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4)
사태는 급박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파리에 있던 주프랑스 고려 대사가 베르사유로 찾아와 큰 소리로 항의했다.
“이게 말이나 되는 겁니까? 채무 불이행이라니! 도대체 어쩌려고 그런 소리를 하신 겁니까?”
그와 대면하고 있던 프랑스 외무총감이 땀을 뻘뻘 흘렸다.
“대사, 진정하고 이야기해봅시다. 폐하께선 특별히 고려에게 국공채의 일정 비율만큼 배상액을 지불할 수 있다고 넌지시 귀띔을…….”
“하! 배상액, 그래, 그 배상액. 우리가 가진 1억 리브르의 채권을 전부 다 말이오? 한 번에? 그럴 돈이나 있소?”
외무총감이 고려 대사가 흔드는 최근에 발간된 사해종합신용평가 보고서를 누렇게 뜬 얼굴로 눈동자만 움직여 바라보았다.
돈을 밝히지만 힘은 무력하여 이런저런 세상의 풍파를 겪는 유대인들과는 다르게, 고려인들은 돈도 밝히고 힘도 센 놈들.
돈에 관해서는 거짓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인간들이다.
“어… 없습니다.”
외무총감이 급히 말을 이었다.
“그러니, 고려에 한해서는 채무 불이행(Default)이 아니라, 지불유예(Moratorium)로 하자는 겁니다. 그 액수도 최대한 빠르게 갚을 테니….”
다른 국가들이 들으면 어이가 없어 뒷목을 잡을 소리였지만, 프랑스는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나 원 참.”
고려 대사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말장난은 그만합시다. 최종해결책은 이번 달 말까지 대사관으로 보내주시오. 그때 귀국과 아국의 운명이 결정지어질 테니 부디 현명하게 판단하시구려.”
* * *
“폐하, 그냥 실언하셨다고 하시지요!”
누군가 왕에게 그렇게 청했다.
한편 왕의 귀에 직접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관료들 사이에선 과격한 소리도 나돌았다.
“그냥, 그때 잠시 술김에 취하셨다고 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누군가 뒤통수를 와인병으로 때려서 잠시 정신을 잃으셨었다고 하시면 어떨까요?”
“그래도 그건 좀… 그렇지 않을까?”
그만큼 콜베르를 위시한 프랑스의 행정관료들은 이 재앙의 눈사태를 어찌 막아보려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루이 13세 본인은 관료들이 발에 불이 붙어 뛰어다니는 와중에도 자신의 명령을 철회하는 것엔 몹시 주저했다.
“짐이 어찌 내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있겠는가?”
왕권신수설.
국왕의 권한은 주님에서 나온다는 뜻이니, 이것이 모든 절대주의의 근간이며 통치의 기초적인 논리이다.
왕의 말은 신의 말과도 같으니, 극단주의적 절대주의가 유행하는 프랑스에서는 이런 논리가 상당히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니, 식언을 하는 것은 애초에 선택조차 불가능한 사항이었던 것.
“재정총감, 하지만 뒤로 고려에게 비밀리에 채무를 상환하면 어떻겠소?”
물론, 저지른 당사자도 제 발 저린 감이 있었는지 그 후에 이런 잔머리를 굴려보긴 했다.
그로서는 상당히 양보를 한 셈이다.
대외 위신이 또다시 박살이 나고, 국채를 가지고 있는 제3신분들과 소외된 이웃 국가들은 또다시 분노하겠지만 적어도 비스케이만에서 프랑스 해안가에 대포를 겨누고 떠다니는 철갑함들을 보지는 않을 수 있겠지.
닿을 수 없는 해상패권을 쥔 고려 말고 다른 나라들은 대프랑스의 육군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허나 콜베르는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그것 또한 불가함을 알렸다.
“폐하, 국고채의 상환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지금 프랑스는 고려의 채무만 따로 변상할 자금마저도 없는 상황이지요.
폐하께서 재위 기간 내내 닭고기 수프와 마른 빵만을 드시고, 수도사마냥 검소하게 사셨다면 또 몰랐겠습니다만.”
끝내 참지 못하고 덧붙여진 콜베르의 빈정거림에도, 루이 13세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이미 한번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이상, 고려는 추후에도 우리 정부의 진정성과 역량을 의심할 것이니, 즉시 변상하지 않는다면 이는 효과가 없습니다.”
차츰 선택지가 줄어들고 있었다.
루이 13세는 그제서야 심장이 쿵쾅거리고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재정총감, 짐이 뭘 어찌하면 좋을까? 그대가 말하는 대로 하겠네.”
“…….”
콜베르는 꽤 놀랐다.
그토록 자신만만하며 독선적인 왕에게서 저런 소리가 나올 정도라니.
팍스 코리아나에 대항해야 하는 그 부담감이 크긴 큰 모양이구나.
하지만 콜베르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주군의 방금 말조차도 온전히 이루어지지는 못하리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한 가지 방안이 있습니다. 오직 이거밖에는 남지 않았지요.”
“고해보시오, 듣고 있으니.”
“향료제도를 매각하시옵소서. 그곳이 안 된다면, 기니나 상아해안의 식민지를 매각하소서. 그렇다면 고려는 우리의 변상 의지를 충분히 참작하고 격노를 다스릴 것입니다. 파푸아 서쪽과 향료제도를 네덜란드에 팔면 고려의 채무를 변제하고도 많은 돈이 남아, 재정에 상당한 여유를 줄 것입니다,”
이 제안을 그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루이 13세가 그를 활활 타는 눈동자로 노려보았다.
“짐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니겠지?”
식민지는 지출을 감안해 보아도 그나마 프랑스의 재정에 도움이 되는 존재.
또한 식민지는 그 자체만으로 대외적 위신에 기여하고 있으며, 국가의 지식인들에게 상당한 민족적 고양감을 주기도 했고, 하층민들에게는 자신들이 최악의 신분은 아니라는 자기위로적 최면 효과를 불어넣는 존재였다.
야만스런 흑인들과 누산타라인들을 착취하며 생기는 가학적인 만족감.
유럽인들은 대체 왜 고려인들이 그러한 만족감을 챙기지 않는지 가끔은 의아해할 정도로 굴고 있었다.
고려인들이 그들의 마땅한 의무, 고려인의 짐을 들기를 주저한다면, 그 밑의 유럽인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백인의 짐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 콜베르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것들 중 하나를 내려놓지 못하신다면, 모두를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를 버리기 아까워한다면, 모두가 박살 날 것이다.
향료제도, 서아프리카, 인도, 북아프리카 모두!
“짐이 그렇게 두지는 않을 게야. 그대는 이만 나가보시오.”
루이 13세는 축객령을 내림과 동시에 큰 소리로 시종을 불렀다.
“대검귀족(noblesse d'épée)들을 소집하라!”
루이 13세가 내린 명령에, 콜베르는 본능적으로 이제 이 사건에서의 그가 할 몫이 끝났다는 것을 느꼈다.
‘오, 주님. 프랑스를 구원해 주소서!’
1678년 봄, 기사 계급에서 유래하여, 지금 프랑스의 군사권을 가진 대검귀족들이 왕의 부름을 받고 베르사유로 다가왔다.
몇몇은 삼부회에 참석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전쟁의 방에서 모인 자들의 면면은 몹시 화려했다.
해군총감에서 전쟁총감으로 임명된 루부아 후작, 프랑수아 미셸 르 텔리에(François―Michel le Tellier).
뤽상부르 공작이라 불리는 프랑수아 앙리 드 몽모랑시―부트빌(François Henri de Montmorency―Bouteville).
튀렌 자작이라는 앙리 드 라 투르 도베르뉴(Henri de La Tour d'Auvergne).
현 프랑스의 군대를 지휘하는 최상급 지휘관들이 전부 자리하자, 칼날과 같은 기세가 풍겨왔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그리고 그 와중에도 가장 명망 높은 자가 문을 열고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좌중은 꽤나 놀랐다.
튀렌 자작이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예전의 경쟁자 겸 전우를 환영했다.
“가장 고귀하신 앙갱 콩데 공작 전하.”
“튀렌 자작도 계셨구려. 아, 뤽상부르 공작까지. 하하, 폐하께서 참으로 많이 급하신 모양이오.”
그랑 콩데(le Grand Condé), 루이 드 부르봉(Louis de Bourbon)
오스트리아―프랑스 전쟁을 승리로 이끈 프랑스 최고의 명장이자, 부르봉 왕가의 혈통대공.
프롱드의 난 이후 콩데 공작은 한적한 곳에 은거하여 살아오고 있었다.
루이 13세에 의해 사면된 이후에도 한동안 책임을 지고 군무에서 떠났으니, 지금 이렇게 왕궁에 오게 된 것도 실로 오랜만이었던 것이다.
― 덜컥.
귀족들이 오래간만에 만나 인사를 나눌 무렵, 문이 열리고 창백한 얼굴의 루이 13세가 등장했다.
극도의 스트레스에 낯빛이 좋지 않음에도, 루이 13세는 애써 고개를 꼿꼿이 들고 귀족들을 맞이했다.
“이렇게 소집에 응해 공들이 이 자리에 오게 되었으니 주님께 감사드리오.”
“폐하의 명이니 언제든지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루이 13세에게는 이젠 귀족들밖에 없었다.
귀족이 괜히 귀족인 것이 아니다.
혈통에 의해 귀속된 그들은 국왕이 아니더라도 이 왕조―부르봉―에 충성을 해야만 했으며 그렇기에 가장 위기의 순간에는 왕이 의지할 마지막 동아줄이 되었다.
물론 추후의 관계야 어떻게 될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지금의 적은 외세임이 틀림없었으니, 공통된 적은 이들을 단합하게 할 것이다.
“프랑스의 국운이 경각에 달했으니 공들이 짐을 도와주셔야겠소.”
* * *
고려가 제시한 기한은 어느덧 코앞에 놓여 있었다.
기한을 넘기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자명했다.
발버둥 치던 콜베르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제 피할 수 없는 운명이 프랑스에 드리워지게 된 것이다.
마침내, 주프랑스 고려 대사가 베르사유에 최후통첩을 전달했다.
이미 그들은 이 서류를 제출한 뒤, 에이레로 떠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채권 상환 권고 기한이 만료되었으므로, 지금 시점부터 고려는 고려 신민과 고려의 상업, 고려의 위신과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행동할 적법한 권리를 가진다.]
[이는 귀국에 대하여 강제적인 추심 집행을 의미하는 것이고, 전쟁 또한 그 수단에 포함된다.]
― 개천력 403년 5월 13일. 대고려국 조정.
제1차 고려―프랑스 추심전쟁이 발발했다.
오르베텔로 조약이 있기도 전부터 고려는 평판에 신경 쓰는 문명국답게 선전포고의 규칙을 잘 지켜왔으며 이번에도 그러했다.
추심전쟁의 명분 또한 대외적으로는 충분히 납득 가능했으니, 이번 전쟁의 원인이 프랑스의 실책에서 기인한다는 것은 세계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다.
아마 프랑스도 부인은 못 할 것이다.
“거, 이왕 전쟁을 하실 바에, 우리의 채권도 좀 사셔서 대신 집행해주시지요.”
심지어 이런 소리도 들렸다.
로테르담 체제 이후, 프랑스는 네덜란드와 평화조약을 맺었고 이탈리아와도 갈등을 해소했다.
제아무리 지금 바이에른 혁명 공화국이 비실거리고 있다 하더라도, 왕정의 적임은 여전히 부인할 수 없었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상인들은 아국 정부에게 참전을 권유하는 대신, 고려에게 헐값에 채권을 팔았고 고려는 무려 삼천만 리브르나 더 되는 국가채권을 육백만 리브르 정도라는 싼값에 사들였다.
판 사람 입장에선 어차피 휴짓조각이 되어버릴 것, 2할이라도 건지는 것이 좋은 일이었으며, 산 사람 입장에선 어차피 뜯어낼 놈에게 더 뜯어낼 명분을 가지게 되었으니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일이었다.
전쟁의 뿔나팔이 불렸다.
세계구급 강대국 둘이 벌이는 전쟁답게, 온 세상이 요동쳤다.
마긴다나오 근처에서, 향료제도에서.
누산타라의 잡다한 섬들 사이에서.
안다만해와 인도에서.
아덴만과 홍해에서.
지중해에서.
남아프리카에서. 상아 해안에서. 서아프리카 해안에서.
대동양과 비스케이만, 그리고 북해에서.
대포와 소총에 불이 붙었다.
― 콰앙
프랑스 향료제도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번성한 거점, 누벨 라로셸은 엄청난 포격을 받기 시작했다.
최후통첩이야, 베르사유에 전달되었지만 그것이 식민지까지 그리 빨리 퍼질 수는 없다.
물론 급박하게 돌아가는 본국의 사정을 알고 있긴 했을 테니, 언제고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은 했겠다지만.
하지만 고려는 이미 선전포고를 하는 입장에서 구체적인 날짜까지 알고 있는데 비교할 수가 있겠는가.
최후통첩이 통보된 당일, 고려는 마긴다나오에서 출항을 개시하여 향료제도로 남하하고는 곧바로 누벨 라로셸을 포격했다.
잘 자던 새벽에 포탄 세례를 맞은 프랑스 병사들이 기겁하며 대응했지만, 힘의 차이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 콰앙
“으아악!”
사방에는 오직 프랑스인들의 비명만 들리는 듯했다.
보통, 해안포는 군함의 천적이다.
가라앉는 대포와 가라앉지 않는 대포가 싸우면 후자가 유리한 것은 명백한 사실.
하지만, 고려의 함선은 예전부터 상식 밖에 있었다.
국가재정을 생각하는 재정총감 콜베르의 입장도 입장이지만, 전쟁총감 루부아 후작 또한 해군총감 시절부터 마냥 억지 주장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기를 써가며 해군력에서 고려를 추격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도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했던 일일 것이다.
비명은 도시뿐만 아니라 바다에도 들렸다.
프랑스 해군은 무기력했다.
“젠장! 작렬탄도 듣지를 않아!”
철갑함은 작렬탄에 대항하여 만들어진 군함의 설계원리에 따라 프랑스 함대와 해안포가 쏘아대는 작렬탄의 포격마저도 꿋꿋하게 버텨내고 대응사격을 실시하고 있었다.
운이 좋지 않게도, 프랑스는 함선 건조기술뿐만 아니라, 모든 군사기술적 면에서 현격한 격차를 보이고 있었다.
교련법에 이어 이미 전로법(Converter)을 도입한 고려는 개천력 4세기 후반이 되자 이제 예전의 도가니강 말고도 대중적인 강철을 뽑아내고 있었다.
대규모의 선철을 대규모의 강철로 바꾸는 것에 성공한 것.
어마어마한 물량의 강철이 풀리자 고려는 철궤를 새로 깔고 거대한 다리(교하대교 등)를 만들고 기계의 정밀성을 더욱 향상시켰다.
대포 또한 그 견고함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으니, 강선이며 폐쇄기 같은 것들이 속속들이 등장해 후미장전식 군사무기를 가능케 한 것이다.
과거에 어설프게 시도된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그러니 뭐 하나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사거리와 내구성 그리고 위력까지.
온갖 포격에도 멀쩡한 변흠규급 철갑순양함들이 측면의 포를 발사하자, 누벨 라로셸의 앞바다를 지키고 있던 전열함들이 하나둘씩 스러지기 시작했다.
원형탄 수십 발의 포격은 꿋꿋하게 버티던 육중한 전열함이었으나, 고려의 작렬탄에는 목조군함의 종말을 상징하듯 빠르게 침묵하고 마침내 바닷속에 그 몸을 누이고 말았다.
16세기와 17세기 초까지 황금기를 구가했던 누산타라의 해적들이 17세기 말에 들어서 순식간에 스러져간 이유는 바로 이것에 있었을 것이다.
이제 바다는 나무가 아닌 철이 지배하니.
누벨 라로셸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한 발의 포를 쏘면 적어도 다섯 발의 포가 날아와 돌과 모래주머니로 지은 포대가 박살 나도, 프랑스인들은 어찌어찌 고개를 숙여 대포를 수습하고 도망가 다른 곳에서 포를 발사하며 항전했다.
그 기상은 존중받을 만한 일이나, 그렇게 한다고 정해진 운명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 와아아!
이제는 심지어 바다 말고 사방의 육지에서조차 제국의 깃발이 휘날리고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애초에 요란한 해상전과 포격전은 고려 해병대의 상륙을 도와주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은 누벨 라로셸의 사령관이 백기를 내걸었다.
“…항복하겠소.”
“현명한 선택이오.”
스몰소드를 뽑은 뒤, 그것을 거꾸로 건넨 프랑스 지휘관의 검을 받아 든 태평양함대사령관이 누벨 라로셸에 휘날리는 제국기를 바라보았다.
이는 누벨 라로셸뿐만 아니라 프랑스령 인도 식민지 코친(Cochin),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식민지 푸엥트누아르(Pointe―Noire), 월비스베이, 상아 해안, 그리고 기니에서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모두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