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수도
위대한 승리였다.
과거 조선이 세워지기 전에 일어났던 살수와 귀주, 조선이 세워진 뒤 일어났던 심수대첩과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심수대첩과 동래대첩은 솔직히 말해 상국 고려의 업적이 라 생각하는 자들이 대다수였다.
이번에는 비록 조선군의 화기가 대부분 상국에게서 수입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지원받은 병력 자체는 사관 백여 명에 지나지 않았으니, 이 현주대첩(顯州大捷)은 이성계가 이 땅에 새로운 나라를 만든 이후 조선에 의해 온전히 만들어진 유례가 없는 대승리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명군이 현주와 요하 부근의 전장, 그리고 영원성으로의 후퇴 과정에서 얼마나 죽었는지는 솔직히 집계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엄청난 수의 시신들이 사방의 언덕과 들판에서 썩어가고 있었으니까.
억지로라도 예측을 해 본다면 아마 사십이만의 적병들 중 절반 이상이 죽었을 것이다.
죽은 자가 그만큼이니, 나머지 절반 중 실종과 부상자를 포함하여 다시금 전투에 투입할 만큼 멀쩡한 명군은 아마 퇴각에 성공한 이들의 절반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명군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다.
제아무리 조악한 총기와 화포를 가지고 있더라도 동아시아에 화약의 시대가 온 뒤 규모 면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육군을 가진 나라였다.
만약 지금의 명과 과거의 북원이 다시금 전쟁을 한다면, 명은 아마 열 번 싸우면 아홉 번은 승리할 수 있었을 테니.
그리하여 이번 승리는 현격한 지휘관의 차이가 더욱 두드러졌다.
웅정필은 명백한 양장(良將)이다.
혹은 양장 이상일지도 몰랐다.
그것은 명의 조정보다도, 오히려 조선의 장수들이 피부로 더욱 느끼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정석적이며, 자신이 가진 장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명장.
실제로 조선군은 이윤신이 오기 전까지 분전하고 있었지만 압도적인 덩치 차이로 수세에 몰려 있었으니까.
현주대첩 또한 처음에는 이휼을 포함한 조정의 많은 신료들이 회의적으로 보았을 만큼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었다.
그러니 한 번의 찬란한 대회전을 통해 그 상황을 반전시킨 것은 역사서에 꼼꼼히 기록되어 후세에 두고두고 읽힐 것이다.
“원수께서는 신장(神將)이요, 국사무쌍(國士無雙)이십니다.”
“바다와 육지에서 모두 현격한 열세의 입장에서 더없이 찬란한 승리를 거두셨으니 실로 그렇습니다.”
“전한삼걸(前漢三杰, 소하, 장량, 한신)을 원수에 비하겠습니까? 촉한의 무향후(武鄕侯, 제갈량)를 원수께 비하겠습니까?”
정작 이윤신은 그런 말들을 대승으로 인해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의 찬사가 아니겠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이면은 아버지를 칭송하는 그 말에 실로 동의했다.
웅정필이 명장이라면, 이윤신은 하늘이 내린 장수가 아니겠는가.
비단 그의 정석적이며, 실로 완벽한 전술적 능력이 가장 먼저 찬탄받겠지만 이윤신은 전술이라는 틀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평소의 부대 관리, 즉 휘하 지휘관에 대한 교육과 알맞은 병사훈련은 역대의 전쟁사에서 일반적으로 과소평가되고 있는 사항이었지만 위대한 승리 뒤에는 일상에서의 엄격함을 빼놓을 수 없다.
부대 관리 이후에는 알맞은 보급과 군 편제가 필요했고 지휘관은 전쟁터와 기후에 대한 파악도 소홀히 하면 안 되었다.
마침내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지휘관 스스로와 그의 부대가 가진 모든 잠재력을 쏟아부을 수 있기 위해서.
같이 전투를 치른 제장들과 병사들, 심지어 증원을 왔던 상국의 무관들과 한명련과 이저혁을 비롯한 옥저의 장수들 또한 모두 극도로 고무되어 윤신을 경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에 대한 찬사를 즐기기보다는 전사한 아군들의 시신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곱씹는 사람이었다.
“편히 쉬시오.”
긴 침묵 이후, 전투 도중 큰 상처를 입어 전사했음에도 두 눈을 감고 평온한 미소를 띠고 있는 송희립의 두 손에 그가 생전에 쓰던 환도를 쥐여 준 윤신이 그를 염하고 후방으로 돌려보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하라 명령했다.
어차피 웅정필의 마지막 저항으로 옥저 기병대의 추격이 저지된 이상 이틀 동안은 아군의 장례를 치르고 혈전으로 지친 군세를 가다듬는 것이 맞았다.
이후 이윤신은 요서회랑을 공격해 서진했다.
금주는 버려져 있었고, 그 밑의 영원성은 웅정필의 죽음 이후 어수선하게 있다가 이윤신의 진격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다 성을 버리고 퇴각하니 이미 명과 조선은 또다시 지긋지긋한 산해관만을 사이에 남겨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 * *
명은 충격적인 대패를 겪어 황제와 조정이 난리가 났었다.
분에 못 이겨 투신한 웅정필의 시신을 가져오게 한 주익상은 그 시신의 사지를 찢고 연경의 정문에 그 목을 내달아 고금에 유례없는 졸장이라 써 붙여 화를 달랬다.
일부 신료들은 웅정필이 아니었다면 그나마 산해관에 주둔하여 방어하고 있는 십이만의 병사들 중 절반 이상은 살아서 돌아오지도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아무도 그런 말을 꺼내어 짐승 같은 황제의 분노를 사고 싶은 생각은 없는 듯했다.
주익상은 다시금 군세를 모았다.
“한 번의 패배로 대명이 흔들릴까 보냐.”
남병들과 추가적인 징집을 하니, 명은 금세 십만 이상의 병력이 왕화정에게 추가로 배속되었다.
그러나 연횡국의 위기는 명만 겪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 * *
귀청을 찢는 대포 소리, 비명 소리와 신음 소리가 난무했다.
― 콰과광
“으아악!”
“살려줘!”
목재가 비산하고 화염이 폭발했다.
한때 인간이었을 고기 조각들이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제아무리 포탄이라 할지언정 이런 광경을 낼 수는 없다.
정말로 인세의 지옥과도 같은 광경을.
원형탄은 단순한 쇳덩어리에 불과했으니 이런 끔찍한 광경을 초래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도쿄(東京)는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남북조로 갈라진 이후, 북왜는 북왜왕의 거처를 격전지 근방인 교토에서 에도로 이전했었다.
아시카가 막부의 행정 수도도 그 후로 줄곧 에도였는데 이는 아시카가의 치세를 끝낸 오다 노부나가 그리고 그 후계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치세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남조가 백제로 국명을 바꾸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면서 두 국가 사이는 정말 이제 더 이상 악화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으로 치달았으니 교토는 왜의 중심부에 존재하고 있고 과거의 소중한 고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날의 명성을 찾지 못했었던 것이다.
반면 에도는 엄청나게 발전했다.
처음 천도할 때 단순한 어촌마을이었던 이곳은 아시카가가 휘하의 다이묘들에게 천하보청(天下普請, 노동력 분담 부과)을 명령하여 대대적으로 기틀을 다지고, 자그마치 이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그야말로 상전벽해라는 사자성어가 실로 어울리는 도시가 되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북왜왕에게 이곳의 이름을 다시금 정해달라는 주청을 드린 이후, 에도는 공식적으로 새로운 이름인 도쿄라 칭해졌으며 그전까지의 명목상 수도인 교토 대신 북왜의 수도로 인정받게 되었다.
교토와는 달리 바다에 접한 도쿄는 항구의 이점을 톡톡히 누리고 있었지만 그만큼 바다에서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북왜의 막부 또한 알고 있었다.
정치 지리상으로 고립된 북왜였지만 그들 또한 기술력이 뛰어난 조선과 옥저, 백제와 명만큼은 아니더라도 총포와 대포의 유용함을 서서히 깨닫고 있는 상황.
수도는 꽤나 삼엄하게 방비를 하고 있었다.
곳곳에는 해안포와 포대들이 있어 적선의 접근을 거부했고, 그 안에도 많은 수의 함선들이 있어 함부로 이곳을 공격하려 드는 자들이 있으면 큰 곤욕을 치를 것이었다.
일반적인 적들이라면.
이시다 미츠나리는 히데요리의 신뢰를 받고 있지만, 군재는 썩 훌륭하지 못하다 평가받고 있었기에 백제를 공격하는 계획에서 히데요시의 장수들 중 이름을 떨치던 사나다 노부시게와 고토 모토츠구 등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후 그대로 도쿄에 남아 있었다.
이시다 미츠나리에게도 마냥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죽어도 말 못 하는 비밀이었지만, 히데요리의 모친이자 섭정을 보고 있는 차차와 그는 서로 은밀한 관계였다.
아직 서른 중반, 본래의 미모가 나이에 시들기 전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농염한 미부인인 차차는 가진 권력도 북왜의 으뜸이었기에 수많은 남성들의 연정을 받고 있었다.
어차피 히데요시는 죽은 마당, 차차 또한 자신의 미모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가신단들을 통솔했다.
히데요시의 아내는 그녀만이 아니었고 아들을 낳지 못했지만 엄연히 정실부인인 네네(寧寧)가 존재하는 상황.
네네는 폐경이 될 때까지 아들을 낳지 못해 후대의 권력을 반쯤 체념하고 있었고 일찌감치 후계에 대한 어떠한 욕심이 없다는 의사를 보였기에 두 여인의 사이는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가신단들은 가끔 정치적으로 네네를 이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같은 오우미 지방 출신의 하급 무사 출신인 이시다 미츠나리는 그 근본 세력이 한미한데다가 동향이라는 소속감도 있어 차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었다.
외모도 나쁘지 않아 서로 간의 신뢰는 다다미에 깔린 이불 위에서도 발휘되고는 했었다.
격렬한 정사 끝에 잠든 차차를 뒤로하고 옷가지를 정돈하여 도쿄성(에도성)의 혼마루를 빠져나온 이시다 미츠나리는 멀리서 포성 비슷한 소리를 들어 황급히 천수각을 올랐다.
들창을 열어 밖을 바라보니, 도쿄의 항구는 사방이 불바다였다.
“이… 이게 무슨?”
― 쿵
다시금 은은히 들리는 포성.
참혹한 광경에 더 부서질 것이 있었는지 목조건물이 산산이 비산했다.
“황도를 수비하는 병력은 대체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가!”
그러나 미츠나리가 멀리를 보니, 포대가 있어야 할 곳은 이미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가슴이 쿵 떨어져 내렸다.
이미 백제 정벌군은 서쪽으로 향한 이상, 도쿄는 텅 빈 것과 다름이 없었다.
사실 그래도 되었다. 육로로 오지는 못할 것이고, 해안에 설치된 대포들은 제아무리 백제의 함대라도 섣불리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니 북왜의 함대는 오히려 공세에 이용되기 위해 도쿄의 군항에서 출진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은 밤이라 깃발이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고려의 함대였다.
‘제국이 휘청거리고 있다 했건만, 그 드넓은 바다를 이렇게 빨리 건너왔는가?’
사실 그러한 물음도 있긴 했지만.
‘그리고 그 많은 포대들을 박살 내는 저 함대는 대체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미츠나리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가 피 맛을 본 뒤 정신을 차리며 사방의 경비병들에게 알렸다.
“주군과 도노를 깨워라! 비상사태니 고쿄(황거, 북왜왕의 거처)에도 연락을 하여 덴노 또한 서둘러 대피하시라 전하….”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 도쿄성의 바로 앞에 있는 궁전, 화려하지만 방어시설이 전무한 덴노의 거처, 고쿄가 불타올랐다.
“오… 이런.”
미츠나리는 멍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봐야만 했다.
* * *
철갑함 건조계획의 첫 단계 성공을 의미하는 결과물은 생각보다 빠르게 완성되었다.
사실, 첫 단계이니만큼 함선의 설계구조가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은 아니었다.
충분한 산업력이 있다면 예전의 범선 구조에서 크게 진보되지 않은 첫 단계 철갑함 정도는 금방 만들어낼 수 있었다.
선철이야 충분했고.
어차피 황립조선소의 장인들도 이 영광함이 건조를 시작하기 전까지 대체로 일거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가용한 노동력도 충분했다.
그래서 건조된 첫 번째 철갑전함 영광은 외부로 볼 때는 당대 가급 전열함의 설계에서 단지 철제 장갑만을 덧씌운 형태였다.
물론 철제 장갑을 단지라 표현할 수는 없다.
기존의 두꺼운 목재 장갑 위에 일반 성인 남성의 손바닥 길이만큼의 철제 장갑을 다시금 덧씌운 이 철갑함의 끔찍한 방호력은 전투 시에 적에게 절망감을 선사해 줄 것이다.
내부적인 개선 또한 있었다.
기존의 돛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적용된 증기기관이 탑재되어 있었으니 전투와 비전투 시의 기동력 모두 크게 증가했다.
게다가 이 증기기관의 동력부는 외부의 수차가 아닌 물밑에서의 소용돌이 추진기를 처음으로 채택했으니 시행착오와 단점이 아직까지 지적받고 있더라도 실로 기념비적인 함선임은 틀림없었다.
― 터엉
조잡한 북왜의 해안포는 무시무시한 함선에 정말 말 그대로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도탄되었다.
선체에 맞은 포탄이 적선에게 피해를 입히기는커녕 그 반동으로 요란하게 튀어 오르는 광경은 북왜인들에게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으며, 실로 공포스러웠을 것이다.
“으아아! 요괴함선이다!”
“모두 도망쳐!”
집중사격 때문에 돛대와 삭구들은 많은 피해를 입긴 했지만 그래도 이 육중한 덩치는 멀쩡한 증기기관을 통해 꿋꿋하게 전진하여 사방에 포탄을 퍼부었다.
포탄도 일반적인 포탄이 아니었다.
이번에 새롭게 만들어진 신식 강선 대포는 안정성을 한층 더 끌어 올린 작렬탄을 쏘아 보냈고 조준점이 일치되는 순간, 단 한 차례의 일제사격으로 포대 하나를 완전히 침묵시켰다.
“이거 영, 전황이 너무 일방적이라 방호력을 실험할 기회조차 없군요.”
“포대의 수에 비해, 북왜인들 포수들의 숙련도가 떨어지는 것 같아 보입니다.”
숙련된 정예는 아마도 백제와의 전쟁에 나갔을 것이다.
그렇기에 고려는 이와미를 지키러 빙 돌아가는 것 대신, 그냥 단순하게 적의 수도를 박살 내기로 결정했다.
먼저 집어넣은 영광함이 홀로 사방의 포격에 버티고, 오히려 포대를 박살 내는 광경을 손가락만 빨며 부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수십 척의 전열함과 순양함들은 기록관이 그들의 ‘전투병기 실험 기록’을 끝냈다고 알리자 앞다투어 도쿄만으로 진입했다.
본래 해안포는 군함들의 전통적인 경계 대상이었지만 이 정도로 무기가 현격하게 차이 난다면 의미가 없어지곤 한다.
북왜의 상업지이자 군항이라는 요코스카를 침묵시킨 고려국 태평양 제2전대는 이번엔 도쿄만 앞바다에서 단종진을 펼친 뒤 제각기 대포를 실험했다.
“자, 저곳에 쏴 보라고.”
“괜찮겠습니까?”
“그들의 왜왕과 정이대장군만 멀쩡하면 되니 에도성만 부수지 않으면 상관없다. 포격을 가하라.”
설마 북왜왕의 거처가 에도성이 아니라 다른 곳은 아니겠지?
아무리 명목상이라지만, 그들의 왕이 가장 높고 견고한 건물에 없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장교는 고개를 흔들었다.
장장 두 시간이 넘도록, 고려는 포격에 몰두했다.
새로운 대포의 포각 계산과 포탄의 범위를 확인해 가며.
사실 전투라기보다는 아마 훈련의 일종이라 보고 있는 자들도 많을 것이다.
신형 대포의 사거리가 비약적으로 상승했으니, 터져 나가는 왜인들의 시신을 보지 못하는 것도 심리적으로 꽤 괜찮은 일일지도 몰랐다.
고려의 약점 아닌 약점이라면, 전쟁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꼽을 수 있겠다.
그래도 과거엔 가끔 유럽과 아시아에서 격전을 벌이긴 했지만, 시간은 그 이후에도 꾸준히 흘렀고 그런 고병들은 마침내 모두 전역하여 늙어 죽은 지 오래였다.
거기에 고려는 지리상으로 최근 수십 년간은 제대로 된 싸움이랄 것도 일어나지 않았던 나라.
장병들을 실전 상황 속에서 훈련시킬 이런 소중한 기회를 놓칠 수야 없었다.
[작가의 말]
실제로 사르후 전투 이후에도 명은 다시금 대군을 끌어모으긴 했습니다.
다만, 정말로
나라가 흔들릴까보냐? = 흔들림.
그렇게 박박 긁어모으면 제대로 된 군대 운용이 가능하냐? = 불가능함.
그럼 멸망하는 거 아니냐? = 멸망함.
이렇게 되긴 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