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바다(지도 첨부)
실패한 사람과 성공한 사람.
어떤 경우에는 두 부류의 차이가 하늘과 땅 만큼이나 벌어져 있었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그들 사이엔 너무나 사소한, 마치 종잇장 같은 간격만이 존재할 뿐이다.
탐험가들의 경우에는 후자의 경우가 많았다.
선단들은 장거리의 원양항해를 할 미지의 바다를 조우하기에 앞서 여러 가지 물자를 충분히 싣고 가는 것 외에는 별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남은 것들은 오로지 하늘과 바다에 맡길 뿐.
여태껏 고려가 해 왔던 탐사는 모두 연안을 따라 남북으로 오갔던 정도였다.
항상 선택지가 존재하는 문제.
즉 비상시에 육지로 가서 다시 재정비를 할 수 있다는 그 선택지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고려인들은 지금까지 진정한 대양을 목도한 적이 아직 없었다.
또한 그것이 얼마나 혹독한지를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첫 번째 대동양 탐험대, 송병권.
청해에서 출발한 병권은 정동쪽으로 진로를 잡았다.
처음에는 매우 괜찮았다.
바람이 다소 이리저리 부는 감이 있었지만 노련한 선원들은 횡범과 종범을 적절하게 사용하며 나아갔다.
마야와 남부항로에서 함께한 선원들은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그네들 선장을 따라 이번 여정에 참가한 사람들이 많았다.
배가 청해에서 출발할 때는 갑자기 구름이 스멀스멀 껴 약간 불안했지만 꽤 멀리까지 나온 지금은 또 괜찮아졌네.
갈매기가 보이지 않게 된 지 벌써 일주일.
측량상으로는 청해에서 동예 정도의 거리는 충분히 이동했을 것 같았다.
― 꺼억
대낮에 독주를 들이킨 병권이 고함을 질렀다.
“날씨 한번 좋구나!”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 한 점 없는 나날.
갑판에서 늘어져 있는 선원들은 돛을 정비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은 채 게으르게 배를 긁으며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선실에 있는 자들도 그물침대에 몸을 뉘거나 혹은 노름을 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날을 확인한 병권이 선실로 향했다.
꽤 시간이 지났으니, 청해에서 발간된 신간을 펼쳐 오랜만의 회포를 풀어야겠다.
* * *
그리고 비슷한 하루가 흘렀다.
아니,
이틀, 사흘, 나흘이 흘렀다.
여전한 바다와 여전한 풍경이 그들 주변에 펼쳐져 있었다.
‘…….’
선원들이 모두 병권을 쳐다보았다.
노련해진 탐험가 송병권은 애써 태연한 신색으로 망원경과 육분의를 들고 사방을 관찰하고 있었다.
여전히 맑은 하늘, 바람 한 점 없는 날씨.
병권은 답답함에 수평선을 바라보다, 해수면의 잔잔함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등골을 달리는 오싹함.
송골송골 맺히는 땀은 분명히 추위 때문은 아니라 항변했다.
‘이런 젠장.’
마치 강가와 비슷할 정도의 잔잔한 파도.
바다에서는 너무나 특이할 정도로 이상한 파도였다.
바람이 어디선가 계속 불고 있다면, 적어도 이것보단 거세게 파도가 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설마 이 넓은 곳이?’
전후좌우 모두 다 똑같아.
그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 휙
하늘에 던진 손수건은, 다른 때 같았으면 거센 바람에 휘말려 날아가 저 멀리 떨어지거나 바다에 들어가 찾을 수 없게 되었을 텐데.
― 툭
지금은 이렇게 바로 앞에 떨어진다.
― 꿀꺽
병권이 침을 삼키곤 목을 가다듬었다.
“항해장, 갑판장, 보급관 날 좀 보지!”
“예, 선장.”
― 달칵
요리장에게 일러 협저선의 선장실에 따뜻한 차를 가져오라 한 뒤, 그는 선장실의 문을 잠궜다.
“…….”
세 명의 고급 선원들은 굳은 얼굴로 선장실 책상에 펼쳐진 지도를 바라보았다.
청해의 항해학교에서 발간된 이 해도에는 분명 동쪽의 그림은 그려져 있지 않았다.
천문학의 발달로, 저 멀리 가면 옛 대진국(로마)이나 회회국(아랍), 천축국(인도) 혹은 옛 중원의 영토, 그리고 고려인들의 고향 개경과 벽란도가 있는 아늑하고 아름다운 반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설은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는 사항이지만.
도중에 촉수가 수십 개 달린 거대한 문어 괴물이라도 나올지 어떻게 알겠는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뱃사람들이 직면한 공포는 거대한 문어나 상어 괴물도, 울부짖는 바다와 태풍도, 그리고 폭우도 아니었다.
더할 나위 없는 잔잔한 바다.
무풍지대(無風地帶, Doldrum).
― 똑똑
적막이 깨졌다.
요리장이 직접 카카오 차를 타 온 모양이었다.
“요리장, 배의 식량은 얼마나 남았는가?”
“한 달 동안은 충분히 버틸 수 있습니다.”
“당장 오늘부터 그의 절반만큼 보급하게.”
“…예?”
선실에 박혀 있는 것이 일상인 요리장은 갑자기 하루아침에 바뀐 배의 분위기에 영문을 몰라하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항해사가 측량기구들을 들고 지도에서 이리저리 무언가를 계산했다.
“이전까지 이동했던 거리는 대충 이 정도일 듯싶습니다.”
병권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선장, 회항을 결정할 수 있는 기회는 오직 지금뿐입니다.”
보급관이 어두운 낯빛으로 말했다.
갑판장이 그 소리를 듣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회항? 겨우 보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꽁지를 말고 도망친단 말이오?”
갑판장은 입술을 씰룩였다.
“우리의 정예한 선원들은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이런 고요함이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니 그 짧은 시간만 버티면 됩니다.”
병권은 갑판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남부항로를 발견할 때와 같은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청해에서 기다리고 있을 후원자들과 자신의 꼬리에 따라오고 있을 경쟁자들을 생각한다면, 지금 이 순간 지레 겁먹고 도망치는 것은 현명하지 못했다.
“선원들에게 낚싯대를 들려주어 낚시라도 하도록 하지.”
* * *
그리고 그 결정이 확실히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무려 이 주일(열흘)이 흐른 뒤였다.
낚시를 해 보아도 생선이 도통 잡히지 않는다.
이 끔찍한 바다는 너무나도 고요했다.
노를 급조하여 저어 나아가자는 주장, 배 뒤로 포를 쏴 반동을 이용하자는 주장, 허무맹랑한 소리만 늘어놓는 선원들은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불안과 초조함에 그런 것도 있지만, 반으로 줄어든 배급 때문이 컸다.
“젠장!”
회항을 결정하지 않은 선장에게 불만이 터진 일부 신입 선원들은 선상반란을 일으켰다.
두 척의 배가 세 척의 배를 기습했다.
그들끼리 치고받는 전투에, 잠시 동안은 지독한 무료함이 사라지긴 했다.
오랫동안 병권과 함께한 선원들은 노련함을 앞세워 반란자들을 어찌어찌 제압하는 것에 성공했다.
한 척의 배가 침몰했고, 한 척의 배는 중파하여 더 이상 쓸 수가 없게 변했지만.
즉석으로 마련된 기다란 판자 끝에서 반란자들은 바다를 향해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비록 여기서 죽지만, 너희들도 마찬가지겠지!”
끝까지 독설을 뱉은 반란 선원들은 배 후미에서 물장구를 치고 있다.
씁쓸하게도, 배는 그들에게서 빠르게 멀어지지 않았다.
아련하게 울려 퍼지는 저주의 소리.
이윽고 꼬르륵대며 죽어가는 자들.
남은 선원들은 귀를 막고 있으면서도 은근히 치미는 안도감을 느꼈다.
‘먹는 입이 줄었어.’
그들을 수장시킨 날 밤. 병권은 마침내 회항을 결정했다.
그는 다소 남쪽으로 조타륜을 돌렸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고려대륙 동해안 근처에서 항해할 때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육지와 바다에서 부는 해륙풍의 영향도 컸고 그 기간이 길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만약 남쪽으로 간다면….’
* * *
배는 느릿하게, 그러나 꾸준하게 남쪽으로 향했다.
선상반란 때 포탄에 맞은 부위가 불안하게 삐걱거렸다.
식량이 이제 거의 남아나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견시수의 임무를 맡은 선원이 저 멀리 남쪽의 수평선에 비구름이 껴 있는 것을 관측할 수 있었다.
― 휘잉
한줄기 다소 시원한 바람이 그의 이마를 스쳐 지나갔다.
극도로 반가운 손님, 너무나 당연했어야 할 손님에 선원이 울음 섞인 고함을 내질렀다.
“…바람이다!”
바람이다.
수일간 배를 곯다시피 해 선실에서 꼼짝도 안 했던 선원들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피골이 상접한 와중에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돛을 조종했다.
순풍, 아니 역풍이라도 제발. 불어만 다오.
― 펄럭
바람의 힘을 머금은 돛.
기력이 딸리는 손을 내려놓은 선원들이 만세를 불렀다.
배는 마침내 지독했던 무풍지대에서 벗어나 남쪽으로 향할 수 있었다.
병권도 눈물을 흘리며 선원들을 껴안았다.
마침내, 마침내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그래. 큰 바람은 동과 서로 부는 것이야.’
“육지입니다!”
게다가 좋은 일은 겹쳐서 일어나는 법.
견시수의 고함에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 외딴 섬이 보였다.
병권은 저 섬에서 조금 정비와 수리를 하고 다시 출발할 계획을 세웠다.
그게….
아마 좀 예전의 일이었지?
병권의 수염은 계속해서 자라났고, 등은 세월이 지날수록 굽어만 갔다.
이 항해를 계획할 때부터 이미 자신은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었으니 지금은 노인이라고 불러도 되겠지.
그는 청해로 돌아가려는 희망을 접었다.
선원들의 많은 수가 반란으로 죽었고, 그리고 더 많은 수가 영양실조로 죽었다.
세 척의 배는 긴 항해에 버틸 수 있을 몰골이 아니었다.
섬에 도착한 후에도 얼마 동안은 생선으로 연명하는 것이 전부였다.
나중엔 파종이 가능했는데, 그들은 원래부터 농부가 아니었으니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한 번 무풍지대를 겪은 선원들은 그 거대한 공포에 심지어 다시 배를 타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이 작은 섬에서 살아남기를 원했을 뿐.
자신도 더 이상 자신이 없었다.
한 척의 배가 그래도 자신들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떠나긴 했는데.
바람은 대체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불고 있으니 얼마나 오랜 기간을 항해할지 몰랐다.
병권은 떠나는 배들의 꼬리를 보며 자신의 마지막을 느꼈다.
“위대한 탐험가이자 위대한 고려의 백성 송병권과 휘하 선원 삼십여 명은….”
그는 섬에서 발견된 거대한 화산암에 끌로 열심히 그의 흔적을 새겨나가기 시작했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존재는 영원히 잊혀질 테니까.
“이곳, 독도(獨島)를 고려 제국의 가장 동쪽의 영토로 선언한다.”
병권의 주름진 미소가 어쩐지 쓸쓸하게 보였다.
* * *
반면 첫 번째 도주대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고려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간 첫 번째 범죄 도주대, 우진은 병권과는 다르게 연죽곶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진행 방향도 약간 이상했다.
정동(正東)을 바라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북동, 즉 제국의 추적함대와 가장 멀리 떨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
사실 이상하기보다는 쫓기는 자의 당연스러운 행동이겠지만.
이들 또한 적도에서 병권과 비슷한 재앙을 마주쳤다.
그러나 우진의 함대는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처음부터 사선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에겐 몹시 다행이겠지.
무풍지대를 상대적으로 빠르게 빠져나온 함대들은 역풍을 동력 삼아 꾸준히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범죄자들의 운은 여기까지.
무풍지대에서 말을 잡아먹으며 바다의 두려움을 깨우친 그들은 저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섬을 바로 눈앞에 두고 서서히 커지는 바람에 조금씩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 서부에서 시작된 자그마한 열대성 저기압의 씨앗은, 공교롭게도 북쪽으로 도주하고 있는 우진의 상단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태풍은 작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갈수록 커져만 갔다.
그들의 죄에 분노했는지 하늘과 바다가 뒤집혔다.
하늘에선 미친듯한 바람 소리가 들려오고 바다에선 집채만 한 파도가 물결쳤다.
선원들은 감히 갑판에서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었다.
돛대에 몸을 묶은 자들도, 돛대 자체가 꺾여버린 후에는 차가운 바다의 심연을 마주하는 운명에 처할 뿐.
극과 극의 현상.
무풍지대와는 다른 두려움.
그야말로 대자연의 압도적인 힘에 휘말린 그 작디작은 인간들은 결국 아무도 생존하지 못했다.
아니.
달랑 한 척은 어찌어찌 살아남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돛대가 전부 부러진 배가 어찌 살아남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것인가.
우진과 선원들은 주변에 널려 있는 쓰지도 못할 거대한 돈들을 노잣돈 삼아 영원한 안식에 빠져들었다.
망망대해에 물리적으로 그저 떠 있기만 하는 배는 안에서 이미 굶어 죽어 유골로 화해버린 선원들을 대동하고 북대동양을 떠돌기 시작했다.
훗날 그 배는 카스티야인들에 의해 떠도는 고려인들(Coreano Volador, Flying Korean)이라고 불리우게 되었다.