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3) - 수정
남이가 심양에서 북원의 무리를 직접 마주하기 전의 일이었다.
그 전, 원에서는 조선에 공식적인 사절을 보냈다.
그것이 격노를 유발하려는 목적이었는지, 정말로 회유하려는 목적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다만 조서의 내용은 지극히 참람했다.
[천운(天運)을 받들어 이은 대원(大元)의 황제가 조선국왕(朝鮮國王)에게 조유(詔諭)하노라.
짐이 곰곰이 생각하노니, 하늘의 뜻(天命)과 성신(聖神)의 도리(道理)는 실로 간단함이 틀림없다.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님을 받들어 신명을 감동케 하며, 또한 스승을 공경하고 주군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니 부모에 대한 효와 스승에 대한 의와, 군주에 대한 충은 같은 것이며 이를 진실로 공경하며 추숭하는 예와 식을 다한다면 천하가 어진 곳으로 돌아와 평안하게 태평을 누릴 것이다.
허나 슬프도다. 너 조선왕 이계(李誡)는 처음에는 일개 소금장이를 받들고 나중에는 도적 떼로 들고 일어난 땡중의 후손들을 받든 선대들의 우택(愚擇)을 반성하지 않았으니, 이 폐풍악습(弊風惡習)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와 멍청하고 색탐이 심해 대원의 구토(舊土)를 신음케 하는 애송이와 그 옆에서 간악하게 속삭이는 고자를 받들어 모시게 되었다. 어찌 짐이 참담함을 금치 못하겠느냐?
본래 너희 전조(고려)의 바얀테무르(伯顔帖木兒, 공민왕)는 가진 어리석음이 커 구생(舅甥, 장인과 사위)의 은혜를 배반하여 너희들의 잘못을 스스로 기원하게 했던 바가 있었다 하나, 그는 자신의 핏줄 안에 흐르는 심왕에 대한 엄연한 권리가 있었으니 그가 심양을 범한 것을 감히 번왕이 태묘와 사직을 위협했다 논할 수는 없으렷다.
그러나 너희 천호 울루스부카(吾魯思不花, 이자춘)는 본디 대원의 신하였으나 멋대로 조정이 수여한 관인을 들어다 번국에게 바치니 실로 죄악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너희는 주군으로 섬기는 바얀테무르가 탐심에 혼미하여 마침내 실성할 때, 그를 도와 정사를 돌보며 백성들을 안온케 하기는커녕 흉측하게도 그 마수를 거꾸로 잡아 그의 후손은 물론이고 전조의 국성(國姓)을 모두 참살(慘殺)하고 그 피가 땅에 넘쳐 흐르게 하니 실로 하늘과 땅(天地)과 신인(神人)이 모두 격노하여 궐서(厥緖)가 무너졌도다.
너희가 만약 잘못을 뉘우치고, 스스로 새롭게 하여 대원대몽골국(大元大蒙古國)에 자신을 맡기고 귀순하여 자손들의 장구한 계책을 이으려 한다면, 명(明)나라가 준 고명(誥命)과 책인(冊印)을 헌납하고, 적들과의 수호(修好)를 끊고, 적들의 연호(年號)를 버리고, 일체의 공문서에 우리의 정삭(正朔)을 받들도록 하라. 또한 너희의 조정과 묘호를 다시금 격하하고 만세칭(萬世稱)과 황포(黃袍)를 금해 옛 주제를 알고 따르도록 하라.
그리고 너 이계는 장자(長子) 및 재일자(再一子)를 인질로 상도에 보내라. 만일 그대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하면 짐이 인질로 삼은 아들을 세워 왕위를 계승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짐이 만약 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조칙과 사신을 내려 너희 나라를 조발할 때 혹 수만 명으로 하거나, 혹 기한과 모일 곳을 정하면 착오가 없도록 하라. 짐은 이번에 군사를 돌려 제남(濟南)을 공격해서 취하려 하니, 그대는 육병(陸兵) 삼만과 배 30척을 내고 수병(水兵)과 화포(火砲)를 모두 스스로 준비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대원의 대군(大軍)이 돌아갈 때에도 먼저 호군(犒軍)하는 예(禮)를 응당 거행해야 할 것이다.
성절(聖節)과 정조(正朝), 동지(冬至), 중궁천추(中宮千秋), 태자 천추(太子千秋) 및 경조(慶吊) 등의 일이 있으면 모두 모름지기 예를 올리고 대신 및 내관(內官)에게 명하여 상도에 표문(表文)을 받들고 오게 하라. 바치는 표문과 전문(箋文)의 정식(程式), 짐이 조칙을 내리거나 간혹 일이 있어 사신을 보내 유시를 전달할 경우 그대와 사신이 상견례(相見禮)하는 것, 혹 그대의 배신(陪臣)이 알현(謁見)하는 것 및 영접하고 전송하며 사신을 대접하는 예 등을 대원(大元)의 구례(舊例)와 다름이 없도록 하라.
너희 나라의 요양(遼陽)과 심양(瀋陽)은 본래 요양행성의 관할 하에 있었으나 바얀테무르가 간적(奸賊) 아자스리의 비행을 명분으로 삼아 평장 유익(劉益)을 죽이고 심요를 사사로이 범했으니 일족이 모두 죽은 지금은 다시금 대원에 귀속될 것이다.
또한 앞으로의 국경은 얄루(압록강)로 정하노니 심요에서 너희 말을 쓰는 자들은 너희들이 스스로 데려가나 대원과 만주의 속민은 무탈(無頉)하여야 하며 명의 속민은 모조리 쇄환(刷還)하도록 하라.
왜남조(倭南朝)와의 무역은 그대가 옛날처럼 하도록 허락한다. 다만 그들의 사신을 인도하여 조회하러 오게 하라. 짐 또한 장차 사신을 저들에게 보낼 것이다. 허나, 명의 상인과 관리는 다시금 왕래하지 않게 하고 오는 대로 즉시 체포하여 상도로 보내거라.
그대는 이미 신의와 천명을 잃어 꼼짝없이 말라 죽을 목숨이었는데 오늘 짐이 옛 허물을 눈감을 기회를 주었으니 거의 망해가는 그대의 종사(宗社)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는 다시금 대원대몽골국의 대칸이자 천자에게 꿇어 엎드려 황은(皇恩)을 감읍(感泣)하도록 하라. 앞으로도 자자손손토록 신의를 어기지 말도록 한다면 그대 나라가 영원히 안정될 것이다.
정원(正元) 22년 1월 11일.]
경복궁 근정전.
원의 사신이 떠나간 자리에는 오직 침묵만이 감돌았다.
“······.”
“······.”
조선의 아홉 번째 왕 이계는 입술을 짓씹으며 모멸감을 삼키고 있었다.
신하들이 왕의 분노를 느끼고 눈치를 보더니 앞다투어 엎드렸다.
그중 한 신하가 입을 열었다.
좌의정 윤필상이었다.
“폐하! 주와 명에게 패퇴하여 황하 이북으로 내몰려간 구적의 수괴에 불과한 바투뭉케가 망측한 혀를 놀려 성상을 능멸하고 조선의 사직과 종묘를 겁박하니 어찌 조선의 신하가 된 자로서 참을 수 있겠나이까! 이번 기회에 군사를 더욱 모아 아국의 강산에 침입하려 하는 자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북벌을 단행하소서!”
그의 말을 들으며 좌중의 분위기를 살피던 호조판서 류순정과 대사헌 김일손 등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불쾌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북벌을 명하시옵소서, 폐하!”
조선은 고려의 잔해에서 세워진 나라였다.
고려라는 기둥을 썩어빠지게 한 요소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리 만무했다.
썩어빠진 불교와 고려를 이리저리 휘둘렀던 부원배들 모두.
전자야 숭유억불이 확실하게 자리잡은 지금에야 말할 필요도 없는 것들이지만, 과오를 되씹고 다시금 승천하는 원은 분명히 국가의 존재 자체에 큰 위협이 되었다.
특히나 왕가의 문제에선 더욱더 심했다.
북원의 황제는 아직도 적법한 이 땅의 왕을 왕(王)씨라 보고 있었다.
그 이유가 정말 왕씨를 황금씨족의 곁가지라 보고 있어서 그랬는지, 혹은 내정개입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기고 있어서인지는 몰랐지만 만약 초창기의 조선이 왕씨들을 대규모로 숙청하지 않았다면 북원이 승천한 지금 그 위협은 안팎으로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려가 멸망한 지 이미 백 년은 넘었고 과거의 잔재는 희미해져 있었건만.
전조가 무릎 꿇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저 무례하고 편협한 조서의 내용, 즉 다시금 관제를 격하하고 옛 주제를 알라는 요구조차도 없었겠지.
이계는 주변을 둘러보다 입술을 씰룩였다.
관에서 주도하는 학문의 기풍이 서려 있어 관학파라 불렸었고, 이제는 그 일부가 선왕의 정변에 가담하여 공을 세워 훈구라 불리는 조정의 대신들. 그리고 이제 청요직(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에 등용되기 시작한, 향촌에서 주도하는 학문이 서려 있어 사림파라 불리는 상대적으로 젊은 신료들이 모두 여론을 모은 기색이다.
그동안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던 이들이 오랜만에 입을 맞추어 저리 행동하는 것이 묘했다.
하지만 애초에 다른 선택지가 있었나?
태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심요의 땅은 몹시 중한 곳.
무종(이제)께서도 그곳을 사수하라 하셨었지.
이계는 항전(抗戰) 이외엔 다른 방법을 떠올릴 수 없었다.
물론 원의 칙서 전에 온 남이의 첩보에는 물경 이십만에 달하는 적의 군세가 남하하고 있다 적혀있었기에 일말의 불안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북원과 나란히 갈 수 있는 종류의 국가는 아니었다.
중앙조정을 장악한 훈구와 떠오르고 있는 사림 모두 태생적으로는 결국 전조의 사대부들이 아닌가.
“군세를 모은다면 얼마나 모을 수 있겠는가?”
이계가 묻자, 병조판서 박원종이 대답했다.
“남방도원수에게 일러 절반의 군세를 북으로 돌리게 한다면, 즉시 이만이 충원됩니다.”
“하오나 폐하, 남방 또한 왜구의 출현이 갈수록 심해져 골머리를 앓고 있으니 병사를 돌리는 것은 무리가 있사옵니다.”
누군가 반대의 말을 던졌다.
원종은 모두가 얼굴을 숙이고 있는 관계로 그 사람을 확인하진 못했으나, 확인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면 불과 오만으로 심요의 너른 벌판에서 적병을 막으라는 게요?”
원종의 비아냥을 듣고는 다른 신하가 간언했다.
“심요와 평안, 황해도의 인원을 재빨리 징집하여 편성한다면 다시금 이만의 군세를 얻을 수 있겠나이다. 또한 시간을 들여 삼남의 군세를 온전히 징발한다면 십만이 가뜬히 넘는 정병이 모이게 될 것이니, 저 변발을 한 오랑캐 무리는 심수를 넘지 못할 것이옵니다.”
최근, 호적조사에 따르면 정군과 봉족(奉足)을 포함한 숫자는 거의 백만에 달했다.
군병은 삼십만, 보조원은 칠십만이니 물리적으로 조선은 삼십만의 대군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서류상의 수는 항상 허황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다년간의 국경안정비용 덕에 농민의 생활은 가히 좋지 못했다.
더군다나.
“전국적으로 작물들의 작황이 썩 좋지 못한데, 다시금 징병을 하라?”
근래 들어, 몇 번의 흉년이 있었고 병충해가 왔다.
본디 이러한 것들은 하늘의 뜻이라 방비할 수 있는 법이 없다 하더라도, 가정의 남성들이 절실히 필요한 이럴 때 군역을 부과한다면 더욱더 큰 피해로 돌아갈 것이 뻔했다.
“이럴 때일수록 사직을 위한다면 신하와 백성 된 자로서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
사림계로 분류되는 몇몇 신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신들의 가산을 털어 재정에 도움코자 하니, 성상께서는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반대로 훈구 중 일부는 고개를 찌푸렸다.
그러나 이미 여론은 이미 자발적인 지원금을 조성하고 있는 듯했다.
그들 또한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입을 모았다.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옥좌에서 그들의 행동을 바라보던 이계가 껄껄 웃으며 손뼉을 쳤다.
“경들의 충정을 윤허하겠소.”
여말선초의 혼란기에 수많은 자금을 끌어모았고 국초 태종의 숙청 칼날을 피해간 사대부들은 정변을 겪은 이후에는 일약 조선의 대지주로 거듭나 현재의 훈구파가 되었다.
앞으로는 인과 의를 부르짖고, 청백리를 칭송하며 깨끗한 척하지만, 마찬가지로 향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다져나가고 있는 사림 또한 재정적으로는 여유가 있었다.
신료들의 모금은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었다.
“명국에 대한 설득은 가능하겠나?”
이번에는 사림계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광경을 비웃음을 띠고 바라보던 훈구의 박원종이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사례태감 유근 또한 마냥 어리석기만 한 자는 아니니 언변과 문장에 뛰어난 자를 뽑아 적당한 은과 함께 대국에 보낸다면, 분명 군사행동을 약조할 것입니다.”
조선에 대한 구원군은 아니더라도, 북원을 괴롭히는 행동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란 말이었다.
이계 또한 명의 사정을 아주 잘 알고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이 제아무리 십만의 군세를 일으킬 수 있다 하나 혼자서 북원과 대적하는 것은 무리였고, 가능하다 하더라도 하책에 불과했다.
“사절을 보내시오. 충분한 지원을 받아내야 할 겝니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 * *
주상의 뜻은 정석에 가까웠다.
내줄 수 없는 땅이니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만약 그 누가 그들에게 조선이 전쟁을 하기에 충분히 대비되었느냐 묻는다면, 아마 몇몇은 고개를 저을지도 몰랐다.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기에 이렇게 따로 모이기도 했다.
영의정 이극돈(李克墩)은 우의정 한치형(韓致亨)과 이조판서 정광필(鄭光弼)을 포함한 뜻에 맞는 문인들을 앞에 두고 한숨을 내쉬었다.
국난이 앞에 있기에 따로 술잔은 들이지 않았고 다만 차를 내어왔다.
하지만, 내어놓은 다기에는 잔이 더 있었으니, 광필은 의아해했다.
― 이리 오너라!
마침 대문 밖에서 종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객들이 있었습니까?”
광필의 말에 극돈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정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수 있는 방법이지.”
극돈의 말에 광필이 무언가 눈치챈 듯 얼굴을 찡그렸다.
“무리 지어 다니는 패당들은 너무 경전에만 매몰되어 있어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주상을 획책하여 신해(辛亥)년과 을묘(乙卯)년에 큰 화를 일으킨 자들임을 잊으셨습니까?”
그러나 극돈은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기다려 보시게.”
정광필은 이극돈과 침묵을 지키는 한치형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끄덕였다.
곧이어 남효온과 정여창, 즉 핵심 사림계로 분류되는 자들이 방에 들어오니, 모인 수가 다섯에 달하게 되었다.
한 나라의 정승인 극돈의 집이 작지는 않았기에 자리의 불편함은 없었지만, 분위기의 불편함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앙금 또한.
“영상 대감, 직접 이 사람을 부르셨다 하여 어떻게 오긴 왔습니다만 선객분들이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희들은 그만 가 보겠습니다 대감.”
초청된 이들은 의외의 자리에 전혀 내켜하지 않았다.
“···앉게나. 그저 훈구의 정승이 아닌, 조선에 길게 봉사해온 노신으로서 하는 말일세.”
“······.”
“······.”
“후우, 알겠습니다. 대감.”
방석을 깔고 앉은 남효온과 정여창이 우의정에게 예를 갖추었고 광필에게도 고개를 숙여 보였다.
광필 또한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아주었다.
“내가 그대들을 부른 이유는, 그대들이 작금의 정국에 유일하게 말귀를 알아먹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야.”
“······.”
“의외의 발언이십니다?”
극돈이 초청된 사림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내 말이 그른가?”
“대감 앞에서 대감을 따르는 무리들을 비난하라구요? 하하, 대감께선 이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실 생각이신가 봅니다?”
노신은 피식 웃었다.
“그대들은 한참 잘못 알고 있구만. 그대들 사림이 계온(季溫, 김종직의 호)의 학문 따르는 것은 익히 알고 있네만, 훈구는 그렇지가 않네. 그들··· 아니 우리들은 각자의 믿는 바를 믿지.”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
“나는 신해와 을묘의 사화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네.”
“······.”
정여창과 남효온은 그 발언에 살짝 놀랐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는 바와는 다르게, 이계가 주도한 사화의 과격함을 이극돈이 덜어내려 애썼던 것은 같은 시기에 조정에 있었던 그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여전히 사림의 대다수는 극돈을 증오하고 있겠지만, 모르긴 몰라도 적어도 이극돈이 말린 사약만 해도 스무 첩은 될 것이었다.
“따라서 국난이 앞에 온 지금 그대들 사림과 힘을 합치는 것도 당연한 일이야.”
“···지극히 당연해야 할 일이었지요.”
“슬프게도 그렇지 못하지만 말일세.”
분위기가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사실 정여창과 남효온은 사림의 핵심 인물들이긴 했지만 강경파로 분류되는 김굉필과 김일손 등의 무리들과는 성격이 조금은 달랐다.
물론 남효온과 김굉필은 같은 스승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둘도 없는 친구지만 남효온은 김굉필의 그 비타협적 태도에 항상 동의하지는 않았다.
“주상께선 너무 의심이 많으시네. 선대왕께서도 그러셨듯이.”
“무언가 들으셨습니까?”
“주상께선, 지원군을 온전히 남 도원수에게 몰아주지 않으실 생각이시네.”
“그게 무슨···.”
여창과 효온이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국난을 앞에 두고 군권을 분할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그 가당치도 않은 일이 지금 조정에서 논의되고 있지.”
남효온이 침음성을 삼켰다.
그와 현 북방도원수 남이는 서로 친척지간이기도 했다.
“조참이 파하고 성상께서 정승들을 불러모아 물으셨네, 도체찰사(都體察使)로 갈 의향이 있느냐 말이야.”
도체찰사는 말이 군정과 민정을 전부 관할하는 자리였지 사실상 도원수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같은 지역에 도원수와 도체찰사가 공존하는 것은 오직 하나만을 의미했다.
“옳지 않은 일입니다. 어린아이가 보는 병법에도 군권의 분할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라 서술하는데···.”
이극돈은 한치형을 슬쩍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와 우상께서는 반대를 하였으니 좌상께서 노구를 이끌고 평안도로 가실 것 같구만.”
“좌상은 필시 도원수를 견제할 것입니다. 불 보듯 뻔한 일이지요.”
남이는 훈구도, 사림도 아니었지만 따지자면 그 둘을 견제키 위한 종친으로 분류되었다.
세조 이찬의 종친우대법에 의해 등용된 그는 세조의 치세에 상당히 중용되었다.
조선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심요도병마도절제사(이후 병마절도사로 개칭)로 재직하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세조는 큰 정신적 상처가 있었다.
이징옥이 십만 군세를 이끌어 한양의 목전에 다다랐을 때.
그때부터 그 기억은 그를 괴롭혔고 항상 북방에 나가 있는 무관들을 경계하고 억누르는 계기가 되었지.
화약 무기에 대한 안 좋은 기억도 있어서 이제가 만든 군기시의 화약청을 폐지한 것도 바로 이찬이었다.
그리고 그 성정은 이계에게도 고스란히, 아니 더욱더 심하게 물려졌다.
남이는 무려 세 번이나 파직과 재임용의 시련을 거쳐야만 했다.
그뿐만 아니라, 북방의 무관들은 전부 다 하나같이 고초를 겪었다.
덕분에 군의 기강은 하락하고 박살이 났던 것이다.
“그래, 그게 문제일세.”
“허나, 우리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남효온이 한숨 섞인 말을 토해냈다.
말을 하진 않겠지만 말을 한다고 해서 들어먹을 인간이었으면 진작 잘했을 것이다.
“사림 중 한 명을 도체찰사를 감시하는 종사관(從事官)으로 붙일 예정이야. 나는 추강(秋江, 효온의 호) 그대를 천거할 것이고.”
“···도체찰사를 견제하란 말씀입니까?”
“그렇네.”
이극돈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