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302화 (302/653)

현주성(2)

갑진년 8월 6일 오전 6시 49분.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기 시작하는 시각.

묘시나 진시 같은 전통적인 조선의 시간 대신, 군의 수뇌부들은 전부 고려의 시간대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서로에게 지급된 회중시계의 시간을 정밀하게, 실로 1분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마냥 조정한 군 지휘관들은 제각기 경례를 올리고는 말을 타고 현주성 바깥 자신들의 작전지역으로 향했다.

조선군은 상국의 연대 편제를 공유하고 있었다.

완성된 총병의 진형을 갖추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인원수를 가진 부대 편제는 여전히 연대였다.

다만 이윤신은 제대의 효율성과 명령 전달의 효율성, 그리고 믿음직한 현장 지휘관의 통제력을 모두 고려해야만 했다.

많은 전투를 해 온 상국조차 경험해 본 적 없는 규모의 전투(야만스런 아즈텍인들이 아닌 총병들 간의 전투를 말한다).

실로 유례없이 거대한 군세가 회전을 벌이는 순간이니 전선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길어 말을 타고 위아래나 좌우를 모두 살펴 명령을 전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따라서 일정 규모 이상의 병력을 다스리는 현장 지휘관의 판단이 몹시 중요했으니, 이윤신이 믿을만한 지휘관들에게 여러 연대를 뭉쳐 만든 새로운 편제의 통솔권을 나누어 준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윤신은 이를 사단(師團)이라 불렀다.

황진과 안위, 송희립 등의 지휘관과 부상에서 복귀한 정발, 우치적, 김시민 등이 다시금 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총병의 사단은 모두 일곱 개로, 사단의 임무에 따라 다르지만 이만여 명의 군세를 거느렸다.

사단에는 모두 상국 적포군 사관들이 지원을 나갔다.

윤신은 남은 병사들로 하여금 예비대를 편성하여 언제든지 주요한 전장에 투입할 수 있게 하였다.

* * *

오전 7시 22분.

명군은 어제 오후 대릉하를 건넜다.

사실 도하를 하는 사이 공세를 취하는 방법도 생각할 법했다.

허나 도하지점과 시기의 선택은 전통적으로 공격자에게 달려있었으니 방어자의 입장에서는 확신을 가지고 기다리기 힘들었다.

이윤신은 적의 숫자가 극도로 우위에 있고, 제아무리 장마가 왔다 하더라도 대릉하의 너비가 여전히 적의 도하를 저지하기에는 좁은 편에 속한다 판단했다.

그는 적에게 불리한 전투조건에서 싸우는 것보다 아군에게 가장 최적의 전투조건에서 싸우는 것을 선호하였으니 전열을 풀고 나아가 싸우기보다는 조선군의 진열을 더욱 가다듬는 것에 신경을 쓰는 것이 당연했다.

과연 명은 그 숫자를 활용해 후방에서 준비된 여러 가지 기구들로 다양한 지점에서 동시에 도하를 실시했다.

매복을 하였다면, 잠시간의 지리적 이점을 취할 수 있었겠지만 반대로 역으로 포위될 수도 있었겠지.

그리고는 이내 엄청난 숫자를 자랑하듯 사방에서 의무려산 산맥 남쪽의 평야로 몰려들어 왔다.

서로의 야습을 대비하던 양측은 다음 날 아침에서야 비로소 전투 준비를 시작했다.

의례적인 사신을 보내 항복을 권유하는 절차를 틈타, 이윤신은 총지휘부를 의무려산의 남쪽 줄기 끝자락에 세웠다.

“남동쪽 요택(요하의 늪지대)으로는 향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면이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고했다.

“역사의 교훈이라는 게지.”

이윤신은 적당한 예비대 연대 하나를 요택의 지대에 배치하여 행여나 요택을 우회하여 올 자들을 섬멸하거나 최소한 안배가 드러나지 않도록 지연시킬 수 있게 마련해두라 명을 내리고는 그 스스로도 쌍안경을 꺼내 적들을 다시금 살폈다.

“적병이 얇고 긴 대형으로 회전하고 있습니다.”

명군의 기동은 특이하였는데, 당장 전투를 행하기보다는 사방으로 넓게 군사들을 퍼트리려는 속셈이 가득해 보였다.

“전장을 넓게 쓰려는 모양이다. 수적 우위를 통해 아군을 포위 섬멸할 생각이겠지.”

이면이 서둘러 말했다.

“어떻게 하오리까?”

“면아, 조급해하지 말아라.”

총명하지만 아직 젊은 아들의 초조함을 느꼈는지 이윤신이 나직하게 말했다.

“마흔 명이 열다섯 명을 포위하긴 쉽다. 허나 사십만 명이 십오만 명을 포위하긴 어렵다.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한정된 전장의 환경 탓이라 생각이 드옵니다만, 정확한 이유는 바로 떠올리지는 못하겠습니다.”

“병기의 사거리는 일정하다. 허나 포위하는 제대와 포위당하는 제대가 모두 커진다면 병기의 획기적인 개선 없이는 보병대의 포위 전열은 한계가 있다. 이는 큰 원과 작은 원의 반지름이 항상 총의 사거리라는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이윤신은 쌍안경을 든 채로 선두를 노려보았다.

허나 이렇게 말을 하더라도 병력의 우세는 여전히 명백한 상황. 윤신 또한 넓어지는 전장에 대한 대비를 해 놓아야 했다.

‘전열을 얇게 유도할 터. 허나 다른 것은 눈속임일 뿐, 명의 고병들이 어디에 위치하느냐가 전장의 핵심이다.’

한 번의 결정적인 선택.

윤신은 웅정필의 그 결단이 어떻게 작용하느냐가 전투의 승패를 가를 것이라 생각했다.

“전장의 선택권은 공세 측이 가지고 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필요한 제대의 움직임은 적 진형의 최종 확인 후 총사령부에서 개별적으로 전달할 것이니, 지휘관들에게 작계 위치를 사수하라 전하라.”

“예.”

다행인 것은, 명 황제의 뜻이 전투에 있었지 후퇴에 있지 않다는 것.

웅정필이 아무리 이리저리 기동을 해 보아도 결국에는 이 지역을 돌파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는 바가 없었다.

좌익은 대릉하의 지류를 따라 서쪽 평야로, 우익은 의무려산의 산세가 느껴지지 않는 동쪽 평야로 이리저리 병력을 늘려대던 명군이 마침내 기동을 그만두고는 선형진을 꾸렸다.

북서쪽을 따라 산줄기를 넘어 현주에 도달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웅정필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산악지대의 돌파는 여전히 위험천만한 일이었으며 너무나 불리한 지형 조건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의무려산을 넘지 않으려고 더 북쪽으로 우회한다면, 조선이 대놓고 명군 후방의 보급선을 자유롭게 유린할 수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명군은 이보다 서쪽으로 나아가기는 꺼려했다.

그러나 동쪽 또한 한계가 있었다.

장마철에 불어난 요택은 군대의 운용을 조금이라도 아는 자라면 발을 디디고 싶어 하지 않을 만큼 끔찍한 곳으로 변해있었다.

늪지대와 땅,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조선군은 기다리고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조선이 이 자리를 비울 수 있는 것은 또 아니었다.

윤신이 자신의 주군에게 고한 대전략의 성공을 위해서는 현주성은 무조건적으로 사수해야 하는 지역.

이 전장을 우회한다면 적의 보급선과 인차철도를 끊어버릴 수는 있으나, 적이 아랑곳하지 않고 심양으로 진격해 성을 떨어뜨린다면 대계는 크게 위태로워지니 조선으로서도 이곳에서의 싸움을 피하지 못한다.

웅정필과 이윤신은 그 순간, 아무런 말도 주고받지 않았음에도 한 가지 사항에는 서로 동의했다.

우리 모두 지금 이 자리에서 싸우겠노라고.

오전 8시 51분.

그리하여 형성된 전장의 길이는 자그마치 61리(24km)에 달했다.

체력이 건장한 이라도 전쟁이 벌어지는 좌익과 우익을 걸어서 오가기 위해서는 반나절을 오직 걷는 데에 소모해야 할 것이다.

이윤신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의 군대가 분주해지고, 총병들이 진열을 꾸리고, 군악대가 모습을 내민다.

조선의 여러 사단들 또한 제각기 맡은 바에 따라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윤신은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전장이 확고해진 지금, 기존의 지형환경들을 조금 더 잘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했다.

“안위가 이끄는 2사단으로 하여금, 총병연대로 봐두었던 향장촌을 요새화하라 전하라. 이는 중요한 거점이니 양옆 사단들의 안정에도 크게 영향을 끼치리라.”

“송희립이 맡은 우익 1사단은 적의 수적인 우위에 따라 가장 강력한 공격을 받을 것이다. 저들이 별동대로 하여금 우회하여 1사단의 후미를 노릴 수 있다. 작전의 목적은 오로지 적의 공격을 지연시키는 것이지 적을 섬멸하는 것은 아니니 물러날 때를 헤아리라 전하라.”

“다만 제1중포대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사수해야 한다. 모래주머니를 이용하여 축성을 시도하라 일러놓았으니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3사단장 정발에게도 이를 강조하라.”

“김시민의 4사단은 백태진과 총지휘부를 무조건적으로 수성한다. 다만 고지대를 미리 선점하고 있기에 산병을 제외하고는 예비대를 충분히 편성하여 뒤로 빼놓는다.”

“우치적의 5사단은 백태진 옆의 평야와 6사단의 석동촌을 계속 이어주어야 한다. 아무런 거점이 없으므로 이곳은 전투 시 취약지점이 될 터, 양옆의 사단에서는 별도의 예비대를 운용하여 격전 시 5사단을 좌우로 지원하라.”

“황진의 7사단은 좌익 방어 이후에는 지휘관의 재량에 맞추어 판단하라.”

윤신의 명령이 쉴 틈 없이 떨어졌지만, 이면은 능숙하게 신호를 전달했다.

그의 부친은 이미 통해 몇 번이고 전장을 둘러보시면서 이런저런 계획을 짜두셨으니 지금 이 순간은 단지 그중 최선의 수를 골라내는 것과도 같았다.

명령 또한 작계를 통해 이미 하달되어 있었다.

‘허나, 아버지께서는 그 작계에 너무 매몰되지도 말라 하셨지.’

그렇기에 옥저 기병대가 우회할 방면에 있는 7사단의 경우에는 아무런 작계를 하달하지 않고 다만 자유롭게 행동하라 하셨을 것이다.

황진 또한 제장들 중에서 두 번째로 계급이 높고 그만큼 실전경험이 있는 지휘관이니 충분히 가능할 듯싶었다.

그리고.

‘이저혁. 나머지는 그대에게 달려 있겠군.’

이윤신과 이면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채 전장으로 눈을 돌렸다.

* * *

오전 9시 7분.

1사단과 명군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전투가 시작되고도 명군들은 한참을 꾸물거렸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병사들이니 통제에 극한 어려움을 겪는 것이 분명했다.

1사단의 전투는 다른 사단들이 교전을 시작할 때까지 지지부진하게 흘러갔다.

엄청난 숫자의 명군이 들이닥쳤으나, 조선군은 명백한 화력의 우위에 있었다.

― 콰과광

명군들은 조선의 대포에 무기력하게 쓰러졌다.

“쏴라!”

무기력하게 쓰러진 명군들 뒤에, 다시금 진군하는 명군들이 이번에는 총탄을 맞고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총탄을 맞고 자리에 누운 명군의 뒤에는 또 다른 명군이 있었다.

그 뒤에는 또 다른 명군이.

그리고 그 뒤에도.

“염병할 놈들, 뭐가 이렇게 많아!”

병사 하나가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 욕설에 어쩐지 울음기가 있는 것이 모두의 마음을 대변했다.

“적의 사격이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적병 또한 아군을 사격할 수 있는 거리에 와 있음에도 총을 쏘지 않는다는 것.

이상한 일이다.

양측의 대포는 양측의 보병을 공격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총병들끼리는 일방적으로 조선이 명을 공격하는 형세가 계속되었다.

이에 유심히 전장을 살펴보던 1사단의 지휘관 송희립은 저들의 총 중 몇몇이 아예 총열조차 없는 나무토막에 착검만 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적병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제아무리 조선의 제식 수석식 소총(고려에서 수입해 온)이 김안섭의 빠른 전술장전이 가능하다 하나, 이제는 명군이 독전관들의 독촉에 숫제 전열조차 유지하지 않고 허겁지겁 손에 있는 무기를 꼬나쥐고 달려오니 시간이 촉박했다.

사실, 제아무리 적병들이 돌격을 해 와도 화력이 평시같이 유지되었다면 별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자연(장마)의 영향은 조선군의 화약이 교분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점화되지 않게 만들었으니 당황하는 자들이 많이 생겨났다.

“착검! 착검하라!”

다행스러운 것은, 실컷 총탄에 두들겨 맞고 도착한 명군 또한 사기가 굉장히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겠지.

두 눈에 분노를 담은 이는 그리 많지 않았고, 대부분은 그저 산 송장과 다름없는 자들이 많았다.

전염병을 앓았다는 것을 방증하듯 앙상한 명의 군졸이 조선군의 착검공격에 힘없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명은 그들의 목적, 즉 진흙탕 싸움을 유도하는 것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환도를 휘두르고 권총을 쏘아대던 송희립은 사방에 피가 튀는 와중에도 명령받은 대로 천천히 부대를 뒤로 물렸다.

이는 윤신 또한 관찰 가능했다.

숫자로 우직하게 아군의 우익을 밀어붙이는 적의 좌익을 바라보던 그가 마침내 예비대 중 오직 소수만을 1사단의 측면으로 이동시켜 화력지원을 명령했다.

1사단이 예상보다 고전하고 있었으나 예비대를 아껴야만 했다.

오전 10시 19분.

시간이 지나니 거의 모든 사단이 작거나 크게 공세를 받고 있었다.

지휘부로 가는 최단 거리에 위치한 4사단은 그중 가장 강력한 공격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4사단은 예비대 또한 가장 많이 만들어놓았던 터라 사단의 자체적인 전투 병력은 타 사단에 비해 열등해져 있었다.

하지만 고지대를 점유한 산병(散兵, Skirmisher)들은 본 제대에 다가오기 전에 적의 사기를 몹시 꺾었으며, 언덕 위에 포복하여 있던 적포군 사관들이 연사력은 느리나 사거리와 정확도가 모두 우수한 강선총으로 적의 하급 지휘관을 연속하여 저격하니 명군들은 지휘계통의 부재와 고저 차를 극복하지 못한 채 순식간에 주검이 되어 산자락에 쌓여갔다.

하지만 열세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넘긴 4사단과는 다르게 2사단과 5사단은 큰 열세에 빠졌다.

향장촌을 요새화한 것에 성공한 2사단은, 적 포병대의 집중적인 포탄 세례를 받아 기껏 요새화한 마을을 버리고 도망 나와야 했다.

1사단이 천천히 뒤로 물러나는 터라, 향장촌은 사방이 적이었다.

허나 조선군도 이를 눈 뜨고 빼앗기지는 않았다.

조선군이 패퇴하는 것을 본 명군들이 마을로 향하자, 이번에는 제1중포대에서 기다렸다는 듯 마을을 포격하였고, 마찬가지로 명군 또한 황망히 향장촌을 떠나야만 했다.

촌락 하나를 확보하겠다고 양측은 병력들을 끊임없이 밀어 넣었다.

다시금 마을을 탈환하는 것에 성공한 2사단을 위해, 윤신이 먼저 패를 내밀었다.

“하마기병대와 기마포병대를 2사단 방면으로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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