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186화 (186/653)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변흠규 제독이 와병한 이후 직무대행체제에 들어선 고려 해군의 활동은 약간 줄어들었다.

에린섬 부근의 치안 유지와 에린―고려 수송항로에 대한 방어 위주의 활동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동안 해적들도 따라서 잠잠하니 이상할 노릇이었다.

그러나 그 기묘한 침묵은 곧 풀렸다.

제독대행 김홍(金洪)은 런던에서 온 북유럽회사의 인원들에게서 런던의 소식을 받았다.

회사 대부분의 인력과 자산이 오늘 아침 리머릭에 도착했다.

상덕을 비롯한 수뇌부들을 빼고.

“에드워드 4세가 전하를 처형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런던에는 전하의 목을 자를 단상과 처형인이 선별되었으며, 오직 날짜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들은 상단의 일개 직원들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내용에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남 사장이 따로 언질을 준 것은 있었소?”

“없었습니다.”

사장 남상덕과 그의 측근들만 몸을 피난하면 되는데, 이들은 왕비의 죽음을 막기 위해 런던에 남아있으려 하는 모양이었다.

김홍은 급히 그의 권한으로 전 함대를 소집했다.

방금 들은 소식은 분명히 에드워드의 만행을 예고하고 있었다.

제독께 보고하고 지시를 받을까?

그러나 김홍은 이내 와병 중인 변흠규 제독이 신속하고 명료한 결단을 내릴 수 없다 판단했다.

‘제독께선 분명히 신중하게 결정하시다 때를 놓치실 것이다.’

변흠규 제독은 엄했지만 병사들에게 인덕이 높았다.

적에게 10의 타격을 주는 것보다, 아군이 5의 피해를 입는 것을 더욱 꺼리는 지휘관.

그러나 김홍은 대고려의 장수로서 쌍용지손이 외국에서 사사로이 처형되는 꼴을 도저히 묵과하기 힘들었다.

서로 언쟁하며 절차와 명분 그리고 희생을 따지는 동안, 왕비는 처형될 것이고 고려의 황통 위신은 땅에 처박힐 것이다.

살아있는 신앙.

정말로 태조 그 자체를 ‘신’으로서 숭배하는 마야와 쿠쿨칸 신앙을 믿고 있지 않더라도, 고려인이라면 해씨에 대한 극도의 경외심을 품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다.

김홍은 변 제독에게 보고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여섯 분함대 중 준비된 넷을 끌고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 자신도 이 임무가 얼마나 위험천만한지 충분히 잘 알고 있었기에 믿을만한 장수들과 자세한 계획을 세웠다.

수도인 이상 해안포대와 기타 여러 가지 방어물들이 존재하지만, 북유럽회사가 제공한 지도를 통해 이곳들의 배치를 어느 정도 확인한 그는 템즈강 하류까지 함대를 이동시켜 적의 수도를 직접 노리는 특단의 결단을 내렸다.

“본함대가 런던항을 점령한 후, 소수의 기동함대를 보내 런던탑의 화이트 타워 안에 계신 전하를 구출한다.”

“예! 제독대행.”

해군에 소속된 육전 병력들을 지휘하는 장수가 결의에 찬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몹시 위험한 작전이다.’

하지만 왕비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그 불구덩이로 직접 가는 것이 고려의 사내들 아니겠는가?

‘아마 이 모든 것이 함정일 가능성이 높다.’

적의 수괴는 분명히 매복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어디에서?

김홍은 지도의 한 부분을 바라보았다.

필연적이라 생각하는 곳.

그래. 이곳의 주변에 거대한 덫을 펼쳐놓았겠지.

‘준비된 곳에 무엇이 설치되어 있는지는 모른다.’

소선을 이용한 화공, 해안가의 대포 등.

사냥꾼들은 분명히 만반의 준비를 해놨을 것이었다.

그러니 변수를 창출해야 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변수는 별로 없지.’

그가 가는 길이 비록 희생을 요할지언정.

김홍은 허리춤에 있는 해군용 곡도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마흔 척의 중범선을 위시한 대함대가 항해를 시작했다.

* * *

1487년 2월 9일.

두 개의 함대가 이맥항에서 출발했다.

마치 하나처럼 이동한 이들은 에린섬이 보이지 않을 만큼 먼바다에서 둘로 쪼개졌다.

이질 덕분에 군선으로 쓰기에는 승선 인원이 턱없이 부족했던 스무 척의 배가 남쪽으로 향했다.

요란한 소음을 내면서, 가끔 훈련한다는 듯 포격도 하고.

이들은 심지어 콘월과 플리머스 부근까지 기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본함대는 에린의 북쪽으로 쏜살같이 나아갔다.

그리고 더 북쪽으로.

거대한 바다, 대동양까지.

위도가 45도 이상. 거의 60도에 달하는 고위도의 대동양으로 기동하는 근위함대는 꽤나 익숙한 공포를 맛보기 시작했다.

‘울부짖는 바다와 비슷한 위도.’

사정없이 배를 때리는 파도는 저위도보다 훨씬 거칠고 사나웠으며, 노후화된 함선들은 온몸에 비명을 질러가며 고충을 토로했다.

비록 그 좁은 해협의 악명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하지만 무려 다섯 척의 중범선과 많은 소선들이 어떠한 적에게도 피해를 입지 않고 스스로 침수침몰(Foundering)했다.

범선이라는 것은 완전한 방수가 되는 물건이 전혀 아니었다.

선원들은 비바람 말고도 내부로 침입한 물과도 사투를 벌여야 했다.

어느 정도 밑바닥에 물이 차오르는 것은 빼낼 수 있었다.

그러나 노후화되어 굳은 뱃밥이 파도의 충격과 수압으로 밀려나며 삽시간에 물이 들어오는 것을 어떻게 막으랴.

“구조를 포기한다.”

김홍은 단호하게 결정했다.

침몰하는 배의 선원들은 범선에 실린 작은 소선에 옹기종기 타 근처의 육지, 생전 처음 보는 땅인 스코틀랜드로 향해야만 했다.

김홍은 피도 눈물도 없이 계속 항해를 지속해나갔다.

덕분에 서식스에 있는 로열 네이비 본함대는 고려함대의 기동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맑은 날에는 상대 쪽 지역이 보일 정도로 폭이 좁은 도버 해협을 은밀하게 통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

잉글랜드인들은 두 눈이 빠져라 이곳을 경계하고 있었지만 고려함대의 그림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 * *

그 시각.

고려는 마침내 스코틀랜드 북방 군도를 돌았다.

그리고 미친 듯이 빠르게 남하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해안가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 남하한 함대는 툭 튀어나온 노리치의 해안에서마저도 눈에 띄지 않다가 뜬금없이 템즈강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북방을 뚫고 오며 소실이 있었다 하나 중범선 서른다섯 척, 아니 모든 작은 함선들까지 전부 합친다면 거의 일흔 척에 가까운 대함대의 침입에 해안가에 있던 잉글랜드 어촌의 주민들은 혼비백산하며 달아났다.

회중시계로 진행 방향과 거리, 속력을 계산하여 원하는 시간에 템즈강에 도달한 김홍은 멀리 보이는 등대들을 바라보며 지시했다.

함대는 너덜거렸지만 아직 숨은 붙어 있었다.

“국기를 바꾸어라!”

해군으로서 국적기를 바꾸는 것은 몹시 수치스러운 일.

특히 당대 최강이라는 고려 해군으로서는 더욱더 그러했고.

그러나 칼리나해에서 온갖 잔꾀를 부리는 해적을 토벌해온 김홍의 명령은 단호했다.

고려의 푸른 용의 해군기 대신 성 조지의 십자가가 걸린 국기가 매달렸다.

등대 위의 화로를 관리하는 늙은 등대지기는 따뜻한 불 옆에서 꾸벅꾸벅 졸며 외국의 함대가 자신이 관리하는 빛을 따라 위풍도 당당하게 템즈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뭐라?”

에드워드에게 왕비의 처형에 대한 소문을 뿌려달라 요청하고 직접 대어를 낚으려던 장본인, 잭 디건은 바라 마지않던 소식에 크게 당황했다.

분명히 기다리고 있었던 소식이었지만.

방향이 잘못되었다?

사략함대와 돈을 받은 해적들은 도버 해협 북부 마게이트에서, 로열 네이비들은 잉글랜드의 주요 군항인 서식스의 포츠머스에서 대기하도록 했던 잭 디건은 도버 앞바다에 물고기가 온 순간 앞뒤로 포위하며 고려의 함대를 공격할 예정이었다.

그동안 고려 제독의 성정을 보아 할 때, 그들은 온갖 함정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접근해올 것이었다.

시간이 너무 늦는 것도 그 조심스러운 성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거친 북방의 바다를 뚫고 왔다고?

‘이런 미친놈들.’

그러나 잭 디건의 생각과는 다르게 고려함대의 지휘관은 바뀌어 있었다.

김홍이 주도한 북방 항해 그리고 그 이후 내린 빠르고 저돌적인 판단 덕분에 고려함대는 오히려 매복을 한 로열 네이비와 사략함대들을 마주하지도 않고 이미 템즈강을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었다.

정찰대가 아닌 고려와 마주한 어촌 주민들의 호들갑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된 잭 디건은, 서둘러 템즈강의 하류로 향하도록 지시했다.

포츠머스의 해군들도 합류하라는 것도 빼먹지 않았고.

“미치광이들 같으니라고.”

해적들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조금 어색한 말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잭의 말에 동의하는 듯 혀를 내둘렀다.

마치 앞만 보고 가는 우직한 멧돼지와 같이 저들은 스스로 런던으로 뛰어들었다.

함대의 규모를 생각해본다면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선택.

스스로 사지로 가는 것인가.

미들섹스는 잉글랜드의 심장.

그곳을 지키기 위해 있는 병사들의 숫자는 더없이 많을 텐데.

그러나 잭 디건의 얼굴은 이윽고 다시 평정심을 되찾았다.

“…우리는 우리의 할 몫을 해야지. 거대한 그물망을 준비하라!”

“선장, 런던을 구하러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오?”

“거긴 신경 쓰지 마라.”

솔직한 말로 그는 해적이라 런던이 어떻게 되든 별 상관이 없었다.

“알았수다.”

부하들은 불안한 얼굴로 포위망을 준비했다.

잭 디건은 입술을 꿈틀거렸다.

그의 예상이 실패했는지, 자존심에 큰 상처가 생겼다.

‘나와 같은 부류의 선장은 아니라 생각했건만.’

잭은 부하들의 사기를 진작시킬 겸 자신의 실패를 위안 삼을 겸 크게 외쳤다.

“오히려 좋다! 예전의 그물이 뛰어들어오는 자에게 던지려는 그물이었다면, 지금은 뛰어나가려는 자에게 던지려는 그물이지.”

뒤의 경우가 더욱 유리한 것이 당연한 말 아니던가?

* * *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정체불명의 외국 함대가 템즈강을 거슬러 올라와 런던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소수 잉글랜드의 식자들만이 고려의 함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을 뿐, 일반 백성들은 도무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슬며시 동이 터 오르는 시각.

하루 중 가장 경계심이 없다는 이 시각은 적당히 사물과 지형을 구분할 수 있으면서도 모두가 잠에 빠져 있는 시간이었기도 했다.

고려함대는 별다른 저항 없이 런던항을 점령했다.

산발적인 포격과 총격 소리는 이내 잠잠해졌다.

이후부턴 강폭이 조금 더 작아지기에, 김홍은 중범선 일곱 척과 협저선 등의 소선 위주로 분함대를 꾸려 안으로 스스로 들어갔다.

“……!”

강변에는 이 소란에 수많은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 있었지만 고려인들의 민간인 선제공격은 없었기에 아비규환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민간인들은 구경거리라도 난 듯 고려함대에 가까이 접근하다, 용감무쌍하게 돌격하던 잉글랜드 병사들이 고려 총병들에게 벌집이 되는 것을 바라보고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한편 본함대와 떨어져 안으로 들어온 구출함대는 드디어 목적한 곳에 도착했다.

타워(Tower).

런던탑이라 불리는 이곳은 정복왕 윌리엄 시기 지어지기 시작했는데, 왕실의 인사들과 의회가 웨스트민스터에 자리 잡자 본래의 기능적 목적인 요새 및 궁전과는 다르게 현재에는 높은 신분의 사람을 가두는 감옥으로 쓰였다.

내전 기간 동안 수많은 요크 가문의 피가 흐른 곳이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초기 의도는 요새였던 것이 분명해, 두꺼운 흰 외벽과 높은 탑의 건축물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히 견고해 보였다.

‘포격으로 빠르게 무너뜨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중범선들을 전부 끌고 와 한참을 포격한다면 결국 돌무더기로 변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전하가 타워 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적의 증원을 늦춘다.’

런던탑 바로 좌측에는 템즈강을 가로지를 수 있는 런던의 상징, 런던 브릿지가 놓여 있었다.

김홍은 도시 수비군의 원활한 기동을 방해하고 시선을 돌리기 위해 다리를 포격하기로 결정했다.

시간과 사건의 특수함으로 인해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조금 더 시간이 흐른다면 저들은 대응을 해 올 것이었다.

그리고 아군의 함대는 내륙의 대포에게 큰 타격을 입을 것이고.

당대의 런던 브릿지는 템즈강을 왕복하는 거의 유일무이한 수단이었다.

하도 많이 부서져 아예 석조로 지어진 다리는 상당히 견고해 보였다.

분명히 상당한 수준의 포격을 퍼부어야 다리를 붕괴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김홍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일단 저 가운데 틈을 포격하라.”

도개교가 있던 자리인가.

김홍은 한 눈으로 봐도 몹시 허약해 보이는 부분에 집중적으로 포격을 지시했다.

― 콰앙

그의 지시에 따라 함선에 실린 청동 대포들에게서 화염이 쏟아져 나왔다.

* * *

― 쿠웅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런던의 시민들은 아직 어두컴컴한 이른 새벽부터 들리는 포격 소리에 크게 놀랐다.

하루 일과를 앞두고 단잠의 끝자락을 잡고 있던 시민들은 아내와 아이가 공포에 떨며 우는 것을 진정시켜야 했다.

“도망쳐!”

특히 런던 브릿지 위의 건물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땅(다리)이 흔들리는 거센 충격을 받고 잠에서 강제로 깨어나야만 했다.

이들은 창문 밖에 보이는 광경에 세간살이를 챙길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판단하고는 서둘러 그 공간에서 도망쳐 나오기 시작했다.

혼비백산하며 달아나는 시민들을 바라보던 김홍이 다시금 지시했다.

이미 가운데 교량은 박살이 난 상태.

도개교는 물론 그 주변의 교량까지 박살 내니, 작은 범선들이 오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확보되었다.

“이제 늦잠을 자는 사람들은 없겠지. 다리 위의 건물에 포격하라.”

“예!”

건물들은 다리와는 달리 허술하게 지어진 것이 분명한 듯 몇 번의 포격으로도 삽시간에 붕괴되었다.

그 광경을 바라본 김홍이 고개를 돌려 그의 주요 표적을 노려보았다.

타워.

저걸 어찌한담.

그러나 그의 고민이 무색하게, 부관이 그에게 달려왔다.

“제독대행! 이쪽으로 작은 소선이 다가옵니다!”

“…….”

김홍은 부관이 건넨 망원경 대신 더욱 고배율인 자신의 망원경을 품에서 꺼내 서둘러 소선을 바라보았다.

흰색 깃발을 흔들어제끼는 그 선박에는 다소 특이한 외형을 가진 사람들이 타 있었다.

“…고려인들이다.”

김홍의 명으로 접근을 허락받은 소선.

그 위에 탄 인원들은 이윽고 김홍의 기함 위까지 올라왔다.

“미치셨소?”

배를 타고 왔음에도 물에 잔뜩 젖어있는 남성들이 갑판 위에서 물기를 털었다.

뭘 하길래 똥물을 뒤집어쓴 건가, 어쩐지 은은하게 구릿한 냄새도 난다.

그 선두에 있던 남상덕은 예의도 잊어버린 채, 김홍에게 삿대질을 했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사지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다니!”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던 게요?”

“이런… 당신 덕에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될 뻔했다는 사실을 알아두시오!”

남상덕은 김홍의 질문에 대답 대신 씨근거렸다.

북유럽회사 안에 정보총국의 요원들이 포진해 있다는 사실은 등급이 몹시 높은 기밀 사항.

나름대로 언질을 준 변흠규 제독도 아닌 부하였던 김홍은 당연히 이를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그의 모든 작전에 차질이 생길 뻔했다.

김홍이 으르렁거렸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사지로 뛰어든 자들은 그와 그의 부하들인데.

“본관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대 회사의 인물들에게서 이 소식을 들었소이다. 무언가 일을 획책하려 했다면 미리 귀띔을 해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니오?”

“…그대와 같이 성급하게 행동하는 자에게 어찌 국가의 기밀을 알려줄 수 있겠소?”

그러나 상덕 또한 급박하게 진행되는 현지의 사정으로 충분히 시달린 사람. 미련한 해군 장수의 질책을 받아들이긴 힘들었다.

상덕의 부하들(정보총국의 요원들)과 고려 해군들은 상관들의 싸움을 만류할 수 없었다.

그 싸움을 끝낸 것은 두 소속이 아닌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모두 진정하세요. 제독대행의 결단으로 인해 우리의 탈출 과정이 안전해진 것은 사실이니까.”

“…예, 전하.”

남상덕의 말에 김홍의 눈이 커졌다.

상덕의 뒤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던 여인 하나가 얼굴을 드러내었다.

여인의 손을 잡은 어린 혼혈 여자아이까지.

김홍은 그녀의 신분을 눈치채고 반사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전하를 뵈옵니다.”

“예를 차릴 시간이 없어요. 남편은 즉각적으로 반격해 올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큰 소란을 겪은 런던의 수비군들이 정신을 차렸는지 대포를 끌고 떼로 몰려오고 있었다.

― 콰앙

당연한 말이지만 강변에 방어시설이 원래부터 있었는지 몇 개의 포대에서 사격을 시작하는 것도 보였고.

그러나 너무 늦었다.

왕비의 말에 정신을 차린 김홍이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임무는 완수했다! 돌아가자!”

대응 사격을 실시하며 방향을 돌린 함대는 강물의 진행 방향을 타고 빠르게 하류로 나아갔다.

잉글랜드인들은 돌아갈 때 얄밉게도 성 조지의 십자가를 내리고 청룡 해군기를 갈아끼는 고려인들을 바라보며 분통을 터트렸다.

김홍의 선택이 주요했다.

비록 그는 지원군이 오가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다리를 끊었지만 오히려 잉글랜드인들은 다른 생각들로 인해 혼란에 빠져들었다.

가운데 교량이 무너진 다리는 거대한 중범선은 무리더라도 협저선은 충분히 오갈 수 있는 너비의 틈을 보였다.

고려인들이 만약 그 틈을 통과하여 웨스트민스터로 향한다면 손쉽게 그들의 왕이 기거하는 궁전에 포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나라의 궁전에 대한 포격?

어마어마한 수치이자, 실로 생각할 수도 없는 끔찍한 일이었다.

잉글랜드의 수비군들은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수비하려 몰려갔다가, 요란한 소란에 잠에서 깬 에드워드의 질책을 받고서야 다리와 탑으로 되돌아와 고려군과 맞서려 했다.

물론 그들이 본 것은 해가 떠오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고려의 함대 꽁무니가 전부였지만.

강변의 한 건물, 이 소란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어린아이가 고층 건물의 난간에서 위태롭게 다리를 흔들며 흥얼거렸다.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런던 다리가 무너지네.)

Falling down, falling down.

(무너지네, 무너지네.)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런던 다리가 무너지네.)

My fair lady.

(내 아름다운 여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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