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248화 (248/653)

살수

살수(薩水)란 청천강을 이르는 옛말이다.

평양을 흐르는 대동강, 의주를 흐르는 압록강과 더불어 평안도에서 핵심적인 강이라 농업적, 지리적 중요성이 상당했다.

유량도 적지 않아 갯벌이 많은 서해안에서도 수운이 오가기 편리하니 평안도의 ‘안’에 해당하는 안주라는 핵심 거점이 생겨나기도 했다.

비록 이곳은 북방에서 남하하는 이민족이나 한반도를 침탈하려는 중원의 국가에게 큰 수난을 겪었지만, 역으로 그들에게 씻지 못할 치욕을 선사하기도 했다.

바르수 볼라드는 정찰대를 보내, 아버지의 상황과 적의 전력을 파악했다.

들리는 말은 솔직히 믿기 어려웠을지도 몰랐다.

대원이 개박살이 났다느니, 몽골인의 시체로 임진강이 붉게 물들었다느니.

그러나, 바르수 볼라드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옥새의 존재 덕에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패배했다.

어쩌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셨을지도 몰랐다.

아버지 바투뭉케는 많은 패배를 경험한 자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승리를 경험했고, 항상 큰 틀에서는 언제나 전략적 승리를 거두었던 명장이자 명군이었다.

오이라트의 치세 이후 무너져가는 북원을 수습하고 초원의 무리들을 힘으로 굴복시켜 다시금 강대국으로 도약시킨 것도 그러했고, 기회를 잡아 숙적 명을 회수 이남으로 쫓아낸 것도 그러했다.

바르수 볼라드는 그러한 아버지의 최후에 큰 위기의식을 느꼈다.

이 만만해 보였던 땅은 이미 어느 순간부터 주드보다 더욱 가혹한 조건이 산재해 있는 숲속과 같았다.

사방에서 겨누어지는 창칼의 구도를 드디어 파악한 그는 식은땀을 흘려야만 했다.

사지다.

도망친 토끼를 잡기 위해, 깊숙이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흉폭한 범이 안광을 빛내고 있는 꼴.

사실 그 또한 옥새를 얻은 순간부터 저항할 의지도 별로 없었다.

전성기의 원나라조차도 특유의 봉건적, 유목민적 가치관 때문에 천명을 이은 국가 중 가장 취약한 행정력을 자랑했다.

그 덕에 막장스러운 정쟁―쿠빌라이와 토곤테무르를 제외한다면 황제들이 평균적으로 5년의 통치 기간 이상을 가지지 못했던―과 후계 구도에 항상 골머리를 앓는 나라였다.

북원 또한 그 체계에서 발전된 것은 딱히 없었고.

후계경쟁에 탐욕을 보이는 바르수 볼라드는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지금 당장 대도로 귀환하고 싶어 했다.

대도가 이미 투루 볼라드의 세상이라면, 적어도 태녕으로 가고 싶었다.

생각만 한 것은 아니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평양에 모인 대원의 군수 물자들과 조선에서 모은 전리품들을 전부 다시금 북쪽의 수송로로 옮기도록 지시한 바르수 볼라드는 그 또한 최후방거점인 심양으로 가기 위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물품들을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이것들은 나중에 그가 제위를 주장할 때, 든든한 그의 기반이 될 것이며 살아남는 것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들리는 소문으론 남쪽에서 올로스 볼라드가 필사의 탈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그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오히려, 형제가 무사히 당도하는 것이 썩 좋은 일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러나 바르수 볼라드가 짐을 먼저 보내고 자신 또한 북쪽으로 나아가려 할 때, 살수에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강 건너편엔 무려 삼만에 달하는 적병이 있었다.

“저… 저놈들은?”

이상한 모습을 한 사내들.

올로스 볼라드가 남쪽에서 마주했던 그 마야군이라는 자들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이상한 몰골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이들은 몇몇 몽골 전사들이 어느 정도 알아볼 만큼 익숙했기 때문에.

선두의 장수는 몽골마만큼이나 짤퉁한 말을 타고 있다.

습하고 더운 지방에서 왔다는 것을 보여주듯 갑주―당세구족(當世具足 도오세이구소쿠)―의 철편은 금속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흑색이나 적색의 방수방청의 옻칠이 충실하게 되어 있다.

그가 이끄는 병사들을 보면, 제각기 동환(도오마루)을 입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

대기병 전술을 위해 기다란 창을 가지고 있었으며, 궁기를 방어하기 위해 방패와 활을 충실하게 챙겨있는 꼴이, 제아무리 몽골의 동국원정 이후 기본 전술이 격변했다던 왜군이라도 과한 감이 있었다.

자신이 상대하는 자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는 모양.

비록 열도를 불태우며 천황을 무릎 꿇렸던 그 위대한 초원의 전사들을 상대한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겁에 잔뜩 질린 것 같았지만, 그 숫자가 상당하다 보니 마주한 바르수 볼라드로서도 속이 답답해지는 것은 여전했다.

그러나, 그는 처음 그런 것엔 신경 쓰지 않고 일부러 호탕하게 비웃었다.

“저 꼬라지를 보아라! 왜구들이 길을 잃은 모양이구나!”

저들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 불안하긴 하지만, 그는 일단 사기를 끌어 올리기로 결정했다.

북원과 왜의 접점은 거의 없거나 끊겼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

그러나 기존의 원나라의 역사에서도 왜구나 왜군에게 진 적은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었기에 북원의 무장들과 병사들은 저들을 한껏 비웃으며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왜군들은 청천강을 남쪽으로, 대령강을 북쪽으로 두는 배수의 진을 치고 방패와 창으로 단단하게 웅크렸다.

배수의 진은 본래라면 적의 방심을 유도하는 허위계의 목적이 아닌 이상, 전술적으로는 완벽한 패착을 스스로 유도하는 것과 같았다.

지휘관이 한신이 아닌 이상, 퇴로가 막혔더라도 사기는 생각보다 그리 쉽게 오르지 않고 오히려 포위를 자처하는 꼴이니, 보급도 뭐도 없는 군대는 그냥 말라죽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왜군들은 그러한 것에는 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몽골군은 의외로 고전했다. 애초에 보급을 담당하는 군이기도 했지만 일단 값비싼 병종인 충격용 중기병은 죄다 일선 전선이라 할 수 있는 남쪽으로 내려간 상태.

상대적으로 무장이 저렴한 경궁기만이 남아 있으니, 적의 숨통을 끊는 결정적인 충격력이 부재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마가 없는 보병과 보병끼리의 접전은 오히려 왜군이 강했다.

전국시대, 온갖 일을 다 겪은 왜남조의 병사들은 보병 육박전에서는 이미 통달해 있었으며, 사무라이들의 검예 또한 경장의 몽골인들이 대적하기 힘든 면이 있었다.

좀처럼 적을 끝장낼 수 없는 것을 깨달은 바르수 볼라드는 적을 포위해 고사시키는 방법을 택하려 했다.

하지만 황해의 남쪽에서 온 조선의 맹선이 대령강에 군수품을 내리고 왜군이 그것을 받아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것을 본 그는 이 모든 것이 조선이 꾀한 일이라는 것을 드디어 깨달았다.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는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적과 전투를 벌인 지 사흘이 되는 날, 서쪽에서 무려 일만 오천의 군대가 몰려왔다.

― 두두두

몽골로서도 등골이 오싹한 소리.

거대한 군마가 땅을 박차고 오는 것이 분명했다.

그중 가장 선두에 있는 자의 얼굴을 본 바르수 볼라드가 비명을 내질렀다.

“이… 이자윤!”

* * *

알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건주여진의 총공세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승리를 쟁취해낸 위대한 사내 이자윤은, 결국 진채를 물린 건주여진이 눈치를 보다 다시금 자신의 땅으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적들은 패퇴하였고 이자윤은 많은 포로들을 잡았다.

그 포로들 중에서는 어느 청년의 일족―오돌리―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앞장서 용맹하게 싸운 대가일지도.

그러나 비겁하게 일신의 안위를 위해 눈치를 보던 다른 여진의 천호와 만호들은 퇴각하여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갈 것이고, 원의 중재가 허술한 틈을 타 자신의 부족과 같이 일족의 남성들이 텅 비어버린 부족들을 강제로 병합하여 세력을 불릴 것이다.

기회주의자들 같으니.

실로 참담한 상황이었지만, 자신은 처음엔 그것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었다.

청년이 마침내 이자윤의 처소에 불려갈 때, 그는 자신의 운명을 예상했다.

자신은 아마 차디찬 시신이 되어, 들판이나 산자락에서 썩어들어갈 것이라고.

하지만, 검은색의 갑주를 입고 있는 적의 수는 영 엉뚱한 말을 꺼냈다.

놀랍게도 적의 수괴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네가 오돌리 추장의 아들이렷다?”

“…맞소.”

익숙한 여진어에 눈을 한 번 치켜뜬 청년, 아이신기오로 시버오치피양구는 이자윤의 눈을 노려보았다.

시버오치피양구 또한 나름대로 상당한 무장.

일반인이라면 오금이 저릴듯한 기세가 있겠지.

그러나 이자윤 또한 그에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안광을 빛내며 눈싸움을 이어나갔다.

마침내 시버오치피양구가 고개를 떨구었다.

어차피 그의 처분은 저자가 쥐고 있는 상황, 기세 싸움은 무의미했으니.

그러나 당장이라도 목을 자를 듯한 이자윤의 살기 또한 누그러졌다.

“북원이 너희 여진 부락들에게 해준 일이 무엇이 있더냐? 옛 천호와 만호제를 부활시켜 공물을 바치도록 하고 허황된 말을 꾸며 조선을 침략하도록 한 것?”

이자윤의 말에 시버오치피양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수가 없었다.

같은 유목민끼리의 동질감?

오히려 몽골인들은 대대로 여진을 경계했으며 업신여겼을 뿐 그들을 제대로 초원의 전사들이라 대접하지 않았다.

그것은 몽골인들이 해서의 부락들을 멸망시키고 흡수한 뒤에 더욱 노골적으로 일어났다.

건주는 해서가 사라진 순간부터 다음 표적에 불과했던 것이다.

“내가 약속하지, 네가 내 옆에서 힘써 싸운다면, 너희 부족을 도와주겠다.”

믿을 수 없었다.

이자윤의 조부는, 여진족 사이에서도 아직 유명한 이징옥.

건주여진을 크게 핍박한 조선의 명장이며 4군의 지역에서 그들을 쫓아낸 자였으니까.

“우리를 핍박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는 다시 맹을 맺자 하는 것이오? 그대 조선인들은 항상 앞으로 하는 말과 뒤로 하는 말이 다르지. 중원의 무리들 앞에선 점잔을 빼다가, 우리와 같은 ‘미개한 야만인’들에게는 더욱 야만스럽게 구니 어찌 그대의 말을 함부로 믿겠소?”

그러나 시버오치피양구의 힐난에, 이자윤은 오히려 크게 호통을 쳤다.

“너희, 유목민들은 굶주리거나 여유가 있을 때마다 조선의 변방을 침탈해 곡량을 빼앗고 아녀자를 겁탈하며 건물을 불태우고 돌아가길 매해 반복했도다. 어찌 조선의 무장으로서 너희들을 징벌하지 않겠는가? 너희들은 너희의 입장만을 주장하지만 조선인들은 조선인들의 입장이 있으니 지금까지 대대로 악연이 내려오는 것이다.”

“…그대 나라의 이방원은 성계 어르신의 아들이면서 우리 여진을 좋지 않게 여겼소. 또한 이방원의 아들 이제는 내 조부와 여러 부족의 우두머리들을 해치기도 했소. 한낱 짐승조차도 부모의 복수를 잊지 않는 법인데 어찌 내가 그대의 주군을 섬길 수 있단 말이오?”

이자윤의 품에서 칼이 번뜩였다.

“나는 조선의 무장이 아니다.”

잘려진 밧줄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몸의 결속이 풀어진 상황.

반항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건만, 시버오치피양구는 멍청한 얼굴로 이자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조부 또한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돌아가셨지. 북방으로 들어가 너희 여진족을 끌어들여 스스로 황제를 참칭하고 옛 금나라를 다시금 일으켜 세우는 모략을 꾸몄다고 말이야.”

웃기는 소리 아닌가?

이자윤과 말로 대립하던 시버오치피양구마저도 허탈한 소리를 내었다.

이징옥 홀로 죽인 여진의 수만 기천에 달할 텐데, 조선의 조정이 씌운 누명은 그야말로 모든 말이 전부 다 틀린 모함이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그리되려 한다.”

“선조의 누명을 영원히 벗기지 않을 생각이오?”

“그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어차피 정치놀음에 이리저리 오가는 것이 선조의 명예이며 가문의 명망이라는 것이니, 차라리 나 또한 이성계의 뒤를 따라 선조들을 종묘에 배향하고 모시지 않을 이유가 있겠느냐?”

시버오치피양구는 이제는 완전히 멀뚱한 얼굴로 이자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칼 한 자루가 바닥에 떨어졌다.

“너와 나의 대에서 우리가 쌓아온 악연을 끊을 기회이니 너는 헛되이 싸우다 대지에 스러질지, 나와 말머리를 나란히 할지 결정하라.”

시버오치피양구는 그때, 칼을 바라보고 있었지.

조선제일검 이자윤과 무예로 싸워보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말도 되지 않았고.

“나는 옛 업을 재현하려 한다. 너희와 우리가 함께했었던 아주 과거의 일을. 무려 육백 년이나 스러져 있었던 그 국업을.”

* * *

모르겠다.

시버오치피양구, 이제 조선식으로 이석보(李锡宝)는 도저히 이자윤을 이해할 수도, 그리고 그 앞에서 이자윤을 모시겠다는 말을 한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천성적으로 사내가 사내를 끌어들이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이상한 뜻은 아니다.

분명 이자윤은 불알 두 쪽 달린 건장한 청년이었고 자신 또한 남색을 밝히지 않았으니.

그러나, 어떤 사내는 다른 사내의 심장을 맥동하게 만들었다.

옆에 말머리를 나란히 하며 초원의 끝까지 질주하고 싶을 정도로.

나이 차이는 별로 나지 않아 보였다.

심지어 시버오치피양구가 더 많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어떠한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이제 죽음까지 함께하기로 맹세하며 서로의 손바닥을 그어 피로 잔을 적셔 나누어 마신 두 청년은 태백산맥을 넘는, 이제는 익숙해진 고된 여정을 마치고 저 멀리 포진해있는 몽골 기병을 바라보았다.

“미친 짓이오, 형님.”

그러나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지, 이자윤은 다만 남쪽을 바라보았다.

“남쪽에서도 몽골이 올라오고 있다 합디다. 곧 합류한다지요. 합치면 십만이오, 십만. 이러다 우리 다 죽겠소. 그냥 저들을 보내면 안 되오?”

“저들을 보내는 순간, 초원의 위협은 여전히 건재할 것이다. 일망타진할 수 있는 기회는 오로지 지금뿐이지.”

이석보는 슬쩍 의형을 바라보았다.

이자윤은 가만 보니 그보다 더 먼 남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조선의 무장이 아니라, 창업을 하기로 결정한 아주 근본적인 이유.

조선과 북원이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그것도 전혀 우호적이지 않은 여진을 규합하여 새로운 왕조를 창건하려는 야심을 가지는 것은, 아무리 이자윤의 능력이 대단하다 하더라도 지나친 감이 있었다.

그러나, 신뢰할 수 있는 아주 강력한 동맹이 존재한다면.

처음 그들과 마주했을 때, 이자윤은 몇 날 며칠을 고심하여 그들의 속내를 예상해보았다.

그들은 독특하게도 조선의 물산보다는 인력을 탐내었다.

조선과 대립하는 한편으로도, 북방군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주어 어느 정도의 대원저지력을 유지하도록 해주기도 했다.

조선의 조정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옛 왕씨 고려가 요의 무리를 밀어낸 것처럼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지.

짐작해보면, 그들은 분명히 같은 삼한의 민족으로 이루어졌지만 가호 수가 부족하여 조선의 가호를 이주시키는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이들은 조선과 온전히 친해질 수는 없는 국가에 가깝겠지.

한편으로 이들은 수백 년에 걸친 과거의 악연을 잊지 못하고 초원의 무리들에게 강력한 적개심을 보이고 있는 모양이다.

북원과는 절대로 가까워질 수 없는 나라.

그렇기에, 이자윤의 세력과는 거의 모든 외교적 노선이 일치한다.

게다가 몹시 풍요롭다지.

심양을 방비하라며 귀한 화약을 선뜻 건넨 그 순간의 충격을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심지어 함경에 틀어박힌 이자윤이 보급에 골머리를 앓다가, 옛말을 떠올려 동해안을 타고 탐라에 사신을 보내니, 그들은 열 척의 듣도 보도 못한 대형선을 보내 한가득 곡량을 선뜻 주었다.

다만, 약속된 장소에 오라는 조건을 남겨두었지만 그로 인해 이자윤이 거대한 여진의 무리를 격퇴할 수 있게 되었으니 실로 목숨의 은인인 셈이다.

본능적인 감각으로 이자윤은 거대한 바다 건너편에 있다는 이 고려가 무언가 수상할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멀리 몽골의 무리가 드디어 이자윤을 발견했는지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이자윤은 그곳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더욱 남쪽을 바라보았다.

“보여주시오. 내가 당신들을 상국으로 섬길 수 있는지.”

바투뭉케의 변고와 조선 원정의 실패, 그리고 올로스 볼라드의 귀환은 아주 최근에야 들었다.

이미 그만큼의 업적을 이루어낸 것만으로도 실로 대단하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자윤은 다시 한번 확인받길 원했다.

그들이 이자윤의 요청에 지원을 해주었을 때, 먼저 ‘제안’을 했었지.

너희, 남왜 또한 그러한 제안을 받은 것이렷다.

이자윤은 저 멀리 보이는 남왜군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 지었다.

‘내게 후진(後震, 후발해)의 주인이 되겠느냐고 말한 그 말의 근거를 다시금 알려주란 말이오.’

동방의 봉신국.

천조 고려를 섬기는 발해의 왕이 되라는 소리가 한낱 허언이 아니기를.

[작가의 말]

다얀 칸 바투뭉케는 몽골인들이 제일 사랑하는 황후인 만두카이 하툰과의 사이에서 일곱 아들을 보았습니다.

특이하게도 쌍둥이만 세 쌍인데, 아마 유전적으로 쌍둥이가 잘 태어나는 그런 게 있었나 봅니다.

투루 볼라드와 올로스 볼라드가 장남, 차남의 쌍둥이이고

바르수 볼라드와 아르수 볼라드가 삼남, 사남의 쌍둥이.

오치르 볼라드와 알초 볼라드가 오남, 육남의 쌍둥이.

일곱째 아들, 알 볼라드는 혼자 태어났다 하네요.

나머지 자식들은 서자라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몽골 황금사(알탄톱치)에 따르면 다얀 칸 바투뭉케의 셋째아들 바르수 볼라드 지농은 상당한 야심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 역사에서 자신보다 먼저 죽은 맏형 투루 볼라드의 아들, 보디 알락이 칸위에 오르자 나이를 근거로 ‘수양’하려 했을 정도니까요.

그러나 골육상쟁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배짱과 능력이 딸린 건지 조카가 투멘들의 지지를 얻게 되자 바르수 볼라드는 칸 위를 내려놓습니다.

그 이후로 다시금 보디 알락이 칸위에 오르게 되죠.

참고로 보디 알락이 그 칸위에 오를 수 있게 도와준 인물이 지금은 이미 죽은 바르수 볼라드의 쌍둥이 동생 아르수 볼라드입니다.

* * *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살수에선 수공이 쓰이지도, 쓰일 수도 없었다 합니다.

후대에 와전이 된 것 같다고 하네요.

살수대첩은 오히려 순전히 회전으로 얻은 승리기에 대단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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