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82화 (82/653)

품종

고려대륙(Koreanica)의 발견.

대서양은 유럽인들에게 세상의 끝으로 여겨지곤 했었다.

하지만 그 끝에 거대한 나라가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카나리 제도에 온 고려인들은 부정할 수 없는 증거였다.

유럽인들과 아랍인들과는 달랐지만 그들의 복식 또한 매우 정교했고 격식이 있었다.

헐벗은 아프리카 노예들을 채찍으로 데리고 온 포르투갈인들과는 달리 후안은 귀중한 손님을 정중하게 모시고는 테네리페의 푸른 바다가 보이는 아름답고 큰 저택에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상인들은 후안의 함대에 실려온 고려의 물품들에게 넋이 나갈 정도로 빠져들었다.

아프리카와 유럽의 경계 그리고 대서양으로 진출하기 위해 거치는 마지막 관문이었지만 아직 발전하지 못한 이 도시는 갑자기 엄청나게 붐비기 시작했다.

이제 제노바와 베네치아, 피렌체는 물론 런던과 일 드 프랑스, 심지어 먼 거리의 저지대와 한자에서도 상인들이 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관리들은 이들의 다양한 문화에 몹시 놀랐다.

“…분명히 대역병을 한 번 겪었다는 저들이지 않습니까?”

“시중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땅에 수많은 민족들과 엄청난 인구가 살고 있다는 것이겠지.”

중원을 겪어보지 못한 고려의 새로운 세대들도 유럽을 처음 만나고 큰 충격에 빠졌다.

아무리 그들이 국자감에서 학식을 갈고 닦았어도 이러한 경험을 하지 않으면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미지의 나라들에 대한 공포가 젊은 관리의 눈에 번지기 시작하자 이곳의 책임자인 중년의 관리가 말했다.

“무섭나?”

“…아닙니다.”

“저들 또한 우리를 보며 고려에 대한 평가를 내릴 걸세.”

중년의 관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들이 자신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만큼, 저들도 우리를 충격적으로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빈틈을 보이지 말게. 우리는 제국의 얼굴이니.”

젊은 관리도 다시금 사명감을 되찾은 듯 어깨를 펴고 신색을 가다듬었다.

엄청난 지원률을 뚫고 온 처지이지 않는가?

“알겠습니다.”

중년의 관리는 젊은 관리의 손에 들려 있는 서신에 고갯짓을 했다.

“우리가 이곳에서 명받은 임무들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고려에 크나큰 도움이 될 걸세.”

시중은 그들에게 적지 않은 임무를 내렸다.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선 지금 당장이라도 움직여야 할 것이었다.

물론 여러 가지 상황상 다른 나라로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고려 관리들과 상인들은 테네리페를 거점 삼아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뭐라구요?”

저지대 특유의 억양을 가진 플랑드르 상인이 약간 의아해하며 물었다.

자신이 이 더듬거리는 고려 상인의 말을 잘못 듣지는 않았나 확인하려는 모양.

“젖에 종기가 난 소를 어따 쓰려고 하는 게요?”

괴상망측한 주문에 플랑드르 상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내밀어진 주머니에 가득 찰랑거리는 금화는 그의 얼굴을 삽시간에 진지하고 중후한 상인의 표정으로 바꾸었다.

의문을 가지기에는 너무나 큰돈이었다.

“꼭 요구하신 소들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의 호언장담대로, 저지대의 땅에서 딱 조건에 부합하는 소들이 배에 실려왔다.

우두에 걸린 소들은 재빨리 본국으로 보내졌고, 시중의 지시 아래 의무부에서 관리하게 되었다.

소 자체의 품종 또한 확보했다.

고려의 소는 농업용으로는 더할 나위 없었지만, 우유를 생산하는 것에 있어선 별로 좋지 않았다.

반면 여러 이미지에서 묘사된 점박이 얼룩소, 홀스타인 품종의 소는 엄청난 양의 우유를 생산할 수 있는 품종이었다.

홀스타인―프리지안 소뿐만 아니라 유럽의 잘 알려진 소란 소의 품종을 충분히 확보한 그들은 다른 가축들도 넘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인식된 돼지도.

전통적인 한반도 토종 돼지는 기후에 대한 적응력과 생존성이 뛰어나다고 여겨지지만, 한 가지 엄청난 단점이 있었다.

기르는 가성비가 안 나온다는 점.

정말 말 그대로 돼지같이 살이 불어나는 유럽 품종에 비해서는 택도 없었다.

결국 돼지란 식용으로 쓰기 위해 기르는 가축이다.

농업용의 목적이 더 강한 소와 털을 기르는 양, 알을 낳는 닭, 그리고 경비의 임무를 맡은 개와는 성격이 조금 달랐다.

이 땅의 동물들 중 꽤 진미로 여겨지는 꾸이(기니피그)와 물쥐(뉴트리아)는 미식용이 아닌 이상 경제적으로 양식을 논할 가치가 별로 없거나 양식을 하기가 너무 힘드니 제외하고.

돼지는 투자하는 곡식과 늘어나는 몸집의 상관관계가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 가축이라는 것.

테네리페의 고려 관리와 상인들은 유럽의 여러 가축들을 한가득 실어 보냈다.

소와 돼지 말고도 말, 양들과 같은 기존의 고려에 있던 가축들도 예외 없이 다양한 종을 추가로 확보했다.

가축의 품종을 개선하기 위한 시중의 노력은 빛을 발했다.

유전학의 태동으로 가축 종자는 좀 더 효율적으로 관리되게 되었으며, 이 가축들은 고려 전역으로 퍼져나가 식습관을 고치는 것에 일조하게 되었다.

창강대평야의 목초지에서 가축들은 빠르게 성장하고, 덕분에 풍부한 단백질을 섭취한 고려인들의 평균 신장도 날이 갈수록 증가하게 되었다.

육상동물의 품종 외에도 중요한 것은 작물의 종자였다.

서양의 밀과 호밀, 이집트 지역의 아마(린넨)씨와 목화.

농무부와 권농서는 건국 초부터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종자의 개량에 힘써 왔으나 이동 때부터 가져온 품종에서 어쩌다가 나온 돌연변이를 생산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크게 제한되어 있었다.

애초부터 가진 DNA의 풀이 적은 까닭이다.

그러나 유럽산 품종들의 전래로 인해 토종 작물과의 유전학적인 교배가 시도되었다.

권농서 총 책임자인 김상곤은 젊고 혁신적인 생각을 가진 관리였다.

증학(경험론)의 자연과학적 연구 과정에 충실한 학자답게 그는 옛 태복시 관리 한형복의 종마의 유전학에서 영감을 받아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하여 자신만의 유전법칙을 연구하고 있었다.

고려의 대두(콩)와 유럽의 대두를 교접하여 연구를 한 그는 36여 년간 383회에 이르는 인공 교배를 실시하였고 만 단위가 훌쩍 넘는 잡종을 생산하였다.

한형복이 발견했던 우성과 열성의 개념 외에도 대립형질과 분리의 법칙, 그리고 독립의 법칙에 대한 그의 연구결과는 유전학에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의 손자이자 제자인 김의중은 할아버지가 발견한 법칙을 생산성 있는 주작물에 대입하여 연구하기 시작했다.

쌀은 물론이고 그다음 중요작물인 밀까지.

대표적인 품종으론 고려의 전통적인 밀 품종 앉은뱅이 밀을 들 수 있겠다.

이것과 유럽의 밀을 교접하는 이 연구는 훗날 상상외로 엄청난 결과를 맞이했다.

* * *

고려와 카스티야의 무역은 하루하루 그 규모가 커져만 갔다.

“이 도자기를 보게!”

고려자기(高麗磁器)의 맥을 이어나간 고려는 푸른 빛깔이 아름다운 청자뿐만 아니라 단아한 멋이 있는 백자와 기타 수십 가지의 빛깔을 자랑하는 자기들을 생산할 수 있었다.

국토가 넓은 만큼 상당한 종류의 흙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인구가 늘며 수요가 증가하자 전국 사방에 공방들이 세워졌다.

품질이 좋은 알파카 모직물은 높은 귀족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상인에 의해 높은 가격에 팔렸다.

예를 들면 잉글랜드 국왕, 헨리 4세가 자신의 찬탈로 인한 왕권 하락을 비싸고 이국적인 직물로 제작된 화려한 의복으로 만회하려고 한 것처럼.

여러 지식인들, 종교계의 인물들과 탐험가들도 흥분했다.

그곳을 여행하고 온 게디페어의 여행기에 따르면, 이 미지의 서쪽 나라는 몹시 강력하고 번화한 제국이었다.

학자들, 상인들 모두가 흥분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종교계 일각에서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그 이교도 제국도 사실 바다 건너의 오스만과 같은 놈들이지 않은가?”

동쪽에서 밀려오는 투르크인들의 파도는 이미 동쪽 정교회의 심장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고 있었고 이제는 판노니아(헝가리)와 달마티아(크로아티아)의 땅까지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서쪽 바다로도 고립된 그들.

유럽은 대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가?

유럽은 위기의식이 팽배해졌다.

특히나 해외 개척에 가장 먼저 발을 디딘 두 나라, 카스티야와 포르투갈은 더욱더.

카스티야는 고려와의 무역로를 제일 먼저 개척한 나라였지만 거대한 제국을 견제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동방 식민운동에 한 발 걸치기를 희망했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서해안을 잠식해 나가고 있었지만 고려령 희망곶이라는 뜬금없는 장애물로 인해 전진이 막히고는 손가락만 빨며 카스티야의 무역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었다.

그들은 옛 앙금을 잊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길 원했다.

왕위계승 문제로 한바탕 치고받았다 하더라도 두 나라는 레콩키스타의 전우였으며 같은 독실한 카톨릭 국가였다.

교황의 중재 아래 두 나라는 비야돌리드 근처의 토르데시야스 궁전에 모였다.

토르데시야스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으나 1325년 이후 카스티야 왕국의 궁전이 지어지며 일약 역사에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지.

두 나라의 대표들은 궁정에 마련된 협상장에 앉게 되었다.

“카스티야 왕께서 오실 줄 알았더니, 온 것은 그 악명높은 수하에 불과했군?”

포르투갈의 왕 주앙 1세는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직접 자리에 왕래할 정도의 관심을 가졌으나, 나온 상대가 엔리케 3세의 후임이자 카스티야의 현 왕 후안 2세가 아니라는 것에 분개하며 빈정거렸다.

하지만 나이가 아직 어린 왕이 이러한 일에 신경을 쓰기란 요원한 법.

게다가 포르투갈의 주앙 1세는 대왕이라 칭해질 정도로 정치적으로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자칫 눈 뜨고 코 베일 수 있다 생각한 것인지 카스티야에서는 국왕의 미령함을 핑계로 알바로가 총 책임자로 나왔다.

생후 22개월부터 어린 왕을 모셔와 그의 총애를 사고 있는 젊은 재상은 능글맞게 옆 나라 왕에게 인사를 올렸다.

“신 알바로 데 루나, 포르투갈의 대왕께 인사올립니다.”

비록 엔리케에게는 악감정을 품고 있던 주앙 1세였지만 간신이 한 나라의 국정을 농단하는 것을 같은 군주 된 입장으로서 보기에 껄끄러운 법이다.

참견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 터라 한 번 콧방귀를 낀 그는 실무진들이 대략적으로 윤곽을 맞추어 놓은 문서로 시선을 돌렸다.

“그대는 정녕 이 조약이 합리적이라 생각하는가?”

“고려에 대한 공동 대응이야말로 같은 기독교 국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수가 아니겠습니까?”

“같은 대응을 촉구하면서 고려에 대한 우리의 무역은 제한하는 이 조약을?”

탐욕스러운 재상 알바로는 껄껄 웃었다.

“그렇다면 아프리카 서해안의 영유권 양도에 대해선 양보를 하셔야지요.”

“그것은 우리의 탐험가들이 피를 흘리며 개척을 한 포르투갈의 적법한 영토이네!”

“고려와 아국의 무역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말이 이상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저 미지의 대제국과의 추후 '있을 수도 있는 분쟁'에 대해 관련이 없는 우리가 왜 피를 흘려야 하는 것이냐!”

알바로는 콧방귀를 뀌었다.

“교황 성하께서 명하신 것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교황, 마르티노 5세를 들먹이는 알바로의 말에 주앙은 크게 화를 내려다가 참았다.

그 늙은이는 대체 무엇을 본 것인지 고려에 대해 편집증적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아무리 강대국이라지만 고려가 대서양이라는 넓은 바다를 넘어 그리스도의 땅을 침범이라도 할 것 같은가?

그리고 그 노인네는 작년에 이교도 칙령을 반포해 포르투갈을 구속시키려 했었지.

눈앞의 저 쓰레기 같은 놈이 얼마나 교황에게 기름칠을 했는지 몰라도 매번 포르투갈은 종교적 측면에서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었다.

물론 그가 카스티야만큼의 기름칠을 할 돈이 없어서 불리해진 것은 맞을 것이다.

‘생각이 좁은 늙은이 같으니라고!’

금전적 호의 관계를 떠나 마르티노 5세는 이교도에 대해서는 극도로 강경하게 대응하려는 교황이었다.

아프리카에 대한 십자군을 승인하기도 했고 오스만의 혓바닥 위에 올려져 있는 콘스탄티노플을 수복하기 위해 동로마의 황제 마누엘 2세와 직접 접촉을 했다는 소문도 간간이 나돌았다.

“고려와 오스만은 분명 다르오. 그대도 그것을 잘 알고 있지 않소이까? 그러니 그 ‘이교도’들과 무역을 열심히 해 대는 것이겠지?”

알바로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지만 이내 피식 웃으며 털어내는 것이 보였다.

“그라나다의 무어인들을 몰아내기 위해선 그 어떤 평판도 감수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카스티야의 입장입니다.”

주앙 1세는 피식 웃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릴.

“마그레브의 세우타 원정을 우리가 주도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두 나라는 한동안 으르렁거렸으나 그럼에도 결국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

주앙 1세가 이곳에 직접 나온 까닭은 조약에 조인하기 위해서였다.

상업세력에 의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주앙 1세는 자국의 상인 계급에 대한 충성도를 여전히 유지해야만 했다.

그것이 마치 이거나 먹어라 하며 던져준 무역로에 대한 조각에 불과할지라도.

‘엔히크… 너라면 어찌하겠느냐?’

하지만 그가 깃펜을 잡는 것과 동시에 포르투갈의 사절단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무례함을 신경쓰지 않는 듯한 전령은 매우 다급해 보였다.

“전하!”

거의 말에서 뛰어내리다시피 한 전령이 발을 접질렸는지 절뚝이며 주앙 1세의 앞에 부복하며 직접 서신을 건넸다.

“……엔히크가 짐에게?”

그것을 다 읽은 주앙 1세가 보기 드물게 상쾌한 얼굴을 했다.

“우리는 이 조약에서 빠지겠소.”

토르데시야스 조약은 결렬되었다.

* * *

희망곶(Cabo da Boa Esperança) 조약.

아프리카에 대한 포르투갈의 독점적 영향권을 인정한 고려는 희망곶을 비롯한 발견한 아프리카의 항로를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다만 포르투갈은 고려의 남, 북려대륙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권을 인정했다.

또한 둘 사이의 무역은 고려의 주도하에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비록 대외적으로는 어마어마한 비난(특히 종교계)이 잇따랐지만 포르투갈의 상인들은 자국도 고려에 대한 무역로를 따로 확립하고 인도로 갈 수 있는 항로가 다시 열렸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했다.

마르티노 5세 또한 처음에는 격노했으나 결국은 헝가리 왕 지기스문트가 이끄는 대(對)오스만 십자군에 대한 포르투갈의 금전적 지원을 확답받으며 이번 일에 대해 다시 논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포르투갈의 칼끝은 다시금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향하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