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몽란(4)
정묘(丁卯, CE 1507)년 3월 1일.
강화에 비축되었던 식량이 다 떨어졌다.
영남과 호남의 곡식이 조정으로 올라오지 않는 지금, 사실 강화에는 그렇게 많은 곡식들이 비축되어 있지 않았다.
경기와 충청은 지금 원의 손에 떨어진 상황이었고.
게다가 조선 수군은 북원의 공격에 계속 시달리고 있었고 조금씩 피해를 누적당했다.
아무리 수군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근해에 기항하여 보급을 받아야 하는데 근방의 해안가는 영 마땅치가 않았다.
멀리 나가 식량을 보급받자니, 그 사이를 틈타 원의 군세가 이곳저곳에서 탈취한 배들로 강화해협을 도하할 수 있을 것이 우려되었다.
낚시와 어업도 엄연히 한계가 있었다.
조그마한 한 무리의 어부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상황.
어부들의 수확물을 족족 조정의 군세가 뺏어가니, 그들은 차라리 배를 타고 야음을 틈타 남쪽으로 달아나는 길을 택했다.
가다가 고려구들을 만나면 더욱 좋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이제 남은 것은 수군뿐인데 수군이 어부와 농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막 늦겨울을 빠져나온 이 시점의 강화도에는 무언가 먹을 것이 심어져 있지도 않았다.
비축된 식량이 동나니 장졸들이 죄다 굶주리고, 심지어 나인이나 내시가 아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왕 이계의 수라상에조차도 현미밥 한 그릇에 짐채(김치) 한 접시, 생선구이 한 토막, 간장 종지 하나만 올라갔다.
이계는 그 모습을 보고 한탄하다, 문득 좌중을 불러모았다.
홀쭉하다 못해 기력이 없는 신하들이 행궁의 정전에 모이자, 이계는 그곳에서 출륙환도(出陸還都)를 명하고 한양으로 이어하기로 결정했다.
신하들 중 몇 명이 머리를 찧어 반대하다 쓰러졌고 실려갔지만 이계의 마음은 돌아서지 않았다.
경상도에서 태자가 적의 군세를 잘 막아내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이계는 이 짓거리를 그만둘 필요성을 느낀 것이었다.
물론 이계는 주전파를 상대로 입을 열었다.
― 고가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조선의 백성들이 상하고 있는지는 생각하고 있지 않으시오?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온전히 이 나라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서이니 경들은 환도를 준비하시오!
그러나 좌중의 아무도 그 말을 믿지는 않았다.
정묘(丁卯, CE 1507)년 3월 3일.
말이 강화조약이지 사실상의 항복 의사를 밝힌 조선에게 원이 특사를 보냈다.
특사는 거만하게 행궁 주변부를 둘러보며 조소를 입에 물고 있다가, 황제의 칙서를 읽었다.
비통함과 수치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하긴 했는지, 이계는 눈물을 흘리며 특사의 말을 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항복한다는 수치는 칙서에 쓰인 것들을 해야 하는 참담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 너는 대원의 천자 앞에서 손을 뒤로 묶은 채 구슬을 입에 물고, 관을 메고 있어라.
함벽여츤(銜壁輿櫬).
좌전(左傳)에 적히기를, 옛 중원의 역사에서 미자라는 자가 주나라 무왕에게 이러한 예를 했었다 한다.
항복을 하는 당사자가 적의 군주에게 자신을 죽여 메고 있는 관에 넣어도 달게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를 담은 치욕스러운 의미였다.
일반적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고두례를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극히 낮은 자세에서 적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니까.
또다시 유학자들이 발작하고, 실성하며 울고불고했지만, 결국 정묘년 3월 5일, 이계가 강화도에서 나왔다.
국상을 치르는 것마냥 흰 삼베옷을 걸친 조선왕과 신하들이 북원의 군대가 주둔한 김포에 다다르자, 한양에 앉아 있던 바투뭉케도 김포로 향했다.
아주 소소한 배려라 할 수 있겠지.
정묘(丁卯, CE 1507)년 3월 7일 사시(오전 9시) 경.
대원의 황제가 올 때 동안, 조선왕은 약속대로 함벽여츤의 예를 준비했다.
“아이고! 아이고!”
“놔라! 어딜 감히 주상의 옥체에 손을 그렇게 대느냐!”
“막돼먹은 놈들!”
먼저 도착한 바투뭉케의 케식들이 꿇어앉은 이계의 상투를 풀어헤치고, 입에 구슬과 같은 재갈을 물린 뒤, 손을 포박하여 질질 끌고 가는 것을 보는 신하들이 앞다투어 눈물을 흘렸다.
그러니 케식들은 공평하게 그들 또한 발로 차 조용히 시키고는 마치 죄인들마냥 포승줄로 꽁꽁 묶었다.
― 황상 폐하 납시오!
― 대칸께서 드시니, 모두 예를 갖추어라!
스산한 날씨.
삼월의 초순에 들어섰음에도, 아직 눈발은 다 녹지 않은 상황.
아직 허허로운 김포의 벌판을 멍하니 바라보던 이계는, 자신의 앞에 설치된 간이 연단에 눈길을 돌렸다.
임시로 만든 것치고는 꽤나 다양한 사치품들로 꾸며 상당히 화려해 황제의 거동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유목민 특유의 털모자와 몽골의 전통의상 델을 입은 바투뭉케는 정주민족의 황제이자, 대원의 천자라기보다는 옛 칭기즈 칸과 닮았다.
물론 이계는 칭기즈 칸을 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상대방을 그 정도의 위인이라고 올리는 것이 속이 편했다.
바투뭉케는 연단에 서서 오연한 태도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토록 짜증 나게 굴었던 이계와 그 신하들이 모조리 더럽혀진 소복을 입고 거지꼴로 울고 있으니 속이 편해졌다.
태자 이금이라는 놈은 정말 끈질겼다.
그리고 그 휘하의 명장, 이백록이라는 자도.
‘그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 모르겠는 빌어먹을 놈들도.’
가장 크게는, 누가 봐도 나 외지인이오―하며 정말 이색적으로 생긴 외세의 군대들이 무려 일만 명이나 증원되어 왔다는 것이다.
남만인으로 추정되는 그 인간들이 대체 이 조선 땅에는 무슨 볼일이 있다고 왔는지, 그리고 왜 조선과 같이 나란히 싸우는지 도저히 할 겨를이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추풍령을 잠가 버리는 것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산과 숲속에서는 정말 귀신이 따로 없는 자들이라는 보고도 들려왔다.
비록 추위에는 굉장히 약한 모습을 보인다지만 지금은 날이 풀리고 있으니 그들에겐 큰 이점으로 작용하겠지.
그렇지만 이제는 그런 발악도 모두가 끝이다.
원이 거대한 빈틈을 드러내도 명이 쥐 죽은 듯 고요한 것처럼, 이 조선이라는 나라도 결국 중원의 국가와 같이 임금을 잡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라였으니까.
흐뭇한 얼굴로 이계를 바라보던 바투뭉케는 이윽고 피식 웃음 지으며 이계에게 다가갔다.
“참된 주군이라면, 신하의 잘못을 용서해주어야 하겠지.”
그리고, 적어도 이 자리에서 이계를 용서하는 모습을 보여야 태자―이제부터는 세자라 불러야 하겠지만―와 조선의 의병들의 기세가 수그러들 것이 분명했다.
고풍스럽지만 몹시 예리한 칼을 뽑아, 한 번 이계와 신하들을 질겁하게 만든 바투뭉케는 이윽고 단번에 입에 물린 구슬 재갈과 손을 포박한 줄을 잘라내었다.
그새 거친 밧줄에 쓸린 듯, 피가 배어 나오는 손목을 움켜쥐며 주저앉은 이계는 바닥에 꿇어앉아 머리를 땅에 찧었다.
“황은이 망극하나이다…!”
“고개를 들라, 그대는 이제 대원의 신하이다.”
바투뭉케는 승자로서의 위엄과 포부를 보였다.
“짐은 그대가 옛 왕씨 고려의 왕전(王顓)과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길 권한다.”
그러나, 또한 바투뭉케는 위협적인 기세를 숨기지도 않았다.
칼을 쓰다듬으며 하는 바투뭉케의 말에, 이계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옛일을 배우다 보면 앞으로의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되는 법이지. 천명을 이은 짐의 대원과 너의 조선이 옛 영화로웠던 때와 같이 군신 관계를 맺어 돈독해진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예에, 폐하.”
“자, 연회를 준비하라! 오늘 조선왕 이계를 위무하는 자리를 성대하게 열 터이니, 모두 허리띠를 풀고 맛있는 술과 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하겠다!”
대원의 병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비록 의병에 의해 조금 지지부진한 상태가 되었었지만 결과적으로 전쟁은 대원의 완벽한 승리로 끝난 것 같았다.
* * *
정묘(丁卯, CE 1507)년 3월 7일 신시(오후 3시)경.
시끌벅적한 연회장.
바투뭉케의 좌측, 가장 가까이에 침울하게 앉아있는 이계는 소복을 벗고 몽골의 의복을 입은 상태였다.
바투뭉케는 그것을 보고 흡족하게 웃더니, 연신 잔을 비웠다.
“황상… 전에 석명하셨던 것은?”
원의 신하 하나가, 바투뭉케의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을 보고는 다가와 귀엣말을 했다.
“아, 그래.”
그가 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계, 그대가 다시 강화의 행궁으로 들어가 고행을 자처하려는 헛된 마음을 품을까, 짐이 조금 배려해 주었소.”
“무… 무엇을 말씀하시온지?”
“별건 아니오. 강화도를 다시금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만들 예정일 뿐이니까.”
살던 사람을 죽이고 가옥을 불태우며 우물을 막고 소금을 뿌려 풀 한 포기도 제대로 성장할 수 없게 만든다.
행궁도, 외규장각도, 따로 제사를 지내는 곳도.
완전히 강화를 박살 내겠다는 말에 이계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또한, 그대의 궁녀들이 조금 빈한하게 지내기에, 차라리 우리 용맹한 전사들의 수발을 들며 편안하게 지내게 해 줄 것이오.”
이것에 대한 대답은 이계가 아니라, 북원의 무장들이 기뻐하며 앞다투어 했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미모가 빼어난 조선 계집들을 품을 생각에, 벌써부터 연회에 집중을 하지 않으려는 장수들을 짐짓 호통친 바투뭉케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묘하게 일그러진 이계의 얼굴을 보고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약속되었던 것처럼, 매년 곡량과 공녀를 바치시오.”
웃음과 함께 피어오르는 바투뭉케의 살기.
이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분노도, 뭐도 빠르게 사라졌다.
‘조… 종묘와 사직을 위해….’
“…예에.”
염소 울음소리 같은 대답이 들렸다.
“화포와 화약을 제조하여 올려보내는 것도 명심하시구려.”
“…예에.”
“태자와 태자비는 올라와 대도에서 지내야만 할 것이오. 국가의 경사일에 사신을 보내는 것도 잊지 말고.”
“…예에.”
“다시 수군을 재건하여 배를 올려보내는 것도 제대로 해주길 바라오.”
그러나 무기력하게 대답하던 이계는 마지막 말에는 다소 허탈하게 말했다.
“…하… 하오나. 황상, 아국의 해안에는 고려구라는 괴적들이 떠돌고 있사온데….”
“한낱 수적 무리가 대체 무슨 위협이라고 그리 겁에 질리셨는가?”
바투뭉케의 핀잔에, 이계는 고개를 떨구었다.
사실, 그도 고려구를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 그런 생각을 하여 박형무와 이거를 파직해 유배 보냈으니까.
“흥, 좀 남자답게 사시오. 다리 두 짝 사이에 달린 것은 계집을 탐하는 것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대지 위에 당당히 서 있을 때에도 쓰는 것이니.”
바투뭉케의 말에 대원의 장수들이 폭소했다.
“으하하, 황상! 역시 천하제일의 사내다우신 기개입니다.”
술잔이 몇 순배 돌았을까.
― 다그닥 다그닥.
김포에 설치된 황제의 게르에서도 들릴 만큼,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한 필의 말이 미친 듯이 뛰어오고 있는 소리가 분명했다.
“전령인가? 들게 하라.”
귀가 밝은 바투뭉케가 그리 말하자, 케식이 원활하게 전령을 통과했다.
어차피 범과 같은 장수들이 모여있는 이곳에서 암수를 쓸 수 있어 보이진 않았다.
“화… 황상!”
“고하라. 천청(天聽)하고 있노라.”
어차피 급한 일을 모두 해결될 열쇠를 쥐고 있다.
조령에서의 일?
추풍령에서의 일?
모두 이제는 의미가 없었다.
이렇게 이계에게 한잔 대접하고 먹과 붓을 들려주어 서신을 쓰게 한다면, 저들은 모든 명분을 잃고 성에서 나와야 할 것이었다.
그 외세의 세력은 좀 꺼림칙했으나, 불과 일만이니 토벌될 것이었고.
그러나 이어지는 전령의 말은, 상당히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개경이 함락되었습니다!”
“뭐라?”
* * *
황해에는 엄청난 수의 선박이 떠 있었다.
선박의 숫자뿐만 아니라, 그 크기도 제각기 거대했다.
대부분을 이루는 플류트 말고도, 선두에는 열다섯 척의 순양함이 서 있어 사방을 경계했다.
“으으, 빌어먹을 갯벌.”
한동안 드넓은 뻘밭에 좌초되는 추태를 보이지 않게 씨름을 하다 드디어 강줄기의 넓은 하류에 도착한 함대는 그 육중한 덩치에서 붉은 제복을 입은 병사들을 하선시키기 시작했다.
강화는 애초부터 선택사항에 없었다.
섬에 상륙해봤자 도움 되는 일도 없었고.
이계를 잡는 것은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고려는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계가 북원의 손에 잡힌 것을 정찰을 통해 몇 번이고 확인하기까지 했다.
한양 이남도 마찬가지.
북원의 수괴, 바투뭉케를 잡으려는 목적이 있는 고려로서는 굳이 한양 이남에 상륙하여 적의 퇴로를 방치할 생각이 없었다.
한양 자체는 뚱뚱한 수송함인 플류트로 접근하기 힘들다.
대군의 상륙에도 어울리지 않았고.
셰피 해전의 교훈도 떠올려야 했다.
그리고 조선의 수도였지, 고려의 수도는 아니라 큰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고.
따라서, 상륙지의 후보군은 총 두 개.
평양과 개성이었다.
그러나 평양은 조금 과도하게 멀고, 원의 주 공세와 부딪히는 것이 늦어질 것이 분명하기에 당장 싸움을 원하는 고려에겐 올바른 선택지는 아닌 듯싶었다.
남은 것은 개경.
이곳을 함락하는 것은 전조, 즉 왕씨 고려의 수도를 탈환하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도 했지만, 또한 한양과 북의 주요한 길목을 끊어버리는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도 했다.
“대열 정돈!”
“정돈하라!”
나룻배에서 빠져나온 병사들이 넓은 평원에 도열했다.
예성강의 동쪽.
지금 서 있는 이곳은 만약 상민이 직접 이곳에 친정을 왔다면, 강화 평화전망대에서 보이는 맞은편의 풍경이라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병사들을 모두 내보낸 플류트는 빠르게 몸을 돌려 탐라로 다시 향했다.
상륙은 총 세 번에 걸쳐 이루어질 것이었다.
일단 보병 위주의 병력은 대부분 하선한 상태였고, 기병과 말이 그다음, 마지막으로는 대규모의 초기 물자가 내려질 것이다.
그다음엔 보급로를 유지하기만 하면 되겠지만, 지금 당장 고려의 해군은 육군보다도 더욱 쉴 틈 없이 바빠 보였다.
순양함들의 호위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상륙에 성공한 육군―서벌군은 곧바로 북동쪽으로 진군했다.
개성은 엎어지면 코 닿을 만한 거리였고, 심지어 주둔한 병력도 적어 별다른 전투 없이 순식간에 함락되어 성문을 열었다.
사실, 이런 적이 뜬금없이 서쪽에서 튀어나오리라는 생각을 누가 했었겠냐마는.
불가해한 존재.
그 모두의 계산 밖에 있던 사람들.
그러나 그들 스스로는 이 땅에 다시금 발을 디디는 것을 누구보다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자들.
우리는 이곳에서 쫓겨날 때, 비참한 패잔병으로 내몰렸었지.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 척, 척
고려군은 총을 메고 화포를 끌고 행진했다.
길이 잘 닦여있진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울퉁불퉁한 길에도, 발걸음은 정확했다.
완벽한 제식, 완벽함을 초월한 군의 기강.
선두열의 군악대는 북과 피리와 황동으로 주조된 수많은 관악기를 불며 행진한다.
― 쿵 쿵
군악대마저도 수많은 훈련을 통해 단련되었는지, 행군을 하는 와중에 음정의 오류도 거의 보기 힘들었다.
채로 치는 것이, 북이 아니라 가슴인지.
온몸을 전율케 하는 제국행진곡을 들으며, 장군모를 쓰고 말 위에 앉아 기병도를 왼쪽 어깨에 올린 고려군 사령관이 감회에 찬 어조를 숨길 수 없다는 듯 입술을 떨며 말했다.
“선조들이시여, 당신들의 자손이 돌아왔나이다.”
열린 개성의 문을 통해 시내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