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156화 (156/653)

평원 부족 동맹

웅크린 늑대는 리페인데 부족(리판 아파치 부족) 출신이다.

리페인데 부족 중에서도 그의 씨족은 강(치치멕강) 북쪽에 살았다.

다른 씨족들은 그들을 일컬어 붉은 머리의 씨족(체랄 추타샤 씨족)이라 불렀다.

그 또한 햇빛을 많이 받으면 어쩐지 그의 머리털이 붉게 느껴지기도 했다.

소년에서 성년이 되어 가는 시간, 웅크린 늑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강에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그리고 긴 강 건너편에서 카누를 타고 오는 자들을 마주했다.

그 수가 상당히 많았다.

“누구지?”

옆에 있던 친구가 그의 물음에 고개를 들더니 이윽고 외쳤다.

“체샤 씨족이야!”

“그래?”

체샤 씨족.

이들은 웅크린 늑대의 씨족인 붉은 머리 씨족과는 가장 친했다.

서로 강 건너편에 있지만 혈통적으로도 많이 가까워 결혼도 빈번하게 이뤄졌지.

그중에는 웅크린 늑대와 친한 소년들도 많아, 웅크린 늑대는 저렇게 대대적으로 몰려오는 체샤 씨족을 보며 반가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

하지만 옆에서 소년들을 이끌고 물고기를 잡으러 나온 중년의 남자, 절름발이 수염은 안색이 굳었다.

“저렇게 한꺼번에 많이 건너온다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카누의 숫자는 무척이나 많았다.

통교의 목적으로 온다면 기껏 카누 열 척 정도가 오겠지.

그러나 지금의 광경은 마치 부족 전체가 강을 넘어오는 듯한 모습이었다.

의아함보다도 불안함이 느껴진 절름발이 수염은 서둘러 소년들을 보냈다.

“가서 씨족장께 네가 본 것을 전하거라! 어서!”

웅크린 늑대는 눈치가 빨랐다.

다른 소년들을 이끌고 서둘러 씨족장에게 간 그는 자신이 본 것을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전달했다.

움막 안에서 번쩍이고 날카로운 무언가를 닦고 있던 족장은 웅크린 늑대의 말을 천천히 듣다가 불쑥 말했다.

“…전사들을 불러모아야겠다.”

모인 소년들에게 일거릴 나누어 주는 족장의 행동을 바라보던 웅크린 늑대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족장님, 체샤 씨족이 우리를 공격하는 건가요?”

“그럴 리가 있겠느냐.”

족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네 어머니도 체샤 씨족 출신이잖니. 그들이 우리를 공격하진 않을 거란다. 우린 가족이니까.”

“그렇다면 왜 전사들을 소집하시는 거죠?”

그는 자애로운, 그러나 어딘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그들이 자신의 터전을 버리고 올 정도의 강대한 적이라면….”

씨족장의 얼굴이 조금씩 딱딱하게 굳었다.

남쪽에서 들려오는 소문들.

거대한 공포와 증오의 비구름.

끝도 없이 몰려오는 악의 무리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 * *

치치멕강 이남에 있던 리판 아파치, 체샤 씨족은 강 북쪽으로 도망 왔다.

그들은 친척들, 체랄 추타샤를 비롯한 수많은 리페인데 부족(리판 아파치)의 씨족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본래 수많은 지역에 넓게 펼쳐진 채로 살아오던 리페인데들은 이렇게 한곳으로 모인 경험이 별로 없었다.

체샤 씨족의 도움 요청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씨족들은 거리적, 시간적, 혹은 심리적 이유로 이곳으로 제때 오지 못했다.

치치멕강 하류 인근에 살던 다섯 씨족들은 할 수 없이 그들로만 전사들을 꾸렸다.

그래도 그 수는 굉장했다.

거의 천여 명에 달하는 전사들이 모인 것.

리페인데의 힘을 전부 그러모은다면 그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겠지만.

전사의 나이가 된 자들은 전부 나간 탓에 웅크린 늑대는 졸지에 씨족들의 아녀자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웅크린 늑대는 자신 또한 곧 전사의 나이가 될 테니, 같이 창과 활을 쥘 수 있다고 항변했으나, 씨족장에게 제지당했다.

“네 명석함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니, 너만이 우리의 가족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무기를 들 수 있는 성인 남성은 전부 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웅크린 늑대는 어차피 이 한 번의 전투가 그들 씨족들, 아니 부족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전쟁에 나선 전사들의 심리적 안온함을 위해서라도 가족들을 살뜰히 챙기리라고 다짐했다.

시간이 지났다.

흐른 시간만큼 초조함도 갈수록 증폭되고 있었다.

분명히 어른들이 창과 활을 움켜쥐고 강으로 간 지 이틀이 흘렀는데.

어떠한 소식도 전해져 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처음으로 자신의 판단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느낀 웅크린 늑대는 일단 가족들을 북쪽으로 더 대피시키고 자신과 몸이 날랜 소년들만 밑으로 내려가 정찰을 시도했다.

멀리서 보는 것이라면 괜찮겠지.

전투가 벌어질 곳은 아마 유난히 넓은 강둑, 그곳일 것이다.

그러나 웅크린 늑대와 소년들이 그 넓은 강둑에 도착해서 본 것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한 광경이었다.

추장의 목이 장대에 걸려있었다.

절름발이 수염도, 그리고 다른 전사들도 전부.

수없이 많은 리페인데 전사들의 목이 가로로 눕힌 장대에 걸려 있었다.

― 으하하하!

환호성이 어딘가에서 터져 나왔다.

절망스러운 얼굴을 한 살아남은 부족의 전사가 큰 원형 나무 제단 위에 눕혀졌다.

이윽고 펼쳐지는 끔찍한 광경.

핏물이 튀고 다시 한번 큰 환호성이 들린다.

“…….”

우웨엑.

그 광경을 전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소년들은 이윽고 숨죽여 토악질을 해야만 했다.

* * *

웅크린 늑대와 소년들은 어머니와 누나들, 그리고 동생들을 이끌고 평생 살아가리라 생각했던 삶의 터전을 떠났다.

한참을 걸어야 한다.

걷는 길은 멀고 고되어 늙은 할머니들은 중도에 남거나 걷다가 일찍 세상을 뜨셨다.

남겨진 분들은 어찌 되셨는지는 모르겠다.

소년, 웅크린 늑대는 자신의 선택으로 죽을 자의 무게를 느끼며 한 걸음씩 북쪽으로 향할 뿐이었다.

목적지는 평원에 사는 부족.

북쪽 평원에 위치한 나이샨데(평원 아파치) 부족은 분명히 그들 리페인데 부족과 친척 관계였다.

말도 잘 통하는 사이니 당연히 서로 친밀할 것이라 여길지도 모르겠으나, 실상은 아니었다.

먼 과거, 리페인데 부족이 밑으로 내려오게 된 것은 어찌 보면 평원 부족의 책임이라고 할 수도 있었으니까.

선조들이 갈라선 이유는 모른다.

평원에 찾아온 가뭄일 수도 있고, 씨족 간의 다툼이었을 수도 있겠고.

어찌 되었든 씨족의 어른들은 북부 평원 아파치에 대한 험담을 하며 살았었는데 말이야.

운명이란 얄궂은 노릇이라, 갈라선 부족은 다시 옛 형제의 품 안에 들어가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소년은 이 먼 길을 오면서도 혹시나 맞이할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보며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우리가 제 발로 사지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어쩌지?’

그러나 나이샨데 부족장은 이번엔 그들을 환대했다.

분란을 일으킬 남성 전사들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가임기의 여성들은 많았다.

부족의 규모를 순조롭게 확장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누가 이를 마다하겠는가?

마침 식량 사정도 꽤나 풍부했다.

근처에는 대규모의 버펄로 떼가 있었고 큰뿔양과 토끼들, 사슴 등도 많았다.

물론 환대는 여성에 한정되었다.

리페인데 소년들은 자기의 필요성과 능력을 증명해야 했다.

같은 뿌리를 지닌 부족이지만 엄연히 외인이었기에 웅크린 늑대는 처음에는 괄시를 받아야만 했다.

추장 또한 그의 어린 나이를 빌미로 웅크린 늑대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다.

“남쪽에선 잔혹한 학살자들이 있습니다. 항상 방비를 해야만 해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거라. 백 명의 전사들이 백 개가 있다니, 어떻게 그렇게 많은 전사가 존재하겠느냐?”

사실 그보다도 훨씬 더 많았지만, 그 아득한 숫자를 표현할 길이 없기에 웅크린 늑대는 가슴을 쳐야만 했다.

다행인 것은, 그 괴물들이 자신의 도주로를 따라 이곳 평원까지는 오지 않았다는 것.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몰랐다.

하는 수 없었다.

꼬우면 스스로가 중요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웅크린 늑대는 솔선수범하여 새로운 부족에서의 새로운 입지를 다시금 다져나갔다.

버펄로 사냥에서도 맨 선두에 섰으며, 회색 늑대 떼거리와의 싸움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하여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이제는 정식으로 평원 부족의 전사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새 추장의 아내로 들어간 자신의 누이가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한번 전사로 인정받자 그의 목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게 되었다.

강력한 무력과 현명함을 모두 가진 웅크린 늑대는 속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원한과 야심을 적절하게 이용했다.

그리고 마침내 자율행동권에 버금가는 재량을 얻게 되자, 웅크린 늑대는 자신의 뜻에 따르는 리페인데 출신의 소년들, 이제는 전사들을 소집하여 남쪽으로 정찰을 떠났다.

“아즈테카….”

수많은 정보를 수집한 그는 자신의 원래 부족을 멸망시킨 자들이 아즈텍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정찰을 온 김에 아즈텍 틀라메메 무리를 기습하여 그들의 무구와 동물을 빼앗았다.

“이게 뭐지?”

처음 보는 동물을 얻게 된 귀화 나이샨데 전사들은 아즈텍 틀라메메들이 했던 것처럼 그 동물의 등 위로 올라 앉았고, 이윽고 이 동물을 어떻게 다루는지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웅크린 늑대와 말의 첫 만남이었다.

* * *

그 후로, 말이라는 새로운 동물을 얻게 된 웅크린 늑대는 말의 기동성을 통해 아즈텍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이들은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 후방을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었다.

혹은 이런 기습에 대한 대처 경험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짐꾼들을 보호하는 전사들을 배치했지만, 웅크린 늑대가 이끄는 습격단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없었다.

대범함이 쌓인 나이샨데들은 아즈텍의 말 목장을 공격하여 수십 마리의 말들을 훔치고 달아나기도 했지.

그때의 쾌감이란.

그러나 아즈텍은 어느 순간부터 동쪽을 향한 시선을 거두었다.

누벨 오를레앙에 대한 공성전이 중의 소신연비와 상륙한 총기병들에 의해 실패로 돌아간 날이었다.

몬테수마는 한동안 공격에 나서지 못했다.

그리고 아즈텍의 시선은 자연히 나이샨데에게 향했다.

후방에서 계속 그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웅크린 늑대의 선전에 고무된 평원 부족 전사들이 여느 날과 같이 몬테수마우아칸 근처의 농장과 목장을 기습하기로 마음먹었을 때였다.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괜찮다, 가자!”

나이샨데 부족장은 여기까지 와 발을 빼려고 하는 웅크린 늑대를 슬쩍 비웃고는 말을 몰았다.

저놈의 능력이 대단해서 족장의 자리가 위협받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고 있지 않았기에.

그러나 웅크린 늑대의 경고를 무시한 나이샨데 부족장은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매복해 있던 아즈텍 전사들이 그들을 포위했다.

부족장은 온몸에 빼곡히 화살을 맞고는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

많은 희생이 생겼다.

인원이 많은 나이샨데 부족의 존폐 여부를 걱정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전사들의 숫자 중 거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수가 그날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이 패배로 평원 부족, 나이샨데는 절실하게 깨달았다.

자신의 남쪽에 있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함정을 파놓고 사방의 땅에서 수많은 전사들이 달려오는 광경은 무시무시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문명은 특히나 잔혹했다.

희생자들을 먹으며 목을 잘라 장대에 꽃아 전시해두는 광경은, 꽤나 강인하고 용맹한 전사의 기풍을 가지고 있던 나이샨데들도 절로 아연실색할 광경이었다.

동맹이 필요했다.

과거, 리페인데는 그 한 부족을 이루는 씨족들조차도 전부 힘을 합치지 못하고 지리멸렬했다.

그러나 웅크린 늑대는 리페인데 출신으로 생각하기를, 씨족들이 전부 힘을 합쳤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씨족이 뭉친 부족 정도로는 저들을 상대할 수 없다.

일개 부족이 아니라, 여러 부족들이 힘을 합쳐야 했다.

마침 웅크린 늑대는 나이샨데 부족의 족장 겸 대전사로 선출되었다.

다른 부족 출신이 족장에 오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나이샨데 전사들은 모두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웅크린 늑대가 이끄는 나이샨데들은 일단 처음, 서쪽의 친척들에게 손을 벌렸다.

하이아하(치리카후아 아파치)

헤인데이(지카릴라 아파치)

마시갈렌데(마스칼레로 아파치)

심지어 저 구석에 살고 있다는 디네(나바호 아파치)에게까지.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하오, 모두! 리페인데와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기 싫다면!”

그러나 각 부족장들은 침묵을 지켰다.

아파치의 각 부족들이 서로 반목하고 경쟁해온 세월은 꽤나 길었기에.

게다가 아직 아즈텍인들이 건조한 치치멕강 상류에까지 마수를 들이대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동쪽으로 뻗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건 니들 사정이지, 우리 사정은 아니다.

뚱한 다른 부족들의 반응을 보며 한탄을 하던 웅크린 늑대는 오히려 생각을 바꿔 여러 원로들에게 말했다.

도저히 다른 아파치들의 마음이 움직일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럼 동쪽의 다른 부족들과 동맹을 맺읍시다.”

동쪽의 부족들은 서서히 북쪽으로 뻗어 나가는 아즈텍에 대한 불안감을 공유하고 있을 테니까.

그들은 맨 먼저 근처의 부족을 방문하기로 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누무누라 부르는 민족(코만치)이었다.

인구수 자체는 상당하여 전사들을 잃은 평원 부족의 규모보다 훨씬 컸다.

그러나 그들 전사들의 질은 한동안 아즈텍과 약간이나마 전투를 치러왔던 웅크린 늑대와 나이샨데, 리페인데의 전사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게다가 기마의 우위도 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격차는 커질 것이다.

다행인 것은 누무누라는 부족 자체가 말이라는 동물에 그렇게 환장을 하고 있어 병합에 그렇게 적대적이지 않았다는 점.

그 옆에 있던 키와 부족까지 동맹의 울타리 안에 넣은 웅크린 늑대는 숨을 골랐다.

다소 이질적인 세 부족이 뭉쳤다.

규모는 이제 상당히 커 아파치 전체와 비교해도 그렇게 밀리지 않았다.

게다가 리페인데처럼 멸족한 카도계 부족들의 잔존 세력을 흡수해 몸집을 불리기도 했지.

이 세 부족은 ‘평원의 세 부족 동맹’ 혹은 ‘평원 부족 동맹’이라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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