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244화 (244/653)

2차 여몽전쟁(3)

― 타타탕

포병으로 이미 너덜너덜해진 대원의 본대는, 적의 총병 사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이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했다.

요란스러운 총성이 들리고 썩어버린 허수아비마냥 병사들이 이리저리 쓰러졌다.

한 차례의 총격에 수천의 병사가 땅에 몸을 뉜 것.

몽골병의 독전도 상관이 없었다.

앞으로 가면 저들의 총에 확실히 죽고, 뒤로 가면 독전병은 소수라 살 수 있는 방도가 있었다.

끌려온 한병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무기를 버리고, 뒤와 양옆으로 물러났다.

적의 본대와 제대로 근접해 맞붙기도 전에 사기가 박살 나서 진영이 와해되는 순간을 맞이하자, 바투뭉케는 차라리 지금 이 순간이 유일한 기회라는 것을 인지했다.

‘적의 총이 가야 할 곳에, 도망병들이 있다. 얼마간은 적병들의 사격에 장애물이 되리라.’

그리고 그것은 몽골의 중기를 운용하는 장수도 알아차린 것 같았다.

바투뭉케의 명령도 없이 이미 돌격을 준비한 이들은, 와해되고 있는 본대의 뒤에서 속도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 이럇!

“걸리적거리는 것은 죄다 밟고 지나간다! 적 대열에 빠르게 당도하여 주살하라!”

오히려 이젠 방해물이 되는 선두 한족병들의 등을 밟으며, 거대한 중기의 파도가 몰아닥쳤다.

* * *

고려국 서벌총사령관 진람(陳覽)은 보병연대를 대기병방진의 기본적인 배열에 따라 배치해 놓은 상태였다.

마치 체스판 위에서 검은색이나 흰색 중 한 색상만 밟고 선 것처럼.

대기병 총병방진은 최대한 아군 오사를 피하기 위해 가까운 연대가 사선으로 놓이게끔 위치해 있었다.

물론 그 옆의 연대는 사선을 마주 보고 있지만, 그래도 유효사거리 밖에 있어 서로가 총을 쏴도 별다른 피해를 받지 않을 거리였기에 괜찮았다.

지금까지의 공세는 공격을 당하는 입장에서 오히려 기꺼웠다.

저들의 궁기 사격은 총병에 의해 아주 완벽하게 제압되는 부류의 공격이었으니까.

현대 전술에서 궁기병은 총병이 자리를 잡은 이상 이제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중창기병은 이야기가 달랐다.

선두의 척탄병이 진천뢰를 던지고, 마름쇠 주머니를 풀어 놔도, 적의 중기가 어찌어찌 아군 보병으로 진입해 들어온다면 큰 피해를 볼 것이 예상되었다.

물론, 총기의 화력은 막강하여 저들 중기의 두정갑은 물론 마갑 또한 쉽게 뚫릴 것이다.

또한, 들고 있는 총검도 장식이 아니기에 기다란 총과 결합한다면 삽시간에 창병의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었다.

빽빽하게 내밀어진 총검날의 숲에 말이라는 동물은 본능적으로 들이박는 것을 회피할 것이었다.

그래도 위험한 일은 벌어진다.

말의 시야를 일부 차단하고 오로지 정면, 혹은 정면의 아래를 보게 만든다면 그들은 기어코 전열에 도달할 것이었다.

이 정도의 대규모 기병 돌격을 막아본 경험이 없는 고려 총병들의 경험도 경험이고, 체스판식 배열의 취약한 부분, 즉 각 보병연대의 화력이 집중될 수 있는 모서리가 아닌 사각형 꼭짓점으로의 돌격이 우려되었다.

진람 또한 기마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몽골 지휘관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그 모든 불확실성을 잠재우기 위해선.

기병을, 기병으로 상대하는 것이 제일 합리적이었다.

* * *

사령부의 명령이 하달되었다.

고려국 제18경기병연대장, 미하일 아센(Михаил Асен)은 옆에 나란히 있는 제17중기병연대장을 흘깃 바라보았다.

말 위에 오른 자신과는 달리, 이자는 말 위에 오르지 않은 채 그저 애마를 쓰다듬고 있었다.

두터운 마갑 위로.

조아킴 드 비뇰(Joakim de Vignolles)

지금은 군제개편으로 장다름 자체편제가 사라지고 중기병연대로 분화되어 있었지만, 초창기 장다름의 지휘관은 이 무지막지한 중기병들을 전부 다 통솔하는 엄청난 위치에 있었다.

그러한 초창기 장다름 지휘관, 에티엔 드 비뇰의 손자인 조아킴은 앙주 왕가 드 아르크 가문을 제외하면 앙주에서 가장 빼어난 명성을 지니고 있는 드 비뇰가의 후예답게 어릴 적부터 군략과 무예를 수련했다.

본인도 숭무감에 조기입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출중한 능력을 자랑했고.

진주 왕가의 일족인 미하일 아센으로서도 질투 비슷한 감정을 품을 정도로.

미하일은 괜히 시비를 걸었다.

“엉덩이에 불붙은 물소 마냥 혼자 흥분해 들어가지 말고.”

조아킴은 그를 보지도 않은 채, 콧방귀를 뀌었다.

“네놈이나 제대로 우리 후방을 호위하거라.”

프랑스계 고려인들과 소수의 잉글랜드계가 주로 거처하는 앙주와, 그리스계와 동유럽계 고려인들이 거처하는 진주는 경쟁적 의식이 강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 둘에 카스티야와 이베리아계가 거처하는 화주까지 합쳐서.

비단 명문가와 지도층뿐만 아니라 주민들까지도 그런 감정을 공유했다.

서로 군사적 분쟁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이 없었지만 정기적인 행사, 즉 정북행성배 축구경기만 일어나면 극성 축구관람객에 의해 우르르 몰려 떼로 주먹다짐을 벌이는 일도 허다하게 일어났다.

연방의 보안관들이 괜히 그날만 되면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 삐이 삐이 삐익!

그 순간, 약속된 신호음이 들렸다.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

기병들의 사기 증진을 위해, 지쳤는지 다소 조용하던 군악대가 다시금 힘차게 울려 퍼졌다.

시비를 걸던 미하일도 조아킴을 마지막으로 바라보고는 지나가듯 당부를 전했다.

“…살아남으면, 내 한턱 크게 쏘지.”

“불길한 소리 좀 하지 마라.”

피식 웃으며 기병도를 쥔 오른손을 왼 가슴에 올린 미하일이 자신의 자리로 떠나자, 조아킴도 그제서야 웃으며 말에 탑승하려 했다.

물론, 온몸을 뒤덮는 두터운 중갑에 혼자서는 승마하지 못했고 무려 세 명의 지원병이 다가와 그를 말 위로 올린 끝에야 말에 탈 수 있었다.

삼천 명에 달하는 나머지 중갑기병도 말에 올랐다.

빌어먹을 전신중갑옷.

초창기 장다름들이나 쓸 법한 갑옷을 입으니, 숨이 턱턱 막혔다.

땅이 잡아당긴다는 말이 괜한 소리는 아니겠지.

말도 휘청이는 것 같이 느껴졌다.

화약의 시대에, 중기병연대 또한 일반적으로 더 이상 전신중갑옷을 입지 않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흉갑만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지금 이곳에서 상대하는 자들은 화약의 전통이 확고히 자리잡히지 않은 자들이다.

개인 화기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서벌군의 중기병은 옛날의 갑옷을 다시금 수선하여 가져왔다.

유지보수 자체야 계속 하고 있었으니 녹이 슬진 않았다.

화살에 한해서 전신중갑옷은 무적과 같은 힘을 자랑한다.

혹자들은, 백년전쟁에서 덜떨어진 잉글랜드 놈들의 롱보우가 플레이트를 뚫었다 하지.

그러나 이는 거짓이다.

상대적으로 경갑을 입은 말을 쏘아 떨어뜨렸을 뿐이니까.

활은 중갑을 뚫을 수 없다.

설령, 화살에 맞은 곳에 다시금 화살을 맞고, 그 자리에 다시금 화살을 맞아 결국 뚫려버렸다 하더라도.

믿음 자체는 그렇게 믿는 것이 맞았다.

설령 한두 발 맞는다고 해도.

그때쯤이면 이미 강철의 파도는 적을 삼켜버렸을 것이니까.

전원이 승마했다.

지원병들이 다시금 기다란 기병창을 끙끙거리며 가져왔다.

이제는 공법이 발달해 속이 비고 견고한 창을 제조할 수 있었지만, 엄연히 크기 자체가 길고 크다 보니 엄청난 무게를 자랑하는 것은 여전했다

기병창의 한쪽을 들어 올려 중갑의 허리와 겨드랑이까지 올려 거치대에 고정하고(Couched) 나머지 창을 들어 올린다.

허리춤에 찬 기병도를 다시금 확인한다.

모든 무구가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조아킴이 크게 외쳤다.

“장다름 앞으로!”

“과트라체 앞으로!”

자신의 구령에 저 멀리 미하일이 이끄는 경기병연대 또한 화답했다.

장다름이 중기의 대명사가 된 것처럼, 고려 경기의 대명사는 이제 과트라체라 불리고 있었다.

이젠 수많은 외부의 피가 흘러 남려 유목민만의 군대가 아니게 된 지 오래였지만, 그래도 전통은 계속 남아 후대에 보존된다.

중기병들이 천천히 걸었다.

― 저벅 저벅

천천히.

평보(Walk)의 속도.

조금씩 빠르게.

속보(Trot)의 속도.

그리고 서서히 더 빠르게.

후열의 붉은 보병연대와 푸른 기병대의 눈이 마주쳤다.

약간의 질투심과 경외심, 그리고 확연한 안도감이 담긴 표정으로 군모를 벗으며 인사하는 보병대를 지나치며, 중기병대가 얼굴 가리개를 눌러썼다.

적들은 아직 보지 못했을 것이다.

체스판의 뒤에서, 상대방의 나이트를 상대하기 위해 나이트가 움직였다.

* * *

한병들의 대열을 스스로 짓이기고 뛰어나온 몽골 중기병이 총병에게 돌격했다.

― 타타탕

그리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총탄 세례에 무력하게 쓰러졌다.

그 모습을 지켜본 몽골 장수가 고함을 질렀다.

“버텨라! 도달하기만 하면 된다!”

저곳에 가기만 할 수 있다면.

그들 또한 긴 창을 쥔 만큼, 상대적으로 짧은 총병들보다 먼 거리에서 찔러넣을 수 있을 것이다.

뒤에서 짓이기며 튀어나오는 바람에 앞으로도 도망치는 한병 무리들이 총알받이가 되고 있다는 사실도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눈에는 핏발이 세워진 채로 돌격하는 몽골 중기들의 눈에, 갑자기 적 대열의 양측에서 기병들이 뛰어나왔다.

푸른 휘장을 어깨에 두른 자들.

“가자!”

“황상을 위하여!”

“제국을 위하여!”

“연방을 위하여!”

― 다그닥 다그닥

방금 막 속보(Trot)에서 구보(Canter)로 전환한 장다름 중기병연대가 보병방진의 다른 쪽 모서리에서 튀어나오며 튀어나온 그대로 창날과 같은 돌격진형을 형성하여 찔러들어왔다.

“잘되었다! 어디 한번 어울려보자꾸나!”

몽골 장수는 오히려 고려의 행동이 기꺼웠다.

이미 몽골 중기 또한 충분한 가속을 받은 상황.

중기와 경기가 정면에서 마주한다면, 이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두꺼운 갑주를 입은 자뿐이었다.

그래, 두꺼운 갑주와 긴 창을 가진 자가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

마치, 죽기 직전에 적의 진면목을 알아차린 몽골궁기의 선봉장처럼, 몽골중기의 장수 또한 찰나에 온몸의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푸른 면으로 번쩍이는 갑옷의 겉을 장식한 까닭에, 몽골의 장수는 아주 가까이 다가서야 저들의 갑주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저 기병대는 도저히 사람이 사람 같지가 않았고 말이 말 같지가 않았다.

덩치와 갑주 모두 다.

강철로 된 인마.

대체 얼마나 무거운 갑주를 저렇게 칭칭 두르고 있는지.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향해 달려오는 기병대의 충돌은 보병대의 충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뭘 해보려고 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구보(Canter)에서 습보(Gallop)로.

― 두두두

지축이 흔들린다.

거의 과장 섞여 수십만의 중기병이 들이닥치는 듯한 둔중하고 무거운 울림

땅이 흔들리고, 내장이 튀어나오는 듯한 충격.

푸른 휘장과 번쩍이는 전신중갑을 입은 장다름들은 그저 거대하고 긴 기병창을 앞에 두고 맹렬히 질주할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서로 질주하던 기병대가 맞부딪혔다.

― 콰드득

두정갑을 입고 화려한 투구를 쓴 몽골 장수가 창을 놓치고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 푸우욱

뱃가죽과 내장을 통과하여, 등의 척추를 부수고 엄청난 핏물과 함께 등가죽을 찢고 나온 기병창은, 아주 잠깐의 공기를 맛본 뒤, 다시금 그 후열에 있는 자의 복부로 달려간다.

반복되는 행위.

그러나 당사자로서는 단 한 번, 눈을 감고 뜬 순간에 이루어진 결과.

무려 네 명의 몽골중기를 뚫고 지나간 카우치드 랜스는 마지막 희생자의 몸에 들어간 충격으로 박살이 나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되었지만, 적 중기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거대한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말도 그러했다.

작달막한 몽고마에게, 예전에 당한 설욕을 갚아주겠다는 것마냥 머리 한 개가 더 높은 호마들이 적기의 시신을 짓밟았다.

쇠로 된 말굽에 무언가 밟혀 터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 탱

말의 전면부 또한 강고한 마갑으로 껴 있는 탓에, 적들의 기병창은 말에게조차 상처입히지 못했다.

기병도를 꺼내고 있는 주인 대신, 마면갑으로 적의 군마를 들이박은 호마는 그제서야 머리가 얼얼한지 천천히 감속했다.

“죽여라!”

사방이 적이다. 죽일 놈들은 차고 넘친다.

조아킴이 소리를 지르며 기병도를 뽑았다.

적중기 선두진형을 완벽하게 박살 낸 임무는 다했으나, 이 강철의 기병대는 적 중기의 가운데에서 충격력을 다한 것이다.

물론, 일신의 무예가 빼어나 아직도 공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몽골기를 죽이고는 있지만, 그래도 위험한 것은 틀림없었다.

본래는 기병창이 못쓰게 된 시점에 뒤로 물러나 다시금 기병창을 보급받고 돌아와야 하겠지만, 조아킴과 장다름들은 그저 갑주를 믿고 신나게 기병도를 휘두르고 있을 뿐이었다.

포위되어 위험할 수 있음에도.

그것은 아마 후열의 기병대에 대한 믿음에서 기원했을 것이었다.

― 두두두

소리를 들은 조아킴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떠올랐을 때, 그보다 더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쏴라!”

― 타타탕

뒤에서 전열을 이루고 있는 총병은, 적기와 얽힌 아군 기병 때문이라도 총격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당연히 총병에게 난 소리가 아니었다.

장다름들이 개척한 길을 기병총을 겨누며 따라오고 있던 과트라체 경기병들은, 이제 완벽하게 좌초된 장다름의 뒤를 호위하며 사방의 적들에게 총을 갈겼다.

그리고는 그대로 속도를 살려 기병도를 휘두르며 덮쳤다.

말이 기병이지, 이제는 속도를 아예 잃고 보병마냥 멍청히 땅에 박혀있던 몽골의 중기는 칼도 활도 뭐도 통하지 않는 미치광이 철괴물들을 상대하다, 적 경기의 돌진에 순식간에 학살당하기 시작했다.

좌초되어 포위되고 있던 장다름들은 포위망이 풀리자 기진맥진한 말과 얼얼한 온몸을 쓰다듬으며 다시금 전열을 정비하고 뒤로 후퇴했다.

경기병들 또한 사방으로 산개하니, 속도를 전부 잃고 돈좌된 몽골 중기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기세등등한 아군 기병의 활약을 보고 사기가 끓어 넘치는 고려의 총병이었다.

그리고, 살육의 현장이 다시금 찾아왔다.

흰 연기와 붉은 피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돌격하고 있는 아군 중기를 뒤따르던 몽골의 다른 기마들도 이제는 완벽한 패배가 확실시되자 병력을 잔존시키기 위해 말머리를 돌렸다.

“후퇴하라!”

대칸의 지시가 없었더라도, 지금 이 상황은 부하들과 자신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 너무나도 명백했다.

적 총병만 해도 악몽과 같은 존재.

이제는 적의 중기까지 정면에서 마주하니 몽골군의 장수들 또한 도저히 승산이 없다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다.

뭐 어찌 해보려 해도 전투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몇몇 장수들은 정신을 차리고 그 와중에 기회를 노렸다.

“만구다이! 적을 유인해보라!”

몽골 전사 중 가장 담력이 높은 자를 일컫는 이자들은, 몽골의 다른 전술, 즉 위장후퇴술을 담당했다.

적이 승기를 잡았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혈기에 넘쳐 추격을 하는 상황으로 인도하고, 마침내 역습을 가해 섬멸시키는 것.

비록 지금은 정말 다른 수식어가 불필요할 정도로 완벽한 패배였지만, 그렇기에 만구다이의 전술이 필요했다.

과연, 걸려들었는지 적의 경기병대가 빠르게 쫓아왔다.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그러나 적의 속도가 너무 빨라도 빨랐다.

몽골의 말은 지구력이 강하다.

제동력과 급회전 능력도 상당하다.

쉽게 놀라지도 않았다.

그러나, 대체로 체격이 작고 순간적인 속도의 폭발력은 떨어졌다.

오히려 중앙아시아나 동유럽에서 덩치가 크고 힘이 센 명마들이 산출되니, 그것을 중원에선 대완마니, 천리마니 했던 것이다.

게다가 고려는 태초 태조의 명마, 적제로부터 말의 개량을 거듭했으며, 유럽과의 통교 이후에도 말의 품종을 외부에서 들여와 개량해나가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 시기, 세상에서 가장 발달된 유전학과 생물학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국가가 이백여 년이 넘도록 나라에서 공들여 체계적으로 개량한 덕에, 고려의 군마는 지구상의 다른 유목민들마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히 건장했으며 힘이 넘쳤다.

전원이 실로 천리마를 가진 것과 진배없었다.

맹렬히 따라붙는 고려의 기병들.

이제는 거리가 촉박했기에 만구다이들은 모두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배사(背射, 파르티안 사법)로 피해를 주기로 결정했다.

― 타타탕

그러나 배사 또한 시도조차 못 하고 파훼되었다.

달리는 말 위에서 등을 돌려 균형을 잡고 활을 쏘려 하자, 고려의 경기병대는 아주 편안한 자세로 미리 장전된 총을 이용해 활을 당기느라 살짝 느려지고 허리를 꼿꼿히 든 적에게 총탄을 퍼부었다.

그리고 안장의 다른 편에서 다시 총을 꺼내 한 번 더 사격했다.

총기병은 궁기병의 머리 꼭대기에서 놀고 있었다.

위장후퇴술이 아니라, 졸지에 정말로 필사의 후퇴술이 되어버린 몽골의 기병들.

그러나 말의 주력에서 앞서 기어코 그들을 따라잡은 과트라체들이 앞으로 겨누고 있던 기병도를 휘둘렀다.

적어도 머리 하나 위에서 떨어지는 도의 날에, 등이 갈라지고 피 분수가 터져 나왔다.

“모조리 주살하라! 이 땅을 이 몽골 놈들의 피로 비옥하게 만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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