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산타라의 해적
남중국해.
해남도.
지금껏 대만에 비해서는 그 존재가 부각되지는 못했지만, 포르투갈의 등장 이후에 이 섬은 상당히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본래, 이 섬은 한족의 땅이 아니었다.
월(越, 베트남)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땅이라 봐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월이 한무제에게 멸망한 이후부터 해남도는 한의 강역에 속하게 되었다.
물론 한나라도, 그 뒤의 오나라도 이곳을 온전히 장악하진 못했지만 그 위대한 원나라의 시대가 오자 이곳은 확실하게 원의 세력권 안으로 편입되었다.
쿠빌라이가 동국(왜)도 정벌한 마당에, 해남도 하나 정리하지 못할까.
물론 해남도 정벌 이후, 해남도를 이용하여 대월을 공격했던 쿠빌라이는 대월의 명장, 쩐흥다오에게 번번이 패배의 쓴맛을 맛보았지만.
어찌 되었든 원 이후 이 자리를 차지했던 주와 명 또한 이곳을 그들의 적법한 땅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한족도, 월족도 아닌 영 엉뚱한 사람들이 득시글거리는 섬이 되어 있었다.
흰 피부의 포르투갈인들.
기존의 섬 주민들은 이 탐욕스러운 정복자들 아래에서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마냥 혹사당하고 있었다.
해남도에 세워진 옛 중원의 관청은 이리저리 포르투갈인들이 개조하여 새롭게 총독부로 재탄생했다.
바스쿠는 해남도의 환상적인 해변이 잘 보이는 곳에 지어진 중국식 정자를 좋아해 본거지 싱가포라보다도 이곳에 더 자주 머물렀다.
마치 왕이 된 것 같지가 않은가?
남명인들이 멍청하고 아둔하며 기독교를 믿지 않는 불신자이긴 하나, 이들 또한 고려와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충분히 동경할만한.
그러나 그 동경의 정도가 심하여, 바스쿠는 해남도 이곳저곳을 금은보화로 장식하고 거대한 교회를 짓는 등 사치를 부려대고 있었다.
해적 부하들은 그러한 두목을 부러워할지언정 아무도 그 행위에 반대하진 않았지만, 포르투갈에서부터 따라온 부하들은 서서히 변하고 있는 바스쿠의 모습을 경계했다.
예나 지금이나 포악스럽지만, 적어도 예전의 바스쿠는 독실한 종교인이면서도 포르투갈의 아비스 왕조에 충성하는 등의 기본적인 자세는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에서 그러한 초심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가 이렇게 바뀌게 된 것은, 아마 본국의 상황이 고려와의 목화전쟁으로 악화일로를 겪을 때부터였겠지.
본국의 리스보아로 가는 세금선이 고려에 의해 나포당할 것이 분명하다는 이유를 들며 바스쿠는 이 재화들을 사사로이 착복하고 있었다.
사실 이전부터 남명을 탈탈 털어먹어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바스쿠는 재화의 수입을 거짓으로 기록하고는 상당수를 횡령하여 해남도, 이제는 일라 데 바스쿠(ilha de Vasco, 바스쿠의 섬)에 투자해왔긴 했다.
그러나 항구를 짓고 방어시설을 증축하는 것과 이번처럼 혼자의 이익을 위해 세금을 착복하는 것은 다른 의미였다.
결국 보다 못한 포르투갈 충성파들이 어느날 밤을 틈타, 바스쿠를 암살하려 들었다.
“인도와 다른 포르투갈의 총독들은 제각기 본국을 구원하기 위해 세력을 모아 희망곶을 탈환하려는 의지를 보이기까지 하는데, 대체 총독은 무엇을 하는 겝니까?”
무기를 앞세워 총독부에 진입한 이들은 금방이라도 바스쿠의 목을 베어버릴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바스쿠는 이미 이들의 불만을 눈치챈 지 오래.
포르투갈 충성파가 그가 파 놓은 함정에 걸려버리자 바스쿠는 잔인하게 웃었다.
“이럴 줄 알았지, 가식적인 놈들.”
* * *
마침내 그의 숙원의 마지막 걸림돌들을 전부 처형한 바스쿠는, 이곳에 그의 왕국을 선포했다.
공식 명칭은, 가장 부유하고 번영한 바스쿠의 왕국이니 뭐니 거추장스럽고 길게 지어졌지만 그 아무도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해적왕국’이라는 통용어가 널리 퍼졌다.
해적왕국의 첫 번째 해적왕 바스쿠는 공식적으로 포르투갈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누산타라의 모든 세력에게 끝없는 약탈 전쟁을 선포했다.
건국 초부터 파탄 난 외교 관계를 스스로 떠안다니,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도 같아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이곳은 바스쿠의 부하들 말고도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유입된 해적들이 득시글거리는 곳.
유럽인들은 물론이고 누산타라 토착민, 남명, 대월, 아유타야, 심지어 고려인 해적도 있는 상황이다.
유럽인 해적들은 바스쿠의 밑으로 들어갔고, 그렇지 않은 자들도 이곳에 엄청난 혼돈을 불러온 그에게 영향을 받아 사방에서 궐기하니, 훗날 이 시대는 ‘누산타라의 해적들’이 인도양과 서태평양에서 해적들의 황금기(Golden Age of Piracy)를 열었다 평가해도 무방할 것이었다.
“…라고, 네놈 해적들이 이곳을 정말 만만하게 보는 것 같은데, 이곳은 엄연히 우리 프랑스 왕국의 땅이다!”
항로가 틀어막힌 건 포르투갈뿐.
목화전쟁 그 사이를 틈타 이곳에서 세력을 확장하려던 카디스 조약의 다른 국가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가 뜬금없이 거대한 해적세력이 만들어지며 실로 혼란스러운 상황이 펼쳐지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열심히 해적 토벌에 나섰다.
그러나 프랑스인 해군들마저도 금화와 향신료에 홀려 해적이 되고 있는 마당에 해적 토벌이 가능할 리가 있겠는가.
“잭 드레이크, 이것이 네 이름이 맞지? 이 쓰레기 같은 잉글랜드 해적 놈!”
Mort ou Vif(Dead or Alive, 생사 불문)이라는 단어가 크게 적혀있는 현상금 수배지를 그의 얼굴 앞에 흔들어 댄 장교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선장이오. 부디! 날 부를 때 제발 그 호칭을 앞에 붙여주시구려.”
붙잡힌 와중에도 능청을 떠는 어설프고 비루한 해적, 그의 낡은 선장모가 실로 꼴 보기 싫어 프랑스인 해군 장교가 그 모자를 저 멀리 던졌다.
모자를 벗기니, 그 안에서 자그마한 원숭이 하나가 놀라 사라졌다.
저 자그마한 모자에 저 크기의 원숭이가 숨는다는 것이 가능은 한가?
“잭! 냉큼 그 모자 주워와!”
저 빌어먹을 원숭이 이름도 잭이군.
잭 드레이크는 옛 잉글랜드의 대해적 잭 디건을 동경하여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애완동물의 이름 모두 잭이라 지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잭 디건의 최후가 썩 좋지 못했던 것처럼, 잭 드레이크의 최후 또한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네놈의 바람난 아내 호는 압류다. 항의는 받지 않겠다.
구형에다가 심히 너덜거리는 것이 실로 쓰레기 같은 함선이 따로 없지만 네놈에게는 그것도 사치겠지.
어차피 네놈은 곧 교수형을 당할 운명이 될 테니 말이야.”
그러나 잭은 장교의 빈정거림에도 휘파람을 불며, 향료 제도(말루쿠 제도)의 주요 항구, 누벨 라로셸(Nouvelle―La Rochelle)에 지나가는 프랑스와 원주민 처녀들의 둔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형식적인 재판이 열려야 하겠지만, 네놈은 다음 주에 목이 매달리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이 세상의 달콤한 공기를 열심히 맡고 있으라고.”
― 쿵
독방의 문이 닫혔다.
누벨 라로셸은 심각할 정도의 인력난에 처한 곳.
프랑스는 카디스 조약 이후 부랴부랴 거점을 마련하긴 했으나 아직 이곳에 제대로 투자해 만족스러운 과실을 수확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1세대 해양국가들(고려와 포르투갈)이 서아프리카에서 된통 싸울 때, 2세대 해양국가들은 이제 막 군함을 건조하고, 해군을 육성하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하다못해 이런 감방에도 간수가 없었다.
감옥 자체는 견고하게 지어졌지만.
주변을 슬쩍 둘러본 잭 드레이크는 이윽고 한곳을 바라보더니 음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 옳지, 이리 가져와.”
어느새 따라왔는지 원숭이 잭이 잭 드레이크의 애달픈 간청에도 간수의 식탁 위에 있는 바나나를 집어 먹는 것이 보였다.
“이리 내라고!”
― 뿌에에엑!
자신에게 함부로 소리치지 말라는 듯 그의 주인을 노려본 원숭이가 주인을 바라보며 약 올리듯 천천히 능청스럽게 바나나를 까먹자 잭 드레이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열쇠를 가져오면 바나나를 나무 통째로 사주지. 배가 터지도록 말이야.”
― 끼엑
원숭이 잭이 협상에 동의한다는 듯 나직하게 울어 보였다.
몇 번이고 더 애간장을 태우며 약속의 이행까지 받아낸 원숭이 잭이 마침내 잭 드레이크에게 열쇠뭉치를 가져다주자, 능숙하게 감옥의 문을 열고 나온 잭 드레이크가 원숭이에게 그의 선장모를 받아 머리에 썼다.
“그래, 어디 한번 제대로 된 함선을 나포해 볼까?”
동료 해적들로부터 반쯤은 제정신이 아니라 평가받는 초보 해적 선장 잭 드레이크는 누벨 라로셸에 정박했다는 프랑스 최고의 함선, 라 미트리스(La Maîtrise)를 향해 너무나 자연스럽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잭, 이름은 뭐로 짓지?”
― 끼에엑
“마음에 안 들어, 다른 걸 말해봐.”
― 끼에에엑
“그것도 영 별로야.”
― 끼엑 껙
“흐음… 이건 괜찮은데?”
몇 번 그 이름을 되뇌어 보인 그가 피식 웃음 지었다.
“그래, 우리의 보석이 바다에서 그 악명 높은 ‘플라잉 코리안’마저도 이길 수 있도록 빌자고.”
* * *
제철.
철기가 등장한 이후, 인류 문명은 철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항상 큰 관심을 가졌다.
중동과 유럽, 인도와 지나.
세계 각지의 위대한 문명은 그들만의 야금술(metallurgy)을 개선하고 진보시켰다.
고려도 마찬가지.
통치자들의 한결같은 관심, 야금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화학의 발전과 함께 야금술은 예전부터 점차적으로 진보해 있었다.
한나라 시절부터 중원의 야금술은 세계에서도 꽤 진보해 있었던 터라 한반도의 국가 또한 그와 교류하고 스스로 개량을 해나가면서 철기의 문화를 꽃피웠었다.
고려 또한 마찬가지였고.
비록 삼별초가 이곳에 떨어진 이후 많은 옛 지식들을 잃어버렸다곤 하나, 고려의 위대한 황제들은 금방 예전의 전통을 다시금 수습하고 개선시킬 수 있었다.
그 뒤로는 동서양의 가교 역할을 하던,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기술력을 축적했었던 콘스탄티노플의 난민이 흘러들어오자 다시 한번 도약했지.
그러나 고려의 야금술이 크게 진보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 또한 국가 주도의 개량과 이민이 아닌 방적기와 방직기처럼 민간의 수요 덕분이었다.
기존의 진자시계에서 더 나아가 태엽으로 돌아가는 최초의 시계를 만든 자는 장영실이다.
장영실은 거기서 더 나아가 탈진기를 부착한 경선의를 개발하는 혁혁한 공로를 이루기도 했지.
육분의와 경선의는 고려가 해상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아주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였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말한다.
장영실이 시계에 대해 대단한 업적을 세웠음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그의 최고의 업적은 아닐 수 있다고.
그가 완벽한 시계를 위해 스스로 밤낮없이 연구한 것.
즉 장영실의 제강(製鋼)법이 가장 중요하다고.
철은 노(爐)에서 열을 가해 녹였다고 완벽히 쓸 수 있는 품질의 쇠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탄소의 함량이 너무 높은 철은 선철(주철, 무쇠)라 하며 단단하긴 하지만 연성이 낮아 너무나도 잘 깨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탄소의 함량이 낮은 철은 연철(단철, 시우쇠)라 하며 그래도 주철보다야 더 많은 곳에 쓰였다.
그러나 이 또한 약하다는 필연적인 단점이 있었지.
선철과 연철, 그 중간의 적당한 탄소함유량.
이를 지키는 철은 철 중에서도 최고의 철이라 평가받는 강철이라 한다.
길에는 자동차가 다니고 머리 위에는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상민의 예전 삶에서는 체감하기 힘들었지만, 강철은 실로 대단한 물건이다.
그 당시의 포항제철에서 생산한 강철로 만든 장검이, 아마 고대와 중세의 명장이 몇 달 동안 두들겨 만든 보검, 간장과 막야 같은 검들보다 훨씬 더 강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이상적인 꿈의 철.
결국 장영실은 제대로 된 시계를 만들기 위해 먼저 강철이 필요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상민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입장이라 그는 자금 걱정 없이 생각했던 것을 전부 다 실행해볼 수 있는, 실로 기술자로서는 환상적인 여건 아래에 있었다.
첫 번째. 화력을 개선하라.
상민은 그에게 석탄에 대해 주목해보라는 이야기를 남겼다.
석탄을 넘어, 코크스까지도.
“나무가 숯이 되듯, 석탄 또한 더 좋은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것이오.”
“좀 더 자세하게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글쎄, 궁리해보게. 이만 바빠서 말이야.”
당시 시중은 궁색하게 말도 제대로 안 해주고 도망갔지.
그러나 공학자는 실로 위대한 존재다.
한마디의 말에 식견 하나는 탁월한 장영실은 석탄을 고온에서 건류하여 해탄(骸炭, 코크스)을 만드는 것에 성공했고, 이 해탄을 이용해 쇳물 화로의 온도를 개선했다.
가마를 개선해야 할 정도로 해탄의 화력은 대단했지.
두 번째.
고온에서도 깨지지 않는 그릇―도가니(Crucible)를 만들어라.
도가니의 개념 자체는 반도와 중원의 나라들에게선 예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고려인들도 드문드문 쓰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해탄 덕분에 한층 강력해진 화력에도 제대로 버틸 수 있는 도가니를 만드는 일은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했다.
그러나 앞선 난관보다는 쉬워, 장영실은 질 좋은 점토로 깨지지 않는 도가니를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고려는 이미 수많은 점토를 구워 벽돌을 만들고 도자기를 생산하는 나란데, 도가니 정도야 난관 축에도 꼽히지 못했다.
세 번째.
철의 탄소 비율을 조정해보라.
쇠를 다루는 자들을 불러모아 경험적으로 공기와 탄소, 그리고 여러 가지의 관계를 연구한 장영실은 해답을 찾아냈다.
철광석을 녹이는 일반적인 노에서 생산된 철을 제강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중구난방하게 혼합되어 사용되던 연료와 철을 완전히 분리했다.
이제 철은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열원을 받는 채로 노 안에서 탄소 혼합물과 섞였다.
외부 요소 없이 탄소를 통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를 침탄법(浸炭法, Cementation Process)이라 했다.
단순한 개념이지만 본래 위대한 진보는 이러한 단순한 걸음이 누적되어 나타나는 것이겠지.
그다음은 별것 없었다.
넣어보고 빼보고 기록하고.
철과 탄소의 최선의 혼합비를 얻는 과정은 지루하지만 직관적이니, 장인들은 밤낮없이 노를 들여다보았다.
마지막.
침탄법으로 제강된 철을, 도가니를 이용하여 다시 한번 더 제강해 품질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킨다.
도가니에 철을 장입하고 밀폐.
외부의 열을 가해 강 안의 기포와 편석, 불순물(슬래그) 등을 부유시켜 분리한다.
마지막으로는 도가니를 열어 그 쇳물을 주형에 담아 철괴를 만든다.
마침내 주형에서 튀어나온 철은 기존의 철과는 비교할 수 없이 균일성과 재질이 모두 뛰어났다.
“이 철은 고려를 영원한 반석 위에 세울 것입니다!”
강철의 제강에 성공한 장영실과 장인들은 만세삼창과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성공을 세상에 알렸다.
당시 상황을 참관했던 상민 또한, 주먹을 불끈 쥐며 감흥을 감추지 못했었다.
강철(鋼鐵), 아주 단단한 쇠.
모든 산업의 어머니.
모든 인프라의 선결조건.
인류가 철기에 진입한 시기는 상당히 이르지만(남북중려 원주민들을 제외한다면), 철기는 같은 철기로 뭉뚱그려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강철 제조법의 등장은 그 전과 분명히 구분되어야 하니까.
비록 도가니 제강법은 대여섯 시간 정도 동안 계속 열을 전달해야 했고, 도가니의 크기가 한계가 있다 보니 한 번에 많은 수의 강철을 생산하기도 어려워 엄연히 고급 철의 생산과정이라 불릴 수 있었다.
정말로 중요한, 즉 시계나 중요한 일부 총기에나 쓰여야 할 정도로 생산성이 형편없었지.
그러나 앞으로 이 과정 또한 수많은 기술자들에 의해 개선될 것이 분명했다.
기술선도국의 작품이었으나, 상민은 이것을 특허로 묶지 않고 고려의 장인들과 공유했다.
철을 독점하는 것보다, 민간에 풀어 급격한 진보를 꾀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렇게 고려는 이 ‘도가니 제강법(Crucible Process)’으로 인해 제대로 된 강철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