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세기
[제국은 항상 도전받을 것이다.
시련은 한두 번에 그치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그중 한 번은 제국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을 수 있을 게다.
그러나 절망하지 말라.
끝내 그 위기들이 너희를 단단하게 만들리라.]
언젠가는 위기가 찾아오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꽃도 영원히 피진 않고, 제국도 영원히 번성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동안의 시련은 저항 가능했다.
고려의 가장 큰 위협이었던 모기는 지금도 여전히 가장 많은 고려인들을 죽이는 존재였지만, 키나의 발견 이후 적어도 학질의 위세는 한층 수그러들었다.
내부의 분란도 있었다.
우생학 또한 여전히 그 잔재가 유지되어 있었고, 인성이 그릇된 자라면 편협한 말을 내뱉었지만 이제는 사회 관념상 그것이 좋지 않다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진 상황.
기타 다른 문제들은 썩 해결 가능해 보였다.
가면정치의 종식 이후 새롭게 선출된 시중들은 비록 반대파들에게 열렬한 공격을 받고, 중서성 의회에는 서로 고성과 심지어 주먹다짐도 난무하게 되었지만 그렇기에 이렇게 표면으로 드러난 갈등은 이 세상 어떤 나라보다도 가장 높은 해결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허나 그건 인간의 오만일까.
제국을 위협하는 세 번째 적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았다.
* * *
개천 325년(CE 1600) 2월 4일.
남려.
백석(白石, Arequipa).
홍진과 쿠스코의 남쪽에 위치한 옛 타완틴수유의 핵심 거점 중 하나였던 아레키파는 쿠스코와 타완틴수유의 주요 세력권인 성호(聖湖, 티티카카 호수)에서 서쪽의 바다를 잇는 주요한 관문 중 하나로 예전부터 중요한 취급을 받았다.
고려가 타완틴수유를 정벌하고 지배권을 행사한 후에도 이 거점의 중요성은 전혀 퇴색되지 않았고, 오히려 백석(白石)의 이름을 부여받은 채 남려 고원지대의 핵심 지역으로 발돋움했었다.
태동산맥 중부의 고원지대는 이곳의 원주민들 출신 고려인들의 숫자도 여전히 많았을 뿐만 아니라, 일교차가 크고 건조하더라도 열대우림인 남려 동해안보다는 살기가 좋았기 때문에 배가 오갈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사람의 수가 많았으니.
황실 또한 쿠스코에 별궁을 만들며, 상당히 세력이 큰 옛 타완틴수유와 아타카마, 그리고 기타 수많은 고원지대 출신 고려인들을 신경 쓰고 있었지.
백석이라는 이름답게, 흰색의 유문암과 흰 벽돌로 지은 마당이 넓은 고려식 이층 가옥에서 한 가족이 작별의 순간을 나누었다.
나이가 이제 겨우 열 살은 될까 싶은 어린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아내는 현관에서 남편이 떠나기 전에 몇 번이고 다시금 그의 옷매무새를 신경 썼다.
괜스레 두루마기 자락을 매만지질 않나, 옷깃을 여미지 않나.
기온변화가 극심한 건조 고원지대라 덥고 추운 것에 건강이 나빠지지는 않아야 할 텐데.
아내의 애틋한 마음을 알고 있음에도, 남편은 그저 묵묵하게 이별의 순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녀오세요.”
“아빠, 다녀오세요!”
남편은 아들의 머리를 한 번 헝클어뜨린 뒤 아내와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갔다 오리다. 창양의 처남한테도 들러 안부를 전해주겠소. 운이 너도 학교 공부 열심히 하고 있거라.”
금방 갔다 오면 될 것이다.
올 땐 그녀와 아들을 위해 몇 가지 선물을 사 오는 것도 좋겠지.
* * *
그는 성호(호수 그 자체뿐만 아니라 호수의 도시(Juliaca)를 칭하기도 한다.)로 일단 방향을 잡았다.
결국 목적은 창양에 들러 염료를 파는 것인데 왜 남쪽이 아니라 정반대인 북쪽으로 향하느냐 누군가 묻는다면, 남자는 그에게 어디 깊은 태수의 열대우림에서 살다 오셨소? 하고 도리어 반문할 것이다.
마침내, 쿠스코―성호와 창양 간의 경호선이 완공되었으니까.
이것은 태동산맥 중부고원의 주민으로서는 정말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과거에 부설된 창양―쿠스코 간의 도로는 그 긴 환경 때문에 관리가 부실했으니까.
그것을 걸어서 창양으로 향한다?
북령부터는 강가의 배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끔찍하게 먼 여정이자 힘든 행군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누구는 멀리 돌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서해안으로 가, 배를 타고 남부항로를 이용하기도 했으니까.
이러한 환경 덕에, 이 오지 아닌 오지가 고려에 완전하게 편입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역대 황제들이 늙어 제위를 양위하고 이곳에 와 현지의 민심을 살펴보는 관습 아닌 관습을 지켰기 때문이 아닐까?
허나, 기차가 들어선 이후의 삶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오랜 걸음 이후, 남자는 성호에 도착한 뒤 곧바로 성호역으로 다가가 익숙하게 매표소에 들러 차표를 끊었다.
백석에서 성호까지 걸어오느라 온몸은 먼지투성이가 다 되었고 자신도 기진맥진할 정도로 피로감이 높았지만 어차피 열차에 탄다면 쉴 시간은 충분했다.
“제도까지 얼마요?”
“3환 25전입니다.”
은전 세 개가 좀 넘는 가격.
어쩌면 비싸다고도 볼 수 있었지만, 제국이 이 멀고 험한 곳에 기나긴 열차 노선을 부설하는 데 들였던 비용과 앞으로도 이 노선을 유지 보수하기 위한 비용을 생각해보면 도리어 상당히 싼 가격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백석과 성호까지의 거리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백석과 창양 간의 거리는 말도 다 못 하겠지.
이곳과 창양 간의 거리는 저 유럽으로 따지자면 모스크바와 파리 간의 거리와 비슷하다고들 한다.
실로 나라 몇 개를 오가는 거리.
황상께서 철도회사를 황립기업화 하신 이후, 든든하게 지지를 받고 있는 것도 이같이 피부에 와 닿는 친신민적인 정책 덕분이 아닐까.
남자도 그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아무런 저항심을 느끼지 않고 선뜻 은전 3개와 은전의 1/4 가격의 가치를 지니는 일반적인 동전보다도 더욱 큰 하나의 커다란 동전을 내밀었다.
그는 표를 품속에 넣고, 흘깃 매표소 옆의 큰 괘종시계를 바라보았다.
‘열차 배치표상으로는 시간이 남는군.’
일단 배를 채우자.
역 앞에는 식당이 많았고 그는 식당들의 간판을 살펴보다가 마침내 주막 하나를 골라 방문했다.
― 원조할매국밥
주막에는 대낮부터 얼큰하게 취한 인간들이 있었으나 그는 딱히 아침부터 술을 입에 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식사만을 주문할 뿐이었다.
안 그래도 이곳에 오기까지 오직 건량과 말린 육포, 페미컨 등으로만 식사를 때웠기에 그는 제대로 된 밥이 너무나 그리운 상태였다.
그는 주저 없이 손을 들어 주문을 했다.
“주모, 국밥 한 그릇이랑 감자전 하나만 주시오.”
“예에, 드립니다요!”
비록 이곳에서는 쌀을 재배할 수 없는 기후였고 대부분의 주민들은 감자를 주식으로 하고 있었지만, 철도의 개통 이후에는 이렇게 쌀을 이용한 음식들도 상당히 흔해졌다.
고기가 푸짐하게 든 국밥에 고춧가루를 잔뜩 치고, 거기에 매콤한 김치를 먹어 든든히 배를 채운 남자는 식욕을 해결하자 천천히 도시를 둘러보았다.
열차의 개통 이후, 백석보다 확연하게 번화하기 시작한 성호는 구경하기 힘들다는 4층 이상의 건물들도 몇 군데나 보였으며 역 근처에는 상당히 큰 제국교의 성전도 들어와 있었다.
이발소도, 고급 술집도, 목욕탕도.
간단한 연극을 할 수 있는 작은 공연장도.
심지어 간이 나무 좌석과 차양막 등이 설치된 축구장도 있구나.
이제는 확실히 성호가 백석에 비해 잘나간단 말이야.
축구장을 보고 있으려니, 아들놈에게 줄 선물이 생각났다.
‘창양에 가면 고무공의 가격이 얼마인지 확인을 해봐야겠구나.’
유명한 초승달 회사에서 만든 고품질 고무 축구공은 아니더라도 아들을 위해서 제대로 된 공 하나 정도는 선물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고려의 아이들은 두셋만 모이면 이곳저곳에서 고무공을 차며 놀았으니까.
― 뿌우우
기차 특유의 소리가 들리며, 이윽고 저 멀리 아득한 지평선에 깔린 철도에서 기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천천히 정거장으로 다가갔다.
어차피 저 멀리서 모습이 보였다 한들, 이곳까지 오는 것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 분명했기에.
초창기의 기차는 거의 사람의 발걸음 수준이라고 했다지.
그것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말의 강구보 수준으로 올라왔다 하니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열차의 외관도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열차의 구동부가 과거처럼 요란하게 왕복운동을 하는 충배와 톱니바퀴, 그리고 열심히 기관에 석탄을 넣는 노동자의 모습이 완연하게 드러나지 않았고 대신 제대로 된 구동부의 칸 안으로 전부 들어갔다.
바퀴는 여러 개가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것만 보일 뿐.
안정감과 기관의 효율 모두 개선한 상황.
덕분에 속도는 빨라졌으며 힘도 좋아져 몇 개의 칸을 더 끌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역으로 다가와 정차한 열차에서 승무원이 내리더니 검표를 하기 시작했다.
남자도 짐을 챙기고는 승무원에게 다가가 자신의 표를 내밀었다.
이 자들은 승객의 표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를 조사했는데 폐쇄된 공간인 열차에 불량한 사람들을 태우지 않고 골라내는 의미겠지만 그렇게 효과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이름은 구문표, 목적지는 창양, 목적은 염료 판매. 맞습니까?”
“맞소.”
“확인했습니다. 다만 삼등석은 두 칸 더 밑으로 가셔야 합니다.”
“알겠소.”
열차에는 세 등급의 칸이 있었는데, 전면부부터 일등석, 이등석 삼등석으로 불렸다.
3환 25전을 내고 산 삼등석의 좌석과는 다르게 이등석과 일등석은 그보다 훨씬 비쌌는데, 이등석은 몰라도 일등석은 일반적인 서민이라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정도였다.
듣기로는 별도의 객실에 호화로운 침대가 있다는데.
편하기야 하겠지만 그만한 값어치가 있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문표는 이윽고 삼등석 칸으로 들어가 주변을 둘러보며 빈 좌석을 찾았다.
이미 삼등석의 객실 칸 대다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쿠스코에서 온 사람들이겠지.
꼼짝없이 서서 가야 하나.
배를 채우니 몰려드는 피로는 이미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고 눈 또한 당장이라도 감기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비어있는 이층 침대가 하나 보였다.
냉큼 그곳에 다가가, 짐을 푼 그는 주변의 침대에서 곤히 잠든 승객들을 살펴보고는 가방의 염료상자와 그 안의 자기병들을 확인한 뒤 보관함에 넣고 이내 까무룩 잠에 들었다.
* * *
일이 고약하게 되었다.
손버릇이 나쁜 사람이 있을 줄이야.
적홍염료가 많이 생산된다 하더라도, 염료는 아직까지도 상당히 비싼 물품이었기에 염료상자를 잃어버린 문표는 발을 동동 굴렀다.
한 해의 수입인데, 당연한 소리.
이것을 제값을 주고 팔아야만 아내와 아들을 먹여 살릴 수가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열차마다 치안을 확인하는 경관이 한 명씩은 있었기에 그는 서둘러 일등석과 이등석 사이에 위치한 승무원실로 다가가 고했다.
“그래서, 염료상자가 없어졌단 말입니까?”
나태해 보이는 경관 하나가 카카오 차를 마시며 음화(淫畫)가 그려진 책을 보다가, 문표가 황급히 달려오자 서둘러 책을 신문 밑에 넣어 가리고는 그를 불만스럽게 바라보았다.
“거, 품에 좀 안고 자지 그러셨소.”
사연을 들은 경관의 말이 저렇다.
열차 경관은 경관들 중에서도 가장 실력이 낮은 자들이 배치된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나.
실력만큼이나 인성도 형편없어 보이는 경관이 남자의 채근에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툼한 배에 방금 전까지 먹고 있던 과자의 부스러기가 보였다.
“크흠, 재미가 없으려구.”
경관과 함께 객실로 돌아간 문표는 드디어 같은 칸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조사할 수 있었다.
조사받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제각기 불만이 가득해 보였지만, 큰 재물을 잃어버린 남자의 사연도 있었고 공권을 행사하는 경관에게 대드는 일도 썩 좋지는 않았기에 불만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없구려.”
“…….”
“설마 전 칸을 전부 조사하라는 것은 아니겠지?”
“어…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분명 범인은 이 객실들에 있을 텐데….”
“이보시오! 어찌 사람이 경우가 그리 없을 수 있소! 일등석의 귀빈들까지 조사할 셈이오?”
“…그것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이와 인접한 칸들은….”
크흠.
배불뚝이 경관이 콧잔등을 문질렀다.
“조금 수고로울 것 같기는 한데?”
“…….”
대놓고 뇌물을 요구하는 경관에, 그는 어쩔 수 없이 품에서 은전 두 개를 그에게 건넸다.
“이러면 어쩔 수 없지. 딱 두 칸만 조사해봅시다.”
* * *
은환 하나에 한 칸.
그러나 수색은 이번에도 효과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탐욕스러운 경관의 주머니만 채웠을뿐더러, 한 해의 수입을 온전히 날린 문표가 절망에 빠진 얼굴로 객실들을 배회했다.
그러나 그가 뭘 할 수 있겠는가.
마침내 열차의 식당칸으로 간 그는 독한 소주를 시키고 입안에 그것을 털어 넣었다.
가족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그가 조금 더 조심할걸.
산업혁명으로 인해 사회가 복잡해지고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확고해지면서, 전통적인 도덕관은 많은 부분에서 위기를 맞았다.
게다가 이 나라는 땅덩이가 넓은 만큼 많은 범죄들이 해결되지 않고 묻히는 곳이다.
조정은 예전에 비해 치안력을 계속 증가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지만, 원체 넓은 토지에 사람들이 분산되어 있다 보니 일반적인 신민들이 그 혜택을 온전히 누리기는 힘들었다.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습니까.”
계속 소주를 입 안에 털어 넣으려니, 젊은 남성 하나가 그의 맞은편에 다가와 앉았다.
절망에 빠진 그는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무언으로 축객령을 주었지만 젊은 남성은 끝까지 채근해 보일 뿐이었다.
사람이 뭐 이리 궁금증이 많단 말인가.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솔직히 억울했기에 누구에게라도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 싶기도 했다.
“쉬운 일이군요. 갑시다.”
마침내 남자로부터 전후 사정을 들은 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뭐요?”
“당신의 물건, 되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 *
― 똑똑똑
다시금 승무원실을 찾은 문표가 문을 두드렸다.
“…….”
안에서 대답은 없다.
“비켜보시오.”
젊은 남성은 혀를 차더니, 문표를 비키게 했다.
그런 뒤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는 문을 발로 차 열었다.
― 쾅!
“중앙수사국이다! 문 열어!”
딱히 안에서의 대답을 기대하진 않은 것 같았다.
젊은 남성의 과격한 행동에 문표는 입을 벌렸으나 이윽고 안에 보이는 광경에 또 한 번 놀랐다.
그가 찾아다니던 염료상자가 떡하니 경관의 책상 위에 있었다.
배불뚝이 경관과 맨 처음 그의 표를 검문했던 승무원은 그 책상에 둘러앉아 자기병들의 뚜껑을 열어 홍색의 염료를 관찰하고 있었고.
“내 이럴 줄 알았다.”
“네… 네놈은 누구냐!”
경관이 놀라 화들짝 일어났고, 승무원 또한 서둘러 자기병들을 치운 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중앙수사국이라 했지 않으냐. 손을 앞으로 내밀어라.”
젊은 남자는 웃음기를 지운 채,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에 담긴 냉혹함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쾌활하게 말을 주고받고 있던 문표가 가장 서늘하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
경관은 떨리는 눈으로 그와 문표를 거듭하여 바라보더니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었다.
아니, 꺼내려 했다.
― 타앙
먼저 경관의 품에서 피보라가 튀어 올랐다.
그러나 경관이 쓰러짐과 동시에 승무원도 품 안의 총을 꺼내는 것이 보였다.
“수… 수사관님!”
자신보다 다섯 살은 더 어려 보였지만, 그 젊은 나이에 중앙수사국의 집행관이 되었으면 존댓말 정도야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가뜩이나 지금 자신을 위해 이렇게 싸워주는데.
하지만 지금은 분명한 위기였다.
권총은 길이가 짧아 재장전이 쉽다고 하나, 여전히 화약과 총알을 넣고 뇌홍뚜껑이나 화약접시를 장전하는 것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 탕
그래서 분명히 두 번째 총성은 승무원에게서 났어야 정상이었을 텐데.
그러나 동맥을 관통했는지 피거품을 물며 목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것은 승무원이었다.
“…….”
오연히 그들을 바라보는 집행관이 독특하게 생긴 그의 권총의 공이를 풀고는 품속에 넣고 예전의 쾌활한 얼굴로 돌아와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일단 사람을 죽였으니 사유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번엔 귀하께서 절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작가의 말]
글에서 등장한 집행관의 총은 퍼거션 캡 형태의 초기 리볼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