는 네덜란드의 왕세자로서 말한 거야.”
“…그대가 그렇게 말하신다면, 나는 고려의 태자로서 그대의 감사를 기꺼이 받아들이겠소.”
둘은 피식 웃었다.
그들은 천천히 일어나 다시금 위로 향했다.
한동안 뛰어놀았더니 배가 고프기도 했고, 무엇보다 앞으로 할 이야기는 외부에 새어나가는 것이 좋지 못했다.
둘은 궁궐에 설치된 승강기로 향했다.
“이건 볼 때마다 신기하다.”
“창천궁에도 승강기가 있는 건물은 그리 많지가 않으니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아.”
“그래?”
빌럼은 어떤 원리로 동작하는지는 몰랐고 그런 쪽으로 머리 아픈 것들은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어쨌거나 고려에서도 최신 기술로 여겨지는 것이 암스테르담 왕궁에 설치되었다는 것 하나로 만족하기로 했다.
* * *
“명하신 대로, 모레 연회에 나올 만찬들을 조금씩 미리 해 보았습니다.”
“고생했네.”
식사자리엔 입이 쩍 벌어질 만큼 많은 음식들이 있었다.
양 자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연회에 앞서 미리 음식들을 맛보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둘은 좋아하는 음식에 머리를 파묻기보다는 여러 음식들을 골고루 맛보았다.
“고려에서는 최근 음식이 중간에 식지 않기 위해서 작은 화로를 쓴다던데?”
“그래. 가끔가다 사고가 일어나서 문제지만.”
태자가 한숨을 쉬었다.
“뚝배기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야. 찌개나 국, 전골과 탕을 뜨겁게 데워 먹는 것이 좋은 음식의 기준이 되었으니… 이제는 식탁에 홈을 파서 그 안에 숯을 넣는 것이 대세가 됐지.”
“호오.”
“화학이 발전한 뒤에는 주정등(알코올 램프)을 이용하여 데우는 곳도 많아졌네. 덕분에 그 어떤 멍청이가 술에 취해 좋은 주정(에탄올)과 나쁜 주정(메탄올)을 구분하지 못하고 등 속에 들어있는 나쁜 주정을 마시고 죽어버린 사건도 일어났고.”
“웃어야 하지 말아야 하는데, 웃음이 나오는구만. 미안하군.”
“사과할 필요까지야.”
― 후룩
해원은 갈비찜을 그릇에 옮겨 담은 뒤, 그 국물과 고기를 맛보았다.
어느새 옆에 와 있었는지 암스테르담 궁정 요리사가 긴장으로 침을 삼키는 것이 들렸다.
전골과 찜 그리고 탕과 같은 고려식 음식이 꽤 유행한지도 거의 한 세기는 지났다.
이제는 궁정 요리사들과 같이 실력있는 요리사들이라면 고려식은 기본 소양과 같이 되었지만, 그래도 상대는 고려의 궁정에서 최고의 요리를 맛보고 자란 태자.
긴장이 되지 않는다 하면 거짓말이리라.
해원은 묻지도 않았지만 일단 손수건을 들어 가볍게 입을 훔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군. 잠시나마 창양에 갔다 온 느낌이구나. 잘해 주었다.”
극찬.
요리사가 세상을 다 가진 듯 함박웃음을 짓고는 주방으로 후다닥 달려가 디저트를 준비하는 광경이 보였다.
빌럼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정말인가? 저 자의 기분도 좋지만, 모레 연회의 성공 유무가 더욱 중요해. 객관적으로 평가해 줘.”
“내가 아무리 사람의 기분을 배려한다지만, 허언은 하지 않아. 네 생일을 축하하러 온 하객들을 만족시키기에는 모자람이 없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럼 다행이고.”
빌럼이 안도한 듯 의자에 등을 기댔다.
해원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근데, 넌 네 생일이라는 좋은 경사가….”
그는 다소 말끝을 흐렸다가 이윽고 솔직하게 물어보았다.
“내가 가진 화제에 가려져도 괜찮냐?”
말은 그렇게 했는데, 네 생일이 내 결혼의 들러리가 되지는 않겠느냐는 소리였다.
어찌 보면 불쾌한 말이겠지만 사실 이것이 현실이다.
네덜란드 왕세자의 생일은 중요했다.
네덜란드 전역에서, 그리고 네덜란드와 관련된 지역들과 부유한 상인들은 궁정에 얼굴이라도 들이밀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세계의 강대국들, 즉 이탈리아며 오스트리아며 프로이센과 잉글랜드, 카스티야의 공주들이 직접 참석할 정도로 대단히 중요하냐 묻는다면 대부분의 왕족들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 말할 것이다.
네덜란드도 세계의 열강 중 하나니, 빌럼이 미혼자면 가능성도 있겠지.
하지만 그가 이미 결혼을 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요즘은 사진기술의 등장으로 유럽에서도 젊은 남성 구혼자와 여성 구혼자 간의 초상 사진 교류가 활발해졌고 오가는 대신 찍어 보내라 하는 일이 많아졌다.
또한 사방에 철도가 깔리고 있다 하나 그만큼 바이에른 빨갱이 잔당들이 유럽의 중심과 그 일대에 암약하는 흉흉한 시절, 당연히 일반 귀족도 아니라 일국의 귀중품인 공주가 굳이 외국을 나돌아다니는 경우는 적어졌다.
자국 내에서 별장을 오가는 상황은 모를까.
그러나, 지금 암스테르담에는 이례적으로 전 유럽의 영애들을 대상으로 간택제가 열리는 것처럼 수많은 왕녀들과 공녀들, 그리고 대귀족들과 대상인들의 금지옥엽들이 와 있었다.
네덜란드가 이번 왕세자의 생일 때 전시마냥 군대를 증원하여 수도의 거리 이곳저곳을 지키도록 한 것도 설령 어떤 불상사가 생긴다면 도저히 네덜란드 하나만으로는 수습이 불가능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터였다.
프랑스 왕정을 수호하던 튀렌 자작이 여섯 번 싸워 다섯 번 승리를 쟁취했으나, 보급과 대의명분이라는 극복할 수 없는 차이로 결국 마지막 전투에서 혁명군의 클로드와 외젠에게 대패한 지 얼마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다.
프랑스와 바이에른 모두 이웃한 네덜란드에도 어떤 불량한 혁명 종자가 들어와 왕정을 무너뜨리겠다고 흉한 일을 저지를 수도 있었다.
네덜란드는 입헌군주정이나 참석자들이 모두 그러진 않았으니.
성공한다면 그 보상으로 위신이 크게 증가하겠지만, 당장은 신경 쓸 것이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그렇게 신경 쓴 축제가 사실상 고려 태자의 이득과 관련된 문제가 되어버렸으니 해원은 내심 미안했다.
하지만 빌럼은 고개를 저었다.
“내 생일은 매년 돌아오는 일이지만 네 결혼은 인생에 있어서 한 번뿐이지. 또한 이번 문제는 우리 네덜란드의 국익과도 직결되어 있어.”
“…….”
“그리고 비단 우리 두 조국의 관계뿐만 아니라 네 친우로서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빌럼이 그 정도까지 말해주자, 해원은 친우의 우정과 씀씀이에 마음을 놓기로 했다.
“그나저나 웃기는군.”
“뭐가?”
“이제 네 선택에 따라 유럽 각국의 역사가 바뀔 텐데.”
해원이 누구를 택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처지가 바뀔 것이다.
아주 다방면으로.
그리고 그에 의해 세계의 역사가 요동칠 것이 분명했다.
당사자는 일단 시치미를 떼었다.
“내가 비록 고려의 태자지만, 고려를 통치하는 자는 어디까지나 시중이야.
내 결혼은 국가 간의 우의를 상징하는 정도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정도는 아니고.
그리고 나 또한 고려의 신민의 생각에 반하는 일을 할 생각은 없다.”
“글쎄. 뭐 부인하고 싶다면 추궁하진 않겠지만….”
그 반대로, 고려의 신민과 조정이 원한다면 결혼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리고, 고려는 명백하게 유럽의 또 다른 파트너가 필요했다.
이제는 네덜란드와 에이레로는 부족해 보였다.
[작가의 말]
로마의 판테온은 저밀도 콘크리트에 말총을 섞어 지었다 하네요.
건설기술도 탁월했지만 그 소재 덕분에 지금까지도 멀쩡하게 서 있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