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192화 (192/653)

Line of battle(2)

고려 해군은 종렬진을 띤 상태로 무섭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 * *

왕립함대도 나포한 상선을 재빨리 포기하고 진영을 갖춘 고려 함대를 완전히 추격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이제는 다소 여유를 가지며 북북동으로 기동했다.

“적 함대에 한 번도 보지 못한 군함이 세 척이 있습니다!”

부하의 말에 왕립함대의 제독, 서머싯 백작 에드먼드 또한 망원경을 바라보았다.

위화감이 들 정도로 큰 덩치를 자랑하는 함선이 최후미 그 바로 앞, 그리고 맨 최전방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망원경으로 보는 크기는 잘 실감이 나지 않는 법.

에드워드는 호들갑을 떠는 부하를 나무랐다.

“…수적으로는 여전히 우위를 점했으니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쓸 것 없다.”

비록 저 거함이 다소 독특할 정도로 거대하다 하더라도, 함대 간의 포격전은 결국 그 숫자에 의해 결정 난다.

한 손이 열 손을 이길 수 없는 것.

저 육중하고 대단한 범선 또한 결국 포를 얻어맞으면 너덜거릴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옆에서 기동하고 있는 사략함대의 생각은 다른 모양인지, 신호기가 요란하게 펄럭였다.

“잭 선장은 끝까지 횡렬진을 유지한 뒤 근거리 포격전을 유도하자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신호기를 해석하고 있던 부관의 말에 에드먼드가 고개를 흔들었다.

“저 머저리는 그 천박한 이름을 딴 디건포인지 뭔지에 너무 매몰되어 있어. 근접 포격 이외에는 다른 해답조차 찾지 않으려는 멍청이일 뿐이다.”

― 포격전을 준비하라! 전 함대 종렬진으로!

선미루의 난간을 잡고 갑판 아래에 소리를 지른 에드먼드의 움직임에 잭 디건과 그의 사략함대 또한 체념했는지 순순히 그의 명령을 따랐다.

그 광경을 어딘가 의기양양하게 바라보던 에드먼드가 남모르게 손에 난 땀을 옷에 닦으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듯 중얼거렸다.

“서남풍이 우릴 도와준다. 웨더게이지(Weather Gage 측풍의 방향)는 우리에게 유리해.”

에드먼드 백작도 무능한 지휘관은 아니었다.

상당한 세월을 배 위에서 보낸 자.

에드워드 4세가 실책을 저지른 잭 디건의 통솔권을 빼앗고 그를 중용할 만큼의 본연의 실력은 있다는 말이지.

비록 그가 단 한 번이라도 잭 디건을 능가하는 전술을 보여준 적은 없었지만.

‘서남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이상, 범선은 동쪽, 즉 오른쪽으로 쏠리겠지.’

기울어진 배.

그러나 덕분에 왕립해군의 컬버린은 곡사가 아닌 거의 직사로 적의 흘수선을 타격할 수 있었다.

바다 위, 해전의 장소에서 바람은 동등하게 불어온다.

똑같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질 고려 함대는 왕립해군과 다르게 한층 더 기울어진 곡사로 그들의 컬버린, 즉 중포를 발사할 것이다.

두 대포의 차이는 존재한다.

주철대포는 가격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청동대포보다 열등하다.

사거리도 마찬가지.

그러나 저들은 각도상, 왕립해군의 선체를 쉬이 타격할 수 없다.

물론 마스트와 돛은 위험에 노출되겠지만, 흘수선을 타격하는 것만큼의 치명타를 준다고 생각되긴 힘들었다.

‘저 거대한 배도 흘수선에 포격을 계속 받으면 침몰할 게다.’

원거리 포격전은 명중률이 보장되지 않는 전투.

세 개뿐인 마스트와 거대한 천인 돛이 받을 예상 피해와 넓은 선체가 받을 예상 피해를 따져본다면 후자가 더 크겠지.

에드먼드가 향후 벌어질 일을 예측할 동안, 적 함대가 반전을 시도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북쪽으로 향하던 대열은 순식간에 반전하여 남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 자연스러운 운용에, 에드먼드가 흠칫 놀랐다.

마치 바다가 제집이라는 듯한 모습.

심지어 섬사람 잉글랜드인들조차 저렇게 기가 막히게 범선을 다루지는 못할 것이었다.

‘젠장….’

개개의 함선이 정확하게 간격을 유지하며 변침하자 그들은 이제 왕립해군을 향해 다가오는 형세가 되었다.

서로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두 함대가 펼친 종렬진은 자연스럽게 진행 방향에 따라 남과 북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단종진이 되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벌어지는 전열 전투의 광경을 앞에 두고, 에드먼드가 외쳤다.

불안감을 희석시키려는 목적이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부하들까지, 적어도 전투를 목전에 두고 벌벌 떨진 말아야 했다.

“국왕 전하를 위하여!”

그래도 서머싯 백작 에드먼드는 그동안 나름대로 부하들의 신망을 잘 산 편이었다.

대다수가 호응하니 배의 사기가 진작되었다.

이윽고 함선의 우현 너머, 저 멀리 고려의 선두기함이 보였다.

멀다고 하나 롱건 컬버린의 사정거리.

에드먼드가 서둘러 지시했다.

“발포!”

― 콰과광

불타는 심지를 가져다 대자 잉글랜드 해군의 주철대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에드먼드의 기함, 항해선진국 고려의 관습을 따라 새롭게 지정된 왕립해군의 선박접두어를 붙인 HHS(His highness ship) 채텀의 주철 컬버린은 모두 스무 문.

나머지는 전부 디건포로 장비되어 있으니 주포만 총 서른네 문이 넘는 최신 무장 갤리온의 위력은 잉글랜드 역사상 최강이라고 칭해져도 무방할 것이었다.

좌현에 설치된 열 문의 컬버린이 발사되자 멀리, 적 함대 앞에 물보라가 요란하게 피어올랐다.

다행스럽게도 몇 개의 탄이 명중했는지, 나무 파편이 튀는 것이 보였다.

“……!”

하지만 거함은 굳건했다.

한 차례 포격으로는 마치 흠집조차도 나지 않는 듯 선두의 기함은 오연하게 그들을 지나쳤다.

고려인들은 대응사격을 실시하지 않았다.

대체 왜?

― 콰과광

선두의 기함 말고도, 왕립해군의 두 번째 함선이 불을 뿜었다.

HHS 채텀보다 조금 작은 무장 갤리온.

하지만 두 선박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선두의 거함은 대응사격을 실시하지 않고 묵묵하게 버텼다.

그 가공할 존재감.

압도적인 오연함을 보여주는 그 존재는 두 함선이 행한 컬버린 포격이 마치 여름날 곤충이 무는 것과 같다는 듯, 귀찮다는 태도로 그들을 지나쳐갔다.

“…….”

잉글랜드 군함의 선원들은 전율했다.

그들의 공격은 전혀, 단 하나의 유효타를 내고 있지 못했다.

아무리 사정거리 끝자락에서 포화를 맞고 있다지만.

― 펄럭

잭 디건의 배에서 다시 신호기가 올라왔다.

[변침, 침로는 북동으로, 근접사격.]

그러나 에드먼드는 그 신호를 볼 수도 없었다.

망원경으로 고려의 선두 거함을 바라본 그가 입을 쩌억 벌렸다.

― 콰앙!

그의 함선이 쏘아낸 포탄은, 고려의 거함에 날아간 후.

튕겨졌다.

그리고 망원경 너머 고려의 선원들이 손을 하늘로 치켜들며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 보였다.

상식을 넘는 현상에, 에드먼드는 그만 망원경을 떨어뜨렸다.

통 윗부분에 달려있던 렌즈가 바닥으로 떨어져 깨졌지만 그는 열린 입을 다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채텀호에 승선한 왕립해군 선원들은 적의 대응사격이 오지 않자 불안해하면서도 열심히 포탄을 장전하고 쏘아 보내고 있었다.

주어진 시간 안에 더 많은 피해를 주어야 했다.

하지만 왕립해군의 단종진과 고려의 단종진이 서서히 겹쳐, 겹친 부분이 전 대열의 이 할에 도달했을 때.

고려가 마침내 공격을 시작했다.

― 삐이이이

포탄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거무튀튀하기도 하고 포탄의 속도가 원체 빠르기 때문에.

그러나 고려군의 반격은 너무나도 잘 보였다.

그리고 또한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이상한 소리를 내며 상당한 고각으로 날아오는 정체불명의 화살들.

마치 하늘을 수놓는 듯한 그 공격은 아주 옛날, 지중해에서 서로에게 불화살을 쏘아대던 그 원시적인 시대에서나 볼 수 있었겠지.

그러나 그런 불화살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거리를 날아오지 못한다.

“화살이다, 피해!”

고려인들은 신기전, 그것도 비화신기전(飛火神機箭)이라고 부르는 무기였지만 잉글랜드인들은 그 정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예상할 수 없었던 괴상망측한 공격에 선원들이 제각기 몸을 숨기고 납작 엎드렸다.

비화신기전은 명중률이 처참했다.

화살 개개는 바닷바람으로 이리저리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쏘아진 수가 수십, 수백 개가 되자 불확실성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비화신기전은 왕립함대의 선두는 물론 그 뒤에 오는 함선들까지 상당한 수의 선박을 그 화망 안에 넣어놓고 있었다.

― 파파팍

화살이 박혔다.

그 자체는 엄청난 힘을 가지거나 터지지 않아 갑판을 뚫거나, 선체에 충격을 가하지는 않았다.

그래. 겉보기엔 단지 화살이었다.

하지만 그 화살이 선체에 맞닿자,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도저히 표현을 할 수 없는 이상한 냄새와 함께 화염이 폭발하듯 번져나갔다.

“이…이…!”

갑판에는 모두 일곱 대의 화살.

돛에는 화살 다섯 대.

나머지 수십 대는 바다에 빠졌다.

맞은 것은 겨우 십분의 일에 불과할진대, 돛대와 선체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는 것을 본 에드먼드가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불을 꺼라!”

갑판에 번진 불길은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

반면 천으로 이루어진 돛은 지금 당장 진화에 나서야 했다.

기동력을 상실한 함대가 어떤 꼴에 놓일지는 명약관화했다.

하지만 에드먼드의 고함에도 불구하고 선원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물로도 안 꺼집니다!”

“불이 왜 물로 꺼지지 않느냐! 제아무리 기름을 부었다 해도 물을 열심히 끼얹으면 결국은 꺼진다. 괴상한 소리 말고 어서 움직…!”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에드먼드는 정말로 선원의 말대로 바닷물을 들이부은 불길이 한 차례 숨을 죽이다 오히려 맹렬하게 물 표면을 타고 목선에 번져나가는 것을 보고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설마?’

* * *

혼란에 휩싸인 왕립해군 단종진의 선두.

불타는 화염은 돛을 집어삼키고 있었기에 빠르게 소실되어가는 선두 선박들의 기동력.

아예 멈춰버린 선두 덕에, 바로 뒤를 따르던 선박들 또한 멈췄다.

심지어 선두 선박의 꽁무니와 부딪히기까지 했다.

잉글랜드 왕립해군이 보여주는 항해숙련도에 잭 디건은 혀를 찼다.

일사불란하게 변침한 고려 해군과 너무 대조적이지 않는가.

덕분에 후열의 나머지 선박들도 졸지에 속도를 늦춰야 했다.

에드먼드는 뭘 하고 있는지.

그는 욕을 내뱉었다.

“계집애마냥 불길에 겁먹어 지휘조차 하지 않는단 말인가?”

불은 언제든지 끌 수 있다, 이 멍청아.

사방에 널린 게 바닷물인데!

그도 방금 고려 함대가 쏜 괴상망측한 무기를 보긴 했지만, 그것이 엄청나게 무지막지한 병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보라, 선체가 박살 나고 나무 파편이 튀기진 않지 않는가.

하지만 빠르게 진화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버리는 것이 좋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스트에는 도저히 꺼질 것 같지 않은 불길이 번져가는 모양.

잭 디건은 고려가 쓴 저 정체불명의 불화살을 바라보았다.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훌륭하게 성공했군그래.’

그 공격은 다시금 날아오진 않았다.

이제는 그들이 포격할 차례라는 듯, 고려의 우현에서도 대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기동성을 상실한 선두가 포를 맞았다.

그러나 선두의 컬버린이 고려에게 가한 피해가 미미했던 만큼, 고려가 먼 거리에서 쏘아대는 중포도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에드먼드의 기함과 그 떨거지들은 그 포화 세례를 맞고도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그래.

잭 디건은 다시금 확신했다.

대포의 효과가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가까이 붙어야 한다.

서로 표정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침로를 북동으로! 고려군의 단종진과 가까이 다가간다! 디건포 장전 준비!”

잭 디건은 앞 범선과 충돌을 피하기 위해 사선으로 침로를 변경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침로상 고려 함대와 가까워지는 모양.

디건포를 쏘기에는 최적의 거리까지 나아가야 했다.

아무리 병신같다지만, 선두의 사령관은 사령관.

에드워드 4세의 성격으로 보아 할 때, 이번 전투에서 진다면 자신과 인질로 잡힌 자신의 가족들의 목은 확실하게 달아날 것이었다.

선두를 구하고자, 그리고 대열에 가까이 다가가 디건포를 맞추고자, 잭은 근접기동을 실시했다.

그런데 잭의 행동에 응해 줄 이유가 단 한 개도 없을 고려군은 무슨 생각인지 그들의 접근을 방관하고만 있었다.

웨더게이지가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질 만큼 가까워진 거리.

괴상망측한 불화살로 적의 진형이 뒤죽박죽으로 된 상황.

사선진을 펼치며 다가온다 하더라도, 적 전력의 오분의 일은 아직 화재진압 중이었으며, 나머지 오분의 일은 그 선박들 뒤에 묶여 있었고, 나머지 오분의 삼만이 고려에게 다가오고 있는 셈이었다.

신무기로 선두의 기동성을 막아 그들의 단종진을 효과적으로 박살 낸 고려 제독은 이제는 적극적으로 포격전을 어울려 줄 요량인지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

하지만 잭 디건은 드디어 적의 실체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똑바로 다가오고 있다.

자신감에 차서.

그 자신감이 오만함인지, 거만함인지.

크다.

그의 생각보다 크다.

그가 망원경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크다.

너무나도 크다.

선두와 그 뒤의 함선

그리고 그 뒤의 익숙한 고려 함선들과의 차이.

망원경으로 볼 때는 그들의 크기가 잘 구별되지 않는 감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또 저들이 후열이 잘 보이지 않는 종렬진으로 내려왔다는 거지.

게다가 잭 디건은 잉글랜드 대형의 중단쯤에서 나아가고 있어 시야적 제한도 있었고.

잭의 변명과는 별개로 흑갈색의 거함은 시시각각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크기 또한 시시각각으로 체감이 되었다.

도무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저 거함은, 방금 전까지 에드먼드 함대와 포격을 주고받았음에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한 태도로 무심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흠집?

잘 보이지도 않았다.

잭은 오싹함을 느꼈다.

온몸에 스멀스멀, 소름이 우수수 돋았다.

숨이 턱 막히고, 구역질이 났다.

이제 불과 몇 초 뒤, 그의 함선과 저 거함이 서로 사선에 들어간다.

헛구역질을 참으며, 잭이 외쳤다.

“…발포 준비!”

그의 부하들 또한 겁쟁이 같은 놈들이 아니었다.

모두가 위대한 대해적 잭 디건 밑에서 수많은 일을 겪었던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사략해적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모두는 그들이 서 있는 자리에 얼어붙어야만 했다.

심지어 일부는 마치 수전증에 걸린 환자마냥 덜덜 떨고 있었다.

대포에 화약을 쟁이는 자.

그리고 포탄을 넣어야 하는 자까지.

이미 예고된 죽음.

과연 초연해질 사람은 대체 몇 명이나 있을지.

― 쿵

한 선원은 들고 있던 포탄을 떨어뜨렸으며

다른 선원은 벽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무 벽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전혀 의지가 되지 않을 텐데.

거함이 천천히 다가왔다.

거함의 가장 높은 갑판 위에서 대포의 머리가 내밀어졌다.

그리고 갑판 아래층에서도 함포 구멍의 뚜껑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아래층에서도.

갑판 위, 디건포와 흡사한 포를 장전한 적 선원들의 표정이 보였다.

그들은 전투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감정도, 혹은 우세를 점하고 있다는 승리감도 보여주지 않았다.

오직 기계적으로 장전을 하고 쏠 준비를 마쳤다는 얼굴.

“하….”

잭 디건도 웃었다.

뭔가 우스꽝스러웠다.

이 절망적 상황이 마치 희극이라도 된 것마냥 그가 크게 웃어 재꼈다.

“하하… 하하하!”

오랜 세월 동안 해적질과 사략질을 함께해 온 그의 기함, 블랙바트호는 측면 다섯 문의 캘버린과 일곱 문의 디건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눈에 보기에도 저 거함은 측면에 스무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갑판에도 적어도 열 문의 디건포와 비슷한 함포가 내밀어져 있었고.

이는 블랙바트호가 낼 수 있는 화력의 두 배 이상을 한 번에 쏘아낼 수 있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화력이 두 배라는 말이 앞으로 블랙바트호가 입을 피해가 두 배라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었다.

저 거대한 괴물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위압감.

그 끔찍한 크기 차이에 해적들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투쟁심마저 사그라들었다.

‘나는 무엇과 항거하려 했는가?’

아니 잉글랜드는 대체 무엇과 싸우려고 했던가?

에드워드 4세에겐 닿지 않을 의문을 품으며 잭 디건이 조용하게 거함을 바라보았다.

시선은 저들의 포구에 닿아 있었지만, 떠올리는 것은 가족들의 얼굴이었다.

― 콰아앙

― 콰아앙

두 함선이 스쳐 지나가며 화염을 내뿜었다.

그러나 그 한 번의 포격을 주고받은 이후, 블랙바트호는 두 번 다시 포격할 수 없었다.

거함 또한 블랙바트호에서 쏘아진 몇 개의 포탄을 맞았지만, 이제는 용무가 사라졌다는 것마냥 그 후열에 있는 범선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전열전술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지나간 전열함 뒤로 쏘아진 포신에서 나온 흰 연기가 마치 바다의 안개처럼 사방을 가렸다.

그러나 바다의 안개를 뚫고 애석하게도 앞선 전열함과 완벽하게 같은 크기의 전열함이 다시금 블랙바트호를 맞이했다.

두 번째 거함에서 쏘아지는 똑같은 양의 포탄 세례에 블랙바트호가 요란하고 무기력하게 흔들렸다.

목재가 비산하고, 피가 튀긴다.

의식을 잃은 자를 후려치는 맹공에 시신이 들썩였다.

세 번째 범선.

고려의 표준적인 중범선에서도 옹포가 발사되었다.

포탄은 선체를 헤집고 이미 죽은 선원들과 숨어서 공포에 떨며 울고 있던 해적들의 육신을 기어코 박살 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여덟 번째 포격까지.

아홉 번째 범선은 그들의 사선에 들어온 블랙바트호를 바라보다 포격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하나 없단 말이지.

해당 범선의 선장은 코를 문질렀다.

선두 두 전열함의 횡포를 모두 받아내고 있는 적의 함대는 이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덜거리고 찢겨나가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

미국의 함선 USS 컨스티튜션호는 헤비 프리깃이었습니다.

버지니아참나무(Live oak, 작중은 활참나무로 번역)로 만들어졌죠.

이 함선의 별명은 Old Ironsides인데, 그 이유는 미영전쟁 당시, USS 컨스티튜션이 HMS 게리에르를 박살 낼 때 게리에르의 포탄을 튕겨내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합니다.

함선으로 건조할 수 있는 목재 중 거의 최고의 강도를 자랑하는 버지니아 참나무(북려 전역의 자생종)의 위력이라 합니다.

비화신기전은 그리스의 불을 탑재한 신기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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