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158화 (158/653)

동래미

지축을 흔드는 말발굽 소리.

갑주를 갖춰 입은 중기병들이 대지를 저속으로 달리고 있었다.

아차팔라야 습지를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북으로 조금 돌아가는 길을 택한 장다름들은 꽤나 민첩하게 움직였다.

고려 본국에서 말을 더 보급받아 한 명당 말 두 필을 끌고 가는 방법을 택한 그들은 말이 갑주를 입은 기수에 지쳐갈 때쯤 다시 갈아타면서 움직이는 과트라체식 이동을 택했다.

평원 부족 동맹은 조용하다.

아무리 그들이라도 이 대규모의 인원에게 덤비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고려 또한 언제든지 땅을 버리고 도망칠 수 있는 자들에게 굳이 중기병을 보내진 않았다.

약 삼백 명의 인원들은 그렇게 아즈텍의 시선을 피해 우회하며 적들의 땅에 들어갔다.

카도계 원주민출신 길잡이들도 제법 능숙하게 이들을 안내했다.

“흐음….”

에티엔은 뒤에서 말을 타고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장다름들은 수가 확 증가했다.

물론 이번에 들어온 자들은 프랑스 출신 귀화인들이 아닌 경기병대에서 차출한 체격 좋고 용감한 과트라체 고려인들이었다.

‘기마술의 숙련도를 따로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 큰 장점이군.’

이미 말을 능숙하게 다루었기에, 카우치드 랜스(기병창 돌격전술)와 중갑, 돌격에 대한 교육을 하면 된다.

물론 엄중한 군기와 옆의 전우를 믿는 마음가짐, 한 몸처럼 적에게 파고들어야 하는 대형을 유지하는 것도 만만치는 않았기에 교육 기간은 꽤나 길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프랑스 장다름들과 과트라체들은 상민의 조급증 덕에 만들어진 극악무도한 기초체력 트레이닝 플랜에 맞춰 다 같이 개고생 중이니까.

콧대 높은 귀족(하급 귀족 출신이라도 귀족은 귀족이었다.)으로서 긍지를 지키며 살아왔던 프랑스계 장다름들은 이렇게 피 토할 정도로 운동을 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고, 꽤나 자유분방하게 살아온 과트라체들도 이렇게 빡센 군율에 익숙하지 않았다.

‘에휴.’

그러나 이들의 불만은 그 훈련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하고, 심지어 직접 참여하기도 하는 시중 덕분에 입 밖으로 많이 표출되진 않았다.

물론 에티엔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 불만을 표출했던 프랑스 장다름들이 가끔 있긴 했지만, 다음 날 눈이 새파랗게 멍든 채로 입을 꾹 닫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별반 걱정을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듣기로는 대련을 했다 하던데.

주위의 장다름들은 당사자를 둘러싸고 앉아 대련의 결과에 대해 몹시 궁금해했지만 유일하게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던 에티엔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자 사냥 시간이다!”

육체가 단련돼 가는 것과는 별개로 전술의 완성을 위해서는 실전 경험이 필요했다.

지근거리부터 가속하여 힘을 충분히 받아 적에게 극한의 충격을 선사해 주는 것.

흉흉한 적병들의 시선을 받아내며 직접 창끝에 적의 육신을 꿰는 감각을 익혀야 하는 것.

자칫하면 자신도 죽을 수 있는 순간, 분출되는 심장의 뜨거운 피가 온몸을 전율케 하는 상황에도 창과 옆 전우들과의 간격을 유지하는 것.

먹잇감은 아즈텍인들이었다.

저들의 중심 도시 몬테수마우아칸은 몬테수마강(브라조스강, 고려인들은 임시로 그렇게 불렀다.)의 동쪽에 지어져 있었다.

오만방자하구나.

처음 지리를 선택할 때 방어의 이점을 누릴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지.

물론 몇 번 얻어맞은 후로는 방어시설을 건설하긴 했으나 여전히 준비는 허술하다.

몬테수마우아칸 옆의 농작지에서 작물을 기르고 있는 농부들이 보인다.

― 두두두두

말발굽 소리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크기가 커졌다.

“거창!”

곧 저들이 맞이하게 될 운명이 안타깝지 않느냐고?

글쎄.

이미 에티엔은 물론이고 과트라체인들도 아즈텍인들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을 버린 지 오래였다.

상민조차도.

게다가 저들은 남성들 전부를 군인으로 쓸 수 있는 집단.

저 농부들도 언제든지 포악한 적들로 둔갑할 수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든 기마들은 순식간에 아즈텍 농부의 육신을 박살 냈다.

전면에 마갑까지 한 상태라 말들 또한 두려움 없이 인간들을 짓밟고 지나갔다.

― 콰드득

말발굽이 누군가의 머리통을 밟았는지 으깨지는 소리가 선명하다.

에티엔은 몇 가지 필수적으로 외워야 하는 문장들을 어찌 조합해 더듬거리는 고려어로 고함을 질렀다.

“옆구리에서 창을 떼지 마! 시선은 항상 앞을 본다. 뒤는 응시하지 마라!”

어쩌면 그들은 움직이는 허수아비에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도 이 실전 덕에 신병들은 상당한 경험치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 으아악!

진정한 포식자들에게서 살아남은 자들은 몬테수마우아칸으로 도망쳤으나, 그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한동안 도시 주변에서 방화와 파괴를 일삼던 장다름들은 말이 모두 지치고 아즈텍인들이 대대적인 반격을 위해 집결하는 것이 보이자 한 줌 미련도 없이 퇴각했다.

“가자!”

이미 손맛을 충분히 보기도 했고, 아드레날린이 들끓는 기마돌격을 수십 차례나 실시한 신병들은 거의 그로기 상태에 놓여있었다.

적들의 중기병대가 저 멀리 퇴각하는 것을 바라본 몬테수마는 고함을 지르며 난동을 부렸다.

“저놈들을!”

한 번의 기습으로 강 동쪽의 농작지가 크게 타격을 입었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분노로 몬테수마가 재차 누벨 오를레앙에 대한 공격을 지시하자, 그의 곁에 있던 틀라카텍카틀(장군)들이 만류했다.

“틀라토아니, 부디 노기를 가라앉히시고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십시오.”

아즈텍의 적은 고려뿐만이 아니었다.

평원 부족 동맹이 고려와 적대하기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일단 그들의 제일 목표는 당연하게도 턱 밑에 있는 아즈텍이었으니까.

평원 부족들의 공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아즈텍은 고려에 대한 공격이 불가능했다.

식량도 부족하고, 보급로는 위험하다.

물론 식량이 충분하고 후방이 안전한 최선의 상태에서도 화기를 사용하는 근위군 연대가 주둔한 정앙(누벨 오를레앙)을 박살 내진 못하겠지만.

틀라토아니가 애써 이성을 차리는 것을 본 틀라카텍카틀들 중 한 명이 용기 내어 말했다.

“틀라토아니, 이 몬테수마우아칸이라는 도시는 실로 위험한 지리적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이츠코우아티틀란도 방어시설 증축이 끝났으니 그곳으로 다시금 돌아가시는 게 어떠할는지요.”

제 딴에는 충정이고 현실적인 조언이겠지만, 그는 이 꼬인 왕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도 모자라 아예 속을 뒤집어놓고야 말았다.

몬테수마우아칸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를 포기하라고?

“누가 천도 소리를 내었는가?”

홱, 몬테수마가 그를 노려보았다.

* * *

“그렇게 되었단 말이지?”

장다름들이 무사히 귀환했다.

아즈텍에게 효과적인 공격을 감행한 것도 모자라, 귀환길에 은근슬쩍 그들을 정찰하던 평원 부족 동맹과도 한바탕 접전을 치러 포로 몇 명을 획득하기도 했다.

상민은 그 잡은 포로들을 심문해 질의 운명을 알게 되었다.

“불쌍한 인생이군.”

그 말을 끝으로 상민은 머릿속에서 그의 존재를 지워버렸다.

에티엔도 고개를 저었다.

그와는 항상 사이가 안 좋았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죽었다는 것은 약간 이상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멍청한 녀석. 내 언젠가 네놈의 그런 음흉한 성정이 네놈을 죽음으로 끌고 가리라고 알고 있었지.’

사건의 전말은 시중이 간략하게나마 설명해 줘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에티엔은 시중보다도 더욱 옛 동료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상민은 이번 원정에 나선 중기병들의 전훈을 치하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화주에서 머물던 정북행성의 관리들을 불러들였다.

그들의 가족들도 포함해서.

이제부턴 본격적인 개척 사업을 진행해야 했다.

상민은 관리들과 무장들이 전부 모인 상태에서 정북행성의 건설을 결정했다.

“예에?”

그리고 신하들은 모두 놀랐다.

당연스럽게 누벨 오를레앙이 이름만 바뀐 정앙에 정북행성의 본거지를 둘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굳이 조금 더 북서부로 올라가 맨땅에 새롭게 도시와 성곽을 건설하자는 상민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상민은 몹시 단호했다.

“매년 여름마다 남쪽에서 몰려오는 비바람에 고통받을 것인가?”

거대한 비바람이 농작물들을 전부 박살 내는 것을 울면서 바라보게?

누벨 오를레앙, 영어로 하면 뉴올리언스.

미국 남부의 유명한 도시 뉴올리언스 하면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지.

재즈와 이색적인 음식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카트리나(Katrina).

2008년 여름, 뉴올리언스를 비롯한 미국 남부를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의 이름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전에도 뉴올리언스와 멕시코만(마야만)의 도시들은 빈번한 태풍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런 면에서는 창양과 팜파스 지역은 굉장히 좋단 말이야.’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홍수와 가뭄(엘니뇨와 라니냐의 영향으로)이 있긴 했지만, 세상에 그런 재해 없는 땅이 있겠는가?

적어도 그렇게 파괴적인 태풍은 거의 없었다.

자신은 짬밥이 있었다.

맨땅에서 대도시를 건설한 적이 한두 번인가.

개척지의 여러 지역에 직접 다녀보기도 한 상민은 이미 거대도시가 요구하는 여러 조건들을 상당히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이제는 지리적 여건 말고도 정치적 여건까지도 고려 안에 넣을 정도.

“이곳이 좋겠군.”

미시시피강의 본류와 지류가 만나는 곳, 적당한 지형을 찾은 상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부의 원주민들과 우호적 관계를 구축하는 지금, 전략적 방어 대상은 서쪽의 원주민과 아즈텍.

미시시피강은 넓어 강 반대편의 공격자들은 카누를 타고 온다고 해도 한세월이 걸릴 것이다.

강물은 이 지형을 휘감고 돌아, 끝부분에 퇴적 지형을 만들어 나가겠지.

지반은 높고 탄탄하며 안정되고 배수가 좋아 홍수 걱정도 없다.

동부의 배후지 역시 농사를 짓기에 충분한 넓은 벌판이다.

그렇다고 정앙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았다.

언제든지 말을 몰아 재촉한다면 사흘 내로 오갈 수 있는 거리.

물론 이곳도 태풍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애초에 해안도시와는 안정성이 차원이 다를 것이다.

개간지가 침수당할 위험도 없고.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상민에게 같이 말머리를 나란히 한 잔 여왕이 물었다.

“이름은 어떻게 할까요?”

“…동래미(東來美)로 하시지요.”

동쪽에서 온 아름다움인가?

노골적인 공치사일 수도 있겠군.

게다가 특정인의 고향과 같았다.

잔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상민은 간단하게 얻은 호감도에 내심 흡족하게 얼굴을 끄덕였다.

앙주도 그렇고 동래미도 그렇고.

이름 짓는 센스도 없었고 짓기도 귀찮았다는 것은 비밀이다.

“여기가 이 땅, 북려의 중심지가 될 것이오.”

상민도 예전에 생각해놓은 자리들이 있었다.

뉴욕과 워싱턴, 그리고 보스턴 등의 위치.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상당히 유럽 중심적인 입지였다.

유럽과 신대륙을 오고 가기엔 동부가 가장 편리한 땅일 테니까.

하지만 고려에겐 딱히 해당 사항이 없었다.

물론 미 동부는 녹음이 푸르른 살기가 좋은 곳이다.

그러나 오히려 곡물을 경작하기에는 중앙의 대평원이 더욱 넓고 좋았고, 아직도 연락을 못 하고 있는 서부의 미주까지 고려한다면 북려의 동부는 매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상민은 문득 미주 생각이 났다….

‘그나저나, 미주는 대체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하는 거지?’

정북행성의 관할 3개 주는 미주와 앙주, 화주.

하지만 미주와 앙주는 오가는 길이 실로 험난했다.

일단 평원의 적대적인 원주민 부족들이 있을 것이니까.

그들을 어찌 피했다고 하더라도 절대적 거리는 엄청나게 길었다.

게다가 가는 길은 사막과 비슷한 황무지.

말과 사람이 가다 지쳐 죽겠지.

‘그나마 파남에서 희소식이 들려온 것이 다행이군.’

상민은 명령서를 전달하기 위해, 앙주에서 파남, 파남에서 다시금 미주를 거치는 루트를 짜야 했다.

꽤 오래전부터 개척을 시도한 파남은, 황열과 학질이 난리를 치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온갖 자원을 퍼부으며 유지한 식민지였다.

덕분에 이곳에 대한 지배는 꽤 공고해졌지.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이 시대의 기술력으로 배가 통과할 만한 운하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으음….’

사실 하려는 엄두조차 내지 않아 모르겠다.

막대한 희생이 요구되는 것은 불 보듯 뻔했기에.

운하를 위해서는 땅을 파야 했다.

땅을 파면 구덩이가 생기고, 그 구덩이에 물이 고이면 웅덩이가 된다.

그리고 모기가 환호성을 지르겠지.

세계 2대 운하는 모두 대단한 걸작이지만, 굳이 난이도를 따져 보면 열대우림에 있는 파나마운하가 사막 건조기후에 있는 수에즈운하보다는 훨씬 더 어려운 조건 아래에 있었다.

하지만 고려는 다르게 접근했다.

이 열대우림에 어찌 도로와 역참을 설치한 것이다.

파남을 횡단한다는 개념으로.

흙바닥 길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판단했기에 맨땅에 아주 얇고 낮은 성곽을 건설한다는 개념(고가도로의 원형으로 불리기도 한다)으로 시작된 이 공사를 위해 고려 조정에서 거의 백여 년 동안 돈을 퍼부어야만 했다.

돈뿐만 아니라 여기에 투자한 인력이 실로 얼마였는가.

조정에 반기를 든 반란군, 교화되지 못하는 여러 전쟁포로들.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지.

그래도 땅을 파내 인공 강을 만드는 것보다 땅 위에 도로를 만드는 것이 훨씬 쉬웠다.

구덩이도 없었으니 모기도 덜했다.

따라서 고려가 건설한 이 이백 리 장성도로는 태평양과 대서양의 소식과 물자를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로 기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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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미가 건설될 곳은 구글에서 루이지애나 주립 교도소…가 위치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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