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노동자들
북려.
진주.
― 데엥 데엥
멀리서 종이 울렸다.
평소보다 조금 늦은 것이, 수탉의 울음소리를 듣고 일어나야 했을 종지기가 오늘따라 늦잠을 잔 모양이다.
덕분인지 아닌지, 공장의 노동자들도 한 시간 더 늦게 일어나니 종지기는 공장주의 원망은 들을지언정, 노동자들의 원망은 듣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4인 1실.
표준적인 근로기준법을 지킨 노동자들의 침실은 2층 침대에 인원수만큼의 옷장이 들어가 있었다.
방의 면적은 가운데 바닥에 둘러앉아 놀음패를 할 수 있는 정도.
막 일어났다고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부스스한 모습으로 모인 노동자들은 제각기 세수를 하고는 아침 점호에 참석했다.
이윽고 노동자들의 조장이 연단에 올라가, 아침체조를 실시하자 노동자들은 지루하고 재미없고, 졸리기만 하지만 그래도 억지로 느릿느릿하게나마 몸을 움직여 체조 비스무리한 것을 실시했다.
대체 왜 하는 것인지, 그냥 이 시간에 더 자면 안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 법했지만, 저 유서 깊은 노동자 체조는 무려 태조 시기, 창양을 건축할 때에도 실시한 300년 묵은 관습이라 한다.
“자, 식사이동합시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가 들리고, 갑자기 잠에서 퍼뜩 깨어났는지 노동자들은 우르르 식당으로 달려갔다.
“겹빵이구만.”
머리숱이 많이 없는 노동자 한 명이 주철 식판을 집어 들고 목을 빼어 앞사람의 배식 광경을 바라보았다.
국을 담는 그릇이 없는 것을 미루어볼 때 짐작했을 법했지만, 새삼스럽게 살짝 아쉬운 기분이 드는 모양이다.
모름지기 고려인이라면 뜨끈한 국과 흰 쌀밥을 먹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으로는 식사시간, 그것도 아침에 빵식은 영 아니올시다였으니.
심지어 그 지긋지긋한 바닷가재(랍스터)나 붉은가재(Procambarus clarkii) 수유(버터)구이가 주 식재료로 나온다고 하더라도.
너무 자주 먹어서 물리긴 하지만 그래도 양념을 잘하고 수유구이의 느끼함을 잡아 줄 매운 김치와 곁들여 먹으면 맛은 있으니까.
“나는 괜찮은데. 싫으면 이리 주게.”
풍성한 머리를 꽁지머리로 묶은 노동자가 입을 열었다.
물론 맛이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배가 고프면 일반적인 식사마저도 진미로 바뀐다지만, 빵 두 개 사이에 돼지고기와 상추, 둥근파(양파) 등을 썰어 넣고 양념을 첨가한 고기겹빵은 사실 호불호가 거의 갈리지 않는 고려의 음식 중 하나였으니.
대체로 밀을 주식으로 삼는 북려사람들의 주식은 사실 거의 고기겹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사람아, 싫다는 소리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왜 이러나?”
“자네 표정을 보게, 그게 맛있어서 나오는 표정인가?”
“내 표정이 뭐 어쨌다고….”
잠시 투닥거린 둘은 이윽고 배식을 받은 뒤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이렇게 스스럼없이 굴 수 있는 것도 둘 사이가 친했기에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둘은 같은 고향, 즉 남려대륙 중부고원 출신이라는 동질감마저 있으니, 비록 알고 지낸 지는 일이 년 정도에 불과했지만 거의 죽마고우와 다름없게 되었다.
화산폭발로 고향과 그 근처를 떠난 중려대륙에 사는 타완틴수유―아타카마계 고려인들은 피치 못하게 고향을 등져야만 하는 고통을 겪었다.
후아이나푸티나의 재앙은 정말 악몽과도 같았고, 다시 한번 그들의 고향에서 대폭발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었으니 많은 이들이 수백 년 동안 살아온 자신들의 고향을 마침내 버리기로 한 것.
남려 내지 간의 이동 또한 철도 노선이 깔린 이후에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손쉬워졌으니 각 가정이 결정을 내리는 부담감을 크게 줄여주었다.
하지만 얄궂게도 국가적 단위에서 보면 이 고통은 다른 방면으로 해석이 가능했다.
이 많은 인구들이 도시와 공장으로 몰려들게 되니, 그동안 확고한 자영농 기풍에 전통적으로 인력난에 시달렸던 공장주들은 쌍수를 들었던 것.
덕분에 고려의 노동현장에서는 산맥의 옛 언어인 루나 시미의 잔존체가 다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꽁지머리 남자가 대머리 남자에게 입을 열었다.
“자네 아들은 적응을 잘하고 있는가?”
“그래. 테르샤로마의 분위기가 여타 다른 북려 연방주의 도읍과는 조금 다르다 하나 적응을 잘하고 있는 모양이야.”
대부분의 노동자 가족들은 미혼자가 아닌 이상 이 근방에 같이 살고 있었다.
다만, 이렇게 일이 많은 시기에는 대부분 공장주가 지은 숙소에서 자니 휴가가 아니라면 주말의 시작인 금요일 일과 후에나 볼 수 있었다.
“우리 아이도 그래야만 할 텐데.”
“자네 아들은 군인을 꿈꾸고 있다며?”
대머리 남자의 질문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까 미리미리 앙주에 보낼까 해.”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겠군.”
“그래도 열차가 있으니….”
“하하, 자네가 왜 그토록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이제야 알겠군.”
공교롭게도 이곳은 철로를 달리는 철마를 생산하는 공장, 대머리 사내가 꽁지머리 사내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 일과를 시작하러 가 보자고. 화요일이니 오늘은 시간이 영 늦게 가겠지만….”
둘은 식판을 정리하고 작업복으로 환복한 뒤, 작업장으로 걸어갔다.
다른 동료들과 함께 쓰는 공구들을 점검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빠른 속도로 진전되는 산업화는 노동자들의 도구에도 영향을 미쳐, 기계화된 표준가공법 또한 그 필요성이 많이 대두되었다.
언제까지 톱, 끌과 대패, 칼과 깎낫 등으로만 만들 수 있겠는가.
고려의 노동자들은 초과근무수당을 받고 있지만, 그보다 성과상여금을 훨씬 더 좋아했다.
그들은 스스로의 생산성을 진일보하기 위해 자체적인 발명을 해내었다.
압연기, 단조용 증기 망치, 절삭기(밀링 머신), 연삭 숫돌에서 진일보한 증기연삭기까지.
개개의 발명은 비록 대단했지만, 다른 이들의 눈에는 이 기계들의 처음 모습이 썩 괜찮아 좋아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증기기관 특유의 덩치, 석탄 소모, 열기, 매캐한 공기와 여러 가지 단점들.
이럴 바에 어느 나라처럼 사람을 갈아 쓰는 것이 더 좋아 보이기도 했으니까.
실제로 초창기의 증기기관 자체는 인력이 값싼 지역에서는 콧방귀를 뀔 만큼 효율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공작기계들이 개선에 개선을 거듭하게 되고, 증기기관마저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보하니, 그 누적치는 처음에는 관측하기 힘들 정도로 미미하더라도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 뒤를 바라보게 된다면, 후발주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생산성을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기계가 가진 위대함이 아니겠는가.
사람과는 다르게 발전사를 온전히 품을 수 있고, 그러므로 미래의 개체가 과거의 개체보다 확연하게 발전되었다 장담할 수 있는.
대머리 사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안전절차 시행한다. 천천히 세밀하게 점검해보자고… 증기망치!”
“이상 무!”
큰 망치 옆에서 이것저것 살펴보던 우락부락한 사내가 고함을 질렀다.
“수평절삭기!”
“이상 무!”
대머리 사내가 절차에 따라 질문하자 이곳저곳에서 대답이 튀어나왔다.
“…….”
길고 지루한 시간, 사실 아까부터 이미 와 있었긴 했지만 별말 하지 않고 대머리 사내의 안전점검절차를 확인하던 공장주가 마침내 점검절차가 끝나고 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눈치챘을 때 비로소 입을 열었다.
“노동자 여러분.”
아침부터 한바탕 일장연설을 하는 것이 아닐까 결이 다른 미묘한 불안감에 가득 찬 노동자들의 얼굴을 바라보던 공장주가 허탈하게 웃고는 마저 입을 놀렸다.
“우리 공장이 연초에 약속했던 열차 서른 량 생산 목표가 드디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 황립철도에 납품할 열차 다섯 량만 최대한 빨리 끝낸다면, 연말 성과상여금을 1할 더 드리도록 하지요.”
노동자들은 손뼉을 치고 휘파람을 불었다.
“다만, 이번에 제작할 황립열차는 평소보다도 품질 개선에 더욱 노력을 기해 주시오. 아시다시피 국철과 사철보다도 황철이 더욱 품질에 민감하니….”
“알겠습니다.”
맨 앞에 서 있던 대머리 사내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머리숱은 없어도 꼼꼼함은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잘 챙기니 공장주는 뒷말을 더 붙이진 않고 몸을 돌려 빠져나갔다.
‘잘되겠지.’
* * *
동아시아에서 명 황제가 미쳐서 조명대전을 일으키고, 유럽이 프랑스―오스트리아 전쟁과 그 곁가지 분쟁들로 실로 혼란하더라도 다른 대륙에 있는 고려인들은 이를 거의 체감하지 못했다.
이 기조는 화산 폭발의 여파를 수습한 뒤에도 유지되었다.
고려인들은 북원 황제의 목을 잘라 제사를 지내 그들의 오랜 숙원―과거사 해결―을 달성한 이후에는 남의 나라 사정엔 놀랍도록 별 관심이 없었다.
해적들을 공격하기 위해 파병된 해군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고 어디까지나 나라와 나라와의 싸움도 아니니 전시라고 부를 수도 없었으니까.
대신 고려는 그 와중에 철도에 미친 나라라는 소리가 허언이 아닐 만큼 전 국토에 철길을 놓기 시작했다.
개천 251년, 장성재의 기관차 발명 이후 경해선(창양 해문 노선)이 완공된 지도 이제 거진 백 년에 다다른 만큼 개천 351년(CE1626) 현재, 고려는 국철(국립 철도)과 황철(황립 철도) 말고도 사철(민간 철도)이 모두 경쟁하고 있었다.
영토는 지극히 광대했고, 그것을 다 국철로 까는 것은 너무나 비효율적인 선택임은 분명했다.
전 국가적 통합을 위해 사철이 가지 않을 오지로의 길은 국철이 주도하여 나아갔으며, 사철은 돈이 되는 길, 즉 인기가 많은 노선의 수요를 자연적으로 분담하여 나누게 되었다.
물론 국철의 만성적인 재정적자는 조정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사항이긴 했지만, 광대한 영역의 국가개발이라는 대명제 앞에서는 차라리 다른 곳에서 세수를 확보할지언정 북려와 남려 오지 곳곳으로 국철을 뻗어 나가는 것을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황철은 조금 미묘했다.
일단 사철과 성격은 비슷했지만, 이들은 압도적인 자본력으로 이미 주요한 교통의 요지는 전부 선점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거대 기업의 민간 기반시설 독점문제라고 지적하기에는 이 의미 모를 회사는 온전히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기보다는 황실의 인기(대중들에 의한)라는 두 번째 목적도 동시에 추구하다 보니 어딘가 어정쩡한 요금을 매기면서도 철도 노선의 품질을 꾸준하게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조정이 전쟁상황이나 기타 긴박한 상황이 생겼을 때, 민간 동원령을 내리더라도 꽤 얌전히 그 지시를 받아들일 기업이기도 했고.
게다가 황립회사는 또한 각종 실험적인 정책들을 시도했는데, 고급화 전략이나 철도 노선이 오가는 현지 지역의 투자 또한 연계하여 그야말로 복합적인 부를 창출하기 시작했다.
북려의 이동수단이라곤 기존까지 말과 수레가 전부였고, 이것들은 정말로 철도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따라서 기차역이 세워지는 곳의 가치는 증가할 수밖에 없지.
역이 세워질 지역을 제대로 개발할 자본과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부가가치의 많은 부분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덕분에 고려의 황실은 이미 황금에 푹 파묻혀 있었다.
하지만 황실철도의 실질적 주인은 따로 있었다.
거대한 제국 안에 작은 철도 왕국을 거느리고 있다고 평가받는 이 정체 모를 압도적인 자본가는 호사가들에 의해 ‘철도왕’이라는 명칭을 가지기도 했지만, ‘제국의 금고지기’라는 별칭 또한 가지고 있었다.
정작 상민은 눈덩이가 굴러가는 수준이 아니라 눈사태마냥 불어나는 자신의 부에도 별로 감흥이 없는 눈치였지만.
그는 이제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 된 자신의 자산도 잘 모르고 있었다.
은행 잔고?
고려 제일의 사은행 메디치 은행도 그의 것이다.
잔고를 어찌 측정하겠는가.
그러니 이 노괴를 움직이는 것은 금전도, 뭐도 아닌 열정일 것이다.
“역시 틀락스칼라를 설득하면, 퓨레페차도 동의할 수밖에 없겠지.”
“철도가 깔리지 않는 것은, 낙오를 의미하지 않겠습니까?”
드디어 중려 군소국들이 합의를 해내었다.
고려가 마침내 그들의 대지에 철도를 깔 수 있게 된 것.
말이 중려 군소국이지, 사실상 고려의 번국 수준이었던 이들 5개국은 그들의 옛 톨텍계나 치치멕계 언어 대신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고려어를 쓰고 있었다.
이제 고려의 인구도 더 이상 중려의 인구가 부담되지 않을 만큼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으니, 이제 이들 나라들은 고려의 노골적인, 즉 아예 번국 수준이 아니라 자치령으로 삼겠다는 야심 앞에 국가의 주권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야야 예전부터 허락을 했지요.”
그 밑은 그야말로 외교권과 군사권이 존재하지 않는 니카라오 자치령이고, 그보다 더 적은 인구가 사는 미쉬키트 자치령 정도만 있었다.
마침내 북려에서 파주로 가는 길이 열린 것.
“택주에서 틀락스칼라, 투투테펙과 마야, 미쉬키트와 니카라오, 파주를 연결하는 노선이라… 환칼리나 노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군.”
“대단한 광경일 겁니다.”
손으로 노선이 깔린 남북려 전도를 더듬어 내려가던 상민은 이윽고 한 부분에서 손길을 멈추었다.
“이곳이 문제인데….”
파주 아랫부분에 위치한 남파주열대습지(다리앤 갭).
철도가 생겨난 뒤부터, 상민은 밤마다 꿈을 꾸고 있었다.
남북려대륙을 하나의 철도 노선으로 묶는 것.
비록 니카라오 운하와 항만으로 인해 물류수송과 여객은 나쁘지 않게 오가고 있지만, 가끔 운하에 사고가 나거나 기타 여러 가지 상황(태풍 등)이 발생한다면 그것도 장담하기 힘들었다.
남부항로는 증기선이 나온 지금도 잘 쓰이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이 범고려대륙 종단 열차(Pan―Koreanica Railway)는 실로 그의 로망과도 같았다.
저 한주나 진주 북쪽의 곡암도 해안 부근부터 죽 선을 연결하여 북려와 중려를 지나고, 남려에 도착하여 동해안을 이은 뒤, 마침내 창양을 지나 남쪽의 남부항로 근처의 도시까지 이어버리는, 세계사에서 단연코 깨어지기 힘들 가장 긴 철도를 그들이 이었다고 생각해 보라.
어떠한 여인도 그만큼의 황홀경을 선사해 줄 수 없을 것이었고, 어떠한 익스트림 스포츠마저도 그만큼의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게 해주지 못할 것이다.
원역사에서의 팬 아메리칸 하이웨이마저도 21세기가 되도록 이 부분이 끊겨있었음을 감안해 볼 때면 그 공사의 험준함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상민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이 꿈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었다.
‘21세기의 미국은 충분히 해냈겠지. 그럴 필요가 없기에 하지 않았을 뿐이었고.’
미국은 충분히 다리앤 갭을 메울 수는 있었을 것이다.
남파주열대습지가 험하다 하나, 그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고 토목사업은 실로 발전했으며 모기를 통한 전염병도 미래에는 손쉽게 예방 가능하다.
다만 남미의 마약과 이민자, 카르텔과 범죄의 유입이 우려되어 굳이 거대한 돈을 쓰고 할 이유가 없었겠지.
하지만 연방주들과 남려를 이어야 하는 강력한 당위성을 가진 지금의 고려 제국은 이곳에 철도를 까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좋았다.
그 비용이 실로 엄청나더라도, 그 효용은 비용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테니까.
“이 사업은 니카라오 운하 개통보다도 압도적으로 힘들다. 일단 보류하자꾸나.”
“알겠습니다.”
하지만 상민은 의외로 빠르게 이 사업의 초기 계획도를 접어버렸다.
시간은 충분하니, 일단 다른 문제부터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