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약
영파에서의 패배 이후로, 바스쿠의 세력은 명과 전면으로 싸우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세력 전부가 아예 하나의 거대한 해적단체가 되어 명의 남부 해안가를 들쑤시니, 국가급의 수적 무리가 바다에서 횡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과거, 왜구의 악명이나 주나라 해적, 그리고 근래 들어 퍼진 고려구의 악명도 이들에 비하면 실로 선녀와 다름없었다.
반면, 사서에 적힐 만큼 끔찍하고 치욕스러운 대답을 받은 명은 유례없이 격노하며 이들을 토벌하길 원했다.
주우민이 굳이 순무의 시신을 직접 보자고 한 것, 그리고 그 참혹한 시신을 본 뒤에 뒷목을 잡고 쓰러진 것도 있었지만 병상에서 신료들을 불러모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포도아 흉적들의 무리를 일망타진하라고 당부했기 때문.
그러나, 뭘 어찌하겠는가?
제해권을 지배한 상대와 싸우는 것은, 초원에서 말을 달리는 유목민들과 싸우는 일만큼, 아니 그보다 더 어려웠다.
저들이 저 멀리 대월국의 남쪽 말라카에 있다는 것은 그들도 들은 바가 있으나, 지금의 상황상 그곳까지 원정을 갈 역량은 전혀 없었기에 명은 오히려 애꿎은 자국민들을 죽여대기 시작했다.
―네놈들! 포도아의 첩자렷다!
신출귀몰하게 해안가를 약탈하는 탓에, 내지의 불순한 무리들이 저들에게 명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의심을 품은 조정들은 암상들을 토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암상이 어디 나 암상이오, 하고 머리에 대문짝만하게 쓰고 다닌단 말인가.
첩자는커녕 암상을 색출해내는 것조차 힘들었으나 조정에서는 실적을 원했다.
파견된 무장들과 관리들은 뭐라도 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좋지 않은 선택을 내리고야 말았다.
특히나 절강, 복건, 광동에서 조정의 명에 따라 해변에서 일정 거리까지 소개(疏開)하지 않은 자들은 부지불식간에 반역자로 몰려 큰 고초를 당했다.
해남도와 대만은 더 심했다.
이곳도 이미 소개령이 떨어져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일평생 바다에서 어업을 하거나 해산물을 채취하며 살아갈 뿐이었으니 마땅히 내륙에 갈 형편도 못되었다.
포르투갈도 별 볼 일 없다 생각하여 건드리지도 않았던 지역, 양이들 얼굴조차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았던 이 섬들은 또다시 명에 의해 학살이 자행되었다.
그때를 틈타, 과거의 세력이 들어왔다.
스스로 주의 후예를 칭하는 장경창과 그 무리들은 명의 해안가를 침탈했던 해적 주제에 명의 조정과 포도아의 세력으로부터 섬의 주민들을 지켜준다는 대의명분을 내걸고 다시금 후주의 부활을 천명한 다음 대만 복속을 꾀했다.
이미 대만에 대한 명의 영향력은 땅에 떨어져 있었기에 이들이 섬의 관아와 항구들을 점령하는 것은 실로 쉬운 일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해적 시절부터 민간을 잘 약탈하지 않고 관과 군, 그리고 암상들을 주로 괴롭혔으니 이전부터 의적이라 부르는 자들도 있었다.
비록 장경창은 자신을 예전처럼 황제라 칭하지 않고 주왕(周王)이라 칭하며 다른 국가들(명과 고려)의 눈치를 보겠다는 다소 타협적인 안을 내세웠으나, 그마저도 명에게는 치명적인 권위의 하락을 불러왔다.
주의 부활에 절강과 복건, 광동의 민심은 요동쳤다.
그러나 명 조정은 포도아 무리에게도 어찌 대응을 못 하는 판에 대만 원정은 꿈도 꾸지 못하니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실로 경무제 주우민의 치세는 즉위 초부터 극도로 혼란하여 도저히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에 있었던 것이다.
* * *
AD 1509(개천 234년) 6월.
‘복주의 변’, 그리고 주의 건국 선포라는 두 차례 흉사에 주우민의 입지는 크게 약화되었다.
지금까지 신민이 수없이 다쳤는데 성과는 없고 돈 낭비만 했으니 면목이 없었다.
그리고 황제의 얼굴에 똥칠을 처바른 바스쿠 다 가마의 행패.
큰 풍채를 자랑하던 주우민이 그때 크게 혈압이 솟구쳐 졸도한 이후 건강이 한순간에 나빠져 자리보전을 하니, 새롭게 모신 젊은 황제 또한 행정 불능의 상황에 빠져버린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주우민은 태자가 없었다.
젊은 나이니 결국 털고 일어날 수도 있지만, 젊음이 만능은 아니라 젊은 나이에 요절했던 군주로 적힐 수도 있었다.
태상황의 경우도 있으니 여색을 멀리하라는 신료들의 눈치를 보며 오로지 조강지처인 중전만 있었는데 그동안 중전과의 사이에서 아이도 보지 못했던 상황.
여러모로 좋지 않은 상황에 명 조정의 신하들은 셋만 모이면 나라의 앞일에 대해 걱정했다.
“이런 국난에 황상께서 편찮으시다니, 나라가 또다시 흔들리게 생겼소.”
“허어… 이를 어찌할꼬.”
AD 1509(개천 234년) 8월.
마침내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대장 석정유 및 태감 장평 등의 모의로 정변이 일어났다.
이들은 일단 포도아의 해적 무리들이 넓은 장강을 타고 와 경사를 직접 화포로 타격한다는 헛소문(정상적인 이성을 가진 이들이라면 믿기 힘들었지만, 이미 백성들 사이에선 바스쿠의 악명이 워낙 자자했기에 경사에는 한바탕 난리가 일어났다.)을 흘리고는 병사들이 바쁜 틈을 타 한밤중에 전각에 유폐되어 있는 주우철을 풀어주는 것에 성공했다.
풀려난 주우철은 고생을 심히 한 탓에 초췌한 몰골에도 안광을 빛내며 뚜벅뚜벅 자금성의 문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성문을 지키는 초병들은 당연히 이 수상쩍은 괴인을 곧바로 제지했다.
“네놈은 누구냐!”
과거의 주우철이라면, 일단 당황했을 것이다.
말단의 병사들이 자신의 얼굴을 알 리가 만무했으니 환관들을 불러 해결하라고 지시했겠지.
그러나, 지금의 주우철은 달랐다.
“짐이 이 나라 황제이다!”
초병의 질문에 마주한 단 한 번의 일갈.
그 위엄 서린 말에, 초병들이 쭈뼛쭈뼛 물러나 심지어 문을 열었다.
뒤늦게 이들의 행태를 꾸짖기 위해 달려온 수비대장조차도, 주우철을 마주하고 그 위엄을 접하자 머리 한켠에 박아놓았던 태상황의 용안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고 무릎을 꿇었다.
바로 앞장서 태상황의 입궐을 맞이하니, 심지어 정변을 위해 제대로 된 군사를 동원하지도 않았던 이 탈문의 변(奪門之變)은 아주 허무하게 끝이 났다.
다음 날 아침.
조정에 등청한 명의 신료들은, 옥좌에 주우민 대신 주우철이 앉아있는 것을 보고 까무러칠 듯 놀랐지만 이미 사태가 종결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경무제 주우민은 겨울이 오기 전에 모종의 이유로 죽었다.
* * *
실로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냈던 주우철은 복위한 뒤 연호를 홍명(洪明)이라 고쳐 홍명제가 되었다.
그 이후로는 국정에 골몰했는데, 그 정도가 심해 정말 밥만 먹고 정무를 처리하는 일이 많아 주변에선 과로를 걱정할 정도였다.
정변의 공신들, 즉 석정유와 장평 등을 다시금 권신과 총애하는 환관의 지위에 올려 국정을 어지럽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직접 주우철이 그 둘을 트집 잡아 처형시키는 것으로 완전히 희석되었다.
주우철은 각지의 명신들을 등용하고 국가의 체계를 정비하며, 외적을 방위하는 것에 골몰했다.
“…포도아의 경우를 어찌하면 좋겠소?”
주우철은 냉정하게 사태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명이 각성을 했다지만, 바다에서 저들과 싸우는 것은 이미 심각할 정도로 큰 격차가 있었던 덕에 불가능했다.
대답하는 이가 아무도 없으니, 주우철은 실로 이들에게 실망했다.
우물에서 뛰어나온 주우철은 다른 개구리들에게 빨리 밖으로 튀어나오라 말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그럴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모양.
우물이 너무 안락하고 큰 탓인가.
“되었소. 그냥 짐의 뜻대로 따르시오.”
주우철은 고려와 접촉했다.
인연이 닿았던 것도 있고, 어떠한 조건을 걸지 않고 석방을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다.
비록 고려가 천자국을 칭하는 터라 완벽하게 통교할 수는 없었지만, 고려의 봉신국과 같은 개념이 분명한(주우철은 그래도 개성에 있었을 때 그것을 알아차릴 만큼의 눈치는 있었다.) 미주의 상인들이 다시금 영파에서 상행할 수 있게 허락을 해주었다.
고려인들이 그 신물, 즉 전국옥새를 얻었다는 소문이 파다했음에도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오로지 주우철의 결심 때문이었다.
― 어찌 신외지물 하나가 천명을 좌우하겠는가?
주우철은 그 대가로 차관을 받아 발등에 떨어진 재정위기라는 불꽃에 조금의 물을 뿌렸다.
그러나 고려는 그 이상 나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차라리 과거의 일을 본받아, 고려와 형제 관계를 맺어 도움을 요청한다면?’
물론, 그렇다면 명이 아우가 될 것이었고.
이미 이민족 황조 요나라와 한족 황조 송나라가 전연(푸양시)에서 체결한 약속(澶淵之盟, 전연의 맹)이 있잖은가.
요나라보다 북원이 훨씬 강성했고, 그 북원을 쥐어 팬 나라가 고려였으며, 고려는 따라서 명에게 은혜만을 주었으니 신민적 감정은 그때보다 더욱 저항이 덜할 테다.
주우철은 이러한 고민을 심각하게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고려는 명과 같은 못난 아우를 두어 이리저리 골머리를 앓는 형이 되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 생각하는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지 그 제안을 거절하고는 단지 말했다.
“차라리 그 맹을 예전의 악연과 맺어 과거를 청산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주왕 장경창은 한(漢)인이면서도 강력한 함대를 가지고 있으니 양이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 될 것이오. 게다가 주왕은 세력이 작고 나약하니 그대가 분명 형이 될 수 있겠지.”
마침, 대만과 마찬가지로 무주공산이었던 해남도를 기어코 바스쿠의 무리가 빼앗아 해적 소굴로 만들었다는 소식에, 주우철은 결단을 내렸다.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주왕 장경창은 동아시아에서도 상당한 함대를 운용하고 있었다.
주우철은 모르겠지만 고려가 이리저리 노획한 캐러밸이니 카락이니 하는, 고려에겐 영 쓸모가 없는 구형 함선들을 저렴하게 판매했으니 주의 함대는 명과 같이 정크선으로 이루어진 비루한 함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함대를 이끌고 장강 하류의 작은 어촌 마을에 마련된 제단에 도착한 장경창은 미리 와 있는 주우철을 보고는 복잡한 표정을 하다가 먼저 고개를 숙여 보였다.
주우철 또한 옥좌에서 일어나 그의 손을 잡고 맹을 맺으니 이 한적한 어촌 마을, 상해(上海)의 이름을 따 상해의 맹이 맺어졌다.
홍명제 주우철은 주왕 장경창과 형제의 의를 맺고 주국의 존재를 인정하였다.
한편 주왕 장경창은 명과 함께 포도아와 싸운다고 맹세하니, 태조 주원장과 장사성 이후 중원의 패권을 다투었던 두 나라는 마침내 외적들의 침입에 서로의 공존을 받아들인 것이다.
* * *
‘이금, 이자윤, 부여의흥, 주우철, 장경창이라….’
일신의 능력으로는 이곳에 쇼신이라는 유구국 왕을 넣을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유구의 왕이란 자리는 콧바람만 불어도 꺼질 정도로 약했다.
이 명민한 다섯 군주들, 그리고 능력은 상당히 떨어지지만 세력만큼은 상당한 왜북조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즈미까지 이들 여섯 명은 하나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나이가 모두 젊었다.
그리고 제각기 상당한 세력을 자랑하니 모두가 일세의 군웅들이라 할 수 있겠지.
이들이라면 정체된 동아시아에 역동성을 불어넣을 수 있지 않을까.
상민은 동아시아의 정세보고를 담은 서신을 접었다.
이 정도 거리의 국가들에게 지속적인 첩보력을 투사하는 것은 한계와 효용이 명백하게 구별되어 있었다.
돈은 돈대로 들어가지만 결과물은 시원찮은.
그러니 가성비가 영 나쁘다는 소리였다.
사람은 도통 잘 변하지 않는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던 상민은, 그렇게 멍청하게 행동했던 주우철이 정말로 개과천선하여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럴 줄 알았다면 풀어주지 말걸 하며 상당히 아쉬워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국정이라는 것이, 그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란 말이지.”
열심히, 그리고 ‘잘’해야 그것이 통치이다.
역사상 근면한 군주는 많았지만 그 근면한 군주들을 모두 성군이라 지칭할 순 없었다.
그리고 성군들조차도 항상 영원한 숙적을 이기진 못했다.
시간이라는.
하물며, 그 동아시아 전통적 가치관에서 실로 가장 빼어났다는 천고일제 강희제조차도 결국 청의 멸망을 막지는 못했으니까.
그러므로, 상민은 감히 강희제조차도 비할 수 없는 존재였다.
‘…….’
다소 미련이 남은 얼굴로 지도를 쓰다듬던 상민이 이윽고 올려진 모형들을 치웠다.
저 신기한 땅은 진나라 이후 통일되려는 강력한 욕구라도 있는지 항상 서로 엉겨 붙으니 지나를 분할하겠다는 것은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고려가 정말로 반도에 있어 바로 근처였다면 모를까, 지구 반대편에 있으니 이 노력은 제곱으로 계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지나에 그 수고를 들일 바엔, 새로 들인 번국들에 신경을 써 견제를 하는 것이 더 낫겠다 싶었다.
상대방을 해하는 계략보다, 아군과 성장하는 책략이 더 상책이다.
‘게다가 굳이 우리가 수고를 할 필요가 있는가?’
― 똑똑
― 당하, 준비가 끝났사옵니다.
“나가도록 하지.”
미주에서 볼일은 진짜 다 끝났다.
이제는 창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때마침 시중의 귀환 행렬에 이색적인 자들이 따라붙으니 가는 길이 심심하지는 않을 터다.
번국들의 첫 번째 조천사(朝天使, 천조에 보내는 사신단)가 고려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