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312화 (312/653)

고려의 자본가들

* * *

목이 간질거렸다.

원래 돌솜은 설치될 때는 그 유해성이 별로 없다고 듣긴 했다.

다만 나중에 돌솜이 부서지며 눈에 보이지 않는 작고 뾰족뾰족한 돌들이 폐에 들어갈 때 끔찍한 상황을 일으키는 것이지.

분명히 그 냉동고는 돌솜 단열재가 부서진 것이 보이지 않았지만, 사방이 돌솜이었다 보니 무언가 자꾸 신경을 건드리는 기분이 들었다.

상민은 몇 차례 목을 끓더니, 이윽고 누런 가래침을 집무실 안의 죄 없는 화분에 뱉었다.

“…….”

저 가래 속에 있는 것은 보이진 않지만 돌솜 입자겠지.

눈에 보이지 않는 돌조각 따위는 그를 해할 수 없는 모양이다.

난관이 있다면, 자신이 아닌 그저 일반적인 사람은 돌솜의 위해성을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일 테다.

지금 일반 대중에게, 어떤 한 학자가 뜨뜻한 단열재가 정말 위험하니 쓰지 말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학자에게 미쳤냐는 말을 하며 아니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볼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 CT니, MRI니, 초음파나 엑스레이가 있을 리가 만무했다.

심지어 사진기조차 없었으니 이것이 돌솜 때문에 난리가 난 폐요! 이러며 경각심을 불어넣을 수도 없었다.

대체재를 개발하는 것도 일단 시간이 걸렸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

일단 돌솜의 상위호환을 떠올려 낸 것만으로도 다행이니까.

유리섬유라는 것이 있었지.

말 그대로 유리를 섬유처럼 가늘게 뽑아낸 유리섬유는 돌솜과 거의 비슷한 성질과 구조를 가지지만, 그 입자는 그보다 더 미세한 돌솜과는 달리 폐에 들어가도 건강에 큰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고 한 것 같았다.

그 입자가 모세혈관보다 크기 때문이었나, 그 이유를 예전에 들었던 적이 있지만 확실히 생각나진 않았다.

일단 상민은 유리섬유를 돌솜의 대체재로 잡고 그 산업에 집중적인 투자를 계획했다.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산업이지만 앞으로는 돌솜을 명확히 대체할 것이 분명했다.

개발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이후로도 그저 땅에서 파내면 되는 돌솜에 비해 원가가 훨씬 비싸겠지만.

그것은 자신이 정치적으로 해결할 문제였다.

금지하면 그만이니.

이렇게 되면, 무언가 자신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하여 한 산업 자체를 박살 내고 자신의 이윤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별로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다 너희들 잘되라고 하는 일이야.

이제부터 행할 정책은 거친 정책이니만큼 많은 이들이 반발할 것이다.

하지만, 상민의 영향력이 겨우 그 정도의 반항에 눈썹 하나 까닥할쏘냐.

그는 이미 암중에서조차 이 거대한 제국의 정치와 경제, 문화와 사회, 언론과 군부, 심지어 황실까지 떡집에서 갓 찧은 떡 주무르듯 주무를 수 있었다.

그동안 자주 오지로 여행을 떠나고, 휴가를 보내었지만 상민의 자산은 끊임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정치적으로도 마찬가지.

원역사의 18~19세기는 의회의 힘이 강했던 대영제국조차 군주들의 눈치를 봐야 했었다. 그리고 고려의 황실은 대영제국보다 훨씬 강했지.

그러나 그토록 힘이 센 황가는 한편 여전히 고독했고, 황제들은 여전히 자신의 조상에게 의지하길 원했다.

그리하여, 상민이 지금 작성하는 문서는 청원서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황제와 조정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거의 명령서와 같이 취급될 것이다.

반대 로비?

존재할 것이다.

그런 종류의 원외 활동을 막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만약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상민은 짓누르면 터져버릴 피라미만도 못한 자들에게 과연 로비 행위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를 손수 깨닫게 해줄 용의는 충분했다.

― 모든 주거지역 및 관청과 학교 등의 공공장소에서 돌솜 사용을 전면적으로 금한다.

― 산업현장에서의 사용은 금하지 않되, 돌솜을 다루는 자는 1분기에 적어도 10시간의 안전교육을 받아야 하며 접촉 시에 아래에 기록될 입가리개와 보호복을 입어야 한다.

― 이를 어길 시는 고용주와 고용인은 사건의 엄중함을 따져 징벌적 과징금에서부터 징역 및 노역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상민은 만년필의 뚜껑을 닫았다.

만년필 옆부분에는 고려글로 ‘명필’이라는 멋스러운 글자가 조그맣게 음각되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근래에 생산되는 이 만년필은, 매번 유성 먹에 필촉을 담가야만 했던 철필촉의 불편함을 철필촉 뒤에 먹통을 담으로써 해결한 획기적인 물건이었다.

모세관 현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품질 좋게 만드는 기술은 아직 상당히 어려운 축에 속해 엄연히 큰 사치품으로 분류될 만큼 한 자루의 가격이 상당히 비쌌지만, 서명해야 할 것들이 많은 상민은 만년필을 애용하고 있었다.

‘돌솜뿐만이 아니다.’

기존에 이미 은과 같은 광물들을 채취하며 납과 수은 등을 열심히 쓰고 있었지.

이와 같은 중금속들도 침묵의 살인자라 할 만큼 빠르게 그 영향력이 나오지 않는다.

비록 납과 수은은 상민이 과거에 미리 선제적 교육 조치를 해둔 덕에 고려의 노동자들은 주의하고 있었지만 앞으로 나올 것들도 미리 예방을 해 놓아야 했다.

‘카드뮴, 망간….’

이 중금속들이 과연 지금 발견은 되었는지, 혹은 이대로의 이름일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고려의 원소주기율표는 완성되지도 않았고 표시도 상당히 독특했다.

표음 자체야 당연히 고려글로 한다지만, 표의적으로 해석할 때는 한자 기반의 원소들도 있었으며, 유럽에서 건너온 것은 라틴어 기반의 원소들이 있었다.

에테르 같은 화합물도 표의 자체는 라틴어 기반으로 쓰였고 이는 고려에서는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애초에 처음부터 이런 원소나 화합물들을 발견할 때는 인체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쥐나 비슷한 동물들로 실험을 먼저 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자연에서 빛나는 물질이 발견될 경우, 괜스레 들고 날뛰지 말고 관아에 보고할 것.

그것을 작성한 뒤, 상민은 다시금 자신이 뱉어놓았지만 이제 화분 속으로 스며들었는지 잘 보이지 않는 가래침을 살폈다.

돌솜 따위가 자신을 해할 수 없다는 것은 방금 느꼈지만, 그조차도 방사능은 실험해 보고 싶진 않았다.

이 천방지축으로 돌아가는 고려라는 자식에 잔소리를 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유난히 염려스러운 몇 개의 주의사항을 더 적어놓은 상민은 그 이후 잠시지간 걱정을 놓았던 것 같다.

* * *

고려의 자본가들에게, 고려의 조정은 정말이지 밉상 그 자체였다.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은 그러려니 했다.

자본가들로서도 자신들이 조금만 아니꼽게 행동하면 ‘나 일 못 하겠수다!’ 하며 북려대륙 초원 어딘가로 가서 땅을 개간하려는 지금의 노동자들을 붙잡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대우를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초보 노동자들을 일을 시켜가며 숙련공으로 만들어 놓았더니 못 해 먹겠다고 나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선 숙련공에 대한 좋은 대우가 필요했다.

자본가들은 숙련공을 붙잡기 위해 좋은 임금은 물론이고, 각종 편의시설들마저 지어주어야 했다.

밥 든든히 나오는 깨끗한 식당이나 숙소 같은 것들은 비록 설치하는 비용은 꽤 들었지만 한번 세우면 관리만 하면 되었기에 장기적으로 보면 괜찮았다.

“그런데, 그것을 다 허물라굽쇼?”

자본가는 멍청히 관리에게 반문했다.

도대체가 이놈의 조정은 뭐 맨날 자본가들을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인 듯싶었다.

“돌솜에 대한 위해성 평가가 끝났소. 안전 수칙에 의해 입가리개를 착용하고, 노동하는 공간이 아닌 모든 주거공간이나 모임 공간에서의 돌솜은 완전히 제거되어야만 하오.”

“이… 무슨?”

자본가는 크게 당황해했다.

저걸 다 허물고 다시 지으라고?

그는 울며불며 관리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려대었으나, 부여잡은 바지가 정말로 내려가 버려 관리에게 의도치 않은 성추행적 모욕을 저지르게 되었으니 오히려 그 악질적인 죄목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되었다.

* * *

그러나 그의 경우에는 양반이었다.

고려는 맥동하는 사회 덕에 여러 가지 산업이 함께 발달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숙박산업을 꼽을 것이다.

개념 자체는 옛날 삼국시대에도 존재하긴 했지만 반도에서 역원(驛院)은 왕씨 고려, 그리고 그 이후의 원 간섭기를 지나며 훨씬 더 크게 발전했다.

몽골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신대륙에서의 역원의 개념은 비록 원 간섭기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지만 오히려 반도보다도 훨씬 더 빨리 변화했다.

철도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강이 없는 내륙지방의 물류 수송과 정보 전달은 순전히 말을 이용해야 했으니, 중앙 통제력이라면 환장하는 상민이 모세혈관마냥 촘촘한 도로와 역원제를 운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철도가 생긴 이후에는 이 역원은 훨씬 더 발전했다.

애초에 철도 ‘역’이라는 말이 역원에서 파생된 것이 아닌가.

반면 원(院)이라는 개념은 역과 따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역이 철도의 체계와 하나가 된 것과는 달리, 원은 그러한 역 옆에서 독립적인 숙박 시설로 바뀐 것.

사실 숙박 시설은 원 말고도 많았다.

주막과 여인숙, 여관, 민박 등이 있었던 것.

하지만 원은 이 모든 숙박 시설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고급스러웠고 함부로 칭할 수도 없었기에 으뜸으로 쳤다.

거대 객원(客院) 회사라 볼 수 있는 청명원과 제피르(Zéphyr)원, 이레니아(ηρεμία)원이니 하는 것들의 추정 자산치는 정말이지 대단했다.

객원 사업에서 대단한 능력을 가진 자본가 한 명을 꼽아보자면, 주육원이라는 객원 회사를 이끌고 있는 사업가 이충환이라는 자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충환은 조부로부터 큰 무역 회사를 물려받은 뒤, 주육원을 크게 번창시킨 사업가였다.

주육원은 유서 깊은 남려의 객원 회사인 청명원과 북려에서만큼은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는 제피르원에 뒤이어 가장 강성한 사세를 자랑하고 있었고.

그만큼 개인의 능력이 출중하여 세간 사람들에게 대단한 수완가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능력과 다르게 성품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호색함이야 당사자 간의 합의만 있다면 크게 비판받을 것은 아니었다.

일평생 공주와 성녀, 교황의 딸, 원주민 출신 여인 등등 말고도 여자들과 많이 관계했던 상민 또한 호색함으로 누굴 비판할 처지도 아니었고.

다만 충환은 사업적으로 직원들을 착취하고, 착취하면서도 제대로 된 봉급조차 주지 않는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뿐만이 아니라, 현재 재무부와 법무부에서는 그가 토지매입과 관련하여 해당 토지의 소유주에게 사기와 협박을 일삼으며, 국철의 노선을 계획하는 관리에게 불법적인 뇌물을 증여하고, 또한 장부를 조작했다는 의혹의 눈초리를 계속 보내고 있다 했다.

교묘한 수완을 발휘해 지금은 심증만 있지 물증은 없는 모양이다만.

하지만 그동안 교묘한 수완으로 이리저리 법망을 피해가며 제 살길을 찾았던 이 사업가조차도 이번에는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려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자칫하면 길거리로 나앉게 생겼다.

돌솜을 내부 단열재로 써서 건축한 모든 주거시설을 허물고 다시 지으라니.

소형 가정들은 몰라도, 대규모의 객원들은 아마 돌솜을 쓰지 않는 곳을 찾아보기가 오히려 더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값도 싸고 난방도 환상적이니까!

그래서 이충환은 발품을 팔아 다른 객원의 사장들을 만나러 다녔다.

등 뒤에서 경쟁업체에게 악의적인 소문을 뿌리고 온갖 협잡질을 다 했으면서도 충환은 양심의 가책 하나 없었다.

다른 회사의 사장들 또한 이러한 사태에 크게 당황하며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테니 조정에 읍소하러 가자는(혹은 ‘영향력’을 행사하자는) 자신의 주장에 동참할 가능성이 컸으니.

그러나 정작 경쟁 회사인 제피르원의 동래미 본사를 찾아간 그는, 그를 문전박대하는 덩치 큰 직원들을 뚫지조차 못했다.

“이보시오, 박 사장! 동업자끼리 이러기가 있소?”

허나 제피르원의 사장인 휴고 박은 난리를 치는 충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심지어 사무실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이와 같은 상황은 다른 회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충환은 그다음으로 테르샤로마로 향했다.

객원 회사 이레니아를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진주의 거대 물류―무역 회사인 아타나토스(αθάνατος)는 고려 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대 회사였기에 이곳의 여사장인 콘스탄티나 콤니니를 설득할 수만 있다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하지만 콘스탄티나는 충환을 자신의 저택에서 열린 만찬에 초대해 놓고 포도주 한 잔을 마시며 그를 은연중에 비웃을 뿐이었다.

프랑스 국왕마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미주 나파곡 산의 맛있는 포도주를 마시고 그림으로 그린 듯한 진주 미녀의 늘씬한 각선미를 같이 보고 있다면 만찬으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었겠지.

“내가 당신처럼 한 회사만을 이끄는 사람으로 보였나요?”

그러나 두 사람 간의 대화 내용은 한겨울 들판에 불어닥치는 삭풍마냥 쌀쌀맞기 그지없었다.

당대 고려에서 가장 큰 자산가 중 하나로 꼽히는 그녀는 객원 사업 하나로 구태여 조정과 마찰을 벌일 이유가 없어 보였다.

이번 일에 조정이 이례적으로 신경을 쓰고 있었으니, 그녀는 몸을 숙여 태풍을 피해 가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어차피 태풍 앞에서는 같은 처지인 나무들인 이상, 너도나도 피해를 입으니, 그녀는 바람이 잔잔해진 후 다른 나무들이 꺾인 곳에 자신의 뿌리를 더 내리면 되었으니까.

결국 콘스탄티나에게마저도 예의 바르게 모욕당한 충환은 자신에게 동조하는 작은(예전에 충환 스스로 그들을 일컬어 ‘쩌리급’이라 말한) 객원 회사 세 곳의 사장만을 설득할 수 있었다.

“이 정도는 어림도 없는데….”

집요한 충환은 포기하지 않았다.

순순히 정부의 지시를 따르며 손해를 감수할 멍청이들과 다르게 그는 세상을 ‘더욱 나은’ 곳으로 바꿀 의무가 있다고 믿었다.

그는 이번에는 돌솜 가공 회사와 그 이권에 관계된 사람들을 더욱 열심히 모았다.

산업 자체가 박살 날 위기에 처한 돌솜 가공, 수출 회사들의 자본가들은 객원 회사들보다는 훨씬 더 적극적으로 화답하니, 마침내 집결한 이익단체의 규모는 조정으로서도 마냥 무시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부풀어 오르게 된 것이다.

비록 콘스탄티나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충환은 그래도 고려의 백 대 부호 안에는 충분히 중위권 이상을 차지할 엄청난 자산가였고, 많은 금원을 투척한다면 관리들이란 것들은 자신의 입맛에 따라 행동할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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