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294화 (294/653)

바부얀 해전(3)

― 콰과광

둘로 나뉜 적의 전열 중 하나가 적 함대 진행 방향에서 왼쪽으로 돌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들의 전열을 돌파하여 왼쪽으로 도는 상황.

연횡국의 함대는 합종국의 함대에 의해 반으로 갈라진 것도 모자라 아예 양 현에서 근접 포격을 고스란히 맞는 구도가 되었다.

우렁찬 포성에 목재가 박살이 나는 광경이 물안개 같은 화약 연기 사이로 희미하게 보였다.

국지적 환경에서의 수적 우위.

적의 열세가 도리어 적의 우세로 바뀌는 모습을 바라본 이근수는 절로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한 번의 주저함도 없었다.’

애초부터 저들은 마치 작정한 것마냥 전초전이나 원거리 포격전을 생략한 채 연횡국에게 대응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맹렬하게 행동했다.

‘이윤신….’

한 차례 나직이 으르렁거린 이근수는 휙 몸을 돌렸다.

“한심한 새끼들, 서로 옹기종기 모여 있으려 하니 전열이 제대로 될 리가 없지.”

해적들은 지금은 조르제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출신성분대로 모여 있길 내심 원하고 있어, 하나의 전열이 완벽하게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몇몇 세력은 아예 언제든지 한 발 빠질 수 있는 외곽 자리를 자처했고.

“지금 구원을 와야 한다. 저들이 우리 함대의 진행 방향에 있으니 아무리 풍하를 가지고 있더라도 닻을 올리고 돛을 펼쳐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빨리 전하라!”

이근수의 말을 담은 신호기가 복잡하게 휘날렸다.

그러나 분명히 신호기는 그의 말을 제대로 전하고 있음에도 수신하는 이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쓸모없는 해적 놈들 같으니라고.’

이 신호기라는 것은 국가 단위의 체계이다.

고려는 자음과 모음을 가시성을 챙긴 각기 다른 색깔과 문양의 깃발로 배정했다.

ㄱ과 ㅏ의 깃발을 하나씩 만든 것이다.

이 깃발들은 배정받은 자모음도 있었지만 단독으로 쓰일 경우도 있어 상황에 대한 의미를 담기도 했다.

해양 전통이 깊어지며 고려 해군들은 모음을 의도적으로 생략했는데, 이는 약간의 불확실성을 담보로 엄청나게 빠른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공격은 원래라면 ‘ㄱㅗㅇㄱㅕㄱ’의 깃발을 모두 올려야만 의사가 전달되었지만, 고려 해군은 이를 단순히 ‘ㄱ’을 두 번 올리는 것, 즉 ‘ㄱㄱ’으로 표현하며 간소화했다.

반대로 후퇴라는 명령은 ‘ㅎㅜㅌㅗㅣ’의 깃발을 써야 했지만, ‘ㅎㅌ’의 깃발만 올렸고, 변침은 ‘ㅂㅊ’ 등으로 표현했다.

몇 개는 과도한 생략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이미 정착되어버린 문화는 바꾸기 힘들었으며 오히려 이런 관용구들은 명령의 신속성을 장담했다.

그러나 겉보기에 쉬워 보이는 이런 체계는 아주 확고한 약속과 훈련, 그리고 송신자와 수신자의 신뢰 및 문맥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등이 필요했고, 이 자질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사관들이 아니면 여전히 어려웠다.

해군학교에 다니는, 다녔던 자들은 이런 깃발이 한꺼번에 몇 개가 올라와도 빠르게 순차대로 자모음을 조립하여 단어를 인지할 수 있었지.

이근수에게는 불행하게도 조선 수군은 물론이고 옥저와 백제 등 고려의 영향력을 받은 곳이라면 고려의 해양신호체계를 받아들였으니 지금 합종국의 수군 지휘관들 중에 이런 신호기를 못 알아보는 자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이 연횡국은 어떠한가.

노획한 함선으로 덩치는 뒤룩뒤룩 커졌지만 말조차 제대로 오가지 못하는 한심한 수준이지 않은가?

해적들도 해적들 나름대로의 신호기가 있지만, 해적마다 약속된 것이 틀렸기에 사전에 미리 신호 점검을 했더라도 기존에 쓰던 것과 혼동되어 괴상망측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조르제 네놈, 그렇게 멍청하게 행동할 것이냐!”

지금 전열의 절반이 위험에 처해 있지만 여전히 그들의 수는 많았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오히려 저들을 다시금 양측 현에서 포위한다면 전황을 반대로 가져올 수 있었다.

이근수는 지금 연횡 함대의 우측에 위치한 상황.

당장 저들과 싸워야 하는 입장이었다.

전열이 극히 불리한 상황.

하지만 자체적으로 변침하여 저들의 합공에서 빠져나오려 시도한다면 전열은 아예 붕괴될 것이다.

붕괴된 시점에서의 해전은 아예 끝난 것과 다름없고.

그래도 그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니었는지 이근수의 신호기를 본 조르제가 한 박자 늦게라도 반응을 하며 돛을 펼치는 것이 보였다.

* * *

“수사…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

“수사 영감!”

“기다려라, 시간이 제일 중요하다!”

수군절도사 권준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부관이 독촉하는 바는 이해가 되지만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콰아앙

적진을 가르며 돌파를 해내었다고 하더라도, 포격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위기는 계속 찾아왔다.

이제는 조선군도 근접 대구경 포, 옹포로 맞사격을 실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방이 포성으로 요란스러운 와중에도, 권준의 함선만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권준의 함은 순양함급보다 작은 초계함급이었다.

평상시였으면 이상한 일이었다.

권준은 이윤신의 신뢰를 받는 장수였고, 당상관에 달하는 그의 품계상, 그는 두 척밖에 없는 전열함은 아니더라도 순양함에는 탔어야 했다.

순양함도 그냥 순양함이 아니라 아주 최근 고려가 만들어낸 최신형의 대형 순양함(Heavy Frigate) 정도에.

실제로 그의 전우인 수사 이억기는 대형 순양함에서 지휘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는 당연한 일로, 고급 지휘관일수록 좋은 배에 있어야 생존확률이 높았으니까.

전열함과 대형 순양함 등은 컬버린급의 포탄을 멀리서 맞는다면 가끔 도탄되는 것을 경험할 정도로 다른 배보다 목장갑의 두께가 현저하게 두꺼웠다.

고려의 그 활참나무의 위력일지도.

물론 권준이 탄 초계함의 방어력은 동급의 다른 함보다 높았다.

일단 목장갑이 더욱 두껍기도 했고 소형 군선이라는 장점 덕에 피탄 면적도 적었지.

게다가 무슨 의도인지, 이 배에는 대포가 아예 없었고 그만큼의 공간을 전부 방어구역으로 설정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이 배 또한 카로네이드 포의 근접사격에는 유의미한 피해를 계속 입고 있어, 선체는 충격에 끊임없이 흔들렸다.

밑바닥에 있는 병사들은 이를 악물고 미친 듯이 물을 퍼내며 포탄에 피격당한 부위를 수선하는 중일 것이고.

하지만 이 대포 없는 배는 목을 옥죄는 듯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가끔 파공음과 함께 그런 침묵을 깨트리며 대포탄이 날아드는 상황이 일어날 때도 수병들은 덜덜 떨면서도 꽤나 큰 무언가를 꼭 껴안고 자리를 지키고만 있었다.

‘조심, 또 조심.’

객관적 시간은 아니겠지만 체감상으로는 거의 억겁에 달하는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질 때, 지휘관 권준의 고함이 그들의 귀에 들렸다.

“투하, 투하하라!”

대포가 존재해야 할 부분에는 방어시설 말고도 다른 시설이 있었다.

마치 기다란 미끄럼틀 같은 목재 틀.

이 끝은 바다로 길쭉이 내밀어져 있어, 멀리서 본다면 이 초계함은 꽤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일 것이었다.

실제로도 이윤신이 초계함을 이렇게 개장해보라 처음 지시했을 때 아무도 그 의도를 짐작하지 못했으니까.

물론 이제 권준과 지휘관들은 그 의도를 누구보다 명확하게 전달받은 상태였다.

마침내 수병들이 들고 있던 구를 선박 우현의 미끄럼틀에 올려놓았다.

사람 머리보다 훨씬 큰, 중형 항아리만 한 이 철제 구들은 틈이 거의 없이 통으로 주조된 것처럼 보였고, 그나마 존재하는 조그마한 뚜껑마저도 고무로 단단하게 결합된 덕에 완전히 밀폐되어 있었다.

철로 만들었지만 별로 두껍지 않았고 안의 내용물도 그렇게 무겁지 않으니 충분히 물에 뜰 것이다.

― 드르르륵

중력에 의해 데구르르 구른 원형의 구들이 차례대로 바다에 풍덩 빠졌다.

수병들은 긴장으로 축축해진 손을 바지춤에 닦았다.

“천천히! 떨어진 구와 떨어뜨리는 구가 부딪히면 서로 폭발할지 모른다! 시간차를 두어라, 천천히! 절대 서두르지 마라!”

― 드르르륵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금 수병들이 틀에 구를 굴렸다.

할당된 양의 철구들을 전부 바다에 빠트리자, 그제서야 권준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중지의 신호를 보냈다.

떨어뜨리면 자살행위와 다름없었기에 모두가 자신의 아이를 안는 것처럼 이 포탄을 안고 있었지.

잘못 점화되면 그들은 물론 그들의 동료도, 그리고 이 배마저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현에서 일제히 떨어진 구들이 파도에 둥실둥실 떠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풍상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말은, 바람을 안고 있다는 뜻.

바람을 안는다는 것은, 당장의 파도 또한 비슷한 진행 방향에 있다는 소리다.

그러므로 저 구는 남서쪽으로 향할 것이고.

함대의 경로를 북쪽에서 동쪽으로 잡은 고려의 함대는 영향을 받지 않겠지.

“침로를 틀어라!”

권준이 서둘러 지시했고, 임무를 끝낸 그의 함은 대포의 절대적인 수량이 부족하기에 전열전술에 참가하지 않은 채로 아예 전장을 이탈했다.

그러나, 그가 뿌린 것들은 전열전술에서 열심히 포격을 가하는 어떠한 함선들보다도 훨씬 파괴적이었다.

* * *

조르제가 서둘러 함대를 통솔했다.

전열이 붕괴하며 우익이 포위되는 모습이 눈에 똑똑히 들어왔고, 큰 충격에 빠진 그는 잠시지간 할 말을 잊어버렸다.

대응을 촉구하는 휘하 해적들 앞에서 그저 입술을 짓씹었던 그는 비록 처음에는 크게 당황하여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했지만, 저 멀리 위기에 처한 이근수가 신호기를 맹렬히 올리자 이내 그 의도를 파악하고는 고함을 질렀다.

“함대를 나눈다! 전열에서 빠져나와 우리 또한 단종진으로 저들의 전열에 포위될 아군 함대를 구원한다!”

서두른다면, 조르제 또한 저들의 대열을 반으로 가를 수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난전을 유도할 수 있었고, 난전에서는 수적인 우위가 전부였지.

마침 함대의 진행경로, 즉 선수가 전면에 위치해 있기에 그들은 그저 내렸던 닻을 올리고 돛을 펼치는 것만 하면 되었다.

반쯤은 역풍이지만, 어차피 합종국 함대 또한 이제 역풍의 방향으로 변침했으니 상관없겠지.

말썽을 피우는 해적들이 혼란에 잠기고, 이리저리 도망가려는 의도를 보이자 조르제가 깃발을 올렸다.

어떠한 표식도 없는 붉은 깃발.

그리고 마침 그의 배에서 검은 돛이 펼쳐지며 흰 해골 문양, 졸리 로저(Jolly Roger)가 드러나자 소란은 천천히 진정되어갔다.

― 퇴각하면 모조리 죽인다.

표식 없는 붉은 깃발에서 그의 의도를, 돛에 그려진 졸리 로저에서는 그의 난폭함을.

누산타라는 물론이고 사해에 위명을 떨친다는 이 시대 최악의 해적왕의 명령에 유럽과 아시아 수많은 곳에서 이 누산타라의 바다까지 흘러들어왔던 해적들이 굴복했다.

그러나.

돛을 펼치고 가장 앞으로 나아가던 조르제의 눈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파도에 검은 점들이 떠내려오고 있다.

망원경을 펼쳐 그것들을 바라본 조르제는, 정말로 그때 알 수 없는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

모골이 송연해지는.

죽음을 예견할 때의 그런 공포를.

수십 년간 해적질을 하면서, 정말 칼날이 목에 닿는 정도의 경우가 아니라면 이런 감정은 잘 느껴보지 못했다.

그러니 다른 말로 하자면, 지금 그는 자신의 목에 정말로 잘 벼려진 환도 한 자루가 겨누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었다.

저 괴상하고 큰 구슬(작아 보이지 않았지만 멀리서 볼 때는 그저 검은 구슬에 불과했다.)은 자유분방한 파도에 이리저리 흩어져 떠내려오고 있다.

방향은 그들의 진행 방향에서 역으로.

그것들은 마치 퍼져나가는 죽음처럼 불길해 보였다.

수많은 생각들이 조르제의 머리에 스쳐 갔다.

그 또한 뱃밥을 상당히 많이 먹었던 터라, 불안감의 정체를 알아차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화약통을 담은 배럴인가?’

뭐 어찌할지는 모르겠지만, 불화살이라도 날려 점화를 시킬 건가?

고전적인 화공 전술에는 가끔 화약을 넣은 술통을 내려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그것들은 대체로 조잡했다.

배럴은 방수도 잘 안 되었고, 물에 푹 젖은 흑색화약은 전혀 위협적이지도 않았지.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 저렇게 섬뜩할 정도로 제대로 된 모양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르제가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천천히, 그 물체들은 쉬지 않고 떠내려왔다.

조르제에겐 역풍이나, 저 물체들에겐 순풍이다.

“후ㅌ….”

그는 말을 내뱉기 전, 전방을 보았다.

협공을 받아 극히 위태로워진 전열의 오른쪽.

물러선다면 이번 전투는 패배한다.

그는 이 함대의 총사령관으로서, 계속 전투를 지속해야만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다.

적의 총사령관은 저렇게 앞장서서 죽음을 도외시하고 달려드는데.

그보다 규율과 조직력이 현저하게 낮은 해적집단 출신 함대의 수장이 먼저 꼬리를 만다면 이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가뜩이나 이 물체들은 해수면에 둥실둥실 떠내려오니 잘 보이지도 않는데.

“으으으아아…!”

자신의 직감이냐, 아니면 이성적 판단이냐.

조르제는 비명과 같은 고함을 지르며 그가 타고 있는 기함, 전열함 노사 세뇨르다 바스카와 뒤따르는 함대를 변침시켰다.

“변침하라! 변침해! 당장 이곳을 빠져나가라!”

다급한 명령에 부하들은 영문을 모르면서도 두목의 말에 따랐다.

“……!”

“…….”

그러나 갑자기 침로를 바꾸어 전장과 반대편으로 가는 해적왕의 모습에 전열에 속한 다른 배들의 사기는 급감했다.

위협적으로 올린 붉은 기는 무엇이고, 또 돛에 그려진 해적표식은 무엇이냐.

저들에게 잔혹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줄 것처럼 기세등등하게 나아가다 돌연 저렇게 꽁지를 말다니.

빠르게 변침을 결정한 조르제는 위험을 피하긴 했다.

그러나 그의 부하들은?

가장 먼저 변침을 하는 노사 세뇨르다 바스카와 충돌을 피하기 위해 살짝 동쪽으로 움직인 프리깃 하나에서 갑자기 큰 폭음이 일었다.

― 꾸웅

일반적인 포성과는 사뭇 다른 이 굉음은 분명 화약이 터져 나는 소리였지만, 반쯤은 물에 잠겨 어딘가 먹먹하게 들렸다.

그러나 소리가 포성에 비해 약간 작게 들린다 하나, 그 위력은 대포탄의 피격과는 완전히 달랐다.

프리깃은 충격 때문인지 약간 들썩였다.

피격된 부위에서 화약 연기와 화염이 피어오르긴 했다.

외견상으로 볼 때는 그렇게 심한 피해를 입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프리깃은 마치 거짓말처럼 스르르 바다에 잠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비현실적이었는지 프리깃의 해적들이 대부분 퇴선을 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수장되는 것이 보였다.

물을 빼내려는 시도를 했겠지.

그러나 대체 얼마만큼의 구멍이 났기에 바로 수선하지 못했던 것인가.

결정을 내린 직후 미친 듯이 침로를 변경한 조르제는 선미루에서 목을 빼고 후미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기함과 선두의 함선 몇 척은 겨우 우측으로 틀어 함대를 벗어났지만, 대부분의 부하들은 대열의 관성을 아직 극복하지 못한 상태였고, 저 검은 구슬을 하나둘씩 맞이하기 시작했다.

― 쿵

보았다.

부하들이 탄 범선의 흘수선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나는 것이.

그리고 그 폭발은 너무나 치명적인 상처를 목조 범선에 내버리는 것이다.

흘수선의 위에는 구멍이 뚫린다고 하더라도 물이 새지 않기에 피해는 거의 없다.

흘수선의 아래에 구멍이 뚫린다면, 물은 새어 들어오지만 차 있는 공기의 존재 때문에 물이 빠르게 차오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 폭발이 흘수선에 직격한다면?

선박에서 공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가며, 그와 동시에 물이 미친 듯이 들어오게 되겠지.

그리고 배는 마치 목의 경동맥이 베여 피가 뿜어져 나오는 사람처럼 무기력하게 허우적대다 마침내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

“으아악!”

“침몰한다!”

연횡국의 함대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기 시작했다.

조르제는 그 광경이 너무나 충격적이라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형 군선은 포격전 시 화약고에 정타를 하지 않는 이상 수십 발을 쏴야 침몰한다.

그러나 저 철구는 정말 한 개, 혹은 두어 개에 하나씩 배를 완전히 침몰시키고 있다.

저것이 악마가 아니면 무엇이냐.

“악마다! 조선인들이 바다에 악마를 풀었다!”

* * *

수많은 미신과 함께 살아가는 당대의 뱃사람들답게 조르제는 한 줌의 미련도 없이 남은 부하들을 이끌고 도주했다.

그것을 멀리서 지켜본 이근수 또한 그의 함대를 이끌고 전열을 포기했다.

조르제가 주저하는 사이, 고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기둥을 휘감는 뱀처럼 전열을 타고 올랐고, 그 사이에 위치한 함대를 박살 내고 있었다.

여기서 결정을 빨리 내리지 못하고 지체하게 된다면, 다음의 차례는 이근수가 분명했다.

이근수는 패배감이 잔뜩 담긴 눈으로 이윤신의 기함을 바라보다 마침내 갈라진 목소리로 후퇴 명령을 내렸다.

“퇴각한다.”

“마니항으로 갑니까?”

“아니, 이제는 그곳도 안전하지가 않다. 누산타라의 복잡한 섬들로 가자.”

[작가의 말]

최초의 작렬탄은 프랑스 육군 포병대 장군 앙리 조세프 펙상(Henri Joseph Paixhans)이 1800년도 초에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최초의 기뢰는 오히려 작렬탄의 등장보다 빨랐습니다.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의 신하였던 유기(劉基)와 초옥(焦玉)은 그들이 저술한 화룡경(火龍經)에서 온갖 화약무기를 소개하며 기뢰 또한 서술했는데, 왜구를 효과적으로 물리칠 방법이라 여겼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쓰였다고도 하고요.

그 후로도 대항해시대 잉글랜드에서 랄프 로바드니, 네덜란드의 코르넬리우스 드리벨이니 하는 군인이나 발명가들이 이런 시도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원시적인 기뢰들은 상당히 다루기 까다로웠던 것 같습니다.

사실상 점화한 화약통을 떠내려 보내는 형식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데이비드 부시넬(David Bushnell)이 1770여년경 발명하고 미국 독립전쟁(델라웨어강 전투)에서 사용되었던 기뢰는 이전과는 달리 상당히 독특했답니다.

화약은 상당히 우수하게 방수 처리가 된 통에 가득 실려 있었고, 격발방식 또한 기존의 외부에서 점화시키는 것이 아닌 선박과 충돌했을 때의 충격으로 격발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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