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256화 (256/653)

조천사

이번의 조천사는 고려와 조선이 새로운 천조 질서하에서 군신 관계를 맺은 이후, 처음으로 상국에 보내는 사신단의 행렬이다.

작금의 조선은 병인몽란 이후, 대농장을 가진 기득권 세력이었던 훈구가 거의 박살 나다시피 하며(고려국 서벌사령관 진람의 군정 덕도 컸다) 조정에 남은 훈구대신들도 학문적 영향력은 소실된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 틈을 타 조선의 정계를 순식간에 장악한 자는 사림.

그러나 사림도 처음 탄생부터 온전히 하나의 부류로 꼽히진 않았다.

모두가 다 같이 좋게좋게 지내면 이상적인 일인데, 한정된 정치 권력이란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에 파벌이 생기기 마련이다.

게다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관계는 항상 보이지 않아도 복잡하게 얽혀있기 마련.

따라서 지금 조선의 붕당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 기준은 역시나 고려와 대외관계에 대한 문제였다.

전 국토가 짓밟히고, 종묘와 사직이 박살 나며, 옛 왕씨 고려와 같이 비굴하게 북원의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야 했던 비극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고려의 지원이 가장 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계와 함께 강화도에서 끌려 나오다 졸지에 개성대첩의 생생한 증언자가 된 자들은 전율이 돋는 고려의 강력함에 경악하여 이 년이 넘게 흐른 지금에도 밤에 악몽을 꾸다 땀 흘리며 일어나기 일쑤였다.

이들, 즉 천조 고려를 경외시하며 고려의 질서하에 확고히 들어가자는 주장을 펼치는 자들을 동쪽에 있는 고려에게 배알한다는 의미의 동인이라 불렀다.

재조지은이라는 말을 널리 사용하는 자들이기도 했고.

반면, 서인은 이와 달랐다.

물론 이들이 정신이 나가 고려와 대적하자는 말을 하는 자들은 아니었다.

다만, 이들은 경사에 있는 남명의 천자에게도 조금은 신경을 쓰자―혹은 동아시아의 정치학적 균형을 고려하여 명과 고려의 사이에 줄타기를 해보자―는 입장이었다.

일견, 중립 노선을 주장하는 서인들이 외교에 관해서는 조금 더 진보적인 경향이 있긴 했다.

그러나 사상적 흐름으로는 기존 중화천조질서 대신 새롭게 대두하고 있는 범예맥한계 천조질서를 따르자는 동인들이, 아직도 하(夏), 은(殷), 주(周)에서 명으로 이어지는 중원의 천하관과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의문인 요순우탕(堯舜禹湯)의 치를 그리워하는 서인들보다 더 진보적인 경향이 있다 말할 수 있겠지.

조정 내의 세력은 고관들이 대부분 개성대첩의 현장에 있었고, 세자와 함께 싸워왔던 의병장들이 조정에 들어왔기 때문에 동인들의 세력이 훨씬 강성했다.

반면 조정 밖의 세력은 서인이 조금 더 강했다.

특히 유생들과 향반의 주도로.

어쩔 수 있겠는가?

모든 이들이 개성대첩을 생생하게 관람한 것은 아니었으니 고려의 강력함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가진 자들은 소수였다.

물론 이들도 재조지은을 인정하긴 했으나, 그래도 가까운 주먹이 먼 주먹보다 더 무섭다는 말을 완전히 잊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펼쳤다.

아마 유생들은 고려의 학문적 기조로 볼 때, 지금까지 배웠던 중원의 역사나 고사들, 그리고 유학적 지식들이 어쩌면 과거와 달리 중요성이 낮아지거나 심지어 쓸모가 없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생겨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금은 이 붕당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붕당이라는 것이 사람 넷만 모이면 둘로 쪼개져 다투는 자연스러운 싸움이니만큼 군주 스스로가 적당한 균형을 꾀할 수 있다면 통치에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을 테니.

그러나 현재 조선은 상황이 좋지 않았고 개혁이 시급하니 개혁의 원동력을 상국 고려에게서 찾아야만 했기에, 이금은 지금 당장은 동인들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맞겠다 판단했다.

따라서 그는 이번 조천사 행렬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동인의 으뜸 중 하나이자, 조정의 실세 중 하나인 예조판서 남효온을 정사(正使)로 삼아 무려 육십 명에 달하는 자들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

과거 명에게 보냈던 조천사가 대부분 사십여 명에 불과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많았다.

규모가 이리 큰 까닭은, 상국을 견문하라는 의도로 젊은 신료들을 대거 포함했기 때문일 것이다.

AD 1510(개천 235년) 3월.

조천사 행렬은 경복궁에 모여 세자 이금에게 덕담을 받고는 개성으로 떠났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조선 스스로 저 먼바다를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 없었다.

물론 북원이 존재하는 탓에 지금까지의 명과의 사행도 항상 해로 사행이긴 했다.

하지만 잔잔한 축에 속하는 황해를 건너는 사행은, 보진 못했지만 끔찍하게 넓다는 태평양을 건너는 사행에 비해선 그야말로 양반이겠지.

고려도 이런 사항을 알고 있었는지, 승객용으로 특수하게 개조된 플류트 한 척을 사행선으로 개조하여 짐칸 대신 승객들을 나름대로 편안하게 오갈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함선을 온전히 조선인들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뭐 하러 그렇게 하는가.

플류트는 애초에 화물용 수송선이라 짐칸 자체는 순양함보다도 훨씬 더 컸다.

이런 짐칸을 전부 개조한다면 많게는 이백 명도 수용이 가능하니 이왕 한 번 오갈 거, 옥저와 왜남조의 행렬도 같이 가게 된 것.

옥저의 도읍, 중경 솔빈부에서 조선의 동해안을 거쳐 개성으로 온 옥저 조천사와, 능도에서 출발하여 개성으로 온 왜남조의 조천사들까지 사행선이 정박해 있는 개성의 신벽란도에는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옥저 놈들….”

3월, 아직도 추운 북방의 날씨를 견디기 위해서인지 옥저인들은 모직물로 짠 모자와 옷을 입고 있었다.

외견상으로는 여진족의 기운을 풍겼지만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보니 영락없는 조선인 출신이다.

조선인들의 말을 들었는지, 옥저인들이 고개를 돌렸다.

비록 여진 부락들을 빠르게 복속하는 만큼 여진인들의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통치세력은 대부분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조선인들이었기에 언어 또한 비슷했다.

이제 같이 고려에 입조하니 언어적으로도 분화할 일도 크게 없을 것이고.

“흥!”

콧방귀를 뀐 옥저인들.

그 모습이 꼴불견이라, 조선인들은 멀뚱하게 둘을 바라보는 왜남조의 행렬을 사이에 두고 굳이 접촉하지 않기로 했다.

감정싸움을 하기에는 주변이 너무 신기했다.

개성은 고려의 통치를 받은 이후부터는 상당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한양에 있던 신료들은 단지 소문만 들었을 뿐이었는데 이리 직접 와보니 차원이 달랐다.

“저게 다 뭐요?”

젊은 관료 중 하나가 참지 못하고 공사장의 감독관으로 보이는 고려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곳에 교대로 주둔하게 된 고려인들은 개성을 말 그대로 갈아엎고 있었다.

상당한 노동력이 필요한 사업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조선인들은 노역에 끌려온 것 같지가 않았다.

고려인들이 그런 행패를 부릴 것 같지도 않았고.

원래 이곳에 노역하던 그 수많은 한병들은 전부 다 주왕 장경창의 휘하로 보내었다.

장경창이 빠르게 대만을 복속할 수 있도록.

그래도 남은 자들은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해서 출신의 여진들인데, 고려는 이들을 노역에 써먹는 대신 근면하게 일한다면 개성에 거주할 수 있는 시민권을 주겠다 약속했다.

어차피 역대로 이어진 조선의 개성 견제 및 병인몽란으로 인해 도시는 경제적으로나 인구적으로나 썩 좋지는 않았기에 받을 수 있는 인구는 충분했다.

해서여진들로서도 밥도 제대로 주고, 대우도 괜찮고, 날씨도 북방에 비해 좋은 개성에 살기 싫을 리가 없으니 열심히 일을 했고.

“구리관을 까는 작업이오.”

“구리관?”

기껏 그 귀한 구리로 하는 것이 구리관을 까는 작업이라니?

그러나 청년의 말에, 오히려 고려인 감독관이 혀를 차며 말했다.

“기껏 구리관이라니! 국가의 대사는 모름지기 치수로부터 나오는 일인데, 어찌 관을 까는 작업을 하찮게 여길 수 있겠소? 오물을 관리하는 것이 신민의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다니. 쯧.”

감독관은 젊은 관료가 한심하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 말 상대를 하지 않고 다만 여진인 인부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 어이! 거기 2조! 4조에 비해 작업량이 느린데 이번 주 성과급 은자 1환을 정말 이러다 뺏기겠어?

청년은 핀잔을 들어 얼굴을 붉히다가도, 마음속으로 그 말을 기억해 두었다.

항구에 배가 왔다.

전에도 본 적이 있었지만, 실로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함선은 조선인들에게 위압감을 선사했다.

젊은 나이에 병조판서에 제수된 이백록은 세자에게 청하여 화포를 쓸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한 새로운 군함을 개발하는 것에 착수하였고 설계도만 나왔을 뿐인데 ‘판옥선’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판옥선조차도 연안용 전투선인 만큼 대양용 함선에 비해 크기가 작았다.

군함조차 아닌데, 다소 주눅이 든 채로 고려인 안내인에 따라 배 위에 오른 이들은 마련된 객실에 짐을 풀었다.

“무지막지하게 넓습니다.”

청년, 조광조는 자신과 같은 2인 침실을 공유하는 관료이자 선배, 남곤에게 그렇게 말을 꺼냈다.

남곤과 그는 열한 살 차이.

게다가 조광조는 세자 이금이 국정을 운영한 뒤로 병인몽란 도중 관료들의 숫자가 많이 상한 것을 충원하기 위해 처음으로 본 별시에서 급제한 신출내기였다.

본래라면 이렇게 젊은 문신으로 묶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남곤 또한 그동안 과거에 붙은 이후에도 사가독서를 하여 관직에 등용되지 않았으니 실제로는 둘의 경험이 비슷하다 하겠다.

조천사에 이렇게 같이 포함되기 전에도 둘은 몇 번 만나보긴 했었다.

그러나 사람이 원체 고지식하고 무뚝뚝하여 다가가기 어려운 남곤인 터라, 평상시와 같은 조금은 쌀쌀맞은 대응까지 예상하고 있었던 조광조는 의외로 남곤이 평소와는 달리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신기하게 둘러보며 기분이 좋은 듯한 모습을 하자 적잖이 놀랐다.

“넓다마다, 배 안에 실로 수많은 사람들이 편히 오갈 수 있으니 상국이 어찌 바다를 자유자재로 누비는지 비로소 알 수 있게 되었네. 효직(孝直, 조광조의 호), 우리의 앞에 얼마나 신비한 것들이 있을지 기대가 되지 않는가?”

“아… 예.”

조광조는 그가 가진 관념상 서인으로 분류되었다.

남곤은 반대로 동인으로 분류되었고.

그러나 조선의 초기 붕당은 갈등구조가 명확하지 않고, 서로에 대한 미움이 아직 없었기 때문에 동서인의 대립은 조정에 등청하는 관료들에게나 소소하게 일어나는 일이었지 이런 젊은 문신들에겐 별 해당 사항이 없었다.

조광조는 남곤의 격한 모습을 처음으로 보고 약간의 심적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둘 모두 이 거대한 배가 출항하여 미끄러지듯 움직이자 갑판으로 나가 탄성을 질러대었다.

물론 이것도 배라 흔들림이 있었지만, 파도에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 맹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안정감이 있었다.

“좋구나!”

조선은 물론이고, 옥저와 남왜의 사신들마저 갑판 위에 올라가 신나 떠들어 대니, 고려인 선원들은 그들을 흘겨보면서도 어이가 없는지 피식피식 웃어대었다.

즐길 때 즐겨 두라고.

그리고 예견된 불행이 찾아왔다.

“우우우웨엑!”

조선인들과 옥저인들은 제각기 선실에 미리 준비되어 있던 나무통 하나를 붙잡고 토악질을 계속하고 있었다.

바다에 나름대로 익숙해 있던 남왜인들도 처음에는 잘 견디다가, 항해가 계속되자 그 대열에 합류했다.

유구국에 들렀을 때만 해도 조금은 쉴 줄 알았지만, 유구국 사절들이 배에 추가로 탑승하자마자 출발하니, 이제는 정말로 망망대해라는 말이 어울리는 거대한 태평양에 진입해 버린 것이다.

얼굴이 하얗게 변한 관리들은 고려인들이 좀 먹으라는 말과 함께 가져다준 건빵과 김이 다 빠져 밍밍한 맥주, 그리고 쉰 건지 상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붉고 매운 짐채, 그리고 페미컨(건육괴(乾肉塊)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도 했다.)을 입에 대지도 못하고 그저 선실 안에서 누워 있을 뿐이었다.

“…사화(士華) 형님.”

“…왜 부르나.”

얼굴을 마주 보며 토악질을 함께 하다 보니 다소 서먹했던 두 사람은 순식간에 호형호제를 할 정도로 친해져 있었다.

“…언제 도착한답니까?”

아직도 하루 대부분의 시간 동안 선실에 널브러져 있는 조광조와는 달리, 남곤은 이제 정신을 좀 차린 모양인지 얼굴이 핼쑥해져 있긴 했지만 식사도 좀 하고 갑판에 나가 선원들을 이리저리 귀찮게 질문하기도 했다.

“위치상 북북항로의 절반쯤 왔다던데.”

“부… 북북항로가 대체 무엇입니까?”

“북태평양 순환항로 중 북쪽을 일컬어 북북항로라 말하는 듯하네.”

“…그, 그렇다면?”

“그래, 온 만큼 더 가야 하겠지.”

절망에 빠진 조광조가 다시금 침상에 몸을 묻자, 남곤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효직, 그래도 대단하지 않은가? 배가 돛을 저리 많이, 높게 다니 이렇게 날 듯이 바다를 질주하는 것이.”

“자꾸… 마… 말 시키지 마…십시오, 형님.”

― 우욱

먹은 것이 없어 뱉을 것도 없어 보였다.

* * *

중세시대, 선박의 속도를 측정하기 위해 부표가 묶인 밧줄을 늘어뜨린 것으로부터 유래한 1매듭(Knot)은 한 시간에 1해리를 이동할 수 있는 단위를 나타냈다.

현재 조천사를 태운 플류트는 평균 7매듭에 달하는 속도, 그리고 순풍을 제대로 탄다면 9~10매듭의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무역용 화물을 다 빼고, 승객과 식량만 달랑 싣고 가는 덕인지 무척이나 가벼웠으며 효율적인 선체구조로 많은 돛을 매달 수 있는 덕이 컸다.

물론 속도에만 집중하여 건조한 연락선이 더 빠르긴 했지만 연락선엔 이 정도의 인원을 싣지도 못했다.

이런 빠른 속도에도 불구하고, 개성에서 미원까지의 거리는 실로 한 달 하고도 사흘이라는 엄청난 기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조광조와 남곤은 이제야 대양을 다 건넜다는 고려인 선원들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상국은 대체 어떤 나라이길래 이 먼 거리를 통해 군사와 보급물자를 실어 날랐단 말인가?”

드디어 육지다.

조선인들과 옥저인, 그리고 남왜인들은 반쯤 쓰러지다시피 밖으로 나와 배에서 내렸다.

유구인들은 꽤 멀쩡해 보였다.

조광조는 땅에 발을 디디니 원기가 순식간에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너무 심한 멀미를 겪은 탓에 반가운 땅에 입맞춤이라도 할 기세였지만, 이내 그는 주변의 눈길이 많은 것을 눈치채고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체통을 차렸다.

고려인 안내자가 말했다.

“귀빈들께선 이곳에서 나흘간 휴식을 취하시다가 다시금 약속된 기일에 맞추어 탑승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번 행렬에는 시중께서도 동행하실 것이니 유념해 주시지요.”

“…차… 창양은 얼마나 더 가야 하오?”

고려인 안내자가 사악하게 웃었다.

“오신 만큼, 아니, 오신 것보다 조금 더 가셔야지요. 그러니 이리 푹 쉴 수 있는 기회를 드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 껄껄

한바탕 웃은 그가 창백하게 탈색된 사신들에게 말했다.

“식사를 풍족하게 하셔 원기를 회복시키기 바랍니다. 그래도 지난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배에 적응들 하셨으니, 다음 항해는 조금 더 괜찮을 겁니다.”

그동안 관광도 하시고, 해변에서 좀 쉬시기도 하세요.

안내자는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조광조는 고려인 안내자가 턱짓으로 가리킨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미원의 항구가 위치한 곳은 미원 북쪽의 미워크만과, 남쪽의 요쿠츠만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작은 반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파도가 작아 잠잠해지지만, 반도 바깥은 대양에서 오는 파도를 정면에서 받아 침식되는 지형.

그 덕에 넓은 모래사장이 있으니, 눈부신 햇살과 함께 환상적인 풍경을 자랑했다.

그러나 조광조의 눈길을 끈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여성용 수영복, 즉 신축성 좋은 면으로 된 몸에 딱 달라붙으면서 팔꿈치 윗부분까지 보이는 짧은 상의와 허벅지까지 드러나는 짧은 바지를 입은 고려인 여인들이 깔깔 웃으며 해변에 누워 햇볕을 쬐고 있었다.

일평생 유학을 공부한 조광조마저도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보게 효직, 지금 뭐….”

그를 부르기 위해 다가갔던 남곤 또한 그 광경에 한동안 자리에 머물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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