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251화 (251/653)

새로운 천명과 새로운 나라

남명.

영파 근처의 해안가.

양명이라는 호를 가진 사내, 왕수인은 다시금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한동안 어딘가 홀린 듯한 얼굴로 집안의 중정에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나름 잘살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사합원은 크고 넓었으나, 최근에는 가세가 기울었다는 듯 집 곳곳에 거미줄이 쳐져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천명, 천명….”

며칠 동안 끼니조차 거르며 그렇게 있는 꼴을 보다 못한 처 제씨가 버럭 화를 내며 왕수인을 질타했다.

이 남편이라는 작자는 열일곱 살, 혼례 당일에 집을 나가 산중에서 도사와 한바탕 양생에 관해 토론하다 며칠간 집에 돌아오지 않았을 정도로 괴짜였다.

아직도 그 울화가 쌓여있었는데, 제씨는 또다시 이리 멍청하게 행동하는 남편이 정말 미웠다.

“그놈의 천명! 가족조차 제대로 돌보지 않는데 무슨 천명 타령! 밥이나 들어요!”

“응애!”

마침, 두 살 난 딸이 우렁차게 울었다.

제씨는 입술을 깨물고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

왕수인은 아내의 말에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섰다.

“그래… 맞다.”

아내의 말이 맞았다.

밥이나 먹으라는 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제 식구조차 보살피지 못하는 자가, 어찌 천하를 논하겠는가?”

그는 그제서야 몰려드는 허기를 느끼고 밥을 허겁지겁 먹은 후 집 안에 박혀 사방의 붕우들에게 서신을 썼다.

그리고 이어서 고려에게 보내는 서신 또한.

모든 항구와 바닷길이 막힌 해금 상황이라면 이 서신은 고려로 가지 못하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해금이라기보다는 바다를 통제할 수 없어 애써 해금이라 위안을 삼는 것뿐이었다.

* * *

고려 연방.

미주.

미원.

승전보가 제일 먼저 도달한 이후, 상민은 다시금 창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었다.

전쟁은 종결되었다.

피로스의 승리일 것이라 예상했던 것은 그래도 상당히 양호한 결과를 맺었다.

물론, 재정에는 큰 상처가 남긴 했다.

앞으로 절대 깨어지지 않을 업적, 즉 세계 최장 거리에 원정을 보냈으니까.

정확히 지구 반대편에 간 원정이라 이 신기록은 아마 두 번 다시 깨지지 않을 것이었다.

이제 석탄의 시대가 도래하는 순간, 여러모로 할 일이 산적해 있는 상민의 입장에서는 몹시 아까운 재정적 상처.

하지만 결국 그 상처는 다시 아물 것이다.

반면 이번 기회에 고려는 국가적 통일성과 자긍심을 얻었으니, 이왕 일어난 일 수확을 즐기는 편이 옳았다.

물론 여기서 더 확전을 하자고 주장하는 건방진 놈이 있다면, 상민은 주저 없이 살아온 세월 동안만큼이나 잔혹해진 성격을 드러내었을 것이었다.

아쉽게도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그런 무관들은 없는 모양.

집무실에서 침실로 오니, 이불이 들썩였다.

머리가 부스스한 아내가 그를 맞이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만 잔 모양이다.

“괜찮소?”

여태 울었는지 얼굴이 붉어진 루크레치아가 코를 한 번 훌쩍이더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장인어른은 천…국으로 가셨을 게요.”

상민은 로드리고 보르자(알렉산데르 6세)를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끔찍하게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다.

특히나, 그녀와 이어진 이후부터.

세월이 이러니저러니, 사별로 인한 외로움이 어쩌고저쩌고 해도 상민은 자신과 몸과 마음이 통한 여자는 정말로 아끼고 사랑해주었으니까.

그러나 벌어졌었던 일이 벌어지지 않은 상황에선 자식은 그저 부모를 그리워하는 모양이었다.

“약속대로 이번 일이 끝나면 당신과 나 둘 모두 로마로 가 묘소에 들를 수 있게 하겠소.”

자신이 아는 원역사에서는, 장인 로드리고 보르자와 손위처남 체사레 보르자는 모두 말라리아로 죽었다.

그러나 둘 모두 고열에 시달릴 때 키닌을 고려로부터 받았고 그 후로도 모기를 경계하여 제충국 추출물을 바르고 잔다니, 아마 로드리고 보르자는 일흔다섯이 넘는 노령으로 인해 죽은 것이 틀림없었다.

“정말요?”

“그래요. 정아도, 휘도 다 함께 구경이나 하러 갑시다.”

그러나 상민은 미주에서 떠나기 전날, 서쪽으로부터 배송된 엄청난 양의 업무에 다시금 자리에 주저앉아야 했다.

떠날 만하면 오고, 떠날 만하면 오고.

‘젠장.’

잔뜩 토라진 아내를 달래려면, 아마 강력한 방어전이 필요할 듯싶었다.

* * *

업무에는 몇 가지가 있었다.

일단 첫째. 가장 중요한 것부터.

“네놈….”

“읍… 읍!”

사람을 가두어 놓는 용도로 만들어진 새장에는 알몸의 사내가 들어가 있었다.

남사스럽게 왜 옷 하나 입히지 않았는지.

물론, 자살 시도나 탈출 시도를 방지하고 또한 최대한의 모욕을 주기 위해 나체로 가두어 놓는 것은 이해가 갔으나,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 같은 기분은 솔직히 심히 더러웠다.

올로스 볼라드.

위대한 테무진과 쿠빌라이의 혈통을 이은, 북원의 전 대칸 바투뭉케의 아들.

서신에 따르면 바투뭉케는 목이 잘려 제사상에 올려졌다 한다.

그 끔찍한 수급을 굳이 소금에 절여 몇 개월 동안 바다로 이송하지는 말라는 명을 내린 상민은 눈앞의 올로스 볼라드도 창양으로 보내기로 했다.

가는 김에 연방 순회공연도 한 번 해주고.

“제국의 신민들에게 눈에 보이는 선전을 하는 것도 좋겠지.”

“으으으읍!”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운명을 짐작했는지, 올로스 볼라드가 비명 같은 소리를 내었다.

아버지는 죽고, 동생은 배신했고, 자신은 이런 끔찍한 수모를 당하고 있으니, 차라리 검을 빼 들어 죽여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

그의 입에 물린 대나무 재갈(짐작건대, 아마 음식물을 투여하기 위해 밧줄 대신 물린 것 같았다)을 애써 외면한 상민은 병사들을 불러 그를 내보내고, 다음의 목함을 열었다.

“그래, 그렇게 유서 깊은 도장이라 이거지?”

복원절차가 진행되지 않았기에 몰골은 좀 흉했으나, 상민은 드디어 역사서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동양 최고의 보물을 바라보았다.

장담컨대 그 파급력이나 중요성은 롱기누스의 창이나 성배(聖杯), 성궤(聖櫃), 성정(聖釘)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거나 오히려 몇 개보단 압도하는 감이 있었다.

수나라와 당나라 이후 펼쳐진 오대십국 시대에 사라졌던 이 물건은 송과 요, 금을 거쳐 원과 명에 이르기까지 발견되지 않았다가 드디어 북원에 의해 발견이 되었다.

상민은 오히려, 바투뭉케가 이것을 가지고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신물의 진위 여부를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상징성을 이용하기 위해 직접 위조를 했다면, 아마 바로 널리 널리 홍보를 했겠지.

그러나 바투뭉케는 이것을 가졌음에도 대외적으로는 비밀로 했었던 것 같다.

적절하고 치명적인 시기에 다시금 천명을 주장하며 남명을 흔들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 시기는 아마 조선 정벌 이후였을 테고.

화씨지벽으로 깎은 백옥 옥새를 이리저리 살펴본 상민은질 좋은 종이 한 장을 뽑아 그곳에 옥새를 쿵 찍어보았다.

손상이 꽤 되었는지 생각보다 선명하게 찍히진 않았지만 그래도 기념 삼아 그것을 챙기고, 옥새를 다시금 함에 넣었다.

‘손주에게 선물로 주어야겠구만.’

동양 최고의 보물이 손주에게 주는 선물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것을 사소한 정치적 혼란을 야기시키기 위해 중원의 나라에게 준다?

그런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은 오로지 그의 손주, 해선의 소유물이었다.

이미 소문이 퍼진 이상, 아무리 상민이라도 전국옥새를 함부로 처분할 순 없는 노릇.

당연히 고려의 황제에게 진상해야 했다.

간만에 젊은 손주놈의 호감도를 좀 올릴 기회기도 했으니, 나쁘지 않았고.

물론 손주놈은 아주 진귀한 보물을 얻고 좋아하겠지만, 금방 이것을 황실 비밀 창고에 넣어놓고 잊어버리겠지.

거대한 경옥, 쿠쿨칸의 눈으로 만들어진 고려의 옥새가 훨씬 더 아름답고 크기도 크며 고려인들에겐 더욱 소중했다.

게다가 애초에 이런 상징성 높은 옥새는 장식품일 뿐 실무에 거의 쓰이지 않는다.

황제도 실무용 옥새가 따로 있었던 것도 있고.

애초에 그 실무용 옥새에 묻은 인주도 시중의 도장에 묻는 인주의 양의 일 푼이 되지 않을 테니까.

옥새와 함께 동봉된 서신도 있었다.

“태산에 오르라고?”

왕수인이라는 명나라 학자가 보냈다.

누구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물론 훗날엔 주희만큼이나 대단한 사람이 되겠지만, 상민은 지금 이 젊은, 아니 자신에 비해서는 몹시 어린 왕수인의 서신에 콧방귀부터 꼈다.

‘누구 좋으라고 태산에 오른단 말인가?’

하여간 이 사람들은 생각하는 천하가 실로 좁디좁단 말이야.

중화 천명을 주장하는 것은 독이다.

극독 중의 극독.

상민이 동화를 시도조차 하지 않고, 이민 또한 절대 받지 않겠다 하는 자들은 오직 두 부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유대인이오, 다른 하나는 중원의 사람이었다.

이들은 동화가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모여 살며, 오히려 자신들의 가치관과 신념을 남에게 강압하니 이민을 하게 된다면 사회에 불화의 씨앗을 심는 것과 진배없었다.

천명을 주장하게 된다면, 그 이민의 물결이 고려를 뒤덮을 것이고 결국은 사회를 좀먹게 되겠지.

따라서 고려는 전국옥새를 가진 것으로 천명을 주장할 생각이 단 한 조각도 없었다.

‘남의 천명을 훼손시키는 것은 기꺼이 하겠지만.’

고려가 옥새를 가진 것은 남이 이것을 갖지 못했다는 의미로 작용할 것이니.

“꺼억.”

점심에 먹은 음식이, 지금 막 소화되는 모양이다.

어떤 이유인지 괜히 기분이 좋아, 체통을 잃고 가볍게 트름을 한 상민이 괜스레 아무도 없는 집무실을 둘러보고는 다시금 서류에 시선을 내렸다.

‘하사품이라….’

어차피 이자윤이 세울 나라에 대한 지원은 어느 정도 해주는 것이 좋았다.

게다가 이번에 썩 기특한 짓을 하니, 상민은 스스로도 그에게 상을 주고 싶었다.

‘상국을 잘 따르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상민은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청해 상단용 보증 백수표 하나를 뜯어 금액을 적고는 서명을 했다.

사재에서 나가는 돈이었으나 아깝진 않았다.

이런 것에 쓰려고 이리저리 돈을 모으고 있으니까.

이자윤의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상민은 전쟁이 확실히 승리로 끝나기 전부터 자신을 따라 미주로 온 임시 조정의 신료들과 함께 이자윤이 세울 나라의 국호를 정하려 했다.

그러나 상민의 일반적인 생각과 다르게, 신료들은 발해나 후진의 국명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였지만 특히나 고려의 ‘역사교육’은 상민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자신만큼 정확한 교육을 받은 이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단 한 문제도 틀리지 않았던 상민은 그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국사 검증에 신경 썼었지.

정작 본토 조선에선 약간 잊혀졌던 발해의 존재였지만 지구 정반대편에 있는 대부분의 고려인들은 역사를 공부하며 발해를 어느 정도 배워야 했다.

덕분에.

“진(震)은 대씨 고려의 국호이니, 국호를 진으로 한다면 하늘 아래 고려가 둘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이런 주장도 있었고,

“발해라는 국명은 저 지나(진나라)인들이 함부로 붙인 이름이니 쓰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런 주장도 있었다.

고려에선 이미 고려의 천하관이 생긴 지 오래.

이제는 중국을 칭할 때,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中)의 의미를 쓰지 않고 다만 지나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아마 지나라는 이름은 유럽에 퍼져나가 차이나의 어원이 될 것이었고.

상민도 그런 흐름을 딱히 막진 않았다.

그러나 지나의 국가들이 한 것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기도 하니, 조금 피로가 생기기도 했다.

“그럼 경들이 말해 보시오.”

네이밍 센스 하나는 자신이 없기도 했거니와, 트집을 잡아대는 신료들을 구박하기 위해 상민이 그렇게 말을 꺼냈다.

신료들은 머리를 감싸 쥐긴 했으나, 결국 답을 찾아내었다.

이번에 명과 교류하며 서적을 사 오기도 했고, 직접 조선에 가서 털어… 아니 조금 가져온 문서들의 덕이 컸다.

“저들의 위치상, 고문에 적힌 옛 옥저(沃沮)의 강역과 비슷합니다. 저들의 국호를 이로 정하시고 이자윤을 옥저왕에 봉해달라는 결정을 황상께 여쭈는 것이 맞겠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합시다.”

비록, 발해라는 멋진 국명을 줄 수는 없지만 고려도 고려의 입장이 있었기에 상민은 이자윤이 세울 나라의 최종적인 국호를 옥저라 정했던 것이다.

* * *

고려로부터 국명에 대해 정식으로 회답을 받기 전, 이자윤은 건주 여진의 땅을 휘젓고 있었다.

그를 따르는 오도리 부족을 중심으로 수많은 여진 천호와 만호들이 정복당하니, 그 기세는 실로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았다.

북원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대칸이 죽고, 쟁쟁한 아들들이 두 명이나 조선에서 죽거나 사로잡혔다.

남은 아들은 투루 볼라드와 바르수 볼라드.

바르수 볼라드는 추하게 패퇴하여 한적한 곳에 은거하니, 실로 옥새와 함께 야망마저 내던지고 도망간 것과 같았다.

그렇다면 바투뭉케의 자리를 이어받을 이는 단 한 명.

그러나 얄궂게도 투루 볼라드 또한 불운을 맞이했다.

“네놈들이 어찌…!”

투루 볼라드는 자신을 찌른 단검을 내려다보며 그렇게 말했으나, 자객들은 입을 다물고 연신 흉기를 휘두를 뿐이었다.

오르도스와 융세부, 투메드의 잔여 병력을 이끌고 조선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던 투루 볼라드의 결의는 그렇게 거품처럼 흩어졌다.

만두카이 하툰은 몹시 슬퍼하며 투루 볼라드의 맏아들, 보디 알락을 대칸의 지위에 올렸지만, 그의 나이가 불과 세 살이었으니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초원의 지도자가 분명했다.

그녀는 결국 은거한 사남 바르수 볼라드를 다시금 대도로 상경시켜야만 했다.

손자의 목숨이 아들에 의해 위협받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북원의 내부 정세도 정세였지만, 외부의 정세도 마찬가지였다.

싹 쓸려버린 초원의 전사들.

힘의 구도는 완전히 격변했다.

서쪽 초원의 부족들 중 가장 강성한 부족을 꼽으라면,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더라도 역시 오이라트를 꼽을 수밖에 없었다.

오이라트 또한 단일한 하나의 부족이 아니라 부족의 연합체적 성격이었으니, 그것을 이루는 부족은 호쇼트, 초로스, 토르그, 도르베트 등등이 있었다.

본래는 위세의 강력함이 열거한 순서와 같았으나, 강력한 부족들 순서대로 많이 참여했던 이번 원정이 말도 못 할 대패로 끝나자, 초원의 위계질서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특히, 도르베트 부족의 일파인 준가르(Jegün γar)가 두각을 드러내니 오이라트의 다른 부족들은 제각기 살길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준가르부에게 머리를 숙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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