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2)
현 서아프리카, 그리고 남아프리카의 해안에는 해적이 활개 치고 있었다.
포르투갈의 대양장악력은 고려에 비해선 아직 미흡했다.
이들 해적은 서아프리카 해안에 숨어 있다가 희망곶을 돌아오는 포르투갈 교역상들을 기습하여 부를 뺏었다.
플랜테이션에서부터 물자를 옮기는 상선들을 습격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고려의 상선을 공격하기도 했다.
덕분에 그 핑계로 고려 남아프리카회사는 무장을 충실히 갖추었다.
백병전과 포격전 모두 튼실히 대비한 고려의 상선들은 저게 상선인지 군선인지 헷갈릴 정도.
주요 무역항이자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최중요 거점인 희망곶에 들어오는 고려의 상선들을 바라보는 포르투갈인들의 얼굴에는 약간의 불안감이 떠올랐다.
이곳 해안 포대들은 이미 충분히 보강되어 함대로 공격하기엔 여러모로 불리함이 많겠지만 바다의 몽골, 고려인들이 무서운 것은 아직 여전했다.
그러나 조약으로 인해 그들의 입항을 허락할 수밖에 없는 포르투갈인들은 고려인들이 하선하는 것을 멀뚱히 바라보아야만 했다.
고려인들이 범선에서 우르르 나왔다.
역시 그들 또한 뱃사람은 뱃사람인 모양.
긴 항해에 몸이 뻐근한지 선원들은 교역은 내팽개치고 일단 갈증부터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주점이 어디요?”
“…저기, 총독관저로 가는 길을 계속 가다 보면….”
포르투갈 병사에게 대답을 들은 고려인 선원들이 미소 지으며 주점으로 움직였다.
고려식으로 지어진 꽤나 정겨운 건물은 포르투갈인들의 방식대로 개조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랑했다.
거리 전부가 다 이국적이었으며 이색적이었다.
맥주와 당밀주(럼주) 그리고 안주들을 펼쳐놓고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선원들 틈에는 그저 물만을 홀짝이는 몇 명의 사내들이 있었다.
거친 뱃사람들도 머리에 깊게 후드를 쓴 사내들 앞에서는 차마 술을 권하진 못했다.
‘남자라면 독주를 벌컥벌컥 들이킬 줄 알아야지!’
라고 호탕한 척을 했다가는, 멱살이 잡힌 채로 배에 돌아가서 갑판 위에 거꾸로 매달리게 될지 몰랐다.
― 우하하!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고려인 선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스꽝스럽게 노래를 불러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만종 승려가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려인들을 바라보는 경계의 눈초리는 선원들의 일상적인 행동(술에 질펀하게 취하는 것)에 이미 많이 풀려 있었다.
포르투갈어를 잘하는 어린 선원이 그의 옆을 따랐다.
승려는 주점의 주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내 하나 여쭘세.”
― 탁.
승려가 아닌 어린 선원이 품에서 은전 세 개를 꺼내 탁상에 올려놓았다.
주점 주인이 침을 삼키고는 손을 뻗었다.
“예, 말씀만 하시지요.”
통역으로도 느껴지는 다급함에 승려가 빙긋 미소 지었다.
“요즘 들리는 소문 같은 것 없는가?”
주점의 주인이란, 소문의 전달자이며 수집가이기도 했다.
바닷일에 관해서 이들이 모르는 것은 별로 없었다.
게다가 희망곶에서 선원들을 떼로 들일 만큼 규모가 크고 제대로 된 주점이 사실상 이곳밖에 없었기에 더욱더 그러했다.
지적 호기심이 많은 자인 모양이다.
주점 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나불대었다.
“어떤 소문을 들려드릴까요? 무시무시한 유령선? 바다괴물?”
“그런 것 말고.”
“아, 탐험가이신 모양이군요! 미지의 남방대륙에 관한 소문도 흥미롭지요. 게다가 요즘 한창 아틀란티스와 고려의 상관관ㄱ….”
“…흐음?”
여관주인은 남자의 허리춤에서 절그럭거리는 둔기들을 보고는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다물었다.
소문의 주체인 고려인 앞에서 이상한 소리라니.
하지만 승려는 별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아니, 그런 것보다 확실히 증명된 것. 그래, 이 근방에 사는 원주민들 같은 이야기로 부탁함세.”
― 잘그락
이번에는 주점 주인의 앞에 더 많은 은화가 놓였다.
희망곶에서 교역과 보급을 완료한 고려인들은 다시금 서쪽으로 떠났다.
동쪽에는 무관심해 보인다.
포르투갈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인도로 가는 항로는 고려의 등장 이후 예전만큼 엄청나게 중요하진 않았지만, 적법한 포르투갈의 권리였으며 주요한 돈줄이었다.
그러나 포르투갈인들은 돌아가는 길, 고려 상선에 탄 인원이 줄어들었다는 것까진 눈치채지 못했다.
선단에 낀 조그마한 협저선 한 척이 사라진 것도.
* * *
남아프리카의 동쪽.
넓고 황량하며 거친 이 대지를 먹여 살리는 위대한 잠베지강 상류 고원에는 쇼나족이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은 이 거친 고원에서도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다.
무타파 제국(Empire of Mutapa)이라는.
1430년, 위대한 므웨네(왕) 니아심바 무토타는 돌의 도시(그레이트 짐바브웨)에서 떨어져 나와 그만의 왕국을 북쪽에 세웠다.
소금을 발견하며 내정을 다지고 그 기반으로 여러 정복전쟁과 복속정책으로 주변의 많은 부족들을 정복하게 된 니아심바는 잠베지강 유역에 강대한 국가를 세우고는 마침내 영면에 들었다.
1450년, 그의 아들 니아네웨 무토페는 니아심바의 유산 아래 무타파 왕국을 더욱 번영하게 했으며, 인도양 부근으로 진출하는 것에 성공했다.
무타파의 군대는 강력하여 짐바브웨 고원 주변 남아프리카의 부족국가들은 스스로 제국의 통제 아래에 복속되길 희망했다.
심지어 예전 그들이 떨어져나온 짐바브웨까지도.
두 위대한 므웨네의 치세에 거대한 영역과 수많은 부족들이 손에 들어왔으니 무타파는 정녕 남아프리카의 제국이라 칭할 수 있었다.
1480년 니아네웨의 아들, 니아후마 무콤베로가 므웨네의 지위에 올랐다.
하지만 무타파 제국의 역경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무타파는 강대했으나 어디까지나 남아프리카에 한해서였다.
북동쪽 해안가에서는 무타파만큼이나 강대한, 혹은 더 강대할 수도 있는 킬와 술탄국(Kilwa Sultanate)이 해안가를 따라 남하하고 있었다.
이 지긋지긋한 스와힐리 이슬람인들은 사악한 종교를 들이밀며 북쪽에서부터 내려왔으며 무타파의 해안도시인 소팔라를 점령했다.
그 이후에도 몇 번 부딪히기도 했고 그때마다 많은 쇼나족 전사들이 죽어 나갔다.
영원한 무타파의 숙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지금 킬와는 사이드 이븐 알 하산 술탄의 죽음 이후 정치적 혼란기에 빠져 있었기에 젊은 니아후마가 맞닥뜨린 당장의 근심거리는 아니었다.
니아후마의 현 근심거리는 새롭게 생겨난 적에 의해 기원했다.
바다 너머에서 보이는 이상한 놈들.
흰 피부의 놈들은 요란하고 무시무시한 무기를 쏘며 쇼나족을 죽여대었다.
정말 피도 눈물도 없이 무자비하게.
킬와 술탄국은 그래도 협상의 여지라도 있었지만, 이들은 마치 짐승처럼 쇼나족을 학살하고 마을을 불태우며 사람들을 납치해갔다.
소팔라를 킬와에게 빼앗기고 그 남쪽, 사비(Sabi)강의 해안가에 살던 무타파인들은 큰 곤경을 겪었다.
그들은 죽거나 혹은 모든 것을 버리고 내륙 지방으로 도망쳐와야 했다.
흰 피부의 사람들이 벌이는 행각에 니아후마는 크게 분노했지만, 킬와의 침략과는 다르게 이번엔 어떤 저항의 여지조차 없었다.
전사들을 모아 공격을 시도해도, 그들은 미련 없이 바다로 도망갔다.
포르투갈의 철기와 그들의 철기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화약도 마찬가지.
게다가 포르투갈은 딱히 이들을 정복해 개척지를 만드는 것보다는 주변에 작은 해안거점을 마련해 대인도무역을 원활하게 하는 목적만 있었으니까.
겸사겸사 노예를 잡아다 팔면 소소하게 돈이 되기도 했고.
내적인 문제도 컸다.
니아후마는 위대한 선조들을 본받아 명석하고 재능 넘치는 젊은이였지만 그의 역량으로도 주변 환경은 통제할 수가 없었다.
짐바브웨 고원은 한창 가뭄이 들고 있었다.
자연재해란 세상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만큼, 독특한 현상은 아니었지만 아직 무타파의 문명 수준으로는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광대해진 영토와 많은 부족에 비해 농업기술은 여전히 발달되지 않았다.
파종법과 비료를 쓰는 법, 그리고 작물들까지.
정치 제도 또한 마찬가지.
이들의 토속종교 무와리 신앙은 제(祭)와 정(政)이 분화되지 못하고 일치되어 있어, 므웨네가 대제사장의 위치를 겸하고 있었다.
교리는 그들의 언어로도 정확히 적힌 바가 없었고, 항상 때에 맞추어 위대한 예언자를 통해 계시를 받는 것 정도에 불과했다.
주먹구구식 토속종교.
당연하게도 북쪽에서의 이슬람 세력의 침입과 바다에서의 기독교 세력의 침입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대제사장의 권위는 항상 도전받았으며, 쇼나족을 이루는 다섯 부족들은 항상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었다.
대제사장이자 므웨네인 니아후마는 항상 답답함을 느꼈으나 해결방안을 떠올리지 못하고 계속 외부의 침입에 골머리를 썩여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잠베지강 유역을 순찰하고 있던 무타파 전사들이 포로들 너덧 명을 끌고 왔다.
오랜만의 업적이었다.
흰 피부의 사람들은 그들의 사악함만큼이나 교활하고 비겁하여 잡기 무척이나 힘들었다.
게다가 잡힌 이후에는 끔찍할 정도로 복수를 해 왔다.
그 자신들이 이 땅을 넘보는 침략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런 이들이 이렇게 쉽게 잡힌다?
무언가 이상할 따름.
니아후마는 이 포로들을 직접 만나기로 결정했다.
아마 별다른 일이 없으면 이들은 그동안 쌓이고 쌓인 쇼나족의 분노를 풀기 위해 처형당할 것이었다.
그것이 니아후마와 만종 승려들의 첫 만남이었다.
* * *
어떠한 개종이건,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만종 승려들은 소수였고, 굳이 싸우려 들지 않았으니까.
만종 승려들은 포르투갈인들과 명백하게 다른 외모를 지닌 덕에 그 자리에서 즉시 처형되진 않았지만 포로로서 박해를 받았다.
몇 명은 그 포로 생활 동안에 풍토병 등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러나 무승들은 여전히 인내심이 강했다.
북려에서 진행된 시중의 동화정책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던 것일까.
이들은 처음엔 굳이 자신들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랑비에 옷이 젖듯, 이들은 서서히 무승들에게 매료되고 있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이 승려들은 몹시 경건하였으며 검소하였고 강인했다.
그리고 마치 쇼나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자신의 행복인 듯 행동하였다.
쇼나족의 전사들은 무승들의 무기술과 그것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강력함에 매료되었다.
이미 무타파 제국은 철기 문명에 진입한 국가.
그러나 여전히 이들의 활과 창, 그리고 원거리 무기들은 고려와 유럽에 비해 몹시 낙후되었었다.
한층 진보된 궁과 석궁을 만드는 법, 투창을 던지는 방법, 그리고 여러 가지 전술들이 전수되었다.
농부들은 직접 자신이 먹을 작물을 기르는 것도 수련의 일종으로 삼았던 무승들의 지식에 매료되었다.
대지의 지력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방법, 즉 인분을 이용한 시비법과 윤작이 전래되었다.
무타파 인들이 가지고 있는 소를 이용한 우경 그리고 깊이갈이 또한 더욱 진보되었다.
그리고 니아후마 므웨네 그 자신도 이들에게 매료되었다.
계기는 간단했다.
만종 승려들이 포로 생활을 하던 도중, 다시금 포르투갈의 함대가 소팔라를 공격했다.
쇼나족들은 처음에는 킬와인들이 포르투갈인들에게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며 비웃었으나, 포르투갈의 총은 그들에게도 겨누어지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개척사업을 벌이려는 모양인지 그들은 이번에 잠베지강의 깊숙한 곳까지 정벌대를 보내었다.
조금씩 조금씩 원주민들을 내몰아 소팔라를 완전 점령하겠다는 의지.
하지만 포르투갈인들은 처음으로 원주민들의 조직적인 저항을 맛보았다.
평상시대로라면 총성의 폭음과 연기에 놀라 사방으로 달아나야 할 이들은 오히려 더 근접해 활과 창을 던져대었다.
갑옷이 단단하다면 무거운 돌과 그물을 던지기도 했다.
야음을 틈타 강에 떠 있는 자그마한 범선에 대한 공격을 시도하기도 했다.
무성한 나무 위에서, 억센 수풀 속에서도 심지어 땅굴 안에서까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끈질기고 집요한 저항에 포르투갈인들은 치를 떨면서 도망가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통합이 보인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새로운 체계로의 발돋움이.
니아후마는 충분히 명석했다.
그 또한 팽창하는 국가의 내면적 욕구를 이전부터 눈치채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원수였던 킬와의 이슬람을 거부하고 있었다.
아직까진 포르투갈과 가톨릭의 선교사들이 이 땅에 발을 디디진 않았지만 이들은 더욱더 거부당할 것이 분명했고.
하지만 만종의 승려들은 가장 중요한 첫 단추를 잘 끼웠다.
그리고 가장 강력하며 절실한 감정을 잘 이용하기도 했다.
― 우리의 신성한 땅을 짓밟고 우리의 가족을 학살하는 침략자에게 저항하라.
니아후마는 결단을 내렸다.
김원종(법흥왕)이 이차돈에게 영향을 받아 불교를 받아들였듯.
강 위에 둥둥 떠다니는 흰 피부의 시체들을 바라보던 니아후마가 마침내 무승들에게 만종의 예법에 따라 합장했다.
호국불교가 마침내 아프리카의 대지에 뿌리를 내렸다.
그들의 신 무와리는 이제 다른 말로 부처라 해석될 수 있을 것이었다.
다만 이차돈의 사례와 다른 점이 있다면.
피를 흘리는 자들은 선교승들이 아닌, 저들, 흰 피부의 포르투갈인들이라는 점이겠지.
한 쇼나족 전사가 니아후마와 만종 승려들을 보고 크게 외쳤다.
“무타파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