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부얀 해전
세상은 변했다.
원역사라는,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면 그 사실을 크게 체감할 수 있겠으나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이상함도 눈치채지는 못할 것이었다.
이 나라는 원래라면 앞으로 비참한 역사를 기록할 터다.
서양인들이 말하는 동방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명칭은 미지의 국가에 대한 신비함과 찬사라기보다는 오히려 나태함과 무지를 형용했다.
또한 이 나라는, 불과 한 척의 순양함과 네 척의 소형군선(두 척의 코르벳, 두 척의 슬루프 오브 워) 그리고 다른 두 척의 일반 선박에 의해 큰 망신을 당했을 나라였다.
병인양요는 결국 방어를 성공했으니 조선이 목적을 달성한 것이었고, 때문에 조선의 승리라 불러도 큰 오류는 아니었지만 그 승리는 절대 긍지 높은 결과물이 아니었다.
그때의 그 무지함과 몽매함을 극복했다면, 위정자들이 그 뒤로 다가올 미래를 바꾸려 들었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그보다도 더 먼 미래의 일까지도.
하지만 지금 조선은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그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역사의 뒤안길로 완벽하게 사라졌다.
저 먼 동쪽, 진실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이며 ‘영토만으로 지구의 남과 북을 가로지를 수 있다는 나라’는 한참 전부터 늦잠을 자는 이 나라에게 양동이 하나만큼의 물을 얼굴에 부어 깨웠고 그 후로도 재우지 않았다.
그들이 바쁜 상황에서도.
고려에서는 객관적으로도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군선들을 양도했다.
게다가 당장 대금을 지불할 수 없는 조선의 환경을 고려하여 국가차관의 형태로 훗날 받겠다 했으니 조선으로서는 그저 재조지은 이후의 지극한 상국의 은혜임이 명백했다.
전열함 두 척, 순양함급 군함 다섯 척, 초계함급 소형군함 스무 척.
저 병력을 가지고 병인양요가 일어났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선교사를 운운하며 쳐들어온 프랑스 함대를 막는 것뿐만 아니라, 극동에서의 프랑스 제2공화국의 영향력을 아예 거세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장엄한 군선들이 인도되어 조선이 새롭게 개발하고 있는 무역항이자 군항인 인천항에 정박하자 이 광경을 목도한 조선의 장수들과 백성들은 남쪽을 향해 절하며 만세삼창을 하였다지.
― 황상 폐하 만세!
이 배들은 인천항에서 한 번 정비를 받고는 다시 남쪽으로 가 이윤신에게 배속되었고, 이윤신은 이 배들로 원전과 함께 이근수의 재침공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공세를 할 차례였다.
조선은 지금 몇 년간 작황이 좋지 않았지만, 그것은 조선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그랬었고, 그렇기에 방어만 하면 언제건 저 수적들이 곡물을 약탈하기 위해 조선의 백성들을 상하게 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이윤신은 톤도 원정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는 주익상이라는 자의 악의를 뒤늦게서야 전달받았다.
적의 전력은 이제 이근수 혼자만이 아니었다.
명의 황제에게 ‘분봉’받은 해적들은 자신이 비천한 신분에서 벗어나 드디어 타국의 귀족을 칭할 수 있게 되었다고 들떠있었고, 조선의 함대를 박살 내기 충분한 의욕을 가지고 있었다.
그 수는 정말로 엄청나 유럽의 열강조차도 건드리기 부담스러운 규모로 바뀌어 있었다.
― 예상되는 바로는 전열함 세 척, 순양함 열일곱 척, 구형 중범선 서른일곱 척, 초계함 백아흔다섯 척. 이상입니다.
개성 고려의 첩보관이 전달해준 정보에 이윤신도 절로 깜깜해짐을 느꼈다.
대형 군선―전열함과 순양함―의 경우에는 조선도 이제는 적지 않았지만, 코르벳과 슬루프오브워 급의 군선의 수는 정말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았다.
“원수 대감. 이것은 이제 해적이라고 보기 힘들 겝니다. 따지고 보면… 저 연횡국의 정식 함대라 봐야 하겠지요.”
“자네는 좀 쉬게.”
“어찌 쉴 수 있겠습니까?”
끝까지 존댓말이다.
공을 세워 이제는 백의를 벗고 다시금 통제영 우후로 복귀하였지만, 옆구리에 총탄 한 발과 어깨에 포탄으로 터져나간 나무 파편이 박혔던 원전은 제거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더라도 한동안 요양을 해야 했다.
고통으로 병석에서 신음하는 와중에도 이윤신의 자문 역할을 자처하고 있었지만, 그도 내륙에서나 가능했지 환경이 열악한 배에 타면 그 건강이 하루가 나쁘게 악화될 것이다.
‘원정, 가능한 것인가.’
수전에서 믿을 만한 부하도 나설 수 없으니 원정에서는 그 혼자 지휘를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원체 완벽주의적 성격을 가진 터라, 수병들을 철저하게 조련했다.
― 해적들은 해전에 능하며 지휘체계가 실로 자유분방한 적이다. 이것은 그들의 군기가 느슨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반면에 그들이 상황에 실로 역동적으로 대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제장들 또한 수없이 펼쳐질 난전 속에서도 상황을 살피어 올바른 결정을 내야 할 것이야.
― 이 교범들을 숙지하라. 원본은 통우후가 작성한 것이지만, 내가 새롭게 몇 가지를 더 넣었다. 함의 체급별로 전술이 다를 것이다.
― 교범들을 철저하게 숙지하라. 난전에서 기함은 신호기를 올릴 수 없는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 그 황망한 때, 오로지 제장들의 결단과 선택들만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도다.
그 자신까지도 늦은 밤까지 예상되는 전술에 고민에 고민을 더하여 마침내 새벽을 맞이할 때, 동이 트는 방향에서 한 무리의 군선들이 다가왔다.
‘그나마 다행이군.’
경비병의 고함에 재빨리 전투태세를 갖춘 조선군은, 그들의 깃발과 선박의 상태를 확인하자 오히려 환영식을 준비했다.
“오랜만이오.”
이윤신이 반가움을 내비쳤다.
평소 성정 자체가 감정 기복이 크지 않아 미소는 미미했을 뿐이지만 상대방은 읽을 수 있었다.
“선배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백제국 수군대장 모리원총(毛利隆景, 모리 모토후사)은 백제 재상(관령) 모리원취(毛利元就, 모리 모토나리) 이후 부여씨 다음으로 큰 위세를 누린다는 모리가의 일원이었다.
마흔 살이 되지 않는 나이에 일군을 이끈다는 사실은 대단했고 스스로도 자긍심이 넘쳐흐를 것이지만, 모리원총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이윤신에게 다가가 몹시 절도있는 고려국 특유의 군례인 경례를 올리는 것이었다.
있어 보이고 간편했지만 아직까지도 조선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예법이라, 이윤신은 오랜만의 어색함을 느끼고 손을 내저었다.
“이럴 필요는 없소. 공 또한 일군을 이끄는 장수인데…….”
“하늘 같은 선배님께 어찌 무례를 범하겠습니까?”
백제국 사람들이 조금 유별나긴 하다.
이들에겐 아직까지 남왜의 풍습이 남아 있어, 사람과 사람의 서열을 몹시 중요하게 여긴다.
백제 태조 부여의흥마저도 할복의 풍습을 없앤다고 그렇게 노력했었지만 큰 효과를 얻진 못했다 하니까.
그 정도로 이들의 위계와 권위에 대한 집착은 예맥한계 중 가장 심했다.
정작 자제감에서 수학한 다른 고려인들은 이 정도까지 극상의 예를 차리진 않았지.
하는 수 없이 오른손을 올려 눈썹 옆에 두어 예를 받아준 윤신 덕에 오른손을 내린 모리원총의 손에는 윤신과 같은 임관반지가 껴 있었다.
기수를 의미하는 숫자만 달랐다.
“연횡국이 움직였으니, 아국 또한 가만히 있을 수 없지요.”
지긋지긋한 북왜와의 전투를 다시금 앞두고 있는 순간, 백제 또한 바닷길을 계속 유지해야만 하는 필요성이 있었다.
“우리도 함께 싸우겠습니다.”
이윤신은 모리원총, 그리고 그 너머의 백제왕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전하의 뜻을 실로 감사히 여기겠소이다.”
* * *
백제의 증원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동해안을 타고 내려오는 일단의 함대가, 마침내 동래에 다다랐다.
다소 우호적으로 백제를 대한 조선인들은, 이전보다는 약간 더 껄끄러운 얼굴로 그들의 동포를 바라보았다.
“옥저국 수군대장 한윤(韓潤)이오.”
이윤신이 알 듯 모를 듯 미소 짓자, 한윤은 입술을 꿈틀거렸다.
“춘부장께서는 강녕하신가? 내 뵌 지 오래되어 기억이 흐릿하구만.”
“……예, 대감. 강녕하십니다.”
아버지를 언급하는 이윤신의 말에, 한윤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옥저국 서로군단장 한명련은 이원혁과 더불어 사실상 옥저 내에서 가장 위계가 높은 장수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봉명관에 주둔해 있던 이윤신과도 몇 번의 교류가 있었다.
이제 그 양반의 머리도 지끈지끈 울릴 것이다.
합종국에 속해 있으니만큼 명나라에 대한 공동대응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저 북방에서 꿈틀거리는 러시아라는 존재를 맞닥뜨렸으니까.
이 자리를 주선한 고려의 사절까지 총 네 사람이 모이자, 이윤신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이렇게 큰 위기가 있는 순간에 합종국이 뜻을 같이하여 나란히 싸우게 되었으니, 이 사람은 실로 감격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모두가 황상의 덕일 뿐이지요.”
모리원총이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여 보였고, 한윤은 별말이 없었다.
이윤신은 확인차 간단하게 정보를 나누었다.
이미 한윤과 모리원총 또한 고려에게 정보를 제공받는 입장이니 전반적인 상황은 알고 있겠지만.
“이제 이 전투는 일개 해적과의 싸움이 아니게 되었소.”
이미 화약은 잔뜩 쌓여있었다.
조선이 해적들에게 대포를 날리는 순간, 그 화약통은 점화하여 터질 것이다.
그리고 그 불꽃은 사방으로 번지겠지.
한윤이 불쑥 물었다.
“원수께선 육군을 지휘하지 않으십니까?”
이윤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다의 일이 끝나야 다시금 돌아갈 것이오.”
“그때까지 봉명관이 버틸 수 있겠습니까?”
제아무리 성형식 요새의 건축기법을 따라 보강된 난공불락의 요새라 하나, 완벽한 방패는 없기 마련이다.
조선의 대응을 힐난하는 어조지만, 사실상 이윤신이 없다면 믿을 사람 별로 없다는 문맥적 말이었기에 분위기는 썩 나빠지지는 않았다.
“그것은 한 군단장의 적절한 지원에 달려 있겠지요.”
“…….”
한윤은 얼굴을 구겼지만 딱히 반론하지 않았다.
상당한 숫자의 기병대를 가지고 있는 옥저의 도움이 있어야만 봉명관의 안위가 지켜질 수 있다.
옥저로서는 조선이 아니꼽지만, 도와주지 않는다면 정말로 순망치한의 고사가 완벽하게 맞아들어갈 것이 분명했기에 무조건적으로 도와주어야 했다.
상국 또한 그러길 바란다고 말을 해 놓았었지.
“육전에서 우리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습니다.”
모리원총의 말에 이윤신이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소이다.”
이미 그들이 가져온 상당한 숫자의 함선만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제 해볼 만한 싸움이 되었소.”
“듣기로는 저 해적들의 함선이 수백 척에 달한다 하던데, 가당키나 한 말씀이십니까.”
옥저는 애초에 수군이 빈약하여 순양함 한 척, 초계함 일곱 척을 가져왔다.
그것도 그들의 수군 전력 대다수라니 태도와는 다르게 상당한 무리를 하는 셈이다.
백제는 함대가 꽤 컸으나 북왜와의 전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온전히 함대를 징발할 수 없는 상황, 원군으로 온 배는 순양함 다섯 척, 초계함 서른세 척이었다.
이것을 조선의 세력에 합쳐봐야 저 명의 사략해적단에 비할 수는 없었다.
대형 전투함 열세 척, 소형선 육십 척으로 무엇을 하겠는가.
이근수의 첫 번째 약탈 선단보다는 전력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형함의 비중이 좀 더 컸지만, 연횡국의 함대에는 여전히 수적으로 불리했다.
그러나 이윤신의 동공에는 흔들림 없는 결의만이 있을 뿐이었다.
* * *
“우리는 합종의 편에 서겠습니다.”
합종국 함대가 내려가다 유구를 들렀다.
유구의 쇼네이 왕은 분명히 본인의 품계가 더 높음에도 합종 함대의 규모에 질렸는지 버선발로 황망하게 달려와 이윤신의 앞에서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사죄하는 투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허나 대감, 유구의 수군은 너무나 보잘것없고 나약하여 원정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상 군사적 지원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보급을 해준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겨야 했다.
제아무리 동방의 베네치아가 되겠다는 실로 거창한 계획을 세워 놓았어도 유구는 그만큼의 지리적 형편과 정치적 형편이 모두 모자랐으니 이런 큰 전쟁에선 비참하게 이리저리 휩쓸릴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보급거점을 하는 것만으로도 명 조정에서는 유구를 적으로 간주할 것이 분명했다.
스스로를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해안포를 품고 단단하게 웅크린 유구를 떠난 합종국 함대는 처음으로 적과 마주했다.
“주의 함대로구나.”
장경창 이후, 명에게 입조한 번왕, 주는 지금까지 해적들에 대한 방파제로 작용했다.
사실 백제니, 조선이니 지금까지 큰 해적들을 겪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주의 공이 컸을 것이다.
함대의 규모도 쉰 척, 대형함은 오직 다섯 척에 불과했지만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저들의 정예함이다.
이들은 일평생 해적들과 싸워 온 만큼 해상전에서는 실로 대가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백기를 걸고 다가온 주나라의 함대는 이윤신의 기함으로 넘어오더니 예를 차려 보였다.
이휼로부터 사전에 언질을 듣긴 했지만, 정작 적의 함대가 전혀 투쟁의 빛을 띠지 않자, 이윤신은 속으로 상당히 놀랐다.
예를 마친 주 함대 사령관은 다른 이유로 이를 뿌득뿌득 갈고 있었다
“우리는 연횡에 속하지 않겠습니다. 저 주씨 성을 가진 자들이 먼저 옛 맹약를 저버린 이상 우리 또한 그들의 명령에 따를 의무는 없습니다.”
장경창과 주우철이 맺은 상해의 맹은 ‘해적으로부터 중원의 사람들을 보호하겠다’라는 맹약.
그러나 주익상은 이 끔찍한 해적들을 봉신으로 삼겠다는 뜻을 보였다.
이후 수많은 해적들은 광동과 복건에 눌러앉아 자신이 무슨무슨 후며, 무슨무슨 백이며 자청하고 있는 상황.
세력이 큰 해적들이 그렇게 행동하니 나머지 해적 잔당들마저도 뭐 없나 하며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있었다.
주로서는 이 광경이 실로 역겨웠을 것이다.
명 황제 주익상이 이렇게 예전의 맹세를 헌신짝처럼 저버린 이상, 주나라로서는 이를 따를 의무가 없었다.
“천명은 진작부터 고려에 있었지요. 저들이 아무리 우리 땅에 멋대로 살수를 보내 왕 태사(太師, 왕수인)를 살해하였다 하나, 당금 천하의 백성들은 모두 공감하는 내용일 겝니다.”
“알겠소.”
조선의 함대는 이들에게조차 방해받지 않고 루손섬으로 항해했다.
* * *
적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루손섬 북부에는 몇 개의 섬들이 모여 있었는데, 이를 원주민들의 언어로 바부얀 제도(Babuyan Islands)라 불렀다.
합종 함대의 경로임이 분명했으니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 틀림없다.
이윤신의 부관, 입부 이순신이 입을 열었다.
“마니항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으면 어찌할지 고민이었는데, 차라리 좋게 되었습니다.”
이윤신도 동의했다.
“저들로서도 수적인 우위를 누리기 위해선, 전면적인 해전이 편할 테니 이렇게 미리 나와 있었겠지.”
동료 해적이지만 믿을 놈 하나 없다는 것도 그들의 거점, 마닐라 항구에서 기다리지 않았던 이유일지도 몰랐다.
“깃발은 총 다섯 개입니다!”
견시수가 소리를 질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들이 일관된 지휘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모양인 점이다.
조선은 모리원총과 한윤에게 이미 해군 작전권을 이양받은 상태. 적어도 군령에 의한 혼란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명백한 수적 열세. 전열전술은 아군의 피해만 극대화할 것이다.’
반면, 저 틈은.
망원경을 통해 서로 간의 함대들이 조금씩 떨어져 있는 것을 관측한 이윤신이 이순신을 보고 말했다.
“이 수사. 단횡진을 펼치게.”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미 충분히 뜻이 통한 상태였다.
“예.”
이순신이 핏줄이 다 튀어나와 도드라진 손으로 검집에서 환도를 뽑았다.
“신호기를 올리고 북을 쳐라!”
[가능한 신속하게 움직여라, 바람처럼 가볍게 다가가라.]
이윤신의 신호기에 수사 이운룡, 이억기, 권준 등이 화답했다.
육군에 있었기 때문에 이 수사들과는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오지는 않았지만, 수사들은 오히려 북방에서 위명을 떨치는 도원수를 알고 있었고, 원수로 부임하며 작전권을 가진 이후에는 그의 통솔력에 충분히 감화가 된 상태였다.
[명을 받듭니다.]
부하들의 신호기를 바라본 이윤신의 기함에서 다시금 신호기가 올라갔다.
[침로 유지.]
[대형은 일자진.]
[향도함. 기함.]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강한 바닷바람에 미친 듯이 나부끼는 마지막 신호기를 끝으로, 선두의 전열함이 돛을 전부 올리고 나아갔다.
죽음 속으로 직접 나아가는 모습에 다른 선박들도 이를 악물고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