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익선(3)
사해의 국제경제동향 보고서를 본다면, 국가들을 여러 단위로 분류한 대목이 나온다.
시대적 한계로 국가들을 대체로 해역에 의해 구분 짓는 것이 가장 어울렸기에, 유럽의 나라들은 지중해권이니, 북해권이니, 발트해권이니, 흑해권이니 구분 지어졌고, 불운하게 바다로 나가지 못하는 나라들은 거리상 가장 가까운 해역으로 구분되었다.
유럽 패권의 흐름은 북해와 발트해보다는 여전히 지중해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이 완벽히 깨닫기도 전에 야욕은 좌절되었지만, 유럽의 진정한 성장세는 그들이 신대륙―고려 대륙으로 뻗어나가 그곳의 금과 은, 광물들을 가져오고, 흑인 노예를 통해 플랜테이션을 하며 엄청난 경제 호황을 불러일으키고 나서야 발휘되었지.
물론 에스파냐의 엄청난 인플레이션 같은 역효과가 있긴 했지만, 신대륙 사업은 지금 당장은 실보다 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후대에 갈수록 인재 유출, 병력 주둔, 기반시설 투자 및 피지배자의 민족주의 바람으로 식민지 유지비용이 증가하며 그 가치가 재고되는 순간이 오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유럽인들은 고려와의 조우 이후에는 다른 길을 선택해야 했다.
아직도 고려의 아르마다 인빈시블레의 위명이 깨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격차는 줄어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대동양 함대에게 두들겨 맞기 싫다면 그냥 얌전히 인근 무역이나 하면서 북유럽회사의 상인들이 자신들의 무역항에 기항하는 것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것이 최선의 수였다.
서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 또한 고려의 영향력이 여전하여 그들이 카디스와 마데이라, 제포 군도(카보베르데)를 막으면 수도꼭지를 잠그는 것마냥 언제든지 단물이 끊길 수 있었다.
반면 지중해의 나라들은 운이 몹시 좋은 편이었다.
그들은 가장 만만한 지역, 즉 북아프리카를 탐내며 그곳의 식민화에 성공했다.
튀니스, 알제, 트리폴리, 오랑.
그리고 그 너머의 내륙까지.
오스만은 기독교 세계의 공격을 막아내고 국체를 보존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더 이상 과거의 강대국이 아니었고, 심지어 신성로마제국의 지속적인 남하를 막아내기 위해서 프랑스와 외교적 동맹을 맺어야만 했다.
그것도 모자라 결국은 발칸반도의 옛 헬라스 땅을 다시금 기독교 세력에게 빼앗기니, 남은 것은 오로지 트라키아와 불가리아의 일부 땅으로 제한된 상황.
아무리 북아프리카의 에미르들이나 술탄들이 눈물 콧물을 짜며 콘스탄티니예에 가서 빈다 하더라도 뭘 할 수 있겠는가.
오스만은 지금 칼리프를 칭하며 메카와 메디나를 자신의 관할하에 두고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여겨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이 북아프리카로만 만족하지 못했다.
향신료를 고려에서 수입할 수 있을지라도 인도는 여전히 엄청나게 중요했다.
동남아시아도 마찬가지,
하지만 가는 길이 아프리카를 오가는 길과 같아, 험난한데다가 눈치까지 보니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니 수에즈 운하는 필연적이었던 것이고.
신성동맹의 후원으로 잔 바르디 알 가잘리가 몰락해가는 맘루크의 등 뒤에 비수를 꽂아 마침내 이집트와 중동의 패권국 중 하나를 무너뜨리자, 그전까지 운하의 꿈만 꾸던 유럽의 상황은 일사천리로 진전되었다.
잔 바르디 알 가잘리는 그의 이름을 딴 알 가잘리 왕조를 열었지만 왕권은 형편없었다.
오죽하면 가잘리 술탄국이나 그의 의도를 딴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대신 이집트라고 공공연하게 불렀으니까.
애초에 외세의 힘을 빌어 나라를 세운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맘루크 사람들은 맘루크 왕조의 마지막 혼란기가 정말 살기 힘들었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그렇다고 지금 기독교 무뢰배들이 총과 대포를 가지고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를 어슬렁거리는 것을 좋아하진 않았다.
어쨌든,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차라리 돈이라도 많이 벌자고 생각했던 이집트의 술탄들은 거절할 수 없는 신성동맹의 제안을 그냥 충실하게 이행하기로 했다.
이들은 아프리카에서 공수해 온 엄청난 숫자의 흑인 노예를 동원하고 값싼 북아프리카의 무슬림들, 이집트 현지인들을 고용하여 세계적인 규모의 국책사업을 펼쳐 이 긴 사막의 땅에 운하를 팠고, 드디어 니카라오 운하의 건립 이후 인류 역사상 두 번째로 중요한 운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고저 차가 없으니만큼 기술적 한계는 의외로 적었을지도 몰랐다.
사실 이러한 대규모 토목사업은 투자하는 금액과 예상되는 인명(혹은 노예) 손실도 중요했지만 과연 완공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확신이 먼저 있어야 했다.
그 확신은 바다 건너의 나라에서 얻을 수 있었고.
수에즈 운하가 개통된 이후 지중해는 북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번영하기 시작했다.
* * *
보라, 이렇게 해적과 명나라 문제에 대한 처분을 결정짓는 자리에서 이 지중해 국가들의 위세를.
“이탈리아는 포르투갈이 가진 적법한 해남도의 권리를 구매하였으니, 명의 황제는 마땅히 이를 존중하여 해남도 권역에 대한 권리를 아국에게 주어야 할 것입니다.”
사해의 보고서를 읽어본 사람들은 이탈리아의 이마에 이렇게 써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1급]
국가의 신용 상태와 채무, 산업화 정도와 그 잠재력을 다각도로 측정한 지표에서 유럽 국가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등급을 측정받은 이탈리아.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며 세속적이고, 교황과 가장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영향권에서 가장 먼저 벗어난 계몽군주정이며, 또한 로마와 피렌체, 밀라노에 거주하는 여러 위대한 학자들에 의해 르네상스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어 산업혁명의 제2주자가 된 보르자의 이탈리아는 명백히 이런 등급을 받을 만했다.
첫 번째 카디스 조약에서는 다소 소외되었던 그들이지만, 지금은 그 급이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 목소리에 큰 힘이 절로 느껴졌다.
“신성로마제국과 오스트리아는 포르투갈이 가진 마카오에 대한 권리를 구매하였으니, 명 황제에게 이를 요구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나3급의 말이 울려 퍼졌다.
본래 딱히 무역이 장점인 나라는 아니었지만, 수에즈 운하의 덕을 톡톡히 본 합스부르크의 신성로마제국은 오스만을 계속 압박해준 덕에 운하의 지분을 세 번째로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스를 다시금 기독교의 품으로 껴안은 이후에 그 잠재력이 더욱 강해져 있는 상황에다 자본력도 푸거 가문과의 연계로 더욱 단단해지니, 어울리지 않는 국명만을 제외한다면 엄연히 유럽의 초강대국 중 하나였다.
물론, 헝가리와 일리리움의 군소민족들 간의 갈등이 잘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는 여전히 거대한 걸림돌이었고 산업화 또한 서유럽의 나라들보다는 상당히 뒤처져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이탈리아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다.
나3급의 말이 끝나자 이번엔 그들과 같은 방에 있다는 것조차 싫다는 듯 가장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또 다른 나3급이 입을 열었다.
“프랑스 또한 헝공(홍콩)에 대한 권리를….”
프랑수아 1세 이후 큰 굴욕을 당했던 프랑스, 이 전통적인 유럽의 강국은 신성로마제국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승기를 잡고 있었고 전통적으로 신성로마제국령으로 여겨지던 알자스와 로렌 지방을 실질적으로 점령한 상태였다.
둘 사이의 전쟁은 아직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으니 조금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그다음에는 다른 나라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이들은 위 삼국처럼 포르투갈에게 ‘합법적인 권리’를 구매하지 못했던 자들, 그러나 모두 명나라가 누산타라 해적의 세력을 지원하고 끌어들여 유럽의 선량한 국가들에게 피해를 입혔으니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 우… 우리도 가질 것이오!
실제로 이런 소리가 들린 것은 아니었으나, 표정을 보아하니 다들 이와 비슷한 말이 입에서 당장이라도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고려의 특명전권대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되었다.’
조명전쟁이 끝난 지도 몇 년이 흘렀지만, 명은 과거의 위세를 전혀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만든 원정군의 절반만 있었더라도 양이들의 야욕을 좌절시키기에는 충분했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의 병력도 유지하기 벅차 보이는 명은 운남에서 대리(大理)국의 왕이라 자칭하며 거병한 양응룡조차도 제대로 토벌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이제 이 유럽인들이 사방에서 명의 잠재력을 계속 갉아먹으며 귀찮게 굴면 중앙의 통제력은 나약해질 것이고, 명은 무늬만 한 나라요, 여러 군벌들이 할거하는 후한 말의 형세가 될 것이다.
‘정보총국도 뭘 하고 있는 것 같았고….’
명에게 어떤 요구를 할지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이 끝난 이후, 잠시 쉬는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고려의 특명전권대사는 그 시간에조차 자꾸만 귀찮게 구는 유럽 대사들의 질문 공세를 받아야만 했다.
특히 프랑스 대사가 극성이었다.
“최 대사님, 아국의 사해신용등급평가가 왜 저 멍청한 마자르(헝가리를 뜻하나 신성로마제국의 멸칭) 촌놈들과 같은 등급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국이 저들보다는 훨씬 공장도 많은데 말이지요.”
최 대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걸 왜 본인에게 물으시오? 사해 회사는 엄연히 민간의 회사요. 우리 외무부나 재무부, 상무부의 공식 입장도 아니외다.”
“최 대사님, 우리의 그… 고려말로 뭐라 하지요? 인연? 그래, 인연이 얼마나 깊은데 그 정도는 알려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쭙잖은 말을 하며 달라붙는 그를 밀어낸 고려 대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없소. 하지만… 하지만 말이지, 귀국에 돌아가면 귀국의 농부들이나 공장 노동자들의 얼굴을 한번 천천히 좀 보시오. 깨닫는 바가 있을 게요.”
프랑스 대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갸웃거렸다.
“아국의 신민들은 근면성실하고 생산력이 좋습니다.”
최 대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설명하기를 포기했다.
이 유럽인들은 기독교 정신이니 뭐니 떠들면서도, 가끔은 놀랄 정도로 잔혹하곤 했다.
“…그만합시다.”
* * *
고려는 증기기관의 개발과 산업화 이후, 분업화와 여러 가지 체계(이는 물질뿐만 아니라 정책과 같은 비물질을 포괄했다.)의 개선을 선도하여 그 생산력을 막대하게 끌어올렸고 몇십 년간 전 세계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졌다.
하지만 영원히 꿀을 혼자만 빨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후, 유럽 또한 산업혁명을 어찌어찌 따라왔다.
이곳은 오히려 동양보다도 계몽주의가 전파된 지 오래되었던 데다가 개신교 가톨릭 전쟁이 종결되며 르네상스가 지중해 전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심지어 앞서서 나아가는 자의 사례도 있으니 그럴 역량이 충분히 있는 대륙이었으니까.
따라서 고려의 독점적 지위는 깨지게 되었지만 여전히 기술력의 격차나 운영방식(노하우) 등은 존재했기에 고려는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
그렇기에 유럽은 자신들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여러 가지 원가절감의 방식을 실행해야 했다.
이들이 제일 먼저 뭘 하겠는가?
노동자를 착취해야지.
산업시대에서 노동자는 핵심적인 부품이다.
증기기관과 새로운 기계들은 그 자체만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의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도구라 봐야 했다.
공장을 돌리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으로 많은 수의 노동자들을 써야 했고, 자본가가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품질 개선이나 효율성 증대 말고 노동자들의 대우를 열악하게 하는 편이 당연스럽게도 효율적이었다.
오히려 유럽인들은 고려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멍청한 노동자들을 왜 그리 알뜰히 살피는지 알다가도 모를 나라다.”
고려에서는 공장의 기계에 안전적 결함이 있어 사고가 일어나면 조정의 감독관이 득달같이 달려왔고 곧이어 이를 개선하라는 행정명령이 내려졌다.
이런 명령을 받은 공장은 개선된 부품으로 교체하기 위해서 강제로 며칠이고 멈추어야 했고.
공장주는 노동자들의 숙소를 신경 써야 할 의무가 있었으며, 만약 일을 몇 시간 이상으로 시켜야만 한다면 기준치 이상의 영양이 들어간 식사 또한 제공해야만 했다.
고려에서는 여전히 한 주가 5일이니, 매주 토요일은 무조건 쉬어야 했으며 이를 피치 못하게 어겨야 할 상황이면 주중의 임금보다 1.5배의 임금을 더 주어야 했다.
또한 일정 나이 이하의 소년 소녀들을 근로시키는 것은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었으며 적발 시에는 놀랍게도 최대 교수형까지 언도받을 수 있었다.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당대의 유럽인들은 정말 생각도 못 하는 일들이 몇 번이고 일어나는 곳이 이 고려란 나라였다.
“고려인들은 나태하고 배가 부른 것이다.”
“반면 유럽인들은 어찌나 근면성실한지!”
물론, 고려는 고려만의 입장이 있었다.
어차피 땅이 한참을 남아도는 나라, 인력은 폭발적인 증가세에 있더라도 여전히 귀했고, 노예는 완벽하게 금지되어 있으니, 공장주들은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그나마 처음에는 조선에서 넘어오는 사람들을 부려 먹었지만, 이런 사람들도 한두 해가 지나면 완전히 고려인이 다 되어버리니.
상민과 황가 또한 이를 상당히 관심 있게 보았다.
제아무리 자본가들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더라도 민심의 동향을 무시해서는 안 되었다.
― 황실을 지지하는 가장 큰 세력이 전통적인 향촌의 농민이듯, 노동자 또한 그래야만 한다. 적어도 적으로 돌리지는 말거라.
상민은 공산주의를 혐오했지만, 공산주의가 나온 배경 자체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아직은 세계의 산업혁명이 그 정도까지 도달하지 않았지만 지금부터라도 토양은 제대로 다져놓아야 했다.
조금의 이윤과 가격경쟁력을 더 추구하는 것?
솔직한 말로 필요 없었다.
이미 눈덩이는 충분히 커졌고, 앞으로도 더 커질 테니.
반면 위정자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면, 고추장보다 더욱 매운 빨간 맛을 보게 될 것이다.
빨간 맛이 아니더라도, 광장의 단두대를 보게 될지도 몰랐고.
돌아서 가야 할 때는 돌아서 가야 한다.
실제로 상민이 소유하거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 수많은 회사들은 제각기 앞장서서 모범적인 근로환경을 조성하고 있었으니 이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국가적 기풍이 되는 것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작가의 말]
사해신용등급평가는 무디스와 S&P를 짬뽕한 평가와 비슷할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은 시대적인 이유로 그 단계 간의 간극이 별로 차이가 안 날지도요.
그리고 애초에 산업화나 금융, 그리고 정치체제가 일정부분 자리 잡지 않으면 저런 등급조차 매길 수 없으니 아무리 낮은 등급을 받더라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겠죠.
추석은 쉽니다.
제가 모자란 탓에 비축분이 없었네요…….
추석이 끝나면 추석 동안 쓴 분량을 통해 연참을 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코로나 조심하시고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