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헌칙서
상민은 엄청나게 바쁜 사람이다.
유럽과 조우가 시작되며, 해야 할 일은 거의 두 배가 되었다.
타완틴수유 원정군에 대한 보급이 원활하게 이어지는 것은 첫 번째 순위였다.
제국의 황제가 친정하고 있으니 당연한 소리였다.
두 번째는 유럽의 외교 관계 확립과 유지에 대한 건이었다.
고려는 카스티야와 포르투갈, 여러 상업공화국은 물론 프랑스와 잉글랜드, 그리고 심지어는 오스만투르크까지 접촉하는 것에 성공했다.
중간에 사라센 해적들(바르바리 해적으로 추정되는)에 의해 납치되었으나 어쩌다가 오스만의 술탄에게까지 갈 수 있었다.
정보를 수집하고 품종을 확보하고 기타 여러 가지를 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 상태.
또한 고려를 왕래하는 카스티야, 포르투갈 상인들에 대한 사소한 일들, 반대로 카나리에 간 고려상인들에 대한 일들까지.
세 번째는, 갑자기 낮아지고 있는 연간 기온으로 작황이 좋지 않은 지방에 대한 원조였다.
네 번째는, 북부를 복속하며 다시금 토벌해야 하는 코카잎 조직들….
다섯 째….
젠장.
그래서 해윤의 장남, 해제의 교육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내 몸이 두 개라면….’
한탄해 보아도 안 될 일은 안 될 일.
해윤의 장남, 해제가 이제 열여덟의 나이가 되자, 다시금 주변에서 시중이 아닌 태자의 대리청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몹쓸 놈들.’
물론 신하로서 당연한 자세였지만, 자신이 지금까지 벌인 이 엄청난 업적들은 논외로 치려는 저 태도가 조금은 얄미웠다.
몇십 년 전이라면 예전과 같이 내팽개치고 다시 청해로 돌아갔겠지만, 대항해시대가 열린 지금부턴 세계의 정세에 조금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미 한 번 종친들을 죄다 파나마에 처박고 해윤을 옹립시킨 이후 상민은 정치적으로 대단히 예민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국자감과 숭무감에 부는 많은 학풍의 기조에도 불구하고, 충성심이란 항상 관리의 첫 번째 자질이었다.
제국을 농단하는 신하는 능력이 있으면 있을수록 위협적인 존재였으니, 어사대와 사헌대를 비롯한 사방의 눈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소리겠지.
그는 어쩔 수 없이 해제에게 몇 가지 일에 대해서 일을 맡겼다.
고려는 전통적으로 10부의 상서들이 직접 군주에게 결재를 받는 십부직계제(十府直啟制)를 하고 있었다.
어설프게나마 맡은 일을 하기 시작한 해제.
처음에는 꽤 열심히 하려는 노력이 보여, 상민은 뒤늦게라도 열심히 교육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사람도 다 생각이 있소이다.”
하지만 이놈의 태도가 영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신하들 앞에서 자신의 권위를 해치려는 시도를 몇 번이나 하는 것이다.
그럴 만했다.
젊다 못해 어린 해윤이 원정을 떠난 이후 황후는 회임한 자신의 아들에게 황가의 깊은 비밀을 알려주지 못했다.
몰랐으니까!
그러나 자신은 공식적으로 그의 스승이었다.
태사의 지위까지 겸임하고 있다는 말.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태종 해진은 아랫사람에게 기가 센 편이었으나, 그만큼 자신과 왕예에게 지극히 효도했다.
세종 해권은 순둥이 그 자체였고.
성종 해정은 실제로도 두꺼운 안경을 쓴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해윤은 말썽꾸러기였지만 그래도 예의와 정도를 아는 놈이었고.
상식적인 후손들만을 상대해 오던 상민은 자신의 육대 후손의 싸이코적 면모를 발견하고는 골이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그를 참교육할 당사자는 저 멀리 북쪽에 있는 상황이고.
정체도 모르고.
태자와 섭정이 싸우면, 대개는 명분을 가진 쪽이 승리한다.
신하들은 은근히 태자의 눈치를 보며 그에게 힘을 실어주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군.’
매년 해룡사에서 한 해의 평안을 동해 용왕에게 비는 풍습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작 눈앞의 인간과 그 존재가 동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게 죄다 해윤 탓이야.
중재를 할 사람 자신이 원정을 가버려서.
속으로는 투덜거렸으나 상민은 자신이 세운 전제군주정의 한계를 드디어 직면했다.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손자의 치기 어린 정복욕에서 시작한 것이겠지만, 자신이 모종의 이유로 죽는다면 이 나라도 불과 백 년 안에 멸망할 수 있었다.
‘만들면 뭐 하나, 결국은 황제가 제멋대로 폭주하기 시작하면 말리기 힘든 나라인데.’
상민은 이 사실을 전부 적어 해윤에게 보냈다.
이 사태를 해결할 유일한 사람.
해윤에게 장문의 편지를 받은 상민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음 날 즉시 하야를 청했다.
* * *
쿠스코 궁전에선 여러 가지 경사가 일어났다.
첫 번째는 해윤이 산맥의 정당한 지배자라는 명칭, 즉 사파 잉카(Sapa Inca)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마치 원의 황제가 중원의 천자이자 초원의 대칸을 겸하는 것처럼, 앞으로 고려의 황제도 사파 잉카의 위를 겸하게 될 것이었다.
쿠스코의 황금 옥좌에 앉은 해윤은 사방 부족들의 충성 서약을 받았다.
엄청난 영역이 그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개인적으로 두 번째 일이 훨씬 기쁘게 다가왔다.
숙비는 둘째 아들을 보았다.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했다.
위생에 극도로 신경을 쓴 흔적이 가득한 의원이 갓난아기를 조심스럽게 해윤에게 보여주었다.
아이는 우렁찬 소리로 울고 있었다.
“건강한 황자님이옵니다.”
“경하드리옵나이다! 폐하!”
산모들과 의원들이 모두 부복하며 그에게 조아렸다.
숙비 안씨 또한 은은하게 미소지었다.
“고맙구려.”
해윤은 웃으며 땀에 젖은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고맙고 미안하오.”
“어찌 그런 망극한 말씀을 하시옵니까?”
“이 아이는 앞으로 제국에서 할 일이 제한될 것이오.”
안 숙비는 온몸이 피곤한 와중에도 그 말을 듣고 서둘러 고개를 조아렸다.
안씨는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긴 여인답게 위기의식에 대해서는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성상 폐하, 소첩과 소첩의 자식은 감히 황후 전하의 위를 넘볼 생각이 없사옵니다.”
고려의 황후와 정쟁을 한다니, 그런 무서운 소릴 들은 그녀가 벌벌 떨 때, 오해할 법한 말을 잘못 꺼낸 것이 아닌지 후회하는 어조로 해윤이 대답했다.
“…알고 있다오.”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이 조직은 한계가 있다.’
황제는 제일 먼저 제국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타완틴수유를 보아라.
멍청하고 무능한 사파 잉카에 의해 저 거대한 제국이 모래성처럼 흩어지는 꼴을.
태조께서는 자신의 후예들 중 비범한 자들을 훈요 128권으로 교육시켜 특출난 황제들로 종사를 이으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았지만, 종통(宗統)의 계보는 그렇게 이상적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당장 해윤만 보더라도, 기껏 아들 한 명과 딸 한 명, 그리고 지금 막 아들 한 명을 보지 않았는가.
사현제의 치세는 순전히 운이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파나마에서 노동하고 있을 그의 숙부들을 쳐낸 것처럼 항상 태조를 구차한 일에 욕되게 할 수는 없었다.
해윤은 자신이 집필하고 있는 책을 들여다보았다.
― 재상중심론(宰相中心論)
세계 최초로 군주에 의해 쓰여진 재상 중심 정치의 개념이 담긴 책은 섭정공의 한계를 부수고 자신의 선조에게 영원하며 합리적인 권한을 부여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의도된 폭군이 자리에 앉아야 했다.
사람들에게 항상 구구절절하게 회자될 그러한 사례를 만들.
그는 자신의 장남, 태자를 그 역할에 어울린다 보았다.
아비만이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사항들.
‘그놈은 탐욕스럽고 성격이 바르지 못하다.’
‘여인을 탐하고 책임감은 없다.’
‘그리고 가장 결론적으로….’
끔찍한 과거의 생각이 떠올랐다.
해윤은 한 번 조정에 직접 칙서를 내린 적이 있었다.
상민과 조정을 통해 처리하진 않았고 다만 추밀원을 통해 관제를 정비했다.
고려에는 환관의 제도가 엄격하게 확립되지 않았다.
그래서 궁중을 숙위하는 내시부(內侍府, 음식과 청소, 궁문 수직 등의 업무를 보는 관청)의 남자들 중에는 멀쩡히 성기능을 하는 자가 있었다.
전쟁 중 불의의 사고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병사 몇 명과 타완틴수유인들 중에서도 아클라를 경비하는 고자들을 모아 새롭게 내시부를 재편하니 이제 내시란 말은 환관과 동의어가 되었다.
신하들은 그 칙서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해윤이 그러한 일을 한 까닭에는 다 배경이 있었다.
전부 고자로 새롭게 편성된 내시부와 달리 기존의 내시부는 전부 해윤의 시중을 들기 위해 쿠스코 궁정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중 한 남성은 도착한 즉시 가둬져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었다.
“…배짱이 두둑한 놈치고는 별 볼 일 없는 죽음이구나.”
여섯 등분으로 죽은 시신은 곧바로 불태워졌고 이 일은 영원한 비밀이 되었다.
비록 태자는 여러 정황상 자신의 씨가 분명했으나, 해윤은 도성에 앉아 있는 황후에게 거의 경멸에 가까운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어릴 적에 맞이한 그녀는 무난한 고려 명문가의 여식이었다.
그녀에게 자신을 따라오라 권유했지만 황후의 자리에 올라 호화스러운 궁정의 생활을 만끽하려던 여인은 여러 이유를 들며 거절했다.
처음에는 그럴 수 있다고 했었다.
그 후로도 전선이 안정되었을 때, 몇 번이나 권유를 했으나 그녀는 올라오지 않았다.
심지어 이곳 쿠스코에 자리를 잡았을 때도 마찬가지.
제국에서 가장 존귀하기로는 두 번째 자리에 앉았으면 자신도 마땅히 황후로서 해야 할 의무가 있는 법인데 그저 사치스러운 생활만 영위했을 뿐.
비록 시중의 위세에 짓눌려 정치적으로는 무해했으나, 성적으로는 유해한 짓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수천 수만 리 밖에서도 정보들을 듣고 있었던 해윤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해윤 자신이 살아있고, 대군을 이끌며 앞으로의 여파를 수습할 수 있을 지금이 유일한 기회였다.
― 태자에게 양위하며, 짐은 태상황으로 물러나겠노라.
태자의 대리청정을 원했지만, 그것이 양위라는 더 큰 불씨로 돌아오자 관리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형식적인 반대를 해 보아도 태상황은 매우 완고하게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을 의사를 보였다.
“잘된 일이 아니오? 차라리 현 황상께서 직접 통치를 하시어 다시 태묘와 사직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소.”
“…사현제의 치세에 버금갈 만한 시중의 치세를 그새 잊어버렸나?”
“당금 황상께서도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분이신데, 감히 그대가 의심을 품는 것인가?”
조정은 매우 시끌시끌했다.
시중의 역량을 익히 알고 있는 자들.
그럼에도 역대 황제들이 존귀한 혈통답게 항상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지 않았냐는 자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다물기 위해서는 해제가 무엇을 보여주는 것이 제일 편했다.
해제는 오래도록 밖에 나가 있는 아비의 뒤를 이어 고려의 6대 황제로 즉위했다.
하지만 주변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즉위 다음날부터 그는 기똥찬 짓을 저질렀다.
궁 내에 걸린 시중의 그림을 전부 떼어내고 불태우도록 시킨 것.
“이 자는 종통을 어지럽힌 자로다.”
또한 파나마에 유배된 황족들을 창양으로 불러들였다.
“일개 신하가 황통을 농단하니 이것을 어찌 참을 수 있는가?”
그것까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황실의 권위를 드높이고자 하는 행동이었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는 그 정도에서 멈출 사람이 아니었다.
궁에서 온갖 횡음을 일삼은 그는 심지어 시중이 집무실로 썼던 공간에서 여인들과 난잡한 일을 저지르는 등 오만 방자한 일을 저질렀다.
요승, 태보를 궁정에 불러들이고는 계속된 성전으로 교조화된 불교 세력들에게 많은 특혜를 베풀었다.
듣기에 차마 민망한 일들도 엄청 많았으나 여백이 없어 기록하지 않았다 한다.
국자감과 숭무감, 어사대와 사헌대는 태자의 행동에 벌떼처럼 일어났으나, 강력해진 황권은 그들을 폭압적으로 짓누를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귀양을 갔고 상하기도 했었다.
울분에 찬 채 그 일을 기록하던 사관들도 횡액을 입었다.
‘아, 그리운 옛날이여!’
불과 5년 만에 나라를 열심히 말아먹은 해제는 결국 쿠스코에서 회군한 아버지에게 즉시 폐위당했다.
물론 말 못 할 일을 저지른 황후도 같이.
계획대로 다시 옥새를 쥔 해윤은 언제 양위했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굴었고 숙비 안씨를 황후로 삼았다.
그리고 마침내 시중서사제(侍中署事制)에 대한 여론을 모았다.
왜곡된 절대군주정의 위험함과 드디어 떠난 시중에 대한 소중함을 느낀 자들은 앞서서 그 말에 찬동을 했다.
또한 해윤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군주와 황실에게도 족쇄를 걸었다.
군주가 앞장서서 군주의 권한을 법 밑으로 제한하는 이 문서는 금헌칙서(禁憲勅書)라 불리게 되었다.
영원히 합법적으로 제국의 노예로 근무할 수 있게 된 상민은, 마제도에서 짧은 휴가를 끝내고 다시 현업에 복귀해야만 했다.
“…….”
5년 동안 가득 똥이 쌓인 고려를 바라본 그가 이마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