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와 해학, 관용(3)
고려의 땅은 넓고 넓다.
넓은 국토를 자랑하는 만큼 일반적인 땅의 가치는 과거에 비해 그렇게 높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수도의 땅값은 굉장히 비쌌다.
여러 관리들과 상인들이 오가는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니 안 비쌀 수가 없긴 하겠지.
농지나 첨예한 국익이 걸리지 않은 땅은 굳이 큰 거래제한을 두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경제 중심지는 청해와 해문 등에 나누어 가지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창양은 근본부터 계획도시인 만큼 상당히 교통의 편의성을 배려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나 도시의 특성상 급속한 팽창에 따른 부작용을 피해갈 순 없었다.
개천 223년(1498년) 현재, 경기를 제외한 창양의 인구수만 오십만에 육박했다.
고려가 남는 인구를 최대한 지방과 연방으로 많이 보내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수치였다.
지금까지 고려 조정은 함부로 창양의 규모를 늘리지 않았다.
오히려 건국 초부터 상민은 창양 주변에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를 설정해 놓았었다.
물론 이 땅은 반론의 여지 없는 국유지였으니 잡음도 없었다.
규제라는 것은 어떤 때에는 그렇게 좋지 못했지만, 어떤 때에는 필수 불가결하기도 했으니까.
더군다나 예전 삶에서 살았던 서울과 창양은 완전히 다른 도시였다.
조그마한 땅덩어리 한반도에 산은 왜 그리 많은지.
서울도 예외 없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북한산, 관악산, 도봉산, 남한산, 심지어 서울의 한가운데라 볼 수 있는 중구에 있는 남산까지.
산세가 높고 험하지는 않았지만 도로를 깔고 도시를 확장하거나 농사를 짓는 입장에서는 화딱지가 절로 나는 지형이기도 했다.
그와는 달리 창양은 그야말로 평야 중의 평야에 지어진 도시였다.
강의 퇴적작용으로 인해 생겨난 조그마한 굴곡과 언덕은 서울의 경우와 비교한다면 코웃음이 날 정도의 고저 차.
그냥 아예 평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쭉쭉 뻗은 사방의 평야 덕에 여러 공사는 물론이고 토목사업을 진행하기도 상당히 편했었지.
하지만 이로 인한 문제점도 존재했다.
서울은 스스로를 감싸는 정치적인 그린벨트 이외에도 자연적인 그린벨트를 가지고 있었다.
확장을 해나감에 있어 그린벨트를 건드리는 추세라지만, 한정 없이 어디까지나 건드릴 수는 없었다는 부분도 있었지.
그러나 창양은 그런 자연적 장애물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아주 먼 미래까지 내다봐야 한다.’
상민은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이 아름다운 자신의 작품이 혼탁하게 물들어가길 원하지 않았다.
확장되는 도심은 무조건 공원을 비롯한 녹지와 근린시설을 일정 부분 이상 가져야만 했다.
체계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도성은 한계를 맞았다.
조정은 결국 창양의 규모를 더 늘리기로 했다.
음지로 불규칙적으로 팽창하느니, 차라리 먼 미래까지 고려하는 관의 주도하에 계획적으로 팽창하여 나가는 것이 맞겠다 싶어 결정한 일이었다.
국유지였던 곳들이 해제되어 민간에 팔렸고, 그 너머에 있는 땅이 다시금 개발제한구역으로 재설정되었다.
창강으로 가로막힌 북쪽의 지형을 제외하고 기존의 도시를 기준으로 동서와 남쪽으로 모두 팽창하니, 창양은 이전보다 거의 두 배가 넘는 덩치가 되었다.
그래봤자 아직은 지난날의 서울보단 택도 없이 작은 규모긴 했다.
확장된 세 지역 중 동쪽 구역과 서쪽 구역에 비해 남쪽 구역은 당장은 인기가 별로 없었다.
물류가 들어올 수 있는 통로인 창강을 끼고 있는 두 구역에 비해 남쪽은 몇 개의 하천을 제외하곤 강줄기 자체가 없었으니까.
‘할인찬스라 이 말이지.’
상민은 스스로 거금을 들여 그곳의 땅 한가운데를 샀다.
실로 엄청난 규모의 국유지.
앞으로 도성에 포함될 곳이라 처음 가격 자체가 비싸게 책정되어 상민은 많은 양의 금전을 재무부에 납부해야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손해는 아닐 것이다.
결국 수도의 땅값은 언젠가 오르지 않는가?
전생에서의 경험으로 따지고 볼 때, 이 땅은 금싸라기라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아무리 창양이 동시대에 손꼽히는 거대한 대도시라 하더라도 천만이 넘어가는 인구가 사는 현대의 도시에 비하면 택도 없으니까.
교통도 좋았다.
황성과 정녕당에서 출발하는 중앙대로가 일직선상으로 이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창 확장 중인 중앙대로가 남쪽까지 도달하게 된다면 딱 이 공터를 지나쳐갈 것이었다.
거대한 공터를 손에 넣은 상민은 이미 완성된 청사진을 가지고 그곳에 건물을 빠르게 지어나가기 시작했다.
공터의 크기만큼이나 공사도 대대적이라, 한순간 도성에서 한가락 한다는 건축기술자들이나 장인들이 빨려 들어가 업무의 공백이 생길 정도.
심지어는 여러 석재들과 목재, 그리고 금속 자재의 값이 요동치기도 했을 정도였다.
상민은 아무것도 없는 평지 앞에서 무엇이 보이는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연서궁이 지혜의 궁전이라면, 이곳은 문화의 궁전이 될 것이다.”
* * *
창양.
부촌의 한 저택.
이곳은 무려 삼별초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건양의 지(池)씨 가문에 속해 있었다.
아주 먼 옛날, 보위도감에 속해 있었던 상장군 지계방의 후손 중에서도 종가였다.
서고려와 동고려 통일 이후에도 지씨 가문의 후손들은 무관은 물론이고 문관직에도 많이 진출했다.
이들의 조상 중에서는 법무상서를 역임했던 명신(名臣) 지봉정이라는 인물은 물론 대법관을 역임했던 인물도, 해군 제독으로 복무한 인물도 있었다.
상계로 진출한 조상들도 돈을 제각기 풍족하게 벌었으니 가히 고려 내에서도 손꼽히는 명성 높은 가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풍 또한 엄격하기 그지없었다.
지씨 가문의 후예들은 몸가짐을 정숙하게 해야 했다.
사내라고 함부로 방탕하게 놀았다간 호적에서 내쫓기는 경우도 있었으며 여인들 또한 결혼 전까지 남자와 제대로 대면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식사는 오직 모두가 함께하는 자리에서 먹어야 했으며, 그에 걸맞는 예절과 법도를 모두 지켜야 했다.
유난히 더운 여름에도 속살을 바깥에 비칠만한 옷차림은 용서받지 못했고, 심지어 흰 면으로 된 장갑까지 끼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이러한 숨 막히는 가풍은 열일곱의 꽃다운 소녀, 지선희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더군다나 그녀는 지금 지씨 가문 가주의 유일한 딸아이.
아버지의 엄격한 잔소리는 도무지 만족이라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축제? 방금 축제라 했느냐?”
밥상머리에서 딸아이가 꺼낸 말에, 가주 지운학은 격노하며 손을 들었다.
어린 딸아이에게 손찌검을 하려는 것을 겨우 만류한 어머니가 그녀에게 어서 들어가 보라는 고갯짓을 했다.
“여보, 진정해요….”
“내 진정하게 생겼소? 지금 당신도 저 말을 들었잖소? 밤늦게 도성의 온갖 놈팽이가 몰려드는 축제에 가서 즐긴다고? 천한 계집들도 아니라, 지씨 가문의 여식이?”
뒤에서 부모가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서둘러 식사 자리를 빠져나온 그녀는 방 안의 침상에 몸을 던지며 베개에 고개를 파묻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버지의 저런 기질은 그녀의 오빠들이 제각기 분가를 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이제 그녀는 새장 안에 갇힌 새처럼 취급받고 있었다.
이미 정략결혼을 할 혼처는 꽤 좁혀져 있었다.
그녀라는 상품이 결혼 전까지 훼손되지 않길 원했던 아버지는 숫제 저택 바깥에도 내보내지 않으려는 모양이었다.
― 퍼펑
열린 창 너머로 요란한 소리가 들리며 화려한 볼거리가 보였다.
실로 아름다운 불꽃놀이, 지금 진행되는 축제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러나 그녀는 불꽃놀이 말고 다른 것들을 보고 느끼고 싶었다.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풍경이나 그런 것들.
일 년마다 돌아오는 창양의 불꽃놀이 축제는 일주일간 지속되었다.
그 기간 동안 사람들은 축제 장소에서 먹고 마시며 여러 볼거리를 즐겼다.
연인들은 물론이고 연인이 아닌 자들까지 그곳에서 인연을 만들었지.
선희는 한 번도 그런 광경을 직접 보지 못했다.
심지어 제대로 거리를 나다닌 적도 드물었는데 축제는 무슨.
그리고 앞으로도 그녀는 제대로 된 축제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비슷한 가풍을 지닌 곳에서 자란 자제와 결혼을 하면 축제에 가기는 상당히 어려운 법일 테니까.
하지만 다음 날, 그녀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어제 식사 자리까지만 해도 그녀를 향해 언성을 드높였던 아버지는 아침 일찍부터 마차를 대기시켜 놓고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내, 얼마간 집을 비워야 할 일이 생겼소. 그렇게 긴 것은 아니니 금방 다녀오리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간단히 작별을 하고 빠르게 몸을 돌려 빠져나갔다.
선희는 기대를 가득 담은 눈을 하고 그녀의 어머니에게 허락을 구했다.
* * *
하녀 한 명과 호위병 두 명을 대동한 실로 조촐한(?) 행렬을 꾸린 선희는 몽수를 쓰고 드디어 축제에 나설 수 있었다.
축제가 열리는 장소는 하도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중앙대로의 가운데 있는 원형광장, 그리고 그곳에 있는 거대한 건축물 주변에서 벌어지겠지.
그 건축물은 거대한 문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름하여 창양의 개선문.
해상십자군이란 명목으로 고려의 땅을 밟았던 자들을 징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건물이었다.
개천 165년에 착공을 들어간 이 거대한 건축물은 공사가 몇 번 지체되기도 했지만 결국 아즈텍 정벌 직전인 개천 173년에 완공되었다.
아즈텍을 정벌했던 시중께서도 저 밑을 통과했었더랬다.
그 후에 더블린 해전을 승리로 이끈 변흠규 제독 또한 그러셨고.
앞으로도 승전보를 올린 장군이나 제독은 의기양양하게 저곳을 말을 타고 통과할 수 있는 최고의 영예를 얻겠지.
개선문 광장은 축제 기간 동안 가장 붐비는 곳이었다.
관의 주도하에 폭죽이 발사되는 곳이기도 했으며, 그것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구경꾼들을 현혹시키기 위한 노점과 놀이패들도 많았다.
덕분에 이들을 보기 위해 오는 자들도 덩달아 생겨났고.
“저기도 가보자!”
선희는 처음 보는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와 수많은 인파에 난생처음으로 크게 신이 나는 것을 느꼈다.
너무 재미가 있었다.
폭죽을 보는 것도, 광대를 보는 것도, 그리고 그냥 일반적인 사람과 연인들을 구경하는 것도.
그 가냘픈 몸에 어찌나 힘이 넘치는지 하녀와 호위병들은 거의 뛰다시피 그녀의 뒤를 쫓아야 했다.
“아씨, 조금 천천히!”
상당히 넓은 광장이지만, 사람의 수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하녀는 뾰족하게 소리를 지르며 그녀의 주의를 환기시키려 했다.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거나 갑자기 긴급한 상황이 일어난다면 그녀를 놓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선희는 이미 정신이 팔린 지 오래였다.
하녀는 어쩔 수 없이 인파를 헤집고 나가는 그녀의 뒤를 빠르게 붙으려 했다.
하지만 전혀 바라지 않았던 상황은 항상 일어나고야 마는 법.
“비키시오!”
“위험한 물건이니 뒤로 물러나시오!”
관에서 나온 병사들이 사방에 고함을 지르며 무거운 상자를 운반하고 있었다.
그 속에는 분명히 폭죽이 들어 있을 것이었다.
폭죽 안에도 많은 화약이 들어간 만큼 이는 관의 소관이었고 이렇게 대중들에게 눈요깃거리를 보여주는 축제 현장에서도 엄중하게 관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병사들이 예민하게 소리를 질러대는 것은 충분히 이해 가능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해 가능한 것과 원망스러운 것은 별개였다.
하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병사 무리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선희는 저 반대편에 있었다.
그녀가 이 상황을 눈치챘을까?
마침내 병사들이 지나가자, 하녀는 건너편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잃어버린 상전은 찾을 수가 없었다.
* * *
“이거 어때?”
평소 자신이 쓰는 장신구에 비하면 보잘것없었지만, 축제 현장의 노점에서 파는 물건들은 어딘가 상당히 미화되기 마련이다.
싸구려지만, 그래도 꽤 정성스럽게 조각된 나비 모양의 머리 장신구를 들고 뒤를 바라본 선희는 자신을 따라다니며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던 하녀가 사라졌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선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풍경이 낯선 것이 어찌 개선문과 그 중심의 축제 현장에서 꽤 멀리 떨어져 버린 모양이었다.
절로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품속에는 저 싸구려 나비 장신구를 살 돈도 한 푼 없다.
누구한테 부탁하거나 부름차를 불러 집에 가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분위기가 묘했다.
고려의 치안은 동시대 어떤 국가들을 놓고 비교해봐도 상당히 좋은, 아니 거의 최고로 좋은 축에 속했지만, 그것이 밤중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녀와 같이 젊다 못해 어리고 부잣집 아가씨 같은 사람은 더욱.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가 말했다시피 도성의 온갖 놈팽이가 모여드는 축제 기간에는 더더욱.
게다가 요즘, 선민당원이라는 불량한 세력이 도성의 치안을 어지럽히고 있는 상황이라던데.
침을 꿀꺽 삼킨 선희는 의연하게 자신이 왔던 방향 비슷한 곳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으나, 순간 다리를 짚었다.
다리가 퉁퉁 부어있다.
시간도 늦어 버렸던 것이 틀림없다.
‘너무 오래, 열심히 걸었어.’
평소 몸을 움직이기 어색한 상황에서 자라온 그녀는 정구채를 조금 잡아 본 것 외에는 따로 운동을 하며 신체를 단련하진 않았다.
‘그리고 길도 모르겠어.’
어디 나다녀 봤어야 알지.
그녀는 부모의 치마폭에 휩싸여, 강제로 길치로 자라온 인생이었다.
‘여기서 기다릴까?’
하녀와 병사들은 미친 듯이 그녀를 찾고 있을 것이었다.
이곳에서 기다린다면, 아마 선희를 찾아낼지도 몰랐다.
그녀는 주변에 어디 앉을 곳이 없나 둘러보다가, 이윽고 사방의 시선을 느꼈다.
몇 명은 저런 부잣집 소녀가 여기서 뭘 하는 거야, 하며 시큰둥한 시선을 보내거나 관심이 없었지만, 몇 명은 그녀를 묘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선희는 떨리는 손을 부여잡았다.
누가 봐도 나 불량한 인간이오, 하며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술병과 노름패를 부여잡고 있던 남성들이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는 듯 서로 쑥덕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대응하지? 소리를 지를까? 아니면 호통을 칠까?
그러나 그녀의 다리는 당장에라도 풀려버릴 듯 덜덜 떨리고 있었다.
‘난 정말 왜 이렇게 어리석을까?’
이래서야, 아버지가 그녀를 집 안에 가둬버린 것에 대해 원망도 할 수 없는 처지잖아?
― 툭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을 느꼈다.
“오랜만입니다.”
환한 건치 미소를 지어 보이는 청년.
기억이 났다.
선희의 친구가 주최한 생일잔치 때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이름이, 이 바르톨로메오라 했었지.
이름이 길어 말하기 불편하면 줄여서 로미오라 불러 달랬던 것 같기도 했고.
“어… 네….”
일반적인 고려인들과 다르게 약간은 독특한 흰 피부와 붉은빛이 감도는 갈색 머리카락을 자랑하는 청년은 그녀에게 알은 채를 하며 그녀 너머를 살펴보았다.
해맑은 건치 미소와는 다르게, 청년의 몸은 실로 훈련되어 있었고 허리춤에는 무예 수련을 하는 선인들이나 패용할 법한 검집이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다가오던 불량한 무리들은 엉거주춤 그 자리에서 멈춘 뒤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다.
선희는 이 청년을 본 적이 있었지만,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개인적인 감정, 혹은 그런 요소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와 그녀는 태생부터 복잡한 관계였다.
집안과 집안 사이의 관계가.
“자리를 옮기죠. 제가 괜찮은 곳을 알아요.”
물끄러미 청년을 바라보던 그녀가 이윽고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의외로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