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274화 (274/653)

술, 와인, 그리고 포도.

술은 유구한 전통을 가진 문화였다.

상민이 마취로도 쓸 수 없는 코카성분 각성계 마약을 철저하게 금지시키고 담배는 외국에 팔아넘기는 것을 제외하면 처음부터 공익교육을 통해 자국 소비를 제한시킨 것과는 대조적으로 술은 잘 건드릴 수 없었던 것은 고려인들에게는 새로운 작물이었던 앞의 둘과는 다르게 후자는 인류 문명의 시작과 함께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인류 최초의 기호품이라 해도 괜찮겠지.

이를 금지하는 것은 정말로 불가능하다.

종교적, 사상적 이유를 들어 탄압해도, 결국 몰래 마실 사람은 마시니까.

오히려 탄압은 불평과 불만을 불러일으킬 뿐이었으니 역사상 성공한 금주법은 존재치 않았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뭘 해야 할까.

처벌?

그의 관할이 아닐뿐더러 이미 충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막중한 업무에 더해 재판까지 손수 자신이 보았다면 상민은 진작 모든 일을 때려치고 은거했을 것이었다.

상민은 고려나 조선의 사회구조적 모순이 결국 지방관이 군역과 법무를 모두 보는 것에서 나온다고 인지했고, 애초부터 이 업무들을 분리시킴으로써 업무적 과로를 해소하고, 각 분야 관리들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함양했다.

물론, 한 사람의 일을 두세 사람이 하게 되었으니 관리의 수는 많아졌고 그에 따라 봉급이 그만큼 더 필요하겠지만 그 정도야 국가팽창속도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없었으니 감내할 만했다.

‘고려와 조선은 그 덩치에 비해서 너무 정부가 작지 않았던가.’

지금, 집법성의 독립성은 시대를 감안해보면 상당히 잘 지켜지고 있었다.

집법령(대법관을 겸한다)은 정부견제를 위해 황제가 임명하는 몇 안 되는 관직이다.

대법관들 중 집법령을 포함해 삼분의 일은 황제가, 삼분의 일은 시중이, 나머지 삼분의 일은 중서성의 투표로 임명하는 지금의 집법성은 황실이 가진 안정성을 토대로 계몽주의 이후 커져가는 중서성과 국가 체급이 커지면서 함께 커지는 정부의 상서성을 견제하는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물론 상민의 임기에는 그의 영향력에서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였긴 했지만, 국가적 위기 사태에 관련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경우 그는 법관들의 판단을 존중하는 편이었다.

이후, 상민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면, 바야흐로 황제와 시중, 그리고 의원들이 임명한 법관들이 제각기 서로 눈치를 보며 집법성 내부에서도 견제하는 광경이 펼쳐지겠지.

그가 의도한 바였다.

어찌 되었든 인간 행위의 선택,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며 응보형주의를 따르는 상당히 엄한 개정 전국대전 제국법체계에선 음주로 인한 감경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예전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신하 하나가 정부 관료 회식에서 시중의 가면을 벗기려 들었던 사건 이후에 나온 ‘술을 마신 의지도 자유인 것인데, 그 이후 벌어지는 일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자신이 지는 것이 맞다’라는 시중의 말 이후에는 더욱더 그랬고.

술 관련 정책으론 나름대로 잘 다스리고 있는 상황, 그러니 상민 자신이 해야 할 것은 오히려 타국에 남는 술을 팔아먹는 것이었다.

이 시대, 대부분의 나라에서 술은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존재라기보다는 오히려 사치품에 가까웠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값싼 화학주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술은 귀중한 곡물이나 과실로 빚었으니까.

하다못해 사탕수수 부산물로 만든 대표적인 싸구려 독주, 당밀주 또한 마냥 저렴하진 않았다.

당밀주 가격의 원흉은 자기네 사탕수수 농장의 경쟁력을 위해 서아프리카에서 목화와 더불어 사탕수수 노예 플랜테이션까지 태워버린 고려겠지만, 그것은 넘어가도록 하자.

그러나 반대로 곡물과 과일을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팔아버릴 수 있는 것도 오직 술뿐이었다.

고려의 문화 파도, 바그 코히엔을 타고 고려의 주류들이 이곳저곳에 도달해 소비되는 상황.

그러나 상민은 이에 만족할 수 없었다.

면포야 남녀노소, 귀천을 가리지 않고 사용되는 필수품 중 필수품이라 해당하지 않았지만 술은 아니었으니.

“비록 왕족과 귀족들은 우리의 술을 마신다지만, 아무리 개인이 많이 마신다 하더라도 그들이 인간인 이상 한 번에 주류를 얼마나 소비하겠는가? 결국 그 아래 조금 더 수가 많은 계층을 공략해야 한다.”

왕족, 귀족들은 돈을 펑펑 써재끼는 자들이겠지만 영역은 한정되어 있으니 그 숫자도 한정되어 있는 사람들.

설령 술로 목욕을 한다고 하더라도 소비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 밑의 계층을 공략해야지.

잉글랜드로 따지면 젠트리나 요먼.

프랑스로 따지면 부르주아.

무역의 시대에 도래하여 앞으로 유럽에도 다가올 산업의 시대에 더욱 번성할 이 신흥계층은 푸른 피를 일부 나누어 받은 젠트리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출신 성분 자체는 평민이었다.

이 경제권은 있으나 지배권은 없는 자들의 숫자는 계몽주의의 전파 이후 자유도시를 기점으로 하여 부쩍 늘어나고 있었으며 세력도 커져, 이제는 한미한 귀족은 평민 대지주나 부유한 상인에게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들의 소비력은 충분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 중 상당한 숫자가 종교적으로 충실한 기독교도들이었고 술로 사치를 부리는 것에 어느 정도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 * *

물론 이들도 술을 소비하긴 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포도주가 전부였다.

포도주.

유럽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 존재는 예수 생전에도 이미 그리스와 로마 시민의 표준적인 음료였으며 예수 이후에는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음료였다.

주곡물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술을 담그는 것에 부담이 없었고 맛 또한 가히 술을 위해 태어났다는 말이 어울리는 과일이 바로 포도였다.

단연코 포도주는 유럽에서 다른 술보다 절대적인 위치에 서 있었다.

아무리 바그 코히엔이 유행이라 하나, 이 관습을 바꿀 수 있어 보이진 않았다.

역으로 포도주는 고려에서 유행했다.

고려인들은 진작부터 포도의 씨앗을 가져와 남려와 북려의 기후가 적당한 곳에 골라 심었었다.

외국에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제가 커지며 자체적으로 소비하려는 수요가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사람 입맛이 차이가 난다면 뭐 얼마나 있겠는가?

유럽산 포도로 만든 포도주는 고려인들의 입맛에도 상당히 맛있었고 고려에도 엄연히 정교회와 성공회가 있으니 그 수요의 규모가 절대 작진 않았다.

어차피 고려는 주곡물 생산량이 작물 품종의 개선과 농업기술의 진보, 토지의 절대적 규모로 인해 인구부양력을 감안해봐도 오히려 보조금을 지급하여 매수할 만큼 넘쳐나는 상황.

그 곡물들로 술을 담그는 것도 한계가 있었으니, 반대로 곡물들을 경작하는 면적을 조금 줄이고 다른 작물들을 경작하는 면적을 늘리는 것이 맞았다.

포도농장은 자연스럽게 농무부의 핵심 주력 사업 중 하나가 되었다.

신민의 수요도 있을뿐더러, 가장 잘 팔리는 주류 중 하나이니 사업을 장려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사람이겠지.

그런데.

“…농무부에서 그렇게 신경을 쓴 포도 농사가 완전히 박살이 났다는 건가?”

“예, 당하.”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은 상민은 이마를 감싸며 농무상서에게 물었다.

금속제 질감이 짜증 나게 불편하다.

“정확한 범위는?”

“북려의 포도 농가들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북려 동해안의 피해는 정말 참담하여 나무들이 전부 병들어 벌목을 해야 할 정도라 하였습니다.”

상민은 더욱 꼬치꼬치 캐물었다.

농장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식물 역병이 돌았다 하더라도 계란이 한 바구니에 있진 않으니 모조리 깨져버리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북려와 남려 서해안은?”

북려 동해안보다도 더 큰 포도주 농가들이 남북려 서해안에 있었지.

칠레 와인과 캘리포니아 와인.

안 그래도 유명하지 않았던가?

지금껏 적지 않은 조정의 관료들은 은퇴 후 가족과 함께 서해안으로 가 포도농장과 양조장을 운영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았었다.

이는 관리의 로망인 듯싶었다.

포도가 잘 자랄 수 있는 경치 좋고 온화한 기후에서 여생을 마무리하는 것.

상민도 그 상상을 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모든 걸 때려치우고 아내와 애들을 데리고 서해안으로 도망갈까 싶었으니까.

“남북려 서해안은 아직 큰 피해 보고가 없습니다만, 만약 현재 알아낸 것이 이번 포도 역병의 원인이 확실하다면 언제든지 동에서 서로 번져나갈 수 있는 관계로….”

은퇴를 위해 노후자금을 만들고 있다가 연금 펀드가 터져버렸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처럼 상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유가 뭐라 하던가? 밝혀진 것은?”

자신이 포도나무인 것마냥 얼굴이 새까맣게 죽어 있는 농무상서가 보고서를 내밀었다.

“이 벌레 때문입니다.”

* * *

이 시대, 세상에서 가장 널리 재배되는 포도 품종은 참포도(Vitis vinifera)였다.

서아시아에서 기원한 품종, 세계 각지 대부분의 포도는 그 생김새와 맛이 다양하여 구분하기 쉽지 않더라도 이를 조상으로 두고 있었다.

다른 품종들은 경제적으로 썩 유의미하지 않았다.

맛도 없었고 알갱이도 작았으며 술을 빚었을 때, 풍미 또한 형편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려도 제대로 포도주 양조를 하기 위해선 이 참포도 씨앗을 들여와 심어야만 했지.

그러나 참포도는 새로운 토지에서 잘 자라는가 싶더니, 자연의 법칙에 의해 엄청난 피해를 입어 전멸하다시피 했다.

기후는 문제가 아닐 것이 분명했다.

원역사의 아메리카 대륙 또한 질 좋은 와인이 산출되는 곳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되어버렸네.

보고서에 적힌 피해는 흉년이 들어 팔아먹을 포도주의 생산이 끊긴 것 정도가 아니라 앞으로도 사업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막대한 피해였다.

여기에 지방관이 투자한 돈이 얼마인가.

목화와 포도주 양조사업을 주책 사업으로 밀고 있던 앙주와 진주의 지방관들은 이 소식을 듣고 뒷목을 잡고 쓰러져 요양 중이라 한다.

진주의 정교회 신자들과 앙주의 성공회 신자들도 울상을 지으며 상인들이 역으로 수입해온 와인을 이용하고 있다고도 하고.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로 인해 생계가 위태로워진 사람들의 규모가 작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 사태의 원흉은 농무상서의 보고서에 적힌 대로, 하나의 자그마한 벌레였다.

포도뿌리혹충(Phylloxera, 필록세라).

크기는 정말로 작았다.

그런데, 벌레는 작은 벌레가 항상 무서운 법이다.

“포도계의 흰개미라 이 말인가?”

“예, 당하. 이 곤충은 뿌리를 파고 들어가 알을 낳으며 그 뿌리에서 독을 분비해 나무를 죽이는 것으로 보여지옵니다.”

“기후와 환경의 적응성이 빼어나고 전염성 또한 상당하다… 미쳐버리겠군.”

농무상서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처법은?”

“관원들이 열심히 파악하고 있으나, 완벽한 퇴치법은 거의 불가한 상황이라 잠정으로 규정하고 있….”

“아니야, 해결법은 언제나 있을 것이네.”

먼 미래에도 결국 북미의 와인 산업이 계속 이어져 내려갔으니 무언가 해결책이 있었을 것이다.

벌레는 완벽하게 퇴치되지 않는 질긴 놈들이니, 포도의 개량이 있었겠지.

“대부분의 그런 식물 역병의 해답은 품종 개량으로부터 시작되지 않겠는가? 상서는 앉은뱅이밀과 의곤밀의 사례를 떠올리게.”

농무상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일부 관리들이 이미 참포도와 북려 토종 포도나무들과의 교접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포도주로 주조하는 것이 목적이니만큼 역병에 대한 저항성도 저항성이지만 상품성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라 시간이 실로 오래 걸릴 일이니 당장 즉각적인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옵니다.”

그 사항은 상민에게는 괜찮았다.

언젠간 되지 않겠는가.

“그래, 좋은 해결책이 나오기 전까지 지금 당장은 미주와 남려 서해안을 오가는 배에 포도뿌리혹충이 전파되지 못하도록 선박의 적재과정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어야 하겠다. 나무 묘목 같은 포도뿌리혹충이 기생할 수 있는 물건은 관리의 허락 없이 운송하지 못하도록 하고, 아예 운하와 남부항로를 통과할 수 없도록 하라.”

소독제도, 뭣도 없는 상황에서 잘 되겠느냐마는, 그래도 신경이라도 쓰는 것이 맞았다.

적어도 어떤 멍청한 놈이 벌레가 껴 있는 묘목을 가져가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지금 이 시대에는 이런 식물 기생충들이 기나긴 항해 동안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컸으니까.

그러고 보니 지금은 아니겠지만 열차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더욱더 골치 아파질 것이 분명할 텐데.

지금이야 북려 중서부의 사막지대나, 혹은 태동산맥에 가로막혀 있더라도 철도와 같은 인프라가 뚫린다면 벌레들 또한 그것에 무임승차하여 옮겨 다닐 놈들이었으니까.

상민은 관자놀이에 손을 댄 상태로 원론적인 예방법을 중얼거렸다.

“또한 포도 농가를 일정한 거리를 두어 분산시키고 그 사이 포도뿌리혹충이 잘 파고들 수 없는 수목으로 이루어진 산림을 조림해보든가 하게. 농가 인원의 예방법도 만들어 교육시키고….”

그러나 결국 이렇게 애를 써도 한 번의 부주의로 남려 서해안의 농가 또한 역병이 퍼질 수 있었다.

앞으로도 가능성이 더 커지면 커질 것이다.

배를 건조하는 기술의 진보로 인해 지리적 격차가 극복된다면 아마 벌레 또한 환호성을 지르지 않을까.

벌레는 정말 싫다.

모기, 흰개미, 메뚜기, 파리, 독거미, 기타 오만 가지 벌레들에 이어 이제 포도뿌리혹충까지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내 누누이 말했지만 정말로, 남려에 허가되지 않은 살아 있는 나무 묘목을 운반하는 일은 무조건적으로 금해야 할 것이야!”

그답지 않게 인내심을 잃어버린 상태로 그라데이션 분노를 터트리는 시중이 애꿎은 책상에 화풀이를 했다.

― 쾅!

비싼 나무 원목 책상이 한 번의 내리침으로 중앙이 움푹 꺼지고 사방에 금이 가는 광경을 본 농무상서가 목을 움츠리며 거듭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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