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326화 (326/653)

프랑스 혁명.

“미쳤소, 정말로 미쳤다고!”

프랑스 재정총감 장 바티스트 콜베르(Jean―Baptiste Colbert)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백만 리브르? 백만?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시오?”

부르봉 왕가가 정권을 잡은 프랑스는 그동안 위대한 국왕만큼이나 현명한 재상들이 그 곁을 보좌했기에 지금까지 거의 백 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중흥할 수 있었다.

리슐리외.

쥘 마자랭.

두 명에 의해서 과정이 어찌 되었던 통일 도이칠란트는 이제는 꽤나 보기 힘들어진 것이다.

프랑스의 잠재적 숙적, 도이칠란트는 오스트리아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 그리고 바이에른 혁명 공화국으로 찢겨졌다.

바이에른 혁명공화국은 사실상 전 왕정의 적과도 다름없어 프랑스 또한 적대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합스부르크에게 치명타를 안겼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그러니 이제 프랑스는 휘청거리는 이웃 옆에서 명실상부한 유럽 최강국으로 발돋움했던 것.

바다에선 이탈리아에게 밀릴 것이 자명했지만, 적어도 육지에서는 대적할 수 있는 자들이 거의 없었다.

고려를 본받아 설립한 프랑스의 육군사관학교는 유럽 내에서 최고의 인재들을 배출했고, 이들의 지휘 아래, 프랑스와 나라 대 나라로, 전 힘을 그러모아 총력전을 치러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곳은 적어도 유럽에는 없었다.

그렇다고 프랑스가 명재상들의 치세에 오만하게 전 유럽과 척을 지지는 않았다.

프랑스는 카스티야와 덴마크, 러시아와 심지어 오스만과도 연계하여 외교적 고립을 탈피했던 것.

뿐만 아니라, 리슐리외와 마자랭은 그 넘치는 국력으로 유럽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유럽주의(l'idée d'Europe)’의 개념을 제시했다.

비록 유럽주의가 완벽하게 작동하여 유럽국가들이 연합하여 대서양 너머의 고려와 아직도 콘스탄티노플과 발칸 반도에 발을 디디고 있는 오스만을 몰아내는 것까지는 갈 수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순 없겠지만.

그래도 유럽인들에게 일정한 수준의 경각심을 심어 주는 것까지는 성공한 것이다.

장 바티스트 콜베르 또한 그 두 명의 선임자들에 비해 결코 꿀리는 인물은 아니었다.

리슐리외가 설립한 아카데미 프랑세즈(프랑스 인문학)에 뒤이어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를 설립한 것도 그였다.

또한 콜베르는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대단하게 여겨지지는 않았지만, 먼 훗날 두고두고 칭송받을 하나의 위대한 업적을 세우기도 했다.

그때 당시, 중구난방이던 도량형을 하나로 재정립한 것.

콜베르의 제안 아래,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는 고려의 제국한림원과 민간교류를 통해 인류의 보편적인 과학기술의 진보를 위해 도량형을 통일했다.

학술적인 부분에서 두 나라의 학자들은 섬나라가 아닌 대륙국가답게 꽤나 열린 마음으로 이를 논의하여 표준단위계를 재정립했다.

어차피 그때 당시 제국 또한 과학 및 공학기술의 발전과 시대가 지날수록 과거에 정립한 금속원기가 조금씩 부식되어 알게 모르게 오차가 생기는 상황, 이를 수정하자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제국도량형은 거의 바뀌지 않았고, 프랑스만 바뀌어 길이단위계는 사실상 동일한 ‘자오선 길이의 천만분의 1’이되었기에 프랑스 지식인들은 이를 두고 치욕스러운 문화적 패배라고까지 했지만, 적어도 이 미터(metre)법은 프랑스와 더 나아가서 인류에게 야드파운드법과 같은 끔찍한 유물을 남겨주지는 않을 것이었다.

또한 콜베르는 프랑스 상업을 좀먹는 고려 상인들의 영향력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천천히 밀어내어 프랑스 회사들의 기반을 살려나갔고, 와인 산업은 아직까지도 이전의 성세까지 회복은 안 되었지만 다른 산업에서의 돌파구를 찾았다.

왕실 태피스트리, 플랑드르 직물과 같은 사치재, 면포와 제철소, 군수공장과 같은 핵심 공업은 물론이고 설탕과 후추, 정향과 육두구 같은 향료제도의 원료까지.

능력은 진실로 찬란했으나, 그만큼 사욕 또한 상당하여 죽기 전까지 거의 500만 리브르라는 거금의 사유재산을 축재한 리슐리외와 그보다도 더욱 많은, 무려 800만 리브르라는 사유재산을 축재한 쥘 마자랭과는 달리 장 바티스트 콜베르는 당대 프랑스 절대왕정의 핵심 관료 중 하나가 되었음에도 그리 많은 탐욕을 부리지 않아 세간의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검소하다는 것은, 이 왕정이라는 체계 앞에서는 하등 쓸모가 없는 상황이었다.

콜베르가 허리띠를 졸라매며 나라의 국고를 아끼고, 심지어 열심히 벌어오면 무엇을 하나.

힘들게 채운 국고는 허무할 정도로 날아가버리는데.

“…기껏 다이아몬드 하나 때문에, 백만 리브르를 쓰는 것이 정상이오? 대체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무엄하오! 재정총감! 에스테파니아 전하를, 아니 대프랑스의 렌느를 욕되게 할 참인가?”

할 말이 없어진 콜베르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평생의 숙적이자, 어찌 보면 그래도 가장 친한 사이인 루부아 후작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콜베르는 마자랭의 후계자라 불리면 불리었지, 더 이상 루부아 후작의 부친인 미셸 르 텔리에의 정치철학을 따르지 않아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나가고 있지만, 한때 그는 아버지 밑에서 많은 일을 도맡아 하였던 자였다.

루부아 후작과도 사적으로 친밀했던 때도 있었고.

“이보시오. 콜베르 남작.”

“듣고 있소.”

계급은 후작(Marquis)과 남작.

심지어 그 작위마저도 평민 출신이었던 콜베르가 그나마 운신의 폭을 늘리기 위해 구입한 결과물이라 생각해보면 둘의 전통적(계급적) 지위는 완벽하게 달랐다.

하지만, 콜베르는 엄연히 현 프랑스의 재상과도 다름없는 재정총감.

그리고 시대 또한 서서히 바뀌고 있으니 루부아 후작마저도 그를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은 국가적 위신이오. 에스테파니아 전하만의 독단적인 결정은 아니었소.”

“…….”

“제국의 빛은 고려가, 코히누르(Koh―i―Noor)는 이탈리아가, 합스부르크 다이아몬드는 오스트리아가 가지고 있지. 심지어 저 류리크 또한 북방의 별을 가지고 있소. 이러한 상황에서 스페렌자 블루를 다른 나라에게 빼앗긴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겨우 그따위 이유로?”

“콜베르 남작, 이것은 그따위 이유가 아니오, 우리 프랑스의 위신을 결정하는 일이다, 이 말이외다.”

― 와하하하!

때마침 아스라이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콜베르도, 루부아도 그 아무도 고개를 돌리거나 물어보지 않았지만, 저 웃음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이 넓디넓은 궁정에서 저렇게 요란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은가.

콜베르는 이제 푹신한 의자에 파묻히듯 기대앉았다.

루이 13세는 나름대로 그를 배려하여 이런 좋은 집무실을 주었지만, 막상 그는 차라리 그 돈으로 재정을 메꾸고 허름한 헛간에 집무실을 두는 것이 낫겠다 그리 생각하고 있을 정도였다.

“후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베르사유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리슐리외는 루브르가 프랑스의 주 궁전으로 남길 원했고, 콜베르 또한 이에 동의하는 입장이었지만, 왕들은 무슨 이유에선지 베르사유에 대한 집착을 놓지 않았다.

가스통 1세부터 시작된 이 새로운 궁전은 선왕 두 명의 치세를 거쳐 매년 수백만 리브르를 퍼먹으며 마침내 콜베르의 재임 기간에 완공되어 그 찬란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콧대 높은 고려의 외교관들마저도 자국의 창천궁에 비해 크기가 작고 위압감은 덜하나 화려함만큼은 비견될 만하다고 평가했을 정도였다.

루이 13세는 심지어 이곳에 자그마한 간이 철도를 까는 사치를 부렸다.

온갖 곳을 금으로 도금한 화려한 기차는 베르사유 옆에 설치된 왕립 극장과 정원 가장자리의 한적한 곳에 만들어진 고려식 연못과 정자를 모두 지나쳐 다시금 베르사유 궁전 안으로 들어온다.

왕은 매년 자신이 총애하는 정부와 함께 저 작은 기차를 타며 밀회를 즐겼다.

에스테파니아 왕비는 사실상 허수아비였고 루이 13세는 그녀와 그저 형식적인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니 지금 그는 왕비의 시녀인 몽테스팡 후작부인과 함께 밀회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스페렌자 블루는 그녀의 목에 걸려 있을 테고.’

이래서야 무슨 의미인가.

왕비의 목에 걸린 보석과 정부의 목에 걸린 보석의 무게감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야, 정말로 국가적인 위신이지만 후자는 단순히 머저리 같은 사치행각에 불과했으니.

‘아니, 사실 이것도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지진 않는다.’

민심이야 뒤숭숭하다지만, 결국 언젠가 진정하기 마련이었다.

재무적인 지출 또한 결국은 회복될 것이다.

프랑스의 저력은 절대 약하지 않았다.

위대한 왕 앙리 3세는 낭트 칙령으로 위그노들과의 대타협에 성공하며 국가 세수를 크게 늘리고 상공업을 중흥시켰다.

이 ‘개신교도 부르주아’들은 나라에 내는 세금이 정말 많았으니, 조금의 관용으로 큰 실리를 얻어낸 것이다.

성하께서 화를 내셨다지.

허나 죄송한 말이지만, 이 시대의 군주 중 이빨 빠진 교황의 말을 듣는 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콜베르는 눈앞의 루부아 후작이야말로 프랑스 경제의 주요한 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었다.

비싼 궁정, 비싼 보석.

허나 그것은 전쟁과 국방보다 못하다.

“우리도 해군을 키워야 하오. 적어도 누산타라 정도는 우리 혼자의 힘으로 지켜낼 수 있게.”

빌어먹을 해군, 빌어먹을 국방비!

빌어쳐먹을 고려!

선체가 철로 된 괴물 철갑함의 등장은 전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괜시리 유럽주의가 성공한 것이 아니다.

저 끔찍한 존재는, 모든 이들의 생각 저편에 위치했다.

누산타라에서 고려가 철갑함 단 한 척으로 거의 열두 척에 달하는 대형목조군함을 박살낸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였다.

그 유명한 영광급 철갑함 다음에는 심지어 거의 모든 부속이 나무가 아닌 철로 이루어지고 아예 돛대를 제거하여 순전히 증기기관으로만 움직이는 ‘변흠규급 순양함’이 건조되기도 했다.

이래서야 구시대적 전함들로 대체 뭘 하겠는가.

프랑스 또한 어찌어찌 고생을 하며 철갑함을 만들어내었으나, 이는 너무나도 힘든 여정이었다.

게다가 고려는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염두하여 심술을 부리는지 가끔 괴상망측한 함선을 만들어 내어 모방하는 자들에게 큰 곤란을 선사하곤 했다.

자국 내에선 도태된 외륜(그때 당시에는 다른 나라들은 이를 몰랐다)을 일부러 장착해서 대외과시를 하지 않나, 괴상한 설계도(심지어 이를 유출하기까지 했다)로 괴상한 함선을 만들어 낸 뒤 갖은 고생으로 이를 모방하여 만든 나라를 비웃으며 낄낄 웃어대질 않나.

고려를 따라 막상 만들었는데, 만든 이후의 효용이 생각보다 쓸모가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경우도 빈번했다.

해군은 그렇기에 결국 투자한 자금의 결과물이다.

선발주자를 아무런 생각 없이 따라가다가는 피해를 본다는 것을 경험한 지금은, 그들은 날것 그대로 먹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했다.

그래서 해군총감 루부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데.

“이천만 리브르요.”

“뭐요?”

“우리 프랑스가 한 해 지고 있는 빚의 규모가 이천만 리브르라는 소리요. 그리고 그 액수는 계속 누적되어 지금은… 지금은….”

“지금은?”

“5억 리브르가 되었소.”

무시무시한 금액이다.

루부아 후작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대체 어디서 그렇게 낭비되고 있는가?”

“지금까지 합스부르크와의 전쟁은 뭐, 하느님이 대신 지불하셨나? 바이에른에의 지원은? 심지어 바이에른 혁명공화국을 지원해놓고 이제는 그들과 싸워야 하는데!

그리고, 누산타라. 좋아요. 좋습니다. 그 지역에서 나오는 향료의 양이 지금 프랑스의 유일한 동아줄이지요. 하지만 식민지는 그만큼의 유지비가 커집니다. 거위가 황금알을 낳는다고 그 식비마저도 무시하면 되겠소?”

식민지에서 많이 벌어들이기 위해선, 식민지에 많이 투자를 해야 한다.

실로 기초적인 상식이다.

“거기에 궁전 지불 대금, 다이아몬드 비용까지.”

콜베르가 몸을 축 늘어뜨렸다.

루부아는 처음으로 자신의 정적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하께서는 이런 사항을 알고 계시지 않소? 뭐라 대책을 명하셨을 텐데.”

대책은 무슨.

왕의 위엄을 보여주겠다며, 이곳 베르사유에 수많은 귀족들을 불러놓고 연일 파티를 벌이고 있는데.

게다가 기껏 명령받은 대책이야 뻔하지 않는가.

증세.

콜베르가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삼부회에서 결정되겠지. 프랑스의 운명이.”

* * *

세상 어디선가, 노동자들의 바닷가재는 질린다며 혀를 차고 있을 때, 다른 어디선가는 그런 호사조차 누리지 못했다.

프랑스의 노동자들 또한 그러했다.

알자스 로렌은 꽤 옛날부터 프랑스의 땅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비록 네덜란드와 국경분쟁이 있었을 때는 이곳은 전선 근처라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오르베텔로 조약, 그리고 프랑스 내의 낭트 칙령이 이루어진 후에는 두 국가의 사이는 꽤 진전되어 프랑스 또한 이곳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다.

때마침 신성로마제국이 알아서 붕괴되지 않았던가.

프랑스에는 철과 석탄 광산이 희귀했기 때문에, 프랑스는 두 광산이 모두 존재하는 이곳에 이전부터 주목하고 있었지.

이곳은 집중적인 투자 이후 많은 부분에서 바뀌었다.

주변의 광산들, 그리고 네덜란드와 나사우 공국 등을 통해 석탄과 철광석을 빠르게 수입해오는 메스와 낭시는 산업혁명 이후 공업도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프랑스 육해군들의 무기를 생산하는 조병창이 있기도 했으며 여러 기초설비들을 만들어내는 공장이 존재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성세에는 분명히 이들의 공로가 제일이라고 꼽힐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작가의 말]

제국의 빛은 컬리넌(Cullinan) 다이아몬드입니다.

합스부르크 다이아몬드는 피렌체 다이아몬드입니다.

북방의 별은 상시(Sancy) 다이아몬드 입니다.

루이 13세는 원 역사의 루이 13세와 다릅니다.

만고의 적인 야드파운드법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 죽었습니다. 이제 존재하지 않으니 안심하셔도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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