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원수
[대저 국가의 근본이란 무엇입니까?
감히 소신이 당하께 이런 의문을 여쭙기 전에, 먼저 나아가 고하건대 당금 이 시대 고려의 남아들이 밤마다 전전반측하며 국가의 근본에 대해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나이다.
국가를 거대한 나무로 비유하자면, 근본(根本)이란 말 그대로 이의 뿌리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국가의 뿌리는 무엇입니까?
지혜로운 자들과 현명한 자들은 이를 일컬어, 고려의 드높은 성제(聖帝)와 황실이니, 자랑스러운 신민이니, 우리의 지엄한 국법이니, 찬란한 문화니 언급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오나 소신은 감히 엎드려 고하건대, 이들이 거목의 뿌리는 아니라 생각하옵니다.
물론 이 모두 전부 귀중한 요소로서 거목을 지탱하는 기둥과, 푸른 햇살을 쬐는 싱그러운 이파리와, 단단한 껍질이 되어 외부의 위협을 방어하는 갑주가 되니 맛있고 향기로운 열매를 맺는 것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귀하고 소중한 것이 틀림없사옵니다.
하지만 이는 처음 씨앗이 대지에 내릴 때 기원한 과거의 것이 아니며, 현재의 푸르름과 생기를 지탱하는 것이니 우리의 소중한 현재이며, 앞으로의 미래라 말할 수 있사옵니다.
반면 뿌리는 과거로 대변되는 땅으로 퍼져나가는 것이니 다만 보이지 않으며 그 중요함을 알기 쉽지도 않사옵니다.
하오나 어린아이도 알다시피, 뿌리가 없다면 모든 거목은 결국은 말라 죽게 되옵니다.
···중략···.
당하, 소신이 생각건대 국가의 뿌리는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당금의 고려는 길고 굵은 하나의 뿌리에서 파생한 많은 건강한 잔뿌리들이 사방에 잘게 퍼져 있는 형국과 같으니 이 모두가 고려의 과거이며 고려의 역사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사옵니다.
그러나, 그중 가장 길고 굵은 뿌리가 가장 깊게 파고들어 있고, 가장 많은 물과 영양분을 빨아들여 나머지의 안위에 크게 개입하니, 이는 뿌리들 중에서도 중하게 다루어야 하는 까닭입니다.
당하.
제국은 고려의 국명에 따라, 전조 왕씨 고려에서 기원하였나이다.
제국의 가장 찬란하신 태조께서 강인하심과 영명하심과 지엄하심을 드러내시니, 대자대비하신 천덕태성황후께서는 물론이시거니와 전조 온왕(왕온)의 사후 구심점을 잃고 사분오열되는 삼별초의 무리들이 앞다투어 태조 개천제께 귀부를 청하니 마침내 진정한 제국으로서의 고려가 다시금 시작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제국의 부와 번영이 시작되었고, 문명과 지성의 시대가 도래해 현재의 태평성세를 이룰 수 있게 되니 이 사실은 남려로 대변되는 제국 내방의 사람들은 물론이며, 앙주와 진주, 화주와 미주, 택주와 기주, 파주와 한주의 사람들도 모두 앞다투어 고개를 끄덕이는 사실이옵니다.
당하.
탐욕스러운 영주들과 성직자들의 박해로 인해 땅을 잃고 유리걸식하다 고려의 품에 안긴 사람들이라도 고려에 와 고려의 교육을 받으며 진정으로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은 모두 이 과거를 공통적으로 배우고 모두 다 함께 우리의 참된 역사라 인지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옛적, 선민당원의 반적들이 지극히 참람한 짓을 꾸며 도성 내에 소란을 일으킨 후에도, 제국의 현명한 신민들은 그런 천박한 사상에 동의하기보다는 우리의 과거를 살펴 야인들을 교화하여 제국의 따스한 품에 안길 수 있게 한 선제들의 위업과 명신들의 보좌를 다시금 보았습니다.
이는 여러 가지의 향신료를 알맞은 비율로 섞어 실로 감미로운 음식을 만드는 조리법이기도 하니, 어찌 중요하게 기록하여 눈에 잘 띄는 곳에 두어 몇 번이고 다시금 살펴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중략···.
하오나 당하.
아국의 신민들을 하나로 묶은 이러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에도 한 가지 흠결이 존재하옵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원이, 긍지 높은 저항의 결과라 하였더라도 결국은 구적(舊敵)들에게 쫓겨 바다로 나온 까닭입니다.
현세의 아국의 위세가 아무리 찬란하다 하나, 어찌 비참한 과거의 일을 그저 없던 일로만 여길 수 있겠습니까?
고려의 젊은이들이 아국의 역사를 배울 때, 속을 치며 분통해하는 것도, 모두 선조들의 오욕을 그들이 나서서 풀어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그 아픔이 이제는 설욕할 수 없는 과거의 일이자 어쩌면 도달하지도 못할 거리의 일이었으며, 혹은 그 일을 저지른 주체들이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을 옛 비루한 오랑캐들의 잔재가 되어 역사의 뒷길로 스러졌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모스크바는 타타르의 멍에를 벗어던졌고, 그들의 칸국들은 이미 쇠퇴하여 옛 영예를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중원과 그곳의 초원을 장악했던 그들의 본류 또한 큰 위기에 빠진 일들이 있었다 하니,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그 망령을 처리하지 못하고 다만 과거 안에 가두어 둘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오나, 이제 고려가 마침내 저 드넓은 태평양을 건너 서쪽에 도달하니, 그곳에서 들려오는 소문은 달랐습니다.
마침내, 그렇게 고대하던 과거의 북적을 만난 것입니다.
당하.
멍청하고 야만스러우며, 폭급하고 사나운 우리들의 적, 칭기즈 칸과 그 비루한 자식, 쿠빌라이가 깐 더럽고 비열하며 야만스러운 혈통이 아직까지 살아있사옵니다.
고려의 당당한 사내라는 자들이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어찌 이를 갈고 가슴을 치며 분통을 터트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당하.
감히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땅에 찧으며 이마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이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담아 감히 아뢰노니.
서벌(西伐)을 명하소서.]
아쉽게도 이 서신을 쓴 자는 관리의 신분이 아니었다.
"넌 임마, 공무원이었으면 나한테 맞아 죽었다."
갈굴 수 있었을 텐데.
당연히 아직도 상소문을 이렇게 쓰는 사람이 남아 있지는 않을 테지.
뭔 미사여구가 이렇게 긴가?
그러나, 상민은 그의 이름 여섯 글자를 읽자마자, 이 일이 여간 보통의 일이 아님을 짐작했다.
"···박(朴) 알렉시오스···라."
진주 출신의 문예가이며, 듣기로는 제국에서 꽤나 유명한 학자이기도 했다.
게다가 서신에는 그의 이름만이 쓰여 있는 것이 아니었다.
"······."
뒤에 있는 편지에는 다만 내용 없이 사람들의 성명과 서명, 혹은 수결과 인장 등이 찍혀 있다.
그다음 장에도,
그 다다음 장에도.
제각기 별개라고 생각되었던 편지들이 사실은 이 서신의 내용을 연대하여 호소하는 서신들이라고 인지하는 순간, 상민은 순간 짜증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너무 오래 철권을 휘둘렀기에, 이러한 상황이 익숙지 않았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상민은 결국 자신의 지향점이 이런 것임을 인지하고는 화를 가라앉히며 그 명단들의 이름들을 천천히 읽어나갔다.
다행인지 아닌지, 서신을 다 읽었을 때 이미 그의 짜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만 상민은 이번엔 고심에 빠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특정한 국제정치적 사건에 대해 대응을 촉구하는 성명문을 발표한 것이다.
마치 조선시대의 만인소(萬人疏)마냥.
그는 중서령을 호출하고는, 의자에 기대어 깍지를 끼고 집무실에 걸려있는 지도를 바라보았다.
마침 조참이 파하고 중서성 의회 본청에 있었는지, 중서령은 금방 그의 부름을 받고 다가왔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내 하나 물어볼 것이 있소이다."
"예, 그러시지요."
― 툭
상민은 서신을 내밀었다.
중서령은 약간 의아해하는 얼굴로 그것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집어 들어 살펴보았다.
"그것이 민의(民意)요?"
"······."
현 중서령은 중도의 인물로 분류되어 있지만 대체로 정치적 견해는 경당과 나란히 하는 감이 있었다.
그는 서신을 다 읽었는지 당혹스러운 얼굴을 짓다가도, 시중이 던진 질문을 떠올렸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근래에 많은 의원들이 이 주제로 토론하는 광경이 보였습니다. 또한 연서궁의 문인들과 숭무감의 무인들도, 국자감의 관리교육을 받는 자들에게도 이러한 주제가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흐음······."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시중의 말에, 중서령은 덧붙였다.
"하오나 이 연명상소를 올린 자의 주장 말고도 달리 생각하는 자들도 많사옵니다. 저··· 북원이라는 곳에 대한 복수를 굳이 우리가 해야 하느냐는 목소리도 있고, 지극히 멀리 있기에 이제는 우리의 이해관계에도 긴밀히 얽혀 있지 않으니 과거의 일을 잊고 새롭게 나아가자는 목소리도 있사옵니다."
"새롭게 나아가자?"
"예, 당하."
중서령의 말은 담담했다.
그래.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 지끈
상민은 순간,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제는 정말 아득히 먼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순간의 기억들이었지만, 삼별초의 무장 김상민으로서의 기억이 다시금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남미에 떨어지기도 전, 이름도 없던 일개 삼별초의 무장으로서의 기억.
과거의 들과 벌판에 메아리치는 신음들.
자욱한 피 냄새와 썩은 시체.
원한이 가득하지만, 그 증오가 닿지 않을 곳을 허무하게 노려보는 수급과, 질끈 감은 수급, 그리고 슬픔과 공포에 잠긴 수급들.
늙은이와 젊은이, 어린아이,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은 수많은 목 없는 시신들.
― 후우.
아니다, 중서령의 말이 옳다.
태평양을 건너, 북원에 과거의 복수를 하자?
일부 주전론자의 망상 어린 계획일 뿐이다.
태평양은 거대하고, 보급선은 지구의 절반을 돌아 유지되어야 한다.
원정에 대체 얼마의 자금이 소요될지, 상민은 감히 짐작조차 하기 싫었다.
‘과거의 일일 뿐이다.’
지금 와서, 복수를 한다 하나 그것이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진단 말인가?
상민은 그러한 것보다, 차라리 도로를 더 깔기를 원했으며, 더 많은 선박을 건조하여 연방과 제국을 긴밀하게 연결하길 원했다.
‘과거의 일로 남아야만 한다.’
그러나 상민은, 여전히 그의 가슴 속에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느끼고 있었다.
정말로 그것을 원하나?
* * *
고려는 동래에서 잔뜩 빈정이 상한 이후, 조선과 대립하는 노선을 취했다.
제주도를 점령하고, 제주목사를 붙잡아 육지로 쫓아낸 고려는 이곳에 탐라부를 설치하고 적법한 고려의 땅이라 주장했다.
의외인 것은, 제주도인, 아니 이제는 탐라부인으로 불릴 사람들의 저항이 생각보다 훨씬 적었단 것이다.
저항이 적은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중앙에 대해 묘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럴 만하다 생각할 수 있겠다.
조선이 건국되고, 태종의 시기에 탐라부에서 제주목으로 바뀐 이후로 이들은 다른 지방들과 마찬가지로 특산품을 별도로 중앙조정에 납입하는 공물의 의무를 지었다.
이 폐단이 날로 심해진 까닭에 폐주의 치세에 공납을 정비하였지만, 육지의 사람들과 달리 섬사람들은 배려의 대상이 아니었기에 부담은 그대로였다.
게다가 폐주 이후로 즉위한 선대왕도 하도 감귤을 좋아하다 보니 때때로 그것들을 조정에 바치라 명령했고, 지금 금상의 치세가 있을 때에도 나라의 제사가 있을 적에는 무조건적으로 감귤을 바쳐야만 했다.
이것이 얼마나 힘든지, 이십여 년 전에 제주 사람들이 감귤 과수원을 불태우고 수확된 과일들을 바다에 던지는 난리 아닌 난리를 피웠다가 전원이 처형되는 소란이 있었다 한다.
조선의 다른 곳보다도 훨씬 박살이 난 민심을 토대로, 고려는 무척이나 빠르게 탐라를 수습했다.
게다가, 감자와 고구마의 성장세는 괜찮았다.
이미 이백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려 농무부에 의해 개량에 개량을 거듭해온 두 구황작물은 상당한 수확량을 기대해 볼 법했다.
특히나 이 토양이 독특하여 일반적인 작물이 생장하기 까다로운 화산섬에도 두 구황작물은 잘만 자라니, 정말로 섬사람들이 감자 줄기를 바라보며 오래간만에 웃음을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감자를 수확하고 제대로 맛있게 먹는 방법은 이제부터 더욱 알려주어야겠지만.
이후, 탐라부에는 고려의 총독부가 설치되어 다바오 총독 이광영의 관리하로 들어왔다.
탐라총독부의 역할은 간단명료했다.
이곳에 조선의 백성들을 대피시킨 후,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이들을 고려로 보내는 것.
그동안, 고려의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재사회화의 과정을 거치게 했다.
언어의 장벽은 몹시 낮았고 인종적 차이도 심하지 않고, 문화적 차이도 의외로 가까웠으니 고려는 실로 거의 수고로움을 가지지 않고 이들을 동화했다.
‘해방선’이라 불리는 선박에 타기 전까지는 조선인들이 한 번도 접하지 못했던 고려글과 고려어를 제대로 가르치고 고려의 법과 토지의 분배, 농업 방식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곁들였다.
철제 농기구를 만드는 방법도 몰랐던 남북려의 원주민들이나 아예 다른 종교와 피부색, 언어와 문명에서 온 유럽인들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쉬운 과정이었다.
게다가, 조선인들은 놀라울 정도로 지시에 복종적이었다.
상당히 숭무정신이 강하고 합리적인 생각이 확립된 고려인들과 못마땅하면 직설적으로 내뱉는 유럽인들의 성향과는 다르게 조선인들은 말과 행동을 몹시 조심스러워했다.
그러면서도 대단한 향상성(向上性)을 보였다.
이들의 교육에 대한 집착은 상상 이상이라, 혼자서도 방 안에 틀어박혀 한동안 고려글로 끙끙거리다 일주일 뒤면 자신의 이름 석 자는 물론이고, 간단한 의사소통까지 고려글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위정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두당 순은을 걸 수 있을 정도의 신민이 아닐 수 없겠다.
실제로, 각 주의 주지사들은 제각기 자신들의 관리를 파견하여 이 행렬의 인원을 나누어 받길 원했다.
일차적으로 이들은 항로상 미주로 향할 것이지만, 그 이후로는 제국의 다른 지역에 분배될 것이기에 사람들을 더 많이 유치하려는 주지사들의 노력은 애달픈 감이 있을 정도였다.
― 택주에 오시면, 소 스무 마리를 드립니다! 아니, 말도 다섯 필 더 드리겠소!
관리가 천막에서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조선인들은 그곳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풍요로운 농토를 자랑하는 앙주와, 환상적인 경치를 자랑한다는 화주는 제각기 자신의 산과 들을 그린 풍경화를 내걸며 한 해에 조선식으로 쌀이 몇 섬이 자라느니, 이런 달콤한 말로 꼬시고 있었다.
"······."
그러나, 그들 주의 사정과는 달리 대다수의 조선인들은 창양이 있는 남려의 제국 본토에 향하길 원했다.
"한양 말고 그 뭐고, 스울인데··· 거가 암튼 억시 좋다 카대."
"아, 맞나."
"자식놈 관모 쓰는 거 함 봐야지 안켔나? 글로 가야지."
고려인들과 조선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입신양명에 대한 욕구는 한반도인의 특성인지 모르겠다.
식량 문제도 본국에서 온 건조식과 따뜻하고 다습한 다바오에서 수확한 쌀의 여유분이 도착하여 많이 해결되었으니, 탐라에는 조선인들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치까지 들어찼다.
한 번에 많이 받아들일 수 없던 그동안의 이민자들과 달리, 이 조선인들은 계속 끊이지 않고 탐라에서 미주로 가는 항로에 몸을 실었다.
아마 선박의 개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수가 그 행렬에 포함될 것이다.
* * *
처음 고려에 도착하여 감격스러워하는 조선인들과 달리, 고려인들은 시큰둥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 보면 자신들의 나라가 기원한 땅에서 온 사람들이라 하지만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민자가 오면 오는 거지 뭐. 별거 있나."
"그래도 우리랑 좀 닮았구먼, 말도 좀 어눌하고 이상하지만 알아들을 만하고."
따라서 이들이 사실, 조선인들의 보호나 한반도 국가의 수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당연한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수의 문제는 달랐다.
"그 씹어 죽일 놈들이 아직도 설치고 다닌다며?"
조선인들과 교류하게 되며, 그쪽 반도의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된 고려의 식자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조선인들은 고려인들의 분노에 두 눈을 크게 뜨며 의아해했지만, 고려인들은 펄펄 날뛰고 있었다.
"빌어먹을 놈들! 더러운 야만족들!"
조선인들은 자신들 대신 과몰입을 하고 있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고려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진정으로 분노하고 있는 중이었다.
고려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해씨가 건국된 후, 고려의 역사는 자랑스러운 자긍심 그 자체를 상징했다.
불패의 국가.
무결의 통치.
약속된 번영.
새로운 대지를 발견하고 수많은 영토를 정복하고 넓혀나가는 첫 번째 열강.
유럽인들조차 그들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영광은 북원제국이 존재하는 한, 빛이 바래진다.
* * *
일평생 몽골을 만나보지도 못했을 지금의 고려인들과는 달리, 상민은 직접적으로 그들을 만나보고 싸우기도 한 기억이 있었다.
따라서 상민은 자신이 이렇게 ‘합리적으로’ 생각하니, 다른 이들도 이와 비슷하게 결국은 포기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그와 같은 기억은 없더라도, 상민보다 훨씬 더 국가에 대한 자긍심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과거의 기억을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젊은 세대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신에 쓰인 것과 비슷한 여론이 조야(朝野)에 더욱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시중이 침묵을 지키자, 이들은 황제에게도 상소를 올렸다.
세력이 약했던 교당은 이번 기회에 다시금 경당의 지위를 넘보기 시작했고, 경당의 일부 의원들 또한 진지하게 파병에 대한 건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생학의 해법으로 여겼던 역사와 문화 중심으로 만든 국가론의 부작용일지도 모른다.’
서벌.
이것은 경제와 효율의 논리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
이와 비슷한 일이 세계사적으로도 있었지.
고려의 경우도 그와 비교하는 것이 옳을지도 몰랐다.
조야가 펄펄 끓고서야 상민은 이 상황을 조금 다른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조보에서는 연일 북원제국의 동태에 대해 막 귀화한 조선인들에게 얻은 정보를 신나게 풀고 있었으며, 젊은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주먹을 하늘 높이 쥐고 흔들고 있었다.
그들은 외친다.
[총과 화약을 다오.]
[조정이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가 성금을 모아 배를 만들 것이니.]
[제국군이 나서지 않는다면, 의기로 뭉친 의용대가 흰 끈을 머리에 두르고 그 배에 탑승할 것이니.]
[그리하여 우리는 저 드넓은 태평양을 건너
마침내 테무진과 쿠빌라이의 피로 과거를 설욕하리라.]
거리에 암행을 나간 상민도 이 광경을 보며 이해했다.
이것은 고려의 십자군.
우리의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