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254화 (254/653)

혼란에 빠져드는 중원

유럽은 중원에 낭만 비슷한 것을 품고 있었다.

그들의 땅이 지독히 혼란스러워 사방의 영주들이 서로 심심할 때마다 싸워대고, 또한 왕가마저 빈번하게 암살되며 교체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여겨졌던 것과는 달리, 중원과 같은 거대한 국가를 지배하면서도 하나의 정치체제를 안정되게 유지한다는 것은 정말로 큰 동경의 대상이었다.

옛 로마의 위대한 임페라토르들에 대한 향수가 떠오르지 않는가.

문명도 마찬가지.

실크로드를 통해 드문드문 소식을 들을 뿐이었지만, 원의 치세까지만 해도 당대 가장 진보한 문명이란 분명히 중원의 그것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했다.

물론 고려의 탄생 이후, 그 동경하는 몫의 대부분은 고려가 가져갔다 하더라도 지극히 찬란한 역사를 지녔던 중원의 국가들은 여전히 그들에게 위압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명 또한 포르투갈 혼자 어찌 대들기에는 너무나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나라였다.

북원에게 패배하여 나라가 혼란하다 하더라도.

확실한 가호 수는 정확히 모르지만, 예상되는 바로는 프랑스와 저지대,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의 인구를 다 합쳐야 어찌 비교를 할 수 있을 만큼(물론 그것보다 많았다) 인구역량이 대단했다.

게다가 북원은 그 ‘대칸국’이다.

아무리 서유럽의 끝자락, 이베리아반도에서도 가장 서쪽에 매달려 있는 포르투갈이라고 하더라도 그 악명을 듣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도 강자에게 지는 것은 수치가 아니니 명에 대한 평가가 순식간에 깎일 일은 아니었던 것.

하지만 상황은 격변했다.

고려와 북원의 전쟁.

이 거대한 대륙의 정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세기의 전쟁은 유럽인들에게도 엄청난 관심사였다.

육지의 몽골과 바다의 몽골이 싸우다니.

비록 고려인들 앞에서 뒷말을 꺼내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까웠지만, 어찌 되었든 세계에서 가장 광대한 영역에 대한 패권을 주장했던, 주장하는 두 나라 간의 싸움이었다.

강자와 강자가 싸운 것이라, 이 다툼이 누구의 승리로 끝나든 유럽인들은 그저 그 결과를 듣고 그렇구나 하며 듣고 넘겼으면 될 일이었다.

본래는 그러해야 했을진대, 알려진 교환비가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불과 삼만여 명의 병력으로, 그것의 열세 배가 넘는 군대를 말 그대로 박살 내버렸단 충격적인 소문이 돌았다.

죽은 고려인들은 백 명이 되지 않았다는 것도.

그것이 가능한가?

동시대의 유럽 최고의 명장 중 하나이자, 유일하게 고려의 세력(용병대)에게 유의미한 전술적 승리를 거두었던 곤잘로 데 코르도바.

그는 지금 유럽의 전술적 표준이 된 총창방진이 결국은 다시금 도태될 것이고, 마침내 다른 나라들도 고려가 선도하는 전열보병의 시대를 쫓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전열보병은 오로지 같은 전열보병으로만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었지.

그 말을 듣던 어떤 한 사람은 과거에 그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 경께선 고려의 군대를 상대하신다면 과연 막으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곤잘로는 답했다지.

― 동수로서 붉은 제복을 당해낼 자는 존재하지 않소. 그 두 배의 병력이 내 손에 쥐어져 있다면 모를까.

고려 총병의 훈련도와 화약무기의 운용이 동시대 카스티야 병사들의 두 배에 달한다는 다소 자조적인 말에 불과했지만, 호사가들은 그 말을 정말 곧이곧대로 해석하여 곤잘로에게 육만의 병력이 있었다면 고려의 삼만 병력을 막아낼 수 있다고 떠들었다.

그렇다면 수학적으로 생각해보자.

고려는 삼만의 군세로, 사십만의 북원의 병력을 갈아 마셨다.

또한, 그 북원의 병력은 남명의 사십만 군세를 별다른 피해 없이 학살하다시피 했다 한다.

대체 남명은 그 힘이 얼마나 약한 것인가?

바스쿠 다 가마는 이러한 호사가들의 어처구니없는 말을 귀담아듣진 않았다.

그러나 그도 이성적이라기보다는 본능적인 사람이었다.

어떤 부분에선 상당히 감정적이기도 했고.

‘명나라는 거대한 동물이다.’

그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분명히 육식동물은 아니건만 코끼리는 그 덩치 하나만으로 흉악한 힘을 자랑하지.’

평상시 같았으면 그냥 외면하고 말았을 테다.

그러나, 저 육중한 동물은 자신이 일군 농장을 모조리 짓밟았다.

환관 유근에게 투자한 은이 대체 얼마던가.

‘그러나 때마침 상처를 입어, 온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시간이 지난다면 피가 굳고 딱지가 앉아 회복되겠지만 당장은 제 앞가림도 잘 못하는 상황.’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수석식 권총 한 자루를 쓰다듬었다.

“어쩌면, 이 총으로 저 짐승마저 사냥할 수 있지 않겠나?”

* * *

AD 1507(개천 232년) 10월.

2차 여몽전쟁이 안주대첩을 통해 고려 측의 승리로 귀결되고 전국옥새가 고려의 품에 안겼을 때.

바스쿠는 마카오의 항구에 병력을 보내기로 했다.

마카오를 빼앗길 때 죽거나 다친 자신의 부하들에 대한 복수를 명분으로 들었지만, 일단 한번 찔러나 보자는 의미가 강했다.

그곳 인근의 지형은 바스쿠와 그 부하들에게도 충분히 익숙했기에 지리적 이점은 공격하는 자와 수비하는 자 모두에게 공평했을 것이다.

비록, 포르투갈은 거대한 대양을 넘어 이만 오천 명의 군사를 보낼 만큼의 저력이 있지는 않았지만, 말라카에는 이미 한 줄기 금과 영화를 얻기 위해 찾아온 하루살이 같은 유럽인 해적들이 가득했다.

아프리카, 인도, 동인도, 동남아시아 등 여러 곳에서 강제로 뽑아낸 노예들도 많았고.

고려나 유럽의 제대로 된 국가들처럼 제대로 된 방진과 진형을 형성할 만큼의 정규군은 아니었지만 사납고 드센 해적들은 혼전이 벌어질 때는 정규군에 필적하는 능력을 가끔 보여주기도 했다.

이렇게 편성된 무려 오천여 명의 해적들이 명의 부드러운 아랫배를 찔렀다.

한번 찔러나 보자는 것이 의외로 날카로운 창이 되어 내질러졌던 것이다.

“공격하라!”

― 와아아!

야음을 틈타 함포사격을 하며 항구를 빼앗고, 상륙을 한다.

저들이 대응하기 전 사방에 불을 질러 혼란하게 하고 그사이 익숙한 보물창고의 재물을 약탈해 다시금 퇴각한다.

본래는 이런 작전이었는데.

마카오 공격을 직접 통솔하는 바스쿠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와해되는 명의 정규군을 바라보며 의아한 얼굴을 했었다.

“이게 대체?”

함정이라고 보기에도 어려울 만큼 무기와 갑주를 내던지고 숲과 들판으로 처절하게 도망가는 명군들.

이들은 양이들에게 제대로 항거하지도 못한 채 어이없이 마카오를 다시금 빼앗겼다.

한번 건드려나 보자는 초기의 의도가 무색하게 마카오에는 그날 아침, 다시금 포르투갈과 말라카 총독의 깃발이 휘날렸다.

마카오를 탈환한 해적들은 몹시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재물은 충분히 있었고, 복수까지 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하지만 해적이라는 자들은 항상 만족하는 법이 없는 족속들.

그들은 이내 다시금 탐욕에 물들었다.

상당히 치열한 접전이 일어났다면 목숨이 아까워서라도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지만 이들은 너무나도 손쉽게 승리를 쟁취해버렸던 것이다.

“총독, 광저우(광주)를 공격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부하가 희희낙락한 얼굴로 묻자 바스쿠 또한 잔인하게 웃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을 넘어 거의 광신자와 같았던 그는, 명인들 또한 결국은 본질적으로 주님의 가호를 받지 못하는 불신자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 좋다! 이 불신자들에게 우리의 복수를 두 배로 갚아주거라!”

명이 흘리는 상처의 피 냄새가 짙었다.

생각보다 이 동물은 둔하고 미련했다.

그동안 인구적인 면에서 세계 최대의 국가이자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중원 문명국의 계보를 이은 나라가 바로 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앞에서는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모습답게 그 모습을 지금까지 드러내지 않고 최대한 참았었지만, 애초에 바스쿠와 그 무리들은 온 사방에 끔찍할 정도의 만행을 일삼는 해적들이었다.

특히나 비기독교인들에 대해서는 그 정도가 지나쳤다.

같은 유럽계나, 혹은 이제 기독교계로 분류될 수 있는 고려인들을 상대로는 문명인적 태도를 유지하는 반면에, 불신자들에 대해서는 극악무도한 행태를 벌였다.

이광영이 마긴다나오에서 분노했던 이후로도, 바스쿠와 그 무리들은 반성의 여지 없이 동인도 토착민들을 죽여대었고 불태웠으며 날카로운 장대에 꽂아버렸다.

바스쿠 입장에선 이는 정당한 집행이었으며, 신의 이름을 빌린 정화의 행위였다.

그리고 이 정화의 행위는 마침내 명나라 사람들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되기 시작했다.

―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끌고 와라!

마카오에서 쫓겨났던 과거의 일에 대해 분노에 휩싸인 것일까, 아니면 약탈의 즐거움에 빠져든 것일까.

바스쿠의 무리들이 눈이 돌아간 채 온갖 만행을 저지르니 광주에는 인세의 지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풍경이 벌어졌다.

* * *

환관 유근의 전횡이 아직 전부 수습되지 않았고, 또한 주우철의 귀환에 의해 내부적으로 혼란한 상황.

게다가 북방에서는 피 흘리지만 여전히 숨통이 끊어지지는 않은 북원이 존재했다.

당연하게도 명은 남방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북방의 원수들은 종묘와 사직의 문제였으며, 남방의 양이들은 ‘그렇게까진’ 위협적이지 않았으니까.

북원과의 국경에 이십만이 넘는 군병들이 있더라도, 이들을 후방으로 돌리는 선택은 지극히 위험했다.

게다가 광동은 옛 주나라의 핵심 지역.

주고후의 대학살로 인해 명에 대한 민심도 그리 좋지가 않은 지역이니, 명 조정으로서는 매사의 우선순위를 따질 때 이들을 자주 뒤에 놓았다.

남부의 군대가 나약했으니 지금껏 암상조차 제대로 토벌하지 못한 것.

해금은 말이 해금이지, 사실상 해안가의 경비를 자포자기한 상태를 일컬었다.

몇 번 재물을 약탈한 해적 무리들이 배가 부른다면 알아서 제 발로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 또한 있었다.

물론 이 예상은 남부 해안가가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난 뒤 산산이 부서졌다.

이 포도아 해적들의 악행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들이 복건성의 핵심 무역항 중 하나인 복주(福州, 푸저우)를 공격했을 때의 일이다.

주우민의 해금이 실시되고 이곳은 급격히 세를 잃었지만 그래도 주요한 수군의 군항으로 쓰이고 있었기에 친히 명의 순무(巡撫)가 주둔하여 신경을 쓰고 있었다.

어느 날, 남쪽에서 양이들의 함대가 우르르 몰려와 화포를 쏘아대었다.

대응 사격을 실시하려 해 보아도, 컬버린 급의 중포를 지금까지 사놓았던 불랑기포로 막을 수는 없는 노릇.

게다가 포르투갈도 인도의 일부를 장악한 터라, 초석과 화약의 운용에 대해서는 상당히 여유로웠다.

하루 동안 거진 팔백 발의 포탄을 퍼부은 해적들은 정박되어 있던 배도, 건물도 박살이 난 복주의 항구에 상륙하여 반쯤 와해된 명군들을 베어 넘겼다.

순무는 도망가지 않고 일군을 수습하여 적에 대응하였으나 온갖 험한 곳에서 싸워온 바스쿠의 무리들에게는 역부족이었다.

순무라 함은, 한 개의 성을 다스리는 핵심 관료.

게다가 본질적으로 중앙관리였던 탓에 중앙정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는 고관이었다.

순무는 비록 항복했으나, 자신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가족과 기타 복주에 있던 고관대작들, 그리고 그 가솔들에 대한 관대한 처분을 요청했다.

그러나 바스쿠는 그 요청을 귓등으로 흘리며, 어린아이를 제외한 자들을 복주의 한 큰 건물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기름이 뿌려진 장작으로 건물의 모든 출입구를 봉쇄한 뒤 그곳에 불을 질렀다.

― 으아악!

불신자들의 고통을 마치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듯 감상하며 허공에 손짓하던 바스쿠 다 가마는, 분노로 초인적인 힘을 자랑하는 명의 순무가 그를 무릎 꿇리고 있는 부하들의 손을 뿌리치고 자신의 멱살을 잡으려 달려드는 것을 피식 웃으며 바라보았다.

“이 짐승만도 못한 놈들!”

“걱정 말게, 네놈 또한 얌전히 죽지는 않을 게야.”

* * *

마침내 눈이 완전히 돌아간 바스쿠의 무리가 영파, 즉 경사의 바로 턱밑까지 들이닥쳤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렇게 사태가 악화되고서야 명 조정은 부랴부랴 일군을 새롭게 편성하여 대응하고자 했다.

이번엔 명도 작심을 했는지, 군세가 자그마치 사만이 넘었고 물자도 충실하게 갖추었다.

명은 북원이 아니다.

수성이 아닌 회전에서는 주고후 사후 이겨본 적이 거의 없었으니 북원을 명에 비교한다면 화를 크게 낼지도 몰랐다.

그러나 포르투갈 또한 고려가 아니었다.

제아무리 말라카에서 엄청난 성세를 자랑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바다 위에서나 강하다는 의미였지 해적들을 감히 붉은 제복을 입은 고려의 육군과 비교할 수 없었다.

영파에서는 일전이 벌어졌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범선들의 포격 지원을 받는 바스쿠의 무리들도 항구에선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지만, 육지에서는 단연코 수적인 우위를 점한 명이 압도했으니 결국 포도아 해적 무리들은 다시금 배 위로 도망가야만 했다.

명의 도독은 복주가 함락되었다는 것만 보고받았을 뿐, 아직 흉적들이 복주에서 저지른 참혹한 일에 대한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했다.

다만 육지는 몰라도 바다와 해변에서 도무지 이들과 제대로 싸울 수 없다는 것만은 알고 있는 터라 사신을 보내 적당히 어르고 달래기로 했다.

만약 요구한다면, 다시금 제한적이나마 해금을 풀고 오문(마카오)을 내줄 수도 있었다.

‘약속을 먼저 어긴 것은, 명 조정이 아닌가?’

비록 환관에 의해 결정 내려진 것이라 하더라도, 대외적 약속은 이행되어야 한다는 논리도 있었으니.

하지만 그동안 달콤한 승리에 취해 있었는지.

마침 왼팔에 명군의 화살을 맞아 함 내의 의사가 칼로 살을 째는 것을 술을 마시며 버티고 있던 바스쿠는 오늘의 전술적 퇴각으로 인해 상당히 배알이 꼬여 있었다.

그리고 그의 답은 그의 분노와 증오를 가득 담아 명에게 보내어졌다.

“더러운 불신자 놈들! 이걸로 만두나 해 먹어라!”

바스쿠의 답신은 그야말로 명을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었다.

“…….”

명의 도독은 마침내 패배 후 행방이 묘연했던 복건성 순무를 볼 수 있었다.

사지가 절단된 채로, 큰 나무 함에 넣어져 있는.

[작가의 말]

원역사상, 인도에서 사람을 도축한 후 바스쿠 다 가마가 했던 말은.

“이거로 커리나 해 먹어라.”

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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