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전조(2)(지도 첨부)
마르티노 5세의 선종으로 교황직이 공석이 되자, 곧이어 콘클라베가 열렸다.
후임으로 선출된 교황 에우제니오 4세는 베네치아 출신으로서 전임 교황의 콜론나(Colonna) 가문과 적대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 또한 이교도의 문제에는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에우제니오 4세는 잔과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디로 갈 것이냐?”
그는 대체로 그녀의 업적과 성격을 존중하는 편이었다.
그녀는 독실함은 말할 것도 없었고, 근면함도 상당했다.
이른 새벽, 가장 먼저 일어나 기도를 드린 후 공부와 수련으로 하루를 보내는 그녀는 평범한 농민의 딸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글과 교양을 배워나갔다.
지금은 예법적으로도 전보다 훨씬 보기 좋았다.
잔이 대답했다.
“저는 서쪽으로 향할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느냐?”
에우제니오 4세가 다소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주님께서 서쪽 바다 너머로 향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무적의 논리였다.
저 말과 저 신념 앞에 무슨 반론을 꺼내야 한단 말인가?
에우제니오 4세는 아직도 저 처녀의 화법에 적응이 되지 않는지 혀를 찼다.
“오스만의 위협이 눈앞에 다가왔다.”
그는 넌지시 신성로마제국으로 향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의했다.
헝가리 왕이자 보헤미아의 왕이기도 했던 지기스문트는 신성로마제국의 제관까지 쓰게 된 후, 왕관의 개수만큼이나 여러 위기에 봉착하여 있었다.
종교 개혁가 얀 후스를 처형한 이후 보헤미아 내에서 후스파와의 전쟁에 시달리고 있었고, 리투아니아 문제로 폴란드와 대립하고 있기도 했다.
또한 예전에 오스만에게 당한 굴욕은 그의 위신에 아물지 못하는 상처를 남긴 상태였다.
지기스문트는 잔을 드래곤 기사단의 수장으로 삼아 이단을 정벌해 국내의 위기를 수습한 뒤 추후 오스만에 겨눌 칼끝으로 사용하려는 생각을 지닌 것이 틀림없었다.
에우제니오 4세도 그 계획에 딱히 반대하진 않았다.
그 또한 기독교 사회가 직면한 적 중 오스만이 가장 위험한 상대라 생각했기에 그녀를 신성로마제국으로 보내고 싶어 했다.
겸사겸사 이단도 때려잡고 말이지.
그러나 이 젊은 여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에우제니오 4세는 머리를 짚었다.
물론 강제하거나 회유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은 아니라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대의 뜻대로 하시게. 전임 교황께서 약속하셨던 지원은 이행될 것이니.”
“감사드립니다, 성하.”
* * *
잔은 다시금 그녀가 나고 자란 고향, 프랑스로 갔다.
파리에서 그녀는 자신의 옛 주군 샤를 7세와 대면했다.
그는 복잡한 표정으로 그녀의 손에 내밀어진 교황의 서신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검을 뽑았다.
“프랑스의 군주로서 그대를 오를레앙 기사단(Order of Orléans)의 수장으로 임명하노라.”
머리와 양어깨를 가볍게 두들긴 샤를이 검집에 검을 수납했다.
그리고는 약속된 사항을 읊었다.
“그대는 코레아니크 두 노(Koreanique du Nord, 북려대륙)으로 가 프랑스의 이름으로 주님의 뜻을 전파할 권리가 있으니….”
내용은 몹시 이색적이었다.
교황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 이 계획은 사실 프랑스의 대외 식민지라기보다는 독자적인 무력집단을 북려대륙에 풀어놓는 것과 다름없었다.
독일기사단국처럼.
지원 또한 프랑스보다는 교황의 지원을 더 많이 받고있는 것이 분명했다.
튜튼기사단이 동방식민운동의 첨병에 섰다면, 이 오를레앙기사단은 서방식민운동의 첨병이 될 것이었다.
샤를은 프랑스인들 중 잉글랜드에 협력했거나 또한 양측을 오가며 국경을 어지럽혔던 이들을 강제로 서쪽으로 보내 개척운동을 시킬 생각이었다.
반대파 귀족들과 그 수하들도 포함되었다.
오를레앙기사단은 안정된 인구를 가질 수 있게 돼서 좋고, 자신들은 사회적 불안요소를 치울 수 있기에 만족스러운 사항이었다.
“…….”
한동안 말을 이어가던 샤를이 문득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강인한 의지의 처녀였지만 그녀는 이 순간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다소 슬픔에 잠긴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그가 미간을 좁혔다.
잔은 그의 신체적, 그리고 정치적 생명의 은인과 다름없었다.
약간의 고민까지 했던 그는 이윽고 고개를 흔들었다.
샤를은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이 여자를 자신의 궁정에 내버려 둘 위험을 자초하진 않았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불신에 빠졌더라도 적어도 감사함을 표할 줄은 알아야겠지.
“고마웠소.”
그는 군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은인에 대한 예우로 고개를 숙였다.
아마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대우가 아닐까.
마찬가지로 복잡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던 잔도 마주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후로는 아무 말이 오가지 않았다.
* * *
잔과 그녀의 부대는 몽펠리에에서 수송 함대와 합류했다.
프랑스와 교황청이 만든 이 함대는 그 규모가 꽤 컸다.
카스티야의 나오를 본떠 만든 수많은 카락들에는 물자와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었다.
그녀는 이 함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항해했다.
폭풍이나 다른 자연재해는 마주하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무사하게 누에바 갈리시아에 도착해 산티아고의 총독이자 산티아고 기사단장인 인판테 엔리케와 인사를 나눴다.
“우리는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서로의 고난을 함께 도우며 나아가야 합니다.”
갈리시아의 엔리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실의와 분노에 빠져 있었으나, 교황의 지원을 받는 그 유명한 프랑스의 성녀가 이곳에 온 것을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교황과 가까워지면 중앙정계에 복귀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긴다.
엔리케는 자신이 모은 정보들을 종합해서 알려주었다.
“남쪽을 주시하시오. 언제든지 우리의 목을 물어뜯을 수 있는 맹수들이 있으니.”
“함께라면 분명히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은 외세의 위협, 특히 이교도들의 조직적인 침략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하기로 약속한 뒤 헤어졌다.
잔은 카스티야인들에 의해 플로리다라고 이름 붙여진 반도를 지나 커다란 석호가 인상적인 해안에 도착했다.
“주님께서 이곳에 누벨 오를레앙(La Nouvelle Orléans)이 세워질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을 인솔하여 정착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독특한 잔의 리더십 덕분인지, 아니면 신대륙의 마력 덕분인지 일반 프랑스인들은 물론이고 그녀와 적대적이었던 자들 또한 묵묵히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해안가엔 포대를 설치해야 합니다.”
백년 전쟁의 말엽, 새롭게 등장한 일련의 화약 무기들은 그녀의 군사학적 가치관에서 상당히 중요한 존재로 각인되어 있었다.
해안을 따라 견고한 요새를 지은 프랑스인들은 밭을 갈고 밀을 뿌리기 시작했다.
* * *
유럽의 정세 보고와 만종 문제에 대한 대략적인 처분을 논의한 상민은 도성으로 귀환했다.
‘생각보다 별로 비싸진 않군.’
문화적 유산에 대한 개념은 아직 확립되지 않아 타완틴수유의 유적들은 상당히 평가절하되고 있었다.
게다가 만종이 이곳들을 접수한다면 파괴를 자행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에 어쩌면 자신이 이렇게 개입하는 것이 인류학적 면에서는 더 좋은 일일 수도.
미래의 거대한 관광지들을 손에 넣은 상민은 만종 교단에게 대가로 줄 섬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어디를 줘야 어그로가 잘 끌릴까.’
그는 칼리나해의 지도를 손가락으로 천천히 훑었다.
칼리나해 동쪽의 작은 섬들은 확실하게 개척이 완료된 고려의 땅이었지만 전략적으로 확고한 방어선이라기엔 무리가 있었다.
해안 포대가 빼곡하게 설치된 내륙의 만을 이용해 적들의 함대를 저지할 수 있는 마제도와 남려대륙 북부, 옛 베네수엘라의 땅에 지어진 전주(電州, 마라카이보)가 훨씬 더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었다.
유사시, 고려는 이곳에서 외적과 항쟁할 것이다.
같은 대륙이지만 지금은 도로를 이을 수 없었기에 해외 식민지만큼이나 비용이 들었다.
만궁열도와 남연군도, 그리고 마제도와 전주를 위한 방패선.
‘이 섬이다.’
만종들의 교국(敎國)은 ‘옛’ 푸에르토리코에 세워질 것이었다.
이제 푸에르토리코라는 말은 저기 아프리카의 섬에 붙은 모양이지만.
상민은 손가락을 두들겼다.
‘흐음….’
무언가가 아쉽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바퀴를 돌았다.
고려가 유럽세력들과 전면전을 할 생각은 없었고 저들도 고려와 전면전을 할 생각이 없겠지만 그래도 상민은 저들이 그냥 꼴보기가 싫었다.
갈등을 유발해 괴롭히고 싶은 생각은 그가 가학적인 성격을 가져서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저들이 완전히 뿌리내리기 전, 계속 괴롭히는 것도 엄연히 하나의 전략이다.’
고려는 유럽과의 통교로 인해 큰 이득을 보았다.
식물 종자와 가축, 그리고 여러 가지 학문과 발달된 금속기술 등이 전해져왔다.
예술과 음악 같은 가치를 측정하기 힘든 것들도.
일부는 중동에서 넘어오기도 했으나 분명히 유럽을 거쳐서 전래가 된 것이었다.
반면 유럽 또한 고려에 의해 큰 진보를 이루었다.
생물학과 천문학, 그리고 의학과 같은 분야에서.
고려의 학문이 담긴 서책들은 비록 가톨릭 교회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었으나, 지식인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퍼져나가는 책이었다.
위생에 대한 자그마한 개념만으로 세상은 얼마든지 격변하기 마련이다.
서로는 서로에 의해 진보의 흐름을 적어도 한 세기는 앞당기고 있었다.
‘원 역사대로라면 유럽은 아직 개인화기에 친숙하지 않았다.’
등장한 대포는 잘 써먹고 있었겠지만, 아직 총은 아니었다.
아퀘버스, 혹은 초기 화승총 같은 과도기적 단계에 진입한 후 총기의 기틀이 잡히고 그 후 에스파냐에 의해 본격적인 테르시오가 개발되는 것이 순서에 맞았다.
그러나 지금의 유럽은 백년전쟁 말엽에 총기가 등장했다 한다.
조잡하지만 분명히 수석식 총기였다.
그 소식을 들은 상민은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고려는 군사 무기를 유출하는 것에 민감했다.
걸리면 얄짤없이 사형이니.
하지만 사형이란 제도가 있어도 범죄자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분명히 누군가 외국에 거금을 대가로 팔아치운 자가 있을 수 있었다.
아니면 작전 중 우연히 죽은 고려 병사의 시신에서 총기를 확보했을 수도 있었고.
혹은 동예에서 유출된 것일수도 있으려나.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고려가 진보하면, 진보의 과실은 동예도 일부분이나마 누릴 수 있었다.
총창방진이 도입된 이래, 동예 또한 상국의 군사적 능력을 동경하고 있었다.
가까이서 총기를 관찰할 수 있었던 그들은 눈대중으로나마 자체적인 총기를 개발하는 것에 성공하기도 했다.
비록 거의 백여 년이 흐르긴 했지만 그들도 이제 고려와 비슷한 군제를 만들고 있었지.
자체 개발이라 개입할 명분도 없었고 애초에 초석 산지는 태동산맥 서쪽에 있어 고려가 독점하고 있었기에 별말 없이 넘어간 사항이었다.
‘미치겠군.’
플린트락 총이 유출되었다.
자신이 가진 미래지식이라는 강력한 무기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었다.
현실은 게임 같은 단순한 세상이 아니라서 동시대의 사람들 또한 진보를 수용할 줄 알았다.
특히 유럽은 전투와 투쟁이 일상화된 지역답게 군사적 기술에 대해선 몹시 개방적으로 반응했다.
이 사실을 지금에서야 뼈저리게 느낀 상민은 이를 악물었다.
‘발전일로가 능사는 아니다.’
지식은 때로는 감출 수도 있어야 했다.
‘이것은 나중에 생각하자.’
여러 생각들을 떠올리던 그는 갑자기 번국이 몹시 못마땅해지기 시작했다.
고통은 함께 나눠야 반감되는 법이다.
동예의 사절단은 그동안 마치 시위라도 하는 듯 창천궁의 영빈관에 수개월 머무르고 있었지.
상민은 식량만 축내는 그 인간들의 이용가치를 찾아내었다.
* * *
시중의 접견실로 온 동예의 사절은 공손하게 읍했지만, 얼굴은 전혀 그래보이지 않았다.
“시중께서 결단을 내리셨다고 들었습니다.”
본래는 상국의 사신이 제후국에 가서 깽판을 벌이는 것이 관례아닌가?
상민은 그런 생각까지 품으며 그들을 은근히 노려보았다.
“…그래, 어디 한번 논의해 봅시다.”
동예가 상민에게 골칫거리로 전락한 것만큼이나 상민도 동예인들에게 있어 매우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용경도를 통해 유럽과의 무역에서 동예의 영향력을 감소시켰으며, 영토적으로도 압박을 가한 장본인이었기에.
본디 남쪽으로 뻗어가지 않게 약속한 동예는 당연히 북쪽을 노릴 수밖에 없었다.
서쪽에는 녹색 사막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열대우림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고려는 상민의 주도로 연죽곶은 물론 태수(太水, 아마존강)의 하류 부근까지 장악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국경분쟁이 일어났는데, 동예는 적어도 태수의 남쪽 부근은 양보해 주길 원했다.
“그것은 안 되는 일일세.”
동예의 화전(火田)이 지구의 허파를 얼마나 훼손시킬지 알 수 없었던 상민은 전 지구적 환경을 담보로 거래하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았다.
그곳은 오로지 자신의 통제하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동예에게 가혹한 처사였다.
자신은 반대만을 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만든 것이 아니었다.
“대신 기주(崎州)는 어떠한가?”
최근 고려는 기주(崎州)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칼리나해에서 두 번째로 큰 섬, 본래라면 히스파니올라로 불렸어야 할 기주는 대략 남한 면적의 사분의 삼 정도에 달할 만큼 거대한 섬이었다.
땅 이름 끝에 도(島)가 붙지 않을 정도로 큰 섬.
동예의 사절들은 의외라는 듯 서로를 쳐다보았다.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태수는 적도의 바로 아래를 흐른다.
그 주변의 땅은 농경지로서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들은 산림을 벌목해 목재로 이득을 취할 생각이었으나, 기주라는 당근을 제시한 상민 덕분에 고민에 휩싸였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동예 또한 수많은 무역으로 인해 많은 해양지식들을 가지고 있었다.
기주가 열대우림보다는 더 가치가 높다는 판단을 한 그들이 헤벌쭉 웃었다.
협상이 상당한 난항을 겪을 거라 내심 각오를 하고 왔던 동예의 사절들은 오히려 큰 이득을 얻게 되어 놀라워하면서도 몹시 기뻐했다.
“예왕 전하께 본인의 안부를 전해주시오.”
“감사합니다. 당하!”
그들이 나가는 것을 바라본 상민이 책상의 지도에 올려져 있는 패 하나를 움직였다.
아까보단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