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280화 (280/653)

날조

대동양 어딘가.

새벽호.

정영택 교수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사학계에는 삼별초의 이동에 관해 크게 두 가지의 가설이 있습니다.”

둘 다 틀렸다.

물론, 그 사실은 자신만 확실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자신은 이 틀린 가설들 중 하나를 옳게 만들어야 하는 고약한 입장이다.

새벽호 상민의 집무실 왼쪽 벽에는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물론 지도는 기밀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대외비 수준의 보안을 자랑하는 물건이었지만, 군부나 학계의 학자들은 조정의 허가를 받아 사용할 수 있었지.

이것처럼 이렇게 자세한 지도는 보기 드물었지만.

두 남자는 그 앞에 서 있었다.

“말씀해 보시게.”

“첫째로, 태평양 횡단설입니다. 말 그대로 삼별초가 태평양을 횡단하여 남북려 대륙에 도착했다는 가설입니다.”

“흐음.”

“비록 그것을 주장하는 학파는 그 경로가 북태평양인지, 혹은 남태평양인지를 두고 의견에 차이를 두고 있습니다만.”

“그렇다면, 북태평양을 주장하는 이들은 삼별초가 북북항로(북대서양 북부항로)를 이용했다는 소리로군?”

“예. 이 아득한 너비의 바다에 만약 해류와 해풍까지 따라주지 않았다면 모두 꼼짝없이 기아가 되었겠지요.”

“그래도 여전히 너무나도 머네. 삼별초의 초기 함선은 너무나도 작고 형편이 없어. 그대도 그 맹선을 보지 않았는가?”

“예, 당하. 물론 그렇습니다만…….”

상민이 손바닥을 펼쳤다.

시중, 당하.

저 지긋지긋한 소리. 이젠 듣고 싶지가 않다.

정녕당은 깔끔하게 비웠다.

자신의 흔적들은 전부 챙기거나 불태워 없앴지.

후대의 시중을 위해서.

막상 그렇게 퇴직을 하고 저런 소리를 들으니 온몸에서 거부반응이 몰려왔다.

그 있잖은가.

휴가 기간,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을 무심결에 보았는데, 그 액정 표면에 상사의 이름이 적혀있는 그런 기분.

어우.

“이제는 당하라고 부르지 말게, 그저 어르신, 혹은 회장님, 그렇게 불러 주시게나.”

정 교수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어찌 제가…….”

“자네는 내가 퇴직을 한 기쁨조차 누리게도 못하게 하는구만.”

상민의 싫은 소리에 정 교수는 눈을 질끈 감고는 마침내 모기소리마냥 작은 소리를 내었다.

“예… 회장님.”

어르신보다야 회장님이 더 낫겠다 생각한 모양이다.

상민이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마침내 살면서 저런 소리를 들어보는군.

그 지위를 감히 비교할 순 없겠지만 오랫동안 들어봤던 폐하니, 당하니 이런 소리보다 그래도 예전 삶에서 한 번도 듣지 못했던 호칭이 지금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이걸 보시지요.”

정영택은 공책을 펼쳤다.

화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질기고 무거운 종이로 된 넓은 공책은 앞과 뒤가 단단한 가죽으로 되어있어 꽤 견고해 보였다.

“음…?”

공책에는 독특한 배의 얼개그림(스케치)이 그려져 있었다.

“이 그림은 통가 부족의 거대 카누를 묘사한 것입니다.”

상민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그림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아, 그래 통가라는 곳이 있었지.”

남태평양의 남위 15도 부근에 위치한 곳.

이곳에는 비치(피지)섬과 사모아섬 등 몇 개의 섬들이 모여 있었는데, 이곳을 점유한 부족은 스스로를 통가라 부르고 있었다.

섬들의 면적은 대부분 작다.

주요한 섬, 비치섬과 바누아레부섬 자체야 각기 제주도의 10배, 4배로 정도로 생각보다는 크지만 봉역 전부가 외부의 교류가 있기 힘든 넓은 바다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 한계는 명백했을 것이다.

그러나 통가는 그들의 전성기에 통가 주변의 수많은 섬을 전부 그들의 세력권에 넣었던 듯싶다.

이 통가 부족들의 존재는 고려의 학계에 상당한 충격을 선사했다.

공책에 그려진 대로, 이들의 선박은 단순히 카누를 크게 만든 뒤 그 두 개의 중심부를 나무판자로 이어 만든 배에 불과했으니까.

거의 백 명이나 탈 수 있었다고 짐작은 가능할 정도의 크기였으나 안정성과 식량의 보관 가능성은 여전히 형편없었다.

폭풍과 비바람이 몰아친다면 금방 이 백 명의 부족민들은 바다에 수장되겠지.

“하지만, 이들은 분명 이런 배를 타고 바다를 누볐습니다. 그 사실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 인간이란 존재는 실로 불가사의한 면이 있지.”

단순한 행운이든, 뭐든.

대양을 오가는 것은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건 해양민족인 고려인들이 장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맹선 정도의 배로 이 대양을 건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남태평양 횡단 가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 다도인(多島人)계의 해양 이동을 보면서 삼별초 또한 이들의 경로를 따라 남려의 서해안에 도달했다 그렇게 생각하지요.”

“다도인이라 함은?”

“다도인 가설은 태평양의 많은 섬에 사는 부족들이 제각기 비슷한 조상을 가졌다는 즉 같은 민족이라는 가설입니다. 외형이 상당히 흡사하며 무엇보다도 언어학적으로 상당히 비슷하다 그렇게 들었습니다.”

상민은 알면서도 일부러 고개를 주억거렸다.

폴리네시아인들이 태평양 온갖 섬부터 심지어 인도양의 마다가스카르, 즉 메리나 섬까지 오고 갔다는 것은 꽤 잘 알려진 이야기니까.

사실, 이들의 문명이 뭐 대단하거나 엄청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면이 이들의 독특함을 상징하지.

카누 하나에 의지해 바다를 건너는 진정한 해양민족.

죽음을 불사하고 계속 개척해나가는 개척정신.

그리고 이들은 삼별초의 이동에 개연성이라는 것을 줄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은 예전부터 이들을 주목하고 있긴 했었다.

“그렇게 보면, 북태평양 가설보다 남태평양 횡단 가설이 더욱 그럴듯하게 보이는군. 그렇지 않은가?”

“경로상으론 그렇습니다.”

그러니 남태평양 횡단 가설 주장자들은 삼별초가 진도에서 제주도나 남중국(당시는 남송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대만으로, 대만에서 톤도 제도(필리핀)로, 톤도 제도에서 파푸아로, 파푸아에서 홍해(이집트의 홍해가 아닌, 김홍의 이름을 딴 비스마르크해)의 섬들, 홍해의 섬들에서 다시 통가의 섬들을 거쳐 남부 항로를 타고 남려의 서해안에 갔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뭔…….’

듣는 사람은 어이가 없는 경로였지만, 이 시대 실증주의 학자들은 머리가 빠지면서도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무언가 합리성과 개연성이라는 것을 챙길 수 있다 보니 꾸역꾸역 주장을 하는 모양이다.

괜히, 고려에서 우생학이나 제국교가 일어난 것이 아니겠지.

기적을 논리로 이해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법이다.

“그대의 말을 들어보니, 그대는 이런 가설들을 주장하지 않는 듯하구나. 어째서인가?”

하지만 상민은 대화를 할수록 정영택이 태평양 가설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맥락상에서 눈치챌 수 있었다.

“당… 아니 회장님, 비록 삼별초의 초기 문헌은 그렇게 잘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만 개천제께서 서고려를 건국하신 이후의 고려는 상당히 체계적인 사료들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료에는 분명히 탐험가 송병권이 남부항로를 처음으로 발견했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그렇지. 그것이 가장 큰 반증일 테지.”

“태평양은 말 그대로 넓고 잔잔한 바다입니다. 따라서 폭풍우를 만나지 않거나 무풍지대에 빠지지 않는다면 횡단의 가능성이 언제나 있습니다만…….”

상민은 잠자코 그의 말을 들었다.

“허나 울부짖는 바다는 그 모든 가능성을 차단할 터. 삼별초의 세력이 서해안에서 동해안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군.

그 시기에는 운하도, 남부항로도 없다.

그리고 그 대규모 인원이, 고려의 서해안에서 동해안으로 걸어왔다고 하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소리였고.

태동산맥이다, 태동산맥.

한반도의 태백산맥 정도의 동네 뒷산이 아니라, 그 안데스산맥이라고.

태백산맥 넘기도 그렇게 힘이 드는데.

물론 지금은 통로인 회랑이 있다지만, 누가 그것을 한 번에 발견하겠는가?

그리고 가장 크게, 그 당시 서쪽에서 제일 큰 리체(마푸체)와 고려 삼별초가 맞붙었다면 삼별초 또한 큰 피해를 입지 않았겠는가.

상민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렇기에 이에 제가 인도양 횡단 가설을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정영택은 갑자기 신이 난 듯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가설에 대한 무언가 확신 아닌 확신이 있는 모양이다.

“일단, 첫째로, 삼별초의 행동을 고려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 계속해보시게.”

“일단, 이들은 분명히 반원세력이니, 하늘 아래 원과 같이 살아갈 수 없는 곳으로 갈 것이 분명합니다. 진도보다든 오히려 남송으로 향했을 가능성도 높지요.”

“으흠…….”

“물론 남송 또한 멸망으로 치닫고 있었고 심지어 삼별초의 봉기 이후 4년 만에 멸망하였으니 그들도 오래 머물진 못했을 겁니다. 또한 아무리 반원기틀을 공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외부의 무장세력이니 남송으로서도 이들을 온전히 포용하지는 못했겠지요. 따라서 이들은 아마 물자와 식량을 싣고는 다시 항해를 시작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리고는 천축으로 향했겠지요, 혹은 회회의 영역으로까지 가려고 했을 겁니다.”

회회인들, 혹은 대식국(大食國, 아라비아)인들이 고려의 벽란도까지 오고 간 일화는 꽤 유명하다.

그 횟수는 총 3차례, 극히 적긴 했지만 오고 간 것이 어딘가.

어쩌면 아라비아까지의 항로를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연안항해를 통해 서쪽으로, 계속 서쪽으로 나아가다 보면 도착하는 곳이지 않습니까?”

연안항해는, 대양항해보다 월등하게 안전하다.

보급도 그랬고 바다의 잔잔함도 그랬고.

삼별초가 남송을 거쳐 대월, 대월에서 말레이반도, 그리고 인도를 거쳐 아랍까지 갔다라.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정화의 대원정을 떠올리게 하는군.

‘삼별초의 대원정인가.’

“그리하여, 아랍에 도착하지 않고 다만 아프리카를 남쪽으로 돌았다?”

“예, 아프리카의 동해안 또한 남쪽으로 향하는 해류가 강하며 바람 또한 알맞지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다도인계로 보이는 부족들 또한 메리나 섬 북부까지 도착하여 모여 산다니 충분히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아프리카 동해안을 지나, 대서양을 횡단했다?”

아프리카 서해안을 타고 올라오며, 무슨 이유에선지 아프리카 북쪽으로 나아가 유럽에 가지 않고, 다만 짧은 거리지만 대동양을 횡단하기로 마음먹고는 이제는 제포(制葡, 카보베르데) 군도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은 섬을 지나, 적도 난류와 남부 무역풍을 타고 연죽곶으로 왔다?

그리고, 연죽곶에서 다시 동해 난류를 타고 남하하여 건양에 도읍을 세웠다?

“……예…….”

정영택은 머리를 긁적였다.

약간, 아니 좀 많이 허황되어 보인다는 것은 자기도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항해후(航海侯) 신원길이 첫 번째 세계일주를 했을 때, 항로를 서쪽이 아닌 동쪽으로 잡은 이유도 있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신원길은 분명히 삼별초 내의 '고문서'를 참조하여 항로를 잡았다, 그렇게 일지에 써 놓았습니다.”

그 고문서라는 것은 분명히 상민이 신원길에게 몰래 준 대략적인 세계지도를 칭하겠지.

청해 통령이 줬다고 말하지 말랬으니 자기가 어찌 두루뭉술하게 넘기려 적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 고문서는 아마… 삼별초의 이동 경로를 적은 기나긴 항해일지의 일부분이 아니겠습니까?”

어째, 말투가 약간은 기어들어가는구나.

“좋아.”

그러나 지금까지 열심히 입을 놀린 영택이 도리어 은연중에 확신이 서지 않는 모습을 보였던 것과는 반대로, 상민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평양보다야 더욱 신빙성이 생기는군. 대양을 항해하는 거리도 짧으니. 이걸로 해 보지.”

“예? 무엇을 해 본다는 말씀이시온지…….”

“아니, 실언이네.”

상민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대와 나는 그 경로를 다시금 역으로 밟으며, 행여 삼별초의 옛 유적들이 있을지 없을지 따져 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야.”

“……그 유적이라는 것이 회장님과 같이 가다 보면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까?”

“아, 내가 좀 정보를 알아낸 것이 있네. 게다가 고려와 인연을 맺은 그 현지의 세력들이 지리에 밝으니, 먼 과거의 이방인들이 남긴 유적 정도야 안내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군요.”

대체 왜 전직 시중이라는 자가, 굳이 은퇴 여행을 이렇게 잡는지, 왜 이런 사학자들이나 신경 쓸 소소한 문제를 직접 탐방하겠다는지, 영택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자자, 가서 쉬게. 자네가 아무리 멀미에 강하더라도 이제 곧 힘들어질 게야.”

영택은 반쯤 떠밀리다시피 밖으로 나갔고, 그를 떠밀며 같이 나온 상민은 그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윽고 새벽호의 창고로 내려갔다.

상선이야 가득 화물을 싣겠지만, 군선은 필요한 포탄과 화약, 그리고 술과 음식 같은 보급품을 제외하고는 군더더기를 싣진 않았다.

하지만 새벽호는 평소와는 달리 창고가 가득 차 있었다.

청해에서 나올 때, 아마 빠르게 근위함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상민은 천천히 그곳을 둘러보다, 이윽고 열쇠로 엄중히 닫힌 곳의 문 앞에 가 섰다.

그리고는 품에서 몇 가지의 열쇠를 꺼내 이리저리 자물쇠를 풀고 마침내 창고의 문을 활짝 열었다.

특유의 퀴퀴한 냄새.

습기가 차 곰팡이가 생기기도 했겠지만, 이 유물들 자체의 연식 또한 상당히 오래되어 특유의 흙냄새 비슷한 것이 항상 느껴지기도 했지.

상민은 그것들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도자기, 그릇, 기와, 온갖 것들.

옛 삼별초의 신민들이 사용한 물품들.

‘이들은 방사선 동위원소니 그런 후대의 첨단 기법들에게서 충분히 증거가 되어 줄 것이다.’

그는 아마 예전부터 이런 상황에 대비해, 모처에 이런 유물들을 보관해 놓았었다.

남들이 보면, 귀중품도 아닌 정말 잡동사니나 다름없는 물건들이기에 구하기 어렵지도 않았다.

식기 도구, 서민들의 투박한 도자기, 질그릇 등이 동시대에 가치가 있으면 얼마나 있으려고.

이것을 ‘쾌적한 조건’에서 보관하는 비용이야 조금 들긴 했지만 충분히 지불할 만했지.

그리고 그 일견 쓸모없던 것처럼 보였던 포석은 지금에서야 빛을 발하게 되었다.

그 당시를 살아갔으며, 지금까지 살아있는 그가 아니면, 누가 이런 ‘위조자료’들을 만들 수 있겠는가?

무려 250년이 넘도록, 초창기 고려의 유물들을 보관해놨던 고려의 불멸자이자 건국자는 마침내 역으로 흔적들을 잠재적 ‘삼별초의 대원정’ 루트에 뿌려놓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영택은 그 광경의 증인이 되어 줄 것이다.

“정화야, 정화야. 너는 고작 아라비아에서 멈추었구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