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다분지계(中華多分之計)(3)
승리를 거둔 명군은 사기가 충천했다.
임유관을 공격하며 실로 큰 피해를 입었긴 했지만 어차피 그 정도의 피해는 공성을 하는 입장에선 필수 불가결한 희생이라 할 수 있었다.
당장은 가시적인 목표를 이뤘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숙련병의 손실은 뼈아프긴 했으나, 한 명의 병사가 죽는다면 두 명의 병사로 그 빈자리를 메꾸면 되었다.
천하제일관을 떨어뜨린 명군은 성큼성큼 진군하여 금주(錦州)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크게 당혹스러워했다.
멀리 보이는 평야.
본래 한적하여 잘 주목받지 않았던 이 도시에는 낯익은 구조의 평지 요새가 서 있었다.
그 크기와 특유의 넓고 뾰족뾰족한 구조로 일견 장엄해 보이지만 그 성을 공격해야만 하는 입장에선 더없이 끔찍한 광경.
비록 임유관처럼 거대한 크기는 아니었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웅정필의 귀에 명나라 병사들이 삽을 떨어뜨리며 절망에 찬 욕설을 뱉고 있는 것이 들렸다.
“또다시…….”
금주에는 산해관마냥 또다시 큰 규모의 성형요새가 있었다.
“자라 같은 놈들…….”
명의 장수들도 병사들처럼 탄식을 내뱉었다.
조선이 봉명관에 구원군을 보내지 않고 미적거린 이유가 저것이었던가.
하나가 뚫리면 다른 하나로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
그토록 결사 항전하는 것처럼 보였던 조선의 장수가 병력을 온존하여 후퇴를 선택한 이유를 드디어 알게 된 웅정필은 이마를 감싸 쥐었다.
명에서 조선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하나, 발해만 가장자리의 얇은 땅밖에 없었다.
조선이 명의 진군로를 뻔히 아는데 그동안 뭘 했겠는가.
이휼이라는 조선의 왕은 꽤나 명민한 자라 했으니 당연히 손가락만 빨고 있지는 않았겠지.
‘그래도 이렇게나 빨리…….’
저 반도에 사는 자들은 성을 짓고 단단히 방어하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는 자들이라 듣기야 들었지만 이것은 실로 예상외였다.
분명히 명이 전쟁을 준비하기 전에 세작들이나 척후들을 보내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금주에 있던 성은 요새라고 보기에는 힘들었다고 적혀 있었는데.
‘허나 그것이 중요하진 않다.’
조선이 반간계를 써 명의 첩자를 혼란시켰던 것이건, 혹은 그사이에 조선이 역량을 모아 단시일 내에 벽돌 성을 증축시켰던 것이건 사실관계를 지금 당장 알 수는 없었다.
그러니 일단은 눈앞의 난관들을 헤쳐나가야 했다.
하지만 금주성 뒤에도 이와 같은 성형요새가 얼마나 자리 잡고 있을지 당최 알 겨를이 없다는 것이 웅정필을 괴롭게 만들었다.
명에게 있어서 가장 끔찍한 경우를 따져보자면, 조선이 이런 요새들을 옛 고씨 고려(고구려)마냥 요서와 요동에 지천으로 깔아 놓은 것이겠지.
성 하나를 짓기 위해서는 상당한 국력이 소비되었지만, 의외로 해자를 파고 벽돌을 주 재료로 하여 성벽을 낮고 두툼하게 만드는 최신의 성형요새는 높이를 높게 올려야만 하는 구시대적 성곽들보다 건조가 그렇게까지 힘들지도 않았다.
게다가 저 동쪽의 오랑캐들은, 아주 먼 옛날 한나라 시절 때부터 그네들 반도의 험한 산지에 산성을 몇십, 아니 몇백 개나 지으면서 살아가던 족속들이다.
통일된 왕조인 조선이 이런 요새들을 건축하는 것을 어려워할 리가 만무했다.
그렇기에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명은 조선을 정벌하기 위해 매번 이런 요새를 깨트려야 할 것이고 그 공성전 때마다 몇 달, 아니 몇 년씩 시간을 소비해야 할 것이다.
‘…좋지 않아. 정말 좋지 않구나.’
비록 웅정필이 당대 성형요새의 전통을 가장 잘 이어나가는 고려나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군사적 영향 없이도 참호를 통해 공성을 하는 법을 제시한 명장이긴 했으나 그 또한 엄연히 한계가 있었다.
공격 측의 자연스러운 한계.
공성을 하는 군대는 수성을 하는 군대에 비해 수적 우위를 확실히 챙겨야 했다.
성형요새를 둘러싼 넓은 지역에서 참호를 파며 전진하는 전술은 적어도 수성 측의 세 네배는 넘는 군사우위를 항상 가져야 했다.
수성측이 성문을 열고 삽을 쥐고 있는 자들에게 기습을 가한다면 크게 위태로워질 것이니까.
게다가 전투 외적인 것도 있었다.
조선에게 가까워질수록 명의 보급로는 길어져 위험할 것이고 조선의 보급로는 짧아져 견고해질 것이라든지.
게다가 연횡의 수군이 한 차례 크게 피해를 입은 이후 발해만에 대한 제해권은 그동안 해전에서 쓰이지 않던 판옥선을 가진 조선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 또한.
명의 이번 조선 정벌은, 옛 수의 양광이나 당의 이세민의 경우보다도 더욱 좋지 않은 상황에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웅정필의 고심에, 총병 두송이 여전히 밝은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성상께서 보급을 위해 만드신 기물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 그것이 있긴 했었지.”
* * *
듣기로는 먼 나라 고려에서는 쇠로 만든 길에 철마가 달린다 한다.
고려가 철도를 도입한 지도 시간이 많이 흘렀고, 이제는 남북려를 가리지 않고 서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되고 있었기에 열차에 대한 소문은 상인과 호사가들을 통해 세계의 이런저런 문명국들에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유럽은 물론이고 고려의 봉신국들과 심지어 명나라까지도.
고려를 싫어하는 것과 반대로, 명나라 사람들은 고려의 진보된 기술을 내심 인정하고 부러워하고 있었다.
동도서기(東道西器)니 중체서용(中體西用)이니 하는 논리는 애초에 명이나 조선 같은 동양의 나라(유럽을 기준으로 하면)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비록 지금은 머나먼 땅에 있다지만 고려가 엄연히 그들과 같은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국가라는 사실은, 고려의 학문이 감히 성리학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사방으로 뻗어나가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어 보이는 와중에도 절대 부정할 수 없는 것 중 하나였으니까.
명으로서도 천박한 양이니, 뭐니 하며 정신승리 할 근거도 없었다.
그동안 동쪽의 오랑캐로 생각하며 업신여겼던 인간들에게 전국옥새와 천명은 물론이고 기술마저 뒤처져 버렸다는 생각은 명국인에게 있어서 너무나 큰 치욕이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들은 고려를 따라 하고 싶었다.
정치나 철학 등의 인문학적 분야는 불가능했으나 가장 민감한 군사적 부문에서의 방면은 그래도 어찌 기술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척계광의 기효신서에서도 잘 나타나는 사실.
또한 의외로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분야에서도 모방의 노력은 있었다.
예를 들면 철도와 같이.
주익상은 명의 국토에 중요한 길을 따라 궤도를 건설하라 지시했다.
남북려의 광활하고 광활한 규모보다는 작았지만, 중원 또한 상당히 큰 나라.
궤도를 까는 것에 상당한 재물이 소요되었지만 적어도 강과 강을 연결하는 대운하를 파는 것보단 쉬웠기에 막대한 인력을 동원한 주익상은 마침내 주요한 교통의 요지에 철로 된 궤도를 부설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다음의 문제는 어찌 모방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열차의 기술은 빼내기 상당히 어려웠다.
고려의 조정과 정보조직은 멍청이들이 아니었고, 오히려 사신들에 가까웠으니 제아무리 널리 퍼진 것들이라 하더라도 그 세세한 설계도를 얻을 수 있는 길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명이 그렇다고 엄청난 첩보기관을 소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기껏 환관 무리가 이끄는 동창이 외국에 가서 뭘 할 수 있겠는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명의 장인들과 관리들은 애초부터 자연과학적 이론에 대해 무지했던 만큼 외연기관이나 기타 열차의 구동부를 개발할 수 없었다.
사회의 경직된 사고를 몇 번이나 깨트린 고려는 연서궁의 제국한림원에서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자유롭게 토론하고 논쟁하라 장려하는 반면에, 명은 그들의 한림원에서 주익상을 찬양하고 우아한 시구를 작성하며 유교 경전의 구절을 파도록 했으니까.
그렇기에 명은 단순한 궤도를 깔긴 깔았는데 그 위에 달릴 철마가 존재하지 않는 괴상한 상황에 놓이고야 말았다.
하지만 의외로 명은 이것을 너무나 탁월하고 효율적으로 해결했다.
외연기관과 열차를 개발할 수 없다?
그것이 대체 왜 문제인가.
명이 가진 장점이 너무나 명백한데, 굳이 고려의 철마를 개발할 이유가 왜 있겠는가.
어차피 본래의 목적을 충족하면 끝이 아닌가.
단지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을.
석탄을 태워 물을 끓이고 그 수증기의 압력을 동력 삼아 기계를 돌리는 고려와 달리, 명은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해결했다.
즉 말과 소, 그리고 사람으로 하여금 ‘직접’ 동력을 전달토록 한 것.
― 끄응
“밀어라!”
수많은 병사들이 좌우에 튀어나온 손잡이를 밀자 큰 바퀴가 달린 거대한 수레가 궤도 위에서 움직였다.
고려인들이 보았다면 어이가 없어 차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광경이었겠지만 정작 이것을 지켜보고 있는 명나라 장수들은 몹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실로 효율적인 보급 수단이오!”
“하하, 성상께서는 실로 세기의 명군이십니다.”
“무거운 수레를 이토록 안정되게 운반할 수 있다니!”
비록 전통적인 수레와 같이 다른 길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는 없으나, 이 인력열차(人力列車)는 궤도라는 혁신을 통해 지금까지 존재했던 그 어떤 수레보다도 많은 양의 물건을 손쉽게 운반할 수 있었다.
주익상은 인력열차의 발명에 크게 고무되어, 봉명관이 명의 손에 떨어지기도 전, 그 근처까지 철도를 부설하여 군의 보급을 할 수 있게 명령해놓은 상태였다.
봉명관을 깨트린 후에도 군이 나아가는 속도에 최대한 빨리 발맞추어 철도를 이으라는 대명을 내렸었고.
그렇게 가축과 가축만도 못한 인간들에 의해 나아가는 인력열차는 보급을 한층 더 손쉽게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장들의 감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웅정필은 속이 답답했다.
* * *
“잘했다, 참으로 장하도다.”
주익상은 마침내 임유관이 떨어졌다는 것을 보고받고는 신이 나서 웅정필을 크게 치하했다.
“천하제일관을 빠르게 떨어뜨린 것은 온전히 웅 부도어사의 공이다.”
그는 곧바로 그 자리에서 임유관을 산해관이라 개칭하는 것은 물론이고, 웅정필을 도찰원의 도어사로 승차시키고 산해공으로 임명한 뒤 조선에 대한 지속적인 공세를 요구했다.
하지만 웅정필은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주익상에게 더 이상의 공세는 무리라는 장계를 올렸다.
[폐하, 최선의 수는 지금 대명이 마땅히 돌려받아야 할 고토인 산해관을 점령한 상태로 전쟁을 끝내는 것이옵니다.]
“뭐라?”
[전쟁을 지속할수록, 아국은 국력을 크게 소실할 것이니 이것은 승리하더라도 무의미한 전쟁일 것이며 그렇게 하여 얻은 산해관 너머의 영토를 보전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또한 지금 상황이 힘들지라도 고려가 본격적으로 개입을 한다면…….]
고려, 또 그놈의 고려.
대체 명의 장수들이라는 놈들은 고려와 제대로 싸워본 적도 없으면서 왜 그 허상에 지레 겁을 먹고 있는가?
황제는 장수들에게 실망하고 크게 격노했다.
“총지휘관이라는 놈이 어찌 싸워보기도 전에 패배를 입에 담는가!”
그리고는 자신이 최근 승차시킨 웅정필을 파직하느니 마니 온갖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일부 충직한 신하들이 대승을 거둔 자를 파직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고, 또한 양호에 뒤이어 총사령관을 두 번 바꾸는 것은 군을 제대로 이끄는 방법이 아니라고 몇 차례나 간언하니, 주익상은 뒤틀린 속을 억지로 진정시켰다.
“허나, 지금 짐의 석명을 받고도 공세를 이어가지 않는다면, 웅 어사에게 다른 마음이 있다는 것으로 간주하겠노라!”
순욱에게 빈 그릇을 보냈던 조조마냥 웅정필에게 달랑 밧줄 하나(물러서느니 차라리 목을 매달라는 뜻이었다)를 답신으로 보낸 주익상이 씩씩거리자, 신하들은 그 말에는 차마 반대하지 못했다.
주익상이 괜한 무리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아주 든든한 아군도 있었다.
북왜라는.
비록 오고 가기에 힘든 위치에 있는 섬나라였긴 했지만 북왜는 명과 이해관계가 거의 비슷했다.
고려에 더없이 원한을 가진 나라.
또한 의외로 상당히 강력한 국가였다.
북왜는 남왜가 백제로 국호를 바꾸며 왜왕을 폐위하고 추방시켜 스스로 오우치 왕조를 여는 와중에도 크게 개입하진 못했다.
그들 내부의 다툼 또한 왕성했으니까.
하지만 그러한 다툼이 마침내 거의 종식되자, 하나로 합쳐진 북왜는 고려의 지원을 받는 백제조차도 국가적 체급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매번 전전긍긍할 만큼 강력한 군사국가로 태어난 상태였다.
백제가 도래인과 내지인 간의 분쟁을 막기 급급하여 래내일체(來內一體)를 주장하고 있는 사이, 북왜는 밥만 먹고 싸움질만 했던 놈들이니 당연한 소리였다.
그를 이끈, 전 북왜 태합 풍신수길(豊臣秀吉, 도요토미 히데요시)은 이미 졸했으나 그의 아들, 풍신수뢰(豊臣秀頼,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여전히 막부의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동안 주익상과 풍신수길은 상당히 가깝게 지냈다.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에는 그의 아들과도 친근하게 서신을 주고받았다.
공통된 증오의 감정이 있었으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마침내 명이 조선과 옥저, 백제 등에 대항하는 동맹을 구하자 가장 먼저 그 손을 잡은 나라도 북왜였다.
어찌 기특하지 않겠는가.
주익상은 자신의 사절이 보고한 풍신수뢰의 성품을 다시 떠올렸다.
‘어린 나이에도 키가 크고, 체중 또한 풍만하니 외견상으론 실로 엄청난 호걸이라 했다지.’
그 인물됨은 자세히 몰랐으나, 그의 대단한 아버지(풍신수길의 생김새는 도저히 좋게 평가하기 어려웠다.)보다도 실로 영걸에 걸맞는 풍채를 가졌으니 필히 범인은 아닐 터였다.
“북왜가 이와미를 끊으면 된다. 고려는 그 은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야.”
고려는 분명히 그들의 넓은 땅에서 은과 같은 귀중한 금속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저렇게 혈안이 되어 사방에서 금과 은, 동과 석탄, 철 등의 광산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일 테다.
그렇기에 주익상은 풍신수뢰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어쩌면 모든 일이 잘 풀린 뒤에 자신이 직접 허울만 남은 왜왕을 폐하고, 풍신수뢰에게 북왜의 왕을 칭할 수 있는 자격을 선사해 줄 수도 있겠지.
“북왜의 영웅이여, 그대가 할 일이 참으로 많도다.”
[작가의 말]
9월 6일에 화이자 2차 예방접종이 예정되어 있어 7일 8일 정도 휴재 예정입니다.
원래는 8월 중후반기로 되었는데 나라에서 2주를 일괄적으로 미뤘네요.
사실 제가 어떻게 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1차도 꽤나 후유증이 있었던 터라….
만약 가능하다면 연재를 해 보겠습니다만 장담은 드릴 수 없으니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