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공
새로운 시대, 새로운 신분.
그러나 여전히 비슷한 시중의 생활.
이제는 정말 비어버린 부부의 침실.
정녕당을 감싸는 을씨년스러운 고요함.
아내들은 하늘로 타계하더라도, 자신은 그리하지 못한다.
영원토록 이 굴레와 의무에 속박된 존재.
그러나 상민과 해광을 비롯한 지난날의 황제들은 몹시 잘 알고 있었다.
상민은 언제든지 그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능력과 권리, 그리고 자금까지 있다는 것을.
그러니 불평하지 말라.
‘돈이라도 많이 안 벌었으면 억울했겠지.’
상민은 그나마 아주 약간은 만족스러웠다.
자신만이 들어갈 수 있는 창고에는 수만 가지 재화들이 쌓여 있다.
이곳저곳에 쓰기 위해 가끔은 그 황금들이 비워질 때가 있었지만 그것들은 다시금 더욱 거대한 재화의 마중물이 되었다.
이제는 마치 폭포수처럼 압도적인 부가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진의 영정?
중원을 지배했다던 영정이라 하더라도, 감히 자신에게 비할 수는 없었다.
가짜는 진짜를 이기지 못하는 법.
게다가 자신의 금화에는 자신의 백성들의 피는 묻어있지 않았다.
‘크흠.’
신교도와 구교도의 피는 조금 묻어있는 것 같긴 하군.
이렇게 노예처럼 일해 번 돈을 어디에 쓰느냐?
시중처럼 쓴다는 거지.
집무실의 책상에는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 두 부가 올라와 있었다.
턱 밑에 깍지를 끼고, 오직 눈동자만을 움직여 그 내용을 훑어본 상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 각지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또 자라나는 제국주의자 꿈나무들을 엿 먹이기 위해.
‘사실 고려가 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것이 더욱 노골적인 표현이겠지.
그래서 첫 번째 서류에 직인을 찍는 것은 몹시 빨랐다.
― 쿵
그러나 두 번째는 쉽지 않았다.
직인을 손에 쥔 상태로 그는 긴 생각에 빠졌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걸까.’
에드워드 4세는 고려에 더없이 친근한 기조를 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아내인 앤 네빌을 내치고 고려 황실과 정략혼을 할 계획까지 있는 모양.
사상 처음으로 유럽의 왕실과 혈연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 상민은 무척이나 고심했다.
“…….”
고려 역시도 제안을 받아들일 동기는 분명했다.
브리튼 제도는 전략적으로 가치가 풍부했고, 잉글랜드의 존재도 마찬가지였다.
정략혼은 그동안의 유럽인이 해왔던 외교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정말로 고려에 우호적이라고 보이는 제스쳐이며, 진지하게 동맹을 꾀하고 있다는 말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카스티야와는 경우가 아예 달랐다.
고려는 미인계를 써 후안 2세의 후사를 강제로 잇도록 했다.
덕분에 이사벨의 탄생은 없었고 그 자리를 사생아가 대신했으니 아라곤과의 결혼동맹은 일어나지 않았지.
하지만 후안 2세와 일개 시녀 사이에서 탄생한 현 왕 후안 3세는 사생아왕이라는 자신의 별칭을 너무나도 싫어한 나머지, 고려와는 계속 거리를 두고 있었다.
상민은 카스티야와 고려가 정말 가까워지기는 사실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긴 했다.
쥐어 팬 후 조차지라는 명목으로 땅을 빼앗아놓고 좋은 관계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
게다가 이베리아반도는 레콩키스타를 하면서 뿌리부터 확고한 가톨릭을 믿고 있으니까.
앞으로 50년이 더 흐른다면, 조차지 카디스를 다시금 돌려줘야 할지도.
경계심이 들지는 않았다.
파먹을 신대륙이 없는 카스티야, 혹은 아라곤은 하나도 무섭지 않은 나라였기 때문에.
그들은 이미 시간을 놓쳤고, 고려는 시간을 벌었다.
그러나 그렇게 따지자면 잉글랜드도 마찬가지 아니야?
‘게다가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먼저 미워하는 것이니.’
자신이 잉글랜드에게 느끼는 개인적인 분노나 불신의 감정은 차치하고 본다면 국가적 입장에서 새로운 우호국이란 나쁘지 않았다.
적당한 방계 황실 여인이 정략결혼의 희생자로 낙점되었다.
서류 밑에는 서신에 동봉될 초상화가 둘둘 말려 있었다.
그것을 펼쳐본 상민은 씁쓸하게 웃었다.
‘윤암후의 여식이라 했었지.’
미남(자신을 포함한)들과 미녀들의 후손답게 윤암후의 여식 또한 상당히 출중한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꽃다울 나이. 스물.
외국으로 마치 팔려가듯 떠날 처지에 상민은 내심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이 특권을 누린다면, 의무도 지어야 하는 법.’
그러나 상민은 매번 기회를 주었다.
황실이 주선하는 결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가진 신분을 내려놓고 일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그러면 충분히 좋은 인연과 알아서 살아갈 수 있었다.
만약 계속 특권을 누리며 일반 백성이 되기 싫다면, 황가의 명에 따르면 된다.
상민은 쿵, 직인을 찍었다.
* * *
고려의 답신을 받은 에드워드 4세는 환하게 웃었다.
초상화에 그려진 여인의 미모가 빼어나서였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가 더 컸다.
정치적 불협화음 때문에 아내인 앤 네빌과 장인을 숙청하려고 마음먹은 지금 더 강력한 처가는 필수적이었다.
강력하면서도 그렇게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
반감을 품을만한 대귀족들은 모두 땅에 묻힌 상황.
게다가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개종문제도 허락한다는 답변을 받으니 에드워드 4세는 뛰어오를 듯 기뻐했다.
새 아내가 오기 전, 서둘러 전 아내와 장인을 참수한 그는 두 팔 벌려 고려의 선단과 지참금을 맞이했다.
상업용으로 개조된 거대한 중범선들이 항구로 들어오자 잉글랜드인들은 놀라서 까무러칠 뻔했다.
현시점, 고려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조선술이 발달한 나라는 당연히 이베리아의 국가들.
이에 비해서도 아직은 항해기술과 조선기술 모두가 부족했던 잉글랜드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이라서 더욱 큰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를 것이다.
사방이 바다로 막혀있는 브리튼 제도.
그들은 무조건적으로 바다에 나아가야 하는 운명이었으니까.
템즈강은 귀족과 평민 할 것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화가들은 서둘러 캔버스에 눈앞의 풍경을 그렸으며 시인들도 그 광경을 노래했다.
거대한 중범선에서 내려오는 고려의 황족과 그녀의 수행원들이란.
그녀가 쓰고 있는 우아한 몽수와 알파카 모직물로 만든 의복, 질 좋은 고려산 면포로 된 의복 그 전부가 엄청난 동경을 받았다.
해광은 외국과의 국혼이 고려의 위신과 결부되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꽤 넉넉히 지참금을 동봉했다.
상자마다 호화로운 자기와 옥, 금은보화, 그리고 이국적인 갑주들과 번쩍이는 명검들이 들어차 있었다.
이는 황제의 은혜이며, 황제의 경고였다.
에드워드 4세 또한 그것을 어느 정도 눈치챘다.
그는 현시대 명실상부하게 대서양의 패권을 쥐고 있는 고려와 적대하는 것보다는 그 뒤를 바짝 쫓아갈 수 있도록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하기로 했다.
북유럽회사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이 얼마나 달달한데.
기회를 노리다 보면 적당한 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호사스러운 선물과 이국적인 미녀에 내전에서 살아남은 귀족들은 그를 부러워했고, 런던의 사교계는 한동안 들썩였다.
부부의 금슬은 시작부터 좋아 보였다.
* * *
개천 205년(CE1480).
착공한 지 삼십 년, 니카라오 호수 서쪽에는 오십 리에 달하는 길고 깊은 계곡이 생겨났다.
정말 한 땀 한 땀 사람이 전부 파낸.
이 공사를 위해 정확히 27만 4천 명의 아즈텍인 포로와 8만 명의 마야인 노동자들, 1만 명의 고려인 기술자들이 투입되었다.
아즈텍인들은 택주에서 계속 건너왔으며, 고려는 작업이 궤도에 오르자 마야인들에게 봉급을 주고 인력을 사 왔다.
사망한 자는 전부 합쳐서 3만 명.
학질이야 키닌을 계속 공급해주면 많은 효험을 볼 수 있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병명은 황열이었다.
노동의 강도 자체는 힘들지 않았지만, 모기는 끊임없이 사람을 괴롭혔다.
그 이유는 진작부터 알고 있더라도 힘든 건 여전했다.
모든 웅덩이라는 웅덩이는 전부 메우고 모기장을 보급하고, 유럽에서 박하(페퍼민트)를 들여와 온몸에 칠하고 다녀도 물릴 사람은 물렸고 죽을 사람은 죽었다.
고려는 이런 인명피해에도 불구하고 우직하게 공사를 진행했다.
반대의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그럴 때마다 상민은 항상 예시를 들었다.
“수의 양광은 8년 만에 중원을 관통하는 운하를 만들었소. 기술력도 앞서고 자본도 많으며 시간도 여유로운 우리가 고작 오십 리의 운하를 만들지 못하는 것은 세계가 비웃을 것이오.”
결국 그 탓에 나라를 말아먹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수양제의 대운하 덕분에 중원은 하나의 단일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다지게 되었지.
8년 동안 1억 5천 명을 투입하여 2,700km를 파버린 미치광이에 비해서 30년 동안 30만 명으로 20km를 파겠다는 발상은 실로 양반이었다.
그렇다고 재정적인 어려움이 아예 없었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온갖 사방에 개척지들을 뿌려놓은 고려였으니까.
개척지는 자립하기 전까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돈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북려 원주민에 대한 온화한 동화정책은 자본을 요구하기 마련.
오히려 돈을 빨아먹는 하마였으면 하마였던 것이다.
상민도 많은 사재를 풀긴 했지만 국책사업을 개인의 재화로 온전히 버티는 것도 무리였고 이치에 맞지도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타완틴수유가 안정화되고, 유럽과의 무역이 거듭하여 흑자를 보자 숨통이 트였다.
게다가 공사 후반기에 조정은 농민에게 부담을 지우는 증세를 하는 대신, 국채를 발행했다.
주식거래소에 처음으로 도입한 국채(国債, 국가의 채권)는 북유럽회사와 서유럽회사의 이윤으로 다시금 회수되고 있었다.
국가 재정과 공사 자본은 운하 건설 기간 동안 나름대로 건전하게 유지되어 왔던 것.
어차피 상민은 남는 것이 시간이었으니 조급하게 독촉하지도 않았다.
삼십 년이라는 넉넉한 공사 기간과 풍부한 화약도 있었던 고려는 마침내 대공사의 마지막 단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 * *
침니(沈泥) 현상을 최대한 막기 위해 견회(堅灰, 시멘트)를 바른 운하의 밑바닥이 쭉 펼쳐진 곳, 아주 얇은 땅 너머, 태평양의 바닷물이 찰랑거렸다.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이 흘렀는가.
그러나 아직 축배를 들기에는 이르다.
노동자들과 인부들, 그리고 포로들은 모두 멀리 시선을 두었다.
갑문(閘門).
해수면과 해발고도가 높은 곳을 연결하기 위한 니카라오 운하의 가장 중요한 핵심시설.
개념 자체는 송나라 시절부터 있었지만, 이렇게 큰 규모로 만드는 것은 실로 처음이었다.
고려는 가진 모든 기술력을 총동원하여 대양과 호수를 잇는 운하에 거대한 갑문을 만들어내었고 이제는 그것이 시험대에 올랐다.
‘물이 없을 때에는 잘 작동한다.’
갑문과 수문의 원활한 작동을 확인한 기술자 한 명이 고함을 질렀다.
“폭파!”
도화선에 불이 번져 나갔다.
그 끝에는 실로 엄청난 양의 폭발물들이 땅에 파묻혀 있었다.
― 콰앙
흑색화약은 사실 폭발물로써 영 시원치 않았다.
아무리 겹겹이 폭발물을 쌓아 올려놓더라도.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에는 충분했지만 니트로글리세린 같은 것과 비교해보면 말이지.
그러나 이미 얇은 땅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바닷물의 수압은 실로 어마어마해서, 대지에 가해지는 작은 충격에도 화답했다.
약간의 시간차로, 흙 방벽이 무너지고는 그 사이로 거센 물이 쏟아져 내려왔다.
다행스럽게도 천연 흙벽은 느릿하게 무너져, 갑문에 직접적으로 거센 충격을 주지 않았다.
반대편에서도 호수의 물이 내려온 모양.
갑문과 갑문 사이, 긴 운하에 마침내 물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확인해보게.”
충격을 안 받았다뿐이지, 일정한 수압을 견뎌내고 있는 것은 분명했기에 기술자는 침을 삼키며 작동을 지시했다.
아직은 인력으로 열어야 했기에 노동자들이 달려가 끙끙대며 도르래를 당겼다.
“수문은 원활하게 열고 닫힙니다!”
작은 수문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고, 갑문과 갑문 사이의 수위가 조절되는 것을 긴 시간에 걸쳐 확인한 기술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은 갑문!”
더욱 거대한 크기의 갑문.
그러나 인부들은 이제 직접 뛰어가진 않았다.
양옆, 사슬로 이어진 괴상하고 거대한 기구가 눈에 띄었다.
그 옆, 석탄을 한창 집어넣고 있는 인부들을 부리는 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했다.
“작동시켜라!”
증기기관은 강력한 힘을 꿋꿋하게 투사했다.
수많은 도르래에 연결된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갑문은 우르릉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활짝 열렸다.
바다와 운하를 연결시키는 모든 작업이 완료되자 사방은 환호 소리로 가득했다.
“고려제국 만세!”
대양과 대양을 잇는 거대한 불가사의.
인류 근대문명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문화재이자 유적인 니카라오 운하가 완공되었다.
[작가의 말]
현 15세기 말, 초창기의 증기기관은 효율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실 역사에서도 제임스 와트의 혁신 이전에는 캐는 석탄보다 증기기관으로 낭비되는 석탄이 더 많다는 말도 떠돌았으니까요.
차츰 개량되겠지만 여전히 시간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