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티야와 포르투갈
장이 발견한 고려의 주화는 상당히 높은 가격에 팔렸다.
그 주화들이 고려의 위폐라는 사실은 몰랐으나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상인들은 그 순도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비싸게 거래하는 것에 동의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나라의 주화라는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그중에는 그 기술력이 그들과 그리 뒤떨어지지 않는 것에 감탄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간단하지만, 대단한 발상이오.”
“뭐가 말입니까?”
“이 주화의 옆 테두리의 무늬를 보시오.”
테두리 톱니무늬를 처음 보게 된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무릎을 쳤다.
“금화의 훼손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군.”
제노바 놈들은 베네치아 두카트(Ducat)를 일부러 깎아내어 훼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지들의 제노비노(제노바 금화)를 쓰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자신들이 피렌체의 플로린에 비슷한 짓을 많이 했다는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고려의 주화를 접한 제노바, 피렌체, 베네치아는 모두 비슷한 시기에 주화에 톱니무늬를 그려 넣기 시작했다.
* * *
장은 주화들을 매각해 한순간에 주군 엔리케 3세가 준 칠천 파운드보다도 훨씬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는 빠른 속도로 섬들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1407년, 란자로테에 상륙한 후 불과 5년 만에 제도에서 가장 큰 영토를 자랑하는 테네리페섬과 그다음으로 큰 그란 카나리아섬을 모두 복속하는 것에 성공하였고, 테네리페섬에 산타크루스 데 테네리페(Santa Cruz de Tenerife)라는 도시를 건설했다.
남은 것은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에게 공언받는 것.
장은 정성스러운 선물을 통해 교황 보니파시오 9세에게 자신이 이 제도의 적법한 주인임을 공인받으며, 주군 카스티야의 엔리케 3세의 허락을 받아 카나리 제도의 대공으로 즉위했다.
‘프랑스식 이름도 버려야겠다.’
장은 가문에서 따로 방계로 독립했으며 이름까지 카스티야식으로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장 드 베텐쿠르(Jean de Béthencourt)는 이제 테네리페의 대공, 후안 데 베텐쿠르―테네리페(Juan de Béthencourt―Tenerife)라 불리게 되었다.
후안 1세는 여러 가지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거의 썩어버린 고려의 협저선을 모방하여 새로운 배를 건조하기 시작한 것,
유명한 탐험가들을 초청해서 미지의 땅에 대한 탐험을 시작한 것.
당시 테네리페 정남쪽의 서아프리카의 해변, 즉 보자도르 곶(Cabo Bojador) 이남의 바다는 괴상망측한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너무나도 뜨거워서 바닷물이 펄펄 끓는 땅이라는 소리는 매우 흔하게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남쪽으로 갈수록 몹시 더운 위도였고 근처의 정박할 땅이라곤 거대한 사막밖에 없는 곳이다.
또한 바람은 거세고 방향 또한 밑으로만 불어 위로 다시 올라오기 힘들었다.
― 그 난파선이 모든 돛대가 부러진 채 섬에 있던 것이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후안은 선원들과 다르게 지레 겁부터 집어먹진 않았다.
‘서쪽에도 땅이 있다.’
알아볼 수 없게 작성된 이 항해일지.
조금씩 조금씩 몇 단어씩 해독하고는 있었지만 아직 모든 내용을 면밀히 알 순 없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확신하고 있는 것은, 저들은 분명 유럽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이 올 수 있다면, 우리도 갈 수 있는 법이다.’
그들은 기존까지 항해에 쓰이던 덩치가 크고 육중한 나오(Nao, 스페인의 카락) 대신 새로 발견한 협저선을 본받아 최소 인원으로 항해를 할 수 있는 범선을 개발했다.
카라벨라(Carabela)라고 이름 붙여진 이 범선은 횡범은 하나도 가지지 않았고 다우선의 삼각돛처럼 생긴 종범만을 두세 개의 마스트에 달고 있었다.
당연스럽게 추진력이 감소할 테지만, 범선의 무게가 원체 가볍고 날렵해 상관없었다.
역풍에서의 대처 또한 높아 탐험가들에겐 안성맞춤의 배였다.
경험이 쌓이고 카라벨라에 익숙해진 선원들은 마침내 보자도르 곶에서 불고 있는 역풍을 극복해 낼 수 있었다.
“우리가 세상의 바다를 제일 처음 정복하리라!”
카스티야인들은 처음으로 보자도르 곶을 정복하는 것에 성공했다.
* * *
동시기, 카스티야와 한바탕 왕위계승문제로 치고받은 포르투갈은 카스티야의 탐험대가 실적을 올리는 소리를 듣고 슬슬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화해 비스무리한 것은 했으나, 아직까지 앙금이 해결되지 않은 모양.
‘빌어먹을 놈들.’
또한 포르투갈은 그들의 입지상 뻗어 나갈 곳이 바다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는 길마저 카스티야에게 막혀버린다면 그들에게 미래는 없었다.
주앙 1세는 자신의 삼남, 엔히크 인판트(왕자)가 카나리 공 후안 1세의 탐험기에 감명을 받아 바다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는 것을 눈치챘다.
장남과 차남이 그랬다면 조금은 탐탁지 않았겠지만, 엔히크는 삼남. 왕위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형제간의 우애에도 좋을 것이다.
주앙 1세는 엔히크에게 포르투갈 남부의 땅, 알가브르(Algarve)를 봉역으로 분봉하고 먼저 대양에 나선 카스티야를 바짝 추격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곤 자신은 세우타, 즉 북아프리카를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저는 세우타 정벌에 따라가지 않나요?”
“그래, 다만 저 카스티야 놈들의 콧대를 눌러주거라.”
십 대 소년 엔히크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는 카스티야의 카라벨라 도면을 빼내어 포르투갈식 캐러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친우인 질 이아네스를 시켜 카나리 제도 북쪽에 있는 마데이라 제도를 발견했으며, 또 가까운 대서양에 있는 아조레스 제도를 발견해냈다.
실로 대단한 업적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젊었고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후안 1세를 추월했다.
본래 엔히크를 위시한 포르투갈의 탐험가들은 오로지 하나의 목적에 몰두해 있었다.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는 것.
그리고 인도에서 금과 맞먹는 가치를 지닌 후추와 다른 귀중한 것들을 가지고 오는 것.
오스만과 맘루크가 인도와의 교역 길목을 차단하며 무역의 흐름을 제멋대로 통제하거나 아예 끊어버리자 유럽의 넘치는 소비욕은 탐험가들을 세상 끝으로 내몰고 있었다.
엔히크와 그 아버지 주앙 1세도 알고 있었다.
만약 포르투갈이 인도와의 항로를 개척할 수 있다면 그들은 삽시간에 유럽의 강대국으로 떠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걸.
마데이라는 거점에 불과했다.
마데이라에서 출발한 그들은 서아프리카의 중요 요지, 다카르를 정복했다.
그곳은 베르데 곶이 있는 전략적 요충지가 틀림없었다.
다카르 부근에는 졸로프 왕국(Jolof)이라는 작은 아프리카 왕국이 있었다.
말리 제국의 반쯤 속국인 이 졸로프 왕국은 전쟁포로들을 포르투갈에 판매하려는 의향을 보였다.
포르투갈 원정대 대장 질 이아네스는 원주민 토후에게 금화를 건네며 생각했다.
‘미개하지만 우리로선 좋은 일이다.’
유럽이 철저한 기독교 사회로 변한 이후 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을 노예로 파는 행위는 점차 줄어들어, 지금 이 시기에 와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이슬람으로 대표되는 이교도들과 심지어 동유럽에 속하는 슬라브인의 거래는 심심치 않게 일어났지만 오스만투르크가 강성해지고 있는 지금은 제노바와 베네치아도 노예의 공급 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
포르투갈 상인들에게 꾸준한 노예의 공급처는 분명 좋은 수입이 될 것이었다.
그들은 다카르에서 더 남하하여 대륙의 움푹 파여진 곳을 끼고 돌았다.
“이곳을 기니만이라 부르자.”
포르투갈 선단은 기니만에 위치한 상 투메(São Tomé)섬에 거점을 마련하여 첫 번째 원정을 마무리짓고는 노예무역을 시작했다.
* * *
반면 카스티야는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카나리 공 후안 1세는 후발주자였지만 먼저 바다에 나간 자신들보다 더 빨리 성과를 올리고 있는 포르투갈 선원들에게 딱히 위기감을 느끼고 있진 않았다.
인판트 동 엔히크와 질 이아네스는 한창 모험심이 강하고 탐험에 특출난 자들이었다.
운도 좋은 녀석들이지.
후안은 첩자들을 통해 포르투갈인들이 금과 구리, 소금 그리고 노예들이 산출되는 나라, 아프리카 서쪽의 졸로프 왕국을 발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곳이 이 대단한 주화를 만든 곳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번성했지만 그저 그뿐이다.
이 검은 피부의 인종들은 유럽에 비해서 매우 미개했으며 특출난 지적능력을 자랑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자신과 같은 피부와 같은 언어를 쓰는 동족들을 거리낌 없이 노예로 팔기까지 했다.
포르투갈은 다카르를 통해 노예무역을 시작하는 모양.
반면 한동안 실적이 없던 카스티야인들은 포르투갈인들이 부러웠는지 다시 원정대를 정비해 포르투갈처럼 남쪽으로 가 노예 거래용 거점을 만들자 건의했지만 후안 1세는 아랑곳하지 않고 카나리아에서 대원정을 준비했다.
‘항해일지….’
언어가 해석이 안 되어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그들이 왔던 방향과 불었던 바람의 방향은 글자가 아닌 방위와 숫자로 표시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해하기 쉬웠다.
남쪽으로 간 포르투갈과 반대로 카스티야는 서쪽으로 향했다.
“가자! 엘도라도로!”
* * *
고려 5대 황제, 해윤은 상당히 특이한 놈이다.
어릴 적부터 특출나게 활달한 이 어린 소년은 무예와 전술 공부 외에는 다른 것에는 일절 관심을 두질 않았다.
상민이 어르고 달래봐도, 소년의 관심사는 매우 일관성 있었다.
전통적인 능력세습제로 선출되지 않은 이놈은 상민 자신이 들려준 옛이야기들에 감명을 받았는지 삼성(三省, 상서성 중서성, 집법성)에서 빗발치는 친정 요구를 묵살하고는 성인이 되자마자 대대적인 원정군을 꾸려 타완틴수유(Tawantinsuyu)를 공격하고자 마음먹었다.
“하난(Hanan)과 우린(Urin) 반족(半族)이 서로 분열하고 대립할 때, 지금이 바로 저들을 정복할 기회입니다.”
타완틴수유.
잉카 제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잉카라는 말은 타완틴수유의 왕을 뜻하는 말이었다.
우린의 잉카와 하난의 잉카가 서로 극심하게 대립하는 이 순간이 저들을 칠 절호의 기회라는 말 자체는 매우 합리적이며 설득력 있었다.
하지만 상민은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솔직히 고하시오, 황상은 이 늙은이에게 모든 짐을 떠넘기고 혼자 영광을 쓰기 위해 떠나는 것 아니오?”
때마침 시중(侍中)이라는 관직을 신설한 소년 황제는 정곡을 찔렸는지 움찔했지만 그래도 고개를 당당하게 폈다.
“굳이 이 우둔한 소손이 나라를 관리하는 것보다, 할아버님께서 하시는 것이 제국 만민에게 더 좋은 것이 아닙니까?”
해진과 비슷한 성격을 가졌지만, 아예 다른 선택을 하려는 이 망할 꼬맹이는 이미 반쯤 마음이 저 전쟁터로 떠나 있었다.
“황상!”
“저들의 잔혹한 풍습을 알고 있지 않으십니까? 저들 또한 우리 제국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여 잔혹한 풍습을 버리고 새롭게 제국의 신민으로 다시 태어날 권리가 있습니다.”
타완틴수유 또한 몹시 심한 인신공양적 악습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 원정은 불교 종단의 지지를 받기도 했지.
물론 전형적인 제국주의적 논리였다.
“차라리 이 몸이 가지요, 황상은 아직 나이가 어리고 군무에 대한 경험이 적으니 훗날을 기약하시는 것이 좋겠소.”
해윤은 그 말을 듣고 완전 상심했다.
물론 상민은 콧방귀도 끼지 않았다.
상민이 북쪽으로 떠나기 전날 밤 삐진 증증손자를 어르고 달래기 위해 연회를 준비하던 찰나, 그는 이 고집불통 후손이 밤중에 몰래 빠져나가 도성의 군대를 이끌고 기나긴 원정길에 올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 이놈이!”
이번 원정은 하루아침에 끝날 일이 아니었다.
타완틴수유와 안데스 북부를 점령하기 위해선 차근차근 정복된 지역을 개종하고 계도시켜 흡수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여지없이 무기한 시중직을 맡게 된 상민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집무실로 돌아와야만 했다.
자신의 책상에는 여전히 수많은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창강과 광하에 대한 치수사업, 도로 공사, 요새와 도시 건설, 그리고 양안 작성.
상민은 책상을 뒤집어엎으려는 충동에 휩싸였으나 가장 위에 올려져 있는 서류에 적힌 글이 갑자기 머리에 와 닿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다.
상민은 의자를 빼 털썩 앉고는 자세하게 그 서류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
탐험과 개척은 몇 년간의 공백기 이후 다시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대동양의 한가운데서 독도를 발견한 것 말고도 아프리카의 해안을 따라 꽤 많은 지역들이 고려의 지도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동쪽으로 간 자들은, 저 멀리 아프리카의 뿔, 즉 아덴만으로 보여지는 곳까지 도착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다.
아프리카 서쪽으로 간 자들은 상아 해안을 발견해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침내 유럽 세력과 조우했다.
고려의 탐험대는 망원경의 이점을 통해 포르투갈의 선단을 먼저 발견했으나 접촉하지 않고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탐험대장 신원길은 남쪽으로 귀환하여 이 사실을 조정에 알렸었지.
상민은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대항해시대는 자신이 여러 매체(주로 게임이겠지만)를 통해 꽤 빠삭하게 알고 있는 분야였다.
자신이 작성한 비밀 연도표에는 15세기의 후반에야 들어서 대항해시대가 밝아왔다 기록되어 있었다.
아프리카의 개척은 분명히 신대륙 탐사보다는 선행된 사건이지만, 그것이 지금처럼 이렇게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는지는 솔직히 의문이 들었다.
비록 삼별초가 이 땅에 자리하면서부터 세계의 역사가 꽤 많이 바뀌었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 남려 및 북려대륙의 일에 한정되었을 것이다.
조금 더 넓게 보자면 한반도와 동아시아도 살짝 바뀌어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자신들의 행동이 유럽에까지 도달하지는 못했을 텐데.
‘어쩌면….’
먼저 바다로 떠나갔던 항해사들 중에 누군가 유럽에 도착한 것이 아닐까?
독도에서 비석을 껴안고 늙어 죽은 병권처럼 말이야.
“물어볼 사람도 있고 하니.”
궁금증은 풀면 그만.
물어볼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을 불러 물어보도록 하자.
보고서를 모두 넘긴 그가 마지막 결재란에 나름대로 익숙하게 섭정의 서명을 하고는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오히려 해윤 대신에 자신이 원정을 떠났으면 좋지 않았을 뻔했다.
* * *
1413년, 10월 11일의 일이었다.
카나리 제도에서 출발한 후안 1세의 함대는 드디어 육지를 발견했다.
신대륙에 처음으로 도착한 유럽인이 된 것.
“…맙소사.”
공포스러울 정도로 넓은 대양을 횡단하는 기나긴 여정이었다.
순풍(무역풍)이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수도 있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결국 그들은 이렇게 살아서 새로운 땅에 발을 디뎠다.
푸른 대양과 아름다운 해변.
야자수와 기러기들.
감격스러운 모양인지 후안 1세가 옷에서 십자가를 꺼내고는 성호를 그으며 모래사장에 입맞춤을 했다.
등 뒤에서도 다른 자들이 모두 비슷한 행동을 취했다.
― 부스럭 부스럭
누구야 이 신성한 시간을 방해하는 놈들이.
그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들고 눈앞 바스락거린 숲속을 바라보았다.
“[email protected]#%^?”
알지 못하는 언어를 쓰는 사람들.
“[email protected]%^$^&?”
하나가 아니었다.
우르르, 이국적인 사람들이 숲에서 몰려나왔다.
그들은 나체의 원주민들도, 유럽인들도 아닌, 굳이 따지자면 저기 대륙의 동쪽 끝에 산다는 동양인들처럼 생겼는데.
덩치가 컸으며, 갑주는 경갑이지만 충실했고 나름대로 독특하면서도 세련된 모습이 있었다.
― 철컥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론 그들의 손에 유럽에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아쿼버스, 혹은 핸드캐논과 비슷한 것들이 들려 있었다는 점.
카스티야인들은 저것들이 불을 뿜으면 자신들의 뇌에 제법 큰 구멍이 나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후안을 비롯한 선원들이 다소 얼빠진 얼굴로 두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
고려령 만궁 열도.
그들이 도착한 섬들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