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268화 (268/653)

증기기관차

개천 251년(CE 1526)

경해선.

황실열차.

― 탁

상민은 질 좋은 종이에선 느껴지기 힘든 우둘투둘한 촉감이 느껴지는 조보를 접어서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옆의 철필촉을 꺼내 유먹에 담근 뒤 일필휘지로 문서를 작성했다.

[…고려국에 대한 유럽인들의 이민 기준을 삼 단계로 격상하고 인원의 제한 또한 추후에 하달될 수준으로 유지한다.]

고려는 유럽과 동아시아(대개는 조선이다)에서 많은 이민자들을 받고 있었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그 중심축이 동아시아로 확실히 넘어가는 감이 있었다.

카디스 조차 종료 때, 그쪽에 살던 사람(비고려인)에 한해 희망자는 화주로 이민을 갈 수 있게끔 해주었던 적이 있다.

그 덕에 무려 8할에 달하는 주민이 전부 화주로 넘어가 카스티야가 소심하게 항의를 했으나, 그들로서도 잠재적 불평불만 세력을 손을 더럽히지 않고 해결할 수 있다는 효용 덕분인지 더 이상은 따지고 들진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유럽계 이민자들의 수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상민의 행정명령은 그 단계를 거기서 한 단계 더 격상한다는 의미였다.

[국익에 도움이 되는 사람만 가려 받겠다.]

과거, 유럽이 북려에 발을 디뎌 조그마한 해안정착지를 만들고 고려가 그것을 집어삼켰을 때와는 달랐다.

해상십자군 전쟁에서 승리한 고려는 개척지에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고려로의 이민과 고려인으로서의 귀화를 권장했었지.

진주의 경우는 본국이 멸망한 특이한 상황이니 이를 차치한다지만, 연방의 다른 주에 속하게 된 유럽인들의 저항도 의외로 별로 없었다.

어차피 그 시절의 유럽인들은 봉건주의적 개념, 즉 영주가 바뀌는 개념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었던 터라, 일부 신분이 높아 잃을 것이 많았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피부가 다른 통치자들의 통치를 받아들였다.

민족보다는 종교가 우선이었던 적이 있었고 상민은 고려 성공회를 통해 그들을 다스렸지.

시간이 흐르며 세금도 적고, 사는 환경도 더욱 좋다는 것이 확실시되자 반항할 의지조차 아예 없어졌고.

그러나 시간이 백 년이 넘게 흐르자, 이제는 그 기틀이 바뀌었다.

과거 중요했던 종교는 이제 허울뿐인 족쇄가 되었고 민족성이 대두되었다.

이제는 유럽인들도 자신의 주류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의 통치를 상당히 거부하기 시작한 것.

절대왕정의 군주들도 자신들의 통치에 이점을 주는 그러한 민족성을 조장하기 시작했다.

즉, 이제 유럽 난민들의 생각은 예전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원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 리스크가 현저하게 커진 이유는, 민족성 말고도 다른 이유도 있었다.

첩보기관.

즉, 정체를 알 수 없는 간첩들의 행위가 이제 눈에 띌 정도로 많이 적발되기 시작한 것이다.

간첩, 혹은 옛날의 말로 한다면 세작의 개념은 아주 옛날부터 있었다.

서양에선 구약성경에도 그 존재가 언급되고, 한반도의 원삼국시대에도 서로의 병력을 정탐하는 간자들은 적지 않게 운용되었다고 하니.

손무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했었지.

그럼, 적을 알기(知彼)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당연히 세작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중국의 세작들은 유명했으며, 명나라에 들어서 동창이라는 조직이 들어선 이후에는 더더욱 유명해졌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이런 과거의 세작들을 근대적인 첩보조직으로 부르기엔 무리가 있었다.

고려는 건국 초 태조 시절에 추밀원사 서승현에 의해 만들어진 추밀원 내의 정보총국을 통해 근대적 첩보조직의 토대를 마련했다.

고아 출신이 대부분인 이들은 잘 먹고 잘 자라 태조를 위해 헌신껏 정보를 취합하는 원시적인 수준을 차츰 넘었다.

나중에는 국가에서 정병 오십, 혹은 백을 육성할 정도의 자금을 퍼부어 수많은 교육을 받은 최고의 요원들로 성장시키게 된 것.

이들은 기초적인 위장과 언어는 물론이고 사회성, 그리고 암습과 탈출 등의 임기응변까지 대단히 특출난 능력을 자랑했었다.

심지어 본토의 영향력에서도 벗어나 나중에는 카스티야의 후계 구도에 개입하기도 했으며 교황청을 들쑤시며 구출 작전을 펼치기도 했지.

그러나 그 때문이었을까.

제집마냥 아비뇽을 오가는 고려인들에게서 상당히 충격을 받은 유럽인들도 마침내 이와 비슷한 조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잉글랜드의 해영 태후와 그 딸 마가렛 여왕은 자신에게 반대하는 반대파들을 척결하기 위해 이전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정보조직, 섹션 원(Section One)을 만들었다.

그 이후, 사방에 첩자가 들끓는 온갖 혼란기를 헤쳐나와 마침내 통일을 이룬 이탈리아도 체사레에 의해 말레볼제(Malebolge)라는 첩보 단체가 탄생하며 상당한 수준의 방첩력을 가지게 되었다.

프랑스도 캐비넷 누아(Cabinet Noir)라는 조직을 만들었고, 이에 합스부르크가 이끄는 신성로마제국도 무언가 느꼈는지 준비를 한다고 하고.

물론 이제 막 아장아장 걷고 있는 이들의 수준이 고려의 정보총국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들의 은밀성과 정예함은 이전에 비해서는 대단히 뛰어났다.

고려도 긴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

― 포항제철에 대한 간첩 용의자를 체포하는 도중, 용의자가 독약을 마시고 자결했음을 알림. 신원은 파악하지 못함.

짤막하게 보고된 대내국의 쪽지를 받은 상민이 한숨을 흘렸다.

물론, 저들의 국왕이 자랑하는 정보단체에는 이미 고려의 첩자들이 심어져 있었기에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지 충분히 알 수 있긴 했지만, 대응의 문제를 논하기 전에 예방의 문제부터 점검해야 했다.

지금도 이럴진대, 이제부터 난민 틈에서 끼어오는 세작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답은 하나였다.

이제 난민을 가려서 받으면 되는 것이다.

개인의 능력이 국가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분명한 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적어도 뒷배경적으로 문제없는 자들을.

혹은 조선인들과 같이 동질성이 뛰어난 자들을.

후대의 사람들(주로 고려에 이민을 오길 원했지만 실패한 자들은)은 이를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상민에게는 더없이 당연한 선택이었다.

국가는 소속된 국가 구성원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지 자원봉사단체가 아니었다.

게다가 고려는 난민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당위성이 생길 만한, 존재하지 않을 대영제국과 에스파냐, 포르투갈이 저지른 혹은 저지를 수 있는 제국주의적 일을 전 세계적으로 하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할 생각도 없다.

설령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해당 당사자들, 남려와 북려, 그리고 태평양의 군소제도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이미 고려가 책임을 지고 자국으로 포용했거나 앞으로도 계속 동화시켜 하나의 집단이 될 것이 분명했고.

다른 지역, 즉 대동양 건너편의 유럽인들과 아프리카에 대한 책무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은혜를 주었으면 주었지.

그들이 지금 고려에 왔던 것은 그 이민이 고려에게 이득이 되었기 때문에 그러했던 것이지, 이민이 고려에게 이득보다 손해와 위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면 고려는 당연히 이를 중지해야 했다.

독일에서 일어난 이번의 일처럼.

“할아버님께선 예전보다 이 일에 더욱더 많은 신경을 쓰시는군요. 이번 일이 과거의 일반적인 민란과는 다른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습니까?”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해선의 질문에 상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농민 봉기는 황상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가질 겝니다.”

탁상 위에 올려진 잔이 진동에 잘게 떨렸다.

상민은 음료를 마시지 않고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들의, 자칭 농민 공화국이라고 하는 국가는 이 시대의 위인들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남겼습니다. 큰 선례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하겠지요.

종교개혁 속에서 강고하면서도 혁신적인 논리로 무장하였고 실제로도 오 년이 넘는, 거의 육 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점령한 지역에 대한 실효 지배를 하였으니까요.

앞으로 수많은 민란의 지도자들은 제2의 뮌처를 주장할 것이고 그 자칭 혁명에 대한 열의 또한 결코 꺼지지 않을 겝니다.”

예전, 잉글랜드에서 진행되었던 와트 타일러의 난은 당대 귀족들의 인식을 크게 변화시키지는 않았지만 결국 잉글랜드에서 농노제의 혁파를 이끌어냈다.

그에 비해서, 훨씬 더 규모가 크며 과격하고, 심지어 수가 적었지만 엄연히 신학적 엘리트와 군사적 엘리트까지 참여했던 독일 농민 혁명은 과연 어떨까.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아예 이 일의 여파를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미래의 흐름을 얼추 보고 왔던 사람을 제외한다면.

“그렇습니까?”

“우리 덕분도 있지요.”

상민이 씁쓸하게 웃었다.

“어떤 나라도 이상적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외부에서 보기엔 제국은 아주 이상적이며 행복한 자영농민의 세상이니까요.”

“전부 다 할아버님의 은덕(恩德)이 아닙니까.”

공치사에 대한 대답 대신, 상민은 손을 뻗어 그저 차를 홀짝였다.

눈치 하나는 빠르구나.

“이제 저들 또한 인쇄업과 상업을 크게 일으킨 상황이니 이 소식은 어찌 숨기기도 어려울 겝니다.”

최초의 활자와 인쇄업은 고려에서 크게 성행했지만 유럽 또한 구텐베르크 이후에 무척이나 빠르게 인쇄술이 발달하고 있었다.

또한 오르베텔로 조약 이후, 각 나라의 상인들이 더욱 활발하게 항구를 오가니 이제 저 이념의 씨앗은 수만 갈래의 바람을 타고 떨어지는 민들레마냥 사방에 퍼져나갈 것이었다.

해선은 불안감에 침묵을 지켰다.

상민은 그러한 황제 앞에서 다짐했다.

“안심하시지요. 이 할애비가 저 폭풍의 여파가 제국과 연방까지는 닿지 않게 할 터이니.”

설령 닿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상민이 살아있는 한 오로지 미약한 약진으로 멈출 것이었다.

― 우리 애들을 잘 돌봐줘요.

‘나는 혁명가가 아니다.’

더없이 이타적인 군주더라도 그는 여전히 군주였다.

이 후손들의 선조였기도 했고.

일생의 작품, 즉 자신이 만든 이 나라와 이 황실의 존속을 위해서는 상민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설령 저들이 주장하는 만민평등의 기치가 어떤 면에서는 옳더라도 만약 그 혁명이란 것이 기어코 분수를 몰라 황실을 위협한다면 그는 아주 잔혹하게, 그 암세포들을 도려낼 것이었다.

그가 세운 일생의 업적들이 무너지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으니까.

처음 삼별초에 떨어질 때의 젊은 청년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황실과 제국을 생각하는 철혈의 재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럼, 이전의 말씀은 철회하시는 겁니까?”

해선이 반색했다.

젊었을 적엔 그 혈기로 은연중에 자신이 정치에 개입하길 희망했던 이 청년도 결국은 나이가 먹어갈수록 그냥 속 편하게 귀찮은 것을 전부 조상에게 떠넘기고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었다.

“하하… 빈틈을 놓치지 않으시군요.”

그건 안될 말이지.

“허나 결심엔 변동이 없습니다. 이번 시중의 임기를 마지막으로 이 사람은 공식적으로 정계에서 은퇴할 겝니다.”

창밖의 풍경은 천천히 바뀌었다.

정말 더럽게 느리구나.

대체 언제쯤 이 기차라는 것이 쓸만해질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시련이 제국의 앞에 놓여 있다고 하셨잖습니까?”

가만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황제들에게 대대로 무언가 비밀 지령 같은 것이 내려온 듯싶다.

범인은 해윤, 그놈일 터인데.

아마 이 늙은이가 물러나려 한다면 눈물 콧물을 흘려가면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라는 그런 내용일지도 몰라.

그런데 어쩌랴.

“황상, 이제는 더 이상 숨기지도 못합니다.”

상서령 이도가 대행으로 업무를 보았던 시절이 끝나고 다시금 정북행성에서 귀환하여 재상의 업무를 본 나날도 벌써 수십 년이다.

이제는 다시금 긴 휴가를 떠나 다음 임기를 준비할 수순이긴 한데, 상민은 그것이 이제는 햇빛을 손바닥으로 막는 것과도 같다 생각했다.

독일 농민 혁명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듯, 이 죽지 않는 재상에 대한 소문도 사방으로 알음알음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

애초에 자신의 비밀이라는 것이 이 나라의 고위급들에게만 인지되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 전부의 완벽한 입단속이 가능한 것도 아니었고, 자신이 정무를 보며 접촉하는 사람들의 수도 상당하다 보니 비밀이라는 것은 결국 여러모로 지켜지기 힘들었다.

가뜩이나 마야의 신학자들은 집착적인 면이 강해 걱정이라 그는 항상 노심초사했다.

아직까지 소문이 확산되지 않고 있는 것은 여의국 아이들의 노력이 크겠지.

그렇다고,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할 이유도 이제는 그렇게까지 크지도 않았다.

이제는 이 나라의 위정자들도 예전보다야 훨씬 더 능력이 있었으며 믿을만했다.

자리 잡힌 교육과 학문의 체계 덕에 중서성 의회에서는 적어도 자격 미달에 달하는 의원들은 거의 없었다.

있었던 사람은 누군가에 의해 없어졌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 그러했다.

게다가 또 한 가지.

정치 권력도 정치 권력이었지만, 산업혁명, 그리고 금융의 발달로 인해 금권(金權)은 예전보다도 훨씬 더 중요해졌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이제는 정말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게 된 셈.

상민은 시중에서 물러난 뒤에도 적법한 황실의 권한(시중 후보자 거부권 및 가중된 투표권)들을 이용하여 시중 선출에 개입하는 등 완전히 정계에서 손을 떼지는 않을 것이지만, 주 업무는 나랏일 대신 기업의 일, 즉 기술 개발과 새로운 시장 개척을 통해 더욱더 많은 부를 쌓을 생각이었다.

황실의 자산이 많아질수록, 나라에 도움 되는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에 대한 통제력도 확고해지며 먼 훗날의 왕정 폐지론에도 저항할 수 있으니,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는 정말 수백 가지와 같았다.

이미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는 집단이 바로 이 해씨 종통이었지만 상민은 그것을 넘어 세계가 가파르게 성장하는 미래에도 그 영향력이 꾸준히 증대되기를 원했다.

야코브 푸커? 로스차일드? 록펠러?

그러한 가문이 열 개, 아니 백 개가 넘어도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에서 최고로 부유한 가문을 백 개를 줄 세운다면, 상민과 그의 해씨 종통가는 가장 꼭대기에 있어 나머지 아흔아홉보다 자산규모가 커야만 했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해나가야지.

이미 가지고 있는 자산들(고려에서 이름난 대부분의 회사는 대체로 상민의 지분이 3할에 육박했다.)은 상당했다.

그러나 앞으로 일어날 산업 규모에 비해서는 경공업 수준에 불과할 뿐이니 절대 안주해서는 안 되었다.

* * *

― 뿌우우

요란한 소리와 함께 기차가 멈추었다.

총 다섯 칸의 짧은 열차.

선두와 후미는 제각기 구동부, 즉 동력을 제공하는 외연기관이었고 나머지 두 칸은 근위병과 내관, 궁녀들이 타는 곳이었으며 마지막 한 칸이 황실 일가가 타는 곳이었다.

화려하긴 했지만 제국의 수준에는 약간 어울리지 않는 이 소박한 열차는 그 외관보다는 의미에 더욱 무게중심을 두어야 했다.

즉, 고려에서 가장 먼저 깔린 철도인 경해선(창양―해문 노선)을 오간 최초의 승객용 열차로 기록될 것이니까.

“어찌, 여정은 편안하셨습니까?”

해선은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차와는 가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하군요. 속도는 비슷하지만 말입니다.”

역시, 인상적이었던 것은 속도가 아니라, 편안함이었던 것 같다.

연철로 된 궤도에 올려져 있는 열차는 아무리 쇄석이 깔렸더라도 울퉁불퉁한 도로를 오가는 마차보다 훨씬 더 편안했으니, 엉덩이와 허리에 무리가 안 가는 것에 만족하는 거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상민은 KTX를 수십 번 타본 몸.

엎어지면 코 닿을 창양과 해문 사이의 짧은 거리를 오가는 여정에도 느려터진 속도 덕분에 사치스러운 열차 안에서도 자꾸만 몸을 뒤틀었던 사람이다.

“…속도는 차츰 나아질 겝니다.”

최초의 증기기관이 쓸만해지려면 거의 백여 년의 시간이 더 흘러야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격차를 최대한 줄여보는 것이 그의 숙명일 것이다.

탑승했던 황제와 시중은 옷가지를 정돈한 후 해문역에 내려 신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 와아아!

해문역에는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달리는 말, 철마에 대한 신기한 구경도 구경이지만 황제의 행차는 상당히 드물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나와 황제의 용안을 뵙길 원했다.

“폐하의 행차이니 그대들은 통제에 따르시오!”

물론 무질서함은 용납할 수 없으니, 기마를 탄 경관이 군중 사이를 누볐고 띠를 이룬 경관들이 역을 에워쌌지.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고려인들에게 황실이란 지극히 지엄한 존재였으며 그들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상징하는 것이었으니 군중들 또한 황제의 손 인사에 모자를 벗고 조아릴지언정 앞으로 나가는 일은 없었다.

황제와 시중이 매년 행사가 열리는 해룡사로 떠나자, 사람들은 이제 철마에게 관심을 가졌다.

“글쎄, 참말로 저 거대한 쇳덩어리가 미끄러지듯 움직인다니까?”

늦게 와 황제도 못 보고, 기차가 움직이는 것도 못 본 사람은 옆 사람의 말에 안타까워하면서도 두 눈에 크게 그것을 담았다.

“우리는 언제부터 탈 수 있나?”

“거,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에 경해선 민간 운행을 시작한다더라고.”

“비싸겠지?”

“하모.”

누군가 건성으로 긍정하자, 다른 이가 정정해주었다.

“나라에서 크게 지원을 하여, 승객권은 그리 비싸진 않을 거랍니다.”

― 오오

사람들이 신이 난다는 듯 발을 굴렀다.

괴물같이 생겨 어쩐지 조금 무서웠지만, 나랏님과 시중께서도 타시는데 별일이야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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