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314화 (314/653)

올림피아

모두가 피 흘리지 않는 행복한 결말이다.

아주 예전, 마라차 또한 비슷하게 처분을 내린 적이 있었다.

코카인을 듬뿍 섭취하여 금방 이성이 망가진 그때보다는 결과가 살짝 늦겠지만, 결국 저자들의 결말 또한 정해져 있었다.

상민은 자신의 가슴속에 언뜻언뜻 이렇게 잔혹한 면이 드러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무고한 자국민을 대상으로 방사능 실험을 하는 21세기 일본보다야, 죄를 지은 범죄자에게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할 수 있게 자발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더 인도적인 처사가 아니던가.

자신은 여전히 인의의 법도를 추구했다.

상민은 호화스러운 침대에 누워, 계속 생각을 이어갔다.

캐노피 침대라 하는 이 화려한 침대는 침대의 각 꼭짓점마다 기둥이 세워져 있고, 그 기둥 위에는 천장이 있었으며 천이 드리워져 사방의 벌레들을 차단할 수 있었다.

부유한 자들의 상징이라 할 수 있겠지.

가구의 유래는 정확히 모르지만, 캐노피라는 이름의 유래는 캐노피온이라는 그리스어 단어에서 따온 것이 확실했으니, 그는 나름대로 이 침대의 원조에 누워 있는 셈이다.

침대의 주인, 콘스탄티나 콤니니는 근육과 언제 어디서 얻었는지 모를 잔 상처들로 굴곡진 상민의 가슴팍을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응답이 없자 그녀는 내심 아쉬워했다.

밤이야 길고 길었고, 그의 육신은 절대 지치지 않을 테지만 그의 마음은 더 이상 누군가에게 정착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마치 바람과 같이 그녀의 마음에 들어왔고, 바람과 같이 가둘 수 없었다.

그리고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내가 선택한 삶이야.’

콘스탄티나는 고개를 젓고는 이윽고 침대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 속옷과 옷을 입은 뒤 같은 침대를 쓰는 여자에서 순식간에 그의 명을 따르는 신하로 바뀌었다.

그녀는 상민에게 공손히 조아리며 말했다.

“주군, 진지를 차렸다 하니 드시지요.”

식탁 위에는 정갈하게 담아있는 밥상이 보였다.

밥과 국, 장을 제외해 보아도 반찬의 가짓수는 열다섯 개.

옛날에는 조선의 임금도 수라상에서 이 정도로 누릴 수 없는 지극히 호화로운 식단이지만, 고려의 자본가들은 이제 이 정도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술적 배경과 그만큼의 부유함을 지니고 있었다.

상민은 김치와 된장국, 제육볶음, 버섯전골과 소갈비, 대구탕 등의 전형적인 려식(麗食) 밥상을 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조선식, 옥저식, 백제식 등과 함께 한식(韓食)이라는 대분류로 묶이곤 했지만 고려는 상류층 기준으로 옥저보다는 그래도 야채를 많이 먹었으며, 조선보다는 고기의 비중이 높았다.

그리고 고춧가루와 후추 등으로 매운 것도 상당히 좋아하는 민족이었고.

최근에는 심심한 것을 즐겨 먹었던 조선인들과 북쪽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옥저인들 모두 그 영향을 많이 받아 고춧가루에 대한 재배와 소비가 모두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한다.

그는 다른 반찬보다 유난히 앞으로 나와 있는 매운 양념을 한 대구탕을 슬쩍 보고는 자그마한 나무 국자로 약간 담아 몇 숟가락 떠먹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군.”

고려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힐 거부이다 보니 매번 직접 요리를 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기에 대부분은 숙수들을 고용했지만, 콘스탄티나 자신은 꼭 그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 하는 모양이었기에 요즘은 틈이 날 때마다 배우는 모양이다.

그의 말에 콘스탄티나가 환한 미소를 띠었다.

역시나 그의 짐작대로 그녀가 만든 음식인 모양이다.

“진주에 오시면 진주의 명물인 대구탕을 드셔보셔야지요.”

비록 대서양 대구는 한국에서 잡히는 대구와는 크기도 다르고 모습도 살짝 달랐지만, 여전히 맛이 있었다.

기름기가 많지 않아 다소 뻑뻑하다 했지만 탕으로 먹으면 오히려 더 괜찮았고.

테오도라 아사니나가 처음으로 테르샤로마에 자리를 잡았을 때 기록한 자료들을 보면, 진주의 앞바다, 즉 북대서양에는 정말 물 반 대구 반이라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 한다.

유럽의 역사에서도 대구는 유구한 음식이었지.

덕분에 농사가 자리 잡히기 전까지 대구는 진주의 옛 그리스계 고려인들에게 좋은 식량을 제공하는 원천이었고 그 후로도 지금까지 좋은 단백질의 근원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앞으로 대구 보관도 쉬워질 테니 고려의 많은 백성들이 맛있는 생선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생선은 더할 나위 없는 음식이지만, 상당히 빠르게 상하고 상할 때 그 악취가 대단하다 보니 내륙지역의 사람들로서는 접하기 힘들었다.

젓갈을 만들거나, 염장을 하여 보관하는 것도 있었지만 가끔은 염장생선 말고 제대로 된 생선을 먹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냉동고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발명이고.

대구탕이야, 반건대구로 만든 것이 맛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만.

‘냉동고를 설치한 기차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상민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작은 공책에 만년필로 간단히 끄적였다.

그 모습을 보던 콘스탄티나가 불쑥 입을 열었다.

“솔직히 이번의 명령은 약간이라도 유예기간을 두실 줄 알았어요.”

“이번 명령은 번복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이번엔 유예기간을 줄 생각이 없었다.

자신조차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가래침을 뱉었는데.

물론, 사방이 석면벽으로 밀폐되고 환기도 잘되지 않는 냉동고의 사정상, 내장 단열재로 쓰는 일반 가정보다는 짧은 시간이라도 돌솜에 더 많이 노출이 되겠지만 그래도 그는 그때 바로 경각심을 느꼈다.

산업용으로 쓰게 계속 허락하는 것도 꽤 많이 양보를 한 셈이다.

이러한 명령은 지금 당장 시행되어야 할 것이고, 지금 당장 해내어야 했다.

지금은 돌솜 표면에 대한 포장 처리 기술도 형편없지 않던가?

우라늄으로 집을 지어 놓고, 유예기간을 줄 수는 없다.

콘스탄티나는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당신의 판단이 맞으시겠죠. 항상 그러했듯이.”

“미리 언질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허나, 그것조차도 형평성의 문제니.”

완고한 이 사람은, 그런 것에서 정말 끔찍하게 융통성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콘스탄티나의 사업이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나, 그녀는 자신의 사업보다도 훨씬 더 큰 가치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다.

오히려 그녀는 이 존재가 그런 마음가짐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사실 그녀의 피해는 그의 피해를 의미한다.

그러니 그는 사의보다도 공의를 더욱 추구하는 자.

그렇기에 콘스탄티나가 경전에 적힌 수많은 성인들보다도 그를 더욱 존경하지 않겠는가.

트라페준타 제국의 멸망 이후, 마지막 남은 동로마의 후예 또한 어찌어찌 오스만을 피해 달아났다.

이들 유민들은 흑해 주변의 동유럽에 정착하기도 했고, 당시 모스크바 대공국 등으로 흘러가기도 했지만, 적지 않은 수는 저 멀리, 새롭게 재건되었다는 테르샤로마에 가기를 희망했다.

제아무리 많은 다툼이 있었더라도, 결국은 같은 그리스계 민족이었으니 동화 또한 쉬울 것이고.

콘스탄티노플이 피바다로 변하고 정교회의 성당이 이슬람의 모스크로 바뀐 이후, 팔레올로고스와 콤네소스 간 갈등의 근원조차도 사라졌다.

그리고 진주의 여왕 또한 어디까지나 아센 가문의 이름을 잇고 있었으니까.

그 후, 메가스(大) 콤니노스(Comnenus) 가문은 다시금 진주에서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명맥이 다시금 옛 영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을 잃고 피난을 온 주제에, 진주의 아센 왕가와 사사건건 마찰을 벌였던 콤니노스는 그나마 가지고 온 금전과 트라페준타 유민들의 충성심도 모두 잃었다.

가문의 대문에는 거미줄이 쳐졌으며, 진주의 사람들은 콤니노스를 헐뜯기 바빴지.

그렇게, 그녀의 가문은 역사 속으로 들어갔을 것이었고, 상당히 후에 태어난 콘스탄티나 또한 가문의 성만 거창할 뿐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근근이 살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주군을 만나고, 모든 것을 이루었다.

한낱 여인의 몸이었지만, 능력 이외의 것을 보지 않는 상민은 선입견을 가지지 않은 채, 작은 무역회사를 열심히 경영하는 그녀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이미 쇠락하여 뿔뿔이 흩어진 콤니노스를 규합했고, 메갈리 콤니니로서 가주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시대에 콤니노스는 거대한 기업 가문으로 다시금 도약했지.

그러나 콘스탄티나는 그녀가 일평생 일군 기업―아타나토스―이 무슨 목적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스어로 아타나토스(αθάνατος)는 ‘불멸’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이 회사는 사명대로 영원토록 오직 단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또한 그녀는 이 회사를 그녀 자신이 일으켜 세웠더라도 그녀의 후계자들에게 이를 영원히 따르라 가르칠 것이고.

그 후계자가 그와 그녀의 자손이건, 혹은 그렇지 않건 상관없이.

‘나와 우리 가문의 메갈리 이데아(Μεγάλη Ιδέα)는, 로마의 재건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곁에서 같은 길을 함께 걸어 나가는 것일 겁니다.’

상민은 별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감정은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생각건대, 자신은 인복이 많은 운명인 듯하다.

혹은 그 자신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가지고 있든지.

“다음 주 주말은 같이 정구 경기나 보러 가자꾸나.”

콘스탄티나는 그 말에 좋아서 어쩔 줄 몰라 식탁 밑에서 발을 동동 굴렀지만, 표정만큼은 태연자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민은 예리한 감각으로 그녀의 보이지 않는 호들갑을 다 느꼈지만.

“진주 대회의 결승전이 있지요?”

“그래.”

축구가 고려의 전 계층이 향유하는 문화였다면, 정구(테니스)는 그중에서도 귀족적 스포츠 문화라 볼 수 있었다.

프랑스의 쥬드폼이 들어와 고려의 정구로 변한 이후, 경기장과 경기 규칙, 그리고 경기 도구도 기존보다 많이 바뀌고 발달했다.

몸싸움이 격렬하여 남성들이 주로 향유하는 마초적인 문화인 축구와는 다르게, 정구는 여인들도 거부감없이 보고, 직접 즐기는 운동이었으니 보는 맛도 잘 날 것이다.

“저는 진주 대회 여자 부문은 이번에도 그 비비엔느 선수가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떠오르는 신성인 송경아 선수가 아니라?”

“네. 그녀가 열일곱에 벌써 협회지수(전문정구협회지수)

7위에 들어왔고 심지어 다른 4대 주요 대회인 창양 대회를 우승했다 하더라도요.”

“흐음….”

아무래도 상민은 송경아 선수를 응원하는 것 같았지만, 콘스탄티나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공적인 의견이야 그녀는 그를 충실하게 따르겠지만, 스포츠는 사적인 의견이지 않는가.

괜스레 이런 것으로 대립하는 것도 재미가 있기도 하고.

“아무래도 진주 대회는 앙주 대회처럼 경기장에 점토판을 깔았으니 많이 뛰는 성향에다가 수비에서의 이점이 높은 비비엔느 선수가 더 잘하겠죠.”

정구가 스포츠로서 자리를 잡은 시점은 꽤 오래되었지만, 경기로서 제대로 자리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방의 많은 곳에 철도가 깔린 이후였지.

사실 축구 또한 철도가 없을 때까지만 해도 이동 거리의 문제 때문에 지방 체전 성격이 강했고, 제국전 같은 것은 상상조차 못 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후, 정구 대회는 급속하게 발전했다.

상류층 문화다 보니 그 후원금도 장난이 아니라, 가끔은 최고의 축구선수도 최고의 정구선수에게 그 상금 규모며, 연봉이며 밀리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4대 주요 정구 대회의 우승자는 절대 만만히 봐서는 안 되었다.

잔디 경기장의 창양, 벽돌 경기장의 미원, 점토 경기장의 동래미(앙주 대회)와 테르샤로마 대회(진주 대회)는 어느 순간부터 고려 상류층의 막대한 부가 몰려들었고 덕분에 엄청난 상금이 걸린 대규모의 대회가 되었다.

열변을 토하는 콘스탄티나의 얼굴은 꽤 보기가 힘들다.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상민이 지나가듯 말했다.

“부탁할 것이 있다.”

“네, 말씀하소서.”

한마디 말에 분위기가 저렇게 급속도로 바뀌는 것도 여인의 재능이리라.

“이전부터 한 가지 꿈을 꾸고 있었다. 거창한 목적도 뭐도 아니야. 단지 더 나은 방향으로의 진보를 원한 것이지.”

“……?”

여전히 의문을 담은 채, 그녀는 빤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스포츠가 어쩌면 이 세상의 갈등을 풀 수 있게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겠다, 그리 생각이 들었다.”

상민이 비록 유럽이 종교로 서로 갈라져 다투길 원하고, 북원 대칸의 목을 자르고, 잠재적 경쟁자라 여기는 명을 찢어대고, 왜의 수도를 불태워버리는 극악무도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매번 살육과 피의 현장을 즐기는 악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이제 고려가 일정 궤도에 오르고, 사실상 단일한 국가끼리는 적수가 없게 되었으니 인류에 피와 공포를 심어주기보다는, 다소 평온한 현대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길 원했다.

전쟁이 기술발전을 추구했던 과거의 사회와 달리, 자본경쟁이 기술발전을 추구하고 인류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그런 사회로의 이행.

그것은 물질적 발전도 있지만, 인류 전체의 근대적 의식 함양이 필요했다.

그리고 의도된 경쟁의 장에서 벌이는 선의의 경쟁과 스포츠맨십은 그런 의식을 깨우기엔 꽤 적절한 패지 않겠는가.

처음 프랑스의 귀족 쿠베르텡은 민족주의적 고양감을 일으키기 위해 이런 스포츠 제전을 다시금 만들었다지.

그러나 이는 후에 오히려 국제주의(國際主義)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국제주의와 세계주의는 태동하지 않았지만, 그에 가장 근접한 것이 고려의 연방제국이다.

팍스 코리아나의 시대에 우리는 선한 흐름을 선점해야 했다.

콘스탄티나는 아직도 대체 눈앞의 용에게서 무슨 말이 나올지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정말이지 그녀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한 문장이었으니.

“올림피아 제전을 부활시켜라.”

헬레니즘 문화의 결정체.

비록 그 고대 문화는 여러 가지 단점을 껴안고 있었지만, 고려에서 부활한 그 고대의 운동경기와 축제는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미래지향적일 것이다.

콘스탄티나는 전율했다.

전까지만 해도, 옛 그리스 자료들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어떠한 의문 없이 따르고 있던 그녀였지만, 지금의 명령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설명을 들은 순간부터, 이 위대한 이상향에 매료되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온몸을 떨며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따르겠습니다. 기필코, 기필코 주군의 명령을 완수해 보이겠습니다.”

[작가의 말]

전문정구협회지수는 ATP 랭킹 포인트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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