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85화 (85/653)

동방 항해록(1)

개천 147년(CE 1422)

해제가 제위에 올랐고, 상민이 하야한 5년 동안의 일이다.

청해로 돌아온 상민은 일단 탐험가 신원길을 불렀다.

포르투갈이 희망곶의 영유권을 접수하는 것은 올해 말.

그 전에 해야만 하는 일을 먼저 해 놓는 것이 좋았다.

청해의 탐험가 조합에 있던 신원길이 그의 부름을 받고 오기 전까지 상민은 지도를 펴 놓고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기 시작했다.

알바로 데 루나.

카스티야의 총사령관이자 재상은 본국의 권력 투쟁에서도 조금 우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듣기로는 몇 번 실각의 위기도 있었던 것 같았지만, 카나리 대공 후안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재정적 어려움을 해소하며 정계에서 매우 우세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현 왕의 삼촌들을 완벽하게 제압하지는 못한 모양.

‘가진 능력이 그 정도뿐이라는 것이겠지.’

해제의 치세에 고려가 삽질을 하고 있을 때, 카스티야 또한 권력다툼에 매진하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카스티야 옆집에 사는 포르투갈은 굉장히 빠르게 아프리카 서해안을 잠식해 나갔다.

대양의 불확실성도 없었고, 즉각적인 노예 수입은 그들의 재정을 풍족하게 해 주었다.

또한 현 대왕 주앙 1세는 상당한 능력자이기도 했고, 그의 후계를 이을 두아르트 왕세자 또한 총명했다.

왕세자는 한창 포르투갈의 해외 개척을 이끌고 있는 동생 엔히크와도 사이가 좋았으니 실로 왕가에 황금기가 도래한 것이다.

포르투갈은 고려와 희망곶 조약을 맺었었다.

그 전까지 유럽은 물론이고 세계의 외교는 크게 두 가지의 개념만 존재하고 있었다.

동맹과 적대국.

따라서 중립국이란 현재 존재하지 않았다.

국가의 외교적 범위는 아직 중세에서 벗어나지 못해 인근의 말이나 도보 같은 전통적인 이동수단으로 통행 가능한 국가에 한했다.

그러나 대항해시대에 들어서자, 가장 빠르게 바다로 눈을 돌린 고려, 그리고 그다음으로 눈을 돌린 이베리아의 국가들은 이 이동수단의 한계를 탈피했다.

카락과 더불어 협저선, 카라벨라, 혹은 캐러밸로 대표되는 범선의 시대가 도래한 것.

이들 나라의 빠르고 효율적인 배들은 근래까지의 전통적인 연안 항해에서 탈피할 수 있었으며 거대한 대양 너머의 국가와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것에 성공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따라서, 고려와 포르투갈의 외교 관계는 전례가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적성국?

글쎄.

비유를 하자면 서로는 상당히 이질적인 존재였다.

믿는 종교도 다를 뿐만 아니라 언어와 외모 또한 현저하게 달랐다.

그 차이는 수백 년간 다투어 왔지만,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구적들과도 차이가 있었다.

포르투갈의 경우에는 베르베르인, 무어인들이겠고, 고려인들에겐 몽골인, 여진인, 거란인들이겠지.

DNA에 내재된 적의가 아직 없는 상황.

앞으로 두 나라가 전투를 할 것인가, 상생으로 나아갈 것인가는 순전히 첫 단추를 꿰는 권력자들에게 달려 있었다.

상민은 위험을 회피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두 나라를 같이 상대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주앙 1세에게 새로운 개념의 외교관계를 제시했지.

무관심 조약.

후에는 이것이 불가침 조약과 비슷하게 발달될 것이지만, 지금 현재로선 저런 용어가 가장 어울릴 것이다.

서로는 대양 반대편의 땅에 '관심'을 가지지 않기로 협의했다.

상대방의 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오직 공동의 이익을 위한 무역만이 양국을 오갈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희망곶과 아프리카의 소소한 개척지들을 넘겨준 고려의 손해가 크다고 보여졌기에, 고려―포르투갈의 무역은 고려의 주도하 연죽곶 앞바다에 있는 조그마한 섬 용경도(龍鯨島, Fernando de Noronha)에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측근 중 하나는 자신이 왜 굳이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에서 무역을 하길 원하는지 물어보았었지.

“여러 이유가 있다. 상인들을 감시하기 편하다는 것이 첫 번째요, 우리의 정보가 새어나갈 확률이 줄어든다는 것이 두 번째요, 전염병 발발에 대한 통제가 쉬워진다는 것이 세 번째다.”

“과연, 시중의 혜안에 소신이 절로 감탄만 하게 되옵니다.”

말을 굳이 하지 않은 이유도 있다.

‘최대한 멀리 교역을 해 요즘 기어오르려는 동예에게 최대한 이익을 뺏기지 않기 위함도 있지.’

체급 차가 워낙 나다 보니, 외교와 경제 거의 대부분의 건에선 동예가 양보를 해주었으나, 그들이 점차 북진하여 고려령 연죽곶에 도달했을 때부터 고려와 동예 사이의 분쟁의 씨앗은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흐음….’

그들도 역사의 전면에 나서고 싶어 하는 것이다.

심지어 동예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적후추(Schinus molle)라고 불리는 이 향신료는 남려대륙에 광범위하게 자생하는 옻나무와 비슷한 상록 활엽수였다.

매운맛이 적긴 하지만 특유의 달콤한 맛이 있어, 안 그래도 향신료에 미쳐있는 유럽인들에게 흑후추의 대안으로 여겨지다가 이제는 흑후추와 분리되어 별도의 시장을 이룰 정도로 성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체로 열대지방에서 더 잘 자라는 경향을 보였다.

동예의 산출량이 고려의 산출량보다 거의 두세 배는 많았다.

마냥 많이 파는 것도 능사는 아니었다.

결국 시장은 소비자의 권익을 배제해보면 독점이 가장 큰 이윤을 남긴다.

국가와 국가 간의 사이로 확장해봐도 마찬가지.

동예와 고려가 적후추로 경쟁을 한다면, 결국 고려에 대한 이윤의 몫이 줄어드는 셈.

상민은 이 머리가 꽤 자란 번국을 어떻게 해야 할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차마 말 못 할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이 있겠지.

일단 시간을 좀 두고 관찰해 보자고.

“합하, 부르셨사옵니까?”

그의 상념을 끊은 당사자, 원길이 부름을 받고 집무실로 들어왔다.

원길은 아버지 신수일에 의해 개척된 아프리카의 땅을 내주는 것을 썩 좋아하는 기색은 아니었지만, 그러한 표정을 감히 밖으로 낼 수는 없기에 억지로 안색을 정돈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대에게는 미안하게 되었다.”

통령이 직접 말하는 사과의 뜻에 그가 고개를 숙였다.

“아니옵니다. 소인은 그저….”

“그러나 너와 네 아비가 이제껏 제국을 위해 해온 일을 전 고려와 전 세계가 알 것이다.”

실제로 신수일과 원길의 이야기는 유럽의 항해사들에게도 꽤 유명했다.

대동양을 최초로 항해한 자들.

고려의 우수한 문명을 선전하는 프로파간다의 선봉에 선 자들이 이들 부자였다.

신원길은 머리를 조아렸다.

그 모습을 보던 상민이 태연하게 물었다.

“그래서, 내 제의를 들어보겠느냐?”

능력과 인품을 모두 갖춘 원길은 충성도가 높은 선원들을 이끄는 제독이었다.

상민은 그들로 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포함해서 오직 한 국가와 한 사람만이 성취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행위를 하기로 작정했다.

세계 일주.

편서풍과 무역풍의 존재를 알게 된 지금, 남려대륙에 위치한 고려는 세계에서 가장 일주를 하기 쉬운 나라였다.

남대동양과 인도양, 그리고 아직 미지의 존재로 남아있을 호주와 뉴질랜드를 거쳐 남태평양으로 진입해 남부항로로 귀국하는 멀고도 위험한 여정.

수에즈나 파나마 운하가 없는 시대, 북반구의 나라가 지리상 한참을 헤매야 할 때 남반구의 국가는 남부의 대양들을 통해 멀리 돌아가지 않아도 될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원길은 금세 눈길이 초롱초롱해졌다.

청해에는 중앙 정계에서 하야한 통령이 거대한 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과연 이런 미친 규모의 일이었다니!

위험하고 짜릿하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받은 원길은 넙죽 엎드렸다.

“소인, 죽을힘을 다해 합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렇다고 죽지는 마시게, 그대는 돌아와서 만인의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

상민은 그를 격려하고는 그들이 가진 다섯 척의 협저선에 막대한 지원을 해주었다.

무려 다섯 척의 배를 추가로 더 편성해주고 식량을 가득가득 쑤셔 넣어준 것.

기존의 일반적인 보존식, 즉 건량과 육포 말고도 특이한 것이 눈에 띄었다.

각양각색의 음식들이 유리병 안에 넣어져 있었다.

달디단 조청과 같은 고열량 혹은 김치와 같이 채소들을 절인 음식들은 원래부터도 보존성이 나름대로 있었지만, 병조림화되어 그 식용 가능 기한을 대폭 늘릴 수 있었다.

물론 가성비를 따지면 두말할 나위 없이 쓰레기 같은 효율성을 자랑한다.

단단하고 질 좋은 유리병은 유리공예술이 발달되고 있는 지금도 꽤 비싼 물품이었으니까.

하지만 항상 그러했듯이 탐험의 영역에 한해선 상민은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스타일이었다.

돈을 퍼붓는다고 그들의 생존성이 올라간다면 아마 그는 금으로 된 선박을 만들어 줄 것이었다.

선원들은 환영했다.

진정한 고향의 맛, 김치가 그들과 함께 하는 한 기나긴 여정도 그들을 힘들게 할 수 없었다.

다시 한번 그들에게 괴혈병과 각기병 등 선원들이 가질 수 있는 질병에 대해 교육한 상민은 동쪽의 희망곶으로 떠나는 그들을 배웅했다.

* * *

원길의 대원정은 상민의 요구로 매우 꼼꼼하게 작성되었다.

그의 동방항해록(東方航海錄)에 처음 실린 곳은, 아프리카의 동해안에 있는 큰 섬이었다.

거대한 대륙 같은 섬, 메리나 인들이 산다고 하여 이메리나(마다가스카르)라고 이름 붙여진 섬을 발견하고 그곳에 정박했으며 식수를 보급한 후에는 북쪽으로 떠났다.

북쪽에는 이집트의 맘루크 제국이 있었다.

물론 그들에게 직접 접촉하기 위해선 홍해를 들어가는 수고를 해야 했다.

이미 한 번 얼굴을 본 맘루크와 아라비아반도 밑의 소국들에겐 별 관심이 없던 항해 선단은 곧이어 이 시대 거의 마지막으로 중동에 남은 칸의 후예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동방항해록의 두 번째 장은 티무르 제국이었다.

잔인했지만 불패의 명장이었던 절름발이 정복자 티무르는 이미 영면에 들었고 그의 아들 샤 루흐(شاهرخ)의 치세가 들어선 이 제국은 옛 페르시아의 영토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었다.

오스만을 통해 그들의 소식을 들었던 고려인 탐험대들은 이들의 땅에 정박해 가기로 했다.

샤 루흐는 동방과 서방의 교역로 중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방인들을 대체로 환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신 고려인에게도 마찬가지.

“독특한 생김새를 한 자들이로군?”

복식은 물론이고 외모 또한 기존에 본 사람들과 달랐다.

고려인들의 이목구비는 옛 삼별초 시절과 많이 달라지기도 했고, 평균적인 신장 또한 거의 이 촌(1촌 = 3cm) 혹은 그보다 더 컸다.

“소인들은 고려 제국에서 온 탐… 아니 상인들이옵니다.”

탐험가라는 명칭을 굳이 말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원길이 재빨리 대답했다.

“고려?”

샤 루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길은 눈치챌 수 있었다.

저 술탄은 분명히 자신을 옛 반도의 고려에서 온 사절들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엇이라고 답해야 할까.

원길은 어물쩍 넘어가려다, 오히려 그들에게 정보를 얻는 것이 더 괜찮겠다 생각하고는 엎드려 말했다.

열심히 배운 아랍어로.

“소인의 주군, 고려의 황제께서 사마르칸트의 칸이자 술탄께 국서를 보내셨습니다.”

“으음….”

사실 해윤이 쓰진 않았지만, 상민이 쓴 이 국서는 샤 루흐의 손 위에 올려졌다.

하지만 샤 루흐는 국서를 뜯지 않고 미간을 찌푸렸다.

“고려라… 하지만 짐은 의아하군.”

샤 루흐는 자리에서 일어나 빙글 돌았다.

“짐이 아는 고려는, 이미 멸망한 나라일 터인데?”

“그렇사옵니까?”

원길은 놀라지 않고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중, 아니 통령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반도의 옛 우리의 고향에 멸망이 닥쳐온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감히 고려의 후손을 참칭하고 있는 다른 세력이 분명하다는 것이 되는 게고.”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샤 루흐는 원길의 눈을 노려보았다.

“소인은 미천하여 그 국서에 담긴 내용을 감히 읽어볼 수 없사옵니다. 다만 술탄께오서 읽어보신다면 그 의문을 조금이나마 해소하지 않을까 사료되옵니다.”

“흐으음….”

샤 루흐는 한문으로 쓰인 것이 분명한 국서를 천천히 읽어내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다시 서신의 첫 문장부터 읽어내렸다.

이후 잠시 동안 눈을 감았다.

“그러하군.”

다시 뜬 샤 루흐의 눈에는 의심이 사라져 있었다.

“새로운 고려의 황상께 귀중한 정보를 알려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드리게나.”

“…알겠습니다.”

“또한 그대들은 국빈으로 대우받을 것이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라. 짐이 가능한 내에서 들어줄 터이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 * *

“무슨 내용이 적혔을까요?”

일주일(5일)간의 융숭한 대접을 받은 고려인 탐험대는 돛을 펼치며 인도양의 바람을 쐬었다.

“글쎄.”

측근의 말에 원길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통령께선 철제 가면 속에 있으니 그 내심을 쉽사리 짐작하기 어려운 분이었다.

다만 약간 읊조리신 것이 있는데.

“명군의 가장 큰 적은 세월이라 하셨던 것 같구만.”

“예?”

“아니야. 천축으로 가자.”

세 번째 기록, 비자야나가르(남인도).

원길은 동방항해록을 작성함에 있어 하나의 원칙을 세웠다.

될 수 있으면 고려의 관습 법칙대로 그 나라 사람들의 지명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본디 바라트는 유럽인들에 의해 인디아(India)로 기록되어진 곳이었다.

또한 중원인들과 옛 고려인들에겐 천축(天竺)이라 알려진 나라였지.

그러나 이곳은 수많은 나라들이 피고 진 곳이라 천축과 인도라는 하나의 명칭으로 기록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이제부터 고려의 사서에는 이 거대한 땅의 최남단에 자리한 왕국은 그들이 부르는 대로 비자야나가르로 적힐 것이었다.

‘통령께선 각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라 하셨지.’

비자야나가르는 한창 북쪽의 바흐마니 술탄국과 대립하고 있었다.

왕이 상당히 바쁘고 위태로운 모양인지 국서를 전달할 여유도 없어 보였다.

“왕이 북쪽의 술탄에게 슬하의 딸까지 뺏겼다더만.”

“…그렇군요.”

과연 항구는 흉흉한 기색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들은 애써 현지 관리에게 뇌물을 바치며 교역을 성립했다.

물자가 많지는 않아 풍족한 양을 사고팔 수는 없었다.

원래 교역이 목적이 아닌 함대였기도 하고.

다만 수확은 있었다.

원길은 유리병에 후추를 비롯한 여러 향신료 종자들을 담고는 밀랍을 이용해 단단히 봉인했다.

“이것들이 고국으로 무사히 갈 수 있도록 부처님께 빌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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