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183화 (183/653)

잉글랜드(2)

상덕은 당연하게도 그녀에게 독약을 주는 멍청한 짓 따윈 하지 않았다.

성공할 확률도 낮았으며 설사 성공한다 하더라도 회사의 이익에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었다.

존속이 위태로울 만큼 큰.

왕비는 왕비이고 회사는 회사였다.

그들이 칙허회사라 하더라도 잉글랜드 왕비의 명을 따를 의무 따윈 없었다.

따져 보면 그녀는 고려 내에서 방계 황족에 불과했으니까.

북유럽회사는 종통과 군왕들을 비롯한 황족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인물들이 관계된 거대한 칙허회사였으니, 가볍게 행동할 수 없었다.

상덕은 침묵을 지켰고, 왕비의 어설픈 모략은 결국 탄로 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부와 그 아이는 멀쩡했다.

에드워드 4세는 몹시 분노하며 왕비를 웨스트민스터 궁전의 높은 탑에 유폐했다.

북유럽회사는 이와 관계된 것이 전혀 없었으니 당장은 불이익을 받진 않았다.

다만 왕과 왕비 부부들을 둘러싼 분위기는 날이 갈수록 흉흉해졌다.

상덕은 서둘러 사건의 자세한 전말을 적어 고려로 보냈다.

* * *

개천 208년(CE 1483) 8월.

창양.

창천궁 태성전.

조참은 몹시 시끄럽다.

초유의 사태에 벌어진 일에, 신하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언성을 드높였다.

“절대 묵과해서는 아니 되오!”

저렇게 일어나서 주장하는 쪽은 고려의 군무부 관리들과 무관들이었다.

이들은 시끄럽게 여론을 모으고는 상민을 보며 말했다.

“당하! 이는 고려의 지엄한 황통을 욕보이는 행위이니 마땅히 응징하여야 합니다!”

“근위군과 함대는 언제든지 출격이 가능합니다. 마땅한 결단을 내리신다면 저들의 런던은 불에 탈 것이고, 쌍용지손의 혈통을 욕보인 잉글랜드의 국왕은 목이 매달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관들 반대편에는 착좌한 채로 달아오른 분위기를 만류하는 침착한 분위기의 관료들이 있었다.

“외교적 파장을 생각하시오!”

“비록 그의 행실이 부도덕하나, 일국의 지존과 사생아라도 그 피를 이은 혈통에 대해 흉계를 꾸민 것은 어떠한 말로도 용서될 수 없소이다.”

“당장 해군은 칼리나해의 해적 토벌도 종결짓지 못하고 있으면서, 대외 원정을 할 생각을 하다니!”

그리고 그들 또한 상민을 보며 간언했다.

“제대로 된 명분 없이 우리가 공격한다면 애써 얻은 모든 인적 자원을 헛되이 날리는 꼴이 될 수 있습니다. 당하께서는 신중하게 생각하시지요.”

상석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상민은 신하들에게 되물었다.

“런던에 있는 고려인들이 박해받는가?”

“…아직은 그런 징후가 없다 합니다.”

로열 미스트리스, 정부의 존재란 항상 백성들의 욕받이에 불과했다.

오히려 그들은 문란한 정부보다는 한 번도 관계되지 않았던 머나먼 타국에서 온 왕비가 더욱 동정심이 드는 모양.

이 ‘독살 기도 사건’ 이전 왕비는 전형적인 현모양처형의 조언가이자 백성의 민심까지 살피려는 왕비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왕이 왕비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여론까지 나왔다.

하지만 상덕에게 직접 보고서를 받은 상민은 사건의 전말을 꽤나 자세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골치 아프군.

상민은 이 와중에도 지금 상황이 참 헨리 8세와 그의 첫 아내인 아라곤의 캐서린과 비슷하다 생각했다.

원 역사에서 더 비슷한 경우도 있었겠지만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 장면들이었으니까.

일방적으로 이혼당한 뒤 참다 참다 속이 문드러져 죽어버린 아라곤의 캐서린과는 달리, 고려의 왕비는 혈통에 흐르는 투쟁심만큼이나 일을 직접 해결하려 한 모양이지만 방법과 결과 모두 좋지 못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날 상황은 충분히 이해는 한다만.

유럽의 족속들이란 믿는 종교와 관련 없이 극히 문란하고 음탕하면서도 염치가 없어 얽히고설키는 게 마치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상황.

조금 더 침착했으면 좋았을 텐데.

차라리 그녀가 끝까지 피해자인 비운의 왕비로 남았다면 고려는 대놓고 강력한 압력을 넣었을 수 있었겠지.

에드워드 4세가 사람이라면 그런 정치적 압박에 어느 정도 양보를 했을 것이다.

고려와의 국혼을 주장한 자도 바로 그였으니까.

시간을 돌려 그녀를 만류할 수도 없는 노릇.

상민은 군부를 진정시키고는 외교적 서한을 보냈다.

왕비의 신변에 어떠한 불행한 일도 일어나지 않길 원한다는 짤막한 답신은 꽤나 무거운 무게를 싣고 런던으로 되돌아갔다.

에드워드 4세는 이후 당장은 고려와 대적하는 것은 무리라 생각했는지, 왕비의 유폐를 풀었다.

일각에서는 왕이 또 그의 고질병인 아내 죽이기를 시도한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으니 어떤 인명피해도 없었다는 것이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상황은 진정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서늘한 바람은 바다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 * *

― 콰광

“지긋지긋한 놈들!”

상선으로 쓰이는 오래된 누범선 동명(東明)호의 선장이 고개를 수그렸다.

대포탄이 그가 있는 선미루의 난간을 부수고 날아갔다.

“발포, 발포하라!”

그러나 선장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호응하여 발포하는 대포는 고작 세 문에 불과했다.

맥없는 포성을 무시한 채, 선박의 최근접까지 붙은 해적들은 백병전을 준비하는 듯 보였다.

동명호는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시기를 놓쳤다.

분명히 저들은 한자동맹의 깃발을 달고 있었지.

그러나 아주 지근거리까지 오더니 보기만 해도 토악질이 나오는 깃발을 올리고는 포탄을 쏘아대었다.

협박을 위해 고안된 깃발.

아주 원초적인 상징인 해골과 기타 여러 가지 문양을 넣은 검은 바탕의 해적기는 상선의 구성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세상에, 비스케이만에서까지 해적질을 하다니.”

요 근래, 해적들이 난동을 부린다는 탓에, 북유럽회사 소속의 배들은 조심에 조심을 하라는 당부를 받았다.

회사의 군용 범선들이 중요 상선들을 호위하고 있었지만 전부 다 그 수혜를 누릴 순 없었다.

긴급한 일로 상행에 나선 동명호와 네 척의 배도 마찬가지.

이들 상선들은 짐을 가득 실은 탓에 둔중했다.

애초에 상선으로 만들어진 배가 해적선을 제대로 잡을 리도 만무했고.

이미 상단 소속 다른 배들은 나포되었고, 기함만이 그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들의 손아귀에 빠진다면 어떤 꼴을 당할지는 명백했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대동양 남부와 지중해 입구를 순찰하는 카나리 함대와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안일했구나.”

그들이 밧줄을 던져 다가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동명호의 선장은 품속에서 짧은 권총을 꺼냈다.

* * *

에드워드 4세의 즉위 이후, 잉글랜드는 빠르게 발전했다.

특히 해양기술 쪽으로.

잉글랜드인들도 고려와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아 대세 선박 갤리온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건조기술 자체야 섬나라 특유의 환경으로 인해 본래 가지고 있었던 기본기도 있었고, 항해 열강이자 동맹인 포르투갈의 지원을 받기도 했었으니 런던에 정박한 고려 상선의 모습을 보고 그것을 따라 건조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요크가와 예전 가톨릭 교회들의 재산을 몰수한 에드워드 4세는 대양으로 진출하기 위한 그의 야망을 실현시키고자 백방으로 노력했다.

잉글랜드 왕립해군(English Royal Navy)이라 칭해지는 이 함대는 1484년 기준으로 약 스물두 척의 군용 갤리온을 운용할 수 있었으며 다용도로 쓰이는 작은 상선들을 포함한다면 백 척이 넘는 함대의 규모로 편성되었다.

하지만 이는 잉글랜드라는 크고 한창 성장하고 있는 국가의 규모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다만 단기간에 이보다 더 큰 함대를 건조하는 것은 아무리 귀족에게서 몰수한 재산이 풍족하다 하더라도 국가 재정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는 것이 명백했으니 현실과의 적당한 타협점이라 생각해도 되겠지.

그러나 에드워드 4세는 물러서지 않았다.

바다라는 것은 결국 잉글랜드인으로서 정복해야만 하는 것이고, 그는 그것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었으니까.

왕실 함대의 규모가 적으면, 외부로부터 용병을 고용하면 된다.

바다의 용병, 사략(私掠)선의 개념은 이백 년 전, 헨리 3세 혹은 그 이전부터 존재해왔지만 지금까지 중요한 실체로서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었다.

당시의 무역이란 북해와 지중해 인근에서 이루어지는 연안무역이 전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대양무역의 시대와는 견줄 수 없었다.

따라서 해적의 먹잇감들은 소소했으며 해적들도 강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항해술과 조선술이 발달하며 바닷길이 넓게 펼쳐진 상황.

아득히 머나먼 곳에서 온 재화들은 유럽에 도착했고, 이는 전반적인 무역이 성장하는 동기가 되었다.

덕분에 북해는 마치 살이 잘 오른 청어 떼마냥 커다란 상선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청어 떼들이 많아지면, 그것을 사냥할 포식자도 덩달아서 많아진다.

해적이라는 이 포식자들은 여러 상인과 국가들의 큰 골칫거리였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이 포식자들을 길들여 자신을 위해 봉사하도록 계획을 세웠다.

왕립함대를 보내 흉악한 악명을 떨치기 시작한 북해의 해적들을 토벌한 그는 어느 정도 능력이 검증되고 협상의 여지가 있는 자들에게 비밀리에 손을 내밀었다.

[국가의 이름으로 마땅한 적들을 징벌할 권리를 주노니, 다만 모든 수익의 절반을 짐에게 바쳐라.]

에드워드에게 사략면허장(Letter of Marque)을 받은 포식자들이 본격적으로 바다에 활보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선단과 저지대, 북해의 상단들에겐 악몽의 시작이었다.

처음, 이 사략선단은 눈치를 보았다.

당연하게도 잉글랜드 국왕의 이름으로 사략면허장을 받은 덕에 성 조지의 십자가를 달고 있는 잉글랜드의 선박은 이들의 마수에서 벗어나 있었다.

한 마리의 푸른 용이 그려져 있는 깃발, 즉 고려의 선박기 또한 제외되었다.

이들은 청어라고 보기엔 덩치가 컸다.

비록 그 속에 품고 있는 알은 몹시 먹음직스럽더라도 아직은.

하지만 위법한 짓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사략선단들은 정상적인 상단보다 빠르게 성장하기 마련이다.

한쪽에서 물건을 사고 다른 쪽에서 물건을 파는 이윤은, 그 물건과 물건을 실은 배 모두를 삼켜버리는 이윤보다 적을 수밖에.

심지어 나포된 상선들은 고스란히 해적선으로 둔갑해 버렸다.

더욱이 불행한 것은 그들 해적의 지휘관들이 이미 수없이 많은 추잡한 짓거리를 해 왔던 덕에 무척이나 교활했다는 것.

사략함대에게 크게 당한 이후, 프랑스와 다른 국가들에서도 이러한 함대들이 본격적으로 편성되었지만 역시 원조인 잉글랜드 사략함대의 역량에 비할 수는 없었다.

승천할 시기를 놓친 카스티야도.

북해와 대서양에서 포식자로 군림하게 된 잉글랜드 사략함대들은 심지어 잉글랜드 로열 네이비를 위협할 정도로 엄청나게 강성한 세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아무리 국가의 목줄이 채워졌다 하더라도, 본질은 해적.

이들은 드디어 살이 통통한 물고기에게 마수를 뻗었다.

때마침 에드워드는 고려인 왕비와 크게 틀어진 상황.

왕실의 시선이 사라진 지금 이때가 바로 한탕 할 기회였다.

동명호는 물론이고 북유럽회사와 서유럽회사는 이런 사략해적들의 난동에 큰 타격을 입었다.

북유럽회사의 1485년 마지막 분기의 수익은 작년도 동일 시점의 오 할.

심지어 회사가 가진 선박들도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상덕은 에드워드에게 탄원서를 올렸으나, 회신을 받지 못했다.

* * *

다만 조정과 시중으로부터 지침이 내려졌다.

[모든 고려 국적의 상선은 해적들의 준동에 무제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다.]

위협에 대한 선제적 대응권을 명시한 이 항해조칙은 더 이상 만행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품고 있었다.

에드워드의 사략면허장 발급은 대외적으로 비밀이었겠지만, 두 눈이 멀쩡하게 있다면 이 현상이 모두 누구에게서 나오는지는 알 수 있었으니까.

그와 더불어서 고려는 선단들을 보호할 증원함대를 파견하기로 했다.

약간의 소란이 있었지만, 근위함대의 군함들이 재편성되어 북해로 향했다.

마땅한 해양경쟁자가 없던 시절, 고려는 이미 예전에 편성한 근위함대와 청해함대 이후로는 해군을 굳이 늘리려 하지 않았다.

강제노역이라 볼 수 있는 수병을 확충하는 것부터 거대한 군함을 건조하는 것까지 모두 다 막대한 돈이었으니까.

게다가 그동안 고려는 니카라오 운하에 돈을 쏟아붓고 있었다.

배도 언젠가는 썩는다.

목재가 뒤틀리건 목재와 목재 사이의 뱃밥이 유실되건.

상민이 했던 전략시뮬레이션처럼 한번 배를 뽑아놓으면 천년만년 쓰는 것이 아니란 소리였다.

그 기한은 대충 30년에서 40년.

상당히 긴 세월이기도 했지만, 은근히 짧은 시간이기도 했다.

물론 여건상 백 년이 넘게 부려 먹히는 배들도 상당히 많았지만, 적어도 대양에 나가진 못했다.

해상십자군 직전, 대양패권을 한창 노리고 있던 고려는 15세기의 초중반에 거대한 함대를 증축해놓았다.

덕분에 해상십자군은 원활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오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 이 시점, 이 군함들은 꽤 많이 노후화되어 있었다.

조정에서 함대 증설 분야가 확충된 예산안이 상신되었지만 실제로 결과물이 바다에 떠다니기까지는 적어도 3년은 필요할 것이다.

그전까지 저 늙은 배들이 고생을 좀 할 수밖에.

카스티야인들은 고려의 함대를 일컬어 이 세상의 적수가 없다(Armada Invencible)라고 말했었지.

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고려의 무적함대가 대동양을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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