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300화 (300/653)

중화다분지계(中華多分之計)(5)

* * *

아무리 대비를 했다 하더라도 조선 또한 이번 전쟁에서 휘청거리고 있었다.

중원의 압도적인 인구 숫자의 우위는 어떤 전장에서 어떤 환경에서도 항상 유효하게 작용했다.

그들을 이끄는 장수들조차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조선군의 머리에 똑똑히 기억된 웅정필은 물론이고 그 휘하의 총병들 또한 제각기 용맹을 자랑했다.

명의 보급 또한 발해만의 해상 우위권을 조선이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의외로 건전하게 유지되고 있는 듯했다.

화약 보급도 그러했다.

인광석 중 화약에 쓸만한 질소 기반 화합물인 초석이 자연적으로 풍부하게 나오는 나라는 수많은 전쟁이 일어나는 지금에도 그리 많지 않았다.

동물의 대변이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되어야 하면서도, 비에 질소 화합물이 씻겨 내려가지 않는 기후나 지형이 있어야 했다.

만약 동물의 배설물이 축적된 곳에 비가 많이 온다면, 그것은 인광석이긴 하나 화약으로는 영 쓸모가 없고 비료로나 써야 하는 돌덩어리가 되었으니까.

화약의 세기에 들어선 대부분의 나라는 이제 자체적으로 ‘똥밭’을 만들어 인공적으로 비료를 생산하는 방법을 어느 정도 깨쳤지만, 이 또한 여전히 자연 상태의 광산에서 퍼낼 수 있는 축복을 가진 나라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자연 상태의 광산이라는 복을 가진 나라는, 일단 제일 먼저 고려를 들 수 있었다.

남려 서해안, 아타카마 사막에 위치한 초석 광산은 실로 유명한 존재.

예로부터 고려의 패권을 유지시켰던 핵심 지역이자, 수백 년이 흐른 지금에도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는 지역이었다.

여담으로 나우루의 인광석 광산은 비가 자주 오는 환경 때문인지 애석하게도 화약으로는 영 별로였고, 다만 비료의 목적에는 충실하여 화산 폭발 이후 흉년으로 신음하는 고려의 농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두 번째로 세계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초석 산출 지역을 꼽아보자면, 단연코 인도를 꼽을 수 있었다.

이 지역들 중 일부는 심지어 너무나도 질산이 풍부하여 자주 비가 오는 다습한 아열대기후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마른 땅에서 질산염이 말 그대로 솟아오르는 축복받은 땅.

따라서 유럽의 각국들은 이곳에 엄청난 신경을 쓰고 있었고 인도에서는 유럽 본토와 비견될 정도로 자주 유럽인들끼리 전투가 일어났을 정도였다.

고려는 화약의 원료인 초석을 특별한 관계가 아닌 이상에야 외부에 잘 팔지 않았으니, 유럽국가들은 인도를 장악하는 것이야말로 유럽에서의 패권에 한층 가까워지는 방법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강성하고 몹시 팽창적인 무굴제국의 야욕에도 불구하고, 구자라트나 벵골, 비자푸르, 골콘다 같은 조그마한 술탄국들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까닭도,

주변의 술탄국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아예 이슬람이 아닌 인도의 토착 종교인 힌두교를 믿는 비자야나가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이러한 유럽인들의 간섭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터다.

그리고 그러한 행운은 명도 가지고 있었다.

명은 사천에서 산동에 이르기까지 내륙 각지에 크고 작은 초석 광산을 가지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박쥐가 많은 나라였고 이러한 박쥐들의 똥들은 질산 화합물이 풍부하여 훌륭한 초석의 자원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 덕분에, 명은 본격적으로 화약을 쓰는 대군을 운용하면서도 그렇게까지 절박함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자체적인 염초 생산량이 소모량보다 현저하게 적어 초석의 많은 비율을 고려에게서 수입하고 있는 조선이 상당히 힘든 입장이었다.

고려가 초석을 팔긴 팔지만, 바다를 건너서 와야 하는 입장이니 시간이 걸렸고 가끔 기상악화나 기타 이유로 운송에 차질이 생긴다면 조선의 군부는 발을 동동 굴러야만 했다.

“상국의 화약은 아직인가?”

이번처럼.

조명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고려에 대규모로 화약 구매 요청을 했던 조선이지만, 그 요구가 고려 조정에 올라가고, 고려 조정이 회의를 하여 마침내 초석 광산에 공문을 보내고, 광산이 그것을 검토하여 노동자들에게 증산 지시를 내리고(아대륙자원보호법은 초석에도 적용되는 물품이었다.), 캐낸 초석이 가공되어 화약으로 바뀌어 다시금 조선으로 넘어가는 일련의 과정은 조선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답답했다.

고려도 이를 이해하여, 미리 비축하고 있던 화약을 판매하는 군함에 실어서 보냈지만 조선은 바부얀 해전과 그다음 일어난 명과의 몇 번의 치열한 공방전에 많은 화약을 소비한 이후였다.

“송구하옵나이다, 전하!”

“…말로만 송구하다 하지 말고, 대책을 세워 보시오들!”

사방에서 쏠리는 시선에 병조참지(兵曹參知) 이시발(李時發)이 식은땀을 흘리며 임금의 말에 머리를 굴렸다.

당상관이긴 하나 병조에 고관들이 많았던 까닭에 서열상 4위에 해당했던 그는 지금 병조판서 이항복이 그 특유의 친화력으로 인해 상국에 가서 여러 고관들에게 읍소를 하고 있고, 병조참판 윤돈은 옥저에 가 있으며, 병조참의 김시민은 북방에 나아가 싸우는 와중에 얼떨결에 전시라는 막중한 상황 속에서 병조의 최고 실무담당자가 되어 었었다.

“화… 화약밭의 산출량을 더욱 크게 증설해 보이겠습니다. 공조와 연계하여 똥을 더 많이 모을 수 있도록 백성들에게 교육을 철저히 하고….”

조선은 과거 전통적인 초석 생산법인 뒷간과 툇마루의 흙과 재를 모아 끓이는 방법에서 연간 1,000여 근의 화약을 생산해냈었다.

병인몽란 당시, 이를 최대한으로 증가시킨 것이 연간 약 2,000여 근.

고려에게 입조하고 화약의 수입을 허락받은 이후에도 조선은 자체적으로 염초를 생산하는 방법에 골몰했는데, 겨우겨우 네덜란드와 접촉하여 유럽의 선진적인 화약제조법을 들여올 수 있었다.

풍부한 재료, 즉 인간의 똥에서 질소 화합물을 추출해내는 이 공법은 더럽고 냄새가 심했지만 기존의 염초 가공법보다 효율적이었다.

그 후로 조선은 차츰 염초 증산에 성공하여 조명전쟁이 있기 전까지는 한 해에 약 25,000여 근의 초석을 만들어 낼 수 있었지.

그러나 동시대 아직 왕조 간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유럽의 국가들과는 차원이 다른, 그야말로 동아시아 특유의 중앙집권적 관료제에 의해 지배되는 두 국가 간의 어마어마한 인구가 동원되는 조명 전쟁은 대낮의 전쟁터에 물안개마냥 화약 연기가 가득 찰 정도로 총포를 쏘고 있었다.

25,000근은 택도 없었다.

이휼은 독촉한다고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사실을 알고 있긴 했으나, 그렇다고 절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조정의 사기와 자신의 권위에 썩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몇 차례 이시발을 꾸짖고는 조참을 파했다.

* * *

그리고는 평양에 지금 막 도착한 이윤신을 조용히 불렀다.

“정녕 그 수밖에 없겠소?”

“예. 전하.”

이윤신은 바부얀 해전 이후, 몇 차례 해적들을 더욱 토벌했었다.

그러나 전면전에서 숫자의 우위를 믿다가 충격적으로 패배한 명 휘하의 해적들은 이제 섣불리 싸움을 걸지 않았다.

마냥 좋은 일은 아니었다.

해상의 주도권을 합종국이 가지게 되었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한계를 깨닫고 그들의 특기, 해적질과 약탈 교란 등의 작전에만 골몰한다면 합종국 또한 함대를 분할하여 상대해야 했다.

이는 긴 시간이 걸리는 실로 피로한 일이었다.

원수의 계급을 가진 이윤신이 할 일과도 어울리지 않았고.

북방의 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원전에게 수군과 톤도 제도의 해적 토벌에 관련된 일을 일임하고 다시금 조정에 돌아온 이윤신은 마침내 그의 본업인 육군의 지휘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이휼은 그를 위해 윤신과 친한 좌의정 류성룡을 미리 도체찰사로 임명했으나, 윤신이 말한 것에는 다소의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다.

“수성의 이점을 포기하고, 회전을 하자?”

“예, 전하.”

이윤신은 수차례 주상께 장계를 쓰고 직접 찾아와 간언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아 보이는 그의 주군을 바라보았다.

“알아요, 알아. 여가 경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올시다.”

이휼은 복잡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비록 윤신의 능력을 몹시 높게 사, 군의 전권을 위임하고 전폭적으로 신뢰를 보내고 있더라도.

이번의 일은 그렇게 간단히 결정할 사항은 아니었다.

한순간 이 동아시아의 운명을 결정지을 회전을 하는 것도 문제였고.

그 이후에는….

이휼은 상념을 끊어내고 일단 눈앞의 문제부터 직시했다.

‘사십만, 그리고 십오만의 대전이다.’

치중을 운송하는 인원을 포함한다면, 이는 오십만과 이십만의 대결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죽어 나자빠진 명군과 전사한 조선인들의 규모를 합쳐보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불어날 테고.

가히 엄청난 규모였다.

호왈 백만이 난무했지만 정작 실제 전투 병력은 그 반의반에 못 미쳤던 과거의 전쟁과는 달리, 행정체계가 진보한 지금의 군대의 숫자는 비교적 정확했다.

지금까지 평양에서 전장의 상황을 보고받는 이휼은 보고서를 볼 때마다 숨이 막혀 오는 것을 느꼈었다.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몰려오는 명군들.

금주에서 방어전을 치르며 적을 무려 십만을 도살했던 조선군은 결국 또다시 후퇴했고 그 뒤의 현주(顯州)성과 반금(盤錦)성에서 전열을 가다듬어야 했다.

교환비는 여전히 조선이 크게 우위에 있었지만, 입은 피해는 여전히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았다.

지휘관들 또한 격렬한 전투에 몸 성한 자가 많이 없었다.

정무수가 금주성 수성전 때 전사하여 시신만 겨우 황급히 수습했으며, 김시민과 우치적, 정발 등은 전투에서 다쳐 후방으로 후송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회전을 벌이자?

이윤신이 설득하듯 입을 열었다.

“전하, 명이 요하를 넘는다면 그때부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옵니다.”

안 그래도 흉년이 온 상황에다가 전쟁까지 치르는 조선이었다.

직접적으로 밀을 경작하는 요하 부근의 농경지가 저들에게 짓밟힌다면 손실이 뼈아팠다.

그렇게 된다면 조선은 재배하고 있거나 각 지역의 곡창에 보관하고 있는 농작물들이 적의 손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것들을 불태우는 청야전술을 시행해야 했다.

당연한 전술.

그러나 그 대가는 가혹하다.

옛 고씨 고려는 수와 당을 수없이 막아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청야전술에 나라의 힘을 차츰 잃어 마침내 당 고종 이치에게 멸망당했지.

윤신은 자국의 국토에서 전쟁을 하는 것이 얼마나 좋지 않은 일인지 배운 무장이었다.

비록 조선은 여전히 곡창지대인 삼남이 건재하나, 심요도와 평안도에서 재배하는 밀의 산출량 또한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또한, 병사들의 충원도 명이 더욱 유리하니 지금과 같은 소모전을 계속 지속하여도 저들의 군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약화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주익상의 기발한 발명은 조선으로서도 놀랄 만했다.

세작들이 명의 진군로에 맞추어 인력으로 차를 움직이는 철도라는 기묘한 것이 부설되고 있다고 보고하자, 이휼 또한 이에 매료되어 전쟁이 끝난다면 어찌 한번 알아보라 그렇게 명령을 내리기도 했으니까.

지금 당장 뭘 하겠다는 것은 무리였고, 설령 여유가 된다 하더라도 좁은 땅에 산악이 비정상적으로 많은 조선 반도를 중원의 평야지대에 비교하는 것은 어폐가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이 인력열차라는 불균형한 기반시설은 지금 당장은 명에게 너무 효과적으로 쓰여지고 있었다.

적병의 규모가 도통 줄지를 않는다.

어디서 사람을 뽑아내는지 적병들은 죽이고 죽여도 그대로인 듯싶었다.

보급이라는 제한이 없었다면, 적의 군세는 진작 사십만을 넘어 육십만에 달했을지도 모르겠다.

현격한 유지력의 격차.

조선 또한 전국 각지에서 긴급하게 장정들을 징병하여 대충이나마 훈련을 하고 북방에 올려보내고는 있으나 애초에 명은 조선에 비해 인구수만 열 배가 훨씬 넘는 거대한 국가였다.

게다가 일시적으로 남부의 해적들을 끌어들인 명은 절강병과 복건병 등의 남병들 또한 조금 여유 있게 운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남병들은 직접 편제를 꾸려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지만 명이 봉명관 북쪽의 발해만 해안지역에서 판옥선을 견제하기 위한 해안포대를 유지하는 곳에 쓰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경이 주장하는 회전을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오? 어차피 한 번의 회전을 통해 적을 깨트려도, 저들이 군세를 금방 모아 다시금 온다 하면 이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오?”

이윤신은 주상의 물음에 즉답했다.

“저들은 봉명관에서의 혈전 이후, 그 후의 공성전 때에는 훈련되지 않은 병사들을 허수아비로 내세워 전면에서 총알을 받게 하여 고병(古兵)들을 아꼈습니다. 경험이 많은 고병들이야말로 전열전술의 핵심이니 명은 전투를 해도 주력은 크게 상처받지가 않지만 반대로 조선은 수성 때마다 고병들이 크게 상하는 입장이니 소신이 이를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

“그러나 조선이 고병들을 아직 충분히 가지고 있는 이 순간에 한 번의 회전으로 명의 고병들에게 치명타를 입힌다면 아국만이 전열을 더욱 굳건하게 설 수 있고 따라서 오히려 조선의 군대가 숫자만 많은 명의 오합지졸을 공격하여 쓸 듯이 나아갈 수 있사옵니다.”

당연해 보이는 그의 말은 한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전제로 삼아야 했다.

회전에서 무려 세 배가 넘는 적병들과 맞서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는.

오만이라고 볼 수도 있을 만큼 과도한 자신감.

그 근원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인가.

이휼은 복잡한 표정으로 여전히 노년의 무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윤신은 그러한 주군의 속내를 알아차린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천한 신이 마지막으로 명적(明敵)들과 싸우려 하오니, 전하, 부디 소신이 나가 싸우다 죽는 것을 허락하여 주소서.”

‘한심하구나.’

이휼은 갑작스럽게 자괴감이 들었다.

만약 나중에.

정말로 이윤신이 승리를 거둔다면.

그러한 일말의 가정 속에서 조명전쟁이 끝난 이후 임금에 버금갈 정도로 영예와 인기를 누릴 그를 본능적으로 경계하고 있었던가.

군주란 존재는 고독하며, 또한 그렇기에 아무도 믿지 못했고 모든 이들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나.

적어도 국난의 한가운데에 있는 지금은 아니었다.

윤신의 초연한 말을 들은 이후, 이휼은 벌떡 일어나 침전의 벽에 걸려 있는 자신의 보검을 내오도록 했다.

도승지가 후다닥 달려와 검을 바치자, 이휼은 그 검을 뽑아 번쩍이는 칼날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다시 수납하여 윤신에게 내밀었다.

“상국의 강철로 만든 상방검(尙方劍)이오. 실로 날카로워 베지 못하는 것이 없다 하외다.”

“전하.”

“경 또한 여의 검이니, 이 검으로 적을 도륙한 뒤, 다시금 이 자리에서 여에게 이를 바치시오.”

윤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절을 하고는 검을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