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선
증기기관의 발명 이후, 이 외연기관은 정말로 수만 가지 분야에 쓰였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스럽게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하는 선박, 즉 증기선을 개발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초창기의 증기선은 바다가 아닌 강에서 활약했다.
강물이란 본래 상류에서 하류로 가는 꾸준한 흐름이다.
이곳을 온전히 사람의 힘, 즉 노를 저어 이동할 수도 없는 노릇, 노는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동력원에 불과했다.
따라서 강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선 바람의 운에 기대야만 했으니, 강물의 흐름을 타고 하류로 나아가는 배에 비해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배의 속도는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강폭이 좁아지는 상류로 가면 정말로 나룻배만 다닐 수 있는 물살이 센 환경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정말 꾸준히 동력을 쓸 수 있는 배가 나타나면 어떠했을까.
수요에 따라 만들어진 이 배는 정말로 내륙 수운에 혁신을 가져왔다.
강에서 운용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초기 증기선인 양수호의 속력은 무려 6매듭으로, 당대 내로라하는 쾌속 범선들도 강에서만큼은 그것을 추월하지 못했다.
남려에서는 창양과 해문 간의 화물이동이 열차 운송에 뒤이어 더욱 개선되었고 북려에서는 드디어 거대하고 사방에 뻗어 있는 미시시피강을 제대로 오고 가며 천연 운하의 이점을 누리게 되었다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초기 증기선의 내륙 수운에서의 공헌도는 상당히 훌륭했다.
이후 거친 파도에서의 적응을 거치며 개선된 증기선은 마침내 바다에도 나갔는데, 처음에는 사람들의 기대만큼 큰 경쟁력을 보여주진 못했다.
일단 바닷바람이라는 것이 강바람보다 훨씬 더 강했고 쟁쟁한 경쟁자들, 즉 돛을 이용한 거대범선들은 한계까지 바람을 안으려 노력하고 있었으니까.
최고 속도 10매듭이라는 엄청난 속력을 자랑했던 네덜란드의 플류트 이후에도 조임쇠(Clamp) 등을 이용한 건조방식의 개선 등으로 인해 평균속도 15매듭 이상의 무시무시한 민간용 선박들이 나타났다.
바람나름배(Clipper)니 뭐니 하는 이런 배들은 그야말로 한계까지 바람을 안기 위해 발악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주 돛대의 높이를 늘려 위에 또 하나의 돛을 더 다는 등 바람을 훨씬 많이 안기 위해 노력했으며, 배의 전폭에 비해 전장을 훨씬 길게 늘려 속도를 꾀하기도 했다.
이 같은 경쟁자들에게 초창기의 증기선이 죽을 쑨 것도 당연했을 것이다.
그러나 범선이 가진 도무지 극복할 수 없는 기존의 천부적인 약점은 범선의 노력과는 별개로 항상 존재했다.
범선이기에 바람에 구애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따라서 무풍지대를 돌파할 수 없는 것.
예전의 뱃사람들에게 무풍지대가 어떠한 개념이었는지는, 수많은 민간의 시와 소설에서 잘 나타나고 있었다.
고려는 세상에서 가장 깊은 해상전통을 가지고 있으니, 그만큼 해상에서 발생하는 불운한 사고들도 많았다.
가령 무풍지대 특유의 화창한 날씨,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끔찍한 비극―식량이 떨어져 죽는 모습―들.
경선의와 나침반, 육분의가 있더라도 적도 무풍대는 마치 생물처럼 변화하는 존재였으니 뱃사람들은 그 불운이 자신을 비껴가달라고 항해 전에 항상 하느님과 부처님, 그리고 성제께 빌곤 했었지.
그러나 증기기관은 적어도 그 분야에서는 정말로 완벽한 존재였으며, 증기기관의 선박 탑재 이후, 뱃사람들은 더 이상 무풍지대를 예전만큼 두려워하지 않았다.
기범선, 즉 증기기관과 돛 모두를 장착한 배는 바람을 얻은 만큼 빨랐고, 항해의 안전성도 확보했으며 따라서 생존률과 정시성을 현격하게 높였다.
외부에 수차를 장착한 함선, 즉 외륜선은 고려에서 널리 퍼져나가고 있었고, 제국 전체에 열차와 함께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지.
고려는 그 후로, 자신의 영역 내에 엄청난 수의 저탄장(석탄 저장소)를 만들며 차세대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군함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실상 갤리온의 파생형이라 할 수밖에 없는 기존의 전열함은 나름대로 발전해 오긴 했지만, 그것은 단지 덩치가 커지고 커진 덩치에 걸맞는 대포를 더 많이 장비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렇게 커진 덩치는 오히려 그들의 기동성을 심각하게 잡아먹었다.
가급 전열함과 나급 전열함에 뒤이어 새롭게 건조된 다급 전열함은 바다에 나가 잘 항해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많은 대포―125문―를 과다하게 적재한 상태였다.
다급 전열함은 고려에 총 세 척으로 그렇게 많이 건조되진 않았으나, 어찌 되었든 군함은 전반적으로 목조범선에서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증기기관의 동력원이 문제였다.
배의 양측에 달린 거대한 수차는 너무나도 공격받기 쉬운 표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쏠 수 있는 대포의 숫자마저 줄여버리는 거대한 장애물이었다.
그래서, 수차를 이용한 외륜증기군함은 더 이상 개발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래의 흐름이 어디에 있는지는 명백했다.
또한, 그 미래의 흐름을 자세히는 아니지만 수박 겉핥기로나마 알고 있는 자도 있었고.
상민은 전열함 시대 이후 도래할 것이 분명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먼저 맞이하기 위해 장구한 계획을 세웠다.
물론, 지금의 기술 수준에서는 많은 선행과제들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정표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크단 말이지.
가령, 증기기관의 구동부로 수차 대신 물 밑의 소용돌이 추진기(Propeller)를 쓰자는 개념같이.
이를 속칭, 철갑함(Ironclad) 계획이라 했다.
* * *
개천 158년이자 서기 1433년, 유럽이 백년전쟁이 막 끝난 시점.
고려는 그때부터 최초의 축구 경기가 시작되었고, 바야흐로 축구의 역사를 열었었다.
초창기 고려 축구의 세계에는 여러 경쟁 관계가 있었다.
가장 먼저 창단된 창양과 청해 축구단의 경쟁 관계는 축구의 역사가 시작된 그때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유구한 관계였지.
둘 모두 몹시 부유한 도시들이었으니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그 사람 다음을 꼽아보자면, 아마 해문의 두 단체 간의 관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해문에는 황립조선소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해문의 황립조선소는 축구 경기 이전의 동서고려 시절 때부터 있었으니 이 시설은 꽤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셈이다.
증축에 증축을 거듭해 이제는 과거의 모습을 찾기 힘들 만큼 커져 있었지만.
반면 해문의 조병창, 혹은 병기창은 조선소보다는 조금 후대에 들어섰다.
이 황립조병창은 본래 태조 해민이 창양 근교에 세웠지만, 창양이 커지고 인구가 많아지며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말 못 할 이유로 더 이상 창양에 자리할 수 없게 되자 해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군함에 쓸 대포를 생산하니 바닷가에 있는 것도 괜찮았기에 그때의 이전은 별 탈 없이 진행되었지.
그리고 그때부터, 이 축구 관계에서 두 단체 간의 악연이 시작되었다.
황립조선소의 노동자들은 일과가 끝나면 모여서 공을 찼는데, 나중에는 직접 축구단을 열어 당시 고려의 1부 모임이라 할 수 있는 ‘가급 축구 경쟁전 모임(Ga Class Football Competitive League)’에 참가했다.
훗날 이 가급 축구단 모임이 도전자 모임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폭발하는 수요와 제국의 팽창에 따른 거리적―시간적 한계로 지역별로 세분화되자, 황립조선소 축구단은 남려 남부동해안모임(South Koreanica South―East League)에 속하게 되었다.
전통적 강자들인 창양 축구단과 청해 축구단, 건양 축구단들 사이에 있어 우승 경쟁은 엄청나게 힘들었지만 그만큼 관심도도 높았고 선수들의 임금도 상당했기에 나쁘지는 않았다.
1부의 1부 모임이라는 명칭이 괜한 것은 아니지.
그러나 황립조선소 축구단은 그들 지역 내의 황립조병창의 노동자들이 축구단을 새롭게 만들면서 해문의 축구 지지자들을 절반쯤 빼앗기고 말았다.
황립조선소(Imperial Docks) 축구단이 이 얌체 같은 황립조병창(Imperial Arsenal) 축구단을 미워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로, 이후 둘 사이의 축구 경기는 선병전(船兵戰)이니 뭐니 하며 유별난 경쟁 관계를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다.
개천 327년(CE1603).
해문.
고려 군무부 병기개발단.
“그래도, 공과 사는 좀 구별합시다!”
부장(副將, 중장) 계급을 단 장성 한 명이 분노한 채로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일터에서 장인들끼리의 몸싸움이라니!
그것도 전전날의 축구 경기 때문에!
고된 노동을 하느라 온몸이 우락부락해진 장인들끼리 맞부딪혔는데 유혈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오직 황상의 성덕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 감정을 축구장이 아니라 일터로 가져오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짓이오?”
“이치들이 먼저 우리 조병창을 만년 육(六)병창이라 놀려….”
“그만!”
직속상관이라 보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군무부는 엄연히 그들의 상급 기관이었고 나이도 더 많은 어른의 질타에, 조선소의 수석장인과 조병창의 수석장인이 마지못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고려국 해군 부장이자 군무부 병기개발단장인 나대용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가 조선에서 고려로 귀화한 지는 세월이 좀 지났고, 이제는 조선의 그 무엇도 그립지 않았지만 가끔은 이 토종 고려인들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웠다.
‘그놈의 축구!’
게다가 이번 수석장인들은 둘 모두 서른 후반, 수석장인치고는 꽤나 젊었다.
그래서 이런 일이 발생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럼, 화해의 표시로 악수라도 나누시오.”
똥 씹은 얼굴로 두 장인이 서로의 굳은살이 잔뜩 배긴 손을 내밀어 마지못해 악수를 했다.
“포옹도 하시오.”
“예?”
“잘못들었습니다?”
“얼굴에 아직도 불만이 가득한데, 언제까지 그리 행동하실 거요!”
가식적인 악수에 화가 잔뜩 난 장군의 말에 장인들이 머뭇거리다가 포옹을 했다.
“앞으로, 뭐 서로 간의 사적 감정으로 인해 병기개발이 지체되거나 그 안전성 문제가 대두된다면, 내 직접 상부에 보고하여 적절한 조치를 내려달라 할 것이오. 만약 이 사실이 시중이나 혹은 황상께라도 들어간다면 그대 장인들뿐만 아니라 축구단의 폐쇄조치까지 이어질 수도 있겠지.”
““헉!””
두 수석장인은 헛바람을 내뱉었다.
마지막 말은 심히 큰 문제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니 잘 좀 하시구려. 두 분 다 아시다시피 지금은 국난이오, 국난. 내 전 수석장인들께 편지라도 써서 그분을 이리 초빙하리오리까?”
꼬장꼬장한 늙은이들의 얼굴을 떠올린 두 수석장인이 고개를 열심히 흔들었다.
축구단의 제국전(帝國戰) 직행표를 두고 일어난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한숨을 내쉰 나대용은 미리 작성된 서류들을 가져와 수석장인들의 앞으로 내밀었다.
“일단, 두 분께선 이 자료들을 읽어보시오. 1급 군사기밀이니 머릿속에 집어넣기만 하시구려. 밖에 내보내지 마시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나대용은 그에게 보고서를 읽을 시간을 주고자 입 안에 커피를 털어 넣고는 자신의 집무실 창에 다가가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휑한 건선거들.
계속 긴축재정을 하고 있는 터라 새롭게 건조되고 있는 대형함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은 중형함에 불과했다.
사상 초유의 국난이 일어난 지 벌써 삼 년의 시간이 흘렀다.
고려는 한바탕 고열을 앓다가 이제 서서히 제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괜히 다시 축구 경기가 개최된 것이 아니겠지.
식량 위기는 천천히 극복해 나가고 있었고, 조정은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태동산맥 중부고원지대의 복구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몸에는 잔열의 기운이 남아 있는 상황.
한림원에선 기후가 예전 같지가 않다는 소리를 하는 학자들이 있을 정도였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고려가 돈 잡아먹는 해군 건함계획을 줄줄이 취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지금 이 시대의 흐름이 완벽하게 뒤바뀌는 처지에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나라들은 아직 모르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군사적 발전에 기원한 것도 컸다.
고려는 무기 개발을 등한시하지 않는 나라였다.
물론 선두로 치고 나가는 국가답게 절박감과 절실함이 그렇게 크진 않았고 군사 병기의 도입에 관해서도 군 특유의 보수성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기술적 진보는 동시대의 다른 나라에 비교할 수 없었으니 그 흠결은 덮어지고도 남았다.
그러니 고려의 군무부 산하 병기개발단은 아마 전 세계에서 가장 최첨단의 무기를 다루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그건 장담할 수 없겠지만.’
나대용은 비록 대외적으로는 병기개발단장의 일을 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디에 가서 말을 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조직에 속해 있었다.
‘…나도 이 형처럼 그냥 조선에 남았어야 했는데.’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 판단한 나대용이 몸을 돌려 책상에 앉았다.
두 장인들도 앙금을 풀었는지 두런거리며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 어떻게 생각하시오?”
조선소 수석장인이 당황스럽다는 듯 볼을 긁적였다.
“처… 철로 덧댄 배라니, 이게 물에 잘 뜨겠습니까?”
사실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배는 원체 큰 물건, 또한 쇠는 몹시 무거우니 선박을 설계하는 장인으로서는 선박의 안전을 염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작 실험작을 본 나대용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조선소 수석장인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머릿속에 열심히 설계를 욱여넣어야만 했다.
공돌이가 뭘 하겠는가, 하라면 해야지.
“착수해 보겠습니다.”
나대용의 눈이 옆으로 향했다.
조병창 수석장인은 면도를 하였지만 금세 자라난 수염으로 인해 까슬까슬해진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통적인 탄환 말고도, 작렬탄에도 견딜 수 있게 만들라, 이런 뜻이시지요?”
“바로 그렇소.”
조금은 웃긴 일이지만, 육군 포병과 그 물자를 개선하고 있던 조병창에서의 진보가 기존 해군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기껏 포탄 하나다.
따지고 보면 대포나 박격포로 진천뢰를 쏘아 내보내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작렬탄은 기존의 모든 군사 체계와 이론을 한 번에 뒤집는 발견이었다.
특히나 해군에선 더더욱.
그 뒤로 목재로 만든 함선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 해군과 군무부의 수뇌부들은 차세대 군함을 개발하는 것을 숙원으로 삼고 있었다.
나대용은 지금 이 장인들을 불러놓고 계획서를 하달하기 한참 전에 상민에게 받은 철갑함 계획을 해군 수뇌부들에게 보고했고, 그 이후 성제의 탄신일날 선물을 기대하는 어린 꼬마아이처럼 두 손을 모으고 있게 된 해군 장성들은 더 이상 전열함에 대해 미련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대전략 기조, 1>2+3+4가 깨지면 어쩌냐고?
어차피 지금 세계는 해전보다는 육전에 골몰하고 있고, 설상 해전에 싸운다고 하더라도 저 열강들의 세력은 고루 쪼개져 하나로 합치지 못했으며 따라서 고려에 마땅히 대항할 세력도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보고서를 받은 해군장성들은 머리 옆에서 누가 대포라도 쏜 것마냥 큰 충격에 빠진 상황이었다.
긍정적인 의미로.
‘잠시간의 후퇴일 뿐이다. 이 계획들이 차츰 완성된다면 감히 누가 고려의 해상패권을 넘보겠는가.’
철갑함 계획은 모두 다섯 단계.
고려는 그중 첫 번째 단계, 즉 영광(Gloire)호를 건조하기 위해 첫발을 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