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을 위협하는 두 번째 적(2)
그리하여 상민은 모두를 평등하게 업신여겼다면 업신여겼지, 특정한 자들을 편애하지 않았다.
고려인의 우아한 유전적 형질이 돋보이는 사람이라고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았으며, 이제 다투기도 하고 회유하기도 하면서 제국의 영향권 내로 편입되고 있는 레나페나 서스쿼헤녹 부족 출신이라고 특별히 업신여기지도 않았다.
상민은 오히려 지금까지 자신이 수많은 시간 동안 공들여 쌓아 왔던 모든 업적들을 송두리째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려고 하는 자들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에이레와 네덜란드, 마라케시와 무타파와의 대외관계는 물론이고 연방 그 자체의 존립까지.
그런 상민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조보와 책을 비롯한 활자매체에서는 연신 박도상의 책과 논문이 재생산되어 퍼져나갔다.
학문의 진보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언론의 자유를 나름대로 보장했던 결과의 후폭풍일까?
상민마저도 과거 자신의 선택을 약간이나마 의심했다.
[고려인들은, 마땅히 고려인의 짐을 지어야 할 것이다.]
고려인의 우수성을 예찬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민간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우생학적 논리들을 들이밀며 스스로의 공허한 자긍심을 충족시키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우등인류라 규정한 후, 열등인류에 대한 확고한 지배를 원했다.
[정복하고 다스려라. 다스린 후, 그들을 계몽시켜 제국에 노동하게 하라.]
언뜻 보기에는 지금까지의 고려 정책과 다른 것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말 뒤에 숨겨져 있는 속내는 더욱 검었다.
‘열등인류’가 상서성, 중서성, 집법성 같은 국가의 중앙조직에 근무하는 것은 말이 되는가?
그들은 그 열등한 인류가 아주 말단의 계급으로서, 즉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노예와도 같이 고된 농장에서 목화를 따고 사탕수수를 재배하며 우등한 인류에게 봉사하길 원했다.
완전한 통합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말을 한 당사자가 조정의 관료라는 상황 또한 혼란한 현 세태를 대변했다.
조정의 언론 검열은 오직 황가나 국가를 전복하는 일들에 대해서나 작동하는 거름망이었지, 그 반대로 그들을 우상시하여 예찬하고 숭배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아니, 심지어 이들 개개인들의 머릿속을 전부 들어가 관찰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이 중 일정 수의 사람들은 이 논리에 찬성하고 있는 광경을 볼지도 모르지.
일부 완고한 학자들은 이 논문에 실린 해부 실험의 결과물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었고, 일부 관료들과 의원들은 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해부학 실험을 했는지 의심을 품었지만, 그 내용 자체에 본질적인 역겨움을 느끼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한 듯싶었다.
남려에선.
북려에서는 반대로, 이 논문의 이야기를 혐오했다.
피부로 이루어질 공공연한 차별.
앞으로의 희생자는 북방의 여러 주들(흰 피부를 가진 이류 혼혈계 백성들이 살고 있는)에서 발생할 것이었으니까.
우생학은 제국이 나아가야 하는 길을 가려 아예 다른 길로 빠지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피를 흘리게 하여 그 길마저도 끝까지 나아가게 할 원동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연방이 분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 * *
중서성 의원 이 피에르는 독특한 인물이었다.
보통은 중앙 정계에 진출하기 위해서, 그처럼 혼혈계라면 이름을 고려식으로 바꾸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아주 옛날, 중서령을 역임한 황도해나 그런 유명한 거물급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러나 그는 그러한 관습을 거부했다.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정앙 이(怡)씨의 성씨는 굳이 바꾸진 않았지만 이름 자체는 프랑스계의 이름, 피에르였다.
“내 스스로를 성상의 자식이라 생각하는 것이 변함이 없다면, 이름 따위야 무엇이 중요하겠소?”
“그리고 대체 고려식이라는 것이 뭐요? 태조께서 창제하신 우리의 고려글은 세상 만물의 이름을 모두 담을 수 있는데, 이제는 볼 수도 없는 한갓 한(漢)족들의 옛 글자에 얽매여 세 글자로 이름을 불러야 하는 까닭이라도 규정되어 있소?”
그는 미시시피강을 대미강(大彌江)으로, 아차팔라야 습지를 아차호(芽遮湖)로 바꾸자는 논의에 반대하고 있는 입장이었다.
그런 그의 주장은, 북려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특히 앙주의 군왕 아르크 가문과 진주의 군왕 아센 가문의 지지를 받았다.
“포용적인 고려글과 같이, 고려어 또한 변화해야 하오. 외래어끼리 차별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발상. 라틴어에서 파생된 단어가 한족의 한자에서 파생된 단어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소이까?”
‘물’이라는 순 고려말을 살펴보자.
이는 한자의 ‘수(水)’로도 쓰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피에르는 주장했다.
이 ‘수’라는 한자에서 파생된 고려 단어가 라틴어에서 유래된 ‘아쿠아’라는 고려 단어와 달리 취급받을 이유가 뭐냐고.
전자가 더 우월하고, 더 좋은 단어인가?
그는 적어도 둘 모두 고려글과 고려어가 포용할 수 있음을 제시하며, 이런 맹목적인 한화(漢化)정책을 반대했다.
조정에서도 그동안 원주민의 지명을 나름대로 포용하고 있던 경우도 많았으니까, 이런 기조를 더욱 촉진하자며.
그러나 남려에 살고 있는 자칭 우등한 신민들의 눈에는 이런 그의 말이 고깝게 보인 모양이다.
개혁가 이 피에르는 어느날, 그의 집 앞에 써 붙인 괘서(掛書)를 보았다.
작성자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 이 익명의 글은 실로 난잡하고 모욕적이라, 꽤나 많은 일들을 겪어왔던 이 피에르마저도 주먹을 쥔 손에 꽉 힘이 들어갈 정도였다.
“…겨드랑이에서 더러운 건락(乾酪, 치즈) 썩는 냄새가 나는 프랑스 놈이라….”
정앙 이(怡)씨는, 장다름에 복무한 그의 선조로부터 이어 내려온 집안이다.
그리고 그는 적어도 장다름에 복무했던 그의 선조가 이 글 작성자의 가문보다 더욱 고려와 연방에 기여했음을 장담할 수 있었다.
자신은 두말할 것 없고.
“치졸하고 비겁하군. 상대할 가치도 없다.”
그러나 그의 경멸 섞인 무시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들은 계속 반복되었다.
심지어 그 같이 외방 출신의 의원 말고도 내방에서 태어나 내방에서 자란 관료들도 이런 일을 겪었다.
집법성에서 존경을 받는 대법관, 손광훈은 따지고 보면 상당히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유서 깊은 고려인 집안이었으나 조상 중에 투피족이나 칼리나족이 있었는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까무잡잡한 생김새가 너무 두드러져 큰 모욕을 받았다.
거의 일흔이 되어가는 고령의 노인이라 괘서를 읽고 심적인 충격을 받은 광훈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와병을 해야만 했고, 쉽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선민당원(選民黨員) 이 쓰레기 같은 놈들!”
이 피에르는 그 소식을 듣고 이를 갈았다.
우생학을 신봉하며 고려의 짐을 지라 말하고 다니는 선민당원들은 옛 이스라엘의 열심당원마냥 선민주의에 빠져 열등한 인종(외견상으로 구분되는)에 대한 공공연한 공격을 시작하고 있는 모양.
괘서는 아주 순한 종류의 공격이었다.
어느날, 퇴청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피에르에게 계란과 오물이 날아들었다.
중서성 의원들에게 제공되는 관용 마차를 타고 있던 터라 직접 맞지는 않았지만, 멀끔하게 도색한 마차의 겉이 지저분해졌다.
“감히 관에 대한 공격인가!”
의원을 호위하는 병사들이 이를 갈며 선민당원들을 찾아 나섰으나, 군중 속으로 몸을 숨겨버린 이들을 찾아내기란 어려웠다.
그들은 대부분을 놓쳐버리고 한 소년을 질질 끌고 왔는데, 손에 계란을 쥐고 있었다.
빼도 박도 못하게 현행범임이 입증된 소년은 으르렁대는 병사들 사이에서 잔뜩 겁을 먹은 상태였다.
“왜 그랬는지 말해 보거라.”
피에르는 소년과 마주했다.
‘우월한 고려인’의 특징, 즉 검은 머리와 흑갈색 눈동자, 살구색 피부를 가진 소년이 더듬거리다, 이윽고 울음을 터트렸다.
“히…히끅, 죄송합니다! 제가 원해서 하는 것이… 죄송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던 피에르는 병사가 압수한 계란을 그의 손에 다시금 돌려주었다.
“계란은 먹으라 있는 것이지, 남에게 던지라 있는 것이 아니다.
어울리는 무리들이 하는 말을 너무 곧이곧대로 믿지 말거라. 네 무리들은 언제든지 이렇게 너를 버릴 무리들이니까.”
근묵자흑이라지. 네 순수함을 저들의 악으로 더럽히지 말아다오.
소년은 아무런 처벌도 내리지 않고 그를 돌려보내는 피에르를 보고 복잡한 얼굴을 보였다.
그리고는 풀어주는 대로 바로 집으로 떠나려다, 다시금 몸을 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어…어르신, 조심하세요. 그… 형님들이 더 위험한…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아요.”
피에르는 소년의 경고를 들었으나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악은 미덕을 이길 수 없다. 걱정 마렴.”
* * *
다행스럽게도 상민은 가장 큰 지지자를 가지고 있었다.
황제라는.
해건은 자신의 할머니(타완틴수유 출신의 황후 안씨)의 피와 자신의 아내 헬레나를 모욕하는 뜻을 담긴 논문을 보고 상민과 비슷할 정도로 격노했다.
헬레나 또한 그 책을 본 모양인데, 대체 어떤 상처를 입었을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녀가 다시금 이 땅을 그녀의 조국으로 여기지 않으면 어쩌지.
“할아버님, 어째서 처음부터 이 일을 막지 않으신 겁니까!”
쉰이 넘어가는 해건이 처음으로 상민에게 진노를 표했다.
한 번도 정사에 제대로 참여해본 적 없는 황상이건만, 역시 그의 후손인지 해건의 진노는 마른하늘에 벼락이 치듯, 깊은 숲속에서 범이 포효하듯 맹렬했다.
그의 분노는 당연했다.
추밀원과 정보총국의 권한 중 상당 부분은 상민이 위임받았었으니까.
그리고 그들이라면, 사건의 주동자인 박도상은 물론이고, 저 폭력단체인 선민당원들까지 대부분 잡아들여 처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민은 고개를 저었다.
“이 질긴 잡초는 쉬이 제거하기 어렵다. 전부 다 뽑아버려도 다시 무럭무럭 자라나지.”
“…그럼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겠다는 말씀이옵니까?”
해건이 실망했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나무를 심어야지.”
막으려면 막을 수 있었다.
일찍부터 제초제를 뿌릴 수 있었다.
보고서에 박도상이라는 이름이 들려온 것은, 이 책이 출간되기 전부터였으니까.
그러나 상민은 그 개인 하나를 막는다 해서, 이와 비슷한 유사과학이 앞으로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저들은 현 고려인들이 가진 사상의 대변자들과 다름없다.
자르고 뽑아내도, 결국 저 논리 그 자체를 깨부수지 않는다면 결국은 다시 그 땅에 똑같이 자라나겠지.
매 봄마다 다시금 제초제를 뿌려야 하면, 토양은 박살이 날 것이었다.
‘오히려 도덕적으로 상당한 흠결이 있는 박도상이 이 사상의 주동자라는 것이 희소식일지도.’
“나무를 심고 키워야지. 거목이 된 나무 주변에는 두터운 그늘이 드리워지기 마련. 그리고 그 그늘 아래에 있는 잡초는 자라나지 못할 것이다.”
해건은 상민을 바라보았다.
정원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아 있는 선조는 평소 황궁에서는 거의 벗지 않았던 가면까지 손에 쥐고 있었다.
악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의 손에 있는 가면이 조금씩 찌그러들었다.
말은 온화하고 인내심이 넘쳐 보였다.
그러나 해건은 선조의 온몸에서 억눌린 분노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어떤 일, 특히 개인의 비행에 대해서는 더없이 냉철하여 암살이나 모략을 주저 없이 쓰는 그의 선조는 어떤 일, 특히 대중에 관련한 일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유하고 답답하게 처리했다.
그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고려는 초유의 위기를 맞았다.
한창 팽창해야 할 시기에, 다툼을 조장하고 편을 가르는 자들이 넘쳐났다.
그러나 해건은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이도 오직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소손은 할아버님께 변치 않는 지지를 보낼 것입니다.”
“그래.”
그들은 애써 화제를 돌렸다.
헛기침을 하며, 황제는 자신의 진노를 피해 살짝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궁인들을 불러모았다.
상민 또한 구겨진 가면을 착용했다.
차와 다과가 나오고, 그들은 다시금 침착해진 어조로 자리에 앉아 나무와 꽃에 내리쬐는 햇살을 바라보았다.
헬레나가 가꾼 창천궁의 정원은, 이국적이면서도 전통적이라 묘한 향수를 일으키게 만들었다.
나무를 비롯한 식물들의 위치는 최대한 자연 그대로를 담은 동양적 느낌이 들었지만 파서 만든 호수의 기하학적 모양과 경치 좋은 지점에 세워진 대리석 동상들은 서양적 느낌이 들었다.
대학 시절 근처에 위치해 가끔 갔던 익숙한 창경궁의 후원이 서양식으로 재해석되면 이렇게 보일까.
물론 규모 자체는 창경궁 후원보다 월등하게 커 자칫 잘못하면 길을 잃어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국혼마저도 영향이 가지 않을까 싶더구나.”
상민은 찻잔을 두드리며 지나가듯 말했다.
그러나 해건은 그 속에 담긴 안도를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이미 다 끝난 일이라, 어쩔 수 없었겠지요.”
태자 해선과 나디아 빈트 무함마드 빈 하산 알리 나스르의 혼례는 이미 끝났다.
둘은 이제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다.
첫 번째로 종통에 들이는 이슬람 사람이지만, 상민은 별달리 걱정하지 않았다.
나디아는 충분히 그녀의 조국, 마라케시의 위태로운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개인의 믿음을 해선과 그녀의 후손에게 강요하거나 권하지는 않을 인물됨을 가졌으니까.
다행스럽게도 그녀와 그녀가 속한 나스르 왕조는 이슬람 수니파의 학파 중에서도 무왈라드(Muwallad)학파를 믿고 있었다.
오랫동안 본거지인 중동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덕분인지, 혹은 기독교와 직접 맞대어 결혼하고 살아간 덕분인지 이슬람 세계 내에서는 가장 관용적이며 현지의 문화를 존중하는 무왈라드학파의 이슬람 무어인 왕조들은 심지어 유럽의 여러 군주들과 결혼하기까지 했었다.
이슬람 세력과의 정치적 동맹으로는 더없이 좋았단 거지.
일어서는 거인 작전은 진작 실행되었었고, 지금은 결실을 맺어가고 있었다.
마라케시의 와타시 왕조는 기나긴 내분 때문인지, 아니면 왕조 자체가 말기에 들어서 있었는지 고려의 예상보다도 더욱 빨리, 마치 어린아이가 지은 모래성마냥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나스르 왕조의 무함마드 12세는 고려의 후원을 등에 업고,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듯 마라케시의 술탄이 되었고.
아직은 혼란한 정국을 수습해야 할 것이지만, 지브롤터는 베티카 산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마라케시의 방위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아주 좁디좁은 해협이라도 결국은 바다였으니.
명실공히 바다에 대한 패권을 쥐고 있는 고려는 은근슬쩍 카나리에 주둔한 함대를 보내 지브롤터 맞은편에서 반대쪽을 바라보고 있는 카스티야와 아라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지브롤터를 넘어올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제아무리 곤잘로 데 코르도바가 시대의 명장이라 하나, 해전에는 조예가 그리 깊진 못했다.
카스티야 아라곤은 손가락만 빨아야 했다.
북서아프리카에서 대유럽방어선의 첨병이 완성되었다.
카나리의 배후 또한 안정되었다.
빼앗긴 세우타를 다시 탈환하기 위해 이를 갈고 있던 포르투갈은 갑자기 마라케시의 왕조가 바뀌면서 그 뒷배가 고려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크게 당황했다.
고려는 둘을 적당히 중재하여 세우타와 탕헤르 등 지브롤터 바로 밑의 영토에 대한 포르투갈의 클레임을 포기하도록 한 다음, 혼란한 와중 마라케시를 침략해 이제는 틀렘센이 소유하고 있는 해적 항구 멜리야를 공격하여 영토로 삼는 것은 권유하듯 묵인해주었다.
이베리아인들의 시선을 돌릴 기회이기도 했으며 마라케시를 통제하기도 좋은 선택이었다.
알제 지역의 틀렘센이 유럽에게 야금야금 먹힌다면 마라케시는 더욱 절박하게 고려에 매달려야 할 테니까.
다만 고려는 만약 유럽인들이 페스 동쪽의 중(中)아틀라스 산맥을 넘어 마라케시를 공격한다면 동맹국에 대한 공격으로 여길 거라며 위협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며느리의 혈통이 제법 명망 높더군요.”
“아슈라프라지?”
상민은 짐짓 의뭉을 떨었다.
사실 그의 계획 속에서는 나디아의 피가 아슈라프라는 사실이 고려―마라케시 동맹보다 더 중요할지도 몰랐다.
아슈라프(Ashraf)는 선지자이자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직계 후손을 의미했다.
당연스럽게도 이슬람 문화권에서 최고의 존경을 받는 핏줄. 정통성 그 자체를 의미한다.
무함마드의 아들들은 전부 일찍 죽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려오는 그의 후손은 전부 무함마드의 딸인 파티마와 사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로부터 내려져 내려온다.
더 자세하게 따지고 들어간다면, 파티마의 장남 하산 이븐 알리의 후손들을 아슈라프(Ashrāf), 차남 후세인 이븐 알리의 후손들을 사이이드(Sayyid)라 부른다 하지만, 두 혈통의 존귀함에 우열이 있지는 않았다.
나디아는 나스르 왕조에 흐르는 아슈라프의 혈통을 지니고 있는 고귀한 신분.
이슬람 내에서도 극도의 존경을 받는 신분이었다.
쌍용지손이라 칭해지는 고려 해씨와 마찬가지로.
동로마 마지막 황제의 피를 이은 팔레올로고스마저도 저 두 혈통의 신성성과 비교한다면 약간 손색이 있을지도 몰랐다.
쌍용지손과 아슈라프 혈통 모두 실제로 DNA가 유전해 내려오니까.
해건은 조상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가 지향하고 있는 정략결혼의 방향성은 이제는 제법 선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